제 아무리 '무도'라도 아쉬웠던 이유

 

지난주 ‘맞짱특집’이 시작하면서 <무한도전>은 그간 줄곧 시청률 1위를 기록하던 것과는 다른 결과를 냈다. <스타킹>과 13.7%로 동률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 이것은 조금 복잡한 미션이라도 늘 챙겨보던 시청자들이 팬덤으로 존재하는 <무한도전>으로서는 의외의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그 미션 방식이 이해되었을 ‘맞짱특집’ 2회분에서 <무한도전>의 시청률은 오히려 10.9%로 추락했다. 반면 <스타킹>은 전주와 유사하게 12.9%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생긴 걸까.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무한도전>에게 시청률이란 사실 그다지 중요한 지표는 아닐 수 있다. 매번 비슷한 형식을 반복하는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들과 달리 무언가 늘 새로운 형식을 시도한다는 것, 그것이 시청률이라는 단순한 수치로 가치가 매겨지는 건 어딘지 억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과 지나치게 마니아적인 틀에 갇혀버리는 것은 다르다. ‘맞짱 특집’은 <무한도전>이 마니아적으로 흐르게 될 때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가를 잘 말해준 사례다.

 

‘맞짱 특집’은 재작년에 빅뱅이 출연해 가요계와 예능계의 대결을 그렸던 ‘갱스 오브 서울’의 연장선에 있는 아이템이다. 물론 이번 특집의 출연진들은 ‘못친소’ 특집의 친구들인 신치림이나 데프콘, 권오중, 김영철이 출연함으로써 기대감을 높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직검사파’와 ‘콩밥천국파’로 나뉘어 보스를 숨긴 채 가위바위보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는 생각만큼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그것은 이 게임이 겉으로 보기엔 단순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몰입해야 겨우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복잡한 심리전이 전개된 데다, 사실상의 캐릭터로 풀어가는 예능이 됨으로써 <무한도전>의 고정 팬들은 좋아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자못 거리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못친소’ 특집을 못봤거나 <무한도전>의 팬이 아닌 일반 시청자들이라면 왜 저들이 저렇게 가위바위보를 갖고 서로를 속이고 속는 장면들을 보이고 있는가가 의아하게 여겨졌을 법 하다.

 

반면 이 시간대에 <스타킹>에서는 면발을 수타로 뽑아서 박을 깨고 못을 박고 가느다란 바늘귀에 꿰는 식의 대결이 펼쳐졌다. 굳이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그 신기한 장면들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어 출연한 8살 짜리 드럼 신동의 이야기는 <스타킹>이 제 아무리 소소한 아이템이라도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재미를 끌어내는가를 보여주었다. 드럼 신동의 드럼 연주 하나로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을 것이지만, 여기에 갑자기 출연한 박준규의 아들과의 배틀이나 FT아일랜드의 드러머 민환과의 연주는 그 흥미를 배가시켰다.

 

여기에 <스타킹> 특유의 가족적인 분위기는 토요일 저녁에 온 가족이 편안하게 둘러보는 예능으로서의 강점을 부가시킨다. 이것은 <무한도전>이 어딘가 마니아적으로 흐르면서 그들만의 세계에 머무는 것과는 상반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제 아무리 <무한도전>을 좋아하는 시청자라도 재미를 못 느끼게 만든다면 채널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느 팬의 이야기처럼 좋아하는 것과 재미있는 것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무한도전>의 추락을 얘기하는 건 아닐 게다. <무한도전>은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마니아적인 틀에 갇혔다가도 다시 균형을 잡았던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맞짱 특집’ 같은 실수의 반복은 자칫 <무한도전>이 갖고 있던 고유의 팬덤조차 흔들 수 있다. 왜 최근 들어 <무한도전>은 과거 봅슬레이 특집이나 레슬링 특집 같은 좀 더 현실적이면서도 굵직한 아이템들을 하지 않고 소소한 캐릭터 게임에 머물러 있는 걸까. 어서 <무한도전>이 본래 갖고 있던 그 대체 불가한 새로운 도전을 보고싶다.

<보이스코리아2>의 차별성, 인재가 모이는 이유

 

도대체 어디서 이런 인재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걸까. 너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생기면서 가장 걱정되는 일은 계속해서 그만한 인재들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점일 게다. 하지만 <보이스코리아2>를 보면 그건 기우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즌1에 이어 시즌2 첫 회에서부터 <보이스코리아2>는 확실한 개성의 매력적인 보컬리스트들을 보여주었다.

