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예능, 뉴스의 문제점과 해법

SBS의 최근 시청률 성적표(11월5일-11일 AGB 닐슨 집계)를 보면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전체 시청률 상위 20위권에 들어있는 SBS 프로그램은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18.7%)’가 11위에 랭크된 것을 빼고는 전부 드라마 일색이라는 점이다. ‘황금신부(23.5%, 5위)’, ‘왕과 나(20.2%, 8위)’, ‘조강지처클럽(14.1%, 14위)’, ‘아침연속극 미워도 좋아(13.6%, 18위)’가 그 드라마들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드라마가 대부분 상위 랭킹에 들어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각 방송사별로 몇몇 예능프로그램이 자리하고 있는 점을 보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MBC는 ‘무한도전(21.9%, 7위)’, ‘황금어장(15.3%, 12위)’의 예능과 ‘태왕사신기(29.5%, 3위)’, ‘이산(22.5%, 6위)’같은 드라마가 고루 포진해있고, KBS는 미니시리즈가 어렵다고는 하나 일일연속극의 절대 강자 ‘미우나 고우나(32.5%, 1위), 대하드라마 ‘대조영(32.2%, 2위), 그리고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26.9% 4위)’가 굳건하고, 전통적으로 강한 ‘KBS 9시 뉴스( 19.1% 10위)’가 있으며 여기에 다채로운 예능프로그램들(비타민, 해피투게더, 우리말 겨루기, 퀴즈대한민국, 개그콘서트)이 20위 권에 들어있다.

하지만 기대주였던 ‘로비스트’와 ‘왕과 나’의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현재 드라마마저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는 상황, SBS는 인정하기 어려운 뼈아픈 일이지만 총체적인 난국을 겪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개국부터 새로운 도전정신과 시도로 독특한 컨셉의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는 저력을 보였던 SBS. 능력은 있으되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SBS의 상황은 저 ‘왕과 나’의 김처선이 갖고 태어났다는 삼능삼무(三能三無)의 운명을 떠올리게 만든다. 도대체 무엇이 SBS를 삼능삼무의 상황으로 몰고 왔을까.

일능일무(一能一無) - 기획은 창대하되 완성도가 떨어지는 드라마
SBS의 드라마 기획은 방송3사를 통틀어 가장 도전적이고 도발적이다. 그것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기만 해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라이따이한을 등장시켜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제대로 포착한 ‘황금신부’, 왕조중심의 사극에서 탈피해 내시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취지의 ‘왕과 나’, 대작드라마로서 로비스트라는 독특한 직업세계를 시각적으로 그려낸 ‘로비스트’ 등은 그 기획만 가지고 본다면 대단히 야심찬 시도라 할만하다.

이러한 독특한 기획의 성공은 사실상 SBS 드라마들의 최대 장점이다. 전문직 장르 드라마와 우리네 멜로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봉합시킨 ‘외과의사 봉달희’는 물론이고, 대부업(쩐의 전쟁)이나 교육문제(강남엄마 따라잡기) 같은 주로 사회적인 문제나 이슈들을 소재로 끌어들이면서 사회적 관심까지 유도하려 했던 사회극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기획의 장점은 실제 기획대로 드라마가 구현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단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왕과 나’가 가진 기획 포인트인 내시의 시각은 사극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로비스트’는 과도한 볼거리에 스토리가 매몰 당한 형국이 됐다. 그나마 ‘황금신부’가 선전하고 있지만 이것은 애초 기획의도와는 상관없이 전통적인 드라마들의 코드들(출생의 비밀 같은)을 잘 엮어낸 결과이다. 역대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연애시대’가 SBS의 드라마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 SBS 드라마는 최근의 시청률 하락을 통해 이제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기획의 창대함보다는 내실 있는 완성도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능이무(二能二無) - 시작은 했으나 조기에 문닫는 예능 프로그램
한 때 SBS는 예능 프로그램의 강자로 군림했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들이 ‘야심만만’, ‘진실게임’, ‘X맨’등이다. 하지만 현재를 보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최강자로 군림했던 ‘X맨’이 종영하고 나서 그 멤버들은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 속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예능프로그램의 최강자로 자리잡은 MBC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무릎팍도사’와 KBS‘1박2일’에서 활약하고 있는 강호동은 모두 ‘X맨’이 배출한 스타들이었다. 리얼리티쇼가 대세가 되고 있는 현재의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캐릭터의 형성에 ‘X맨’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현재의 SBS 예능프로그램의 난항은 그 후속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한 자책의 결과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 자책감의 결과일까. 최근 S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두 방향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이다. 최근 들어 ‘SBS의 예능 프로그램은 모두 파일럿’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프로그램들이 몇 달(심지어는 몇 회)을 넘기지 못하고 폐지되고 있다. ‘X맨’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안간힘은 저 ‘슈퍼바이킹’ 같은 컨셉트 부재의 프로그램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최근 ‘하자고’, ‘작렬 정신통일’, ‘옛날 TV’, ‘대결 8대1’, ‘스타킹’등등의 예능 프로그램의 조기종영(?)은 이 조급증이 극에 달했다는 걸 보여준다.

