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의 성패를 가르는 진정성의 힘

 

한때는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치부되던 소재들이 예능의 트렌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낚시, 골프, 게임, 밀리터리 등이 그것이다. 물론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않지만 ‘찐팬’들의 막강한 힘이 느껴지는 이들 소재 예능이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도시어부3

<도시어부>, 낚시에 미친 자들의 세계

한 때 예능에서 낚시는 금기시되는 소재였다. 이유는 잠깐 잡히는 그 순간에 비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들이는 노동에 비해 나오는 방송분량이 적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과거 KBS <1박2일>이나 <남자의 자격>에서 낚시를 소재로 잡았을 때, 낚시 자체보다는 복불복이나 토크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시즌3를 방영하고 있는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이하 도시어부)>는 이런 금기를 보기 좋게 깨버렸다. 종편 채널로서 시즌1에 5.3%(닐슨 코리아)의 최고시청률을 냈고 지금껏 3%에서 4%대의 시청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시청률은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프로그램의 진짜 강점은 화제성이다. 낚시에 진심인 이른바 ‘찐팬’들의 열렬한 지지 덕분이다. 

 

이렇게 된 건 <도시어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덕화, 이경규 같은 진짜 ‘낚시에 미친 자들’이 출연하고 있어서다. 다른 방송이었다면 한 자리에 앉아 40시간 동안 촬영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 ‘낚시에 미친 자들’은 40시간을 꼬박 잠도 안자고 낚시를 하고도 더 하면 안 되냐는 말로 제작진들의 귀갓길을 가로막는다. 그만큼 낚시에 진심이라는 것이다. 출연자들이 이러니 ‘찐팬’들은 오죽할까. 가끔 게스트가 출연해 여느 예능에서 하듯 주저리주저리 토크를 늘어놓으면 찐팬들의 “낚시나 하라”는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이수근은 처음 늘상 하던 대로 토크를 하다 욕 많이 얻어먹었다고 털어놓는다. 이런 낚시에 미친 자들과 거기에 빠져든 시청자들의 끈끈한 관계가 <도시어부>라는 ‘노동 강도 최강’의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시킨 이유다. 

 

마니아들의 세계가 예능의 트렌드로 떠오르는 이유

한때 예능의 금기였던 낚시 같은 마니아들의 세계는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골프 예능은 단적인 사례다. TV조선 <골프왕>을 시작으로 JTBC <회원모집 세리머니 클럽>, SBS <골프 혈전 편 먹고 072>, tvN D <스타골프빅리그>, 티빙 <골신강림>, MBN <그랜파> 등 골프 예능은 갑자기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한때는 부자들의 스포츠처럼 여겨져 서민들의 예능에는 어울리지 않는 소재였었지만, 최근 들어 골프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골프 클럽이 그만큼 늘어났고, 가격도 적당해졌다. 특히 골프는 이 종목에 미쳐 준프로급 수준의 기량을 가진 연예인들이 적지 않다. 그들 역시 골프에 진심이다. 그래서 이들이 필드에 나가 벌이는 대결과 성장의 이야기는 특별한 예능적 조미료를 치지 않고도 충분히 몰입감을 준다. 

 

채널A <강철부대>는 물론 ‘밀리터리 예능’이 스테디셀러의 소재였지만, 보다 마니아적인 접근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밀리터리 마니아들은 물론이고 슈팅게임 마니아들까지 팬층으로 끌어들이면서 프로그램은 큰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파일럿으로 방영되어 괜찮은 반응을 얻은 후 정규로 돌아와 더 주목받고 있는 <골 때리는 그녀들>도 지금껏 잘 다뤄지지 않았던 여자 축구를 소재로 했다. 중요한 건 여기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예능이 아닌 축구 자체에 진심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파일럿에서의 전패 굴욕에 절치부심해 자발적으로 연습에 매진하고 다시 경기를 치른 모델팀이 보여준 투혼 같은 걸 보다보면 그것이 단지 예능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발톱이 빠져도 승부욕을 드러내고, 모델 다리에 여기저기 멍든 자국들이라니. 이러니 찐팬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특히 ‘여자 축구’라는 소재 때문에 ‘여자’라는 지점을 너무 강조하거나, 혹은 ‘○○의 아내, ○○의 며느리’식으로 불렀던 파일럿에서의 문제점들을 모두 수용해 변화를 보여줬고, 남녀라는 성별과 상관없이 ‘축구’ 자체에 집중한 면이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공감대를 얻은 이유가 됐다. 

