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친구아들’, 친구, 가족, 사랑, 휴먼까지 다 담은 종합선물세트

엄마 친구 아들

정해인과 정소민이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tvN 새 토일드라마 ‘엄마친구아들’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커진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봄밤’으로 멜로의 결을 제대로 보여줬던 정해인이고 ‘이번 생은 처음이라’부터 ‘간 떨어지는 동거’ 그리고 ‘환혼’에서 무덕이 역할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던 정소민이다. ‘엄마친구아들’은 캐스팅부터 제대로 힘을 줬다. 

 

그래서인지 첫 회는 사실상 이 두 배우가 입은 캐릭터들의 매력으로 온전히 채워졌다. 잘 나가는 젊은 건축가인 최승효(정해인)와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글로벌 대기업에 입사해 이제 결혼식까지 앞둔 탄탄대로의 배석류(정소민)가 그들이다. 어려서 같은 목욕탕 그것도 같은 탕에서 목욕까지 같이 했던 소꿉친구지만,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결혼식을 앞두고 청첩장까지 찍었던 석류가 미국에서 돌아온 것. 게다가 폭탄 발언까지 한다. 회사도 그만 뒀다고. 그 사실을 알고는 너무나 황당해 화가 잔뜩 난 석류의 엄마 미숙(박지영)이 대파로 딸을 때릴 때 그걸 온전히 다 맞은 건 다름 아닌 승효다. 미국에서 돌아온 석류와 승효가 진짜 엄친아, 엄친딸처럼 티격태격하며 보여주는 그 친밀함으로 가득 채워진 첫 회. 두 사람이 연애 감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서 오히려 그들이 앞으로 펼쳐나갈 로맨스가 더더욱 기대된다. 

 

드라마는 신하은 작가의 전작이었던 ‘갯마을 차차차’가 그랬던 것처럼, 인물들 간의 다양한 관계성들이 담는 재미들로 포진되어 있다. 시작부분에 승효의 엄마 혜숙(장영남)과 석류의 엄마 미숙, 또 모음(김지은)의 엄마 재숙(김금순)과 이들 4인방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듯한 인숙(한예주)이 함께 등산을 하며 자식 자랑으로 늘어놓는 이야기는 마치 가족드라마의 도입부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이 ‘가족’이라는 소재를 먼저 밑그림으로 깔고 있다는 걸 그 도입이 보여준다. 

 

그러면서 혜숙과 미숙이 자식 자랑 배틀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승효와 석류로 옮겨가고 석류의 귀국으로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석류의 둘도 없는 친구 모음의 이야기도 슬쩍 들어가 있다. 119 구급대원으로 시원시원하고 털털한 그의 매력을 우연히 보고 겪게 된 청우일보 기자 단호(윤지온)와의 심상찮은 멜로가 벌써부터 예고된다. 또 119 구급대원인 모음이 술 취해 쓰러진 당뇨 노숙인을 도와주는 이야기에서는 이 작품이 뻗어놓은 이야기가 휴먼드라마적인 부분까지 나아갈 거라는 걸 기대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엄친아, 엄친딸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가족드라마적 서사와 더불어, 승효와 석류 그리고 모음과 단호의 멜로가 더해져 있고 그들 간의 끈끈한 우정 또한 빠지지 않는다. 나아가 각각의 인물들이 숨겨온 서사들이 등장하면서 아마도 이 작품은 휴먼드라마의 결까지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관계의 묘미를 종합선물세트처럼 담아내는 작품이 될 거라는 것.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관계에 있어서 없는 게 없는 ‘엄친아’ 같은 드라마랄까. 

 

어찌 보면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는 게 아니어서 슴슴한 맛으로 시작되지만 인물 간의 관계성이라는 건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은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삶이 팍팍해 더더욱 웃음이 간절해지는 시기에 이 드라마가 가진 코미디의 밀도는 승효와 석류가 주고받는 대사의 말맛에서부터 느껴진다. 

 

끝없이 티격태격 말장난을 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무심한 척 가장하지만 승효와 석류가 던지는 몇 마디는 두 사람의 진심을 슬쩍 꺼내보인다. “인생에서 큰 결정을 한꺼번에 둘이나 내렸잖아. 타격이 없으면 그게 사람이냐? 인형이지.” 석류에 대한 승효의 걱정이 담긴 말이다. 그런데 그 잘나가던 석류는 왜 퇴사에 파혼까지 하고 귀국하게 된 걸까. 석류 또한 승효에게 그 이유를 차분히 꺼내놓는다. 

