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악당 같다, ‘닥터 프리즈너’ 남궁민은 어쩌다가

 

“자기 손에 피 안 묻히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있을까요?” 태강병원 정신과 의사 한소금(권나라)이 “왜 이렇게까지 하려고 하냐”고 묻자 나이제(남궁민)는 그렇게 말한다. 그는 JH철강 김회장의 아들인 잔혹한 사이코패스 김석우(이주승)를 윌슨병이라 주장해 양극성 장애로 만듦으로써 형 집행 정지를 만들어주려 했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한소금에게 나이제는 만일 그의 동생 한빛이 죽었다면 어떻겠냐고 반문한다. 가난한 장애부부가 아이를 잉태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어머니마저 수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죽었던 걸 경험한 나이제는 “그 놈들이 있는 곳이라면 지옥 끝까지” 갈 거라고 말한다. 

 

이것은 KBS 수목드라마 <닥터 프리즈너>가 갖고 있는 이야기의 특징이면서, 나이제라는 독특한 주인공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이제는 한 여성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폭력을 행사한 사이코패스 김석우를 형 집행 정지시켜주려 하는 인물이다. 주인공이지만 악당에 가까운 인물이 아닌가. 

 

실제로 <닥터 프리즈너>가 흥미진진한 건 나이제와 선민식(김병철) 서서울교도소 의료과장이 교도소 내에서의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 치고 받는 대결 때문이다. 이들은 대놓고 서로가 적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앞에서는 웃으면서 뒤통수를 치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제압한 후, 비웃음을 날림으로써 약을 올린다. 

 

선민식은 김석우를 형 집행 정지로 만들어내려는 나이제를 겉으로는 가만히 내버려둔다. 하지만 실은 이를 조사하려는 이가 정의식 검사(장현성)라는 걸 알고는 나이제를 전면에 내세워 곤궁에 빠뜨리려는 심산을 갖고 있다. 실제로 나이제가 김석우로 하여금 윌슨병 증상을 만들어 임검을 통과하게 되자, 선민식은 김석우의 피해자에게 김석우가 풀려나게 되었다며 그렇게 만든 인물이 한소금이라 이야기를 전하게 한다. 결국 피해자가 한소금을 찾아와 김석우가 풀려나는 것에 대한 분노와 공포를 드러내자, 한소금은 재검을 요청하게 된다. 나이제에게는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격이 되었다. 

 

나이제와 선민식의 대결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악과 악의 대결처럼 보인다. 나이제라는 인물이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든지 하는 그런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군가를 서슴없이 이용하고, 재소자들을 위협하며 때론 회유하기도 한다. 심지어 나이제는 복수를 위해서는 제 손에 피가 묻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악당에 가까운 인물인데 어째서 우리는 나이제에게 빠져드는 걸까. 그건 아마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결코 이겨낼 수 없는 적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게다. 실종된 동생을 찾기 위해 교도소 봉사까지 들어와 조사를 했던 한소금이 김석우 같은 사이코패스를 풀어줄 수 없다며 갑자기 정의를 이야기하지만, 이런 순수하고 어찌 보면 순진한 방식으로는 결코 뜻을 이룰 수 없는 살벌한 현실이라는 것. 

 

그래서 나이제가 선민식을 찾아가 “나는 과장님을 이길 수밖에 없다”며 “과장님은 이기기 위해 남의 손에 피를 묻히지만, 나는 이기기 위해 내 손에 피를 묻힌다”고 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태강병원이 교도소와 결탁해 해왔던 갖가지 비리들과 거기에 동조한 의사들과 경영진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위해 나이제는 제 손에 피를 묻히건 자신이 피를 흘리건 개의치 않고 이 싸움에 뛰어들었다는 것. 

 

실제로 태강그룹의 이재준 본부장(최원영)은 김석우의 형 집행정지를 이끌어낸다는 명목으로 허위 진단서를 만들어낸 태강병원 의사들이 사실은 선민식과 함께 해왔던 과장들이라는 걸 거론하며, 이 모든 게 어쩌면 나이제의 큰 그림일 수 있다는 걸 예고했다. 즉 김석우의 형 집행정지가 무산됨으로써 선민식에게 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본격화할 정의식 검사의 이전 사건들의 조사를 촉발시킨 거라는 것. “제 손에 피를 묻힌다”는 뜻은 아마도 이렇게 자신까지 포함해 선민식과 그 일당들을 모두 곤경에 빠뜨리겠다는 의미일 게다.

