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소문', 정의 구현이 사적 복수가 되지 않으려면

 

"하늘의 힘을 가진 자가 살인충동을 느끼는 건 악귀나 다름없어." 소문(조병규)의 카운터 자격을 박탈하면서 그의 저승파트너인 위겐(문숙)은 그렇게 말한다. 악귀가 들어간 이들을 제압해 저승으로 보내는 역할을 위임받는 카운터들. 그들은 보통 인간들이 가질 수 없는 힘을 갖지만 거기에도 지켜야할 룰이 존재한다는 걸 위겐은 알려준다.

 

부모를 죽이고 그 영혼을 제 몸 속에 7년간이나 가둔 채 계속해서 살인을 이어가는 지청신(이홍내) 앞에서 그는 이성을 잃었고, 자신은 물론이고 절친들인 임주연(이지원)과 김웅민(김은수)을 괴롭히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가하는 신명휘(최광일) 시장의 아들이자 일진 신혁우(정원창)와 그 일당들 앞에서 그는 살의까지 품었다. 그것이 소문이 카운터 자격을 박탈당하게 되는 이유였다.

 

OCN 토일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은 이른바 '악귀 사냥꾼' 카운터들이 등장하는 판타지지만, 그 판타지의 가면을 벗겨내고 나면 그 안에 부정한 짓들은 물론이고 살인까지 저지르고도 버젓이 살아가는 '사회악'과 정의의 민낯을 숨기고 있다. 그 악귀들이 빙의되었거나 그런 존재들을 이용하는 이들은 거짓 위선으로 대권까지 노리고 있는 신명휘 시장과 그를 도우며 치부해온 태신그룹 조태신(이도엽) 회장 그리고 이들의 손발이 된 조폭들이다. 그 악은 이제 장르물의 클리셰가 될 정도로 익숙한 시스템이다. 정치인과 재개발로 치부한 건설회사 대표 그리고 이들 대신 손에 피를 묻히는 조폭들이라는 시스템.

 

이들의 시스템이 얼마나 공고한가는 카운터들의 그런 노력에도 달라진 게 하나도 없고 오히려 더욱 승승장구하는 저들의 모습에서 드러난다. "아저씨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어요. 그렇게까지 했는데 그 놈들은 상처 하나 없고요. 우리 엄마 아빠 죽인 지청신은 자유의 몸이 됐고, 조태신은 50대 기업 회장에, 신명휘 시장은 대통령 된데요. 되게 거짓말 같아요. 이 모든 게." 소문의 이런 항변은 그래서 뼈아프다. 마치 판타지를 빌어 우리 사회가 현재 처한 현실을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다. 공정한 사회와 정의를 기치로 내걸었던 우리네 사회는 과연 최근 몇 년 간 그걸 얼마나 이뤘을까.

 

소문의 분노는 정의의 구현과 더불어 사적 감정에 휘둘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카운터 자격 박탈을 당하게 됐던 것. 그것이 약자를 위한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힘(권력)을 가진 자는 그걸 휘두르는데도 지켜야할 룰(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은 소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과거 어떻게 코마 상태에 이르게 됐는가에 대한 진실을 알아가는 가모탁(유준상) 역시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그 일에서 분노와 사적 감정을 누르지 못한다. 그래서 소문이 달라진 게 하나도 없고 오히려 더 나빠진 현실을 이야기할 때 가모탁은 말한다. "왜 달라진 게 없어. 네가 달라졌고 내가 달라졌는데."

 

결국 소문도 가모탁도 그 힘의 자격을 박탈당한 후에야 그걸 깨닫고 각성한다. 자신과 친구들을 괴롭히던 신혁우와 그 일당들이 힘을 잃은 채 다리를 절며 나타난 소문을 다시 괴롭히기 시작하지만 그는 과거처럼 그들에게 사적 분노를 쏟아내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말한다. "그렇게 분노하고 나면 속이 후련하냐? 니 감정 그렇게 주체 못하는 거 너도 니 주변 사람들도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야." 그는 카운터 자격 박탈을 통해 자신이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가를 알게 됐다.

