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한 만화적 상상력, 사회극으로 연출된 ‘꽃남’

고교생이 함께 호텔에 들어가고 바에서 술을 마시고 나이트 클럽에서 춤을 춘다. 단지 서민이라는 이유로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고, 사생활이 찍혀 공개되는 등 자극적인 왕따 문화가 그려진다. 돈 앞에 지나치게 고개를 숙이는 금전만능주의를 그려 서민들의 삶을 왜곡한다. ‘꽃보다 남자’에 쏟아진 논란들은 그 끝을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도대체 왜 그럴까.

원작만화가 그렇다면 끝?
가장 큰 이유는 연출력 부재에서 비롯된다. ‘꽃보다 남자’의 스토리는 대부분 일본 원작만화에서 그려진 그대로다. 하지만 같은 스토리라도 만화 속에서와 드라마 속에서는 전혀 느낌이 다르게 그려진다. 금잔디(구혜선)네 집의 아이 같은 어른과 어른 같은 아이 설정은 만화에서라면 당연히 가벼운 웃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려진 이 아이 같은 부모들이 구준표 앞에서 보여준 비굴함은 웃음보다는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구준표의 거만한 태도 역시 만화 속이라면 이해되고 심지어 그 기성사회에 대한 도발이 통쾌할 수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멸치를 보며 “이게 무슨 벌레냐”고 묻는 구준표를 보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고교생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 금잔디네 부모의 모습이나, 고교생들이 한 학생을 두고 벌이는 집단따돌림은 초창기부터 원작만화가 가진 왜색문화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리메이크 과정에 있어서 원작을 수용하기만 했지 우리 식의 해석이 들어가지 않았던 데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이런 비판들에 대해 제작사측은 시종일관 원작만화가 그렇다는 식으로만 말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원작만화로 돌리는 핑계가 납득될 수 있는 일일까. 이것은 오히려 이 드라마의 연출력 부재를 스스로 자인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 불거져 나온 드라마 내내 깔리는 OST의 논란은 이제 이 드라마의 연출력 부재가 총체적인 부실로 드러나고 있음을 말해주는 증후로 보여진다.

‘꽃보다 남자’는 원작만화를 잘 그려내지 못했다
만화가(그것도 외국의) 드라마로 리메이크 되려면 연출에 있어서 재해석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 물론 재해석에 있어서 원작만화에 충실하려 했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꽃보다 남자’가 원작만화를 잘 그려냈다고 볼 수 있을까. 만화의 스토리를 살리려 했다면 단순히 스토리의 재연이 아니라 스토리를 만화적으로 연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했다.

우리는 이미 ‘메리대구 공방전’이나 ‘환상의 커플’, ‘경성스캔들’을 통해 드라마의 만화적 연출 가능성을 목도한 적이 있다. ‘메리대구 공방전’은 광각 카메라를 통해 앵글 자체를 만화적으로 활용하고, 컷을 만화의 단 나누듯이 연출해 그 만화적 스토리의 경쾌함을 만들어냈다. ‘환상의 커플’은 안나조(한예슬)라는 독특한 말투와 대사의 캐릭터를 창조함으로써 그 만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경성스캔들’은 일제시대라는 무거움을 과감하게도 만화적 연출을 통해 가볍게 그려내는 실험성을 돋보였다.

이들 일련의 수작들과 비교해보면 ‘꽃보다 남자’의 연출은 만화적이라기보다는 사회극의 분위기를 자아낼 정도로 무겁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드라마의 자극적인 전개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즉 사회극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현실적인 연출들, 예를 들면 심각할 정도의 집단따돌림 장면이나, 주인공을 위기로 몰아넣기 위해 강간 같은 장면을 연상시키는 연출은 거꾸로 이 드라마의 만화적 존재들인 F4와 극명한 대비를 통해 그 일차적인 자극을 높이려는 의도다.

하지만 만화가 사회극의 뉘앙스를 가져와 논란을 만들어내고, 또 논란이 불거졌을 때 원작만화라는 핑계로 숨는 것은 당당하지 못한 태도일뿐더러 이 드라마의 연출력 부재를 드러내는 반증이기도 하다. 만화적 대사, 스토리를 그대로 끌어오고도 그것이 만화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연출은 그 만화적 속성과 드라마적 속성의 괴리로 인해 논란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지금 불거져 나온‘대사보다 OST’라는 비판은 이 부재한 연출력을 OST(사실 OST라고 할만한 다채로움도 별로 없다. 단 한 곡이 거의 반복될 뿐이다.)로 보완해보려는 안일한 연출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2007년 마니아 드라마가 말해주는 방송사별 특색