 

“그냥 내 인생이 너무 과열됐던 것 같아. 나 엄청 빡세게 살았잖아. 한국에서 학교 다니다가 갑자기 미국으로 유학가고 거기서 또 적응하고 취직하고 결혼까지 그렇게 내내 풀가동을 돌리니까 CPU가 멈춰버린 거지. 화면도 멎고 아무 키도 안 먹고 별 수 없더라. 그냥 전원을 껐다 켜는 수밖에.” ‘갯마을 차차차’에서부터 일관된 주제의식이지만 ‘엄마친구아들’ 역시 치열한 삶에 방전된 이들이 잠시 멈춰 서서 삶을 되돌아보는 그런 이야기를 그려나갈 거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른바 ‘엄친아’, ‘엄친딸’을 이야기할 때 그 의미에 담겨 있는 건 ‘비교’이고 마치 성공의 지표처럼 내세워지는 어떤 삶이다. 그래서 그 삶 바깥으로 나오면 마치 실패한 것처럼 여기는 사회가 꺼내놓은 게 바로 ‘엄친아’라는 단어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보면 이걸 제목으로 세워놓은 이 작품은 그런 비교와 경쟁 사회의 강박관념을 잠시 벗어던지게 해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치열한 성공이 아니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우리 주변에는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사랑이 있고 사람이 있으니. (사진:tvN)

“응원한다. 내를. 그리고 느그를.” 박범수 ‘빅토리’

빅토리

“응원한다. 내를. 그리고 느그를.” 박볌수 감독의 영화 ‘빅토리’는 필선(이혜리)이 함께 치어리딩을 해온 친구들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끝을 맺는다. 때는 1999년. 세기말의 불안과 새천년의 기대가 교차하는 시점, 불안을 기대로 바꾸듯 저 멀리 솟아오른 폭죽이 불꽃놀이를 펼쳐놓는다. 그건 필선의 말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응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1999년이든 현재든 응원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 

 

댄서의 꿈을 갖고 있는 필선(이혜리)과 미나(박세완)는 서울에서 온 치어리더 세현(조아람)을 내세워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든다. 단지 춤 연습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차츰 이들은 치어리딩에 빠져들고, 만년 꼴찌 거제상고 축구부 또한 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유의 발랄한 생명력을 가진 청춘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응원처럼 사회 곳곳에 스며든다. 

 

이 영화가 하필 거제를 배경으로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조선 산업의 부침에 따라 노동자들의 치열한 삶이 있던 곳이고 서울에서 떨어진 소외된 지역정서를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2017년 다큐멘터리로 방영됐고 이듬해 드라마로도 제작됐던 ‘땐뽀걸즈’도 거제 특유의 지역 정서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큰 감동을 줬다. 댄스스포츠에 도전하는 거제여상 학생들의 모습은 조선업 경기 침체로 활기가 사라진 거제를 응원하는 청춘들의 몸짓으로 그려졌다. 

 

‘빅토리’가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지친 어깨를 토닥이는 위로와 감동으로 다가온다. 특히 필선의 말처럼 누군가의 응원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건네는 응원 또한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늘 조연처럼, 누군가의 주변에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 분들에게는 작지 않은 울림을 줄 것이다. (사진:영화'빅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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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1988’ 덕선에서 ‘빅토리’ 필선으로 돌아온 혜리

빅토리

2015년 ‘응답하라 1988’이 메가히트를 기록했을 때 필자는 몇몇 기자들에게 혜리의 매력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불어본 적이 있다. 그 때 돌아온 답변은 ‘순수하다’는 것이었다. 다소 막연하게 들리는 ‘순수하다’는 표현에 대해 좀더 자세히 물었다. 그러자 그건 마치 ‘아기 같은 백지상태의 순수함’이라고 했다. 그 말에 당시 거의 신드롬에 가깝게 생겨난 혜리에 대한 대중적인 인기가 단박에 공감이 됐던 적이 있다. 백지상태라는 건 다른 시각으로 보면 모든 게 가능성이라는 말도 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개인적인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는 일이지만, 그래서 혜리는 그 백지상태의 가능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어느 순간에 그 존재가 빛을 발하게 됐다. 

