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했던 JTBC 드라마들과 ‘재벌집 막내아들’은 뭐가 달랐을까

재벌집 막내아들

올 한 해 JTBC 드라마는 “부진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게다. 물론 작품성이 뛰어난 드라마가 없었던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도드라지는 작품이 박해영 작가의 <나의 해방일지>다. 이 작품은 올해 기억될 드라마라고 해도 될 법한 깊이를 보여줬지만, 그렇다고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입소문으로 6%대(닐슨 코리아)에 이르는 시청률을 거뒀지만 두 자릿 수 시청률은 요원했다. 

 

이런 사정은 작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괴물>, <구경이>, <인간실격> 같은 완성도 높은 작품이 있었지만 세 드라마 모두 최고 시청률은 각각 5.9%, 2.7%, 4.1%에 머물렀다. 그간 <밀회>나 <부부의 세계>, <SKY캐슬> 같은 완성도도 높고 대중성도 확보했던 드라마들을 내놨던 JTBC로서는 너무나 타율이 떨어지는 성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새로 시작한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그 편성부터가 공격적이었다. 주 2회 편성인 보통의 경향과 달리, 금토일 3회 편성을 시도했다. 그만큼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러한 공격적인 편성은 첫 주에 이미 효과를 거두었다. 첫 회 시청률 6%에서 2회 8.8% 그리고 3회에 10%를 돌파하며 드라마를 궤도에 올려놓은 것. 

 

<재벌집 막내아들>에 대한 이러한 확신은 작품을 보다보면 금세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작품은 최근 웹툰이나 웹소설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는 ‘회귀물’이다. 죽은 이가 과거로 되돌려져 다시 살아가게 되는 판타지 장르. 이른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정서를 자극하는 이 장르는 인생 자체를 리셋해서 다시 살아보고픈 이 시대 민초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이른바 ‘수저계급’이 이야기 될 정도로 태생적으로 삶이 결정되는 현실이 아닌가. 

 

윤현우(송중기)는 순양그룹 미래자산관리팀장이라는 그럴 듯한 직책을 갖고 있지만, 실상은 오너가의 갖가지 리스크들을 관리하고 해결해주는 머슴에 가깝다. 그런 그가 회사의 숨겨진 자산을 회수하기 위해 해외에 나갔다가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살해당한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여기서 비극적인 엔딩이어야 하지만 회귀물은 여기부터가 시작이다. 죽었던 그가 1987년으로 회귀해 순양그룹 오너가 진양철(이성민) 회장의 막내 손자 진도준(김강훈)으로 깨어난 것. 

 

이미 한 번 살아봤기 때문에 당대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다 알고 있고, 순양그룹의 속사정 또한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 꼬마는 놀라운 감으로 진양철 회장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1987년 6.29 선언 이후에 직선제로 치러진 대선에서 노태우가 당선될 걸 알고 진양철 회장에게 직접 비자금을 전달하라 조언하고, 대한항공 폭파 사건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진양철 회장을 메모 하나를 남김으로써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해준다. 진양철 회장에게 그 보상으로 대신 분당에 땅을 받은 그는 몇 년 만에 그 부동산으로 240억을 벌어들인다. 회귀물이 갖고 있는 다시 사는 삶이어서 뭐든 해낼 수 있는 그 판타지가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이 작품에는 8,90년대에 대한 복고가 끌어내는 정서적인 매력 또한 담겨 있다. 아날로그적인 영상과 당대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 스타일 등이 지금의 ‘뉴트로’ 트렌드를 자극한다. 이를 세련되게 보여주는 배우 송중기나 신현빈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게다가 이성민부터 김현, 윤제문, 김정난, 김남희, 조한철, 서재희, 김신록, 김도현, 정희태, 허정도 등등 만만찮은 중견 배우들이 포진해 극에 긴장감을 높이고, 이들 속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어린 주인공(김강훈에서 송중기까지)들의 대결구도는 흥미진진해진다. 

