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는 웃기면서도 슬프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웃음을 주어야 하는 코너에서 개그맨 김경민이 눈물을 흘린다. 항상 요상한 동물모양의 옷차림을 하고는 뒤뚱뒤뚱 걸어가는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던 그. 대중들에 잊혀져 생활고에 힘겹게 살면서도 웃고 있어야 그 생계를 이을 수 있었던 그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를 보던 다른 개그맨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나이도 잊고 후배개그맨들에게 면박을 받아가며 웃음을 주어야 생계를 해나갈 수 있다는 그 개그맨의 현실은 단지 김경민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혹 그걸 보다가 함께 울컥한 시청자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 개그맨의 눈물에서 무한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네 눈물과 땀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민들 삶이 갈수록 힘들어져 웃음을 찾기가 힘들어져서일까. 아니면 개그맨이란 직업 자체가 우리네 서민의 삶을 고스란히 대변하기 때문일까. 개그맨들은 언제부터인가부터 재치 있는 입만 갖고는 먹고살기 힘든 무한경쟁 속에 떨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주었던 안정적인 프로그램에서 쫓겨나 무대 위에 올려지거나 거리로 나서고,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한 도전을 해야하며, 야생에서 노숙에 가까운 밤을 지새야 한다. 때론 묘기 같은 몸 동작을 하거나 자신의 몸을 연실 때려야 하며, 땅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먹어야 하고 사람들 앞에서 몸이든 사생활이든 발가벗겨져야 한다.

짜놓고 하는 개그에 더 이상 웃음을 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개그맨들은 진짜 자신의 모습을 끄집어내려는 리얼리티쇼라는 틀과 마주해야 한다. 리얼리티쇼는 수많은 카메라를 동원해 집요하게 개그맨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숨기려는 얼굴 이면의 맨 얼굴을 잡아내려 한다. 굴욕을 당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짓다가 한순간 무너지는 얼굴을 보였을 때,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진지하게 무언가를 해나가겠다는 결연한 얼굴을 보여주다 그것이 순식간에 깨졌을 때 웃음은 터져 나온다. 리얼리티쇼의 카메라는 그걸 잘 알고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가 되면서 개그맨은 일상에서 승부해야 한다. 실제 개그맨이라는 선후배 관계가 확실한 직업 속에서 일상적인 라인의 삶은 이제 무대 위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물론 거기에는 설정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 설정은 실제 삶을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 분명하다. ‘라인업’이 생계형 리얼 버라이어티를 내세우는 것은 그것이 여타의 리얼리티쇼와 다르게 실제 일상과 살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김경민은 바로 이 ‘라인업’이 보여주려는 개그의 진짜 맨 얼굴인 셈이다.

‘라인업’이 저 독한 개그맨의 삶 자체를 리얼리티쇼로 끌어들였다면, ‘1박2일’은 문명에 적응하고 있는 개그맨들을 야생에 풀어놓고 그 날 것의 모습을 가감 없이 끌어낸다. 혹한기에 야외에서 밥을 지어먹고 노숙에 가까운 잠을 자야 하는 그들이 그 살벌한 하룻밤을 놓고 단순한 게임으로 그 대상자를 선정하는 모습은 그 장난 같은 게임이 가져올 괴로운 결과에 웃음 짓게 만든다. 그 행동들은 하룻밤의 야생체험이라는 경쾌함을 갖고 있지만 그 계속되는 여정들을 놓고 보면 참 개그맨이라는 직업의 삶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리얼리티쇼가 가진 독한 개그의 세계는 한 때 무한경쟁의 틀 속에서 독하다 여겨졌던 무대개그 프로그램마저 더 독하게 만든다. 몇 초의 대사를 치기 위해 일주일간을 준비했다가 그마저 편집으로 날아가는 그네들의 상황은 그 자체가 생계의 절박함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무대라는 장치로 인해 가려진다. 무대 뒤편에서 어느 날 개그맨들이 소주 몇 병을 놓고 신세한탄을 하다가 누군가 불쑥 던진 한 마디에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만 간간이 들려올 뿐이다.

