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수지의 천연덕스런 거짓 연기가 좋다

안나

“항상 그랬어요. 난 마음먹은 건 다 해요.”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는 유미(수지)의 다소 역설적인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 목소리는 차분하고 단호하다. 이 내레이션이 역설적이라는 건 바로 이어지는 차량 사고(혹은 사건)으로 드러난다. 거대한 기둥을 받아버린 차가 위태롭게 연기를 뿜어대고 힘겹게 열린 문에서 유미가 피를 흘린 채 내린다. 유미는 스카프를 풀어 백에 얹고 불을 붙여 차량 안으로 집어던진 채 걸어간다. 그러면서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이 첫 시퀀스는 앞으로 <안나>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를 말해준다. 항상 마음먹은 건 다 한다는 유미의 말은 그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한다는 의미이고,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는 건 그걸 하기 위해 유미가 선택한 것이 ‘거짓’이라는 걸 말해준다. 그는 어쩌다 거짓 삶을 선택했다. 자신이 아닌 ‘안나’라는 이름의 삶을.

 

리플리 증후군. 미국의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씨>에서 유래된 이 말은 우리에게는 이 소설을 영화화한 르네 클레망 감독,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로 잘 알려져 있다. 1955년부터 1991년까지 재해석된 이 작품은 우리에게도 <미스 리플리>라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안나>는 바로 이 리플리 증후군을 보여주는 유미라는 인물이 왜 그런 거짓의 삶을 살게 되었는가를 추적한다. 

 

평범한 양복점을 하는 아버지와 농아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 하고 싶은 건 많지만 가난해 할 수 있는 게 없던 유미. 그는 자신의 부모 이야기부터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과 연애를 하다 들켜 혼자 서울로 오게 되고, 하숙집에서 생활하며 대학 시험을 치르지만 떨어진다. 하지만 힘들게 고생해서 딸 하나 바라보고 사는 아버지에게 유미는 거짓말을 한다. 시험에 합격했다고. 

 

하숙집에조차 그가 대학에 들어갔다고 알려지고, 남몰래 재수 준비를 하던 차에 같은 학교 선배 언니가 유미를 챙겨주면서 그 학교 동아리에 들어가고 유미의 거짓 대학생활도 시작된다. 그나마 자신의 유일한 진짜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던 부모와도 유미는 점점 멀어진다. 아버지는 암으로 사망했고, 농아인 어머니는 치매를 앓게 돼서다. 유미의 거짓 삶은 더 과감해진다.

 

남자친구를 속여 같이 미국에 가려 하다 정체가 들통 나 모든 게 무산되고, ‘학력무관’ 하다는 한 갤러리에 취직한 유미는 그 곳에서 갖은 수모와 모욕을 견뎌내며 하녀 같은 삶을 살아간다. 뭐든 원하는 대로 다 누리고 살아가는 현주(정은채)의 삶에 대한 동경과 분노를 느끼던 유미는 결국 그의 돈과 여권, 학력증명서 같은 걸 훔쳐 달아난다. 현주의 여권에 적힌 ‘안나’라는 이름으로의 삶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이후 그는 잘 나가는 사업가를 속여 결혼까지 한다. 

 

어떻게 거짓으로 그 모든 것이 가능해질까 싶지만, 가짜로 꾸며진 학력이나 예쁘장한 얼굴 같은 외적인 것에 쉽게 휘둘리는 스펙사회는 안나의 거짓된 삶에 날개를 달아준다. <안나>가 흥미로워지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유미에서 안나가 되는 거짓 삶을 선택하는 그 과정에 그저 범죄라 여겨지지 않고 그럴만하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들. 가진 자들은 뭐 하나 노력하지도 않고 뭐든 다 얻어가는 데, 없는 이들은 하고 싶어도 노력을 해도 얻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느껴지는 절망감. 

