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 이 미국 이야기에 우리네 관객들이 열광하는 까닭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조던 필 감독의 영화 <어스>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반응이 심상찮다. 개봉 후 3일 만에 70만 관객을 넘어섰고,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겟아웃>으로 한국 팬들까지 갖고 있어 ‘조동필’이라고도 불리는 조던 필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 때문에 이미 개봉 전부터 기대가 몰렸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어스 Us>는 제목에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즉 ‘우리’라는 뜻이지만 다른 식으로 들여다보면 ‘미국 United States’의 약자로 보인다. 이런 중의적 의미처럼 <어스>는 미국 사회가 가진 흑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그 이야기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겟아웃>에서부터 조던 필 감독이 공포라는 장르를 통해 일관되게 갖고 온 세상에 대한 인식이다. 

 

<어스>가 그저 B급 공포영화 그 이상의 성취를 보여주게 된 건,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상징들이 담겨져 있어서다. 영화 시작과 함께 카메라가 아주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보여주는 작은 케이지 안에 갇혀 있는 여러 종류의 토끼들은 <어스>라는 제목과 어우러지며 이 영화가 그리려고 하는 미국사회가 이 풍경을 닮았다는 걸 암시한다. 영화 곳곳에 풍자적 코미디가 가득 찬 <어스>는 그래서 이 첫 장면에 으스스한 긴장감과 동시에 피식 피어나는 웃음을 담아낸다. <어스>는 소름 돋는 공포영화지만 풍자적 코미디가 강해 중간 중간 빵빵 웃음이 터지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어스>가 주는 공포는 ‘도플갱어’의 존재라는 이 영화의 세계관에 의해 만들어진다. 어느 날 휴가를 떠난 애들레이드(루피타 뇽) 가족은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이들의 공격을 받는다. 무단침입해 들어온 이들 중 애들레이드와 똑같이 생긴(하지만 목소리나 하는 행동은 완전히 다른) 여자는 숨겨진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겉으로 드러난 빛이 있지만 이면에 그림자처럼 사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들은 토끼 생고기를 먹어야 했고, 누군가는 부드럽고 편안한 인형을 선물 받을 때 그들은 날카로워 피가 나기도 하는 인형을 받았다는 것. 

 

도플갱어들의 공격은 그 차별적으로 살아왔던 것에 대한 분노이면서 동시에 항변이다. 지하에서 그림자처럼 살아왔던 이들은 지상으로 나와 정반대로 빛으로서 살아온 이들을 공격한다. 그리고 손에 손을 잡고 빈곤층을 돕기 위해 1986년 미국에서 벌어졌던 ‘Handa Across America’ 캠페인을 그대로 본 딴 그들의 거대한 인간 띠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연대하며 함께 살아가자는 운동이었지만, 실제로는 지하 세계에 소외된 그림자 같은 존재들을 밑바탕으로 삼는 사회. 그것이 미국이고 ‘우리’라는 걸 조던 필 감독은 공포 장르를 가져와 통렬히 비판한다. 

 

진짜와 가짜, 빛과 그림자, 지상과 지하, 백인과 흑인 등등. 영화는 이런 대비되는 것들을 가져와 그 부딪침이 만들어내는 갈등을 통해 공포를 유발한다. 하지만 이 공포는 단지 표피적인 두려움에서 나오는 공포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이중적 차별이 가진 공포이고, 또 겉으로는 연대를 이야기하지만 이면에는 여전히 남겨진 차별들이 존재하고 있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충돌하고 폭발할지 알 수 없는 그 상황이 만들어내는 공포다. 따라서 영화를 한참 보고 있으면 미국사회가 가진 허위성 같은 면들을 새삼 발견하면서 그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공포라는 걸 알게 된다.

 

대책 없는 낙관과,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힘을 기반으로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그래서 ‘지구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에 조던 필 감독은 공포의 실체를 포착해낸다. 어두운 면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을 저 지하 밑바닥으로 숨겨두고 없는 것처럼 억누르며, 그들의 희생을 통해 유지되는 사회가 주는 공포. 누군가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때 누군가는 그만큼의 희생을 치러야한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대책 없는 낙관의 공포가 그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이 위기에 처한 애들레이드 가족은 놀랍게도 공포의 희생자가 아니라 마치 롤러코스터의 스릴러를 즐기는 이들이나, 액션영화의 주인공이나 된 것처럼 이 상황을 심지어 즐기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영화는 마치 그런 상황들을 B급영화의 코드처럼 착각하게 만들지만, 영화 말미에 이르러 보여주는 반전은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실체라는 걸 드러낸다. 낄낄 대고 웃으며 보다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한 충격을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다.