 

시청률이 성공의 지표? 이제는 팬덤이 생겨야

과거 금기시되던 마니아 소재들이 예능에서 새로운 성공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고, 예능의 성공방정식이 ‘진심이냐 아니냐’로 구분되는 이 변화는 어떻게 생겨난 걸까. 그건 ‘취향’이 점점 중요해진 시대에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어도 열성적인 찐팬(마니아)의 힘이 더욱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방송 프로그램 성공의 지표가 시청률이 아닌 ‘팬덤’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즉 시청률이 높다고 해도 찐팬들이 모여 팬덤이 형성되지 않으면 성공한 프로그램이라 하기 어렵지만, 반대로 시청률이 낮아도 팬덤이 형성되면 나름 성공한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과 <미스트롯2>의 성패를 들 수 있다. 두 프로그램 모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미스터트롯>과 달리 <미스트롯2>는 성공한 프로그램이라 일컬어지지 않는다. 그 차이는 팬덤에서 비롯된다. <미스터트롯>은 여기서 배출된 톱7이 모두 강력한 팬덤을 만들었지만 <미스트롯2>는 누가 우승을 차지했는지조차 모르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찐팬은 이제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됐다.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는 단적인 사례다. 유튜브를 통해 모여든 찐팬들이 각국에서는 적어도 글로벌하게 연결되면서 결코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고, 그 힘들이 모여 방탄소년단의 현재를 만들었다. 이 성공사례는 그래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대표가 참여했던 Mnet <I-LAND>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최고시청률이 겨우 0.7%에 불과했지만 오디션 과정에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팬 커뮤니티 플랫폼인 위버스를 통해 글로벌 팬덤을 확보했다. 이 팬덤의 힘은 여기서 배출된 아이돌그룹 엔 하이픈이 반년만에 빌보드 앨범차트에 18위로 입성하는 결과로 드러났다. 어째서 팬덤 확보가 새로운 성공의 지표가 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미 취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디지털 네트워크로 묶여진 취향에 진심인 이들은 더 이상 마니아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만일 글로벌로 묶인다면 글로벌 스타가 탄생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 이 취향에 진심인 자들을 매료시키는 건 ‘진심으로 미친 자들’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진정성이야말로 예능의 성패로 자리하게 된 이유다.(글:시사저널, 사진:채널A)

‘강철부대’가 끄집어낸 두 가지 키워드, ‘함께’, ‘끝까지’

 

<가짜사나이> 가학성 논란 이후 군대를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은 일종의 선입견이 생겼다.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피, 땀, 눈물의 진정성이 보기 불편해진 것. 하지만 최근 방영되고 있는 채널A, SKY <강철부대>는 다르다. 무엇이 선입견을 깨고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한 걸까.

'강철부대'

<강철부대>, 가학성 논란 없었던 까닭

채널A, SKY <강철부대>는 그다지 좋은 기대감을 갖고 시작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지난해 유튜브 콘텐츠 <가짜사나이>가 만들었던 엄청난 화제성과 동시에 쏟아진 가학성 논란들이 선입견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훨씬 커진 스케일과 연예인까지 참여하는 출연진으로 돌아온 <가짜사나이> 시즌2는 혹독한 훈련 과정과 더불어 조교들의 조롱 섞인 말들까지 갖가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조교들의 사생활 논란까지 끄집어내져 대중들의 뭇매를 맞기 시작하면서 방송은 중단되었다. 이러니 <강철부대>에 선입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군대 리얼리티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첫 방송이 나가면서 일거에 사라져버렸다. 콘셉트 자체가 달랐다. <가짜사나이>는 일반인들의 훈련이 콘셉트지만, <강철부대>는 특수부대를 전역한 이들이 자신이 몸담았던 부대의 명예를 걸고 한바탕 대결을 벌이는 콘셉트였다. 이러니 ‘훈련 과정’ 따위는 존재할 수 없었고 당연히 가학적인 장면들은 희석되었다. 물론 군 부대원들끼리의 대결 자체가 혹독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첫 날부터 살얼음이 언 흙탕물 속에서 맨 몸으로 부딪치는 참호격투를 하고, 곧이어 달리기, 포복, 40킬로 타이어 들고 뛰기 그리고 10미터 외줄타기를 연달아 하는 각개전투로 대결을 벌였다. 그런데 그 날의 미션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조난상황이 연출된 어두컴컴해진 밤바다를 수영해 더미를 구출해오는 미션까지 치러졌다. ‘강철체력’이 아니면 불가능해 보이는 하루의 미션이었지만 출연자들 역시 보통은 아니었다. 황충원 같은 괴력을 보여주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박준우 같은 오랜 군 경력에서 나오는 놀라운 전략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어 보이는 미션을 승리로 이끄는 인물도 있었다. 즉 미션은 <가짜사나이>처럼 혹독한 것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를 수행하는 이들이 모두 베테랑들이었기 때문에 가학적인 느낌은 전혀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소속됐던 특수부대를 대표한다는 명예는 이들의 미션 대결을 훨씬 더 자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박갈량, 황장군... 여성들도 환호하는 사기 캐릭터들의 향연