리얼리티쇼는 무대를 거둬냄으로써 그 일상의 울음마저 웃음으로 전이시킨다. 개그맨 김대희가 실제 삭발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되는 그 순간에 웃음이 터지면서도 마음이 뭉클한 것은 그 온몸으로 던지는 개그가 그 무대에서만 머물지 않고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 실체는 바로 생계다. 웃으면서 웃음을 주려는 그 얼굴의 이면에는 웃겨야 살 수 있다는 생계의 현실에서 흘려야 하는 그들의 눈물과 땀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눈물과 땀마저 고스란히 보여주는 리얼리티쇼 전성시대에 웃음은 때론 잔인하다. 생계를 건드렸을 때 웃음은 터지지만, 그래서 그 웃음은 때론 슬프다.

드라마를 이끄는 힘, 입체적 인물

MBC 사극 ‘이산’에서 위기에 빠진 이산(이서진)에게 홍국영(한상진)이 절실한 것처럼, 요즘 드라마들은 홍국영 같은 입체적 인물을 필요로 한다.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극적 상황 속에서 흔히 빠지기 쉬운 선악대결구도는 요즘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끌지 못한다. 현실이 더 이상 권선징악으로 설명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감 가는 캐릭터는 오히려 선과 악으로 단순히 나누어지는 전형적 인물이 아닌 양측을 포괄하거나 그 선을 왔다갔다하는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인물이 되었다. 중요해진 것은 선악이 아니라 인물을 움직이는 욕망, 혹은 인물의 목표이다.