 

어찌 보면 악당 같은 주인공 나이제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악의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그 일련의 선택들에 심지어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부정한 시스템의 현실이 갈수록 공고해져가고 있다는 뜻일 지도 모른다. 대중들은 더 이상 순진한 정의가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걸 어느새 공감하게 됐는지도.(사진:KBS)

솜씨에 인성까지, '골목식당' 백종원도 빠져들 정도라면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충남 서산 해미읍성 어느 골목길로 백종원이 우산을 들고 식당을 찾아간다. 이제 13번째 골목을 맞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시그니처가 된 풍경. 본래 얼굴을 숨기려 마치 영화 <킹스맨>처럼 우산을 들게 됐던 것이지만, 봄비가 내리자 그 우산은 그 풍경에 딱 어울리는 자연스런 소품이 되었다. 이런 날이면 왠지 낮술이라도 한 잔 걸치고픈 마음이 인지상정. 백종원이 찾아간 돼지찌개집 역시 그런 마음에 딱 맞춘 음식들을 내놨다.

 

직접 찾아가보기 전까지 백종원은 반신반의했다. 일단 메뉴가 너무 많은 게 신뢰감이 가지 않은 이유였다. 소머리국밥 하나만 해도 제대로 하려면 전문점을 해야 될 터였지만 여기에 돼지찌개에 냉면부터 갖가지 다양한 계절메뉴까지 메뉴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게다가 손님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슬쩍 슬쩍 반말과 존칭을 넘나드는 사장님은 화면으로만 봤을 때는 섬세할 것 같지 않은 여장부 스타일이었다. ‘장금이’로 불린다는 별명 또한 어딘지 은근히 반발심을 만들 수밖에.

 

하지만 이 모든 건 선입견이자 편견이었다. 백종원이 가게 문을 들어서자 여장부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수줍어하며 90도로 인사하는 사장님은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게다가 별 기대 없이 소머리국밥과 돼지찌개를 주문하는 백종원을 반색하게 만든 건 반찬으로 떡 하니 올라온 어리굴젓이었다. 비싸서 반찬으로 내놓기 어렵지 않냐는 백종원의 물음에 사장님은 “음식 장사하는 사람이 그러면(가격 따지면) 되냐?”고 반문했다. 그 한 마디에 사장님의 음식과 손님에 대한 생각이 모두 담겨 있었다. 백종원은 음식을 평가하기 전 어리굴젓 하나만 갖고도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맛있다고 말했다.

 

자부심으로 좋은 재료만 쓴다는 이런 사장의 음식이 맛이 없을 리 만무했다. 소머리국밥도 미리 삶은 고기를 진공 포장해 잡내가 생기지 않게 준비해놓고 있었고, 국물도 제대로 였다. 이름이 특이한 돼지찌개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함께 끓여 찌개로 내놓는 것이었는데, 백종원은 이를 단박에 알아보고 “그럼 김치찌개 아니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돼지고기가 많이 들어가서 돼지찌개라고 이름 붙였다고 설명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나온 돼지찌개를 보니 그렇게 이름 붙여야 될 정도로 돼지고기가 많이 들어가 있었다. 그냥 대충 이름을 붙인 게 아니라 진짜로 음식에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았기에 붙여질 수 있는 이름이었다.

 

백종원은 어리굴젓에 반찬으로 나온 김치를 먹어보며 맛있다고 했고, 그 김치 맛 덕분에 돼지찌개에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도 맛이 난다고 말했다. 마침 비도 내리고 있어 뜨끈한 국물에 소주 한 잔이 간절해진다는 백종원은 결국 ‘장금이’라는 별명을 인정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칭찬에 정작 이를 상황실에서 모니터로 보고 있는 사장님은 쑥스러워 했다. “괜히 그러시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장님에게서 겸손함이 느껴졌다.