 

'보이스코리아2'(사진출처:Mnet)

첫 무대를 장식한 이재원은 지난해 <보이스코리아> 우승자인 손승연의 고등학교 후배로 17세의 최연소 참가자이기도 하다. ‘소울마스터’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이재원은 윤상의 ‘넌 쉽게 말했지만’을 자신만의 소울풀한 목소리로 해석해냈다. 그 나이라면 응당 아이돌 그룹을 꿈꾸기 마련이겠지만 자신은 보컬리스트가 꿈이라는 이재원은 <보이스코리아>라는 오디션의 존재 이유를 잘 보여주었다. 아이돌이 아닌 보컬리스트. 아마도 이 지점은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보이스코리아>의 가장 큰 차별성일 것이다.

 

아쉽게 아무 코치의 턴도 받지 못하고 탈락한 사필성은 <보이스코리아>를 선택한 이유를 묻는 길에게 이렇게 답변했다. “음악 쪽으로 걸어온 지 10년이 넘었어요. 내가 살아가야 될 길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살아왔는데 한번은 조금 따뜻한 조명 밑에 서보고 싶어서...” 부산에서 버스킹을 하며 지내온 사필성의 이 이야기는 오로지 노래에만 집중하는 <보이스코리아>가 어떻게 거기에 딱 맞는 인재들을 계속 끌어 모으는 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한편 당구를 잘 치고 털털한 매력을 가진 경복궁 쟈넷 리(?)로 불리는 이시몬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코러스로 패티김의 ‘이별’을 새롭게 해석해 불러 첫 올턴의 주인공이 되었다. 백지영 코치는 그녀의 이름에 빗대 “시몬 너는 아느냐 네가 노래를 얼마나 잘 했는지를...”이라고 그를 극찬했다. 작년 <보이스코리아> 출연해 강력한 인상을 남겼던 코러스 출신 유성은의 절친이기도 한 이시몬은 이 무대가 코러스 출신들이 그러하듯 절정의 실력은 갖추고 있으면서도 늘 뒤에 서 있던 이들의 기회의 장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심한 곱슬머리라 아예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윤성호는 164cm의 키에 48킬로의 몸무게로 왜소한 체구만큼 소심한 인물. 어딘지 방송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면모를 보인 그는 하지만 김민기의 ‘새벽길’을 파워풀하게 해석해내는 반전무대로 코치들을 매료시켰다. 백지영은 그의 독특한 목소리를 “변성기 전도 변성기 후도 아닌 독특한 음역대를 갖고 있어요”라고 말했고, 길은 거기에 맞장구를 치며 “마이클 잭슨이 가진 음역대와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145킬로에서 70킬로로 무려 몸무게의 반을 뺀 김민석은 케이윌의 ‘눈물이 뚝뚝’을 불러 백지영 코치의 선택을 받았다. 백지영은 “그 정신상태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라고 격려를 해주었고 신승훈은 “굉장히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단지 저는 노래를 하고 싶었어요. 아무 무대도 받아주지 않더라구요.”라고 말하는 김민석에게도 오로지 목소리로 승부하는 <보이스코리아>는 각별한 오디션이었을 게다.

 

특유의 흥을 섞어 김건모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부른 허각과 닮은 꼴로 ‘코가 잘생겨’ 코각이라는 닉네임을 얻은 김우현, 가수들도 어렵다는 신용재의 ‘가수가 된 이유’를 완전한 몰입과 절정의 가창력으로 불러낸 음악가족의 대표주자(?) 이예준, 프라이머리의 ‘씨스루’를 불러 쇼킹한 비주얼과 달리 음악적으로 강렬하고 엣지 있는 모습을 보여준 박의성, 이하이의 보컬트레이너로 들국화의 ‘제발’을 불러 그동안 뒤에서 “부럽고 배 아프기도 했던” 마음을 확 풀어낸 신유미까지. 단지 첫 회지만 <보이스코리아2>는 앞으로 참가자들의 기대감을 높여놓기에 충분했다.

 

오디션이 이렇게 많은 데도 또 나올 인재가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 <보이스코리아2>는 그 답을 보여주었다. 오디션은 아무리 많아졌다고 해도 확실한 차별성을 가진다면 인재들은 언제나 넘쳐날 수 있다는 것. 아이돌보다는 보컬리스트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코러스나 보컬 트레이너처럼 이미 실력은 갖추었지만 음지에서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이들이라면, 또 외모 같은 이유로 무대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이들이라면, 무엇보다 노래 하나에만 집중하며 삶을 살아왔던 이들이라면 그들에게 열려진 무대가 바로 <보이스코리아>라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오디션은 많지만 인재도 넘쳐난다.