2007년 한 해의 드라마를 특징짓는 한 현상은 시청률은 낮은데 호평 받았던 이른바 ‘마니아 드라마’일 것이다. ‘마왕’, ‘경성스캔들’, ‘한성별곡’, ‘얼렁뚱땅 흥신소’까지 가장 많은 마니아 드라마를 양산한 곳은 KBS. 여기에 MBC의 ‘메리대구 공방전’ 정도가 그 범주에 들어간다 할 수 있다. 희한한 일이지만 SBS는 단 한 편도 마니아 드라마라 꼽을 만한 것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마니아 드라마를 등장하게 했고, 그 양태가 방송사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화 같은 드라마에 웃고 울고
마니아 드라마의 한 특징은 그것이 만화를 닮았다는 점이다. 만일 만화로 친다면 ‘마왕’은 사이코 메트리가 등장하는 본격 스릴러가 될 것이며, ‘경성스캔들’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순정만화가 될 것이다. ‘한성별곡’이 정조시대를 다룬 본격 역사만화가 된다면, ‘얼렁뚱땅 흥신소’는 도심 속의 보물찾기라는 코믹 모험 만화가 될 것이며, ‘메리대구 공방전’은 코믹한 청춘 멜로를 그린 순정만화가 될 것이다.

이 드라마들의 만화 같은 특징이 만화의 세계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보통은 20대에서 30대 중반까지)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가져왔으리라는 것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경성스캔들’, ‘얼렁뚱땅 흥신소’, ‘메리대구 공방전’같은 드라마는 아예 영상 구성 자체를 만화적인 컷으로 하는 실험성까지 보였다. 톡톡 튀는 재미와 심각한 주제마저도 가볍게 끌어가는 연출은 이들 마니아 드라마가 호평을 이끌어낸 원천적인 힘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은 기존 드라마 시청층(30대 후반부터 60대까지)으로부터 외면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보통의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층은 일단 만화적인 상상력이 엉뚱하다는 것 이상으로는 이해될 수 없었고, 스토리텔링의 촘촘함이 무기인 이들 작품들은 한 회 정도 걸렀을 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드라마가 되었다. 찾아보는데 익숙하지 않은 이 시청층은 늘 봐야 이해할 수 있는 낮선 드라마보다는 아무 때고 봐도 이해될 수 있는 조금은 느슨하고 편안한 드라마를 찾았다. 그러니 이들 드라마들의 본방 시청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니아 드라마가 될 뻔했던 드라마들
하지만 만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했다 해서 모두가 마니아 드라마가 됐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쩐의 전쟁’이나 ‘개와 늑대의 시간’, ‘히트’, ‘커피프린스 1호점’같은 드라마들이다. ‘쩐의 전쟁’은 아예 원작이 만화였으며, ‘개와 늑대의 시간’은 국내 드라마로서는 처음으로 느와르의 세계를 만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히트’ 역시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을 좇는 형사물로 인기를 끌었고, ‘커피프린스 1호점’은 순정만화 톤의 드라마연출로 각광을 받았다.

어째서 이들 드라마들은 시청자들이 외면하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이들 드라마들이 완전히 낯선 만화적 세계를 그렸다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현실성이나 익숙함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쩐의 전쟁’은 사채업자라는 낯선 세계를 소재로 삼았지만, 그 사채라는 소재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가 그만큼 높았으며, ‘히트’와 ‘개와 늑대의 시간’은 장르의 익숙함과 멜로적인 인간관계의 구성으로 그 벽을 넘어섰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꼼꼼한 연출력과 캐릭터의 힘, 게다가 트렌디에 바탕하면서도 그걸 넘어서는 스토리 전개로 호평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즉 2007년도를 특징짓는 이른바 마니아 드라마들의 탄생은 바로 그 낯선 세계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만화적인 낯설음이기도 하고 젊은 세대의 감성에 대한 낯설음이기도 하다. 젊은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등식은 허용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 젊은 세대가 앞으로 미래의 시청자가 된다는 점에서 이들 마니아 드라마들은 과거의 답습보다는 미래의 드라마에 도전한 드라마로 볼 수 있다.

마니아 드라마가 말해주는 2007 방송사별 드라마 특색
마니아 드라마가 생기는 이유로서, TV 본방 시청보다 인터넷이나 IPTV 등의 다운로드형 시청 패턴이 젊은 층을 통해 늘고 있다는 것은 또한 현재의 시청률 집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방송사의 고민은 현재의 시청률 집계 속에서 시청률을 잡기 위해 나이든 시청층에 맞는 익숙한 드라마를 내보내야할 것이지만, 또한 달라지고 있는 미래의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도외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러한 고민이 깃든 방송사들에서 저마다 마니아 드라마의 양태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올 한 해 방송사별 드라마의 특색을 가장 잘 말해주기도 한다.

