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대결 들어간 ‘아스달 연대기3’, 결과적으로 휴지기는 득

 

결과적으로 보면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파트2를 끝내고 파트3로 이어지는 두 달 여간의 휴지기가 득이 됐다고 보인다. 워낙 큰 기대를 갖고 시작했지만 파트2까지 방영된 <아스달 연대기>는 적지 않은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직까지 다뤄본 적이 없는 선사라는 시대의 낯설음, 그 낯설음을 채우기 위해 여러 콘텐츠들을 참조하다보니 생긴 의상이나 배경, 설정 등의 유사함, 무엇보다 새로운 세계를 창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만들어낸 과한 설명들이 그 이유들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파트2까지 진행되며 그 세계의 구조를 어느 정도 인지시킨 <아스달 연대기>는 파트3로 와서는 상황 설명이 아닌 본격적인 대결구도에 들어감으로써 훨씬 몰입감이 높아졌다. 신성한 방울을 찾아냄으로써 대제관의 자리에 오른 탄야(김지원)는 노예가 된 와한족을 구하고 돌담불로 끌려간 은섬(송중기)까지 구해내려 하고, 탄야로부터 아라문 해슬라의 재림으로 지목받아 아스달 연맹 최강자로 우뚝 선 타곤(장동건)은 태알하(김옥빈)와 함께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려 한다.

 

한편 돌담불에서 탈출에 성공한 은섬은 죽은 사트닉(조병규)의 유언에 따라 주비놀에 갔다가 모모족의 샤바라인 카리카(카라타 에리카)와 아들을 구함으로써 은혜를 갚는 모모족이 그를 따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은섬은 와한족을 구해내고 아스달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부하들을 거느려 힘을 길러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처럼 <아스달 연대기> 파트3는 저마다의 인물들이 가진 욕망이 뚜렷하게 드러나며 욕망과 욕망이 부딪치며 생겨나는 대결구도가 선명해졌다. 피를 보지 않고 아스달을 장악하려던 타곤의 야망은 아사론(이도경)의 계략으로 그가 이그트라는 게 밝혀지면서 수포로 돌아가고 그는 결국 “모조리 죽여주겠다”며 폭주하기 시작했고, 은섬은 아스달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조금씩 자신의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모모족을 얻은 데 이어, 아고족의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 은섬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왕국을 세우고 왕이 되려는 타곤과 그 왕국을 무너뜨리려는 은섬의 대결은 국가의 탄생과 자연 그대로의 삶 사이의 대결구도이기도 하다.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어째서 어떤 종족은 국가가 되고 어떤 종족은 그래도 종족으로 남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 대결구도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아스달 연대기> 파트3가 훨씬 편안해진 건 이런 문화인류학적인 무게감과 또 단군신화 같은 우리네 선사에 대한 강박 같은 것들을 한 꺼풀 내려놓고 있어서다. 그런 무거움을 벗어버리고 대신 그 안에서 인물들의 욕망이 부딪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마치 판타지 게임 같은 대결 구도를 선명히 그려내고 있다.

 

사실 주제의식은 그 게임 같은 흥미진진한 대결구도를 그려나가면서 저절로 붙게 마련이다. 그러니 <아스달 연대기> 파트3가 현재 하고 있는 것처럼 드라마 자체의 재미에 몰입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시청자들이 이 세계 깊숙이 들어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면 잠시 가졌던 휴지기는 <아스달 연대기>에는 어떤 국면 전환을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이 된 것으로 보인다.(사진:tvN)

 

‘놀면 뭐하니?’ 점입가경 유플래쉬, 랩 릴레이에 폴킴·헤이즈 듀엣까지

 

이 정도면 음악 예능의 새로운 진화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음악 릴레이 프로젝트인 ‘유플래쉬’는 한마디로 점입가경이다. 유재석이 두드려놓은 비트 하나가 이토록 흥미진진한 ‘음악 여행’을 가능하게 해줄 줄이야. 유희열에게 건네진 비트는 윤상-이상순-적재를 거쳐 그레이로 넘어가더니 이제 다이내믹 듀오와 리듬파워를 만나 갑자기 랩 릴레이로 이어졌다. 또 이적에게 간 비트는 선우정아의 코러스가 얹어지고 멜로망스 정동환과 베이시스트 전설 이태윤을 거쳐 폴킴과 헤이즈가 부르는 로맨스 가득한 듀엣곡으로 변신해갔다.