 

보통 조리실의 위생상태를 점검하며 뭐 잘못된 건 없나 찾곤 했던 백종원이지만, 엉뚱하게도 그는 이 집의 다른 반찬은 없나 찾고 있었다. 김치냉장고에서 찾아낸 도라지무침과 파김치를 먹어보고는 “왜 이 반찬은 안 내놓으셨냐?”고 투덜대기도 했다. 사장님은 그런 반찬들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순간 사장님이 하는 장사의 철학이 언뜻 엿보였다. 그저 장사가 아니라 마치 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듯 재료를 아끼지 않고 만든 음식과 반찬을 그 때 그 때 맞춰 내놓는 것. 아마도 이런 집이라면 손님들은 훨씬 더 편안한 정 같은 걸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준비된 집이라면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함께 하는 것만으로 이미 솔루션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음식 맛있고 재료 아끼지 않으며 청결상태도 좋은 데다 사장님의 따뜻한 인성까지 있으니 손님이 오지 않는 건 알려지지 않아서일 뿐이니 말이다. 이미 봄비 내리는 날 백종원을 낮술 ‘땡기게’ 한 음식점으로 알려진 이상, 이제 잘 될 일만 남았다.(사진:SBS)

‘해치’가 말하는 정치, 법치, 이치

 

SBS 월화드라마 <해치>가 그리고 있는 영조의 청년시절 연잉군(정일우)은 우리가 사극에서 흔히 보던 그런 왕자(혹은 왕)나 신하와는 사뭇 다르다. 김이영 작가가 예전에 썼던 <이산>이나 <동이>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산>에서 정조는 끊임없는 암살 위협 속에서 생존해나가는 왕이었고, <동이>에서 숙종은 희빈 장씨로 인해 불어 닥치는 피바람 속에서 동이와 그 아들을 지켜내는 인물이었다. 그들은 모두 선악 구도에서 선의 역할을 자처했고, 반대세력들은 이들이 이겨내거나 제거해야할 절대 악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해치>는 다르다. 일단 연잉군이라는 인물이 그렇다. 훗날 영조가 되는 이 인물은 물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전형 리더이긴 하다. 그의 주변에 박문수(권율)나 여지(고아라), 달문(박훈) 같은 인재들이 모여드는 이유다. 하지만 연잉군 또한 어좌에 대한 욕망을 부정하지 않는다. 무수리 출신 최숙빈의 아들로 태어나, 결코 어좌를 엿볼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그는 방탕하게 시간을 보낸 인물이다. 그 누구보다 왕재를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태생으로 길이 막혀버린 그의 좌절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인 숙종(김갑수)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며 질책한다. 그 다른 선택이란 어좌에 대한 욕망을 말한다. 숙종 역시 연잉군을 왕재로 여겼다는 뜻이다. 

 

이 천출로서 소외됐던 왕자라는 위치는 <해치>가 연잉군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포착해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 누구보다 어좌에 대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면서도 저잣거리에서 핍박받는 민초들의 사정을 잘 아는 인물. 그토록 힘겹게 살아가지만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갖은 수탈을 당하고, 심지어 죽게 되도 항변조차 하지 못하는 민초들의 심정은 어쩌면 연잉군의 ‘천출’로서 겪는 심정과 맞닿아 있었을 거라는 심증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가 양반들 앞에 나아가 “누가 누구 덕에 사는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건 민초들의 고충을 말하는 것이지만, 또한 거기에는 자신의 처지에서 우러나는 진심이 담겨있을 수 있었다. 

 

이처럼 <해치>가 그리는 연잉군은 이미 역사의 승자이기 때문에 모든 게 선인 그런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어쩌면 왕 같은 인물은 그 자신의 노력 또한 당연히 필요하지만 시대의 공조가 만들어낸 선택의 결과라고 <해치>는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천출이었다는 그 신분이 오히려 당대의 어지러운 당파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폐되어가던 민초들의 민심을 얻게 되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소외됐던 만큼 커진 어좌에 대한 욕망은 그를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얘기다. 

