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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꼭 닮은 부산국제영화제, 누가 침몰시키나

 

예술적 부분에서 독립성 보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 재정 지원을 받는 기관으로서 공익적 관점에서의 행정적 책임성이라는 건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부산시 김규옥 경제부시장의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에 대한 이 발언은 모순처럼 들린다. 예술적 부분공익적 관점을 마치 분리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제에서 이를 분리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부산국제영화제(사진출처:BIFF)'

예술적인 부분은 그 자체로 공익적일 수 있다. 또 공익적인 선택이 어떤 영화에서는 예술일 수 있다. <다이빙벨> 같은 영화가 그렇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노력을 영화로 담는 일은 예술적이면서도 공익적인 일이다. 공익적인 이유로 영화를 찍은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예술이기도 하다. 물론 그 공익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마도 김규옥 경제부시장이 말하는 공익은 <다이빙벨>의 공익과는 다른 모양이다.

 

2014<다이빙벨> 상영을 두고 벌어진 영화제 측과 부산시 측의 갈등은 최근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그간 부산시는 많은 영화인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사퇴시켰고,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던 장면처럼 감사원이 감사를 실시한 후 이용관 위원장과 전 현직 사무국장 등이 검찰에 고발됐다. 또 부산시가 낸 신규 자문위원 효력정지 가처분 신정이 부산지법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결국 대다수의 영화인들은 독립성 보장과 표현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며 영화제의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제 6개월 남았다. 6개월이라는 골든타임이 20년 간을 잘 달려온 영화제라는 배가 계속 순항할 것인지 아니면 침몰해버릴 것인지를 가름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우리네 영화계가 향후에도 저마다의 소신에 따른 공익을 위해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맞는 공익만이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지를 가름하는 일이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영화제와 영화계는 지금 부산시에 의해 커다랗게 쏠려버린 무게로 인해 중심을 잃고 기울어진 채 가라앉고 있다.

 

최근 세월호 2주기를 맞아 이와 관련한 방송을 내보낸 곳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JTBC <뉴스룸>뿐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세월호와 국정원과의 연관성에 의혹을 제기했고, 또 마지막 골든타임 동안 구조는 하지 않고 보고에만 시간을 보낸 안타까운 상황을 청와대와 해경의 통신내용을 통해 보도했다. <뉴스룸> 역시 같은 내용의 정보들이 보도되었다. 하지만 이 밖의 지상파 채널에서 세월호 2주기에 대한 심층취재 같은 것들은 시도도 되지 않았다. 아마도 여기에도 공익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들이 엇갈렸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보이콧 할 만큼의 쟁점이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라는 부산시측의 답변은, 거꾸로 이런 일들이 영화인 대다수가 보이콧 하고 심지어 외국의 영화인들까지 나서서 부산시에 반대하게 만들 정도로 사태를 악화시킬 만한 일인가 라고 질문이 되돌려져야 할 상황이다. 현재의 부산국제영화제는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를 닮았다. 아마도 부산시 측은 그 침몰의 원인을 영화인들의 잘못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배에 타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영화인들이지 부산시 측이 아니다. 영화인 그 누가 영화제의 침몰을 원하겠는가.

 

<그것이 알고 싶다>는 골든타임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차라리 내버려뒀으면 구조에 더 힘을 쓸 수 있었을 상황에 갖가지 보고를 요청하며 시간을 보내버린 탓에 안타까운 비극을 맞이하게 된 장면들을 보여줬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남은 6개월간의 골든타임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대중들의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이 사태에 집중되는 이유다

Posted by 더키앙

중국은 왜 김영희 PD를 좋아할까

 

쯔위 사태로 중국과 대만 그리고 우리나라가 시끌시끌하던 지난 19일 북경의 한 호텔 리셉션장에서는 이를 무색하게 만들기라도 하듯 한 자리에 중국인, 대만인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까지 함께 모여 새로운 프로그램의 런칭을 알렸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영희 PD. 그가 중국에 진출해 중국의 연예인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 중국 현지에서 방영되는 <폭풍효자>라는 프로그램의 제작발표회였다.