 

지금도 혜리를 이야기할 때 회자되고 있는 ‘진짜사나이’의 이른바 ‘앙탈애교’로 불리는 한 장면을 떠올려보라. 그 한 장면은 순식간에 군대라는 조금은 격식이 요구되는 곳에서 그걸 뚫고 나오는 마음의 한 부분을 드러내줌으로써 보는 이들의 기분을 활짝 피어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유튜브 방송 ‘덱스의 냉터뷰’에 출연한 혜리가 말한 것처럼 그건 애교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간 훈련을 받으며 정이 들었던 터라 퇴소식에서는 좀더 유하게 그 친분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된다고 빡빡하게 대하는 상사의 엄격함에 소심한 짜증을 드러낸 것이었다. 사실 그 누구도 그 상황에서 그런 리액션이 나올 거라는 걸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순간이 보여준 틈입의 카타르시스는 컸다. 엄격한 군율이 존재하는 곳이긴 하지만 결국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혜리의 그 감정표현이 말해줬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혜리는 그 순수한 백지상태여서 어느 순간 솔직하게 꺼내지는 감정이 특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 혜리가 덕선이라는 캐릭터에 캐스팅된 것 역시 ‘진짜사나이’ 덕분이었다. 올해 초 채널 십오야에 출연한 신원호 감독은 ‘진짜사나이’에 나온 혜리를 보고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느꼈고 그래서 애초부터 혜리를 덕선으로 점찍어 뒀다고 했다. 이런 선택에는 예능PD 출신이었던 신원호 감독과 또 역시 예능을 함께 해온 이우정 작가가 가진 독특한 드라마 작법과도 연관이 있다. 드라마를 예능 방식으로 제작하는 이들은, 매력적인 인물을 먼저 캐스팅하고 그 인물을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캐릭터를 창출하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그 자체로 순수한 매력을 갖고 있는데다, 배우라는 영역에 있어서 거의 백지상태의 가능성을 가진 혜리는 너무나 좋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혜리를 캐스팅한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덕선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그건 예상한대로 엄청난 시너지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이로써 걸스데이로 데뷔했지만 ‘진짜사나이’로 예능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또 ‘응답하라 1988’로 배우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된 혜리는 멀티 엔터테이너로서 자리매김하게 됐다. 

 

어언 데뷔 14년 차가 됐지만 최근 영화 ‘빅토리’로 돌아온 혜리는 여전히 해맑은 소녀의 풋풋함과 건강함을 보여줬다. 이번 작품에 그가 맡은 배역의 이름이 ‘필선’이라는 건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 이번에는 필선으로 돌아온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빅토리’ 역시 혜리가 가진 그 순수한 매력이 찰떡같은 캐릭터를 만나 힘을 발휘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 맞춰 오락실 DDR 게임기 위해서 춤을 추는 첫 등장부터 관객들의 시선은 이 매력적인 인물에 여지없이 포획된다. 그건 걸그룹을 해온 데서 나오는 춤선의 내공과, 또 여러 작품을 통해 쌓여진 연기의 내공이, 그와 딱 어울리는 캐릭터와 만나면서 생겨나는 시너지다. ‘빅토리’ 역시 혜리라는 인물이 가진 매력들이 가장 잘 보여질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걸 영화 시작 몇 분만에 관객들을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딱 맞는 캐릭터와 만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건 과연 우연일까. 그렇지 않다. 혜리 역시 그 필모를 들여다보면 만만찮은 실패와 좌절로 인한 상처를 겪은 바 있다. 예를 들어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캐릭터를 연기했고, ‘딴따라’는 시청률이 저조해 잊혀진 작품이 됐다. 영화 ‘물괴’에서는 작품의 완성도도 떨어져 흥행에 실패하면서 연기력 논란까지 겪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투깝스’의 기자 역할에서는 괜찮은 평가가 나왔고, ‘간 떨어지는 동거’, ‘꽃피면 달 생각하고’, ‘일당백집사’에서도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즉 실패의 경험 속에서도 꿋꿋이 힘을 잃지 않고 달려온 결과 ‘빅토리’의 필선 같은 그의 에너지가 200% 발휘될 수 있는 배역을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빅토리’가 1999년 거제상고의 치어리딩 동아리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혜리라는 인물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느낌을 준다. 그건 ‘응원’이라는 키워드 때문이다. 이 작품 속 필선이 이끄는 치어리딩 팀은 만년 꼴찌팀인 거제상고 축구부를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지지만, 그 응원은 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필선의 아버지처럼 조선업을 근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거제 사람들 모두에게 그 응원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또한 댄서의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던 필선이 걸그룹으로 데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앞두고 다시 거제로 돌아와 못다한 치어리딩을 친구들과 함께 하는 모습은 어떤 가능성에도 열려 있는 이 인물의 건강한 에너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혜리라는 인물과도 잘 어울린다. 그간 제대로 해준 게 없다는 얘기를 꺼내 놓는 아버지에게 “고만 해라-”를 반복하며 결국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에서는 심지어 저 ‘진짜사나이’에서 살짝 짜증을 내면서도 거기에 따뜻한 마음이 얹어지는 혜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혜리라는 인물이 응원과 가능성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응원한다. 내를 그리고 느그를.” 영화에서 필선이라는 캐릭터로 혜리가 던지는 그 대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을 스스로 응원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응원하는 것이 자신의 가능성은 물론이고 누군가의 가능성을 열게 해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건 또한 14년의 시간 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를 응원하며 늘 새로운 가능성 앞에 세웠던 혜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글:국방일보, 사진:영화'빅토리')

