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마이 라이프’, 검사 미화? 검찰개혁에 칼 들었나

어게인 마이 라이프

세상에 이런 검사가 있나. SBS 금토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초반 김희우(이준기)라는 검사 영웅을 그린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검사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나온 바 있다. 실제고 김희우는 대통령도 쥐고 흔드는 조태섭 의원(이경영)에게 칼을 들었다가 오히려 죽음을 맞이했던 검사다. 

 

하지만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던 김희우가 저승사자의 도움으로 또 한 번의 생을 얻게 되고,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 인생 전체를 새롭게 디자인(?)한 그가 검사가 되어 펼쳐가는 복수극은 어쩐지 검사 미화가 아니라 검찰개혁에 칼을 드는 모양새다. 조태섭 의원의 라인을 잡은 김석훈(최광일) 중앙지검장과 그 측근들인 장일현(김형묵) 검사 그리고 최강진(김진우) 검사를 김희우가 하나하나 날려버리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의도적으로 김석훈 중앙지검장의 눈에 들고 그 라인에 들어간 것처럼 꾸몄던 김희우는, 함께 뜻을 합친 전석규(김철기)와 함께 검찰의 비리들을 척결해 나간다. 장일현 검사는 그 첫 번째 타깃이 된다. ‘스폰서 검사’로 기업의 상납을 받아온 데다, 사귀고 있던 국대예술재단 성진미(박나은) 이사장의 비리를 덮어줘 온 일로 장일현 검사는 사면초가에 이르게 된다. 

 

결국 위기에 몰린 장일현 검사는 살아남기 위해 최강진 검사의 성상납 비리를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김희우는 최강진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SHC 엔터의 비리를 캐고 소속 연예인들의 성상남 비리는 물론이고 조직적인 병역비리 또한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즉 <어게인 마이 라이프>가 그리고 있는 검찰은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갖가지 비리검사와 정치검사들이 판을 치는 곳이다. 김희우나 전석규 같은 인물만이 예외적일 뿐.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로 보면 김희우는 ‘판타지’를 캐릭터화한 인물이다. 그는 한 번 죽었고 되살아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죽은 이유는 조태섭 의원의 비리를 캐려 했지만 검찰 내부까지 다 손이 닿아 있는 영향력 때문이다. 이미 검찰은 썩어 있었고 김희우의 죽음은 그래서 일개 한 검사의 의지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검찰 개혁이나 사회 정의의 현실을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드라마가 판타지로서 다시 살려낸 김희우가 긴 세월 동안 차근차근 힘을 키우고 자기편을 만들어가며 검찰로 돌아와 드디어 하나하나 비리 검사들을 척결해나가는 과정은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는 사이다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현실에서 벌어지기 힘든 일들을 말 그대로 판타지로 그려내고 있어서다. 

 

그래서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이야기는 때론 결코 일어나기 어려운 우연과 기연들이 주인공 김희우에게는 벌어진다. 조태섭 의원과 맞서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황진용 의원(유동근)의 등장과 그를 만나게 되는 과정이 그렇다. 우연히 길을 가다 마침 조태섭의 추종자에 의해 테러를 당하는 여자를 구해주는데 하필이면 그가 황진용 의원의 딸이었던 것. 

 

‘하늘의 뜻인가 이렇게 황의원과 연결되다니!’ 김희우는 이런 우연이 스스로 놀랍다는 듯 그렇게 생각한다. ‘하늘의 뜻’. 사실은 작가의 뜻이다. 이처럼 이런 우연이 개연성이 없다는 걸 작가도 알고 시청자들도 알지만, 이 이야기 자체가 일어나기 어려운 판타지고 무엇보다 김희우라는 인물 자체가 판타지적 존재라는 점에서 하늘도 돕는 이야기는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되돌아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가 드러내는 현실에 대한 날선 비판의식이 새삼스럽다. 결국 검찰개혁을 하고 이를 통해 조태섭 같은 비리 정치인을 척결하는 일을 하려면 이런 판타지와 우연까지 더해진 말 그대로 ‘하늘이 도와야’ 가능할 정도라는 걸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애초 검사 미화가 아닐까 생각됐던 이야기가 김희우 같은 검사는 판타지에나 존재한다는 이야기로 분명히 드러나면서 오히려 이토록 어려워진 검찰개혁에 대한 작가의 열망을 읽어낼 수 있게 해주는 것. 실로 드라마 속은 시원시원한 사이다지만 현실은 퍽퍽한 고구마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사진:SBS)

