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진짜 장애는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른바 ‘우영우’ 신드롬이다. 여기저기서 ‘우영우’라는 이름 석 자가 회자된다.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이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만평에도 등장하고, 이른바 윤석열 정부의 법치에는 ‘마음’이 없다(경향신문)는 칼럼에도 등장한다. 드라마 속에 나왔던 소덕동 팽나무인 수령 500년의 창원 북부리 팽나무가 실제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우영우가 푹 빠져 있는 고래에 대한 갑작스런 관심도 쏟아져 나온다.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신드롬은 너무나 갑작스럽다. 물론 작품은 더할 나위 없이 완성도가 높다. 그래서 0%대로 시작했던 드라마가 무려 13%(닐슨 코리아)까지 수직상승하고, ENA라는 낮선 채널의 인지도 또한 급부상시켰다는 건 어느 정도 공감 가는 일이다.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내는 파급효과는 늘 있어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우영우’가 동시다발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건 작품 내적인 요인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외적 요인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 요인 또한 다양하겠지만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건 우영우(박은빈)라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캐릭터만큼, 그와 함께 로펌에서 일을 하는 최수연(하윤경) 같은 동료와 정명석(강기영) 같은 상사가 주는 메시지의 힘이다. 

 

사실 지나치게 이상화된 메시지는 현실성을 잃고 스토리를 너무 판타지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정명석 같은 인물은 장애를 가진 우영우를 로펌에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어려운 현실을 들어 반대한다. 제 아무리 로스쿨 수석 졸업을 했어도 의뢰인도 만나고 변호도 해야 하는 변호사가 사회성도, 언변도 필요하다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건 편견일 수 있지만 어찌 보면 직장 상사로서의 현실을 얘기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 역시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있다. 하지만 그건 직접 우영우 같은 인물을 겪어보지 않아서 생긴 편견일 뿐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정명석은 적어도 문제의식을 늘 갖고 있고, 겪어본 후 무언가 잘못됐다고 여기면 바로바로 사과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놓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첫 회에 우영우가 피고인 피해자를 만나러갈 때 “그냥 보통 변호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가 금세 그 말이 잘못됐다는 걸 인지하고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실례인 거 같다”고 말하는 인물. 

 

그저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장애가 아니라도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으로 우영우를 대하는 최수연이 특히 감동적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인물 역시 드라마는 지나치게 이상화된 판타지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그는 어찌 보면 함께 사는 사회에서 우리가 선택해야할 당연한 삶을 살아가는 그런 인물로 그려진다. 다만 그 삶이 타인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우영우는 절감한다. 그래서 우영우가 그의 목소리로 이 평범하고 상식적으로 보이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삶’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감동받을 수밖에 없다. 

 

“너는 나한테 강의실의 위치와 휴강 정보와 바뀐 시험범위를 알려주고, 동기들이 날 놀리거나 속이거나 따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해. 지금도 너는 내 물병을 열어주고 다음에 구내식당에 또 김밥이 나오면 나한테 알려주겠다고 해.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함께 사는 법이 대단한 어떤 것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라는 걸 우영우는 최수연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해준다. 

 

경쟁자의 위치에 서서 ‘권모술수’를 쓰기도 하는 권민우(주종혁)가 사내 게시판에 우영우가 사실상 ‘부정 취업’을 했다고 올리고 그래서 사내 직원들이 수군거리며 심지어 우영우 자신 역시 그걸 인정하자 최수연이 하는 일갈은 우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서울대 로스쿨에서 성적 좋은 애들은 다 대형로펌으로 인턴 나가서 졸업 전에 입사 확정 받아. 근데 너만 정작 학교에서 맨날 1등 하던 너만 아무 데도 못 갔어. 그게 불공평하다는 거 다들 알았지만 그냥 자기 일 아니니까 모르는 척 가만있었을 뿐이야. 나도 그랬고.” 

