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의 한계 분명하다면 대안을 고민해야

 

갑작스레 터져 나온 폐지설이었지만 사실 놀라운 건 아니었다. 그간 KBS <개그콘서트>는 여러 차례 새롭게 단장하려 노력해왔지만 그 결과는 참담할 정도로 추락한 게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편성 시간을 금요일로 옮기고 나서는 시청률이 2%(닐슨 코리아)대까지 떨어졌다. 사실상 금요일이 방송사들의 격전지가 되어 있는 현재 상황을 생각해보면 <개그콘서트>의 이런 편성은 사실상 '버리는 카드'가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할 정도다.

 

폐지설이 나오고 KBS 측에서는 입장이 정리되고 있지 않은 형국이다. KBS측은 "개그콘서트 폐지와 관련해 논의된 바가 없다"고 공식입장을 밝혔지만 KBS 제작본부장은 "폐지에 대해 신중히 논의 중이며 다음 주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혼돈을 줬다. 아직까지 결정된 건 없지만, KBS 내부적으로는 <개그콘서트>의 존폐 여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개그맨 이용식씨는 페이스북에 폐지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글을 올리며 폐지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과거 <웃찾사> 폐지 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던 그였다. 하지만 결국 당시에도 <웃찾사>는 폐지되었다. 이용식씨가 걱정하는 건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이지만 개그맨 후배들의 설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우려로 보인다.

 

<개그콘서트>를 폐지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유지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이 프로그램에 몸담고 있는 개그맨들을 수용할 대안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개그콘서트>는 여러 내외적 요인들로 인해 그 한계가 드러났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즉 최근 달라진 대중들의 감수성에 <개그콘서트>는 대안적인 웃음을 제공하는데 실패한 면이 있다. 이것은 KBS라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더더욱 엄격해진 잣대 하에서 소재나 표현이 제한된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외모비하, 가학성, 혐오발언, 성인지 감수성 등등 <개그콘서트>는 많은 논란의 소지들을 피하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웃음의 코드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무려 21년을 유지해온 프로그램에 대해 폐지설이 나오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방송사 입장에서도 한계를 드러낸 프로그램을 무한정 끌어안고 손실을 감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그맨과 작가, 코디까지 200명에 가까운 인력이 순식간에 실업자가 될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프로그램을 계속 이어가는 게 어렵다면 적어도 이 인력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안을 먼저 고민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개그콘서트>는 현재 폐지든 변화든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미 MBC <개그야>, SBS <웃찾사>가 폐지되면서 이런 위기 상황은 예고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작정 폐지나 유지보다 먼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되고 활동하는 개그맨들의 설 자리가 더 중요하다. 어째서 KBS는 지금도 이렇게 많은 가능성을 가진 개그맨들을 어째서 좋은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까.(사진:KBS)

개그맨들의 산실 <개콘> 왕국, 어쩌다 흔들리게 됐을까

 

KBS <개그콘서트>에서 일부 개그맨들이 제작진과의 불화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는 소식은 사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게 없는 내용이다. 잔류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프로그램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 그런 것도 사실 <개그콘서트>에서는 늘 있던 일이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한때 <개그콘서트>를 이끌었던 박준형과 정종철이 MBC <개그야>로 옮긴 적이 있었고, ‘달인코너로 장기간 인기를 끌던 김병만도 SBS <키스 앤 크라이>를 시작으로 <정글의 법칙>으로 빠져나간 적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개그콘서트>는 굳건했다. <개그콘서트>에서 스타가 된 개그맨들이 버라이어티로 이동해도 새로운 신인 스타들이 탄생해 그 자리를 메웠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도 아닌 몇몇 개그맨들이 이동을 고민한다는 이야기가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키는 건 왜일까. tvN <코미디 빅리그>와의 미팅? 그것은 <코미디 빅리그>가 모든 방송국 출신 개그맨들에게 열려있고 또 쿼터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개그맨들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달라도 개인적으로는 대부분 돈독한 사이다. 현장에서 늘 만나기 마련이니까.