 

흥미로운 건 미국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에 우리네 관객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건 아마도 조던 필 감독이 기막힌 공포영화의 새로운 장을 보여주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의 공포의 기반이 되는 흑인사회가 가진 차별과 소외의 정서가 우리네 서민들의 정서와도 맞닿아 있는 면이 있어서일 게다. 항상 겉으로는 밝은 사회를 이야기하지만 매일 같이 터지는 사건들을 통해 들여다보면 그 밑에 숨겨진 어두움과 소외된 존재들이 발견되는 우리 사회. 그래서 <어스>가 ‘미국’과 함께 중의적으로 담고 있는 ‘우리’라는 의미에 우리네 관객들도 동조하는 마음이 생기는 게 아닐까.(사진:영화'어스')

어떻게든 웃겨주겠다는 '열혈사제' 제작진의 절절한 진심

 

뭐든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 갑갑한 현실에 유쾌하고 통쾌한 한 방을 주기 위해서라면 뭐든 다 끌어오겠다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 안에는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버닝썬 게이트’가 통째로 녹아들어 있다. 일찍이 이런 사태를 예상했던 거라면 놀라운 현실 인식이고, 재빨리 이 소재를 드라마 소재로 끌어왔다면 역시 남다른 순발력이다.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가 갈수록 시청자들을 빨아들이는 이유다.

 

<열혈사제>에서는 친절하게 캐릭터를 이용한 도표를 보여주며 이른바 ‘라이징 문’ 게이트의 전모를 설명해준다. 마약까지 유통하는 클럽 라이징 문이 있고 그 마약을 하기 위해 구담시까지 찾아오는 연예인과 재벌2세들이 있다. 그 클럽은 구담경찰서 남석구 서장(정인기)이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고 그래서 경찰의 비호를 받는다. 하지만 그 선은 강석태(김형묵) 같은 부장검사와도 맞닿아 있고 정동자(정영주) 구청장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황철범(고준)이 움직이는 조폭과도 결탁해 불법적인 일로 돈을 끌어 모으는 거대한 게이트를 만든다. 재벌2세와 검찰 같은 권력의 비호는 물론이고 그 윗선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드라마 속 라이징 문 클럽과 경찰, 조폭과의 유착 문제는 버닝썬 게이트에서도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심지어 의원과 검사까지 제거하려는 러시아 조폭들이 검거되어도 범죄인 인도조약 운운하며 자세한 사건경위도 조사하지 않고 넘겨버리는 경찰 윗선의 조치에 서승아(금새록) 같은 정의를 꿈꾸는 신출내기 형사는 “이래서 경찰을 믿을 수 있겠냐”고 항변한다.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갑한 상황을 두고 일침을 날리는 듯한 뉘앙스가 그 대사에는 들어 있다.

 

<열혈사제>는 재빠르게 라이징 문이라는 클럽 이야기를 끌어와 현재 벌어진 버닝썬 게이트의 현실을 비틀어 풍자하면서도, 동시에 이 드라마가 그려나가려 했던 길을 잃지 않는다. 클럽은 갖가지 불법을 통해 검은 돈을 벌어들이는 곳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여진 검은 돈들을 세탁하기 위해 이들은 재단을 운영하려 한다. 이들이 성당이 운영해왔던 복지원을 자기들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던 이유다. 김해일(김남길) 신부가 이 모든 사건에 뛰어들게 된 촉발점이었던 이영준(정동환) 신부의 살인사건도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실을 가져오지만 <열혈사제>는 굳이 그 현실의 리얼리티나 개연성에 집착하지 않는다. 현실이었다면 실제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갖가지 권력형 비리들이지만, 이 드라마는 김해일 같은 돈키호테 신부와 점점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구대영(김성균) 형사, 박경선(이하늬) 검사, 서승아 형사가 공조해 유쾌하고 통쾌한 사적이고 공적인 정의구현 과정을 그려낸다. 

 

워낙 현실이 갑갑하기 때문인지 <열혈사제>의 코미디로 구현된 과장된 이야기와 캐릭터들은 시청자들을 반색하게 만든다. 공조하기로 마음을 먹은 김해일과 박경선이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코트를 날리며 걸어오는 장면이 우스우면서도 든든하고, 갑자기 영화 <옹박>의 주인공처럼 무에타이로 조폭들을 날려버리는 외국인 근로자 쏭삭(안창환)의 등장에 속이 다 시원해진다. 