 

어찌된 일인지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기억도 힘도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모든 힘을 잃은 것처럼 행동해온 소문은 과거와는 달라져 있었다. "여기서 니들 모두 죽여 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니들이랑 똑같은 새끼 되는 거니까. 신혁우. 우린 아직 어리잖아. 넌 기회가 있어. (나도 마찬가지고.)" 그는 이제야 왜 분노하되 그것이 사적 복수가 아닌 사회적 정의가 될 수 있게 힘을 써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경이로운 소문>은 이처럼 판타지 액션의 겉모습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 우리네 현실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 정의의 문제를 다루면서 동시에 그 온당한 사회적 절차를 통한 실현 과정의 중요성 또한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통쾌한 정의 구현의 사이다 속에 힘을 가진 자들이 자칫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는 것에 대한 경각심 또한 심어 놓는다. 그래서 이 판타지 액션은 그저 화려하고 속 시원한 볼거리에 머물지 않게 됐다. 바로 이런 성찰적 태도가 작품 속에 들어 있으니.(사진:OCN)

'경이로운 소문', 좋은 캐릭터가 끄집어낸 신인들의 가능성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이 7.6%(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했다. 2.7%로 시작한 드라마가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이 작품이 끄집어낸 신인 연기자들도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좋은 작품에 좋은 캐릭터가 만들어낸 또 다른 열매가 아닐 수 없다. 그 장본인은 주인공 소문 역할을 연기하는 조병규와 그와 함께 카운터로서 악귀들을 때려잡는 도하나 역할의 김세정, 그리고 조병규의 둘도 없는 친구 임주연 역할의 이지원이다. 

 

조병규는 2015년부터 연기를 시작했지만 그 존재감을 알린 건 2018년 방영됐던 <SKY 캐슬>이다. 피라미드에 집착하며 그 꼭대기에 서야 한다 아이들을 혹독하게 몰아세우는 차민혁(김병철)의 쌍둥이 아들 중 둘째 차기준 역할로 조병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워낙 화제성이 큰 작품이었던지라 아역들도 주목된 이 작품으로 김혜윤, 이지원, 찬희, 김보라 같은 많은 가능성 있는 신인들이 탄생했다. 

 

<SKY 캐슬>에서 주목받은 조병규는 SBS <스토브리그>에서는 드림즈 운영팀 직원으로 등장해 아역의 색깔을 지워내며 다양한 역할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그래서인지 <경이로운 소문>은 다시 고등학생 역할로 돌아왔지만 주인공답게 연기의 폭은 넓어졌다. 평범한 고등학생의 모습과, 부모가 사실은 살해당했다는 걸 알게 되고는 오열 분노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걸그룹 구구단의 멤버로서 <학교 2017>, <너의 노래를 들려줘>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자의 길 또한 열어가고 있는 김세정 역시 <경이로운 소문>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실 드라마보다 예능 프로그램이 더 많고 SBS <런닝맨>이나 tvN <식스센스>, 넷플릭스 <범인은 바로 너> 같은 유재석과 함께 하는 예능에서의 털털한 모습이 대중들에게 그 이미지로 각인된 김세정이다. 

 

그래서 <경이로운 소문>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털털한 이미지에 맞는 캐릭터 연기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김세정이 맡은 도하나라는 캐릭터는 과묵하고 말보다는 행동을 먼저 보이는 인물인데다, 자신만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털털한 이미지보다는 슬픔 같은 정서가 느껴지는 인물을 소화함으로써 예능에서 보던 김세정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또 한 명의 주목할 만한 신인배우는 소문의 친구 임주연 역할로 그리 많은 분량에 등장하진 않지만 자꾸만 눈이 가는 이지원이다. 워낙 <SKY 캐슬>에서부터 똑 부러지는 연기로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했던 이지원은 이 작품에서도 커다란 안경을 끼고 소문을 위해 함께 울어주고 또 기뻐해주는 영락없는 찐 친구의 모습을 찰떡 같이 연기해내고 있다. 

