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공간 대비만으로도 빵빵 터지는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

 

정말 오랜만에 깔깔 웃었다. 첫 장면으로 등장하는 반지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웃음이 터졌다. 그것이 봉준호 감독의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취를 한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시작부터 이 영화가 너무 정곡을 콕 찔러서였다. 그 반지하에서 간만에 가족이 모여 맥주 한 잔을 하려 할 때 마침 취객이 나타나 토악질을 해대고 노상방뇨를 하려는 모습을 보며 기택(송강호)이 짜증을 확 내는 장면에서 터지는 웃음. <기생충>은 그런 영화였다. 무언가 비극적 상황의 꼬질꼬질함이 오히려 웃음으로 터져 나오는 블랙코미디.

 

봉준호 감독이 ‘봉테일’이라 불리는 게 허명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는 대목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공간, 경계, 침범, 파국 같은 것들이 공간과 빛 같은 시각적, 미술적 장치들만으로도 고개가 끄덕여지기 때문이다. 기택의 가족이 사는 반지하라는 공간은 그래서 자본의 양극화가 만들어낸 계급사회의 한 계급을 상징한다. 영화가 그 반지하 공간에서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는 건 그 시점을 따라 우리 사회의 비극적이지만 우습게도 보이는 계급적 특성을 해부해 보이겠다는 의지처럼 읽힌다.

 

햇볕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상이라고 할 수도 없는 반지하라는 공간은 그 경계가 애매하다. 그래서 이 지점이 어떤 다른 계층으로 침범해 들어올 때 그건 ‘계급의 충돌’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봉준호 감독은 바퀴벌레에 비유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없는 것처럼 치부하며 살아가지만, 분명 저 지하에 존재하는 바퀴벌레가 문제를 만들어내는 건 그 경계를 넘어 지상으로 튀어나왔을 때다.

 

<기생충>은 이러한 평시에는 잘 보이지 않는 자본의 양극화가 어떤 선을 넘어갈 때 만들어내는 마찰음을 특유의 블랙코미디식 유머로 담아낸다. 기택이 사는 반지하에 마치 왕좌처럼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화장실 변기마저 웃음이 터지는 상징처럼 다가오고, 그 집과 비교되는 글로벌 IT기업 박사장의 대저택은 그 비교점만으로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표징하는 지적 웃음을 준다.

 

그 공간들을 우 몰려 올라갔다가 우 몰려 내려오는 인물들의 모습은, 마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위 아래로 넘나드는 사회구조 속으로의 모험담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냄새처럼 분명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경계를 침범해 들어온 흔적이 주는 긴장감이나, 물을 뿌리면 숨어있던 바퀴벌레들이 튀어나오듯, 폭우 속에서 인물들이 도망치는 장면은 절박하고 비극적이지만 이상하게도 웃음이 터진다. 높은 지대에 있는 대저택에 사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비는 아이가 텐트를 치고 놀 정도로 낭만이 되기도 하지만, 그 시간에 낮은 지대에 사는 이들은 물난리를 겪는 곳. 그곳이 우리가 사는 사회라는 게 하나의 살아있는 블랙코미디처럼 떠오르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계획’이란 걸 세워봐야 그 구조 때문에(누구는 높은 곳에 살고 누구는 낮은 곳에 사는) 폭우 하나에도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그 양극화된 세상에서 ‘무계획’이 최선의 계획이 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기생’을 선택한다. 저들 옆에 달라붙어 그들이 던져주는 무언가를 받아먹거나, 혹은 몰래 훔쳐 먹는 삶. 이토록 비극적인 현실을 이토록 웃음 터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역시 봉테일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거장의 여유로운 손길이 느껴지는 작품이다.(사진:영화'기생충')

‘슈퍼밴드’ 디폴, 배우 아들이라도 박수 받는다는 건

 

한 매체가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에서 주목받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디폴이 중견 배우 박순천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보도했다. 보통 이런 보도가 이슈가 되는 건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연예인의 자녀’라는 사실 자체이고, 또 하나는 그것이 하나의 ‘특혜’처럼 비춰진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 대중들은 연예인 가족이 방송에 나오는 것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것은 일반 대중들이 방송에 나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 연예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쉽게 방송에 등장해 이름을 알리고 그것이 생업으로도 이어지는 그 과정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폴의 경우는 그 반응이 완전히 다르다. 이런 보도에도 오히려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심지어 한 댓글은 ‘부모가 대통령이라고 해도 깔 일 없다 완전보물.’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도대체 디폴은 왜 이런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걸까.