<아이리스2>, 이 쿨한 액션에 냉담한 까닭

 

현란할 정도로 화려하다. <아이리스2>의 액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숲 속에서의 추격전이나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그 자체로 압권이다. 절권도로 단련된 장혁의 맨손 액션 역시 볼만하고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나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넘나들며 벌어지는 첩보전은 드라마라기보다는 영화에 가깝다. 170억 대작이라는 말이 허명이 아니라는 것을 <아리리스2>는 그 압도적인 액션영상을 통해 보여준다.

 

'아이리스2'(사진출처:KBS)

그런데 그것뿐이다. 그 화려한 액션을 빼놓고 보면 <아이리스2>는 드라마로서 갖춰야할 많은 요건들을 놓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액션 이면에 담겨져야 할 인물들 사이의 감정 선이 잘 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주먹 하나를 내지르고 총 한 방을 쏘는 것에 그 인물들 사이에 어떤 내적 감정이 덧붙여지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무용에 가까운 동작에 머물고 만다.

 

대표적인 사례로 첫 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지수연(이다해)이 총에 맞고 쓰러지는 장면이 그렇다. 그녀를 사랑하는 정유건(장혁)이 그 바로 앞에 있었다는 사실에서 이 총격 장면은 꽤 강한 감정을 이끌어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지수연과 정유건 사이에 그럴 듯한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총격 장면은 그다지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액션은 화려하지만 그 안에 인물의 감정이 잘 보이지 못하는 점 때문에 그 화려함이 그저 볼거리에 머물게 되는 셈이다.

 

지수연과 정유건의 멜로 라인이 너무 상투적이라는 것도 시청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두 사람은 이미 사랑하는 관계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같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상투적인 대화 정도로는 그들의 사랑이 특별해보일 수가 없다. 또한 아이리스의 킬러인 김연화(임수향) 역시 그 액션은 화려하지만 <아이리스> 전작에 나왔던 김소연이 했던 멜로가 얹어진 액션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물론 액션 첩보를 다루는 드라마에서 반드시 멜로가 끼어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주인공이 어떤 분노나 사랑 같은 강력한 욕망을 갖고 있어야 그 행동의 목표와 추동력이 생긴다는 점에서 멜로 같은 요소는 중요할 수 있다. 지금 정유건은 그 욕망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드라마 작법으로서는 기본적인 캐릭터의 결함을 갖고 있다. 개인적인 욕망이 드러나지 않는 정유건의 행동은 그래서 그저 국가의 부름에 따라 살고 죽는 기계적인 모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는 자칫 남북관계나 핵미사일 같은 거대담론만 반복하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보고 싶은 것이지, 남북관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아이리스 같은 그림자 정부가 만들어내는 국가 간의 분쟁에 대한 담론은 그다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너무 많이 반복된 코드이기 때문에 식상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영화라면 얘기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적어도 볼거리가 풍부하다면 블록버스터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까. 현재 상영되고 있는 <베를린>은 그 단적인 사례다. 물론 <베를린>에는 인물들 사이에 감정이 잘 녹아들어 있는 액션이 특별한 첩보물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쨌든 그 압도적인 볼거리가 주는 힘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베를린>이 만약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좀 더 드라마적인 변용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영화로 제작된 것과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드라마 <7급공무원>이 그래도 선전을 하는 이유는 적어도 이 작품이 드라마로서의 흥행 요건을 어느 정도는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7급공무원>은 첩보 액션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멜로와 코믹에 치중함으로써 드라마라면 기대하게 될 인물들 간의 관계와 감정 선을 잘 끄집어내고 있다. 하지만 <아이리스2>의 경우는 <7급공무원>도 아니고 <베를린>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모양새다.

 

<아이리스2>의 액션은 쿨하지만 그 쿨한 액션만으로는 드라마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끌기가 어렵다. 이것은 이른바 블록버스터 드라마라고 하는 일련의 작품들이 대부분 실패한 원인이기도 하다. 즉 볼거리에 치중하다가 제대로 된 스토리나 캐릭터(와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함으로써 외면을 받게 되는 것. 제 아무리 17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고도 <아이리스2>의 그 쿨한 액션에 냉담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영이>, 악역들마저 소통하려는 강박의 이유

 

“그래도 한때 사위였는데. 사위한테 부사장님, 부사장님 한 것도 모자라서... 너 우리 아버지 과거 알지? 그 수치스런 얘길 다 했단다 우리 아버지가. 정말 미치겠다. 우리 아버지 땜에.” 서영이(이보영)의 친구에게 하는 이 대사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아픔 그리고 사랑의 감정이 뒤엉켜 있다. 제 아무리 자신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지만, 그 아버지의 치부가 한 때 사위였던 강우재(이상윤)에게까지 드러나는 건 영 싫다는 거다.