반면 또 하나의 압박은 ‘야심만만’, ‘진실게임’같은 장기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이 좀체 현재에 맞는 옷을 입지 못하고 과거의 틀에 매여 있다는 점이다. 연예인들의 홍보 프로그램논란이 나왔을 때부터 ‘야심만만’의 문제는 지적되었다 보아야 한다. 하지만 ‘야심만만’은 과거나 지금이나 연예인들이 등장해 신변잡기를 논하고, 홍보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진실게임’의 경우는 그 구태의연한 포맷에 더해서 심각한 소재부족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같은 제목이라도 계속해서 발빠르게 새로운 포맷을 시도하는 타 방송사(‘지피지기’같은)와는 너무 다른 행보라 할 수 있다.

SBS의 예능프로그램들은 지금 예능의 지존이 된 ‘무한도전’이 걸어온 길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무한도전’은 초반 시청률 4%에서 시작해 현재 25%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자리잡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 결과가 ‘무한도전’이라는 점이다. 또한 중요한 건 그 시간 내내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은 ‘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 같은 다양한 포맷실험을 통해 현재 위치에 서게 되었다. 쏟아져 나오는 예능프로그램 속에서 필수적인 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이지만, 또한 그것이 정착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변화가 필요할 때 변화를 만들어주는 끝없는 노력이 없는 한 예능 프로그램의 성공은 점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삼능삼무(三能三無) - 도전적 뉴스 시간대, 참신함이 없는 뉴스
200여명에서 많게는 300명에 이르는 보도국이 만들어내는 뉴스의 시청률이 10% 이하에 머물고 있다는 점은 지금 방송사들의 최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뉴스를 이대로 존속시켜야 하는가 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뉴스는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자체적으로 소화하느냐 아니면 외주로 만드느냐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운 방송사는 KBS 뿐이다. 공영방송이라는 이미지 탓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대에 뉴스를 관성적으로 틀어놓는 시청자들의 패턴 속에서 KBS는 확실히 타 방송의 뉴스보다 우위를 갖는 장점이 있다.

뉴스의 존폐를 운운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 생각되지만, 관심을 끌지 못하는 뉴스가 더 이상 뉴스의 기능을 하고 있는가 하는 고민은 해야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녁 8시라는 도전적인 뉴스 시간대로 시작한 SBS가 왜 현재는 최하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여러모로 9시라는 뉴스 시간대보다 1시간 빠르다는 점은 엄청난 이점을 갖는다. 선 보도라는 장점 이외에도 8시라는 다른 시간대는 뉴스의 좀더 자유로운 포맷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8시 뉴스는 기존 9시 뉴스의 틀을 반복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오히려 ‘MBC뉴스데스크’는, 좀더 시각적인 뉴스 포맷이나 주말 뉴스판의 여성 앵커 기용 등의 도전을 하고 있는 형국. 현재 고작 20여명이 만드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SBS 8시 뉴스’ 시청률이 7, 8%에 머물고 있는 점을 잘 새겨볼 필요가 있다. SBS에 의해 초기 도전적으로 시도되었던 VJ(비디오 저널리스트)시스템은 ‘순간포착’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뉴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8시 뉴스는 그 시간대가 말해주는 초심으로 돌아가 거기에 맞는 도전적인 참신함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가장 늦게 공중파에 합류한 SBS는 도전적인 자세로 가장 안정적인 삼각경쟁구도를 만들어낸 방송사다. 따라서 충분히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쓰여지지 않으면 자칫 삼능삼무의 무위에 그칠 수도 있다. 위기는 기회라는 점에서 지금의 위기를 제대로 직시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발판이 될 것이다. 부디 삼능삼무(三能三無)가 삼능삼능(三能三能)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모성과 스릴러를 결합시킨  ‘세븐데이즈’

지연(김윤진)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린다. 승률 99%의 잘 나가는 변호사, 하지만 딸에게는 빵점 짜리 엄마인 그녀는 딸에게 1등을 선사하기 위해 운동회 달리기에서 전력질주를 한다. 그리고 1등으로 골인하는 순간부터, 그녀는 갑작스레 유괴된 딸을 찾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지연을 따라서 달리는 카메라도 숨가쁘다. 인물 동선의 중간이 생략된 채 계속해서 점프하는 컷들과 멀리서 엿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망원렌즈로 당겨진 컷들의 연속은 관객들의 숨까지 턱에 차게 만든다.