 

갤러리의 대표 이작가(오만석)은 고향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고파 하루만 쉴 수 있겠냐고 묻는 유미에게 모멸감이 느껴지는 말을 쏟아낸다. “니들 문제가 뭔지 알아? 게으르고 멍청한데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살려니까 그 모양인거야! 평생을 그러고 살래? 평생!” 하지만 그건 유미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려 했고 똑똑했다. 그리고 남들 하는 거 하고 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냥 태생이 달라 처한 현실일 뿐이었다. 그래서 유미가 거짓으로라도 안나의 삶을 살고픈 마음은 시청자들에게도 공감을 준다.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만 그게 들키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어쩌면 그 많은 리플리 증후군을 다룬 콘텐츠들로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서사지만 <안나>가 흥미진진해지는 건, 차분하게 이 유미라는 인물이 안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그려내며 시청자들을 몰입시켜서다. 그리고 이것을 200% 공감시키는 건 다름 아닌 이 문제적 인물을 연기하는 수지의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박살내는 색다른 연기 덕분이다. 한때 ‘국민 첫사랑’으로 불리며 그 틀에 갇혀있던 수지는 이제 그 이미지를 여지없이 깨버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중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수지가 이렇게 발칙한 매력이 있었던가. 마치 이런 유미에서 안나로 넘어가는 페르소나가 자신에게 절실하기라도 했던 듯, 수지는 천역덕스럽게 거짓 삶을 살아가는 연기를 해낸다. 그리고 이런 거짓을 연기하는 연기는 수지라는 배우가 껍질 하나를 벗겨내고 나온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꼭꼭 숨겨뒀던 욕망이 결국 터져 나와, 그저 청순하고 순수한 얼굴로만 비춰지던 유미라는 껍질을 깨고 안나라는 인물을 창출해낼 때, 수지는 드디어 자신의 배우라는 정체성을 찾아낸 듯하다. 이제 마음먹는 연기는 다 하겠다고 선언하는 듯한 수지의 변신이 반갑다.(사진:쿠팡플레이)

왜 오수재인가

‘왜 오수재인가’, 우리의 정체에 대해 묻는 드라마

 

“빼어날 수 맑을 재. 근데 그 이름을 함부로 쓴 거야. 빼돌린 돈을 세탁하는 계좌에 그 이름을 막 쓴 거야.” 오수재(서현진)는 TK로펌 최태국(허준호) 회장이 바하마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그 돈 세탁에 사용된 해외계좌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마구 사용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 사실을 밝히고 저들과 싸우는 건 무모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최태국 회장에게 이 일을 묻어주는 대가로 700억을 요구한다. 그걸 최태국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름값이 700억이냐고. 

 

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가 드디어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놨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 누군가의 ‘이름값’에 대한 것이 아닐까. 아버지가 ‘빼어날 수에 맑을 재’라고 이름을 지어준 건 그렇게 빼어나고 맑게 자라라는 염원이 있어서였을 게다. 하지만 최태국 회장 같은 이들은 그의 이름을 함부로 돈 세탁에 이용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오수재는 자기 이름이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기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공찬(황인엽)은 그게 남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김동구라는 이름을 쓸 때 의붓동생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썼고 진범이 잡혀 풀려났지만 그럼에도 그의 이름은 이미 더럽혀져 있었다. 누명을 벗고 출소하던 날 의붓엄마는 그의 뺨을 때렸고, 그가 김동구라는 걸 알아보는 학교 친구들은 그를 재수 없어 했다. 눈빛도 이상하다며. 오수재가 더럽혀진 자신의 이름에 분노하는 것처럼, 공찬은 자신의 진짜 이름 김동구를 찾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는 중이다. 당시 진범이라 자수한 이가 진범이 아니라며 그 때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려한다. 그것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길이라 여긴다. 

