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만 남은 '하이킥', 웃음은 어디갔나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사진출처: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3)'에서 서지석이 용종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벌어진 박하선과의 멜로는, 꿈 속에 꿈을 넣음으로써 반전에 반전을 만들었다. 즉 수술을 받다가 잘못 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병원으로 달려온 박하선에게 서지석이 키스를 하는 장면이 나왔지만, 병상에서 깨어난 서지석에게 이것은 모두 꿈으로 밝혀진 것.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박하선이 서둘러 미국행을 결심하고 공항으로 떠나자 그녀를 잡기 위해 달려간 서지석이 차에 치이는 장면이 나오고는 다시 이 모든 게 꿈으로 되돌려진 것이다. 즉 꿈 속에 꿈을 넣어 반전시킴으로서 결국 박하선과 서지석이 연인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물론 박하선과 서지석 사이의 이루어질 듯 이루어지지 않는 그 멜로를 꿈이라는 장치를 통해 극화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토리에서 꿈을 장치로 활용할 때는 조심해야 될 부분이 있다. 그 작품 전체가 꿈에 대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 장치는 반전을 위해 사용될 수 있지만, 전혀 그런 암시가 없는 상황에서 꿈을 사용한다면 작품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게 될 수 있다. '하이킥3'가 사용한 꿈이 그렇다. 박하선과 서지석의 멜로는 그만큼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소재였다. 그런데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던 상황을 꿈으로 쉽게 뒤집고, 또 그것을 다시 꿈으로 뒤집어놓는 건 너무 과도한 작가와 PD의 작위적인 손길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나올 스토리들에 어떻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인가. '알고 보니 꿈이더라'는 장치는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반전 장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장치이기도 하다.

'하이킥3'는 최근 들어 멜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물론 시트콤에서 멜로는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되었다. 누가 누구와 연결되고 이뤄지는가 하는 점은 매일 아이디어를 뽑아내야 하는 시트콤에 있어서 어느 정도 숨 쉴 틈을 만들어주면서도, 그 자체로 흥미를 끄는 소재이기도 하다. 신세경을 다시 부활시켜 '지붕 뚫고 하이킥'의 새드 엔딩을 뒤집으려 한 스토리 또한 '하이킥3'가 멜로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그런데 박하선과 서지석 사이의 멜로가 신세경의 스토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게 여겨지는 건 왜일까.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던 신세경을 '하이킥3'를 통해 부활시킨 것처럼, 박하선과 서지석 사이의 멜로는 꿈이라는 장치로 손쉽게 상황을 뒤집어 놓는다. 그 과정이 너무 손쉽기 때문에, 또 그래서 반전도 너무 급작스럽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는 불편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조금 과장을 보태 생각하면 이것은 시청자의 마음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이리저리 휘둘리게 만드는 장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아무리 시트콤이 다루는 멜로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심리적인 개연성이 있어야 하고, 반전에 대한 복선이 깔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안종석과 김지원, 백진희와 윤계상 그리고 서지석과 박하선. 이렇듯 '하이킥3'의 멜로에 대한 집착은 이 작품이 시트콤이라는 사실을 가끔씩 지워버린다. 즉 시트콤이 가져야할 시추에이션과 코미디가 실종된 상황에서 그저 분량을 뽑아내기 위한 3각 관계 짝짓기 놀이로 비춰지는 것이다. 물론 전작 시리즈들이었던 '거침없이 하이킥'이나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도 멜로는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멜로의 분량만큼, 현실이 공감되는 '웃기는 상황들'이 그 시트콤들에는 있었기 때문에 어떤 균형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하이킥3'는 시트콤으로서의 상황 공감이나 그로 인해 유발되는 웃음의 분량이 너무 적다.

'하이킥3'는 시트콤이다. 그러니 그 중심은 시추에이션 코미디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하이킥3'는 멜로라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그 손쉬우면서도 달콤한 꿈에 젖는다면 시트콤으로서의 날선 현실에 대한 시각을 자칫 놓칠까 저어된다. '짧은 다리의 역습'은 도대체 언제 보여줄 것인가. '하이킥3'가 이제는 꿈에서 깨어나 이 답답한 현실에 속 시원한 하이킥 한 방을 날려주길 기대한다. 전작들이 그래왔듯이.