 

중요한 건 이런 이야기가 나온 시점이다. 지금 현재 <개그콘서트>는 한 마디로 위기다. 시청률 20%를 훌쩍 넘기던 시절은 고사하고 이제는 10%를 유지하는 것도 간당간당하게 되었다. 만일 이 두 자릿수 시청률까지 빠져버리게 된다면 <개그콘서트>의 추락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더 안 좋은 건 화제성조차 과거만 못하다는 점이다. 확실한 한 방이 있는 코너가 잘 나오지 않고 있고 따라서 <개그콘서트>를 전면에서 이끌어가는 이른바 간판 개그맨이 눈에 띄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한 때 <개그콘서트>에는 이름만 들어도 화제가 됐던 김준현, 김원효, 허경환, 양상국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개그콘서트>에서 보이지 않게 됐다.

 

<개그콘서트>가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꽤 오래 전에 지목되었다. 프로그램 시간이 너무 길고 그러다보니 과거처럼 팽팽한 느낌이 사라졌다. 똑같은 코너들이 그 주에 조금씩 상황만 바꿔 유행어를 날리는 정도의 느낌이랄까.

 

코너들의 교체 시기도 한없이 늘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제 때 제 때 코너를 교체해줬어야 신구 코너들이 조화롭게 굴러갈 수 있는데 그게 교체시기를 놓치다보니 이제는 한두 개 새로운 코너를 집어넣어도 <개그콘서트>가 달라진 느낌을 주지 못하게 됐다. 물론 새 코너도 이렇게 되면 생각만큼의 효과를 내기 어렵다.

 

결국 <개그콘서트>가 이런 위기에 빠지게 된 건 스타 가능성이 있는 개그맨들이 없어서도 아니고 아이디어가 부족해서도 아닌 시스템 운용과 인력관리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개그맨들의 이탈 조짐은 결국 관리의 부실에서부터 비롯된 일이라는 것이다.

 

<개그콘서트>의 위기는 KBS 예능이 처한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결국 개그맨들은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개그콘서트>에서 실력을 보인 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같은 새로운 도전을 원한다. 그러려면 KBS가 개그맨들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을 포진하고 있어야 하지만 최근 KBS 예능은 <12>을 빼놓고는 그리 선전하지도 주목받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개그맨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던 <인간의 조건>도 시즌을 거듭하면서 소소한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KBS에 개그맨들이 미래를 꿈꾸고 운신할 폭이 점점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안에서 언급된 <코미디 빅리그>를 보면 너무나 상황이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코미디 빅리그>를 통해 자리를 잡은 장동민이나 이국주가 tvN은 물론이고 타 방송사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는 모습은 개그맨들에게는 또 하나의 워너비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박나래와 장도연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다면 과연 최근 <개그콘서트>에서는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개그맨들이 있었던가.

 

tvN이라는 플랫폼이 가진 매력도 개그맨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최근 tvN 예능 프로그램들의 선전은 개그맨들이 <코미디 빅리그>를 통해 연계 프로그램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꿈꾸게 만든다.

 

<개그콘서트>는 지금껏 KBS 예능 프로그램의 허리 역할을 해왔다. 여기서 배출된 개그맨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에 포진되어 KBS 예능을 다채롭게 해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안은 그저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해도 결코 가볍게 바라볼 수 없는 면이 있다. 단지 코너 몇 개 바꾸고 개그맨들이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스템 정비와 인력관리, 방송분량 조절 같은 총체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재발견된 유정승, 미안한 김완기, 어눌엉뚱 김경진


달라진 ‘개그야’가 심상찮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남다른 캐릭터들의 존재감. 코너가 새롭게 재정비되면서 전체적으로 캐릭터들의 무게감이 돋보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주목되는 캐릭터들이 있다. 그들은 ‘유정승의 재발견’의 유정승, ‘박준형의 눈’에 한 코너로 등장해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는 김완기, 그리고 같은 코너에서 전문가를 사칭하며 엉뚱 어눌한 개그를 보여주고 있는 김경진이다.