지연이 변호사이며 유괴범의 목적이 희대의 강간살인범의 무죄방면이란 점에서 영화는 법정 안에 인물들을 가둬놓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판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연은 스스로 수사를 해가며 이 살인범이 사실은 무고하게 잡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딸이 살 수 있기 때문. 이 수사과정이 좀더 물리적이고 다이나믹하게 진행되는 것은 지연의 오랜 친구인 비리경찰 성열(박희순)이 합세하기 때문이다. 성열은 과학수사를 비웃으며 우리네 탐문수사의 정수를 보여주면서 몸으로 뛰는 영화 스타일에 일조한다.

문제는 하지만 이런 외적이고 물리적인 충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가 예리하게 느껴지는 것은 물리적 충돌 이면에 숨겨진 딸을 유괴 당한 지연의 내적 심리상태를 칼날처럼 세워놓기 때문이다. 딸을 구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강간살인범의 변론이 깊어질수록, 그녀는 진짜 이 사내가 살인범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로 빠져든다. 의뢰인을 위해 변론을 해야하는 변호사가 때론 진짜 범법자들을 두둔해야 하는 직업적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처럼.

잔인하게 살해된 여자의 어머니인 한숙희(김미숙)는 지연과 이렇게 맞서게 된다. 자신의 딸을 살해한 살인범의 사형을 원하는 모성과, 자신의 딸을 위해 그 살인범을 구해내야 하는 모성이 격돌하게 되는 것. 영화는 살인범의 몸통을 좇는 전형적인 수사물의 한 틀을 따르면서도 거기에 모성이라는 새로운 감정적 틀을 끼워 넣는다. 일주일 동안 지연의 주변을 샅샅이 훑고 다니는 카메라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바로 이 모성으로서의 지연의 긴박함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세븐데이즈’는 고답적인 국내 스릴러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해주는 영화다. 스토리가 우리네 정서에 닿는 가족이나 모성을 다루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스토리를 담는 틀로서 원신연 감독이 보여준 실험적인 스타일은 영화적 재미를 부가시켜주면서도 효과적이고 예술적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연기경연을 보는 듯한 연기자들의 호연이 압권이다. 역시 월드스타다운 면모를 보여준 김윤진은 물론이고, 그녀와 보조를 맞춘 박희순은 영화가 찾아낸 보물 중의 보물이라 할 것이다. 이 형사와 범법자 사이를 미묘하게 걸어가는 성열이란 비리경찰의 캐릭터는 박희순에 의해 완성되었다 보여진다. 또한 끝없는 연기변신을 보여주는 김미숙의 농익은 연기 또한 놓칠 수 없는 재미가 된다.

스토리와 연출과 연기가 아우러진 ‘세븐데이즈’는 그 제목처럼 한정된 시간 속에 딸을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하는 모성을 다룬다.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영화는 결국 그 모성 앞에서 그 어떤 것도 선행될 수 없다는 자연 혹은 야생의 법칙을 보여준다. 이 스릴러에서 어느 한 순간 갑자기 지연의 심정이 되어 울컥하는 마음이 생긴 것은, 어찌 보면 일주일이라는 틀 안에서 가족들을 위해 전장을 뛰어다니는 가장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영화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모성은, 아니 이 세상 부모의 마음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

‘얼렁뚱땅...’, 그들이 찾는 보물, 가족

‘얼렁뚱땅 흥신소’는 얼떨결에 사건에 휘말리고 황금사냥을 하게 된 네 사람의 이야기다. 건물 이름과는 걸맞지 않게 황금빌딩에 거주하는 만화가게 주인 용수(류승수), 태권도장 사범 무열(이민기), 영매사 희경(예지원)은 월세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비루한 삶을 살고 있다. 그들에게 벼락같이 떨어진 황금은 그들의 일상을 모험으로 바꿔놓고 그 과정 속에 부동산 재벌 딸인 은재(이은성)가 합류한다.