 

그것은 사실상 디폴이 갖고 있는 음악적 역량이 방송을 통해 이미 대중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리들을 채집해 저장한 후 그것을 하나의 건반을 두드리면 나오는 소리들로 구성한 후 음악을 믹싱해내는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보여줬다. DJ 같지만 갖가지 전자기기들을 접목해 음악으로 변환해내는 실험적인 그의 음악세계는 조이스틱으로도 연주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또 와인 잔에 물을 받아 전극을 연결함으로써 손가락으로 물을 건드릴 때마다 나는 음으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독보적인 프로듀싱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우리가 익숙히 잘 알고 있는 ‘샴푸의 요정’ 같은 곡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해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인 밴드 음악에도 잘 어우러진다는 걸 증명해보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박순천의 아들이 아니라 오롯이 디폴이라는 이름 하나로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연예인 자녀라는 사실을 밝히지도 않았고, 그런 후광효과 없이 음악이라는 분야로 자기만의 세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흔히 방송에서 연예인 가족이 등장하는 걸 보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그들이 자신만의 능력으로 방송에 나올 만 하다는 걸 증명해내지 못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연예인 가족 관찰카메라에 대한 불편한 시선은 그래서 생겨난다. 관찰카메라의 특성 상 대단한 능력을 보일 필요는 없지만, 어째서 저들은 연예인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오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연예인 가족은 그것이 이제 이점이라기보다는 넘어야할 또 하나의 장애가 된 듯하다. 자기만의 이름으로 원하는 세계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오롯이 서는 것. 그것만이 ‘부모의 후광’이라는 딱지를 떼어줄 수 있어서다. 디폴은 이런 관점에서 연예인 가족이지만 스스로 자기 영역을 개척한 ‘좋은 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사진:JTBC)

적당한 상업성 그 이상의 영혼이 느껴지는 이들의 콘텐츠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인을 이야기하는 건 그다지 새로운 일도 아니다. ‘국뽕’이라는 말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이들을 주목하게 된 무언가가 존재하고, 그것을 우리가 추구해야할 하나의 경쟁력으로 찾아내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 주목받는 한국인들은 다음 아닌 봉준호, 손흥민, BTS다.

 

봉준호 감독은 칸느영화제가 만장일치로 그가 만든 영화 <기생충>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했고, 해외 평단의 반응들도 폭발적이다. 무려 192개국에 판매됨으로써 역대 해외 판매기록 1위를 달성한 이 작품에 대해 미국 언론 뉴욕타임즈, 인디 와이어 같은 외신들은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거론될 수 있을 거라는 조심스런 예측까지 내놨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로 해외평단에 호평을 받은 바 있고, <설국열차>로 할리우드에 진출했으며 <옥자>로 넷플릭스 방영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바 있다. 여기에 <기생충>이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함으로써 봉준호 감독은 사실상 영화감독이 이 시대에 시도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봉준호 감독의 무엇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런 좋은 반응을 얻게 만든 걸까. 그것은 ‘봉테일’이라고 불리는 그의 남다른 디테일들이 그가 하고자 하는 영화적 메시지들을 공고하게 만들면서 생겨난 반응이다. 그는 공간 하나를 가져와도 그것에 어떤 사회적 함의를 상징화하는 데 탁월하다. <설국열차>가 달리는 순환열차를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상징화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기생충>에서도 반지하라는 공간의 계급적 의미가 더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디테일은 남다른 열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지금 해외에서 주목받는 손흥민이나 BTS의 성공도 결국 이 디테일과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손흥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tvN <손세이셔널>을 보면 항상 그림자처럼 그와 함께 하는 아버지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스트라이커로서 필드에서 어떤 습관들을 가져야 하는가를 세밀하게 연습시켰다는 게 엿보인다. 오로지 축구를 중심에 두고 분석하고 연습하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은 그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넣은 골들이 얼마나 디테일한 연습에 의한 것인가를 가늠하게 만든다.

 

이는 ‘21세기 비틀즈’라 일컬어지는 BTS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요소다. ‘칼군무’라는 차원을 넘어서 딱딱 한 유기체처럼 돌아가며 마치 현대무용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BTS의 춤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디테일한 노력들을 해왔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또 음악도 그냥 만드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고민들을 고스란히 가사로 녹여내는 과정을 통해 전 세계의 청춘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냈다.