'브레인', 심지어 컬트적인 문제작

'브레인'(사진출처:KBS)

"이건 우리의 마음이거든요. 사람이 마음을 만질 수 있다는 게, 신경외과 의사가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이토록 경이로운 뇌를 만져온 인생을 바친 저는 여한이 없습니다. 뇌를 통해서 사람을 이해했고 연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브레인'의 뇌의학자 김상철(정진영) 교수의 이 진술은 마치 작가의 진술처럼 들린다. '브레인'의 작가는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뇌를 들여다보고 만짐으로써 그들을 이해하고 연민하는 지금까지 어떤 드라마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 드라마를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브레인'은 확실히 지금까지의 어떤 드라마와도 다르고, 특히 그 어떤 의학드라마와도 차별화되어 있다. 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드라마는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 의사를 환자처럼 다룬다. 이강훈(신하균)은 어린 시절 뇌수술을 하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된 아버지의 기억을 깊은 트라우마로 가진 인물로, 오로지 실력 하나로 세상과 대적하려 한다. 실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심지어 인물을 유아적으로까지 비춰지게 만든다. 그는 사랑에 있어서 어린아이 같고, 함께 사는 삶에서 오로지 맨 꼭대기에만 서려 한다. 자신의 결점이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완벽주의. 그는 어쩌면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이런 병을 앓고 있다.

이강훈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김상철 교수는 그 죄책감에 기억을 지우고 성인군자처럼 살아가지만, 그 이면에는 그 상처가 만들어내는 괴물 같은 욕망이 꿈틀댄다. 누르고 눌렀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것은 뇌에 종양으로 자라난다. 그러자 김상철 교수는 마치 에일리언이 침투한 사람처럼 종양이 자란 뇌의 조종을 받게 된다. 난폭해지고 성격이 급변하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상하고 비정상의 차이가 뭐죠? 정상이라... 포장하고 사는 거겠지요. 저는 포장지가 다 뜯어져버렸나 봅니다." 그는 포장을 뚫고 나온 죄책감의 기억에 시달리는 환자다.

이처럼 '브레인'의 의사들은 저마다 뇌의 병을 앓고 있다.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서준석(조동혁) 교수는 그 일 때문에 수술실에 심지어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공황장애를 겪게 되고, 심지어 환자에 대한 배려가 지나칠 정도로 강한 윤지혜(최정원)가 이강훈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상황 역시 뇌 사진을 통해서다. 어쩌면 '브레인'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하나의 뇌의 반응으로 읽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마음은 뇌의 조종을 받고, 또 뇌는 마음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이 드라마의 캐릭터들은 우리가 흔히 보던 드라마의 전형적인 캐릭터들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드라마의 캐릭터란 일관성을 갖게 마련이다. 하지만 '브레인'에서 탐구하듯 열어 보이는 캐릭터들의 뇌는 이 캐릭터의 일관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를 잘 말해준다. 뇌의 작은 부분 하나만 건드려도 캐릭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도 하니까. 따라서 '브레인'의 캐릭터들은 그 성격이 급변하고 그 변화의 폭도 대단히 넓다. 이것은 만일 '브레인'이 캐릭터들의 뇌를 진단하고 열어 보이지 않았다면 설득될 수 없는 캐릭터일 것이다. 하지만 뇌의 변화까지 근거로 제시하는 '브레인'의 인물들은 사실상 전날 성인군자였다가 다음날 폭군으로 변하는 인물도 수긍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부분은 이 드라마가 가진 때로는 기괴하게까지 여겨지고, 심지어 컬트적이라고 생각되는 상황들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다. 이강훈을 포함해 김상철, 서준석, 고재학(이성민) 같은 인물들이 서로 욕망을 위해 연합하고 대립하지만 그 누가 선이고 악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 것은 '브레인'의 이 캐릭터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점 때문이다. '브레인'에는 선악이 없다. 다만 저마다 (크고 작건 간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인물들이 있을 뿐이다.