흥미로운 건 이 군대 서바이벌에 환호하는 이들 중에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두 가지 요인에서 기인된다. 하나는 여기 출연하는 인물들이 박갈량, 황장군으로 불릴 정도로 분명한 저마다의 캐릭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박갈량으로 불리게 된 박준우(박군)는 거구에 괴력을 가진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왜소한 체격의 소유자였지만, 매 미션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전략이 주효함으로써 승리로 이끌어내는 인물이었다. 박준우라는 캐릭터는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론 트로트 가수 박군으로 활동하며 남다른 삶의 질곡이 잘 알려져 이미 여성 팬덤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전략을 쓰는 그의 존재는 군 경험이 없는 여성들 또한 몰입하게 만든 이유가 됐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조사 결과 <강철부대>는 비드라마 부문 TV화제성 1위를 차지했고, 박준우는 출연자 화제성 1위를 기록했다. 

 

남다른 피지컬로 두 사람이 여러 차례 해머로 내려쳐야 겨우 열리는 문을, 혼자 한 방에 열어버리는 진풍경을 만든 황충원은 ‘황장군’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고, 미션마다 엄청난 근성을 보여주지만 마치 아이돌 같은 준수한 외모로 등장부터 화제가 됐던 육준서도 이미 팬덤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젊은 팀원들로 구성된 SDT 팀의 날쌘돌이 강준이나, 참호에서 벌어진 타이어 격투에서 박준우와의 명대결을 펼친 UDT 팀의 이종격투기 선수 김상욱 등등 <강철부대>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매 미션마다 쏟아냈다.

 

흥미로운 건 이 캐릭터들이 벌이는 ‘대테러 침투작전’이나 ‘야간연합작전’은 마치 게임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레인보우식스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일인칭 슈팅 게임(FPS)을 해본 게임 유저라면 마치 그 ‘실사판’을 보는 것 같은 것. 이런 게임적 요소들은 <강철부대>의 팬층이 훨씬 폭넓어지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함께 끝까지 간다’는 메시지에 담긴 울림

<강철부대>가 특히 큰 울림을 남긴 미션들은 ‘탈락팀’이 결정되는 데스매치에서였다. 250킬로 타이어를 네 사람이 계속 뒤집어가며 300미터를 이동하는 첫 번째 데스매치는 그 어느 팀도 해내지 못할 거라 여겨졌지만, 놀랍게도 모든 팀이 완주를 했다. 물론 이미 탈락팀으로 결정되어버린 상황 속에서도 해병대 수색대팀은 중도 포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끝까지 하는 모습에 다른 경쟁 팀들마저 박수를 보냈다. 

 

두 번째 데스매치로 치러진 40킬로 산악행군 미션은 한편의 영화 같은 울림을 줘 스튜디오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연거푸 데스매치를 두 번씩이나 치르게 된 SDT 팀이 그 영화 같은 미션의 주인공이었다. 시작 전부터 정상적인 몸 상태와 체력이 아니었던 한 대원을 다른 팀원들이 끝까지 함께 도와주고 밀어주면서 완주하는 광경은 커다란 감동을 선사했다. 