 

최수연은 그런 입바른 소리를 하면서도 그런 차별에 자신도 동참했다는 사실 또한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우영우 역시 늘 당연하게 이런 차별을 받아와 문제의식을 잘 느끼지 못한다. “아무래도 내가 장애가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그러자 최수연의 일갈이 또 한 방 뒤통수를 때린다. “장애인 차별은 법으로 금지 돼 있어. 네 성적으로 아무 데도 못 가는 게 차별이고 부정이고 비리야. 무슨 수로 왔든 늦게라도 입사를 한 게 당연한 거라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의 이야기로 ‘장애’를 소재로 가져왔지만 그 이야기가 자폐라는 특정한 질환만을 다루는데 머물러 있지 않다. 최수연이 말하듯 진짜 장애는 우영우를 둘러싼 편견 가득한 세상이 갖고 있다. 장애인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지하철 시위에 ‘자기 일 아니니까 모르는 척 가만’ 있고 나아가 나의 불편함만을 호소하는 세상이 그렇고, 법에 호소하는 다양한 서민들의 마음을 읽지 않고 법대로만 하겠다 말하는 마음 따윈 들여다보지 않는 세상이 그렇다. 

 

대단한 각성과 날카로운 세상 인식 같은 게 필요한 게 아니다. 정명석처럼 몰라서 편견을 갖고 있었다면 알았을 때는 이를 고치려는 마음이 있으면 되는 일이고, 최수연처럼 장애와 비장애 같은 경계를 차치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타인을 배려하고 나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삶이면 되는 일이다.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그래서 우영우라는 인물을 리트머스지를 내세워 ‘이상한 우리 사회’를 비춰주고 있다. 신드롬이 생겨난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사진:ENA)

신무협 트렌드에 올라탄 tvN 토일드라마 ‘환혼’

우리에게도 ‘무협’이라는 장르는 익숙하다. 하지만 영상물로서 무협 판타지를 다루는 작품들은 대부분 중국 콘텐츠에서 많이 시도됐던 게 사실이다. tvN 토일드라마 <환혼>이 과감하게 펼쳐놓은 무협 판타지의 세계가 남다른 의미와 가치로 보이는 건 그래서다. 

환혼

홍자매가 가져온 신무협의 세계

우리에게 과거의 어떤 시공간을 배경으로 다루는 드라마는 주로 ‘사극’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즉 진짜 역사가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같은 시대적 배경을 담은 삶의 공간이 제시되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어떤 이야기를 시청자들이 기대하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tvN 토일드라마 <환혼>은 작품의 시공간을 ‘역사에도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대호국’으로 삼고 있다. 게다가 여기에는 ‘영혼을 바꾸는 환혼술’이 등장하고 이로 인해 ‘운명이 뒤틀린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환혼>은 대놓고 이 작품이 사극이 아닌 ‘무협 판타지’라는 걸 분명히 해놓고 시작한다. 이렇게 한 건, 워낙 최근에 ‘동북 공정’이니 ‘문화 공정’ 같은 역사 왜곡 논란들이 드라마 한 편의 성패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킨 전례들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즉 완전한 가상이고 상상의 산물이라는 걸 전제함으로써 이러한 논란의 빌미 자체를 사전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러한 방어적인 선택만이 아닌 보다 공격적인 의지의 표명도 들어 있다. 그것은 주로 중국 콘텐츠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곤 했던 무협 판타지를 이제 우리도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는 의지다. 사실 무협소설의 역사가 우리도 결코 짧지 않고, 최근에는 웹툰, 웹소설을 통해 이른바 ‘신무협’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우리에게도 무협 장르는 그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다만 드라마 분야에서 무협 판타지가 많이 시도되지 않았던 건, 제작비, CG기술 같은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어딘가 이 장르에 ‘중국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정서적 거리감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중국의 무협소설보다 우리의 무협소설이 훨씬 재밌다는 건 단지 ‘국뽕’의 차원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의 현실적인 배경 위에서 펼쳐지는 무협소설들은 바로 그렇게 때문에 중국보다 우리의 상상력을 더 무한하게 자극하는 면이 있다. 현실을 모르고 가본 적이 없어 하나의 상상의 세계로서 마음껏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최근 웹툰이나 웹소설의 ‘신무협’ 트렌드는 이러한 국적성 자체가 사라진 세계의 이야기가 적지 않다. 이들은 소림파 무당파 등이 등장하는 무협소설과 달리 몸을 바꾸거나 인생을 리셋하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판타지 설정 같은 것들이 더해진 특징을 갖고 있다. <환혼>은 바로 그런 신무협의 세계를 드라마로 가져왔다. 물론 홍정은, 홍미란 작가는 이미 이전부터 <쾌도 홍길동(2008)>에서부터 <화유기(2017)>에 이르는 액션 판타지를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 <환혼>은 훨씬 더 과감하고 본격화된 무협 판타지를 내세우고 있다. 어찌 보면 많은 중국의 무협 판타지들 속에서 한국형 무협 판타지의 출사표를 던지는 듯한 과감함이 엿보인다. 