 

좋은 작품은 결국 좋은 캐릭터가 있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내는 연기자가 없다면 결코 좋은 작품으로 살아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경이로운 소문>은 그 상승세를 타고 신인 연기자들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 보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느끼게 할 만큼.(사진:OCN)

'경이로운 소문', 악귀·슈퍼히어로에 학원물이 더해지니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에 빙의된 악귀들과 싸우는 슈퍼히어로. OCN <경이로운 소문>의 언니네 국수집에서 국수를 파는 추매옥(염혜란), 가모탁(유준상) 그리고 도하나(김세정)는 평범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악귀가 나타났다는 걸 알아차리면 가게 문을 닫고 출동하는 악귀 잡는 카운터팀(악귀를 센다는 의미)이다. 어느 날 나타난 3단계 악귀에게 철중(성지루)이 사망하자 그 몸에 있던 저승 파트너 위겐이 빠져나와 소문(조병규)의 몸으로 들어간다. 이로써 소문은 언니네 국수집의 숨은 슈퍼히어로들인 카운터팀에 들어가게 된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나 <퇴마록> 같은 악귀 잡는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이들을 담는 장르적 틀은 훨씬 일상 속의 고수가 등장하는 <아라한 장풍대작전>에 가깝다. 보통 사람들보다 두 배 이상의 육체적 능력을 가진 이들은 저마다 가진 탁월한 재능들이 조금씩 다르다. 추매옥은 치유의 능력을 가졌고, 가모탁은 괴력을 가졌으며, 도하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그 과거까지 읽어내는 능력을 가졌다. 이들이 악귀를 잡는 액션은 무협영화의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스타일로 표현된다.

 

아직까지 어떤 그만의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경이로운'이라는 표현이 붙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탁월함을 드러내는 소문은 위겐이 들어오기 전, 부모를 사고로 잃고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진 데다 조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학생이다. 바로 이 지점은 이 드라마가 '학원물'의 색깔을 더할 수 있게 된 중요한 부분이다.

 

상습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 웅민(김은수)과 절친인 주연(이지원)의 친구로 역시 학교 일진들의 괴롭힘을 당하게 된 소문이 능력을 갖게 되고 그래서 이들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장면은 이 악귀 잡는 슈퍼히어로 판타지가 현실감을 끌어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학교 폭력을 일삼는 일진인 혁우(정원창)는 중진시 시장 아들이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 중 한 명 역시 국회의원 아들이다. 이들은 그런 부모의 권력을 등에 업고 약자들을 괴롭히지만, 학교나 경찰도 이들을 제지하지 못한다.

 

악귀라는 비현실적 존재를 세워두면서, 그들이 현실 세계의 '악한 숙주'를 찾아들어간다는 설정은 이 드라마의 비현실성에 현실적인 상황을 이어놓는다. "이미 살생 경험이 있거나 살인 충동과 욕망이 강한 자"가 바로 그 악한 숙주라는 것. 즉 드라마는 현실에서 살인을 저지르거나 상습적인 가정 폭력을 일삼는 그런 이들에게 악귀가 달라붙는다는 설정을 더하고, 이를 막는 존재로서의 카운터들의 활약을 그려낸다. 그래서 슈퍼히어로의 이야기들은 우리네 현실에 담겨진 범죄들을 자연스럽게 끌어오게 만든다.

 

<경이로운 소문>이 그저 어디선가 봐왔던 슈퍼히어로물의 퓨전에 머물지 않고 좀 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저 부모의 권력을 등에 업고 약자들을 괴롭히지만 아무도 그들을 제지하지 못하거나, 아이나 장애를 가진 약자들이 폭력에 더더욱 내몰리는 현실이 여기에는 투영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융의 책임자이자 소문의 저승 파트너인 위겐은, 소문에게 그 곳의 삶이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여기서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아.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고 다만 선한 사람들은 보상을 받고 악한 사람들은 응당의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차이 정도."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소문은 말한다. 그것이 "엄청난 차이"라고. 우리가 사는 현실이 선한 사람이 보상받고 악한 사람이 대가를 치르는 곳이 아니라는 이 단순하지만 명쾌한 현실인식이 들어있어 이 드라마의 실감이 달라지고 있다.(사진: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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