 

이들 데스매치들이 큰 감동을 선사한 건 거기 담긴 메시지 때문이었다. ‘함께’ 그리고 ‘끝까지’ 한다는 그 메시지는 무한 경쟁의 현실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도 주는 울림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승리만이 목적이 아니라, 더뎌도 다함께 함으로써 끝까지 가는 것. 그래서 패배해도 모두의 박수를 받는 광경은 마치 한 편의 우화처럼 시청자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군대 소재 프로그램은 어딘지 불편하다? <강철부대>는 같은 소재라고 해도 어떻게 접근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좋은 예가 되었다. 다소 자극적일 수 있는 미션과 대결을 벌여도 결국 중요한 건 납득될만한 이유가 담겨져야 한다는 걸 이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글:시사저널, 사진:채널A)

'강철부대' 역시 군대는 짬밥, 왜소한 박준우가 증명한 전략의 힘

 

171cm의 다소 왜소한 체구에 평범해 보이는 얼굴. 채널A <강철부대>에서 박준우(박군)는 다른 출연자들 속에서 과연 버텨낼 수나 있을까 싶은 모습으로 등장한 바 있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폭발적인 괴력과 근성을 보여준 UDT 육준서나, 엄청난 힘으로 진흙 구덩이 속에서 다른 팀원을 바깥으로 밀어내던 SSU 황충원 같은 인물들 속에 서 있으니 더더욱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박준우는 그들이 가진 강철 같은 힘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그건 15년 경력의 예비역 상사로서 갖고 있는 경험치다. 물론 그 역시 외관과는 사뭇 다른 체력과 근성, 지구력을 갖고 있지만, 그것보다 경쟁 부대원들이 '리스펙'하는 부분은 '짬'이다. 이른바 짬에서 나오는 실력은 도저히 힘으로도 어쩔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그는 '박갈량'이라 불린다. 늘 남들이 못하는 전략을 세우고 미션에 뛰어드는 모습이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고지점령' 미션에서도 박준우의 전략은 실로 인상적이었다. 가파른 경사로 이뤄진 산등성이를 먼저 올라 고지를 점령하는 이 미션에서 초반 레이스를 주도한 건 UDT의 정종현 대원이었다. 그는 엄청난 체력으로 초반부터 달려 나갔고, 2위 추격자인 SSU 김민수 대원과 확연한 격차를 벌려 놓았다. 박준우는 세 번째로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해가며 이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박준우는 앞서 달려가는 정종현과 김민수 대원과는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건 오른쪽에 있는 숲에 의해 양지와 음지가 만들어져 있고, 그래서 음지쪽은 눈이 녹지 않아 오르기가 더 힘들 거라는 걸 미리 박준우가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양지쪽으로 방향을 틀어 더 수월하게 오른 박준우는 결국 2위로 고지를 점령했고, 뒤늦게 양지쪽으로 들어온 김민수 대원과 정종현은 각각 3,4위에 머물렀다(1위는 707 박수민 대원인 듯, 통편집되어 방송에 등장하진 않았다).

 

박준우의 이런 전략적인 선택은 미션 초반 치러진 참호격투와 각개전투에서도 빛난 바 있다. 엄청난 체격과 체력을 가진 다른 팀원들과 참호 진흙탕 속에서 서로 밀어내는 참호격투에서 박준우는 적을 동지로 끌어들이는 전략으로 끝내 살아남았다. 또 각개전투에서는 40kg 무게의 타이어를 들고 뛰어야 하는 미션에서 보다 걷기 좋은 단단한 땅을 미리 파악함으로써 수월하게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강철부대>에서 박준우의 이런 전략가다운 면모들은 이 군대 서바이벌에 남성들은 물론이고 여성들까지 팬덤이 만들어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저 '힘 자랑'이 아니라 '전략'이나 '경험'이 가진 두뇌 싸움 또한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준우는 팀원들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리더로서의 모습도 두드러진다. 그러니 군대 서바이벌 하면 먼저 떠오르는 살풍경한 장면들 속에서 그가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은, 괴력에 압도당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이들조차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아직 그 논란의 진위가 정확히 파악된 건 아니지만 <강철부대>에서 갑작스레 하차한 707특수임무단의 박수민과 박준우는 사뭇 정반대로 비교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첫 회부터 대선배인 박준우에게 "춤 좀 보여주실 수 있냐"는 식으로 무례한 도발을 했던 박수민은 심지어 707 예비역들로부터도 부대의 명예를 실추했다며 비판받은 바 있다. 하지만 데스매치에서 살아남은 특전사팀은 바로 707 특수임무단을 찾아와 우리는 '같은 가족'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박준우는 두 팀이 끝까지 올라가는 좋은 그림을 만들어보자고 말했다.