‘폭군’의 조윤수, ‘마녀’의 김다미를 보는 듯한 폭발적인 존재감

폭군

박훈정 감독이 대본을 쓰고 연출한 디즈니+ 드라마 ‘폭군’의 서사는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는 않다. ‘폭군’ 프로그램이라는 초인 유전자 약물을 은밀히 개발하려는 국정원 소속 최국장(김선호)과 그걸 폐기하려는 미국 정보기관 소속 폴(김강우)이 대결하는 이야기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 약물 샘플을 가져오는 일을 의뢰받아 투입된 기술자 채자경(조윤수)과 최국장측에 서서 이 프로그램을 가로막는 이들을 제거하는 일을 의뢰받은 청소부 임상(차승원)이 끼어들면서 사건은 다소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이 폭군 프로그램이라는 엄청난 군사력을 키워낼 수 있는 프로젝트가 은유하는 건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핵무기와 그리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미국도 갖고 있고 러시아도 또 북한도 갖고 있는 핵무기를 왜 우리는 가질 수 없는가에 대해 최국장은 말한다. “근데 왜 왜 우리는 맨날 안되냐? 왜 우리는 핵도 안되고 대륙간 탄도도 안되고 이것도 안돼냐? 야 니들도 하잖아.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하다못해 저 위에 북한 애들도 다 하는데 왜 맨날 우리만 안된다는 거야?”

 

이것이 최국장이 미국의 압력과 그 압력에 의해 국정원 내부에서도 프로그램을 탈취해 제거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지만 끝까지 이를 멈추지 않으려는 이유다. 그래서 폴로 대변되는 미국 정보기관의 무시무시한 협박 앞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의연한 최국장의 면면은 그 자체로 카타르시스를 주는 면이 있다. 폭군 프로그램이 위험하기 이를 데 없고, 잔인한 실험 끝에 탄생한 것이지만 그걸 저들에게 빼앗기는 건 저들의 위협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폭군’은 이처럼 박훈정 감독의 ‘마녀’와 어딘가 계보를 같이 하는 작품이다. 시작은 국정원이 등장하고 조폭과 킬러들이 나오는 누아르와 스파이물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문을 열지만 점점 뒤로 갈수록 폭군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SF 판타지의 경향을 더해 넣는다. 심지어 크리처물의 특징까지 보이는 작품은 후반부에 가서는 마치 ‘무빙’의 VFX를 보는 듯한 초능력자들의 액션 양상으로 치닫는다. 

 

보기에 따라 ‘폭군’은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론 장르를 훌쩍 넘어서는 지점에서 액션이 너무 과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어두운 박훈정 감독 특유의 누아르적 분위기와 한계 따위는 필요 없다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액션의 파괴력은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몰입감을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이 과해 보이는 자극적인 폭력 수위와 장르를 뛰어넘는 과한 액션을 꾹꾹 눌러 무게감을 주는 건 배우들이다. 김선호는 역시 박훈정 감독의 페르소나답게 선한 얼굴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한기를 제공하고, 그와 대결하는 김강우 역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만큼 섬뜩한 인물의 면모들을 연기로 끄집어낸다. 여기에 차승원의 농담 같은 유머가 더해져 더욱 살벌한 청소부 역할이 빛을 발한다. 

 

하지만 작품 전체를 꿰뚫고 있는 힘은 역시 주인공 채자경 역할의 조윤수에서 나온다. 마치 ‘마녀’에서의 김다미를 보는 듯한 서늘함이 그 무표정에서 느껴지고 그 차분함이 주는 긴장감은 작품 끝까지 힘을 잃지 않는다. 놀라운 건 이 배우가 ‘사랑의 이해’에서 정가람을 두고 문가영과 삼각멜로 구도를 만들었던 그 배우라는 사실이다. 그 작품 속 해맑던 모습의 배우가 이 작품 속 괴물처럼 보이는 다크한 인물과 동일배우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4부작으로 마무리된 작품이지만 ‘폭군’은 보다 긴 서사가 예고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첫 번째 4부작은 채자경을 통해 제3의 종족이 등장하게 되는 일종의 밑그림 정도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 그 세계가 다음 시즌으로 이어져 나간다면 채자경 역할의 조윤수는 물론이고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임상 역할의 차승원도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충분히 몰입감을 주는 작품이지만 겨우 맛보기를 보여준 ‘폭군’이 시즌2로 돌아와 이제 제대로된 요리를 선사할 수 있기를.(사진: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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