보통의 드라마들이 대미에 와서 서로 행동이나 대사를 통해 부딪치는 것으로 그 갈등을 해소시킨다면, 이 드라마는 그래서 이 모든 인물들을 수술실로 불러들인다.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적인 문제가 아니라 뇌라는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상철 교수의 뇌 종양 제거수술에 이강훈이 메스를 들고, 서준석이 보조를 하는 건 이 모든 갈등을 단번에 풀어내는 효과적인 설정이다. 이 수술 장면으로 김상철 교수는 각성수술을 통해 자기의 뇌를 바라보고 쓰다듬는다(이 얼마나 컬트적인 장면인가!). 마치 자신의 아픈 과거를 담은 뇌를 인정한다는 듯이. 이강훈은 늘 자신의 앞에 있다고 생각하는 김상철 교수의 뇌수술을 하는 것으로 그 콤플렉스를 넘어선다. 물론 서준석은 공황장애를 이겨낸다.

스승이 제자를 위해 자신의 뇌를 수술하게 하는 이 장면은 어찌 보면 '허준'에서 스승인 유의태가 자신의 몸을 제자에게 맡기는 장면처럼 감동적으로 그려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브레인'은 이미 마음을 조종하는 뇌를 본 마당에 이런 낯간지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우리나라 최고 뇌 의학자의 뇌수술 아무나 하겠습니까? 교수님의 뇌에 메스를 댄다는 것 자체가 교수님의 뒤를 잇는다는 것인데. 제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있겠습니까?" 이강훈은 늘 그렇듯 도전적으로 김상철교수에게 이렇게 말하고, 김상철 교수는 "끝까지 나를 마지막까지 이용할 생각이구만."하고 답한다. 이것은 분명 애정의 표현이지만, 뇌를 다루는 그들에게 애정표현이란 이렇게 쿨한 면모가 있다.

이것은 이강훈과 윤지혜의 멜로에서도 드러난다. 이강훈은 아픈 윤지혜를 찾아가 그녀를 보살펴주지만, 깨어난 그녀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마음을 숨긴 채 버럭 댄다. 그런 이강훈에게 윤지혜는 뜬금없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어찌 보면 어색하기 이를 데 없고, 거기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코미디가 될 수도 있지만, 이강훈이 실제로 노래를 읊조리듯 부르는 순간 상황은 반전된다. 그 장면에서 왜 우리는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해졌던 걸까. 그것은 이강훈이라는 마치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어떻게 사랑표현을 해야할 지 몰라 투덜대기만 하던 인물이 그 아픔을 넘어서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치유의 장면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브레인'에서는 멜로조차 하나의 치유로 그려진다.

'브레인'은 문제작이다. 여러 드라마들이 지금껏 캐릭터를 그려내면서 그 일관성이니 전형성이니 또 성장이니를 운운했다면, 이 드라마는 캐릭터를 뇌 차원으로까지 확장해 그 고전적인(?) 캐릭터 작법을 무너뜨린다. 이 얘기는 캐릭터로 인해 구축되는 장르들 예를 들면 멜로나 스릴러, 미스테리 같은 장르들 역시 그저 하나의 관습적인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때론 멜로처럼 보이다가 때론 공포처럼 읽혀지는 '브레인'이 가능한 것은 그 캐릭터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랑의 차원까지 뇌를 통해 만질 수 있는 어떤 것으로 그려낸 '브레인'은 그래서 기존 드라마들 바깥에 세워진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이런 캐릭터를 가능하게 해준 신하균이나 정진영 같은 발군의 연기자들일 것이다. 그들이 있어 '브레인'이라는 놀라운 드라마는 가능했다.


사극의 그들, 예능에서 주목되는 이유

'1박2일'(사진출처:KBS)