 

<해치>는 연잉군의 이런 출신의 문제가 가진 이중적인 속성을 밑거름으로 삼아, 그 욕망이 실현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사헌부 같은 감찰기관의 개혁을 중심에 세운다. 즉 노론 같은 가진 자들이 수탈하고 핍박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자행했던 그 많은 비리들이 가능했던 건 독립을 유지해야할 사헌부가 이들과 결탁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첫 회 연잉군이 과거시험장에서의 비리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등장하고, 그로 인해 박문수 같은 실력은 있지만 연줄이 없어 연거푸 낙방하게 된 인물을 알게 되는 에피소드로 시작하는 건 향후 사헌부 개혁의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한 밑그림인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 밀풍군(정문성)이나 위병주(한상진) 같은 인물들과의 대결이 시작된다. 이들은 물론 전형적인 악역으로 그려지지만 그들 역시 그런 악당이 된 것이 저마다의 사정에 의한 것임을 드라마는 외면하지 않는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소현세자의 후손으로서 밀풍군은 어좌가 본래 자신의 것이었으나 빼앗겼다 여기는 인물이고, 위병주는 몰락한 남인의 혈통으로 당시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있던 당파 속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던 인물이다. 

 

연잉군이 결국 행하는 정치는 그래서 사헌부 개혁이라는 법치를 먼저 세우는 일로 시작한다. 정치권력이 너무나 강해져 위법이 자행되는 시대에 이로써 죽어나가는 민초들을 위해(또 이들의 위법으로 인해 소외된 인물들을 위해) 법치를 세운다는 건 아무 것도 없던 연잉군이 새로운 지지 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가 그를 왕재로 만드는 중요한 기회요소가 된다는 것. 

 

게다가 이러한 정치와 법치를 뛰어넘어 민초들의 지지까지 얻게 되는 건 연잉군이라는 인물이 가진 신분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이다. 노론의 실질적인 우두머리인 민진헌(이경영)은 신분질서가 ‘세상의 이치’라고 말하지만, 연잉군이 생각하는 이치는 다르다. “누가 누구 덕에 사는가”라는 질문에 그 생각이 담겨있다. 

 

<해치>가 보기 드문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는 건, 이 작품이 연잉군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바라보는 현재적 시선의 날카로움 때문이다. 거기에는 지금 현재 우리에게도 갈급한 정치 이전에 법치, 아니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대로 굴러가는 법 정의에 대한 현실인식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그 밑바탕에는 결국 권력은 민심으로부터 나온다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세상의 이치’가 그려져 있다.(사진:SBS)

‘자백’, 이준호가 파고들어갈 진실 어디까지 닿아있을까

 

진실을 마주한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tvN 토일드라마 <자백>은 그 감당하기 힘든 진실을 찾아가는 최도현(이준호) 변호사와 전직 형사 기춘호(유재명)의 추적기를 그리고 있다. 이들이 맞이하는 일련의 살인사건들은 맥락 없이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이거나 혹은 모방범죄처럼 보였지만 차츰 그 뒤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사건의 실마리가 된다. 그리고 이 거대한 사건의 끝에는 결국 최도현이 변호사가 되어서까지 알아내려 했던 아버지를 사형수로 만든 사건으로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자백>은 장르물이 갖는 문법을 너무나 잘 활용하는 드라마다. 초반 이 드라마가 세 개의 살인사건을 활용하는 방식에는 일종의 트릭이 들어가 있다. 10년 전 있었던 ‘창현동 살인사건’ 그리고 5년 전 벌어진 ‘양애란 살인사건’과 현재 벌어진 ‘김선희 살인사건’은 모두 둔기로 머리를 때려 쓰러뜨린 후, 병을 깨 잔인하게 여러 차례 찌르고 옷을 벗겨 모두 불태웠다는 공통점 때문에 한 범인의 연쇄살인이라는 심증을 갖게 만들었다. 

 

그래서 5년 전 검거된 인물이 한종구(류경수)지만 그는 최도현의 변호를 통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 이때 시청자들은 한종구가 억울한 누명을 썼던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5년 후 비슷한 방식으로 ‘김선희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 용의자로 한종구가 체포되면서 그가 사실상 연쇄살인범이라는 심증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또 한 번 시청자의 뒤통수를 친다. 한종구는 ‘김선희 살인사건’의 범인이 자신이 아니며 대신 5년 전 ‘양애란 살인사건’은 자신이 저질렀다 말한다. 실제로 5년 전 양애란 살인사건에서 붉은 색에 대해 범인이 더 과도한 집착을 보였다는 사실은 두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이 아니라는 정황증거가 된다. 동일한 연쇄살인범의 행동이라면 뒤에 벌어진 김선희 살인사건에 더 과도한 집착이 나타나야 했지만 정반대 양상이었기 때문이다. 