그 황금이 고종이 남긴 열두 항아리의 황금 중 일부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황금을 찾아가는 모험이 시작된다. 그러자 일상은 독특한 형태로 모험의 배경과 수단이 된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황금빌딩은 그 이름처럼 이 황금에 대한 첫 단서를 주는 공간이 되고, 고종이 머물던 덕수궁은 황금이 숨겨진 장소로 돌변한다. 지루하고 답답하기만 한 빌딩 숲이던 서울은 순간 모험의 공간으로 변신한다. 철가방은 ‘미션 임파서블’의 톰크루즈처럼 오토바이를 몰고 도심을 질주하며, 영락없는 주부는 그 영락없는 외모를 바탕으로 은밀하게 뒷조사를 한다.

보물지도를 노리는 민철(박희순)의 건달패들로 인해 시시각각 위기를 맞게 되는 이들에게 일상은 또한 그들만의 무기가 된다. 용수는 만화적 지식으로 두뇌역할을 하며, 무열은 태권도를 바탕으로 행동대장이 된다. 희경은 남을 속이는 특유의 연기력으로 위기를 넘게 해주며, 은재는 이 세 명의 비루한 인물들이 못 가진 재력으로 이 모험에 돈을 댄다. 이 일상의 모험들이 종종 TV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패로디하는 것은 드라마를 코믹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도시일상인들의 환타지를 희화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욕망에 공감하면서도 픽 웃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황금을 찾는다’는 이 도시인의 로망은(보물이 아니고 황금이다),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간다. 무열은 애초부터 황금보다는 은재에 대한 생각뿐이고, 용수는 갑자기 어린 시절 잃어버린 형의 주검을 맞이하고 망연자실해 한다. 희경은 보물지도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민철과 사랑의 감정에 빠져버리고, 은재는 황금보다는 어린 시절 잃어버린 기억에 점차 접근하게 된다. 즉 그들은 황금을 찾는 일을 하면서 자신들 마음 속에 있던 ‘진짜 황금’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 황금은 무열에게는 은재이며, 용수에게는 형이고, 희경에게는 민철 같은 그 누군가와의 사랑이며, 은재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된다. 드라마가 물질적인 황금을 찾는 이야기에서 자신들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바뀌는 과정은 말 그대로 ‘얼렁뚱땅’ 벌어진다. 하지만 여기서 ‘얼렁뚱땅’이란 ‘대충’이란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그만큼 치밀하게 시청자들의 욕망을 끄집어낸 후, 조금씩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 본질에 가까워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우습기만 했던 이 인물들은 점점 외로운 사람들로 변해간다. 그러고 보니 ‘얼렁뚱땅 흥신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이유에선지 모두 가족들이 없던가, 혹은 떨어져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커다란 사건들이 대부분 추석을 전후해 벌어졌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추석 전날이 생일인 용수는 그 날 형을 잃었고, 그 형이 죽은 장소에 은재가 아버지와 함께 있었으며, 그 사건은 한참을 지나 다시 되풀이된다. 아들의 실종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던 용수의 어머니는 자살을 시도하고, 민철이 형을 죽인 것으로 오해하는 용수는 추석날 밤 치매에 걸린 민철의 어머니와 폐가가 된 집에서 하룻밤을 함께 기거하게 된다. 용수가 자신의 어머니를 납치했다 생각하는 민철은 무열과 희경을 잡아두고 용수의 전화를 기다리며 한편 혼자 추석 을 지내게 되는 은재는 함께 지냈던 그들의 빈자리를 느끼게 된다.

이 지점에서 알게 되는 것은 이들이 결국 찾는 것이 황금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보름달 아래서 울먹이며 민철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는 용수나, 어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전화만을 기다리는 민철이나, 무열과 희경을 걱정하는 은재나 모두 가족의 빈자리를 실감하게 된다. 이것은 추석이 다가오자 이런 저런 이유로 고향에 가지 못하는 용수, 무열, 희경에게 자신 역시 가족 하나 없는 처지인 은재가 우리끼리라도 만두를 빚고 잡채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그 즈음에는 이제 그들이 찾고 있는 가족이 실상은 그들 자신들이라는 것이 장면을 통해 보여진다. 그들은 타인으로 만나 어느새 가족이 되어 있었다.