‘붉은 단심’, 이준과 강한나는 정인이 될까 정적이 될까

붉은 단심

“중전은 죄가 있어 죽었더냐? 힘이 없으니 내 사람을 잃는 거다. 그 사람을 잃고도 세자를 지켜야 하기에 난 아내의 죽음마저 외면한 비겁한 지아비다.” 반정공신의 수장인 좌의정 박계원(장혁)의 음모에 의해 중전을 잃은 선종(안내상)은 세자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러자 세자인 어린 이태(박지빈)가 되묻는다. “하여 저도 아바마마처럼 비겁해지라 하시는 겁니까? 소자는 그리 못합니다.”

 

KBS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에서 선종과 세자 이태가 주고받는 이 짧은 대사는 앞으로 이 드라마가 어떤 갈등 구조를 가져갈 것인가를 암시한다. 박계원의 음모에 의해 궁지에 몰린 중전이 세자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독이 든 차를 마셔 죽음을 맞이했을 때, 선종은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힘이 없어서다. 하지만 어린 이태는 선종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자신이 마음에 두어 세자빈으로 맞음으로써 박계원에 의해 그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죽을 위기에 처한 유정(신은수)을 이태는 구해내 궁 밖으로 탈출시킨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궁 밖 죽림현의 실질적인 수장이 된 유정(강한나)을 이태(이준)는 다시 만난다. 유정을 만나러 가는 이태의 얼굴은 밝고, 유정 역시 이태를 보고는 밝게 웃지만 과연 이 두 사람이 앞으로 마주할 운명은 과연 밝기만 할까. 두 사람이 만나는 다리 주변으로 마침 펼쳐진 불꽃놀이의 불빛들은 이들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너무나 아름답지만, 언제나 이 둘을 삼켜버릴 것 같은 불꽃들이다. 그 위로 이태의 목소리가 얹어진다. ‘살아주어 고맙소. 나로 인해 몰락한 연모하는 나의 빈이여.’

 

단순하게 보면 <붉은 단심>은 결국 박계원을 향한 이태와 유정의 복수극처럼 보인다. 박계원의 모략으로 이태는 어머니를 잃었고, 유정은 멸문지화를 당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태와 유정이 안팎으로 손을 잡고 함께 박계원을 몰아내는 그런 전개일까 싶지만, 어쩐지 그리 단순한 구도가 아닐 듯 보인다. 박계원 역시 만만찮은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내쳐야 하는 왕 이태와 살아남기 위해 중전이 되어야 하는 유정, 정적이 된 그들이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며 펼쳐지는 핏빛 정치 로맨스’라는 작품 소개가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정인과 정적. 이것은 <붉은 단심>이라는 사극이 가진 두 개의 바퀴다. 그래서 이태는 유정을 연모하지만, (아마도 박계원의 계략에 의해) 유정과 정적의 위치에 서게 될 것이고 그래서 갈등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복수를 위해서는 유정마저 밀어내야 하지만, 그건 정인을 내치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저 선종과 어린 이태가 나누는 대화 속 ‘비겁한 지아비’라는 말이 울림을 갖는 이유다. 

 

오랜만에 보는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사극이다. 그간 멜로에 있어서 ‘운명적인 사랑’ 같은 이야기는 현대극보다는 사극에 더 어울리게 된 면이 있다. 최근 들어 멜로를 다룬 사극들이 대부분 가벼운 로맨스를 다루던 것과 비교해보면 <붉은 단심>은 자못 비장미를 가진 사랑이야기를 담는다. 

