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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팬’, 오디션 그 후, 새 스토리텔링 찾는 음악프로그램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장 뜨겁게 우리네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건 2009년부터였다. Mnet <슈퍼스타K>가 그 포문을 열었고, 2010년 이 프로그램의 시즌2는 케이블 채널 역사상 첫 두자릿 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지상파들도 오디션 트렌드에 뛰어들었고 그 성공작으로 얘기되는 SBS <케이팝스타>가 2011년 방영되며 이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마추어들의 데뷔와 심사위원들의 심사로 이뤄지는 이 오디션 트렌드는 이내 꺼져버렸다. 2016년 <슈퍼스타K>는 결국 종영을 선언했고, <케이팝스타>도 2016년 말 ‘더 라스트 찬스’라는 제목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후 Mnet <프로듀스101> 같은 프로그램들이 아이돌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오디션을 시도했지만 이 형식은 이미 지나간 트렌드가 되어갔다. 그것은 경쟁과 성장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내세우는 키워드들이 더 이상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쟁사회 속에서 노력해 성장한다는 일이 점점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된 대중들은 ‘소확행’ 같은 경쟁 바깥에서 스스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찾기 시작했고, 수직 계열화된 시스템 바깥에서 순위가 아닌 저마다의 취향을 찾아갔다. 오디션의 사실상 가장 큰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심사는 이제 ‘지적질’로 받아들여지며 대중들을 불편하게 했다.

이런 시점에 <케이팝스타>를 만들었던 박성훈 PD가 새롭게 들고 온 <더 팬>이라는 프로그램은 이러한 달라진 대중들의 정서를 읽어낼 수 있게 해준다. 먼저 제목에 담긴 것처럼 이 프로그램은 심사가 없다. 유희열, 보아, 이상민, 김이나 등이 팬 마스터로 출연하긴 하지만, 이들은 심사를 하지 않는다. 대신 무대에 올라온 참가자들의 음악을 듣고 팬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밝히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200명의 팬이 버튼을 눌러야 2라운드에 통과하는 첫 무대에서 MC들도 관객들과 똑같이 표 한 개를 행사한다. 

중요한 건 이 무대에 올라올 자격을 누가 부여하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어떤 면으로 보면 이 무대에 선다는 건 좋은 기회이자 특혜일 수 있다. 그만한 실력이나 매력이 분명해야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과 관객들이 납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들을 추천하는 셀럽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다. 타이거JK와 윤미래 부부가 나와 소개한 비비는 그 매력적인 보이스와 독특한 재즈적 감성으로 그가 왜 이 무대에 설 자격을 갖추었는가를 설득시켰고, 도끼와 수퍼비가 소개한 트웰브는 팝가수 같은 느낌의 알앤비로 ‘귀르가즘’을 자극했다. 

악동뮤지션 수현이 추천한 오왠 같은 감성 보컬이나 장혜진이 반해 소개한 카더가든 같은 실력파 보컬은 이미 아는 분들은 다 아는 가수지만, 아직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은 가수라는 점에서 <더 팬>이라는 무대가 가진 색깔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 무대는 아마추어든 아니면 프로든 상관없이 팬을 확보하는 자리라는 것. 저마다 색깔이 분명한 음악을 하고는 있지만(아마도 그래서 더더욱 마니아적일 수 있을 게다) 대중적인 인기를 갖고 있지는 않은 아티스트들을 더 많은 이들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가 거기에는 깔려 있다. 

그래서 <더 팬>은 경연 형식을 갖고는 있지만 그건 하나의 스토리텔링 장치일 뿐, 숨겨진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음악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경연 형식은 이들에게 주목시키고 그 음악적 색깔을 좀 더 들여다보게 만드는 장치일 뿐, 더 중요한 건 다양한 색깔의 취향을 가진 아티스트들의 발굴이라는 것. 

결국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대중들의 다양한 취향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부 심사위원들의 기준에 맞는 가수들을 순위표 형태로 드러내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더 팬>이 ‘팬심’이라는 말로 드러내는 취향의 경연이 공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일무이한 한 사람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다양한 가수들과 음악적 취향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예술혼과 진심이 느껴지는 나홍진 감독의 집념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500만 관객을 넘어섰다. 그리고 이 수치는 여기서 머물 것 같지 않다. 영화의 특성 상 재관람이 이어지고 있고, 칸느에서의 호평 덕분에 영화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영화 <곡성>

하지만 뒤돌아서 생각해보면 <곡성>처럼 쉽지도 않고 또 보기 편하지도 않은 영화가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도대체 무엇이 관객들의 발길을 <곡성>으로 향하게 했던 걸까.