홍국영에 쏟아지는 관심, 왜?
그런 점에서 홍국영에 쏟아지는 공감은 당연하다. ‘이산’이란 드라마는 오히려 선악구도가 너무나 명확한 드라마다. 이산을 중심으로 한 성송연(한지민), 박대수(이종수), 남사초(맹상훈) 같은 인물군들은 모두 선이며, 이산의 반대편에 선 정순왕후(김여진), 화완옹주(성현아) 같은 인물군들은 악이다. 모두 선악이 분명한 인물들이다. 여기서 악은 강하고 선은 약하기에 드라마가 생긴다. 하지만 이런 단순구도로는 이병훈 PD 특유의 미션 해결 구조의 드라마가 쉬 지루해질 수 있다. 그것은 결과가 뻔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해지는 인물이 선악으로 구분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이산’의 초반부에 이런 역할을 해온 인물은 영조(이순재)다. 그는 이산의 할아버지면서도 이산의 강력한 시험으로 자리잡았고, 그 힘은 대결구도의 단순함을 무마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영조가 이산의 손을 들어버렸고, 그의 시험이 좀더 강력한 군주의 탄생을 위한 조련과정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 즈음에서 홍국영이란 인물의 등장은 적확하면서도 효과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홍국영은 캐릭터로 보면 이산의 착한 인물들(?)을 대신해 손에 피를 묻히는 인물이다. 그는 처음부터 대의만을 내세워 이산 밑으로 오지 않았다. 정후겸(조연우)과 이산의 양 갈래 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했던 인물이다. 그만큼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인 홍국영은 이산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도맡아 한다. 정치적인 대의를 중시하는 군주 이산의 현실적인 측면을 보강해준 것이다. 홍국영은 지금의 입장이 이산의 든든한 두뇌 역할이기 때문에 선의 한 측면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정후겸과 같은 부류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냉철하게 자신의 욕망을 추구해나가는 인물이지만 드라마는 단순히 홍국영을 야심가로서의 한 측면만을 조명하지 않는다. 때론 ‘꼴통’이니 ‘개소리’같은 리얼리티쇼를 방불케 하는 거친 현실감이 넘치는 대사들을 쏟아내면서 서민적이고 서글서글한 모습까지 갖게된다. 홍국영의 출연은 대의 중심의 단순한 대결구도를 벗어나, 욕망 중심의 대결구도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사실상 입장만 다를 뿐, 똑같이 욕망을 추구하는 홍국영과 정후겸의 두뇌게임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드라마는 입체적 인물의 힘으로 굴러간다
이러한 드라마 속 입체적 인물들의 역할은 단지 ‘이산’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왕과 나’의 조치겸(전광렬), ‘태왕사신기’의 서기하(문소리)는 물론이고 현대극 속에서 ‘얼렁뚱땅 흥신소’의 백민철(박희순)까지 그 사례가 될 것이다. 먼저 ‘왕과 나’를 이끌어 가는 힘의 중심 축으로서 조치겸(전광렬)이 서 있는 이유는 그 복합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 때문이다. 조치겸은 ‘욕망 하는 내시’로서 희대의 역적처럼 보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군주와 백성 사이에 그 어떠한 사특한 무리들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대의를 가진 충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태왕사신기’의 서기하는 사랑하는 사람인 담덕(배용준)과 동생 수지니(이지아)와 맞서게되는 운명을 가진 복잡한 캐릭터다. 이 역시 담덕과 사신으로 대변되는 선과 연씨 집안으로 대변되는 악의 단순구도를 깨는데 일조한다. 시청자들은 서기하의 행동들을 이해하면서도 분노하게 되는 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한편 ‘얼렁뚱땅 흥신소’의 백민철은 조폭이면서도 순간 희경(예지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인물이다. ‘치매를 갖고 있는 어머니’ 같은 개인적인 사연이 많은 그는 흥신소의 인물들과 부딪치면서도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드라마는 실로 주인공의 힘만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조역들이 있어 주연이 힘을 발하는 것이며, 그 조역들의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복합적일 때 드라마는 더 깊은 재미를 주게 된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들 입체적 인물을 연기하게 되는 연기자들은 베테랑일 경우가 많다. 그만큼 연기하기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왕과 나’의 전광렬이 그렇고 서기하 역의 문소리가 그렇다. 문소리는 캐스팅 논란이 일었지만 사실상 이런 어려운 심리묘사를 할 수 있는 연기자로 그녀 만한 인물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최근 ‘세븐데이즈’로 영화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박희순은 바로 이러한 입체적인 캐릭터를 타고난 연기자로 보인다.

드라마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이제 한번 보면 그 행동을 다 짐작할 수 있는 단순하고 전형적인 인물이 드라마에 설 자리는 좁아졌다. 대신 능동적인 욕망이 꿈틀대면서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입체적 인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가고 있다. 요즘 드라마는 때론 아이 같은 천진함을 가졌지만, 때론 욕망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전략가의 모습을 보이는 홍국영처럼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인물을 원한다.

SBS 드라마, 예능, 뉴스의 문제점과 해법

SBS의 최근 시청률 성적표(11월5일-11일 AGB 닐슨 집계)를 보면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전체 시청률 상위 20위권에 들어있는 SBS 프로그램은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18.7%)’가 11위에 랭크된 것을 빼고는 전부 드라마 일색이라는 점이다. ‘황금신부(23.5%, 5위)’, ‘왕과 나(20.2%, 8위)’, ‘조강지처클럽(14.1%, 14위)’, ‘아침연속극 미워도 좋아(13.6%, 18위)’가 그 드라마들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드라마가 대부분 상위 랭킹에 들어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각 방송사별로 몇몇 예능프로그램이 자리하고 있는 점을 보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MBC는 ‘무한도전(21.9%, 7위)’, ‘황금어장(15.3%, 12위)’의 예능과 ‘태왕사신기(29.5%, 3위)’, ‘이산(22.5%, 6위)’같은 드라마가 고루 포진해있고, KBS는 미니시리즈가 어렵다고는 하나 일일연속극의 절대 강자 ‘미우나 고우나(32.5%, 1위), 대하드라마 ‘대조영(32.2%, 2위), 그리고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26.9% 4위)’가 굳건하고, 전통적으로 강한 ‘KBS 9시 뉴스( 19.1% 10위)’가 있으며 여기에 다채로운 예능프로그램들(비타민, 해피투게더, 우리말 겨루기, 퀴즈대한민국, 개그콘서트)이 20위 권에 들어있다.