 


김영희 PD(사진출처:미가미디어)

쯔위 사태는 마치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굉장한 갈등상황으로 보게 만드는 면이 있다. 하지만 <폭풍효자>라는 프로그램에는 그런 경계나 갈등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6명의 연예인들이 부모와 함께 자신들이 나고 자란 고향으로 내려가 56일 동안 그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는 프로그램이다. 6명의 연예인들 중에는 중국인은 물론이고 대만인도 들어 있다. 당연히 고향인 대만 씬주에서도 촬영이 이뤄졌다. 국가 간의 정치적인 갈등의 불씨가 있다고 해도 중국에서 대만 출신 연예인들은 왕성히 활동하고 있고 또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건 이 제작발표회의 키를 쥔 인물은 김영희 PD와 우리네 제작진들이라는 것. 김영희 PDMBC를 퇴사하고 본격적인 중국 진출을 위해 중국제작사와 손잡고 남색화염오락문화유한공사(이하 남색화염)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국내에는 미가미디어를 설립해 모든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중국에서는 남색화염을 통해 직접 제작해 중국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새로운 시스템이다.

 

중국인들이 김영희 PD를 바라보는 시각은 또 한 명의 한류스타나 다름없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국적이나 언어를 뛰어넘어 중국인들의 김영희 PD에 대한 무한 신뢰였다. 이것은 중국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중국의 방송인과 연예인, 제작자들 그리고 나아가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중국 관료들까지 마찬가지였다. 사실 한류 콘텐츠가 중국에서 열풍을 만들면 중국 정부는 이를 예민하게 받아들여 갖가지 규제를 만들어온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영희 PD가 제작을 한다고 하면 오히려 적극 권장하고 은근히 밀어주는 분위기다. 왜 그럴까. 이것을 경제적 차원으로만 바라보면 중국이 우리네 기술력과 노하우를 얻어가기 위해 하는 제스처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시각이 모두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김영희 PD 스스로도 기술력 이전은 숨기거나 감출 것이 아니라 드러내놓고 하고 중국과 함께 동반성장하는 것을 고민해야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영희 PD는 그런 기술적 노하우는 어차피 공유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중요한 건 창의력이다. 기술력이 공유되도 창의력은 공유될 수 없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중국과 대등하게 함께 커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김영희 PD는 믿고 있다.

 

중국이 김영희 PD를 좋아하고 그가 만들려는 콘텐츠를 독려하는 까닭은 그의 기술적 노하우 때문만이 아니다. 대신 그가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의 창의성이나 그의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이 중국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김영희 PD공익예능이라는 틀에서 찾아냈다고 보인다. 우리에게는 어딘지 촌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중국의 사회적 분위기에 공익적인 면은 예능의 즐거움과 재미만큼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폭풍효자>의 제작발표회에서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김영희 PD는 첫 마디를 이렇게 열었다. “<폭풍효자>는 좋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폭풍효자>는 좋으면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좋으면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이 첫 마디 속에는 중국이 김영희 PD를 원하고 좋아하는 이유가 모두 들어가 있다.

 

다시 쯔위 사태로 돌아와 보면, 이제 국가 간의 장벽을 넘어 콘텐츠를 함께 만드는 일은 21세기에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문화적인 교류는 그래서 어떤 면으로 보면 국가 간의 장벽을 선제적으로 허물어내는 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쯔위 사태가 보여준 것처럼 시대에 역류하는 20세기적 사고방식이 갑자기 튀어나와 화합과 통합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결국 따지고 보면 황안 같은 시대에 역행하는 인물이 이를 부추기지 않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일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이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조심해야 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실행해갈 때 진정으로 함께 살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이번 쯔위 사태가 보여준 문화적 교류에 발생한 국가적 갈등상황들의 해법은 거기 있을 것이다. 김영희 PD를 중심으로 우리네 제작진들과 중국인, 대만인이 함께 모여 부모 자식 간의 관계라는 국가를 초월하는 공감대 속에서 세 시간 가까이 웃고 박수치고 때론 감동에 먹먹해진 그 훈훈한 제작발표회에 갈등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Posted by 더키앙

'일밤'의 기대주, '뜨거운 형제들'의 가능성

'일밤'이 새 카드로 꺼내든 '뜨거운 형제들'은 독특하다. 일단 그 제목이 특정한 아이템을 지칭하지 않고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기존 '일밤'의 코너들과는 차이가 있다. 사실 '단비'나 '우리 아버지' 같은 코너는 제목이 한정적이다. 따라서 그 코너가 다루는 이야기의 소재는 제목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뜨거운 형제들'은 다르다. 이 제목은 코너의 이야기 소재를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거기 등장하는 인물에 집중한다. 따라서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제들이 등장한다는 것만 정해져 있을 뿐, 그들이 어떤 소재로 어떤 미션을 할 것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이 차이는 '뜨거운 형제들'이 무수히 생겨났다 사라져버린 '일밤'의 여타 프로그램과는 달리 자유롭게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만든다.