 

오수재는 자신의 이름이 돈세탁에 쓰였다는 사실을 공찬이 찾아내 준 것이 다행이면서도 마음이 영 좋지 않다. 뭔가 들킨 거 같고 쪽팔린 것 같다. 그래서 공찬을 피한다.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드러낼 때 공찬은 말한다. “나도 그런 거 있어요. 차라리 들켰으면 싶기도 한데 또 몰랐으면 싶기도 하고 교수님만 그런 거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또 퉁쳐요. 우리. 안 좋은 일들만 몰아닥치는 것 같은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조금만 기다리다 둘러보면 좋은 일들이 옆에 와 있어요. 일도 사람도.” 그건 오수재에게 하는 말이면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오수재는 최태국 회장이 부탁한 아들 최주완(지승현)의 이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아내를 임승연(김윤서)을 만난다. 양육권과 친권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말을 꺼낸다. 딸 재희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 그러면서 재희 때문에 자신의 아이를 잃었다고 말한다. “난 재희 때문에 내 아이를 잃었어요. 튼튼이. 뱃속에서 튼튼하게 자라라고 태명을 그렇게 지었는데 어느 날 뱃속에 있는 튼튼이가 심장이 안 뛴다고 하더라구요. 재희가 있다는 거 알고 내가 매일 같이 울고 토하고 잠도 못자고 그렇게 두 달을 보냈더니.”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임승연에게 최태국 회장이 재희를 자신이 낳은 딸로 세상에 알리겠다고 했다는 거였다. 너도 그게 좋지 않겠냐며. 그 이야기에 오수재는 잊고 있던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며 절망한다. 최태국 회장에 속아 미국까지 보내져 사산된 아이. 하지만 그 아이에게도 ‘하늘이’라는 태명이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그 예쁜 이름을 지우고 살았다고. 그래야 살 것 같아서. “아무한테도 말 안하고 아무도 모르길 바라고...”

 

<왜 오수재인가>라는 제목이 붙여진 건 이 드라마가 결국 이름으로 대변되는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게다. 누군가는 함부로 이름을 이용해먹고, 누군가는 누명 때문에 진짜 이름을 숨긴 채 살아간다. 또 누군가는 대외적으로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타인의 딸을 친딸인 양 속이며 살아가고, 또 누군가는 너무 아픈 상처라 살아가기 위해 죽은 아이의 이름을 지우며 살아간다. 또 누군가는 죽은 아이를 잊지 못해 그 이름 언저리 한쪽을 쥐고 원망의 대상으로서 누군가의 이름을 증오하며 살아가고.

 

오수재는 자신의 이름값으로 복수하듯 700억을 요구하고, 그래서 그걸 받아내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건 700억이 별거 아니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값의 무게와 가치가 그것보다 더 크게 느껴져서다. 그래서 이 오수재가 갖고 있는 ‘이름값’에 대한 서사는 우리에게도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월급이나 연봉처럼 이름은 이 자본화된 세상에서 흔히 가격으로 그 가치가 매겨지곤 한다. 하지만 그건 가당한 일일까. 당신의 이름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가. 아니 어떤 진짜 가치가 있는 이름값을 하고 있는가. (사진:SBS)

KBS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이 보여주는 정치와 민심

붉은 단심

과연 권력 투쟁은 무얼 목적으로 하는 걸까. 종종 선거에서 우리는 공약보다 흑색선전과 비방이 난무하는 현실을 바라보곤 한다. 당선되면 국민을 위해 무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보다 왜 자신이 당선되어야 하며 경쟁자가 낙선되어야 하는가를 강변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애초 당선을 위해 내세워졌던 선심성 공약들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단 정권을 잡아야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게 정치인들의 변명이지만, 권력 투쟁 속에서 이기기만을 위한 대결을 벌어다 보면 정작 이들이 왜 정권을 잡아야 하는가를 까마득히 잊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지점에 이를 데가 적지 않다. 

 

KBS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을 보다보면 정치에 대한 이런 단상들을 하게 된다. 명목상 왕이지만 힘이 없는 이태(이준)와 좌의정이지만 반정공신들과 함께 조정의 모든 권력을 쥐고 흔드는 박계원(장혁)이 벌이는 치열한 권력 투쟁 속에서 정작 그 투쟁의 목적이어야 할 민초들의 삶이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박계원이 쥐고 흔드는 국정농단에 의해 어머니가 스스로 독을 마시고 자결하고, 세자빈으로 맞이하려 했던 유정(강한나)의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상황을 겪은 이태는 어떻게든 힘을 키워 박계원과 그 반정세력들에게 복수를 하려한다. 가까스로 이태의 도움을 받아 죽을 위기를 면해 궁에서 도망쳐 나온 유정은 죽림원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웃음을 되찾고, 이태가 왕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보름에 한 번씩 그를 만난다. 

