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뎐', 구미호·이무기에 아귀·우렁각시까지

 

이건 현대판으로 재해석된 <전설의 고향>이 아닐까. tvN 수목드라마 <구미호뎐>은 점점 우리네 설화 속 인물들이 뒤섞인 세계관을 펼쳐내고 있다. 구미호 이연(이동욱)은 한때 백두대간을 호령하던 산신이었지만 남지아(조보아)의 전생이었던 공주 아음과의 인연으로 속세로 떨어져 인간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들(역시 설화 속 인물들이다)을 처치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구미호 이연과 남지아의 수백 년에 걸친 비극적인 운명을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이무기다. 이무기가 아음의 아버지이자 당대의 왕의 육신으로 들어가 국정을 농단(?)하자 아음은 이무기와 일종의 협상을 한다. 이무기가 산신 구미호를 제거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는 걸 안 아음은 이무기에게 왕 대신 자신의 몸을 내어주겠다고 하고 함께 산으로 가자 제안한 것.

 

그래서 이무기와 구미호는 아음을 중간에 놓고 서로 대적하게 된다. 아음의 몸을 차지한 이무기가 그를 이용해 구미호를 찾아내려 했다고 하자, 구미호는 거꾸로 자신이 아음을 이용해 이무기를 끌어내려 한 것이라고 답한다. 물론 그 말을 진심이 아닌 다른 의도로 한 말이겠지만, 구미호와 아음의 몸을 차지한 이무기가 대결하고, 결국 구미호의 칼에 이무기가 들어간 아음이 죽게 되는 그 전생의 일을 알게 된 남지아는 괴로워한다.

 

그런데 이 과거의 비극은 현재에 다시 재현되려 한다. 이무기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수명을 늘려 지금껏 살아가는 방송국 사장(엄효섭)은 섬에 봉인되어 있던 이무기를 깨워내고 그에게 인간제물을 바쳐 성장시킨다. 이제 청년이 된 이무기(이태리)는 다시금 구미호 이연과 대결하게 되고 남지아 역시 그 중간에 끼어 이무기의 제물이 될 위기에 처한다.

 

<구미호뎐>은 이처럼 구미호와 이무기의 대결구도를 명확히 세워놓고 그 중간에 세워져 있는 남지아를 제물(신부)로 삼으려는 이무기와 이를 막아 평범하고 행복하게 한 생을 마감하게 하려는 구미호의 치열한 대결을 그려내고 있다. 애초 이연의 이복동생인 이랑(김범)이 이연과 대적하는 악역처럼 등장했지만, 이들의 관계는 끈끈한 형제애로 묶여 있다. 그래서 향후 이무기와의 대결 속에서 이랑은 어떤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실 <구미호뎐>은 구미호의 재해석을 통한 현재적인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는데 있어서는 어딘지 부족한 면이 느껴진다. 고전을 현재로 끌어온다는 것 자체가 현재의 어떤 결핍들을 끄집어내는 일일 수 있지만, <구미호뎐>의 주제의식은 전통적인 '권선징악'의 틀 안에 머물러 있다는 심증을 지우기 어려워서다. 인간에게 선을 행하는 구미호와 악을 행하는 이무기의 명확한 대결구도는 그걸 보여준다.

 

하지만 권선징악이라는 평이한 주제의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고전 속 구미호나 이무기, 우렁 각시 같은 존재들을 끌어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점이나, 그 대결양상을 현대적 판타지 액션으로 보여주는 면들은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다. 특히 <전설의 고향> 속 다소 고전적으로 박제되어 있던 요괴나 귀신 같은 존재들을 다시금 깨워내 현재 속으로 되살려냈다는 점은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싶다.