처음 미션으로 시작하고 있는 '아바타 소개팅'도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겉으로 보기엔 가상현실이 일반화된 시대에 새롭게 버전업된 짝짓기 프로그램 같지만 그건 지극히 겉만 본 것에 불과하다. 누군가 소개팅에 나가는 아바타가 되고 누군가는 그 아바타를 조종하는 상황은 그 어느 짝짓기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지점의 재미를 끌어낸다.

소개팅이라고 하면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어필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이지만, 아바타 소개팅이라는 틀 속으로 들어가면 그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바타를 조종하는 이는 상대방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아바타가 되는 이는 그것이 자신의 진심이 아니라 조종하는 자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 즉 부담이 그만큼 적어진다는 얘기다. 이것은 마치 일상적으로 가상에 접속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서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재미는 있으면서도 부담은 적은.

그 속에서 박휘순은 시키는 대로 폭탄짓을 하고, 이기광은 잘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망가지는 모습을 자유롭게 펼쳐 보인다. 사이먼D는 느끼한 목소리로 랩을 구사하고, 노유민은 아직도 자신이 전성기인 양 착각하며 민망하게도 옛 아이돌 때의 춤을 춘다. 그걸 시키는 형들, 탁재훈, 김구라, 박명수, 한상진은 아우들의 소개팅 자리를 통해 자신들의 속내를 감정이입시킨다. 이 과정에서 아우들인 아바타와 그걸 조종하는 형들 사이에 마음이 충돌한다. 세대 간의 차이는 이 직접적인 접속의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보통의 쇼들이 보여주는 자와 그걸 보는 자로 나뉘어져 감정이입되는 대신, 이 코너는 조정하는 자, 보여주는 자, 보는 자로 삼분되어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다채롭게 만든다. 우리는 나이든 탁재훈이 박휘순을 조종하는 그 마음 속에 들어갔다가, 그걸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박휘순의 입장으로 옮겨가고 또 그걸 바라보는 소개팅 상대방의 입장으로 시점이 이동된다. 이렇게 시점이 다양하게 이동하면서 그 재미 역시 다채로워진다. 즉 '아바타 소개팅'의 재미는 소개팅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보다 그 여러 시점이 주는 재미가 더 크다.

하지만 이 '아바타 소개팅'은 '뜨거운 형제들'이 가진 진면목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코너는 이 '형제들'이라는 캐릭터와 부딪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미션들이 모두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아바타'적인 성격, 즉 '형제가 서로를 분신처럼 도우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간다'는 기본 전제가 필요하지만, 이 단서조항은 부담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코너의 특징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뜨거운 형제들'이 가능성을 갖는 것은 '일밤'이 부활을 주창하며 시도했던 이른바 '공익 버라이어티'의 과도함에 어떤 균형점을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공익적인 소재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예능의 본분은 웃음을 주는 것이다. 어쩌면 그 웃음이 예능의 가장 큰 공익이기 때문이다. '헌터스'는 프로그램화하기에는 너무 뜨거운 소재였고, '에코하우스'는 지나치게 교과서적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코너 자체는 좋았지만 다채로운 스토리를 발굴해내기에는 한계가 있는 코너였다. '단비'는 그 취지나 시도 자체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일밤'의 좋은 예능 이미지를 만들고 있지만 역시 웃음에는 취약했다.

결국 '뜨거운 형제들'은 뜻은 좋지만 웃음은 약했던 '일밤'의 기대주가 되기에 충분한 프로그램이다. 예능답게 웃음에 집중하면서, 그 형식이 담은 다채로운 스토리를 통해 어느 순간에는 세대를 넘는 형제애를 담아내는 공익적인 가능성까지 충분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형제들'이 얼마나 뜨거워질 지 아직까지 성급하게 뭐라 확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코너의 뜨거움에, 추락했던 '일밤'의 회생 가능성이 달려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Posted by 더키앙