 

무엇보다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이성민의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단단한 카리스마와 그 단단함을 순식간에 풀어내 껄껄 웃게 만드는 송중기의 천진함이 묘한 긴장감과 훈훈함을 오간다. 이러니 드라마가 확신을 가질만하다. 판타지가 있고 시대극적 요소와 복고가 더해진데다 삶을 재설계하는 스토리가 주는 묘미가 있다. 여기에 윤현우와 다시 태어난 진도준 모두 누군가의 사주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이 문제를 주인공이 향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 또한 불러일으킨다. 일종의 복수 서사도 더해져 있는 것. 

 

3회 연속 편성에는 그만한 자신감이 있었다고 보인다. 그러고 보면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다소 평이한(어찌 보면 일일드라마 제목 같은) 제목도 그런 자신감의 표현처럼 보인다. 어쨌든 약 2년간에 걸쳐 부진의 늪에 빠져 있던 JTBC 드라마가 단 3회 만에 부활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JTBC측에서 ‘대중성’을 중심에 놓고 라인업을 세우겠다고 했던 그 말들이 진심이었다는 게 실감나는 결과다. 과연 <재벌집 막내아들>은 어디까지 나갈 수 있을까.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벌써 어떤 성과를 거둔 작품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사진:JTBC)

‘약한 영웅’, 웨이브의 다양한 색깔 보여준 미친 드라마

약한 영웅

뭐 이런 미친 드라마가 다 있나.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 영웅>을 보다 보면 절로 이 드라마 속 안수호(최현욱)가 연시은(박지훈)과 농담처럼 주고받는 “넌 진짜 또라이야”라고 하는 그 말 속의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오로지 공부만을 위해 사는 것 같은 공부벌레에, 이른도 어딘가 연약해 보이는 연시은이지만, 이 약해 보이는 고교생이 보는 내내 감정을 쥐고 흔든다. 

 

피가 끓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그러다 절규처럼 쏟아내는 주먹질에 무언가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만 그 뒷 끝에 남는 건 지독한 쓸쓸함과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뒤틀어진 감정이다. 연시은의 허무로 가득 채워진 눈빛에 빨려 들어가 그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 약해 보이는 인물이 안수호의 말처럼 무언가에 의해 미쳐버린 광기를 내뿜는 인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 즈음 알게 된다. <약한 영웅>이라는 제목의 진짜 뜻을. 그건 연약한 영웅 연시은이 아니라, 시쳇말로 ‘약 빤’ 영웅이라는 것. 

 

무엇이 그저 평범하게 공부하며 살아가려던 이 인물을 ‘약 빨게’ 만들었을까. 겉으로 보이는 건 ‘학교 폭력’이다. 이 학교 교실은 폭력이 일상이다. 주먹질은 물론이고 술과 담배 나아가 심지어 펜타닐 같은 마약 패치를 하기도 한다. 오범석(홍경)처럼 어딘가에서 왕따를 당하다 전학 온 친구는 여지없이 또 다시 먹잇감이 된다. 격투기를 배워 싸움 잘 하는 안수호는 그나마 약한 애들을 돕는 정의파지만, 그는 할머니를 혼자 부양하기 위해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바쁜 친구다. 

 

그런데 이 겉으로 보이는 ‘학교 폭력’의 이면을 파고 들어가면 이들을 방치하거나 이들을 이용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은폐하는 어른들이 있다. 부모가 있지만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방치하며 살아가는 연시은의 부모가 그렇고, 자신의 이미지 세탁을 위해 입양해 놓고 이용해먹기만 하려는 오범석의 국회의원 아버지가 그렇다. 안수호는 아예 자신을 보호해주는 보호자 자체가 없고 오히려 부양해야할 할머니만 있지만 이를 들여다봐주는 어른은 없다. 

