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꼭 닮은 부산국제영화제, 누가 침몰시키나

 

예술적 부분에서 독립성 보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 재정 지원을 받는 기관으로서 공익적 관점에서의 행정적 책임성이라는 건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부산시 김규옥 경제부시장의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에 대한 이 발언은 모순처럼 들린다. 예술적 부분공익적 관점을 마치 분리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제에서 이를 분리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부산국제영화제(사진출처:BIFF)'

예술적인 부분은 그 자체로 공익적일 수 있다. 또 공익적인 선택이 어떤 영화에서는 예술일 수 있다. <다이빙벨> 같은 영화가 그렇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노력을 영화로 담는 일은 예술적이면서도 공익적인 일이다. 공익적인 이유로 영화를 찍은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예술이기도 하다. 물론 그 공익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마도 김규옥 경제부시장이 말하는 공익은 <다이빙벨>의 공익과는 다른 모양이다.

 

2014<다이빙벨> 상영을 두고 벌어진 영화제 측과 부산시 측의 갈등은 최근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그간 부산시는 많은 영화인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사퇴시켰고,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던 장면처럼 감사원이 감사를 실시한 후 이용관 위원장과 전 현직 사무국장 등이 검찰에 고발됐다. 또 부산시가 낸 신규 자문위원 효력정지 가처분 신정이 부산지법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결국 대다수의 영화인들은 독립성 보장과 표현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며 영화제의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제 6개월 남았다. 6개월이라는 골든타임이 20년 간을 잘 달려온 영화제라는 배가 계속 순항할 것인지 아니면 침몰해버릴 것인지를 가름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우리네 영화계가 향후에도 저마다의 소신에 따른 공익을 위해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맞는 공익만이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지를 가름하는 일이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영화제와 영화계는 지금 부산시에 의해 커다랗게 쏠려버린 무게로 인해 중심을 잃고 기울어진 채 가라앉고 있다.

 

최근 세월호 2주기를 맞아 이와 관련한 방송을 내보낸 곳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JTBC <뉴스룸>뿐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세월호와 국정원과의 연관성에 의혹을 제기했고, 또 마지막 골든타임 동안 구조는 하지 않고 보고에만 시간을 보낸 안타까운 상황을 청와대와 해경의 통신내용을 통해 보도했다. <뉴스룸> 역시 같은 내용의 정보들이 보도되었다. 하지만 이 밖의 지상파 채널에서 세월호 2주기에 대한 심층취재 같은 것들은 시도도 되지 않았다. 아마도 여기에도 공익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들이 엇갈렸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보이콧 할 만큼의 쟁점이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라는 부산시측의 답변은, 거꾸로 이런 일들이 영화인 대다수가 보이콧 하고 심지어 외국의 영화인들까지 나서서 부산시에 반대하게 만들 정도로 사태를 악화시킬 만한 일인가 라고 질문이 되돌려져야 할 상황이다. 현재의 부산국제영화제는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를 닮았다. 아마도 부산시 측은 그 침몰의 원인을 영화인들의 잘못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배에 타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영화인들이지 부산시 측이 아니다. 영화인 그 누가 영화제의 침몰을 원하겠는가.

 

<그것이 알고 싶다>는 골든타임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차라리 내버려뒀으면 구조에 더 힘을 쓸 수 있었을 상황에 갖가지 보고를 요청하며 시간을 보내버린 탓에 안타까운 비극을 맞이하게 된 장면들을 보여줬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남은 6개월간의 골든타임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대중들의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이 사태에 집중되는 이유다

얼음들이 떠올리는 세월호 참사의 안타까운 아이들

 

아이들은 착하게도 끝까지 어른들의 통제에 따랐다. 하지만 그 어른들은 심장 따위는 없는 얼음들같았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을 희생시켰다는 죄책감과 부채의식 때문인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지켜내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을 아프게도 떠올리게 만든다.

 

'악동뮤지션(사진출처:YG엔터테인먼트)'

<표적> 같은 영화를 봐도 먼저 비리로 얼룩진 무능한 공권력이 떠오르고, <엔젤아이즈> 같은 드라마를 보며 남녀 주인공의 멜로에 빠져들다가도 119소방대원들이 마주하는 긴급 재난과 응급 상황들에 덜컥 마음 한 구석이 내려앉는다.

 

<쓰리데이즈> 같은 스릴러 장르 드라마에서도 먼저 보이는 건 책임지는대통령의 리더십이다. <심장이 뛴다>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보여준 모세의 기적에서는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유독 안타까웠던 골든타임이 떠오른다. 지금 이 땅의 어른들의 마음이 모두 이렇지 않을까. 일상을 살면서 겪는 모든 일들이 세월호와 거기서 희생된 아이들에 멈춰 있다.