 

그 첫 번째는 절대로 현혹되지 말라는 포스터 문구가 역설적으로 보여준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라는 데 대중적 관심은 분명 있었고, 시사회를 통해 드러난 평들은 이 작품이 문제작이라는 것에 모두가 공감하게 만들었다.

 

나홍진 감독은 영화 홍보를 위한 인터뷰를 통해 <곡성>에 대한 여러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이야기를 꺼냈고, 그것은 이 영화의 훌륭한 미끼가 되어주었다. 대중들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갔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여전히 남는 궁금증 때문에 분분한 의견들과 해석이 오히려 더 큰 궁금증을 만들었다. 미끼가 또 다른 미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이런 미끼를 던졌다고 해도 영화가 나름의 진정성을 갖지 못했다면 관객의 심기는 상당히 불편해졌을 것이다. <곡성>은 그러나 단지 관객들을 미궁 속에 빠뜨려 허우적대는 걸 즐기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나홍진 감독은 스스로도 말하듯 우리네 인간 인식의 한계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모습을 영화를 통해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은 주인공인 종구(곽도원)에게서 느껴지는 연민의 감정이다. 처음에는 시골 동네에 있는 겁 많은 경찰로 바로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함으로 다가오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의해 가족의 비극을 야기하게 되는 그런 인물이다.

 

이 정도의 피가 튀기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야기 속에서 인물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느끼게 되는 건 그만큼 나홍진 감독이 영화에 기울인 진심이 깊다는 이야기다. 나홍진 감독은 그래서 <곡성>을 통해 인간 존재와 구원 혹은 그 한계에 대한 진심어린 질문을 던졌고, 그것이 관객들에게도 느껴졌다는 것이다.

 

종교를 통한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건 자칫 잘못하면 먹물들의 자의식 강한 영화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그렇지 않았다. 쉽게 현혹되고 흔들리는 인간 존재를 그리면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었기 때문에 관객들도 기꺼이 이 미궁 속에서 종구라는 인물의 혼돈에 빙의될 수 있었다.

 

결국 예술혼이란 작가의 진심이 얼마만큼 담기느냐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 <곡성>은 어려운 문제지만 에둘러 가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하며 앞으로 걸어 나간 감독의 흔적을 느끼게 해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남는 미진함이 허탈감이 아니라 감독이 끝까지 던진 질문으로 여겨지게 된 건 3시간 가까이 보여준 영화의 집념 덕분이다. 500만 관객은 그것이 통했다는 걸 말해준다

Posted by 더키앙

<슈가맨>, 파일럿 프로그램의 진화란 이런 것

 

사실 JTBC <슈가맨>이 파일럿으로 방영됐을 때만 해도 실망감이 컸었다. 무엇보다 유재석이 처음 비지상파에서 선보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파일럿에서 <슈가맨>은 저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의 또 다른 버전처럼 여겨졌고, 너무 많은 의욕으로 슈가맨을 찾아가는 VCR<TV는 사랑을 싣고>의 한 대목 같다는 평가마저 받았다.

 


'슈가맨(사진출처:JTBC)'

하지만 정규로 돌아온 <슈가맨>은 이런 VCR 도입 부분을 과감히 없앴고 온전히 스튜디오 버라이어티에 집중시킴으로써 웃음과 공감의 폭을 넓혔다. 가장 눈에 띄고 효과적으로 보이는 변화는 방청객과 방청석이다. 방청객을 20대부터 50대까지 나누어 방청객에게 각각 이른바 공감의 등을 세워 놓은 건 노래는 물론이고 이야기의 공감을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장치가 되었다.