 

아귀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이제는 좀비처럼 보이는 현재의 시각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구미호는 판타지 장르의 슈퍼히어로 같은 느낌으로 재해석된다. 갑자기 등장한 녹즙아줌마를 두고 저 인물이 설화 속 어떤 인물인가를 예상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나오는 건 그래서 이 드라마가 가진 좋은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서구의 캐릭터들에 익숙해 있는 우리네 시청자들에게 우리도 이런 캐릭터들이 존재한다는 걸 작품이 다시금 상시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우리네 캐릭터들은 최근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우리네 콘텐츠에서 우리가 좀더 연구하고 파봐야할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구미호뎐'은 tvN 판타지의 계보를 이을 수 있을까

 

남자 구미호다. tvN 새 수목드라마 <구미호뎐>은 KBS <전설의 고향>에서 그토록 많이 리메이크되고 재해석됐던 구미호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그런데 특이한 건 구미호가 남자라는 것. 지금껏 봐왔던 여성 구미호와는 캐릭터가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야기도 달라진다.

 

또한 시대적 배경이 현대라는 점 역시 <구미호뎐>이 <전설의 고향>보다는 <트와일라잇> 같은 이질적인 존재들과 대결하거나 공존해가는 스토리에 더 가깝게 만들고, 그것은 남자 구미호 이연(이동욱)의 스타일에서도 나타난다. 잘 차려입은 수트에 비를 몰고 다니는 캐릭터 성격에 잘 어울리는 스타일리시한 우산. 그리고 그 우산이 무기로 변해 이랑(김범) 같은 이연의 배다른 동생과 벌이는 액션은 우리식 전설의 이야기보다는 외국의 슈퍼 히어로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흥미로운 건 이런 해외의 슈퍼히어로물이나 <트와일라잇> 같은 판타지물의 색깔을 가져와 우리네 토속적인 전설이나 민담 속 주인공들을 재해석해 놨다는 점이다. 구미호 이연이 한 결혼식장을 찾아가 제거하는 신부는 알고 보면 우리가 구전동화 속에서 읽곤 하던 '여우 누이'다. 맑은 날에 갑자기 비가 내리고 우산을 홀로 쓰고 결혼식장을 찾는 이연은 왜 갑자기 비가 오냐고 말하는 이들에게 혼잣말로 "여우가 시집을 가서"라고 말한다.

 

그런 대목은 이 드라마의 세계관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구전동화 속에 등장하는 스토리지만 거기 나왔던 캐릭터들이 현대에도 인간들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게 이 드라마의 세계관이다. 첫 화에 등장하는 여우고개는 인간과 여우 같은 색다른 존재들이 부딪치는 공간이고 그래서 사고가 벌어진다. 여우들은 인간세계에 들어와 인간들에게 해악을 미치기도 하는데, 구미호 이연은 과거 사랑했던 한 여인 아음을 환생시키기 위해 그런 해악을 끼치는 존재들을 단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 여우의 이야기는 '구미호'의 모티브를 그대로 가져왔고, '은혜를 갚는다'는 캐릭터의 성격 또한 그대로 가져왔다. 하지만 이연이 은혜를 갚기 위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제거하는 일을 하는 곳은 현재의 공간에 숨겨진 이른바 '내세 출입국관리사무소'라는 구체적으로 구현된 판타지 건물에서다.

 

이런 현실과 판타지가 한 세계 위에 겹쳐진 공간은 이미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와 <호텔 델루나>에서 성공적으로 그려진 바 있다. 아마도 tvN표 판타지라고 불러도 될 법한 이런 공간의 구현은 점점 그 노하우가 축적되고 있는 느낌이다. <구미호뎐>은 그런 점에서 이런 전작들의 수혜를 그대로 입고 있다.