우리가 알고 있던 이서진의 모습은 사극 속의 왕이 대부분이다. 반듯한 이미지에 신뢰 가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대사를 던지는 이서진에게서는 진짜 '왕족'의 아우라가 느껴지곤 했다. 그런 그였기에 그 반전이 주는 웃음도 클 수밖에 없었을 게다. '1박2일' 절친 특집에 이승기의 초대로 출연한 이서진은 지금껏 궁 안(?)에서 보여주던 반듯함을 깨고, 은근히 승부욕 있고, 은근히 폼생폼사하며, 은근히 성깔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미대형(미대 다니는 형)'이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물론 이런 '미대형'이란 캐릭터가 창출된 것은 거기 혹한기 실전캠프를 함께 한 '1박2일' 멤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이서진의 야생에서도 어딘지 도도하려 하고, 하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순간순간 드러나는 그의 맨 얼굴을 찾아내며 '미대형'이란 캐릭터로 추켜세웠다. 여기에 족구 게임이나 아침 기상 미션에서 군고구마 빨리 먹기 게임을 하는 장면 등에서 이서진의 면면을 편집 장면으로 집중시킴으로써 그 캐릭터는 더 부각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변인물들의 도움과 편집이 있었다고 해도 이런 캐릭터가 생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이서진이라는 독특한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드라마 속의 반듯한 이미지만을 떠올릴 지 모르지만, 사극이라는 제작 환경은 '1박2일'의 야생보다 더 생야생인 경우가 많다. 혹한에도 야전에서 잠 못 자며 몸으로 부딪치며 촬영해야 하는 그들이지만, 막상 카메라가 돌아가면 캐릭터에 맞게 반듯한 이미지를 고수하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다. 그러니 '혹한기 실전 캠프'에서의 이서진 같은 캐릭터가 가능한 것이다. 힘겨워도 카메라가 돌면 그 누구보다 열심이고, 투덜대다가도 일단 시키면 군말 없이 잘 하는 그런 캐릭터. 그러면서도 어딘지 캐릭터가 주는 아우라를 카메라 바깥에서도 지키려는 모습. '미대형'은 그렇게 탄생된 캐릭터다.

사극에서 반듯한 이미지를 선보이다가 예능(시트콤을 포함한)에서 주목받는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 아우라가 깨지면서 주는 웃음이 있다는 점이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 발굴한 최고의 유망주 박하선이 대표적이다. 이 시트콤에 출연하기 이전에 박하선에 대한 대중들의 선입견은 '동이'의 인현왕후 이미지였다. 고고하면서도 위엄이 있고 자애롭기까지 한 그 이미지. 하지만 그 이미지는 이 시트콤에서 때론 급 흥분하는 모습,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모습, 때로는 '롤리폴리'를 추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깨져버렸다. 그만큼 대중들의 호응도 커졌다. 아우라의 파괴를 통한 웃음이 가져오는 힘이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다른 작품 혹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제 아무리 아우라를 파괴시킨다고 해도 그것이 완전히 소진되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전히 대중들의 뇌리에 그 잔상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즉 순간적인 아우라의 파괴는 그들의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주지만, 곧 다시 평소대로의 얼굴로 돌아가면 예전 왕과 왕후로서 근엄했던 이미지로 되돌아간다. 즉 이들이 아우라의 파괴로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은 하나의 부가된 이미지이지 과거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게 만드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이 지점에서 신비로운 느낌이 생겨난다. 즉 어떨 때는 인간 세상으로 내려앉은 듯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면모에서 일종의 통쾌함을 느끼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갔을 때 그 변함없는 고고함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도대체 누구냐 넌?"하고 묻는 이유는 바로 그 신비로운 이미지의 체험을 순간 이들에게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사극이 갖는 힘이 클 것이다. 그 야전의 제작환경 속에서도 근엄함을 잊지 않아야 하는 그 경험치는 예능의 맨 얼굴과 만났을 때 그만큼 큰 반전을 주기 마련이다. 게다가 휘발되지 않고 다시 본래의 아우라로 돌아가는 이미지라니. 어찌 신비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이서진과 박하선, 역시 왕족(?)이 주는 웃음은 뭔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정글'의 정순영 PD, '남극'의 김진만 PD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같이 한 번 가실래요? 의향 있으시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아마도 다른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이렇게 물었다면 두 말 않고 같이 가자고 했을 게다. 하지만 이 팀의 제안은 어딘지 농담처럼 여겨졌다. '정글의 법칙'이 아닌가. 말 그대로 야생의 정글 한 복판에 툭 던져놓고는 숙식을 알아서 해결하며 며칠을 버텨내야 하는 프로그램. 때론 생존을 위해 말도 안되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독충들과 뱀,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곳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그런 프로그램. 화면으로 보는 것만 해도 살풍경한데, 그 곳에 직접 가자고? 화면 이 편에서 편안하게 TV나 보면서 감 놔라 대추 놔라 글줄이나 써내는 인간이 무슨!