 

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이 폭력들을 알고 있지만 거기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성적과 학교 정문에 플래카드로 붙는 명문대 명단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폭력이 터져도 오범석의 국회의원 아버지와 결탁해 사건을 덮어버리는 게 다반사다. 또 길수(나철) 같은 인물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이들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다. 도박 게임에 빠지게 만들고 돈을 빌리게 해서 고리대금을 뜯어내며 그걸 빌미로 부모까지 협박한다. 전석대(신승호)나 영이(이연)처럼 집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길수 같은 인간이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범죄의 길로 들어선다. 

 

그래서 의지할 데 없고 심지어 살아남아야 했던 연시은과 안수호 그리고 오범석은 그 과정에서 친구가 된다. 단 한 번도 웃음을 보이지 않던 연시은이 유일하게 웃음을 보이는 건 친구들 앞에서 뿐이다. 하지만 이미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연약해질 대로 연약해진 아이들의 그 빈 틈이 조금씩 균열을 만든다.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자존감이 없고 지독하게 외로운 오범석은 친구들을 통해 조금씩 회복되는 듯 보이지만 금세 그 연약한 감정 속에 억눌려져 왔던 분노가 엉뚱한 방향으로 터져 버린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받았던 <약한 영웅>은 그 자극의 강도가 상상 그 이상이다. 과거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인간수업>이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드라마지만 청소년 성매매부터 학교 폭력까지 적나라하게 다룸으로써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끌어냈다면, <약한 영웅>은 그보다 한 발 더 나간 느낌이다. 학교폭력이 소재이고 그 이면에 깔린 부조리한 어른 사회들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지만, 하나의 ‘하드 보일드 액션 드라마’로 봐도 될 정도로 강렬한 인상과 몰입감을 주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그간 웨이브라는 OTT에 선입견처럼 드리워져 있던 ‘지상파’ 이미지를 일소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다. 마치 <영웅본색>의 한국식 고교생 버전처럼도 느껴지는 이 작품은 원작이 가진 탄탄한 스토리와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말 그대로 ‘약 빤’ 연기를 보여주는 연기자들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최현욱이나 <D.P.>, <환혼>의 신승호는 이미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배우들이지만, 연시은 역할의 박지훈이나 오범석 역할의 홍경은 말 그대로 엄청난 잠재력을 폭발시킨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박지훈은 워너원 출신의 아이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있는 감정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극에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만들어냈다. 

 

“넌 진짜 또라이야”라고 안수호가 연시은에게 말할 때마다 연시은은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라고 응수하곤 한다. 하지만 드라마 말미에 안수호가 연시은의 상상 속에서 “넌 진짜... 진짜 또라이야. 알아?”라고 물을 때 연시은이 “미안해”라고 말하고, 안수호 또한 자기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너무나 아프고 슬프다. 그건 이들을 이렇게 극으로까지 몰고 왔지만 이들에게 그 누구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에게라도 미안하다고 말하며 버텨내고 있는 게 아닐까.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도 이들이 나눈 이 대화가 주는 먹먹한 감정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드라마는 8부작으로 <약한 영웅 Class 1>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건 Class 2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연시은은 또 다시 그 곳에서 똑같이 이어지고 있는 학교폭력을 마주하게 되는 것으로 ‘Class 1’을 끝맺는다. Class 2로 돌아온다면 연시은은 다시금 안수호와 오범석과 함께 보내며 잠깐 동안 가졌던 그 행복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제 막 공개된 작품이지만 벌써부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사진:웨이브)

사격 국대된 ‘운동뚱’ 김민경과 ‘전국노래자랑’ MC된 김신영

오늘부터 운동뚱

‘기억을 잃은 특수요원’, ‘불백 위도우’, ‘제육계 인재’, ‘근수저’. 최근 김민경에게 붙은 별명들은 그가 어떤 경계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걸 말해준 바 있다. 그것은 iHQ <맛있는 녀석들>에서 시작해 벌칙처럼 걸려 시도하게 된 <시켜서 한다 운동뚱>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에서 생겨난 일이다. 다이어트와 헬스로 시작한 운동에서 남다른 근력의 소유자라는 게 드러났고 ‘근수저’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러면서 갖가지 운동에 뛰어들어 타고는 능력을 선보였던 것. 