 

슈가맨이 누구인가를 맞춰가는 초반 도입부도 이렇게 세대별로 구분된 방청석과 불빛이 세워지자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시각적으로 어느 세대가 더 많이 그 노래를 기억하는가가 드러났고, 이런 방청객들과의 공감대를 유재석과 유희열은 번갈아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슈가맨>의 가장 큰 맹점으로 지적됐던 몰라도 너무 모르는 노래가 가진 한계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직시함으로써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유재석이 선선히 많은 분들이 모를 수 있다는 걸 전제한 후 작은 공감을 큰 공감으로 만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한 건 그래서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몰랐다가 차츰 노래를 들으며 기억이 소환되고 그것을 지금에 맞게 리메이크해 요즘 세대에도 어필하게 하는 과정은 유재석의 이 말을 실행해가는 과정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역시 방청객이다. 파일럿에서는 이러한 방청객들과의 교감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소소한 마니아들만 아는 노래와 가수를 소환해 저들끼리 웃고 떠들고 좋아하는 느낌이 짙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방청객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음악을 통한 소통의 노력을 한 결과 심지어 몰랐던 노래에 대해서조차 관심을 갖게 되는 좋은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던 것.

 

이제 새로운 프로그램의 런칭 이전에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관행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1,2회의 파일럿 프로그램만으로 정규가 되느냐 마느냐에 대한 결정을 내리다 보니 어떤 아이템은 아쉽게도 버려지기도 한다.

 

사실 좋은 프로그램은 기획 아이템 자체보다 메이킹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제 아무리 기획이 좋아도 잘 만들어낸 것이 아니면 그 기획이 빛을 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슈가맨>은 이러한 파일럿에 지적되었던 문제들을 적절하게 해결하면서 진화시킨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프로그램 제작 결정권자들도 당장 반응이 영 시원찮다고 그저 버릴 것이 아니라, 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또 메이킹을 제대로 해서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200% 만들어낼 수는 없는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규로 돌아온 <슈가맨>은 그 지적들을 겸허히 수용하고 한 땀 한 땀 재미의 포인트들을 찾아나가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Posted by 더키앙

<힐링캠프>의 새로운 실험, 흥미로운 까닭

 

<힐링캠프>가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 어찌 보면 전형적인 김제동표 토크콘서트의 연장 같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비슷한 듯 다른 진화가 엿보인다. 객석을 찾은 일반인 관객들의 사연이 자연스럽게 무대 위로 올라오는 것과 거기에 대한 어떤 솔루션이나 의견을 출연자가 해주는 방식은 유사하다. 하지만 달라진 키워드는 ‘500인의 MC’.

 


'힐링캠프(사진출처:SBS)'

즉 기존 김제동표 토크콘서트의 형식에서 관객의 역할은 능동적인 질문자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청자의 위치에 서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달라진 <힐링캠프>에서 관객들은 MC의 위치를 부여받았다. 관객들은 첫 게스트인 황정민에게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시키고 싶은 것을 마음껏 시켜도 되는 권리를 갖게 된 것.

 

이것은 위치의 역전이다. 이전의 <힐링캠프>가 출연자인 연예인 게스트를 힐링 시키는 쪽이 포인트를 맞췄다면 이건 연예인 게스트가 관객들을 힐링 시키는 쪽에 맞춰져 있다. 게스트의 자기 홍보는 이 무대에서는 자칫 비호감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스스로 자제될 수밖에 없고, 대신 관객들이 궁금한 점과, 본인들의 고민들이 게스트에 의해 소통되고 어느 정도의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역전된 관계를 잘 보여주는 건 녹화 도중 차가 견인 당했다며 나갔다 들어온 관객 유승재 MC(?)를 무대로 이끌어 황정민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이다. 녹화에 지장을 초래할까봐 뒷좌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유승재. 그 모습은 전형적인 예의바른 관객의 그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만은 MC의 위치다. 그러니 견인될 뻔한 차를 잘 주차시키고 돌아와 다시 무대에 서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걸 프로그램은 일부러 보여주었다.

 

이어진 지훈 군의 고민상담은 사실상 게스트에 대한 MC의 요청처럼 그려졌다.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싶다는 요청에 황정민이 난감해하면서 김제동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김제동은 오히려 지훈 군에게 본인이 MC인 것을 자각시키며 황정민에게 요구할 걸 요구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지훈 군의 고민에 대해 다른 관객 MC들도 나서서 조언을 하고 도움을 주는 모습은 새로운 <힐링캠프>가 가진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보인다.