 

이렇게 각자의 길을 가는 걸로 알았지만, 국혼으로 이들의 관계를 엇갈리기 시작한다. 이태가 만나는 유정을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는 박계원이 유정을 자신의 질녀라고 속여 중전을 만들려 하고, 이태는 병판 조원표(허성태)의 여식 연희(최리)를 중전으로 세워 그 세력을 가지려 했지만 두 사람이 궁에서 만나 서로의 편이 갈려버린 상황을 알게 되면서 뒤틀어지는 운명이다. 이태는 복수를 위해서는 연희를 선택해야 하지만 유정을 연모하는 마음을 저버릴 수 없고, 유정은 자신이 살아남고 또 박계원이 볼모로 삼은 죽림원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중전이 되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붉은 단심>은 결국 정적과 싸울 것인가 정인을 선택할 것인가의 기로에 선 이태의 갈등과 자신이 살아남고 연모하는 이태를 지켜내기 위해 어떤 선택들을 해내가는 유정 그리고 이런 사적 감정들까지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는 박계원의 치열한 권력 대결이 펼쳐지는 퓨전사극이다. 멜로에 정치대결이라는 소재가 엮어지면서 묵직하고 운명적인 사랑이야기가 비장하게 펼쳐지는 게 특징이고, 이런 감정적인 요소들을 아름다운 시각적 표현으로 그려내는 미적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토록 궁궐 안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핏빛 투쟁들이 진행될수록 저들의 투쟁에서 소외되고 있는 민초들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유정은 유일하게 이런 상황을 꼬집고 이태가 진짜 민초들을 가까이서 보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과거 유정이 했던 말을 떠올려, 궁궐에 농부들을 불러 화단 대신 논을 일구게 하고 그 곳을 찾아가 농부의 얼굴을 처음 마주하며 이태가 놀라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정치의 안타까운 실체를 폭로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이렇게 생겼구나. 어찌 너희 얼굴을 처음 보는 것일까.” 농부의 갈라진 손과 주름 가득한 얼굴을 보고 나서 이태는 비로소 깨닫는다. 별 실효성도 없을 듯한 기우제를 왜하는 것이며 나아가 정치의 진짜 목표는 바로 이 백성들의 보다 나아지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올해 들어 두 번의 선거를 치렀다. 누구는 승자가 됐고 누구는 패자가 됐다. 하지만 선거가 끝났고 승패가 나눴지만 이들의 대결과 권력투쟁은 끝이 없다. 진영 논리에 여전히 쌓인 채 상대를 깎아내는 말들이 정치권에는 여전히 난무한다. 이들은 과연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어려워진 일상을 맞이하고 있는 대중들의 얼굴을 본 적은 있을까. 정치에서 권력 투쟁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목적은 권력 그 자체가 아니라 그걸 통해 구현해내려는 민초들의 나아지는 삶이라는 걸 매번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글:PD저널,사진:KBS)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추앙한 제주의 삼춘들