 

<열혈사제>는 그래서 강력한 사회풍자코미디이자 현실 반영 활극의 묘미를 선사한다. 매일 매일 터져 나오는 뉴스 속 갑갑한 현실 속에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이 드라마를 보는 유쾌하고 통쾌한 맛에 산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이든 끌어와 웃음으로 활극으로 풀어주겠다는 드라마의 진심이 이토록 절절하게 느껴지기는 참 오랜만이다.(사진:SBS)

‘스페인하숙’, 차배진의 대접에 시청자도 덩달아 기분 좋아지는 까닭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 다섯 시 유해진은 일어나 현관 문 앞에 떨어진 낙엽들을 쓴다. 가끔 스트레칭을 해가며 낙엽을 쓸고 그는 청소를 시작한다. 복도와 계단, 다이닝룸과 세탁실 등등 구석구석을 물걸레질 하고 카페트까지 들어 올려 그 밑까지 청소한다. 비슷한 시간에 차승원은 일어나 손을 씻고 아침을 준비한다. 전날 미리 만들어두었던 김치전 반죽을 꺼내놓고, 역시 미리 끓여두었던 된장국도 데워놓는다. 계란 한 판이 다 들어간 두툼한 계란말이도 만들어 놓고, 혹여나 부족할까 만두도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게 튀겨놓는다. 역시 일찍 일어난 배정남은 차승원의 손발이 되어 척척 그를 돕는다. 간이 맞는지 맛을 보고 “끝내준다”고 리액션을 해줘 차승원을 웃게 만드는 건 덤이다. 

 

tvN 예능 <스페인 하숙>을 보면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 이른바 ‘차배진’이 얼마나 부지런하게 움직이는가를 알 수 있다. 새벽잠은 아예 없는 것인지 마치 경쟁하듯 일찍 일어나고, 저마다 뭘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일을 한다. 일의 영역도 확실히 구분되어 있어 차승원은 주방을 맡고 유해진은 ‘이케요(IKEYO)’라는 토종 브랜드를 내도 될 법한 보수(?)는 물론이고 청소와 손님 응대를 맡는다. 특정 역할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아 일이 가장 많아 보이는 배정남은 차승원의 보조로서 손님 대접에 정신없는 멘탈까지 챙겨준다.

 

<스페인 하숙>은 이들이 쉴 새 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차승원과 유해진이 섬에서 유유자적 세 끼 챙겨먹고 힐링하던 <삼시세끼>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들이 쉴 새 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기분이 좋아진다. 이 즐거움의 이유는 뭘까. 그건 누군가를 챙겨주고 대접해주는 그 마음이 갖게 되는 즐거움이다. 

 

아마도 밥벌이 때문에 혹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새벽부터 일어나야 하고 또 하루 종일 이 일 저 일 뛰어다니며 해야 한다면 그걸로 즐거움을 갖기란 어려울 게다. 시쳇말로 “즐기면서 일하라”고 말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하지만 <스페인 하숙>의 일은 이런 밥벌이나 현실과는 뚝 떨어져 있는 일이다. 

 

외국인 손님이 갑자기 들이닥쳐 부랴부랴 그들의 입맛에 맞게 간장양념 돼지불고기를 준비하고 맵지 않은 계란국을 만들어 내놓는 차승원을 보며 즐거워지는 건 일의 차원을 넘어서 있는 진짜 손님을 대접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다. 샤워할 때 벗어놓은 옷에 물이 튄다는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옷을 넣을 수 있는 양동이에 프라이버시를 위한 뚜껑을 만들어 샤워실에 비치해놓는 유해진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손님이 올 때 마치 귀한 친구라도 온 듯 반가워하는 배정남의 기분 좋은 호들갑은 어떻고.

 

<스페인 하숙>이 굳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가서 하숙집을 연 건 우리가 현실에서는 좀체 경험할 수 없는 ‘일의 차원을 넘어서는 손님 대접’의 상징적인 풍경을 자연스럽게 잡아낼 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그 먼 길을 오롯이 두 다리로 걸어오는 순례자들이란 어찌 보면 현실에서 하루하루를 매일 힘겨워도 걸어 나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저마다의 고민들이 있지만, 적어도 걸을 때만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더라는 어느 순례자의 말처럼 힘들어도 앞으로 나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어쩌면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 되어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삶의 여정에서 대단한 건 아니지만 따뜻한 밥 한 끼와 편안한 하룻밤 잠자리가 주는 위안은 얼마나 큰 것인가. <스페인 하숙>은 그래서 스페인의 어느 알베르게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하숙을 하는 것이지만, 이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극진히 대접하며 자신들은 정작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즐거운 모습들이 ‘숭고한 느낌’마저 전해준다. 그것이 어쩌면 힘들고 긴 여정에서 우리들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우리에게는 행운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기도 하는)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사진:tvN)