 

이렇게 된 건 ‘정인과 정적’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멜로와 함께 정치가 절묘하게 엮어져 있어서다. 궁중에서 남녀 간의 관계는 사적으로는 멜로이지만 공적으로는 정치와 연결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 엮인 부분들을 과연 이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 풀어낼까. 이태와 유정은 서로를 정인으로 받아들일까 아니면 끝내 정적으로 밀어낼까. 첫 방부터 몰아친 <붉은 단심>이 그 어떤 멜로 사극보다 기대감을 갖게 만든 이유다.(사진:KBS)

‘나의 해방일지’, 손석구에 대한 추앙이 말해주는 것들

나의 해방일지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조금 있으면 겨울이에요. 겨울이 오면 살아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그렇게 앉아서 보고 있을 것도 없어요.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예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되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돼. 추앙해요.”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미정(김지원)은 구씨(손석구)에게 뜬금없이 ‘추앙’이라는 단어를 쓴다.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 말. 그래서 시청자들은 그 대사가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붕뜬 느낌을 준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2회 말미에 ‘추앙’이라는 대사가 나온 후 2주가 지나 5회 정도에 이르자 이 대사는 어딘가 유행어처럼 될 조짐을 보인다. 적어도 “날 추앙해요”라는 말 한 마디로 <나의 해방일지>를 보는 사람과 보지 않는 사람을 쉽게 구분할 정도다. 

 

추앙이라는 단어는 미정이 뱉어 놓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단어는 구씨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전으로 추앙이라는 단어가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이라는 뜻을 찾아보는 구씨. 그리고 뜬금없이 미정에게 “확실해? 봄이 오면 다른 사람 돼있는 거? 추앙하다 보면 다른 사람 돼있을 거라며?”하고 툭 던지는 말이나, “하기로 한 건가?”하고 미정이 묻자 “했잖아. 아까 낮에.”라며 바람에 날아간 모자를 갖다 주려 넓이 뛰기 선수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던 일을 말하는 구씨. 

 

<나의 해방일지>에서 구씨라는 캐릭터는 독보적이다. 그 어떤 드라마에서도 보지 못했던 인물이고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말투, 말까지 예사롭지 않다. 누군가 던지는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아 답답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이가 갑자기 온몸으로 보이는 ‘추앙의 행위’는 그 답답함을 일거에 날려 보낼 만큼 더 강력한 힘으로 터져 나온다. 

 

미정네 집 밭일과 공장일을 도와 주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멀리 걸어 나가야 있는 마트에서 결국은 술이 모자라 또 나가야 할 걸 알면서도 꼭 두 병씩만 사서 집에 돌아오는 사람. 그리고 홀로 평상에 앉아 산 저편을 바라보며 소주를 마시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러려니 멍하니 그 비를 맞고 있는 사람. 이상하게도 마음이 측은해지고 ‘추앙’ 같은 비일상적인 단어도 막 쓰고 싶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구씨다. 

 

도대체 이 미스테리한 인물의 정체는 뭘까. 왜 박해영 작가는 이런 인물을 미정네 집 근처에 포진해 놓은 걸까. 미정을 추앙하는 몸짓으로 웅크렸던 날개를 펴고 날았던 일 때문에 창희(이민기)는 하루 종일 구씨 이야기를 한다. “오늘 날 진짜 뜨거웠거든? 머릿 가죽 다 벗겨지는 줄 알았거든? 인간 염창희 이렇게 고추 따다 뒤지는구나. 고추는 뭐고, 나는 뭐고, 태양은 뭔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 구씨 뛰는 거 보자마자 그냥 정신이 번쩍 드는데...”

 

창희가 추앙하기 시작한 구씨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이런 작은 변두리 마을에 자신을 가둬둔 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직 그 정체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구씨라는 인물 때문에 이 변두리 마을과 서울을 오가며 매일 가짜 행복과 가짜 위안에 지쳐가며 ‘채워진 적 없는’ 미정과 창희가 조금씩 변화해간다. 미정은 대뜸 구씨에게 “날 추앙해요”라는 말을 꺼내기도 했고, 비 오고 천둥치는 날 그가 걱정되어 그를 향해 달려가기도 했다. 창희는 구씨의 비상으로 무력하기만 했던 삶에 작은 활기를 찾아내고, 집을 찾아온 친구들에게 침이 마르도록 구씨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 눈빛이 반짝반짝하다. 

 

구씨라는 인물은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서 있음으로써 그와 관계하는 인물들을 반추해내는 그런 존재처럼 보인다. 미정이 구씨에게 “날 추앙해요”라고 말하며 겨울이 오기 전 “어떤 일이든 해야 되고” 한 번은 “채워져야”한다고 말한 건 그래서 마치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건 친구들에게 구씨 추앙을 늘어놓는 창희도 마찬가지다. 그는 진짜 멋지고 싶다. 멋짐을 드러내려 애쓰는 게 아니라 그냥 진짜 멋진 그런 삶을 꿈꾸는 것. 

