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의 기적, 대중은 반전드라마를 원한다

'위대한 탄생'(사진출처:MBC)

김태원의 멘티들, 백청강, 이태권, 손진영이 또 Top4에 살아남았다. 김태원 스스로 말했듯이, 많은 이들이 기적을 말한다. 그 누구도 이들이 여기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진영은 그야말로 미라클맨이 되었다. 그는 예심에서도 거의 떨어질 뻔한 상황을 겪었다. 그 때마다 김태원은 변함없이 그를 지지해주었고, 그는 말 그대로 기적을 만들었다.

이태권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뛰어난 가창력을 가졌지만 가수로서 거의 무표정에 가까운 표정과 노래 표현력은 두드러지는 약점이었다. 또 백청강은 특유의 비음이 계속 단점으로 지적되었고 외모에 있어서도 다른 경쟁자와 비교해 세련된 인상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김태원은 이들을 멘티로 뽑으면서 이른바 '외인구단'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그러자 이 약점은 순식간에 장점을 바뀌었다. 이태권의 무표정은 그가 살짝 미소 지었을 때, 그조차 매력적인 것으로 바뀌어버렸고, 백청강의 세련되지 못한 이미지는 순수청년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우연히 벌어진 일은 아니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전형적인 틀 속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결과가 벌어지긴 했지만 그것이 그저 아무런 노력이나 이유 없이 생겨난 기적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태원이 '위대한 탄생'을 통해 만들어내려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다름 아닌 그의 이미지이기도 한 부활의 스토리다. 아무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이야기.

어쩌면 김태원의 이런 스타일이 '위대한 탄생'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대중들이 보고 싶은 것은 뻔하게 '될 사람이 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들은 거기서 반전의 주인공을 원한다. 그래서 일찌감치 프로 가수 같았던 노지훈은 탈락한 것이고, 실력은 갖추었지만 어떤 매력적인 반전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김혜리는 탈락한 것이며, 자꾸만 기성가수를 따라하려 한 데이비드 오가 떨어진 것이다.

물론 방시혁이나 이은미는 충실하게 자신의 스타일대로 심사위원과 멘토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김태원이 이끄는 이 기적의 반전 스토리로 '위대한 탄생'을 다시 그려보면 그들은 결과적으로 이 스토리에 악역을 맡은 격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심사위원으로서의 가창력 지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기적의 스토리의 주인공들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김태원의 반전 스토리에 들어가면 그저 반감을 갖게 되는 '지적질'이 되어 버린다.

결국 김태원의 기적의 스토리라는 빛에는 방시혁과 이은미가 받는 비난이라는 어둠이 존재하는 셈이다. 물론 이것은 이 모든 것을 스토리텔링으로 읽은 김태원의 능력이며, 오디션 프로그램을 실제 오디션과 착각한 방시혁과 이은미의 실패다. 방시혁은 실제 오디션처럼 가요계에 바로 투여될 수 있는 가수(여러 번 '음악중심'이라고 지적된 것처럼)를 뽑으려 했고, 이은미는 진정 가창력 있는 가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적에 지적을 아끼지 않았다. 어찌 보면 김태원의 승승장구는 이들과의 비교지점에서 발생한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최후의 12인에 들어간 생존자들에게서 실력의 차이는 그다지 눈에 두드러지는 요소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어떤 무대를 선보이느냐가 당락에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러니 무대에 계속 설 수 있는 기대감을 부여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김태원은 분명 기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기적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반전의 주인공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과, 결과가 아닌 과정의 기적을 만들어나가는 김태원 스타일, 그리고 여기에 적절한 악역을 하게 되어버린 타 심사위원들의 역할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다.