 

애초 유재석이 체리필터 손스타를 만나 드럼을 두드릴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벌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하지만 음악 릴레이라는 새로운 형식 실험 속에서 비트에 저 마다의 악기와 멜로디 가사 등이 얹어지면서 유재석이 던진 작은 씨앗은 점점 가지를 뻗고 잎을 피우며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나의 비트가 힙합으로도 가지를 뻗고, 달달한 듀엣곡으로도 나갈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특히 그 비트가 옮겨갈 때마다 그걸 받은 아티스트들의 색깔이 더해진다는 건 음악이 얼마나 그걸 만드는 사람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줬다. 즉 그레이로 넘어간 비트가 특유의 그루브를 갖게 되고 다이내믹 듀오가 더하는 가사로 음악이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는 건 그 과정만을 들여다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또 폴킴과 헤이즈로 넘어가자 같은 비트라도 훨씬 밝고 로맨틱한 듀엣곡이 되는 변화를 보는 것 또한 흥미진진했다.

 

또 악기들이 가진 색깔이 얼마나 다르고 저마다의 개성이 있으며 음악 작업을 하는 방식도 너무나 다르다는 것 역시 이 릴레이 과정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다이내믹 듀오는 ‘주제’를 먼저 고민하고 가사를 얹는 방식을 통해 ‘음유시인’ 같은 그 작업 방식을 보여줬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 이태윤은 단 한 번에 곡 작업을 끝내는 역시 전설다운 면모를 보여줬고, 폴킴과 헤이즈는 대화를 통해 ‘눈치’라는 주제를 찾아 저마다 허밍으로 멜로디를 얹고 곡 작업을 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유플래쉬’라는 음악 프로젝트가 보여준 건 릴레이라는 형식을 통해 여러 아티스트들의 손을 거쳐 음악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다. 물론 과거 <무한도전> 시절에도 갖가지 ‘가요제(?)’에서 아티스트와 출연자들이 협업해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유플래쉬’가 특이한 건 그것이 릴레이라는 형식을 만나면서 누구를 만나 어떤 방향과 색깔로 바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보통 우리가 듣는 음악은 결과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짧게 보여주지만 결국 마지막 무대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플래쉬’는 결과물이 뭐가 될까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음악이 만들어지고 변화해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즐거움이다.

 

결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음악 프로그램들이 그 성과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유플래쉬’는 그저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긴다는 점에서 음악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진화로 보인다. 누가 이기고 지는 그런 결과의 대결이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의 개성이 묻어가는 과정을 보는 즐거움. 어쩌면 그건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운 일일 수 있지 않을까.(사진:MBC)

‘의사요한’ 지성과 이세영의 해피엔딩,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

 

때론 해피엔딩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지금껏 드라마가 달려온 주제의식이 엔딩에 이르러 흔한 ‘사랑타령’으로 끝나버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SBS 금토드라마 <의사요한>이 딱 그렇다. 통증의학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져와 고통과 삶과 죽음에 대한 만만찮은 이야기들을 그려왔던 <의사요한>이 마지막회에 이르러서는 차요한(지성)과 강시영(이세영)의 흔한 멜로드라마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사실상 <의사요한>의 마지막회는 사족에 가까웠다. 통증에 대한 임상실험 참가자이자 연구자로서 미국에 간 차요한의 바이탈 기록을 매일 같이 체크하며 기다리는 강시영의 헤어질 듯 다시 만나는 뻔한 이야기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고 그렇게 3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나타난 차요한과 사랑을 확인하는 강시영의 이야기. 거기에 <의사요한>이 지금껏 다뤘던 주제의식은 희석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차요한은 자신이 내리는 고통에 대한 마지막 처방전으로서 의사의 역할이 병을 고치는 것만이 아닌 고통을 알아주고 나누는 것이라는 걸 드러냈다. “고통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고통은 우리 안에 살고, 우리 삶은 고통과 함께 저문다. 그 고통을 나누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고통의 무게는 줄고 고통을 끌어안는 용기는 더해질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알아주고 나누는 것, 이것이 삶이 끝나야 사라질 고통에 대한 나의 마지막 처방이다.”

 

즉 고통뿐인 삶 앞에서 의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던진 질문에 이 드라마는 호스피스 완화 치료를 답으로 제시한 것이다. 즉 치료는 완치만이 목적이 아니고 완화도 그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 그래서 의사는 환자 옆에서 그 고통을 들여다보며 고칠 수 없다면 그것을 완화해주는 치료를 해주는 것이 응당한 역할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요한>은 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과 고통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의식적으로 멜로 라인을 통해 그 무거움을 덜어내려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강시영과 차요한의 멜로 라인이 그렇고, 이유준(황희)과 강미래(정민아)의 멜로 라인 또한 그렇다. 게다가 통증의학과 레지던트들은 상당부분 희화화된 캐릭터로 그려졌다. 드라마가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걸 막으려는 의도적인 구성이고 연출이다.