 

그러더니 최근에는 심지어 사격 국가대표가 되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그 시작은 1년 전 이 프로그램에서 시도했던 사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쏴보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샷건으로 백발백중 표적을 맞추는 김민경의 모습은 지난 6월 자격시험을 보더니 결국 국제대회 출전 자격까지 얻는 놀라움을 보여준다. 또한 대표 선발 테스트를 통과해 국가대표가 된 김민경은 태국에서 열리는 2022IPSC 핸드건 월드슛에 나가게 됐다. 이 대회는 사격대회 중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김민경이 사격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게 된 데는 타고난 근력을 바탕으로 한 안정감 있는 신체조건이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총을 쏠 때 반동에 거의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명중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은 그간 김민경의 몸이 그저 뚱뚱하더거나 그래서 보통 사람보다 많이 먹는다는 식으로 소비됐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가능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희극인들에게 뚱뚱하다는 건 ‘웃기는 몸’으로 치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개그콘서트> 같은 개그 프로그램은 이들을 이른바 ‘돼지 캐릭터’로 자칭하며 몸을 활용한 즉각적이고 표피적인 웃음에 집착해왔다. <맛있는 녀석들>은 바로 그런 캐릭터들이었던 유민상, 문세윤, 김민경 같은 개그맨들이 ‘많이 먹는’ 차원을 넘어서 ‘맛있게 먹는’ 먹방으로 성공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그 바깥으로 슬쩍 빠져나와 운동이라는 영역 속에서 발견한 김민경의 몸은 그저 뚱뚱해서 웃기는 몸이거나 그래서 많이 먹는 몸이 아니라 남다른 근력과 운동능력이 숨겨진 새로운 가능성의 몸이 되었다. 희극인으로서 늘 일정한 선입견 안에 머물며 소비되던 틀에서 어떤 경계선을 넘어 새로운 길을 연 것이다. 

 

이러한 자기 몸에 부여되는 외부의 시선과 외부의 잣대에 의해 소비되곤 하는 방식을 뛰어넘어 새 길을 연 또 한 명의 희극인이 있다. 바로 김신영이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같은 개그 프로그램으로 주목을 받은 그는 뚱뚱한 몸을 웃음의 소재로 활용하는 개그를 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원하는 던 것이 아니었던 그는 과감하게 자기 방식대로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살을 뺐다. 

 

항간에는 “살을 빼자 웃음도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김신영은 그 후로 셀럽파이브로 활동하기도 하고, 둘째이모 김다비라는 부캐로 트로트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라디오 MC를 꾸준히 진행했고 최근에는 결국 고 송해의 뒤를 잇는 <전국노래자랑> MC로 발탁됐다. 단지 외부 시선에 의해 ‘뚱뚱한 몸’으로만 소비되던 차원을 넘어서 건강한 몸으로 자신의 새 길을 열었던 것. 

 

KBS <빼고파>에 출연했던 김신영은 한 다이어트업체가 자신에게 10억을 제안한 적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당시의 김신영에게는 어찌 보면 시쳇말로 말하는 자신의 ‘몸값’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는 그걸 거부했고 대신 ‘몸의 가치’를 찾아냈다. 이번 김민경의 사례가 훈훈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역시 그저 외부의 시선과 잣대로 외적인 것으로만 평가되고 소비되던 몸의 진짜 가치를 찾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김민경은 사격 국제대회에 참가하며 남긴 출사표에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주셔서 자신감을 얻었다”며 도전이 쉽지 않았지만 “해보는 게 후회가 없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고 글을 남겼다. 그러면서 남긴 “이제 시작입니다”라는 글이 인상적이다. 국가대표에 발탁돼서가 아니고, 또 대회에서 거둘 어떤 결과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새 길에 첫 발을 내딛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박수 받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사진:iHQ)