 

무엇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저승사자 역할로 도깨비만큼 존재감을 보였던 이동욱은 이 드라마의 개연성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독보적인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오랜만에 얼굴을 보이는 김범의 캐릭터 역시 기대되는 대목이다. 조보아가 연기하는 남지아라는 캐릭터는 이연과의 인연으로 엮어질 운명으로 '겁 없는' 인물의 매력을 가졌지만 처음부터 이연의 존재를 시험하기 위해 고층 건물에서 추락하는 장면은 좀 과한 느낌도 준다. 물론 <트와일라잇>의 한 장면처럼 보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구미호뎐>이 흥미로운 건 수의사의 모습으로 이연을 도와온 토종여우 구신주(황희), 삼도천 문지기 탈의파(김정난), 야생동물이었지만 학대를 당하다 이랑에 의해 자유를 얻은 기유리(김용지), 설화 속 주인공이 한식당 사장으로 등장하는 우렁각시 복혜자(김수진) 같은 익숙한 캐릭터들을 현대식으로 해석해낸 부분이다.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확실히 <구미호뎐>을 보면 tvN 판타지가 이제 하나의 계보를 이야기할 정도로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나 <호텔 델루나> 같은 작품이 보여준 독특한 미적 분위기들이나 톤 앤 매너, 세계관이 일관되게 <구미호뎐>의 독특한 세계를 많은 설명 없이도 설득하게 해주는 면이 있어서다. 그래서 기대감은 당연히 커진다. 다만 그만큼의 부담을 떨쳐내고 그 작품만의 색다른 이야기나 메시지를 과연 <구미호뎐>이 얼마나 흥미롭게 담아낼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첫 단추는 일단 잘 꿴 느낌이다.(사진:tvN)

이종결합의 실험도 좋지만, 우리 정서는 어쩌나

 

KBS <블러드>에 이어 <오렌지 마말레이드> 그리고 이번에는 MBC <밤을 걷는 선비>. 흡혈귀, 즉 뱀파이어 소재의 드라마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실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 <블러드>4%(닐슨 코리아) 정도에 시청률에 머물렀고,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지금 현재 2% 대 시청률을 전전하고 있다. 소재의 특성상 시청률은 낮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과 화제도 그리 크지 않다.

 


'밤을 걷는 선비(사진출처:MBC)'

만듦새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지만, 가장 큰 건 소재의 낯설음이다. 물론 뱀파이어라는 소재가 대중들에게 낯선 건 아니다. 이미 미드를 통해서나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나 뱀파이어는 하나의 클리셰가 나올 수 있을 만큼 많이 소재로 다뤄졌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네 콘텐츠에서다. 우리에게 드라마나 영화에서 뱀파이어는 낯설다. 한때 뱀파이어 붐을 타고 우리나라에서도 <흡혈형사 나도열> 같은 우리 식의 뱀파이어 영화가 나오긴 했지만 참패했다.

 

OCN에서 방영한 <뱀파이어 검사>는 비상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시청률도 최고 4%가 넘는 선전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케이블이 가진 특성과 어울리는 면이 있었고, 또한 뱀파이어라는 소재에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걸 통해 들여다보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완성도 높은 영상과 어우러져 거둔 성과였다.

 

문제는 지상파들이 뱀파이어 소재를 그 플랫폼에 걸맞게 다루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오렌지 마말레이드>에도 살짝 등장했지만 <밤을 걷는 선비> 역시 사극 속의 뱀파이어를 다룬다. 사실 사극이라는 단어와 뱀파이어라는 단어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밤을 걷는 선비>에서는 흡혈귀라고 소개하면서 그걸 서양에서는 뱀파이어라고 부른다는 지칭까지 굳이 대사에 집어넣는다.

 