'닥터 프리즈너', 콘텐츠만 좋으면 통한다는 건

 

‘교도소판 왕좌의 게임’이라는 문구가 실감난다. KBS 수목드라마 <닥터 프리즈너>는 나이제(남궁민)와 선민식(김병철)의 치고받는 팽팽한 대결로 단 4회 만에 수목극의 일방적 독주를 시작했다. 8.4%(닐슨 코리아)로 시작했던 시청률이 꾸준히 상승해 14.5%까지 올랐고, 화제성 역시 단연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닥터 프리즈너>의 독주는 KBS 드라마로서는 그 의미가 깊다. 전작이었던 <왜그래 풍상씨>는 시청률이 22.7%까지 올랐지만, 주중 수목극에 이런 뒷목 잡게 만드는 문영남표 가족극을 세웠다는 점에서 꽤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온 바 있다. 좀 더 실험적인 작품들이 세워져 경쟁하던 수목극 시간대에까지 주말극에 어울릴만한 가족극을 가져온 것에 KBS가 아예 젊은 시청층을 의식하지 않고 시청률에만 올인하겠다는 선언이 아닌가 저어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닥터 프리즈너>는 이런 의구심을 단 몇 회 만에 날려버렸다. 감옥과 병원을 오가는 이질적인 두 장르의 결합을 통해 교도소의 패권을 장악하고 감옥에서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사법정의를 사적복수와 엮어낸 이 작품은 넷플릭스에 올려도 먹힐 법한 장르물의 쾌감을 선사한다. 젊은 시청층들이 열광할만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새롭게 시작한 MBC <더 뱅커>는 여러모로 막강한 경쟁작을 만나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됐다. 일본 만화인 <감사역 노자키>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김상중과 채시라, 유동근 같은 든든한 배우들을 포진시키며 기대를 높였던 드라마다. 실제 드라마의 퀄리티도 나쁘지 않다. “은행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진중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로 고객들의 삶까지 살펴보는 노대호(김상중)라는 인물이 대한은행 감사를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파벌싸움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대한은행의 개혁을 추구하는 이야기지만,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은행을 둘러싼 서민경제의 애환과 부조리 같은 것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일본 원작이 갖는 조금은 느긋하고 정적인 정서적 거리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노대호 역할을 연기하는 김상중은 특유의 대사톤이 벌써부터 이 인물의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지만, <닥터 프리즈너>와 비교해보면 아직까지 팽팽한 대결구도가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더 뱅커> 역시 육관식 부행장(안내상)과 노대호의 대결구도가 좀 더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하면 만만찮은 긴장감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SBS <빅이슈>는 CG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방영되어 벌어진 방송사고의 여파가 꽤 깊게 남았다. 사실 <빅이슈>는 이제 막 연예계와 권력 사이에 성상납 관련 이슈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이 소재는 최근 버닝썬 게이트와 장자연 사건 재조사 이슈와 맞물리면 결코 약하다 보기 어렵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방송사고 이슈가 더 큰 ‘빅이슈’가 되면서 이런 기회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됐다.

 

흥미로운 건 <닥터 프리즈너>가 단 4회 만에 KBS 수목드라마의 패권을 장악하고 그 색깔 또한 바꿔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뭘까. 그건 이제 방송사가 어디든 좋은 콘텐츠라면 통한다는 사실이다. 플랫폼이 가진 힘을 여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좋은 콘텐츠 하나는 심지어 방송사의 이미지까지 달리 보이게 만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한다. tvN이 그간 좋은 콘텐츠들을 계속 배치해 드라마의 새로운 강자로 섰어도, 현재 수목에 방영되는 <진심이 닿다>가 그다지 화제가 없는 것처럼 플랫폼의 힘을 만드는 건 이제 플랫폼 브랜드가 아니라 콘텐츠 한 편의 힘이다.

 

결국 좋은 콘텐츠를 잡아올 수 있는 능력이 그 플랫폼의 힘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비정해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말로 하면 좋은 작가와 연출자 그리고 배우들을 포진할 수 있는 ‘투자여건’이 방송사의 향방을 가르는 관건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닥터 프리즈너>는 투자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제작비가 100억 원이 넘게 투입되었다고 한다. 이미 눈높이가 높아진 시청자들에게 더 완성도 높은 작품만이 살길이 되었고, 그만한 투자만이 좋은 작품을 포진시킬 수 있는 길이 되었다. 지상파들에게는 여러모로 기존 드라마 제작방식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투자규모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가 중대한 숙제가 되었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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