 

이런 와중에 맞는 어린이날이니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유독 간절할 수밖에 없다. 무심코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악동뮤지션의 얼음들이라는 노래가 마음 한 구석을 후벼 파는 건 그래서일 게다. 물론 세월호 참사 이전에 발표된 이 곡을 세월호 참사와 관계 지어 이야기한다는 건 과도한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가 우연히 벌어진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토록 많은 사건 사고들 속에서도 여전히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변화하지도 않았던 어른들의 예고된 재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악동뮤지션이 어른들을 얼음들에 빗대 왜 그렇게 차가울까라고 질문하는 그 속에는 이미 변하지 않던 어른들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셈이다.

 

아이들조차 따뜻한 생명으로 보기보다는 차가운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에서도 저 혼자 살아남겠다고 탈출한 선장과 일등항해사 같은 얼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저 학교에서도 오로지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식의 입시지옥 속에 아이들을 밀어 넣고 있지 않았던가. 아이들은 얼음들이 만들어낸 경쟁체제의 시스템 속에서 늘 관리대상이었지 따뜻한 생명의 존재들이 아니었다.

 

얼음들이 녹아지면 조금 더 따뜻한 노래가 나올 텐데. 얼음들은 왜 그렇게 차가울까. 차가울까요.’ 악동뮤지션이 아이의 순수한 목소리로 얼음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심지어 준엄하게까지 다가온다. 배가 침몰하는 그 순간까지 천진함을 잃지 않았던 아이들이 아빠와 엄마 그리고 선생님을 걱정하던 그 목소리는 더 쟁쟁하게 귓전에 울린다. 아이들은 그 때조차도 끝까지 어른들을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이날이다. 아이들을 위한 온전한 세상이어야 할 날. 그러나 얼음들의 중대한 과오를 눈앞에서 목도한 지금은 우연히 듣는 노래 한 자락마저 어른들을 비통하게 만든다. 어른들이 서둘러 도망치는 순간 한 아이는 두려워하는 친구를 위해 구명조끼를 벗어주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전해준 그 인간적인 따뜻함이 제발 얼음들을 녹여주기를. 유독 슬픈 어린이날이다.

<드라마의 제왕>과 <골든타임> 작가 논란

 

<드라마의 제왕>의 이고은(정려원)은 신인작가다. 아직 정식데뷔도 못했고 유명작가 밑에서 갖은 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보조작가 생활을 해왔다. 그러다 악명 높은 제작자인 앤서니 김(김명민)에게 이용당하고는 드라마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몇 년 후 쫄딱 망한 앤서니 김은 이고은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일본투자자에게 투자받기 위해 그녀와 다시 계약한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의 편성권을 따내게 되자 신인작가에게 작품을 맡길 수 없다는 방송국측의 의견에 따라 앤서니 김은 이고은을 교체해버린다.

 

'드라마의 제왕'(사진출처:SBS)

드라마라서 극화된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적어도 여기 등장하는 신인작가 이고은이 당하는 처지는 그다지 과장이 없다. 외주제작 시스템 속에서 신인작가들이 겪는 고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제작자에 의해, PD에 의해, 방송국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조금만 반응이 달리 나와도 전면적인 작품 수정을 요구 당한다. 심지어 이고은처럼 아이디어만 쪽쪽 빼먹고 이용만 하다 버려지는 경우까지 있다. 제 아무리 무던한 사람이라도 이런 환경에서 작품 하나를 하고나면 자신이 생각했던 작가라는 세계와의 괴리감에 자괴감마저 들게 마련이다.

 

<드라마의 제왕>을 보면서 최근 월간 <방송작가>에 게재된 인터뷰로 논란이 된 <골든타임>의 최희라 작가가 문득 떠오른 것은 왜였을까. “완장을 찬 돼지 같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이 한 줄의 표현이 그대로 문자화되면서 최인혁이라는 놀라운 캐릭터를 연기한 이성민이 도마에 오른 것이 최희라 작가에게는 논란의 빌미가 되었다. 만일 그 표현을 하지 않았더라면, 또 했더라도 그것이 기자에 의해 활자화되지 않았다면 그 인터뷰의 전체 내용은 전혀 다른 뉘앙스를 풍겼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한 인터뷰와 그 인터뷰 내용을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다룬 <방송작가>측의 행동이 경솔했고 잘못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추호도 두둔할 마음이 없다. 하지만 이 인터뷰의 진짜 내용은 배우를 디스하려는 그런 목적에 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신인작가가 드라마판에서 겪고 있는 많은 충돌과 고충, 그리고 작가로서 지켜야할 소신과 현실 사이의 갈등 같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다만 그것이 너무 거친 표현으로 직설적으로 다뤄졌다는 것이 본질을 호도하게 된 원인이 되었을 뿐이다.