 

한종구는 결국 법정에서 5년 전 양애란을 죽인 건 자신이라고 증언함으로써 ‘김선희 살인사건’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고, 5년 전 사건 역시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처벌받지 않게 된다. 하지만 최도현은 한종구의 어머니가 실종되었다는 걸 알고 그 집을 조사하던 중 벽면 가득 채워진 “죽어!”라는 낙서와 방바닥에서 찾은 붉은 색 손톱을 통해 붉은 색에 집착증을 가진 한종구가 어머니를 살해했을 거라는 걸 확신한다. 그는 슬쩍 한종구에게 그 집이 철거될 거라는 걸 흘리고, 벽 뒤편에 숨겨두었던 사체를 꺼내려던 한종구를 검거한다. 

 

세 개의 살인사건을 통해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이야기를 전개했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기춘호는 5년 전 양애란 살인사건이 한종구의 범행이라면, 10년 전 창현동 살인사건과 현재 벌어진 김선희 살인사건은 어쩌면 동일한 연쇄살인범의 범행일 수 있다는 심증을 갖는다. 게다가 한종구 역시 어쩐지 이 연쇄살인범의 살인과 무관한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심지어 한종구는 최도현이 그토록 궁금해 하는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만든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과 연루되어 있고 그 내막 또한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차승후 중령의 운전병이었던 것. 

 

<자백>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진실에 대한 갈증이 커지는 건 밝혀졌다 싶은 진실이 사실은 더 큰 진실의 작은 연결고리였다는 게 계속 드러나기 때문이다. 최도현의 아버지를 사형수로 만든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은 또한 대통령의 조카 박시강(김영훈) 밝은 정치당 비대위원장과 연루된 거대한 무기도입 로비와도 연결되어 있을 거라는 심증을 갖게 만든다.

 

도현이 과거 심장병으로 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도 이 거대한 사건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사형수가 되면서까지 침묵해온 아버지의 선택이 도현의 심장이식수술과 연관이 있어 보여서다. 따라서 갑자기 튀어나온 듯 보이는 간호사 조경선(송유현)의 과실치사 사건도 당장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과거 학창시절부터 있어온 교장 김성조(김귀선)의 상습적인 성범죄로 고통 받았던 친구 유현이(박수연)를 위해 조경선이 계획한 살인이었다는 것. 조경선이 특히 예뻐했다는 유현이의 아들 유준환(최민영)이 당시 김성조의 성폭행으로 낳은 아이일 수 있다는 사실은 그의 계획살인의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를 파면 또 다른 진실이 나오고, 그 진실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것이 감당해내야 하는 무게는 점점 커진다. 유현이의 아들은 과연 이 사건의 진실을 어떻게 감당해낼 수 있을까. 아버지가 사실은 성폭행범이었고, 자신이 그 범죄로부터 태어났으며 결국 그런 아버지는 살해당했다는 진실. 이걸 과연 감당해낼 수 있을까.

 

최도현의 앞에 놓인 진실 또한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가 사형수가 된 일이 만일 자신과 연관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또한 그의 심장이식을 위해 아버지가 모종의 거래를 했고 심장의 공여자가 이를 위해 희생됐다면 어떨까. 꿈속에 계속 등장하는 트럭에 받쳐 사고를 당하는 장면 또한 예사롭지 않은 후반의 반전을 예고하는 것만 같다. 

 

물론 무엇 하나 명확히 밝혀진 게 없고 향후에도 끝을 보기 전까지는 진실로 드러난 것조차 또 다시 뒤집어지거나 거대한 사건의 작은 부분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계속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마치 최도현에 빙의된 듯 빠져드는 이 미칠 듯한 궁금증은, <자백>이 갖고 있는 촘촘하게 연결된 사건들과 그걸 끊임없는 궁금증으로 만들어내는 솜씨 좋은 이야기전개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구조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떠한 진실을 마주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하며 또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가 하는.(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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