'정글의 법칙' 제작팀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정순영 국장을 처음 봤다. 거무튀튀한 피부에 예사롭지 않은 포스가 남다른 정 국장은 입만 열면 욕이 튀어나오는 욕쟁이 PD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처음 본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욕은 그다지 기분 나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 욕에는 어딘지 인간적인 냄새가 풍겨 나왔다. 50줄을 넘긴 나이에 정글 같은 야생에서의 촬영, 적어도 의기만은 팽팽해야 버티지 않을까. 정국장의 정감 가는 욕에는 그런 힘이 느껴졌다. 편안히 음식을 먹으며 웃고 떠드는 자리였지만 제작진들의 고생담은 마치 일상처럼 툭툭 던져졌다. 한 PD는 소매를 걷어 벌레에 잔뜩 물어뜯긴 정글의 흔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글 같은 오지나 히말라야의 산을 배경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볼 때마다 늘 궁금한 건 거기 정글이나 산에서 버티는 출연자보다 그들을 찍는 카메라맨들이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데 그저 출연자가 오르기도 힘든 경사의 절벽을 오르면서도 그 출연자를 촬영하는 것일까. '정글의 법칙' 마지막 회에서 정글을 빠져나오다 낙오되어 실종된 정순영 국장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을 때, 이 프로그램의 진짜 고생담은 카메라 뒤편에 서 있는 제작진들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하룻밤을 정글에서 혼자 남겨진 채 독충들과의 끔찍한 밤을 보내고 나온 정순영 국장은 걱정할 다른 스텝들을 위해 애써 웃음을 지었다. 미안해서 오열하는 후배 PD에게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정순영 국장의 허허로운 웃음은 가슴 한 켠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남극의 눈물' 때문에 무려 300일 간을 남극에서 지내고 돌아온 김진만 PD는 마치 록커처럼 긴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채 환하게 웃었다. 까맣게 탄 얼굴, 1년 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체구, 그 겉모습만으로도 그가 겪은 1년의 고생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존하고 남극하고 어디가 더 힘들었나요?"하고 묻자, "아마존이 훨씬 힘들었죠. 하지만 남극은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이 더 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혹한 속에서 꽁꽁 얼어버린 카메라를 들고 조금이라도 더 생생한 장면을 찍기 위해 얼굴에생긴 동상을 방치하면서까지 촬영에 임한 송인혁 촬영감독의 이야기는 제작진의 고충과 함께 그 남다른 프로정신을 깨닫게 해주었다.

'정글의 법칙'은 그 프로그램의 성격상 출연진들의 고생담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 정글의 야생성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남극의 눈물'은 남극의 자연을 찍는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제작진은 늘 카메라 뒤편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이 카메라에 노출되는 이유는 그 극지의 힘겨운 환경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주기 위함이다. "아마존에서도 원주민들만 나오면 전혀 그 아마존의 야생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오지에 적응못한 일반인으로서 제작진의 고생담이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전해주는 것이다.

사실 오지 촬영을 하면서 촬영된 피사체만큼 그 촬영을 하기 위한 고생담이 더 흥미롭다. 카메라에 안전하게 잡힌 영상보다 그것을 찍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이들의 이야기가 훨씬 대중들의 눈을 사로잡는 건, 그 리얼리티에 담겨진 진정성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방송의 한 경향은 이런 생고생을 체험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디스커버리 채널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이 오지에서의 생존이나 그런 곳에 사는 괴물 같은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식의 체험형 다큐멘터리로 대중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정순영 PD나 김진만 PD가 겪은 오지 체험의 영상은 그래서 때론 더 큰 감동을 준다. 출연자나 오지의 압도적인 자연경관보다 더 눈물 나는 그들의 고생담. 때로는 작은 편집 실수로 때로는 안전불감증이라는 오해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그 진심이 왜곡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오지를 다녀온 그들의 아무렇지도 않은 웃음, 그 짠한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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