 

물론 부족한 점들도 여전히 많지만, 최근 해외에서도 조금씩 주목받는 한국의 콘텐츠들(인물을 포함)에 대해 어떤 차별점이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건 단연 남다른 디테일과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의 세계적인 콘텐츠들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상상력과 완성도에 놀라면서도 한 가지 부족한 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콘텐츠 제작이 지나치게 자본화되고 공장화되면서 만들어지는 작품 특유의 열정 같은 것이 빠져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잘 만들어졌지만 무언가 소울이 빠진 듯한 그런 느낌.

 

봉준호 감독이나 손흥민 그리고 BTS에서 발견하게 되는 건 바로 그 잘 만들어진 콘텐츠 속에 한 가지 더해져 있는 열정(소울)이다. 흔히 “영혼을 갈아 넣은 작품”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그런 콘텐츠들에서만 느껴지는 그 독특한 색깔이 이들에게서는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저 세계의 거대자본들과 경쟁하며 추구해야할 방향성인지도 모르겠다.(사진:CJ엔터테인먼트)

‘조장풍’, ‘열혈사제’ 잇는 패러디 풍자 드라마

 

“매가 사람을 만든다.”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받다 죽을 뻔한 아들을 보고는 각성한 구대길(오대환)이 그 공장의 실소유주인 국회의원 양인태(전국환)를 불러놓고 그렇게 말한다. MBC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영화 <킹스맨>의 대사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의 패러디다. 매너를 매로 바꿔 말하고 양인태에게 주먹질을 하는 구대길의 모습은 그 캐릭터와 딱 떨어지며 통쾌한 웃음을 준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 패러디 풍자에 푹 빠졌다. 구대길의 <킹스맨> 패러디는 그냥 등장한 게 아니고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양인태가 동원한 ‘댓글조작’의 대가의 닉네임이 킹스맨이기 때문에 더해진 장면이기도 하다. <킹스맨> 패러디가 전면에 나와 있지만, 사실 이 드라마가 풍자하려는 건 그런 표피적인 것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댓글조작’ 사건이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킹스맨’은 ‘드루킹’ 사건에서 따온 닉네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최서라(송옥숙)라는 명성그룹 회장 캐릭터를 통해 우리에게각종 뉴스에서 보도되어 익숙한 갑질 사모님의 패러디를 선보인 바 있다. “내가 누군 줄 알아?”를 입에 달고 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 모습은 우리가 뉴스를 통해 본 사모님의 품격과는 전혀 달랐던 그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했다.

 

무엇보다 패러디 풍자가 흥미로운 건 양인태 의원이 실소유주로 있는 회사 선강 공장에 대해 “그래서 선강은 누구 겁니까”라고 묻는 대목이다. 이는 여러모로 MB 정부에 가장 궁금증을 자아냈던 “그래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유행처럼 번져나간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선강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세탁되어 양인태 의원의 정치 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MB 정부의 다스 논쟁을 소재로 뒤틀어낸 풍자다.

 

그러고 보면 양인태 의원의 각종 비리장부들이 전부 숨겨져 있는 상도빌딩 지하 ‘세탁실’을 ‘저수지’라 부르는 대목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 분’의 검은 돈을 추적하는 ‘악마 기자’ 주진우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담아낸 <저수지 게임>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영화에서 주진우 기자는 파도 파도 까도 까도 끝없는 검은 돈의 연결고리를 추적한다.

 

이러한 패러디를 통한 현실 풍자는 여러모로 이 작품이 SBS <열혈사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열혈사제>도 갑갑한 현실과 제대로 서지 않은 사법 정의의 문제를 드라마로 가져와 통쾌한 판타지 카타르시스를 주던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서도 패러디는 드라마를 보게 만들고 화제를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였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여기에 노동현실이라는 구체적 소재를 더함으로써 이러한 권력형 비리들이 노동자들의 현실과도 직결되어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 양인태 의원이 공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정치자금으로 세탁해 유용하고, 심지어 공장 노동자들까지 동원해 선거운동에 투입시키는 비리를 저지르고, 그것은 제대로 관리 감독 되지 않는 공장이 심지어 폭발하게 되는 사고로까지 이어진다. 벌어들인 돈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복지를 위해 쓰이는 게 아니라 엉뚱한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벌어지는 각종 안전사고들.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우리네 사회에 대한 날선 시각이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캐릭터들이 워낙 유쾌하게 구축되어 있고 그들이 벌이는 패러디들이 속 시원한 한 방을 주기 때문에 편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드라마지만, 거기에는 남다른 현실인식이 번득인다. 아마도 이 부분은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라는 드라마가 점점 좋은 반응을 얻으며 시청률 또한 끌어올린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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