‘얼렁뚱땅 흥신소’는 제목처럼 얼렁뚱땅 인물들을 사건 속에 집어넣고는 그 안에서 기막힌 이야기와 의미들을 잡아내게 만드는 드라마다. 어리둥절하게 사건을 쳐다보면서 웃다가 울던 시청자는 말 그대로의 이야기 속 모험에 휩싸이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엉뚱한 이야기의 장소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가 이 드라마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황금으로 대변되는 성공을 좇아 고향과 가족의 품을 떠나 타향에서 홀로 살면서 가슴 속에 점점 황금으로 자리잡는 것은 바로 우리가 떠났던 그 가족과 고향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는 한참을 ‘얼렁뚱땅’ 우회해서 보여준다. 이것이 코믹에서 시작해 모험과 멜로로 넘어오더니 시청자들을 눙치면서 휴먼드라마를 넘나드는 그 ‘얼렁뚱땅’이 좋은 이유다.

‘황금신부’가 전하는 우리들의 오만과 편견

그녀는 바보다. 사진 한 장 달랑 보고 이역만리에 시집와서는 그제야 남편 강준우(송창의)가 공황장애라는 걸 알게된다. 필요 없다고 돌아가라는 강준우 말에 그녀는 그냥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 남편에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집밖조차 나가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매일 치료일지를 쓰고 기도를 한다. 그렇게 3년 병 수발에 남편은 장애를 극복하고 직장까지 갖게 되지만 그녀는 여전히 저녁시간 집 앞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요즘 시대, 여성으로 치면 바보 중에 바보인 사람, 바로 ‘황금신부’의 그녀, 누엔진주(이영아)다.

그래서 그녀를 진짜 바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 주제를 알고 남편 앞길이나 막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주제’라고 말하는 범위에는 그녀가 베트남 여성이라는 국적차별에 대한 것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학력차별, 그리고 가난하다는 빈부차별, 나아가 그녀의 문화를 형성하는 베트남 문화를 낮은 것으로 보는 문화적인 차별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남편의 옛 친구였다는 차인경(공현주)은 번번이 진주를 찾아와 정말 주제에 걸맞지 않은 충고를 한다. 그것은 여러 가지 표현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결국은 “당신이 남편 성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강준우를 잊지 못해서 하는 말이라고 해도 도가 지나치다. 진주가 베트남 여자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차인경의 ‘주제넘은 충고’는 그 자체로 베트남 여성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할 수 있다.

차인경의 상황은 사랑에 눈멀어 그랬다 쳐도 강준우의 사업파트너로서 등장한 민이사의 편견은 너무나 노골적이다. 안하무인식으로 진주에게 베트남 여성으로서의 모멸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거기에는 국적에 대한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빈부에 대한 차별의식이 더 짙게 깔려져 있다. 민이사의 태도는 ‘가난한 자들’을 비루하다 여기는 가진 자들의 특권의식이 깔려있다. 내세우는 것이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칼자루인 ‘황금’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황금만 좇는 사람들이니 그 눈에 진주 같은 진짜 황금이 눈에 뜨일 리가 없다.

반면 그런 바보를 황금으로 여기는 남자가 있다. 차인경은 진주를 위해 앞길을 포기하는 강준우에게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듯 이렇게 여러 차례 묻는다. “당신 인생을 가로막는 그 사람이 그렇게 중요해요?” 그러자 그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이 내 인생이야.” 때론 그도 진주에게 화를 낸다.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당신은 행복해질 자격이 없어요.” 자신은 그녀를 황금으로 여기는데 그녀는 정작 자신을 바보로만 생각하니 답답할 밖에.

‘황금신부’는 순애보적이 사랑이 바보의 사랑의 되어버린 시대에 그 바보에 대해 던지는 현대인들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극화되어 도저히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사건들이 그 안에 포진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적지 않다. 거기에는 이런 순애보적인 이야기가 비현실이 되어버린 현 세태를 꼬집는 면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 초반부에 베트남 여성으로 등장한 진주는 그 말투와 행동 하나 하나에서 좀 구닥다리라거나 세련되지 못했다고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씩 바뀌고 있고 그것이 이 드라마가 의도하려는 이야기의 진짜다. 황금만 보며 달려가는 물질만능주의의 세상 속에서 정작 황금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무렇게나 사랑한다 말하고 정작 진짜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차인경과 민이사의 오만과 편견은 그저 드라마 속의 남 얘기로만 치부하고 가기엔 너무나 현실적이다. ‘황금신부’는 진짜 사랑을 아는, 사람을 황금으로 볼 줄 아는 아저씨(강준우)를 그토록 이해하지 못했던 차인경이, 진주를 만난 후에 ‘자신의 사랑이 부끄럽다’고 말하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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