가장 많이 마니아 드라마를 양산한 KBS는 완성도만을 고려한 정통적인 드라마 기획을 한 점은 높이 살만하나, 결과적으로 현실적인 변화의 흐름을 포착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단 한 개의 마니아 드라마도 양산하지 않은 SBS의 경우는 그만큼 올 한 해의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들은 실제로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MBC는 어찌 보면 이를 가장 잘 조화시킨 경우가 될 것이다. 도전적인 시도를 하면서도 완전히 낯선 세계가 아닌 익숙한 세계를 끼워넣는 노력을 보였다.

그 성과가 어떻든 방송사들의 마니아 드라마 양산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고민으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결과에 상관없이 박수 받을 만한 것이다. 문제는 지나친 마니아 드라마만의 양산은 자칫 방송사의 방만함으로 보일 수도 있으며, 반면 마니아 드라마가 한편도 없다는 것은 방송사 자체의 도전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던 마니아 드라마들은 따라서 올 한 해의 방송사별 드라마 특색을 말해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2007년 한 해, 마니아 드라마가 있어서 우리는 행복했다.

퓨전의 맛을 만드는 ‘위장’이라는 요리법

색다른 맛을 가진 퓨전시대극, ‘경성스캔들’의 요리법은 ‘위장’이란 코드다. ‘경성스캔들’은 제목부터 그 속에 무엇이 담겨있을까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경성’이란 일제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에 ‘스캔들’이라니. 드라마는 시작부터 비밀댄스홀이 등장하고 바람둥이 선우완(강지환)이 기생 차송주(한고은)와 함께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등, 이 드라마의 방향성을 교란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일제시대라는 무거운 역사의 틀을 과감하게 벗겨냈다는 호평과 함께, 아무리 그래도 그 비장한 시대에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를 다룬다는 혹평이 동시에 나왔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경성스캔들’이란 퓨전의 첫 번째 위장술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탄일 뿐이었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그 베일이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가면서 그들이 그저 일제시대라는 상황을 잊고 연애나 하는 한량들이 아니었음 밝히기 위한 위장술 말이다.

드라마 말미에 가서 결국 알게된 것은 차송주나 이수현(류진), 나여경(한지민), 강인호(안용준), 심지어는 지라시 출판사의 삼인조에서 바람둥이 선우완까지 어느 누구 하나 시대의 고통을 회피하는 인물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독립운동의 틀 안에서 움직이고 그렇게 되자 교과서 속에서 보았던 박제된 독립운동가들의 이미지는 보통 사람들의 항일운동으로 되살아난다.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도 사람이고 사랑을 하고 아파한다. 그리고 그 개인적인 사랑의 아픔은 시대의 아픔과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항일투쟁의 가장 강력한 혁명전술이 위장연애’라는 설정은 이 드라마 속의 멜로와 시대극이 퓨전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들이 보여주었던 트렌디한 신파류의 멜로는 참신해진다.

‘사랑한다’는 마음은 위장술의 뒤편으로 숨는다. 차송주를 사랑하는 이수현의 마음은 위장술 속에서 적인 것처럼 서로를 대하게 만들고, 나여경의 선우완을 사랑하는 마음은 종종 수줍게도 위장술로 위장된다. 사랑하는 사람(선우완)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른 여자(총독부 보안과장의 딸)와 함께 몇 일간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설정은 멜로가 시대적 아픔과 맞닥뜨려 시너지를 내는 지점이다.

무엇보다 이런 위장술을 멋진 양념이 되게 한 공은 출연한 연기자들의 몫이다. 위장술을 하는 연기자들의 연기란 결국 두 가지의 모습(드러난 모습과 드러낼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강지환은 바람둥이에서 사랑을 통해 투사가 되어 가는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을 때론 웃기고 때론 울려주었고, 한지민은 당차면서도 귀여운 소녀 같은 이미지를 보여줬다. 류진은 일본 앞잡이와 애국지사라는 양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어려운 역할을 소화해냈다. 무엇보다 한고은은 제 몸에 맞는 옷을 챙겨 입은 듯 차송주의 역할을 카리스마 넘치게 연기했다.

그리하여 이들 연기자들에 의해 활용된 위장술이란 요리법을 통해 ‘경성스캔들’이란 제목의 스캔들이 무엇인가가 밝혀진다. 그것은 스캔들을 위장한 독립운동이며 그 독립운동 속에서 아파하며 사랑했던 당대 젊은이들의 초상이다. 물론 이 퓨전 시대극이 시대의 아픔을 지나치게 가볍게 풀어냈다는 비판을 벗어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부분이 또한 이 퓨전 시대극이 이룬 성과이기도 한 것은 일제시대라는 중압감을 벗어난 연후에야 새로운 시도가 가능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념이 사라지고 생활이 남은 시대,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이념보다는 사람 때문이라고 말하는 듯한 이 드라마는 의미를 갖게된다. 비장하진 않지만, 웃고 울고 실수하고 후회하는 당대 민초들이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아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했던 것은 어찌 보면 위장술이 아니었을까.