 

그것은 관객의 능동성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래서 중요한 건 게스트가 누구냐 보다 그 게스트를 통해 어떻게 관객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이뤄지는가 하는 일이다. 여기서 김제동의 역할은 역시 지대하다. 그는 무대에 결코 오르지 않고 관객들과 함께 앉아 그들의 이야기가 술술 뽑아져 나오게 하는 마중물의 역할을 한다. 그간 게스트가 얘기할 때 관객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지는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김제동의 개입은 그간 숨겨져 있던 리액션과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아직 정비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 그것은 이야기의 진지함과 포맷의 참신함을 재미적인 차원에서 잘 끌어안아야 하는 과제다. 하지만 그래도 이 시도가 괜찮게 여겨지는 건 카메라가 게스트인 황정민만큼 거기 앉아 있는 관객들을 많이 비춰주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인 틀은 본래 <힐링캠프>라는 취지에 걸맞게 잘 돌아왔다. 이제 500인의 MC들이 가진 매력을 한껏 뽑아내는 일만 남았다



Posted by 더키앙

관객, 스크린, 노이즈까지, 다 가진 <연평해전>에 없는 하나

 

영화 <연평해전>은 지독할 정도로 상업적인 영화다. 누군가 이 영화가 정치적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일면일 뿐이다. 정치적인 것, 그 위에 상업적인 것이 뒤덮고 있다. 먼저 영화관 풍경이 그렇다. 평일 840분에 하는 조조영화를 보러간 필자는 그 시간에 영화관이 가득 메워져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른 조조시간도, 그 공포라던 메르스의 여파도 뚫고 가득 메운 관객들.

 


사진출처: 영화 <연평해전>

그런데 그 관객들의 거의 대부분이 같은 제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 낯설게도 다가왔다. 군부대에서 단체 관람을 온 것이다. 해군 6만 병력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외부단체관람을 나섰다는 뉴스는 <연평해전>이 기획단계에서부터 철저히 상업적인 전략을 구사했다는 걸 말해준다. 이미 제작에서부터 육, , 공군이 모두 참여했고, 그 이야기는 군인들의 단체관람을 어느 정도는 예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정도의 예비 관객을 갖고 있는 영화라면 실패할 위험성의 거의 없다. 영화적 재미를 떠나서 이건 군인들의 자발적인 선택만은 아닐 것이다. 보라면 봐야 하는 게 군인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기본 관객이 준비된 데다, 무슨 일인지 멀티플렉스 체인 영화관들은 일제히 이 영화의 상영관을 한없이 늘려놓았다. 첫날 667개였던 스크린 수가 5일 후 1013개까지 늘어났다. 누군가의 압력이나 지시에 의해 일어난 일이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오지만 사실 이건 지극히 상업적인 선택이다.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이 영화가 군인 같은 예비 관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영화관들로서도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스크린 수도 늘렸을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보수적인 입장으로 애국주의를 설파하려는 정부의 뜻이 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 이것 역시 음모론에 불과한 것이지만 영화가 연평해전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건 이 땅에 사는 국민들로서는 그 누구도 그 의미를 부인하거나 퇴색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젊은 장병들이 희생됐다는 건 어떠한 정치적인 입장을 뛰어넘는 실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니 영화의 애국주의적 입장은 휴머니즘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전해질 수 있다. 그런 애국주의적인 잣대만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애국주의 마케팅을 쓴다고 해도 영화관으로서는 오히려 득이 되는 일이다. 그건 잘만 풀리면 엄청난 상업적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러니 이러한 선택 또한 지극히 상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이 애국주의 마케팅이나 스크린 독점 같은 이슈들이 터져 나오면서 어떤 노이즈가 만들어진다면 그건 이 상업적 선택의 덤과 같은 것이다. 이 노이즈를 보수와 진보 같은 전선을 가르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마케팅은 이미 저 <디 워>에서 그 효과를 본 바 있다. 이런 마케팅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힘을 발휘한다.

 

<연평해전>은 그러니 확보된 관객에 확보된 스크린 수 게다가 준비된 노이즈까지 완벽하게 상업적인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걸 다 가진 영화가 갖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 그건 영화적 재미다. 상업적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영화가 주어야 하는 긴장과 이완, 중간 중간을 채워주는 소소한 에피소드의 재미가 하나하나 축적되어 후반부의 거대한 감동으로 이어주는 그런 흐름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 영화의 백미는 결국 당일 날 벌어진 연평해전의 그 핏빛 전쟁 속에서도 숭고하게 희생하고 버텨내려 했던 그 장병들이 주는 먹먹한 감동이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가 주는 감동이라기보다는 실제 그 연평해전에서 희생된 장병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분들이 그렇게 차가운 서해 바다 한 가운데서 어떻게 싸웠는가를 더 생생하게 들여다보며, 당시 편안히 월드컵을 즐겼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의미 있다면 바로 그 점 한 가지일 것이다.