'내거해', 이 로맨틱 코미디가 남다른 이유

'내게 거짓말을 해봐'(사진출처:SBS)

첫 시작은 마치 '시크릿 가든' 같다. 백화점을 둘러보며 직원들을 긴장시키는 김주원(현빈)처럼, 현기준(강지환)은 호텔을 들어서며 꼼꼼하게 상태를 체크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길라임(하지원)이 스턴트우먼으로 등장해 시선을 잡아끄는 것처럼, 공아정(윤은혜)은 야외에서 개최된 관광장관회의가 벌떼의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우연한 일로 두 사람은 서로 얽히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이것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틀이다. 남자와 여자가 어찌 어찌 하다 만나게 돼서 알콩달콩 싸우고 화해하다가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들이 여러 겉옷을 입고 등장하지만 그 알맹이는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틀은 이미 장르적 관습처럼 드라마가 주는 견고한 재미의 형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로맨틱 코미디가 다 같은 건 아니다. 그 차이는 캐릭터에서 생긴다. 어떤 성격과 환경, 혹은 상황을 가진 남녀가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로맨틱 코미디의 결이 생긴다. '시크릿 가든'은 판타지적 요소를 덧붙였지만 캐릭터만 놓고 보면 결국 계층이 다른 두 남녀의 그 계층을 넘어서는 사랑이야기다. 즉 신데렐라 스토리가 그 밑바탕인 셈이다.

캐릭터를 중심으로 보면, 새롭게 시작한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캐릭터는 좀 남다른 편이다. 현기준은 물론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남성상, 즉 잘 생기고 매너도 좋고 능력도 있는 그런 남자지만, 그의 앞에 서게 되는 공아정이란 캐릭터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고시를 패스한 5급 공무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회적인 위치를 갖춘 성공한 인물인 공아정과 현기준이 만들어갈 로맨스는 일단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다른 궤도를 걸어가게 된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이 둘의 로맨스가 계층적인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거짓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도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아주 황당한 거짓말. 그런데 이 황당한 거짓말이 어느 순간 두 사람 모두에게 이득을 주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냥 내버려두자 그 관계(물론 거짓이지만) 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사랑이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사랑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런 거짓 결혼 설정이 만들어내는 가슴 뛰는 사랑이야기를 이미 목도한 적이 있다. 바로 '우리 결혼했어요'다. 가상이지만 "이미 결혼했다 치고" 시작하는 이 버라이어티한 이야기 속에서 가끔은 진짜 감정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결혼했다'는 관계 설정이 다른 행동을 하게 하고, 그 행동 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생겨나는 이 화학반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계층적인 만남이 갖는 신데렐라적 사랑 이야기를 벗어나, 두 남녀를 결혼이라는 틀로 묶어버림으로써 벌어지는 한바탕 좌충우돌을 유쾌하게 그려내는 드라마다. 하지만 이 코믹한 예능 프로그램 같은 설정의 드라마가 그저 가벼운 이야기에 그치는 건 아니다. 즉 여기에는 '거짓(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그 자체로 진실이 될 수 있다는 것(그것으로 실제 사랑의 감정이 생겨난다)을 에둘러 말해주기도 한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로맨틱 코미디의 남다르고 또 기대되는 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을 위한 멘토링

'위대한 탄생'(사진출처:MBC)

“위대한 탄생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를 사랑하는 분들이 유독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은 음악을 통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은미가 백청강을 심사한 후 한 발언이다. 짧은 발언이지만 이 속에는 이은미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잘 담겨져 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이은미는 이 발언을 통해 '위대한 탄생'이 드라마가 아니라 음악을 평가하는 오디션임을 강조했다.