우리들의 블루스

옴니버스 구성으로 여러 인물들이 갈등하고 화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유독 노동하는 모습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침 일찍부터 바다로 나가는 해녀들이 계속 해서 물밑으로 뛰어들고, 새벽부터 열리는 경매장에는 생선을 사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붐빈다. 어시장에는 억척스럽게 생선 대가리를 치는 이와 배고픈 이들의 시장을 달래주는 순댓국을 끓이는 이, 생선에 뿌려줄 얼음을 나르는 이, 한편에서 야채 등을 파는 이와 커피를 파는 이들이 뒤엉켜 소란하다. 어시장 바깥에는 좌판을 늘어놓고 작업복 같은 옷들을 파는 이가 지나는 이들을 유혹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겉보기엔 없어보여도 알짜배기 시장 상인들의 돈을 유치하려 일일이 인사를 다니는 은행장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래서 제주에서 온 몸으로 부딪쳐 살아가는 이들의 땀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양복을 차려 입고 시장 상인들을 찾아다니며 인사하는 은행 지점장 한수(차승원)는 속 빈 강정이다. 제주에서 하루하루 노동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이 보기엔 서울 가서 성공해 금의환향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골프 유학을 보낸 딸과 아내 때문에 등골이 휘고 돈을 빌리러 다니는 처지다. 그가 생선 대가리 쳐서 건물 올린 학창시절 자신을 짝사랑한 은희(이정은)의 마음을 등쳐 돈을 빌려보려 한다. 도시 삶의 절박함이 우정, 첫사랑까지 이용해먹게 만든 한수는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하면서도 선뜻 은희가 부친 돈을 다시 되돌려준다. 그리고 무엇이 진짜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가난했지만 억척스럽게 제 길을 열어온 은희를 보며 자신도 새 출발에 용기를 얻는다. 

 

어려서 동석(이병헌)이 좋아했지만 뭍으로 돌아가 결혼해 아이까지 가진 선아(신민아)는 오랜 우울증 때문에 이혼도 당하고 아이까지 빼앗긴다. 절망감에 제주 바다로 뛰어들지만 해녀들이 그를 구해내고, 자꾸만 우울의 어두운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그에게 동석은 작은 빛을 열어준다. 그런데 그 우울증으로부터 선아를 구원해낸 힘은 놀랍게도 동석이 트럭을 몰고 제주 구석구석 물건을 팔러 다닐 때 녹음해 틀어놓곤 하는 소리다. “프라이판 프라이판 뺀찌 망치 도라이바 윗도리 아랫도리-” 노동의 소리가 우울의 늪으로부터 선아를 삶의 일상으로 끌어올려준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둘도 없는 절친이었지만 공주 대접을 받는 미란(엄정화)과 무수리 취급을 받아도 내색하지 않고 의리를 지켜온 은희의 에피소드에도 노동에 대한 헌사가 깃들어 있다. 우연히 은희의 일기장에 자신을 나쁘고 이기적이며 이중인격자라고 쓴 걸 보게 된 미란이 절교선언까지 하게 됐던 갈등은, 은희가 미란이 일하는 마사지샵을 찾아와 마사지를 받으면서 풀린다. 돌처럼 굳어버린 은희의 등짝에서 미란은 그가 살아낸 삶의 무게를 느끼고, 역시 야무진 미란의 손길에서 은희는 그 역시 공주처럼 살아오지만은 않았다는 걸 느낀다. 그 어떤 말보다 서로의 노동의 흔적이 묻어난 등짝과 손길이 그 자체로 서로를 설득하고 이해시켰던 것이다. 

 

고등학생 신분에 아이를 덜컥 갖게 되어 부모가 된 영주(노윤서)와 현(배현성) 때문에 갈등이 폭발한 그들의 부모 호식(최영준)과 인권(박지환)의 이야기에서도 자식 하나보며 자신을 희생해온 이들의 노동이 겹쳐지며 화해의 물꼬를 트고, 도시에서 온 깍쟁이에 헤픈 여자라는 소문과 물질에서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 때문에 해녀들로부터 배척당하던 영옥(한지민)은 그 욕심이 다운증후군을 가진 언니를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해녀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우리들의 블루스>는 노동하는 이들이 가진 삶의 경륜이나 생명력 같은 것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힘으로 제시된다. 아마도 제주를 굳이 그 배경으로 삼은 뜻 역시 그 척박한 섬의 만만찮은 삶을 살아낸 이들이 치열한 노동을 통해 갖게 된 강인한 생명력을 추앙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분량도 별로 없지만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옥동(김혜자)이나 춘희(고두심) 같은 삼춘들이 마치 이 모든 인물들을 넉넉히 품고 있는 제주할망 같은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글:PD저널,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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