 

혼을 바꾸는 설정, 그래서 만들어진 신박한 스토리

많은 판타지물들이 그렇지만 <환혼> 역시 ‘혼을 바꾼다’는 하나의 판타지 설정이 다채로운 스토리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일단 주인공 장욱(이재욱)이 가진 출생의 비밀이 바로 이 설정에서 비롯된다. 환혼술을 알게 된 장강(주상욱)에게 병든 선왕 고성(박병은)이 자신과 7일간만 혼을 바꿔달라 요구하고 그렇게 환혼술로 장강의 몸에 들어간 왕이 장강의 아내인 도화와 동침해 장욱이 태어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장강은 태어난 아들 장욱의 기문을 막아 술법을 배우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기문이 막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장욱에게 나타난 희망이 바로 무덕이(정소민)다. 무덕이는 실제로는 물 한 방울 튕겨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초절정 살수 ‘낙수(고윤정)’가 부상을 입은 후 환혼한 인물이다. 낙수와는 정반대로 기력 하나 없는 무덕이는 어쩌다 장욱의 몸종으로 들어가지만, 장욱은 그가 낙수라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그를 자신의 막힌 기문을 뚫어줄 사부로 삼는다. 그래서 이 관계는 복합적으로 뒤얽힌다. 겉으로 무덕은 장욱의 몸종으로 이들은 주종관계를 이루지만, 실제로는 장욱이 무덕의 제자가 되는 사제관계가 생겨난다. 무협 판타지지만 홍자매 특유의 로맨틱 코미디가 가미된 작품은 그래서 이 관계의 비틀어짐에서 만들어지는 웃음과 그러면서 점점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달달함까지 더해진다. 

 

물론 무협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 ‘성장스토리’는 이러한 관계의 재미라는 구슬들을 하나로 꿰는 실이다. 무덕이는 기문이 막혀버린 장욱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시켜주는데, 그 방식은 그들이 함께 벼랑 끝에 서는 것이다. 죽을 위기에 처하게 함으로써 조금씩 어떤 한계를 넘어 성장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무한한 잠재성과 가능성을 가진 청춘들이지만 기성세대들에 의해 꼬인 현실 속에서 그 꿈과 능력을 제대로 펼쳐나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그 설정이 그렇다. 물론 이런 한계를 넘어 한 단계씩 성장하는 인물의 이야기는 RPG 같은 게임에 익숙한 세대들이 좋아할 수 있는 포인트다. 

 

보다 깊은 질문들까지 던질 수 있을까

이러한 다양한 장점들과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들이 효력을 나타내면서 <환혼>은 최고 시청률 7.0%(닐슨 코리아)를 넘겼고 높은 화제성도 기록했다. 파트1, 파트2로 나뉘어진 작품으로 파트1이 20부로 편성되었고 이미 촬영을 마쳤으며, 최근 파트2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보기보다 <환혼>이 대작이라는 의미다. 

 

톡톡 튀는 대사와 흥미진진한 설정이 만들어내는 신박한 관계의 재미가 이런 결과들을 만들어냈지만, <환혼>은 시작부터 여주인공 교체로 말이 많았던 작품이다. 본래 박혜은이 캐스팅되었지만 부담감을 이유로 하차했고, 대신 정소민이 그 역할을 맡았다. 다행스러운 건 정소민이 몸종과 사부 나아가 연인의 면면을 오가는 결코 쉽지 않은 연기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시즌2 촬영에 들어가면서 또다시 여주인공 교체 이슈가 떠올랐다. 시즌2에는 정소민이 아닌 본래 낙수 역할을 했던 고윤정이 주인공으로 나선다는 소식이다. 아마도 이건 ‘환혼’이라는 이 드라마의 설정으로 인해 낙수가 제 몸을 찾아가거나 회복하는 새로운 스토리로 인해 나온 이야기일 듯싶다. 