사실 '위대한 탄생'이 그저 기획사 같은 곳에서 가수지망생들을 뽑는 오디션이라면 이 말은 틀린 게 없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은 그런 오디션이 아니라, 이 과정이 TV로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둘은 확연히 다르다. 즉 일반적인 오디션에서 후보자를 뽑는 당사자는 심사위원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형식상 후보자를 뽑는 당사자가 심사위원이 아닌 투표에 참여하는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은미의 이 발언은 (드라마를 사랑하는) 일반인들의 선택을 꼬집은 것이고, 자신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하고 있는 '음악을 통한 오디션' 심사가 정당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소신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은미의 생각과 그 소신 있는 발언이 대중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 속에서 그녀의 심사와 평가가 대중들의 투표에 영향을 주기 어렵고, 때론 정반대의 결과로만 흘러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은 말 그대로 심사하는 사람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라는 존재는 대중들의 인식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은 평가자이면서도 대중들의 가이드 역할을 하며 나아가서는 대중들의 감정이입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즉 심사위원의 독설은 대중들의 반감을 갖게 만들기도 하지만 공감 가는 독설은 대중들을 속 시원하게 한다. 이때 심사위원은 대리충족을 시켜주는 대변자 역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 역할이 늘 대중들과의 관계 속에 놓이기 때문에, 여기서 심사위원은 사실상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흘러가는 방향(어쩌면 스토리)을 읽어야 한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간파해야 한다. 이것은 대중들의 생각에 휘둘린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들의 생각을 알아야 거기에 맞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것으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비교점으로 생각해야할 인물이 '슈퍼스타K'에서 독설가였지만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심사위원 이승철이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은미와는 사뭇 다른 결과를 만든 걸까. 이승철은 우선 '슈퍼스타K'의 흐름 전체와 거기서 심사위원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즉 초반 경쟁자들의 수가 많을 때는 이를 걸러내기 위해 거침없는 독설을 내뿜었다. 지적도 발성문제에서부터 음정문제까지 구체적이었다. 때론 지나치다 싶은 독설 때문에 그걸 바라보는 대중들과의 대립적인 관계가 형성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10여 명으로 경쟁자들이 좁혀졌을 때 이승철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구체적인 지적은 피했고(사실 이 단계에 올라온 경쟁자들에게 이런 지적은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토록 까칠하던 그가 칭찬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무대에 선 경쟁자들에게 권위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변화 지점에서 대중들은 심지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얻기도 했다. 이것은 단순히 대중들을 의식한 인기발언이 아니다. 이승철은 이 지점부터 심사위원의 역할은 심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거기 무대 위에 선 경쟁자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보통 기획사에서 치러지는 오디션과 TV로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른 점 중에 또 한 가지는 그 심사위원 역시 재평가된다는 점이다. 즉 이승철은 '슈퍼스타K'를 통해 가수로서의 자신의 권위를 다시 세웠고 대중들은 이를 수긍했다. 하지만 이은미의 경우는 어떤가. 사실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으로 서기 전까지 이은미는 우리들에게 '맨발의 디바'였다. 가창력 하면 떠오르는 인물. 오로지 노래 그 자체로 대중들을 쥐고 흔드는 카리스마. 그런 것이 이은미의 아우라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대한 탄생'을 거치면서 그녀는 어딘지 대중들과는 동떨어져 혼자 달려가는 독선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이은미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이은미는 지금 그 악역이 되어가고 있다. '위대한 탄생'이라는 드라마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치고는 가혹한 일이다.


 

'UV신드롬비긴즈'(사진출처:Mnet)

한국전 당시 전쟁에 지친 병사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군중들이 불렀던 노래 '지펜투텐탁(훗날 '집행유애'라는 곡으로 불린)'을 부른 장본인, 또 1985년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 마이클 잭슨을 위시한  50명의 가수들이 'We are the world'를 부를 때 코러스를 했던 인물, 또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파이널을 장식했던 세계 모든 가수들의 우상이자 엘비스 프레슬리와 합동공연을 했던 신화적인 존재. 바로 UV라는 인물에 붙는 스토리들이다.

이 스토리를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는 'UV 신드롬 비긴즈'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위에 나열된 모든 사건들의 연대가 UV라는 두 인물에 의해 행해졌을 가능성은 없다. 즉 이 다큐는 페이크다. 그래서 'UV 신드롬 비긴즈'는 첫 회에 스스로 한국전에 참전해 UV를 목격했다는 제임스 베이커라는 인물을 인터뷰를 담으면서 '이 프로그램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오'라는 자막을 '아주 짧게' 삽입해 넣는다. 진지한 내레이션이 잠깐 끊기고 다시 이어질 때 제임스 베이커가 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어딘지 이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가짜임을 스스로 밝히면서도 이 프로그램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해댄다. 여기에 UV 당사자들인 유세윤과 뮤지의 기상천외하고 뻔뻔한 행각(?)들이 계속 공개된다. 빅뱅을 앞에 놓고 "그걸 노래라고 하느냐"고 버럭 대고, 박진영이 사실은 외국인이며 UV 밑에서 청소를 하다가 발탁됐다고 하는 식이다. UV 당사자들은 모든 행동과 진술이 진지하지만, 누가 봐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는 이들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일종의 가상의 놀이지만, 그렇다고 그 결과가 가상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즉 UV는 이 페이크 다큐를 하면서 만든 노래, '집행유애'나 '쿨하지 못해 미안해', 또 이번에 들고 나온 '이태원 프리덤'을 모두 음원차트에 올렸다. 유세윤은 정식가수도 아니고 또 트레이닝을 받지도 않았지만 이 페이크 다큐에서 전설적인 가수라고 주장된다. 즉 누구나 거짓말을 알고 있지만 진짜 결과가 나온 이유는 뭘까.