예능 프로그램, 무엇이 공익일까

이른바 공익 예능프로그램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1박2일’은 애초 기획의도에서부터 일정부분 공익성을 담고 있었다. 바로 우리네 관광자원의 발굴과 오지에 대한 조명 등이 그것이다. ‘무한도전’은 초기 도전을 통한 성장 버라이어티로 시작해서 점점 성장의 정점에 이르자, 그 도전의 공익적 성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도전하는 국내 봅슬레이팀들을 위해 그 스포츠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나,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뉴욕으로 달려가는 것, 혹은 각종 사회적 이슈들은 소재 속에 녹여내는 방식은 ‘무한도전’ 특유의 공익을 보여준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전형적인 스포츠 버라이어티지만 사회체육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야구라는 스포츠의 저변을 알리는 측면에서도 그 공익적인 성격을 무시할 수 없다. 야구협회측에서 이 예능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청춘불패’ 같은 신생 버라이어티쇼 역시 대단히 공익적이다. 아이돌 걸 그룹이 유치리라는 작은 동네에 정착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실제로 이 동네 분들을 위해 일하고 봉사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 체제로 다시 돌아오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도 거의 전면에 공익을 내세웠다. '대한민국 생태구조단 헌터스'는 개체수가 늘어난 멧돼지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의 불씨가 남아있지만 결국 주창하고 있는 것은 생태 살리기라는 공익이다. 이것은 고개 숙인 우리 시대의 아버지 기 살리기라는 미션을 통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것이라는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또한 '단비'는 여기서 한 차원 더 나아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나라에서 봉사하는 공익 버라이어티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익을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또한 만만찮다. 도대체 예능 프로그램에서 무엇이 공익인가 하는 점이 그 질문이다. 무언가 출연진들이 감동적인 일을 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공익일까. 혹자들은 이러한 공익이 전면에 포진한 예능 프로그램에 진저리를 치기도 한다. 예능에서의 이른바 억지 춘향식의 감동은 때때로 역풍을 맞기도 한다. 한 마디로 웃기기나 잘 하라는 얘기다. 이러한 관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이 줄 수 있는 최대의 공익은 웃음”이라는 것이 이 관점을 대변해주는 문구가 된다.

그런데 이 말은 언뜻 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한 번 더 깊게 생각해보면 또 다른 관점으로도 읽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예능의 최대 공익이 웃음’인 것은 맞지만, 그 웃음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다는 점이다. 그저 웃기기만 하려고 갖은 자극적인 방법들만 끌어 모은 예능을 가지고 우리는 공익을 운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때론 진정성이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주는 훈훈한 웃음이라는 층위는 분명 인정해줘야 할 대목이다. 그러니 ‘예능의 최대 공익이 웃음’이라 주장한다면, 그 웃음이 과연 공익에 맞는 진정성을 담고 있는가를 들여다 봐야할 것이다.

혹자는 과거 공익을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들이 가져왔던 부작용들을 언급하면서 섣부르게 예능이 공익을 추구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무책임한 짓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예능의 목적이 결국에는 공익이 아니라 웃음이기 때문에, 어떤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그것이 결국에는 일회적인 것에 머물러 오히려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한다는 시선이 담겨있다. 즉 감동적인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처음에는 뭐든 다 줄 것처럼 포장되어 방송이 되지만, 방송이 끝나고 나면, 일정한 웃음과 감동을 가져간 프로그램들은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사후관리가 되지 않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게 된다. 감동이 주는 카메라 앞과 뒤의 온도차는 이처럼 크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에도 또 다른 시각은 존재한다. 즉 초창기 공익을 주창한 예능 프로그램들은 그 낯선 시도 위에서 문제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디지털 혁명으로 열려진 매체 환경 속에서, 그것도 리얼을 주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공익의 사후관리를 등한시 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1박2일’ 같은 경우, 한 번 방문해 인연을 맺은 지역주민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기도 하고, ‘청춘불패’ 같은 프로그램은 아예 한 곳에 정착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아예 발생할 수가 없다.

진정성이 있는 웃음을 주는 것인가, 아니면 그 웃음 속에 사회 참여적인 부분들을 포함시켜야 하는 것인가. 예능 프로그램의 어떤 것이 공익인가 하는 문제는 제작자들이 갖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정답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중들이 어느 쪽에 더 공감하느냐가 이 공익 예능에 대한 앞으로의 방향을 열어줄 것이라 생각된다. 확실한 것은 예능이 공익을 얘기할 정도로 과거와 그 위치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그 공익이 어떤 것인지는 차치하고라도, 프로그램이 공익적인 부분까지 들여다보고 실제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이제 예능 또한 가져야 하는 책무가 되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헌터스'는 과연 공익이 될 것인가

농작물 피해를 입은 농민들을 위해 멧돼지 포획은 허가되어야 하는 것일까. 뉴스를 통해 도심에 출현한 멧돼지 소식을 종종 접하다 보면, 멧돼지의 '유해조수 지정'과 포획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농민들의 피해는 물론이고, 도심으로 뛰어든 멧돼지가 자칫 인명 사고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새 코너 '헌터스'의 기획 의도는 바로 이 멧돼지 문제를 공론화해보겠다는 김영희 PD의 의욕이 엿보인다.