 

그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주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요한>이 지나치게 멜로로 기운 건 오히려 한계로 지목된다. 차요한이라는 캐릭터가 전반적으로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담아내며 잘 살아난 데 비해, 강시영은 의사로서는 너무 감정적이고 또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도 이런 드라마의 한계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에 비하면 너무 아쉬운 캐릭터의 면면이 아닐 수 없다.

 

의학드라마는 이제 너무 많아져 특별한 소재나 주제의식 혹은 형식실험을 가져오지 않으면 뻔한 드라마라는 인식을 갖게 될 정도다. 그러니 의학드라마가 뾰족한 주제를 가져와 끝까지 밀고 나가는 건 그만큼 중요해졌다. <의사요한>은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드라마다. 뾰족한 주제의식을 갖고 오고도 뭉툭한 멜로의 결말로 끝내버렸다는 점에서다.(사진:SBS)

‘삼시세끼’, 엄마 같은 염정아·세심한 윤세아·듬직한 박소담

 

어쩌면 이렇게 사람들이 모두 호감일까. tvN 예능 <삼시세끼>에서 음식만 하면 엄청난 양을 만들어내는 손 큰 염정아를 보면 인심 넉넉한 엄마들이 떠오른다. 자신도 자신이 하는 양이 무섭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빵 터지지만, 그렇게 많이 만들어놓으면 이상하게도 그 집이 더 푸근하고 풍족하게 느껴진다. 엄마들이 집에서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푸근함의 정체가 그게 아닐까.

 

윤세아는 세심한 끝판을 보여준다. 누군가 그냥 지나치는 소리로 하는 한 마디도 그냥 넘기지 않는다. 오자마자 염정아가 동선을 줄이겠다고 찬장과 테이블 그리고 아궁이의 위치를 바꾸는 리모델링(?)에 들어갔을 때 누구보다 열심히 일에 뛰어든다. 테이블 위에 깔 비닐이 무거워 들지 못하고 “힘 소담!”을 외치는 자신이 어딘가 “슬프다”고 슥 말하는 염정아에게 윤세아는 진짜 걱정하는 얼굴로 “슬퍼? 왜?”하고 묻는다. 그 질문에 윤세아의 세심함이 한 가득 묻어난다.

 

비빔밥에 들어갈 계란 프라이를 하지 않은 걸 뒤늦게 알고 다시 불을 피워 윤세아와 박소담이 일을 하게 만든 염정아가 너무나 미안하다며 후회를 한 가득 늘어놓을 때, 윤세아와 박소담은 괜찮다며 금방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불을 피운 김에 생두도 볶아 놓자는 박소담의 말에도 염정아를 마음 편하게 해주려는 따뜻함이 묻어난다.

 

뭐든 힘쓰는 일이면 나서서 척척 해내는 박소담은 언니들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미리미리 세팅을 해놓는 센스가 돋보인다. 무엇보다 보는 이들조차 포만감이 느껴질 정도로 잘 먹어주는 박소담은 언니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워낙 밥을 좋아하는 박소담이 밥을 퍼먹고 국을 마시는 모습은 이름처럼 소담스럽다. 엄마들이라면 아마도 이런 밥 잘 먹는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지 너무나 잘 알지 않을까. 염정아가 만든 음식이 그 입에 쏙쏙 들어가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 <삼시세끼> 산촌편이 남자들 대신 여자들로 출연진들을 바꿔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래봐야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이 아닐까 살짝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 그 자리에 있어 <삼시세끼> 산촌편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상대적으로 집안 일이 익숙해 그런 것이겠지만, 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척척 일을 분담해서 해낸다. 염정아가 전체 요리를 구성하고 지휘한다면, 윤세아는 촘촘히 손과 발이 되어 주고, 박소담은 불을 피우고 힘쓰는 일들을 전담한다. 그러니 굉장히 많은 일을 하는데도 꽤 짧은 시간에 일이 척척 마무리된다. 집안 일이라는 것이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 해야 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자그마한 도움이나 배려가 얼마나 일을 수월하게 해주는 지를 이들은 모두 체득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산촌의 세끼 하우스에 도착하면 마치 오래도록 그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처럼 일하고 웃고 떠들고 맛있게 밥을 챙겨먹는다. 무엇보다 공감과 배려가 얼마나 함께 하는 사람들을 힘나게 하는가를 이들은 보여준다. 누가 한 마디만 해도 호응해주고, 작은 것까지 놓치지 않고 배려하는 모습이라니. <삼시세끼> 산촌편을 보고 있으면 배우로서만 봐왔던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에 대한 또 다른 호감이 새록새록 피어난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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