 

'내 딸 서영이'(사진출처:KBS)

그녀는 아버지 욕하고 뭐라 할 권리는 자신과 상우 그리고 엄마한테만 있다고 아버지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이 말은 거꾸로 말하면 다른 사람이 아버지 욕하는 건 싫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아버지 이삼재(천호진)가 사위에게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내며 서영이를 변호하려 했다는 사실은 이토록 서영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녀 앞에서 “미안하다”고 할 뿐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 아버지의 진심을 봤기 때문이다.

 

<내 딸 서영이>가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은 이렇게 상대방의 진심을 보게 되는 계기를 통해서다. 강우재가 서영이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된 것도 이삼재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서영이의 진심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진심이 전해지는 방식은 그래서 흥미롭다. 이삼재는 강우재에게 서영이의 진심을 전해주고, 이제는 강우재가 서영이에게 아버지의 진심을 전해준다(그렇게 단서를 주게 된다). 여기서 강우재는 양자를 이해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입장과 상대방의 입장이 역전됨으로써 그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내 딸 서영이>가 50% 가까운 시청률을 내는 원동력이다. 이심전심과 역지사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공감과 소통’이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인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 저지른 실수나 오해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로 인해 뒤틀어진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게 되는 건 인지상정일 게다.

 

바로 그런 이심전심과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진 인물들 때문인지, 이미 서영이의 주변 인물들은 거의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나는 서영아. 너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 내가 너였다면 못 이겨냈어. 그 상황을 버텨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나.” 이렇게 말하며 누구나 실수는 한다며 “그러니까 니가 먼저 너를 용서해.”라고 하는 강우재의 말처럼 이제 서영이가 용서해야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뿐인 지도 모른다.

 

갑자기 은호라는 아이를 서영이가 변호하는 에피소드가 들어온 것은 바로 이 남은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은호야 아버지는 니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니가 죽으려고 했었던 거 어떻게 알았냐구? 나도 그랬었거든 아버지 땜에. 근데 하루 하루 버티니까 시간이 가고 살 날이 오더라.” 은호에게 너는 아버지 땜에 사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서영이는 사실 자신(이 과거 아버지를 부정했던 이유)의 이야기를 했던 셈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어요. 내가 죽지 않으면 아버지를 죽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은호의 말 역시 서영이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서영이와 은호의 이야기는 그래서 어쩌면 자신이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은호의 에피소드는 은호를 통해 서영이가 자신을 보게 함으로써 결국 스스로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고 독려하고 있는 셈이다.

 

<내 딸 서영이>의 갈등을 풀어내는 방식은 심지어 강박적인 느낌마저 준다. 예를 들어 서영이의 과거를 폭로한 정선우(장희진)마저 서영이를 찾아와 갈등을 풀어내기도 한다. 사무실을 찾아온 정선우는 이미 자신이 서영에게 잘못을 사죄했고 강우재와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는 걸 쿨하게 얘기한다. 그러자 서영이는 희미하게 웃으며 “제가 정변호사님 위로해줘야 돼요?”하고 되묻는다. 둘 사이에 남은 앙금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여유가 생겼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내 딸 서영이>의 작가가 가진 캐릭터에 대한 태도 덕분이다. 그토록 많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들이 저질러졌지만 이 드라마에서 절대적인 악역이 잘 보이지 않는 건 작가가 이처럼 끝까지 캐릭터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지만 거기에는 저 마다의 이유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은 이 작품의 주제의식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 작가의 캐릭터를 대하는 태도이기도 한 셈이다.

 

이상우(박해진)와 헤어지게 된 강미경(박정아)이 결국 서영이와 마음을 풀게 되는 과정에서도 작가의 이 기분 좋은 강박이 드러난다. 여느 드라마였다면 과연 강미경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이 상황을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미경이 역시 신분을 속이고 병원에서 지내다 들통 남으로써 서영이의 입장을 고스란히 겪었다는 점에서 역지사지를 통한 화해의 가능성을 이미 갖고 있던 인물이다.

 

물론 이건 현실에는 일어나기 어려운 판타지이자 작가의 강박이다. 한 번의 실수나 오해로 뒤틀어진 관계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역지사지의 시선으로 단박에 풀어질 수 있는 호락호락한 현실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이 강력한 소통에 대한 판타지로 대중들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 소통에 대한 이 강력한 욕구는 그래서 어쩌면 쉽사리 소통되지 않는 현실의 안타까움을 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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