 

하지만 이런 이슈들 속에는 ‘환혼’이라는 혼이 바뀌는 설정이 뒤로 갈수록 관계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담겨 있다. 즉 무덕이만 봐도 그 몸은 진요원을 이끄는 진호경(박은혜)이 잃어버린 첫째 딸로 추정되고, 그 몸에 혼으로 들어간 낙수는 진무(조재윤)에게 속아 살수로 키워진 인물이다. 이렇게 인물의 정체가 ‘환혼’이라는 설정 때문에 복잡해질 수 있고, 자칫 ‘출생의 비밀’ 같은 ‘정체의 비밀’ 코드 활용에 빠져들 수 있다. 정작 이렇게 혼을 바꿔 삶을 연장하거나 어떤 욕망을 취하려는 이들의 파국이 담아내려는 메시지가 흐려질 수 있다. 요컨대 마치 옷을 바꿔 입듯 혼을 바꾸는 잔재미(?)에 빠지다보면 보다 깊은 드라마의 질문들이 가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진짜 한국형 무협 판타지가 중국의 그것들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려면 이러한 판타지 설정의 함의하고 은유하는 묵직한 메시지까지를 이 발랄한 드라마가 담아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장르적 묘미를 충분히 즐기면서도, 그 여운이 오래 갈 수 있는 작품이 되길 기대한다.(글:매일신문, 사진:tvN)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가 법무법인 한바다에 입사해 갖가지 변호를 맡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드라마다. 자폐라고 하면 과연 사회생활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 그것이 어려울 수는 있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우영우는 자폐지만, 다른 변호사들은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시선이나 접근방식으로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능력을 보여준다. 

 

물론 우영우라는 인물이 모든 자폐 장애를 가진 이들을 대표한다고 보긴 어렵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이들 중 극히 일부인 서번트 증후군을 갖고 있는 인물이고 그래서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굿닥터> 같은 드라마나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영화가 그렇듯이,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인물들을 주로 주인공으로 삼는 콘텐츠들이 자폐를 너무 그런 이미지로만 그려내는 건 우려되는 지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그래도 작품 안에 자폐인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주인공의 목소리를 빌어 전하는 노력도 빼놓지 않고 있다. “자폐의 공식적인 진단명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입니다. 스펙트럼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자폐인은 천차만별입니다” 같은 대사가 그 사례다. 

 

중요한 건 이 드라마가 자폐 스펙트럼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우영우는 서울대 로스쿨 수석졸업에 변호사 시험 성적 천오백 점 이상을 받은 인재지만 자폐 스펙트럼이 있다는 이유로 로펌들로부터 입사를 거부당한다. 이것이 실제 현실일 터였다.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드라마로서의 판타지를 통한 어떤 새로운 비전을 선택한다. 모두가 받아주지 않은 우영우를 법무법인 한바다가 받아준 것. 아마도 한바다가 아니었으면 자폐를 갖고는 있지만 그 잠재력은 거의 고래만큼 거대한 우영우라는 변호사는 작은 수족관에서 ‘보호’라는 미명하에 갇혀 아무도 모르는 생애를 버텨내야 했을 게다. 드라마는 이러한 자폐를 가진 우영우가 가진 꿈과 희망을 거대한 대양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고래로 은유해 그려낸다. 그러고 보면 고래는 바다에서 살아가는 포유류라는 다소 이질적인 존재다. 한바다로 대변되는 세상은 과연 우영우라는 고래를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게 해줄까. 

 

장애는 불편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집이나 요양원 같은 세상과 유리된 곳에서 그들끼리 버텨내야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생산성의 관점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장애를 가진 이들을 세상에서 밀어내며 마치 그런 존재는 없는 것처럼 치부하는 사회는 어떨까. 그런 사회 자체가 장애를 가진 사회가 아닐까. 