하지만 기대주였던 ‘로비스트’와 ‘왕과 나’의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현재 드라마마저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는 상황, SBS는 인정하기 어려운 뼈아픈 일이지만 총체적인 난국을 겪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개국부터 새로운 도전정신과 시도로 독특한 컨셉의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는 저력을 보였던 SBS. 능력은 있으되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SBS의 상황은 저 ‘왕과 나’의 김처선이 갖고 태어났다는 삼능삼무(三能三無)의 운명을 떠올리게 만든다. 도대체 무엇이 SBS를 삼능삼무의 상황으로 몰고 왔을까.

일능일무(一能一無) - 기획은 창대하되 완성도가 떨어지는 드라마
SBS의 드라마 기획은 방송3사를 통틀어 가장 도전적이고 도발적이다. 그것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기만 해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라이따이한을 등장시켜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제대로 포착한 ‘황금신부’, 왕조중심의 사극에서 탈피해 내시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취지의 ‘왕과 나’, 대작드라마로서 로비스트라는 독특한 직업세계를 시각적으로 그려낸 ‘로비스트’ 등은 그 기획만 가지고 본다면 대단히 야심찬 시도라 할만하다.

이러한 독특한 기획의 성공은 사실상 SBS 드라마들의 최대 장점이다. 전문직 장르 드라마와 우리네 멜로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봉합시킨 ‘외과의사 봉달희’는 물론이고, 대부업(쩐의 전쟁)이나 교육문제(강남엄마 따라잡기) 같은 주로 사회적인 문제나 이슈들을 소재로 끌어들이면서 사회적 관심까지 유도하려 했던 사회극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기획의 장점은 실제 기획대로 드라마가 구현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단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왕과 나’가 가진 기획 포인트인 내시의 시각은 사극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로비스트’는 과도한 볼거리에 스토리가 매몰 당한 형국이 됐다. 그나마 ‘황금신부’가 선전하고 있지만 이것은 애초 기획의도와는 상관없이 전통적인 드라마들의 코드들(출생의 비밀 같은)을 잘 엮어낸 결과이다. 역대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연애시대’가 SBS의 드라마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 SBS 드라마는 최근의 시청률 하락을 통해 이제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기획의 창대함보다는 내실 있는 완성도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능이무(二能二無) - 시작은 했으나 조기에 문닫는 예능 프로그램
한 때 SBS는 예능 프로그램의 강자로 군림했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들이 ‘야심만만’, ‘진실게임’, ‘X맨’등이다. 하지만 현재를 보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최강자로 군림했던 ‘X맨’이 종영하고 나서 그 멤버들은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 속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예능프로그램의 최강자로 자리잡은 MBC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무릎팍도사’와 KBS‘1박2일’에서 활약하고 있는 강호동은 모두 ‘X맨’이 배출한 스타들이었다. 리얼리티쇼가 대세가 되고 있는 현재의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캐릭터의 형성에 ‘X맨’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현재의 SBS 예능프로그램의 난항은 그 후속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한 자책의 결과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 자책감의 결과일까. 최근 S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두 방향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이다. 최근 들어 ‘SBS의 예능 프로그램은 모두 파일럿’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프로그램들이 몇 달(심지어는 몇 회)을 넘기지 못하고 폐지되고 있다. ‘X맨’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안간힘은 저 ‘슈퍼바이킹’ 같은 컨셉트 부재의 프로그램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최근 ‘하자고’, ‘작렬 정신통일’, ‘옛날 TV’, ‘대결 8대1’, ‘스타킹’등등의 예능 프로그램의 조기종영(?)은 이 조급증이 극에 달했다는 걸 보여준다.