하지만 이 멧돼지 문제는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환경부에서 이른바 '도심 출현 야생 멧돼지 관리대책'을 발표했고, 이로써 전국 19개 시·군의 수렵장에서 총기 등을 활용해 멧돼지를 포획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러한 대책이 전체적인 생태를 고려하지 않은 미완의 대책이라는 불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유해조수' 지정은 전체 생태계를 위해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말한다. 유해조수로 지정되어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 동물들(늑대가 대표적)은 다양한 종의 보존을 어렵게 하고 결국 부메랑처럼 전체 생태계에 또 다른 문제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밤의 새 코너 '헌터스'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은 자칫 이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멧돼지가 만들어내는 피해상황과 거기에 대응하는 포획의 정당성만을 부각시키지 않을까 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렇게 멧돼지 대 인간의 대결구도로 프로그램이 짜여지게 되면 그 다음에는 '멧돼지 사냥'이라는 자극적인 오락거리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김영희 PD는 이것이 이 프로그램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헌터스'는 멧돼지를 잡는 프로그램이 아니며, 멧돼지 학살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아직 방영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물단체나 환경보호단체에서 주장하는 것이 이른 감이 있다. 결국 프로그램은 그 제작을 맡고 있는 김영희 PD가 만드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지금껏 일련의 공익을 내세우는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던 김영희 PD라면, 이 민감한 소재 역시 잘 풀어낼 거라는 기대감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이 프로그램은 김영희 PD의 말대로, 오히려 멧돼지의 생태와 공존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환경단체들이 우려하는 상황은 거꾸로 뒤집어질 가능성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이 갖는 접근방식(이 방식은 토론이 아니라 공감의 방식을 취한다)이 이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프로그램이 김영희 PD가 이 공익과 볼거리 사이에 제대로 균형을 맞춰줬을 때의 일이다. 결국 이 어느 것이 공익이고 어느 것이 아니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6일 방송되는 첫 회에서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인다. 모쪼록 김영희 PD 특유의 공익 버라이어티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더키앙

오락기화 되가는 TV, 그 매체의 힘 평가절하 말아야

‘!느낌표’가 폐지된다고 한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시청률 부진이다. 시청률이 TV 프로그램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깊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 프로그램이 의미 있는 도전을 했고 그 도전에서 TV의 어떤 가능성 같은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TV의 오락기능과 공익은 서로 상충되는 개념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물론 그것은 노동과 생산성이 지고선이 되고 즐기는 문화가 별로 없던 시절의 얘기다. 즉 ‘논다’는 것과 ‘의미 있는 노동’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느낌표’는 보기 좋게 이 편견을 뒤집어 버렸다. 사회의 공익적인 부분을 소재로 가져가면서도 거기에 충분한 오락기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느낌표’가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설정한 아이템들은 ‘공공선’이었다. 즉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는 공감 가는 아이템을 선정함으로서, 그것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억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정한 즐거움을 대리충족 시켜주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자 이 프로그램은 재미와 즐거움을 넘어서 감동을 선사하게 되었다.

또한 공공선을 추구한다는 이 가치는 실제 사회의 변화까지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국에 어린이 도서관을 짓고,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오지에 의료봉사를 가고, 사람들이 꺼려하던 장기기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드는 등의 일들은 하나의 오락프로그램이 한 성과로 보기엔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느낌표’는 정부의 관계부처 사람들조차 하기 힘들어하는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한편으로 매일 보면서도 그토록 폄하하고 있는 TV라는 매체의 힘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 숨겨져 있는 어려운 문제들을 카메라가 담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그 문제를 공론화 하는 기능을 한다. 이것은 TV가 기본적으로 가지는 보도의 기능이면서 그만한 힘을 가진 자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다.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르뽀 프로그램들이 부정적인 코드, 즉 비판적 코드를 활용했다면, ‘느낌표’는 긍정의 코드를 활용했다.

따라서 르뽀 프로그램들이 문제제기를 하는 물음표(?)의 프로그램들이었다면, ‘느낌표’는 마음을 움직여 참여를 하게 만드는 느낌표(!)의 프로그램이었다. 부정보다 긍정이 나은 점은 좀더 참여를 적극적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느낌표’는 무엇보다도 TV가 가진 긍정적인 힘을 제대로 알고 활용했던 프로그램으로서 그 가치가 있다.

시청률 부진으로 폐지되는 ‘느낌표’는 또한 지금의 TV 프로그램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단초가 된다. 감동보다는 즉각적이고 말초적인 재미가 우선이 된 요즘, 우리는 점점 TV를 오락기로 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TV는 사용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는 도구다. 오락과 재미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TV가 가진 전부라고 평가절하 하는 건 문제가 있다. TV의 그 또 다른 힘을 ‘느낌표’가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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