 

물론 그건 구씨의 실체가 아니다. 구씨는 결국 변두리 마을로 숨어들어 스스로를 감옥에 가둬놓은 알코올중독자일 수 있으니 말이다. 방 한 가득 채워진 빈 술병이 그걸 말해주고, 어쩌다 뜨거운 물을 발에 쏟아 다쳤어도 별 고통도 호소하지 않는 모습이 그렇다. 오죽 무료하면 마트에 갔을 때 네 병을 사면 한 번만 가도 될 그 길을 굳이 두 병씩 나눠 사서 또 걷겠는가. 그는 마치 시간을 죽이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보인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런데 그런 구씨에게 미정이 다가가고, 아무 조건 없이 “좋기만 한 사람”으로 구씨를 대하려 하면서 구씨도 변화한다. 주급을 받자 미정에게 문자를 보낸다. ‘돈 생겼는데 혹시 먹고 싶은 거. 나 구씨’라고. 그 추앙의 문자 하나가 미정을 웃게 만든다. 두 사람은 변두리 당미역에서 만나 흔한 돈가스를 별 대화 없이 먹는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던 사람이 보내는 문자 하나와 함께 먹는 식사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흔하게 “언제 한 번 밥 먹자”고 말하는 그런 헛소리도 아니고 매일 의미 없이 보내고 맞장구치는 허망한 문자도 아니다. 온전히 ‘채워진 말이고 문자’일 테니.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 마음 속 한 구석에 무언가에 소외되거나 상처 입은 채 더 이상 달리거나 날아오르기를 꿈꾸지 않고 날개를 접고 있는 저마다의 ‘구씨’가 있는 지도 모른다. 가짜 위로와 가짜 행복 속에서 허망한 말들과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들을 버텨내며 꾹꾹 봉인해 뒀던 구씨. <나의 해방일지>는 그렇게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구씨를 찾아내게 하고 추앙하게 함으로써 그 답답한 곳으로부터 해방해주라 말하고 있다. “날 추앙하라”는 말은 그래서 타인에게 던지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저 거짓 속에서 함부로 대해왔던 스스로를 추앙하라고.(사진:JTBC)

‘파친코’의 진가는 단역조차 이런 묵직한 대사를 던진다는 것

파친코

오사카에서 전도사로 일하는 이삭(노상현)은 아들이 위험한 일에 빠져 있다며 이를 막아달라는 한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그 아들을 찾아가 만난다. 얼굴에 잔뜩 흙이 묻은 채 이삭과 함께 거리를 걷는 사내는 설득하러온 이삭에게 오히려 “눈을 뜨라”고 일갈한다. 

 

“눈을 뜨실 때가 됐어요. 전도사님. 여기 인부들이나 나나 땅굴 들어가서 철로를 깔아요. 인부들 더 빨리 더 많이 먼 곳으로 실어 나르려고. 그래서 우리처럼 뼈 빠지게 부려 먹으려고요. 그렇다고 우리가 대단한 대우를 해달래요? 최소한 길바닥에 똥 싸지르는 짐승이랑은 다른 꼴로 살게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애플+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에 등장하는 이 사내는 단역이다. 이삭이 우연찮게 만나고 지나치는 인물 중 하나일 뿐. 하지만 이 사내가 던지는 대사는 <파친코> 6회 전체를 관통하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건 살기 위해 조선 고향 땅을 떠나 낯선 오사카로 와 갖가지 차별 속에서 살아나가던 조선인들이 가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다. 저들처럼 살라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총칼을 앞세워 요구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거나 부인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고민이다. 

 

그런 이야기만으로도 위험해질 수 있고, 그 위험이 그 자신과 가족만이 아닌 모든 조선인들에게 화살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이삭은 말하지만, 그런 이삭에게 던지는 사내의 일갈은 얼얼하기만 하다. “제가 그걸 모를 거 같으세요? 저라고 꿈속에서 어머니 얼굴 보고 울다 깨는 일 없겠냐고요. 형제들, 누이들 만나 본 적 없는 생판 남들까지 다 걱정되고 신경 쓰인다고요. 하지만 두려움이 내 몸을 멋대로 주무르게 놔두면요, 나중엔 내 몸의 윤곽조차 낯설어질 거예요. 그걸 내 몸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자기 몸도 없는 게 사람이에요?”