 

<강철부대>는 물론 제목에 담긴 것처럼 강철 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특수군 예비역들의 놀라운 기량들이 시선을 잡아끌지만, 만일 그런 체력적인 대결과 승패로만 치달았다면 지금 같은 보편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체력 이외에도 경험에서 묻어나는 전략이 있고, 승패와 상관없이 져도 잘 싸운 과정들이 담겼다. 그런 점에서 박갈량으로 불리며 <강철부대>에 그 색다른 색깔을 만들어낸 박준우는 이 프로그램에 중요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있어 <강철부대>가 살아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사진:채널A)

'강철부대', 김성주도 말문 막히게 만든 해병대수색대의 완주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조금 잘못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승부를 내는 경기, 중계를 많이 했기 때문에 1등이 누가 되느냐가 중요한 중계를 많이 했고 이기는 승부만 했었는데, 군인들의 삶은, 군인들의 승부는 끝까지 하는 게 있네요."

 

채널A <강철부대>에서 탈락 팀이 결정되는 데스매치에서 해병대수색대가 끝까지 미션을 완수하고 깃발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난 후 김성주는 그렇게 말했다. 그간 미션 대결에서 그 흥미진진한 승패 과정을 보며 환호하던 스튜디오의 출연자들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그 모습에 모두가 말문이 막혀버렸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IBS(구명보트) 침투 작전 미션에서 패배한 해병대수색대, SDT(군사경찰특임대), 특전사팀에게 주어진 데스매치 미션은 보기에도 위압감을 주는 250kg의 타이어를 계속 뒤집어 300미터 거리에 있는 최종지점까지 먼저 도착하는 것이었다. 스튜디오에 가져온 타이어는 출연자들 6명이 함께 힘을 써도 들어올리기가 버거운 무게였다. 그걸 뒤집어가며 300미터를 간다는 건, 타이어 반경이 1미터라면 무려 300번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사실상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이 미션을 그러나 세 팀은 '악으로 깡으로' 밀어붙였다. 처음에는 체력으로 어느 정도 전진해나갈 수 있었지만, 중간 지점에 채 도착하지도 않은 상황에 이미 체력은 고갈되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는 정신력과의 싸움이었다. 혼자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 타이어는 네 사람이 모두 힘을 동시에 써야 넘길 수 있었고, 그것은 팀 미션다운 협동을 요구했다.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는 미션처럼 보였지만, 마치 마라톤이 그러하듯이 그렇게 힘겨워도 앞으로 조금씩 나가는 미션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선두에서 치고 나가는 특전사팀이 먼저 최종 목적지에 도달해 깃발을 흔들었고, 탈락 팀을 결정짓는 해병대수색대와 SDT의 대결에서 초반에는 밀리던 SDT가 이를 뒤집는 역전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미션이 만든 드라마는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힘이 빠져 체력만으로는 더 이상 타이어를 들 수조차 없는 상황. SDT가 2등으로 최종 목적지에 도착함으로써 해병대수색대는 탈락이 확정됐다. 그 정도면 포기해도 될 법했지만, 이들의 미션 도전은 승패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모든 팀이 그렇지만 자신의 부대 마크를 붙이고 나선 대결이기 때문에 지더라도 포기하는 모습은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끝내 최종 목적지까지 도착한 해병대수색대는 서로를 토닥이며 "잘했다", "고생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쏟아 놓았다. 함께 미션 대결을 펼친 특전사팀과 SDT팀도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었다. 끝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탈락하게 된 해병대수색대 팀은 그 결과에 대해 해병대 선후배들에게 미안해했고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진 것일뿐 해병대는 강한 부대라고 강변했다.

 

<강철부대>가 데스매치를 통해 보여준 건, 김성주가 얘기했듯 이 프로그램이 여타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스포츠중계와도 다른 면이 있다는 점이다. 승패와 당락 같은 결과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고 그 모습이 얼마나 명예로웠는가 하는 점이었다. 바로 이 지점은 <강철부대>라는 군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갖는 덕목이 아닐 수 없다.(사진: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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