 

돌봄 노동의 관점으로 보면 우영우의 부모에게서는 우리 사회가 장애 같은 돌봄의 대상을 바라보는 양극단의 관점이 엿보인다. 즉 우영우가 이렇게 잘 자랄 수 있게 해준 건 늘 옆에서 든든하게 챙겨주고 세상에도 나갈 수 있게 해준 아버지 우광호(전배수)의 돌봄이 존재했다. 하짐나 다른 한편으로 우영우의 엄마는 우영우를 버렸다. 아마도 잘 나가는 로펌의 대표일 것으로 추정되는 우영우의 엄마는 왜 그를 버렸을까. 거기에는 마치 그런 존재 자체가 없는 것처럼 치부하고픈 우리 사회의 장애나 돌봄을 바라보는 관점이 투영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장애를 가진 이들이 세상과 유리된 곳이 아닌 사회 속에서 그 구성원이 되어 함께 살아갈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편견 없는 시선이다. 장애가 함께 생활하는데 있어 불편한 일들을 만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능력하다거나 함께 지낼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시선이 그것이다. 우영우를 법무법인 한바다로 받아들인 한선영(백지원) 대표가 그 편견을 버리고 우영우의 길을 열어줬다면, 그와 동고동락해야 하는 정명석(강기영) 같은 상사는 갖고 있던 편견을 함께 생활하며 조금씩 바꿔 나간다. 그는 “그냥 보통 변호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야”라고 이야기했다가 “하,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시례인 거 같다”고 사과할 줄 아는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우영우 옆에는 늘 곁을 챙겨주는 우광호 같은 아버지도 있고 둘도 없는 절친 동그라미(주현영) 같은 친구도 있다. 물론 같은 신입 변호사로서 사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권민우(주종혁) 같은 인물도 있지만, 최수연(하윤경)처럼 로스쿨 때부터 따뜻하게 우영우를 배려해주고 도왔던 인물도 있다. 장애를 가졌지만 우영우가 세상 밖으로 나와 이렇게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건 이러한 주변 인물들의 편견 없는(적어도 편견을 깨닫고 바꾸려는) 시선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질문하게 된다. 과연 진짜 장애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 자체가 누군가의 ‘돌봄’으로 시작해 ‘돌봄’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장애요소를 갖고 있다는 걸 떠올려 보면 마치 그건 남의 일이며 내게는 벌어지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활동하고 경제생활을 하는 이들(혹은 시기)만을 정상으로 바라보고 그 바깥을 비정상 혹은 아예 없는 것처럼 치부하는 사회야말로 장애를 가진 사회가 아닐까. 

 

한때 시선 안에 두는 것조차 불편해하며 시선 바깥으로 밀려났던 장애를 포함한 모든 ‘돌봄의 대상’들이 이제 우리의 시선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블루스>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된 다운증후군 배우 정은혜가 그렇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그리고 있는 우영우라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캐릭터가 그렇다. 이들과 눈을 맞추고 편견 없이 바라봐주며 마음도 나눌 수 있는 장애 없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물론 쉬운 현실은 아니지만, 장애란 결국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겪을 수밖에 없는 불편함일 뿐, 우리 삶의 한 부분이라는 걸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글:이데일리, 사진: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박은빈의 부모가 그려낼 장애에 대한 두 시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고래사냥법 중 가장 유명한 건 새끼부터 죽이기야. 연약한 새끼에게 작살을 던져 새끼가 고통스러워하며 주위를 맴돌면 어미는 절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대. 아파하는 새끼를 버리지 못하는 거야. 그 때 최종 표적인 어미를 향해 두 번째 작살을 던지는 거지. 고래들은 지능이 높아. 새끼를 버리지 않으면 자기도 죽는다는 걸 알았을 거야. 그래도 끝까지 버리지 않아. 만약 내가 고래였다면 엄마도 날 안 버렸을까?”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박은빈)는 함께 탈북자의 폭행상해 사건을 맡은 동료 변호사 최수연(하윤경)에게 엄마 고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남다른 고래에 대한 애정을 보이고 그래서 업무 중에도 불쑥 고래 이야기가 튀어나오곤 하는 우영우. 이 드라마에서 고래는 여러 가지 상징으로 사용된다. 바다에서 살지만 포유류라는 다소 이질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자폐스펙트럼을 갖고 있지만 사회에 나와 살아가는 우영우를 상징하기도 하고,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사회에서의 편견에 갇혀 있는 우영우를 말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영우가 엄마 고래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처럼, 이 드라마에서 고래는 ‘위대한 엄마’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새끼를 버리지 않는 엄마. 하지만 자신에게는 없는 그런 엄마. 우영우가 맡은 폭행 상해 사건의 가해자인 탈북여성은 또 다른 엄마 고래 같은 존재다.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어쩌다 사건에 휘말리게 됐지만, 이 엄마는 아이 때문에 5년 간이나 도망자 생활을 한다. 아이가 너무 어려 엄마를 기억하지 못할까봐 그렇게 5년 간 지낸 후, 죗값을 받기 위해 자수한다. 처벌을 받는 두려움보다 아이를 잃을까 싶은 두려움이 더 큰 모성이다. 