 

최희라 작가는 2010년 <산부인과>로 데뷔한 후, <골든타임>이 두 번째 작품으로 거의 신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녀는 <방송작가>와의 인터뷰의 첫머리에서 <산부인과>를 쓸 때 겪었던 고충을 밝히기도 했다. “신인작가가 쓴다고 하니 제작 여건이 어땠겠어요. 그런데 시청률이 오르고 조금씩 반응이 오니까 그제서야 오만 군데서 달려들어 흔들어 대기 시작하는 거예요. 한번은 한 회 대본 전체를 다시 써야 했죠. 한 회가 바뀌면 이미 써 놓은 뒷부분의 대본도 다 고쳐 써야 하는 거잖아요.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9일 동안 5회 대본을 다시 썼어요. 그런 고통을 겪고 나니까 이 바닥이 나와 맞을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어요.”

 

흔히들 드라마 작가라고 하면 모두가 엄청난 고료를 받고 배우들 누구나 고개를 숙이며 존경하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전체 작가들 중 상위 몇 프로에 해당되는 얘기다. 최희라 작가는 <골든타임>을 하면서도 권석장 감독과 부딪쳤던 점들을 인터뷰를 통해 피력했다. 그녀의 말로는 권석장 감독은 “청년 인턴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를 찍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희라 작가가 쓰려던 것은 좀 더 중증외상학과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감독과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10회를 넘어서부터 상황이 더 힘들어졌어요. 현장에서는 대본 대로 찍을 수 없다고 하지, 배우들은 자신의 분량을 늘려달라고 하지... 이 드라마를 지켜야 하는 건 순전히 작가의 몫이었어요.” 최희라 작가가 인터뷰를 통해 말한 것처럼 권석장 감독이 “최인혁과 이민우의 이야기보다 이민우와 장재인이 함께 하는 장면을 더 넣어달라고 요구”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시청률에 있어서 달달한 멜로라인이 갖는 힘이 분명 있다는 것을 권석장 감독이 알고 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작가는 시청자가 “이미 최인혁과 이민우를 통해 중증외상환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의견충돌은 당시 그녀를 괴롭혔을 게다. 물론 그녀는 인터뷰에서 “지금은 감독님께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인터뷰 내용에서 문제가 된 배우에 대한 이야기는 격앙된 표현 부분만 떼놓고 보면 이해되지 않는 게 아니다. <드라마의 제왕>에서 강현민(최시원)이라는 배우가 이고은 작가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보면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의 힘겨루기가 역할에 따라 나눠지기보다는 누가 힘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희라 작가는 “캐릭터를 일관성 있게 끌고 가 줘야 하는 게 주인공의 몫”이라고 했다. 최인혁이라는 캐릭터가 점점 대중들에 의해 중심으로 오면서 본래 다루려 했던 멘토와 멘티 관계를 넘어 지나치게 주목되고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작가로서는 부담이었을 수 있다.

 

이러한 불편함은 주목받으면서 대중들의 요구에 의해 갑자기 생겨난 최인혁과 신은아의 멜로에 대해 그녀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에 어느 정도 담겨있다. “최인혁과 신은아 두 사람의 멜로도 그랬어요. 나이답지 않게 순수하고, 어색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봐야 하는 시점에서 마치 작가 몰래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처럼 연기했어요.” 이 캐릭터의 균형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이선균에 대한 칭찬 속에 들어 있다. “그에 비하면 이선균씨는 분량이 제일 많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지 않게 주위 배우들과 밸런스를 맞추면서 최인혁의 캐릭터가 빛이 날 수 있도록 해줬어요. 이선균씨가 그동안 왜 그렇게 많은 작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는지 느꼈죠.”