이것이 재미있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그 놀이 속에서는 어떤 스토리도 허용된다. 그리고 그 놀이가 정말 재미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가짜라도 대중들은 주머니를 연다. 'UV 신드롬 비긴즈'는 스토리 시대에 접어든 작금의 상황을 너무나 잘 간파한 프로그램이다. 스토리가 재미있으면 진위는 중요하지 않다(물론 누군가에게 해를 준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심지어 그것은 돈을 벌어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시대가 가진 이러한 스토리 경향이 실제 상황에서 벌어진다면 어떨까. 우리는 일찍이 타블로 사태에서 그 결과를 목도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으로 여겨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던 타블로는 나중에는 그 가상의 스토리가 엄청나게 커져 도무지 대응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사실(팩트)들을 뒤늦게 내놓았지만 이 스토리는 이 사실들마저 소재로 삼아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괴물이 되었다.

그 타블로 사태에서 목도한 것들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서태지-이지아 얘기다. '서태지와 이지아 사이에 두 딸이 있다'는 얘기에서 '심은경이 서태지의 딸'이라는 스토리로 이어졌고, '서태지의 여자관계 때문에 이지아와 헤어졌다'는 스토리가 나오자 '그 여자가 구혜선'이라는 스토리가 나왔다. 그러자 또 '구혜선이 아니라 한예슬이다'로 이어졌다. 항간에는 '이지아가 서태지와의 관계를 소설로 써서 연재해 왔다'는 스토리까지 나왔다. 이 정도 되면 'UV 신드롬 비긴즈'를 뺨치는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스토리는 'UV 신드롬 비긴즈' 같은 놀이가 아니다. 그걸 만들고 유포하는 이들에게는 놀이처럼 여겨지겠지만 당사자들(괜스레 이름이 올려진 이들에겐 더더욱)에게는 곤혹스러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타블로 사태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이렇게 끊임없이 스토리가 커져서 나중에는 통제할 수 없을 만큼의 괴물이 되게 되는 것은 그 자체를 별거 아니라고 방치하는 순간부터다. 상황은 터졌지만, 당사자인 서태지는 묵묵부답이다. 물론 이처럼 사생활을 밝히지 않는 것은 자신의 선택일 뿐 잘못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 대해 공인의 잣대를 섣불리 들이대는 것은 난센스다. 그 누구도 자신이 밝히길 원치 않는 사생활을 드러내야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말의 도의적인 책임은 남을 수 있다. 자신의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UV 신드롬 비긴즈'와 서태지 루머를 나란히 놓고 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발견된다. 거기에는 한없이 감추어지던 신비주의 시대에서, 끊임없이 신비가 파헤쳐지고 그것이 스토리로 양산되는 시대로의 변화가 있다. UV는 계속해서 자신들이 신비적인 존재라고 떠들고 다니지만, 바로 그럼으로써 그들이 보통의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UV 신드롬 비긴즈'는 키치적인 방식으로 끊임없이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오히려 진위와 상관없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 아이러니한 지점에서 우리는 이 페이크 다큐의 재미를 즐길 수 있다. 즉 'UV 신드롬 비긴즈'는 지금 이 스토리의 시대를 한껏 즐기고 있는 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태지-이지아 스캔들과 함께 당사자들이 침묵함으로써 오히려 양산되는 거짓 스토리들을 우리는 즐길 수 없다.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이 스토리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과잉 정보 시대에 맥락이 잡히지 않아 부재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질서를 잡아주는 힘으로 스토리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때론 아예 부재한 것을 진짜처럼 왜곡시키는 것도 스토리의 파괴력이다. 즉 모든 것이(심지어는 없는 것까지) 스토리로 덧씌워지는 것은 어쩌면 서태지나 이지아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피할 수 없다면 정면돌파 하거나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물론 UV처럼 누군가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 방식(피해는커녕 유쾌함을 주지 않는가)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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