 

그런데 우영우의 엄마 고래 이야기는 탈북여성에 대한 이야기에서 꺼내진 것이지만, 실상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만약 내가 고래였다면 엄마도 날 안 버렸을까?”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우영우는 버려졌다. 그런데 그는 왜 엄마로부터 버려졌을까. 이 부분은 드라마가 차후에 조금씩 사연을 풀어놓을 것이지만, 어쩌면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장애에 대한 시선과 이를 갖고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 그리고 이를 도외시하고 있는 사회의 엇나간 편견 같은 것들을 담은 것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 단서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우영우의 아버지 우광호(전배수)를 통해 찾아진다. 엄마는 버렸지만 아버지는 많은 걸 희생해가며 우영우를 끝까지 지키고 키웠다. 재혼을 한다거나 하는, 자신을 위한 삶보다 딸을 위한 삶을 선택하고 그의 재능을 알아내고 관심 있어 하는 법 공부를 시켜 변호사가 되는 길을 열어 주었다. 한 사람의 희생이 장애를 가진 이의 가능성을 살려냈다. 

 

그런데 엄마는 왜 버렸을까. 아직 그 엄마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드라마의 스토리텔링 구조로 봤을 때 우영우의 엄마는 법무법인 한바다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태산의 대표 태수미(진경)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건 아직까지 추정이지만 이런 추론은 라이벌 관계를 가진 두 회사의 이름으로도 어느 정도 유추된다. 우영우라는 고래를 받아준 건 ‘한바다’다. 태수미가 대표로 있는 회사 ‘태산’은 고래가 살 수 없는 곳이다. 위로만 올라가려 해서 더 이상 고래를 받아줄 수 없는 곳. 

 

만일 태수미가 우영우의 엄마이고, 남다른 야망으로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버렸다면 그 상황은 장애에 대해 사회가 갖는 편견이 드리워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성공을 위해 앞으로만 달려가는 사회는 장애를 가진 소수자들을 마치 없는 것처럼 치부하지 않던가. 

 

모성으로 표현됐지만 사실 이건 좀 더 확장해서 장애를 사회가 어떻게 수용하고 끌어안는가에 대한 화두처럼 보인다. 단순하게 보면 장애가 있어도 끝까지 옆에서 지켜준 우광호와 끝내 버린 엄마를 대척점으로 세워 어떤 선택이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길로 갈 것인가를 묻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한바다의 정명석(강기영), 한선영(백지원), 이준호(강태오), 최수연(하윤경)처럼 장애가 있어도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아이를 버리고 떠나버린 우영우의 엄마 같은 사람이 될 것인가. 

 

우영우가 꺼낸 엄마 고래 이야기가 특히 슬픈 건 그래서다. 그는 그래도 몇 프로 안 되는 서번트 증후군이고, 그래서 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해 잘 살아내고 있는 인물이며 나아가 이건 드라마로서 어느 정도 판타지가 더해진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진 존재’라는 상처가 거기서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그래서 슬프면서도 이 인물을 보듬고 싶고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오게 하고픈 마음이 일었을 게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지워져온 그 삶이 “저는 우영우입니다.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라고 당당히 소개될 수 있게.(사진: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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