 

<골든타임>에서 이성민의 연기는 분명 작품을 살리는 힘이 되어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또한 분명한 건 연기가 살아나는 것이 전적으로 연기자의 힘만으로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최인혁이라는 캐릭터가 작가에 의해 축조된 바탕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성민이 수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골든타임>을 통해 주목받게 된 것은 그런 이유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최희라 작가가 최인혁이라는 캐릭터를 잘 만들었기 때문에, 이 인터뷰의 논란은 더 큰 파장을 낳게 되었다. 여전히 최인혁이라는 캐릭터는 서민들의 메시아 같은 이미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분명 경솔한 인터뷰였지만 거기에는 아직 신참으로서 현실의 때가 묻지 않은 작가의 순진함도 묻어난다. <드라마의 제왕>이 그리고 있는 것처럼 드라마 제작현실은 낭만적이지 않다. 그것은 전쟁터나 마찬가지니까. 최희라 작가는 인터뷰 말미에서 여전히 작가를 계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신인작가라는 현실 속에서 작가라는 정체성 자체를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골든타임>이 좋은 드라마였다는 것이다. 모쪼록 이 한 때의 실수로(그것이 작은 실수는 아니지만) 또 다른 좋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골든타임>, 시즌2를 위한 포석

 

<골든타임>은 종영했지만 해운대 세중병원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외상센터 지정도 수포로 돌아갔고, 헬기 배정도 물 건너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희망마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없는 헬기는 소방헬기와의 제휴를 통해, 여전히 모자란 수술방은 이른바 ‘돌려막기’를 통해 임시방편을 만들었다. 중증 외상센터 부지도 영안실 2층을 리모델링함으로써 해결하기로 했다.

 

'골든타임'(사진출처:MBC)

그리고 쏟아져 들어오는 응급환자들을 맞아 경험은 없어도 열정으로 버텨낸 인턴 나부랭이들도 모두 제각각 자신의 길을 떠났다. 세중병원 응급실에 남겠다는 이민우(이선균)를 멘토이자 롤모델인 최인혁(이성민) 교수는 그의 발전을 위해 떠나라고 했고 그는 서울의 외과수술이 유명한 병원으로 레지던트 과정을 위해 떠났다. 강대제(장용) 이사장이 깨어나자 인턴으로 돌아온 강재인(황정음) 역시 서울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최인혁 교수와 그의 비서이자 매니저인 신은아(송선미)만 남았다. 밉상이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는 과장 4인방도 그대로다. 달라진 건 그다지 없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 응급실의 현실은 더 참담하니 무언가 판타지를 그리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터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암담해지는 그 시점을 이 드라마는 ‘골든타임’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강재인은 이사장 대행으로서 모든 게 뒤틀어질 때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노력과 진심이 배신할 때도 있다”고. 하지만 “후회하지 않을 때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되는 거라고. “이렇게 경험해가면서 우린 성장해가는 거”라고. <골든타임>이 여느 의학드라마보다 빛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섣부른 희망에 다다르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절망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그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담았다는 것.

 

아마도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아지는 건 바로 이 결론이 아니고 과정을 담아낸 드라마의 특성 때문일 게다. “교수님 저 4년 후에 꼭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떠나는 이민우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다시 돌아온 이민우와 최인혁 교수의 만남을 보게 될 거라는 기대감.

 

이런 기대감이 작용한 것인지, <골든타임> 마지막회는 시즌2가 기획된다면 가능할 몇 가지 포석들을 남겨 두었다. 시즌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결국 캐스팅이다. <대장금2> 제작의 관건은 이영애씨에게 달렸다고 이병훈 PD가 말한 건 그 단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골든타임>은 어떨까. 시즌2를 제작한다면 이선균이나 황정음, 이성민, 송선미가 함께 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포석은 이 네 사람이 다시 시즌2에 합류하는 것이다. 이민우가 말한 것처럼 4년 후 버젓한 의사로 돌아온 이민우와 강재인이 최인혁과 신은아를 만나서 다시 응급실을 꾸려가는 이야기. 하지만 이것은 가장 이상적이지만 가장 어려운 조합일 수 있다. 성공한 드라마의 재조합이란 캐스팅에 있어서 각각의 입장차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따라서 현실적인 포석은 최인혁과 신은아가 이끄는 세중병원 응급실에 새로운 인턴들을 넣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새 인턴들로 새로운 주연급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물론 드라마의 중심축은 시즌1에서처럼 최인혁이 이끌어 나가는 게 정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포석은 이민우와 강재인의 서울 레지던트 성장기를 외전처럼 담는 방식이다. 아마도 이것은 쉽지 않은 포석이 되겠지만 <골든타임>과 연계를 가지면서도 새로운 의학드라마로 접근해도 되는 열린 가능성이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보면 <골든타임>의 종영 방식은 대단히 많은 시즌2의 가능성을 잘 고려한 선택이었다고 여겨진다. 네 인물을 한 데 묶어서 어떤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을 풀어 헤쳐 흩어놓고는 다시 만날 약속을 던지는 그런 방식. 과연 <골든타임>은 마지막회가 포석한 것처럼 시즌2로 돌아올 수 있을까. 돌아온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일까. 꼭 다시 이들의 골든타임을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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