최국, 죄민수 대신 유정승을 데려오다
죄민수 조원석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코너, ‘최국의 별을 쏘다’. 그렇게 별을 쏘아준 최국이 이번에 무대에 올린 개그맨은 유정승이다. 최국과 유정승이 새롭게 들고 나온 ‘유정승의 재발견’은 따라서 ‘최국의 별을 쏘다’의 다음 버전 같은 코너라고 볼 수 있다. 죄민수 조원석이 거만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의 모습을 과장된 연기로 보여주면서 큰 웃음을 주었던 시대는 가고, 대신 ‘지구상에서 가장 열심히 안하는 개그맨’, 유정승의 시대가 왔다.


함께 출연 중인 최국은 어떻게든 유정승이 웃음을 주어야 자신이 잘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유정승은 천하태평. 그저 온몸에 색칠을 하고 무대 위에 오른 것 빼고는 전혀 웃길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답답한 최국이 “유정승씨만의 개그의 특징이 있나요?”하고 묻자 그는 “제 개그의 특징은 저만 웃겨요”라고 당당하게 밝힐 정도다. 이 코너는 웃겨야 한다는 개그맨들의 중압감을 거꾸로 뒤집어버린 개그라고 볼 수 있다.

유정승이 웃기려 전혀 노력하지 않는다는 그 지점이 오히려 웃음을 준다는 것은 거꾸로 개그맨 입장에서는 웃겨야한다는 중압감이, 그리고 관객 입장에서도 반드시 웃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오히려 웃음을 저해한다는 점을 잘 포착해준다. 최국이 이번에도 유정승을 별로 쏠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되는 코너다.


김완기의 자학 개그, “미안합니다”
‘박준형의 눈’은 시사프로그램을 패러디하고 있지만 그 코너의 형식은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박준형은 ‘봉숭아학당’의 선생님처럼 개그맨들의 산파 역할을 하는 것이고, 거기서 다양한 개그맨들의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다른 점은 ‘봉숭아학당’의 개그맨들은 한 자리에 모두 모여 앉아 있지만, ‘박준형의 눈’에는 한 코너씩 나누어져 소개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봉숭아학당’처럼 모여 앉았을 때 동료들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등장한 단독 캐릭터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안합니다”라는 유행어로 돌아온 김완기는 약간은 취기가 오른 얼굴로 모든 상황이 자기 탓이라는 자학적인 말로 웃음을 준다. 이것은 언뜻 루저 문화의 풍자로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미안함의 대상이 얼토당토않은 거대한 사건들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결을 달리 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심각한 저출산으로 신음”하고 있고 “이 저출산이 다 저 때문”이라고 말한다거나, WBC 야구 결승전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진" 것이 자신이 보지 말았어야 하는 TV를 봤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꾸로 이 거대한 사건들(?)이 모두 자신 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는 자기자랑도 숨어 있다.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자랑을 하고 있는 셈. 술 취해 호기를 부리는 김완기의 연기는 이런 이중적인 심리(패배자의 자기도취적 승리)를 정확히 짚어 웃음으로 전환시켜주고 있다.


어눌하면서 엉뚱하다, 김경진이라는 달인
같은 코너에 등장하는 김경진도 주목할 만한 캐릭터다. 자칭 전문가라고 등장해서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이 캐릭터는 ‘개그콘서트’가 낳은 최고의 캐릭터, ‘달인’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엉뚱한 말을 계속 해대는 그에게 박준형이 의구심을 품을 때면 “전 전문가입니다. 경청하세요.”라고 말하지만, “확실합니까?”하고 박준형이 재삼 물을 때면, “확실하지 않습니다”라고 꼬리를 내리는 모습은 누가 뭐래도 주장을 굽히지 않는 김병만의 달인과는 비교되는 지점이다. 그는 엉뚱함에 어눌함을 덧붙였다.