 

<연평해전>은 대단히 상업적인 영화지만 그 상업적이라는 것은 영화가 대중적이라거나 웰 메이드라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소재와 마케팅적으로 상업적인 영화를 뜻한다. 영화는 본래 상업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니 뭐라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가 영화적으로 대중적인 것이 아니라 영화 외적으로 대중적이어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은 21세기라는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닐까. 하긴 마지막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우리네 현실이 시대착오적이니 어쩌겠는가. 여전히 보수니 진보니 하며 편 가르기만 하면서 민생은 돌보지 않는 정국도 그러하고.



Posted by 더키앙

성공적인 무대는 이미 캐스팅과 관객에서 만들어진

 

음악은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한다는 걸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 특집은 보여주었다. 90년대로 시간여행을 훌쩍 떠나게 해준 토토가는 가수도 관객도 그리고 시청자들까지도 노래 하나로 연결되고 소통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터보, 김현정, SES에 이어 쿨, 소찬휘, 지누션, 조성모, 이정현, 엄정화, 김건모까지 이름만 들어도 과거의 추억이 떠오르는 가수들이 오른 무대는 그 캐스팅만으로도 성공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심지어 과거의 백댄서들까지 똑같이 출연해 재연해 내는 무대는 흥겨우면서도 짠한 독특한 정서를 이끌어냈다.

 

이번 토토가특집을 보며 먼저 떠오르는 건 올 1월에 다시 시작되는 <나는 가수다3>. ‘토토가라는 특집 제목 자체가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나는 가수다를 합쳐 놓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일정 부분의 프로그램 형식, 이를테면 긴장감을 안고 방송국을 찾아오는 가수들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대기실에서의 모습을 끼어 넣는 식의 방식은 토토가<나는 가수다>의 형식을 차용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가수다>는 등장하자마자 예능계에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의 파괴력을 보였으나 차츰 진행되면서 반복되는 패턴과 고음 지르기 경쟁으로 치달으면서 그 힘을 이어가지 못했던 프로그램이다. 그렇게 된 것은 무엇보다 서바이벌과 대결에만 집중한 결과 <나는 가수다> 특유의 세대 통합적이고 복고적인 아련한 정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즌제 없이 무한 반복된 경연은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를 보여주지 못하고 좋은 무대들마저 희석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번 <나는 가수다3>13부로 시즌을 마치는 시즌제로 기획된 것은 그 때문이다. 최초 라인업된 가수들에 더 집중하겠다는 뜻이고, 그를 통해 한 시즌의 완결된 음악과 무대 이야기를 만들어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가수다3>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이유다.

 

<나는 가수다3>에 앞서 <무한도전> ‘토토가가 어떤 열광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은 그래서 고무적이면서도 무언가 시사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물론 토토가는 경연방식인 <나는 가수다>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무대를 통한 관객들과의 소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번 열광의 의미를 되짚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토토가의 성공이 가수들의 놀라운 가창력에만 있지 않았다는 점은 <나는 가수다3>가 참고해볼만한 지점이다. 물론 가창력은 기본이 되겠지만 거기에만 몰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가수가 무대에 올랐을 때 그 가수를 통해 우리가 어떤 정서를 느끼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토토가90년대 톱가수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현재 나이 들어 버린 가수들이 주는 훈훈한 정서가 가수들의 면면에서부터 이미 관객들을 준비시킨 면이 있다.

 

게다가 이번 토토가가 그렇게 훌륭한 아이템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가수만큼 대단했던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무대는 가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열광적인 관객들은 열광적인 무대를 완성시킨다. 가수들은 관객들의 반응만으로도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토토가는 가수의 캐스팅과 거기에 적합하게 맞춤형으로 준비된 관객을 라인업 시키면서 이미 무대를 성공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돌아오는 <나는 가수다3>는 무대를 통해서 성공을 꿈꿔서는 안 된다. 그것보다는 무대에 오르기 전, 가수들의 라인업과 관객을 준비시키는 과정을 통해 이미 성공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가수다>의 힘은 무엇보다 음악을 듣기 위해 열려진 관객들의 귀에서 나왔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이 보여준 것처럼.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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