반면 또 하나의 압박은 ‘야심만만’, ‘진실게임’같은 장기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이 좀체 현재에 맞는 옷을 입지 못하고 과거의 틀에 매여 있다는 점이다. 연예인들의 홍보 프로그램논란이 나왔을 때부터 ‘야심만만’의 문제는 지적되었다 보아야 한다. 하지만 ‘야심만만’은 과거나 지금이나 연예인들이 등장해 신변잡기를 논하고, 홍보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진실게임’의 경우는 그 구태의연한 포맷에 더해서 심각한 소재부족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같은 제목이라도 계속해서 발빠르게 새로운 포맷을 시도하는 타 방송사(‘지피지기’같은)와는 너무 다른 행보라 할 수 있다.

SBS의 예능프로그램들은 지금 예능의 지존이 된 ‘무한도전’이 걸어온 길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무한도전’은 초반 시청률 4%에서 시작해 현재 25%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자리잡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 결과가 ‘무한도전’이라는 점이다. 또한 중요한 건 그 시간 내내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은 ‘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 같은 다양한 포맷실험을 통해 현재 위치에 서게 되었다. 쏟아져 나오는 예능프로그램 속에서 필수적인 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이지만, 또한 그것이 정착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변화가 필요할 때 변화를 만들어주는 끝없는 노력이 없는 한 예능 프로그램의 성공은 점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삼능삼무(三能三無) - 도전적 뉴스 시간대, 참신함이 없는 뉴스
200여명에서 많게는 300명에 이르는 보도국이 만들어내는 뉴스의 시청률이 10% 이하에 머물고 있다는 점은 지금 방송사들의 최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뉴스를 이대로 존속시켜야 하는가 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뉴스는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자체적으로 소화하느냐 아니면 외주로 만드느냐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운 방송사는 KBS 뿐이다. 공영방송이라는 이미지 탓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대에 뉴스를 관성적으로 틀어놓는 시청자들의 패턴 속에서 KBS는 확실히 타 방송의 뉴스보다 우위를 갖는 장점이 있다.

뉴스의 존폐를 운운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 생각되지만, 관심을 끌지 못하는 뉴스가 더 이상 뉴스의 기능을 하고 있는가 하는 고민은 해야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녁 8시라는 도전적인 뉴스 시간대로 시작한 SBS가 왜 현재는 최하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여러모로 9시라는 뉴스 시간대보다 1시간 빠르다는 점은 엄청난 이점을 갖는다. 선 보도라는 장점 이외에도 8시라는 다른 시간대는 뉴스의 좀더 자유로운 포맷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8시 뉴스는 기존 9시 뉴스의 틀을 반복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오히려 ‘MBC뉴스데스크’는, 좀더 시각적인 뉴스 포맷이나 주말 뉴스판의 여성 앵커 기용 등의 도전을 하고 있는 형국. 현재 고작 20여명이 만드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SBS 8시 뉴스’ 시청률이 7, 8%에 머물고 있는 점을 잘 새겨볼 필요가 있다. SBS에 의해 초기 도전적으로 시도되었던 VJ(비디오 저널리스트)시스템은 ‘순간포착’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뉴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8시 뉴스는 그 시간대가 말해주는 초심으로 돌아가 거기에 맞는 도전적인 참신함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가장 늦게 공중파에 합류한 SBS는 도전적인 자세로 가장 안정적인 삼각경쟁구도를 만들어낸 방송사다. 따라서 충분히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쓰여지지 않으면 자칫 삼능삼무의 무위에 그칠 수도 있다. 위기는 기회라는 점에서 지금의 위기를 제대로 직시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발판이 될 것이다. 부디 삼능삼무(三能三無)가 삼능삼능(三能三能)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모성과 스릴러를 결합시킨  ‘세븐데이즈’