혁명과 사랑이 섞인 그 오묘한 맛, ‘경성스캔들’

시대가 달라지면서 입맛도 달라지듯 드라마의 맛도 다양해지고 있다. 비빔밥하면 고추장에 나물, 참기름, 계란프라이를 떠올리던 건 과거지사다. 이제 비빔밥은 새싹, 한치, 날치알 등등 넣을 수 있는 것들은 죄다 넣어 전혀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드라마도 마찬가지. 역사라는 용기에는 퓨전된 상큼한 맛의 현대적 멜로가 복고풍의 아릿한 향수와 섞이고, 감칠맛 나는 설정과 캐릭터 대사들이 양념으로 들어가 독특한 맛을 낸다. 그 정점에 있는 드라마라는 음식은 바로 ‘경성스캔들’이다. 만일 퓨전이 뭔지 알고 싶다면 이 드라마의 맛을 살짝 보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네가 혁명을 가르쳐 줘 난 사랑을 가르쳐 줄께
“네가 나한테 혁명이 뭔지 가르쳐 줘. 그럼 내가 너한테 사랑이 뭔지 가르쳐 줄께.” 급기야 바람둥이 선우완(강지환)이 나여경(한지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 들어 있는 단어들이 예사롭지 않다. 혁명과 사랑이라니.

과거라면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았을 일제시대라는 배경에 멜로 라인을 퓨전한 이 독특한 비빔밥은 의외로 참 맛이 좋다. 그것이 그냥 새로운 맛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 달라진 시청자들의 입맛을 정확하게 맞춰 이뤄낸 퓨전이기에 그 맛이 좋다는 것이다.

혁명과 사랑이 동떨어진 단어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상주의가 가진 낭만주의의 속성은 이 두 단어가 동전의 앞뒷면처럼 밀착되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럼에도 여기에 간극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일제시대를 다루던 여타의 작품들 속의 사랑이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이다. 시대의 무게감을 버텨내지 못해 사랑보다는 혁명이 더 앞서있었던 것.

하지만 ‘경성스캔들’은 다르다. 사랑을 다루되 가볍게 건드린다. 그리자 혁명과 사랑은 선우완의 대사처럼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등가의 힘을 갖는다. 마치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두 가지 버전처럼 진행된, ‘조마자(조선마지막여자) 모던걸 만들기’와 ‘바람둥이 혁명남 만들기’같은 이 드라마의 핵심 재미 요소는 이런 힘 배분으로 인해 가능했던 시퀀스들이다.

과거의 가치와 현재의 가치를 버무리다
이러한 ‘경성스캔들’의 시도는 가치 있는 것이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시대상을 너무 가볍게 건드려 공감은커녕 반발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성공한다면 이 드라마는 신구세대 시청자들이 함께 앉아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된다.

일제시대가 주는 과거적 배경에 대한 향수는, 경쾌한 댄스홀의 음악들과 중절모로 대변되는 멋쟁이 신사들, 구어체적인 연극적 대사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유교적 가치를 지닌 캐릭터들이 버무려지면서 만들어진다. 무엇보다도 그 향수의 정수가 되는 것은 이념이다. 지금 같은 이념 없는 시대에, 무언가에 대항할 수 있는 이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대적 감각의 가벼운 멜로는 만화 같은 장르적 장치들을 활용하면서 젊은 세대들의 감성에 조우한다. 댄스홀이라는 공간에서의 집단댄스 장면은 마치 뮤지컬 같은 기분을 자아내게 만들며, 선우완이 근무하는 지라시 출판사의 세 남자 김탁구(강남길), 신세기(허정민), 왕골(고명환)은 마치 고대희극의 유쾌한 코러스 같은 역할처럼 활용된다.

그리고 이 과거와 현재는 선우완과 나여경이라는 캐릭터들이 엮어 가는 멜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즉 선우완은 현재적 가치를, 나여경은 과거적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그 두 가치들은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며, 그러기에 그 둘은 서로에게 그 가치를 일깨우는 중이다.

일제시대라는 무거움과 무채색으로 상징되던 시대에, 가벼움과 화려함으로 부활한 혁명과 사랑은 그렇게 이 한 드라마에서 만나게 되었다. 과거를 다루었으되 현재의 가치가 번득이고, 그럼에도 과거의 가치를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이어가는 ‘경성스캔들’. 그 퓨전의 맛이 오묘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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