그는 습관처럼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하는 전문가들이 흔히 쓰는 문구들을 끄집어내고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본인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어눌하게 얘기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거짓말’에 대해 얘기하면서 “아파트 광고에 걸어서 오 분 거리”라고 나오는 건 순 거짓말이라며 “겁나게 뛰어서 오 분 걸릴까 말까”라고 말하는 대목 에서는 그 어눌함 속에도 세상에 대한 풍자는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개그야’는 이밖에도 가능성을 보이는 캐릭터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그렇지요’의 황제성은 그 악동의 이미지를 ‘비겁한 거리’로 가져와 “장비로 천장을 뚥습니다” 같은 무식한 조폭들의 언어생활로 기발한 웃음을 선사하고, 정성호는 ‘감동’이라는 새 코너에서 특유의 땀을 뻘뻘 흘리는 오버연기로 웃음을 주고 있다. 여기에 이제 ‘사바나의 추장’과 ‘맹구’로 인기를 모았던 심현섭이 ‘무릎팍 도사’를 패러디한 ‘가슴팍 도사'로 합류할 예정이고, 이어 잠시 쉬었던 정종철도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개그야’의 달라진 캐릭터들. 그 존재감이 심상찮게 느껴진다.

웃음 없는 ‘개그야’, 웃음 되찾으려면

MBC의 공개개그 프로그램인 ‘개그야’가 가장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는 시청률 최고를 달리던 ‘주몽’이 앞에 자리하고 있었을 때였다. 분명 이 시기에 ‘주몽’의 선전은 ‘개그야’의 시청률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이었을까. 이 시기에 ‘개그야’에는 사모님 김미려도 있었고, 그 뒤를 이었던 죄민수 조원석도 있었다. 아무리 편성이 도와준다고 해도 그걸 받쳐주는 ‘개그야’만의 특별한 웃음 포인트가 있었기 때문에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개그야’는 금요일 심야에 편성된 시간대도 문제지만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가 더 심각한 편이다. ‘주연아’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던 정성호는 ‘도’에서 분전하고 있으나 이렇다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는 못하고, ‘천수정 예뻐’로 유행어를 만들었던 천수정도 ‘장인장모전’, ‘그렇지요’ 등에 나오고는 있지만 그녀만의 특별한 개성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우리도 결혼했어요’로 주목받았던 이국주와, “환규에요!”의 전환규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전형적인 조폭 코미디를 보여주는 ‘LS클럽’은 그 설정 자체가 식상한 면도 있지만 이 코너의 중심에 선 고명환, 최국 역시 선배로서의 큰 웃음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 코너에서는 황제성의 전화 설정 개그 같은 것이 그나마 체면을 살려주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개그야’에 긴급 수혈된 ‘개콘’의 스타 개그맨들인 박준형, 정종철, 오지헌의 존재감이 좀체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꽃보다 남자’의 F4를 패러디한 ‘A4’에서 오지헌은 특유의 ‘얼굴개그’를 펼치고 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접목되지 않아 그저 같은 개그형태의 반복으로만 보여진다. 이런 형태가 더 지속된다면 자칫 오지헌의 특징적인 개그의 빠른 소비만을 불러올 지도 모를 일이다.

박준형은 ‘시사매거진 박준형의 눈’, ‘김경진은 호모 사피엔스’에 출연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두 코너에서 박준형은 자신의 개그를 보여주기보다는 여러 개그맨들의 개그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마치 ‘개그 콘서트’, 봉숭아학당의 선생님 같은 역할이다. 오지헌과 박준형이 ‘개콘’에서 보여주었던 발군의 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데다, 정종철마저 아내의 건강과 출산문제로 5개 월여 동안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게 되자 이들의 투입효과는 거의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코너들이 큰 웃음을 주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김경진은 호모 사피엔스’에서 김경진은 독특한 목소리와 특유의 엉뚱함으로 자신의 끼를 발휘하고 있고, ‘시사매거진 박준형의 눈’에서 짧은 코너 속 코너로 나오는 ‘최국의 한줄 논평’은 마치 댓글 문화를 반영하는 듯한 꽤 주목할만한 촌철살인의 개그를 보여준다. 한편 정종철이 이 달 말부터 복귀한다는 점과 ‘세바퀴’가 독립편성되어 ‘개그야’ 앞자리로 온다는 점은 새로운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물론 분명 ‘개그야’가 가진 금요일 심야 시간대 편성은 꽤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개그야’의 코너들은 너무 방만한 느낌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청률을 떠나서, 편성 시간대 같은 외부적 조건을 떠나서, 오로지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만이 프로그램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생각해봐야 할 시기다. 이 고민을 통해 전성기 시절의 ‘개그야’가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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