지연(김윤진)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린다. 승률 99%의 잘 나가는 변호사, 하지만 딸에게는 빵점 짜리 엄마인 그녀는 딸에게 1등을 선사하기 위해 운동회 달리기에서 전력질주를 한다. 그리고 1등으로 골인하는 순간부터, 그녀는 갑작스레 유괴된 딸을 찾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지연을 따라서 달리는 카메라도 숨가쁘다. 인물 동선의 중간이 생략된 채 계속해서 점프하는 컷들과 멀리서 엿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망원렌즈로 당겨진 컷들의 연속은 관객들의 숨까지 턱에 차게 만든다.

지연이 변호사이며 유괴범의 목적이 희대의 강간살인범의 무죄방면이란 점에서 영화는 법정 안에 인물들을 가둬놓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판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연은 스스로 수사를 해가며 이 살인범이 사실은 무고하게 잡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딸이 살 수 있기 때문. 이 수사과정이 좀더 물리적이고 다이나믹하게 진행되는 것은 지연의 오랜 친구인 비리경찰 성열(박희순)이 합세하기 때문이다. 성열은 과학수사를 비웃으며 우리네 탐문수사의 정수를 보여주면서 몸으로 뛰는 영화 스타일에 일조한다.

문제는 하지만 이런 외적이고 물리적인 충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가 예리하게 느껴지는 것은 물리적 충돌 이면에 숨겨진 딸을 유괴 당한 지연의 내적 심리상태를 칼날처럼 세워놓기 때문이다. 딸을 구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강간살인범의 변론이 깊어질수록, 그녀는 진짜 이 사내가 살인범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로 빠져든다. 의뢰인을 위해 변론을 해야하는 변호사가 때론 진짜 범법자들을 두둔해야 하는 직업적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처럼.

잔인하게 살해된 여자의 어머니인 한숙희(김미숙)는 지연과 이렇게 맞서게 된다. 자신의 딸을 살해한 살인범의 사형을 원하는 모성과, 자신의 딸을 위해 그 살인범을 구해내야 하는 모성이 격돌하게 되는 것. 영화는 살인범의 몸통을 좇는 전형적인 수사물의 한 틀을 따르면서도 거기에 모성이라는 새로운 감정적 틀을 끼워 넣는다. 일주일 동안 지연의 주변을 샅샅이 훑고 다니는 카메라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바로 이 모성으로서의 지연의 긴박함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세븐데이즈’는 고답적인 국내 스릴러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해주는 영화다. 스토리가 우리네 정서에 닿는 가족이나 모성을 다루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스토리를 담는 틀로서 원신연 감독이 보여준 실험적인 스타일은 영화적 재미를 부가시켜주면서도 효과적이고 예술적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연기경연을 보는 듯한 연기자들의 호연이 압권이다. 역시 월드스타다운 면모를 보여준 김윤진은 물론이고, 그녀와 보조를 맞춘 박희순은 영화가 찾아낸 보물 중의 보물이라 할 것이다. 이 형사와 범법자 사이를 미묘하게 걸어가는 성열이란 비리경찰의 캐릭터는 박희순에 의해 완성되었다 보여진다. 또한 끝없는 연기변신을 보여주는 김미숙의 농익은 연기 또한 놓칠 수 없는 재미가 된다.

스토리와 연출과 연기가 아우러진 ‘세븐데이즈’는 그 제목처럼 한정된 시간 속에 딸을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하는 모성을 다룬다.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영화는 결국 그 모성 앞에서 그 어떤 것도 선행될 수 없다는 자연 혹은 야생의 법칙을 보여준다. 이 스릴러에서 어느 한 순간 갑자기 지연의 심정이 되어 울컥하는 마음이 생긴 것은, 어찌 보면 일주일이라는 틀 안에서 가족들을 위해 전장을 뛰어다니는 가장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영화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모성은, 아니 이 세상 부모의 마음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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