 

1920년대 일본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조선인들의 삶은 1980년대 일본에서의 그 삶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파친코>는 이런 현실을, 이삭과 사내의 에피소드에 이어 솔로몬(진하)과 하나의 에피소드로 교차 편집함으로써 드러낸다. 에이즈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하나는 솔로몬이 미국으로 떠난 후 ‘예쁜 집’에 사는 애들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걸린 이 병이 바로 그런 집에서 자란 남자한테서 옮은 거라며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한다. “솔로몬 날 봐. 넌 절대 그들이 될 수 없어. 그렇게 비싼 옷을 입고 좋은 학위를 따도 그들은 네가 기회가 있다고 착각할 딱 그만큼만 문을 열어 놓을 거야. 넘어가지 마.”

 

끝까지 조선말을 쓰고 조선의 이름을 버리지 않고 김치를 담가 먹으며 살아온 재일 한인들의 삶을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났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솔로몬은 회사로부터 땅을 팔지 않는 한 재일한인 할머니를 설득해야 자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처지에 몰렸지만, 그래서 저들을 위해 나섰지만 끝내 할머니가 그간 겪어온 아픈 차별의 이야기들을 마주하고는 땅을 팔라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 실패한 솔로몬을 가차 없이 버린다. 하나의 말대로 저들은 솔로몬에게 ‘기회가 있다고 착각할 만큼만’ 문을 열어 놓은 것. 

 

“사람이 아니에요. 우린 저놈들 눈에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 굴욕감에 술 처먹고 싸움질 하고 집구석에 들어가서 마누라나 패고... 적어도 나 바닥은 아니다. 내 밑에 누가 더 있다. 저 놈들의 법을 따라 줬어요. 그런데 아직도 춥고 아직도 배고프잖아요. 이젠 그 법을 때려 부숴야 합니다.” 이삭이 만난 사내가 쏟아내는 그 말은 1980년대의 솔로몬이라는 후대에까지 그 울림이 이어진다.  

 

사내의 그 말에 무언가 깨달은 이삭은 사사건건 그의 아내 선자(김민하)를 깎아내리는 형에게 꾹꾹 눌렀던 감정을 폭발한다. 형의 모습은 저 사내가 말한 “굴욕감에 술 처먹고 싸움질 하고 집구석에 들어가서 마누라나 패는” 그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삭은 그 사내가 했던 말을 빌려 형에게 말한다. “우리 아이는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게 하고 싶지 않아. 난 내 자식이 자기 몸의 윤곽을 똑바로 알고 당당하게 재량껏 살았으면 좋겠어. 우리 자식들도 그럴 자격 있는 거 아냐 형? 형도 나도.” 

 

그리고 이삭의 이 이야기는 나이든 선자(윤여정)가 과거 대놓고 두 집 살림을 하려던 한수(이민호)가 집도 사주고 뭐든 해주겠다고 한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솔로몬에게 털어놓는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내를 반으로 쪼개놓고 살수는 없다 아이가. 뭐는 당당히 내놓고 뭐는 숨키가 살고. 니 그 아나? 잘 사는 거보다 어떻게 잘 살게 됐는가, 그게 더 중한 기다.” 그 이야기는 선자가 아이 아버지인 한수가 아닌 이삭을 선택해 결혼해 살아가게 된 이유를 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일본 땅에 이주해 살아가는 재일 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놀라운 건 이처럼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대사를 단역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사내의 목소리를 통해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분히 의도적인 이런 선택은 <파친코>라는 작품이 주인공에서부터 저 단역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면서, 작가가 가진 이름 모를 민초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슬쩍 지나가는 어부나 어시장 한 편에서 쌀을 파는 쌀집 할아버지, 이역 땅에 와서 땅굴에 들어가 철도를 놓는 일을 했던 인부까지 중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것은 어쩌면 이주민이라는 위치에서 살아오며 내재된 관점이 아닐까 싶다. <파친코>라는 작품이 특히 감동적인 이유이기도 하고.(사진:애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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