‘공조2’, ‘몸값’, ‘텐트 밖은 유럽’... 진선규가 하면 되는 이유

몸값

이런 날이 분명 올 줄 알았다. 이른바 진선규의 전성시대. 영화, 드라마, 예능까지 종횡무진이다. 그는 올해 썰렁했던 극장가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690만 관객이라는 흥행을 거둔 영화 <공조2:인터내셔날>에서 과거 <범죄도시>의 빡빡 밀고 나왔던 위성락 캐릭터와는 상반되게 터벅머리를 하고 나와 살벌한 악역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마침 tvN에서 방영된 <텐트 밖은 유럽>은 여러모로 <공조2>와 공조한 예능 프로그램의 색깔이 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해진, 진선규, 박지환, 윤균상이 유럽 텐트 여행을 하는 그 광경만으로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주목되는 인물은 진선규였다. 유해진이야 여러 차례 여행 예능 등을 통해 그 서글서글하고 아재미 가득한 매력을 선보인 바 있지만, 진선규가 보여주는 의외의 케미와 순수미는 이 프로그램에 상승효과를 만들었다. 최고 시청률 5.5%(닐슨 코리아)를 기록하며 이 프로그램은 성공을 거뒀다. 

 

흥미로운 건 <공조2>에서의 그 살벌한 면모와 <텐트 밖은 유럽>에서의 그 소년 같은 선하디 선한 진면목이 완전히 다른 사람 같은 느낌을 줬다는 점이다. 그는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서 “어떤 게 진짜에요?”라는 말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고 그것이 연기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이라고 말한 바 있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몸값>은 바로 이러한 진선규의 가치관을 있는 그대로 실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몸값>에서 사각 팬티 하나 걸치고 무너진 건물 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생존과 욕망 사이를 넘나드는 다양한 감정들을 폭발적으로 풀어내는 그의 모습은 마치 날개가 달린 새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원 테이크로 찍어 그 모든 대사들을 다 외워서 한 번에 쏟아내야 하는 그 어려움을 마치 즐기듯이 광기의 에너지로 풀어낸 연기는 아마도 오랜 무명 연극 시절을 거친 경험에서 가능했으리라 짐작된다. 

 

최근 방영된 tvN 월화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에서 두 번째 에피소드 주인공으로 등장해 이희준과 미친 케미를 보여주는 연기 또한 주목할 만하다. 과거 캐스팅이 엇갈리면서 갈등하게 된 두 사람이 자신들을 발탁해준 메소트엔터 대표의 장례식장에서 또다시 캐스팅 문제로 싸우지만, 장지에서 대표가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를 부르면서 처음엔 싸우다가 차츰 화음을 맞춰가는 대목은 짧은 장면 안에 다양한 감정변화를 담아냈다. 

 

악역을 할 때는 살벌한 소름을 만들고(공조2, 범죄도시), 예능에서는 한없이 순수하고 맑은 모습을 보여주며(텐트 밖은 유럽, 유퀴즈 온 더 블럭), 미친 욕망과 광기의 존재에서부터(몸값), 다양한 감정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나아가 깊은 내면 연기까지 선보이는(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이런 다채로운 면면을 지금 진선규는 마치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있다. 

 

그건 아마도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력이 밑바탕된 것이겠지만(그와 함께 연기한 전종서는 <몸값> 촬영 2개월 전 리허설 때부터 대사를 모두 암기해 왔다고 인터뷰 한 바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의 변함없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는 쌀이 떨어질 정도로 가난한 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이제 가격표 안보고 물건을 살 정도로 살만해졌지만 여전히 그것을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있었다. “저기 멀리 있는 좋은 배우라는 목표를 향해서 5년 전보다 조금 더 가고 있는 상태”라고 말하고 있는 것. 이러니 진선규의 전성시대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지 않겠나 싶다. 앞으로 5년 후도 또 그 후에도.(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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