이종결합의 실험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실험이 그저 이색적인 볼거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근거가 스토리나 주제의식 속에 담겨져 있지 않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즉 조선시대라는 배경 속에서 뱀파이어가 활동한다는 그 스펙터클적인 요소에 집착한다면 시청자들의 눈길 한 번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지속적인 정서적 공감을 가져가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사극은 최근 들어 판타지까지 장르적 변용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런 사극들이 성공한 예는 드물다. 사극은 상상력의 틈입이 이제 허용된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상상력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정서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대장금>은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이지만 그 이야기는 지금 현재의 여성으로 대변되는 약자들의 일과 성장스토리에 닿아 있어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밤을 걷는 선비>가 다루고 있는 뱀파이어라는 소재는 지금 현재의 대중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고 있을까. 첫 회를 통해 모든 걸 판단하긴 어렵지만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복수극과 멜로의 틀을 향해 가고 있다. 그 복수와 사랑은 왜 지금 뱀파이어라는 소재까지 사극에 들여서 대중들에게 보여져야 할 것인가. 왜 우리의 괴물들, 이를테면 구미호나 도깨비 같은 존재들이 아니고 뱀파이어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답해주지 못한다면 사극까지 들어온 뱀파이어 이야기는 단순한 이종결합의 스펙터클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인반수 영웅으로 재탄생된 이승기의 구미호

 

왜 <구가의 서>가 다루는 우리네 민초들의 영웅은 반인반수로 태어났을까. 이승기에 의해 재탄생된 구미호는 우리가 <전설의 고향>에서 보던 “서방님 하루만 더 참았어도...”하며 원망의 눈길을 보내던 그 구미호가 아니다. 우리네 전설에서 구미호라는 존재가 한이 내면화된 민초들의 억압에서 탄생한 존재라면, <구가의 서>의 반인반수 최강치(이승기)는 안으로 꼭꼭 숨겨두는 한보다는 겉으로 터져 나오는 분노에서 탄생한 존재다.

 

'구가의 서'(사진출처:MBC)

확실히 지금은 조선시대의 수동적인 구미호의 신파가 감흥을 잃은 시대다. 아마도 70년대 가부장적인 가족체계 내에서라면 이른바 고부갈등과 시집살이에 꾹꾹 눌려진 억압이 구미호의 신파적인 변신만으로도 눈물로 풀어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라진 시대는 달라진 구미호를 요구한다. 최강치가 그려내는 구미호 이야기는 그래서 신파가 아니라 활극에 가깝고, 내면화된 욕망을 풀어내는 공포가 아니라 좀 더 겉으로 드러내는 판타지에 가깝다.

 

“다 죽여버릴거야!”라고 외치는 분노의 최강치는 그래서 그 최대의 적이 바로 자신이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도무지 그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지만, 바로 그런 엄청난 반수의 힘은 어느 쪽으로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마치 핵을 가지고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최강치는 지금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여 거북선을 만들려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유동근)과 백년객관을 빼앗고 왜구들과도 결탁해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희대의 간웅 조관웅(이성재)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되고 있는 존재다.

 

조선시대의 구미호 전설을 재해석하고 있지만 <구가의 서>는 그래서 무수한 현대의 영웅담과 판타지물의 흔적들이 들어있다. 분노하면 반수로 변신해 자신도 모르게 모든 적을 살상하는 그 모습은 헐크를 닮았고, 다른 존재로서의 외로운 영웅의 모습은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을 닮았으며, 영웅의 인간적인 고뇌는 배트맨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전라도는 배트맨의 고담시처럼 고립된 인상이 짙고, 그걸 장악하는 조관웅은 고담시나 뉴욕을 꿀꺽 삼키기 위해 테러를 일삼는 악당을 닮았다.

 

물론 여기에는 영웅담 이외에 판타지물의 흔적도 담겨 있다. 지리산을 지키는 신수 구월령(최진혁)과 소정법사(김희원)는 <반지의 제왕>의 요정과 마법사를 떠올리게 하고, 담여울(수지)과 최강치의 관계 설정은 일본 만화 <이누야사>를 닮았다. <구가의 서>는 이처럼 그간 <전설의 고향>이 다루던 전통적인 구미호와는 확연히 다른 캐릭터다. 우리만의 특수성을 가진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전 세계 보편적인 변신 캐릭터들(이를테면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에서 현대적인 슈퍼히어로에 이르는)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달라진 구미호 최강치는 민초들에게 어떤 영웅일까. 과거의 구미호 텍스트들은 구미호보다 더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으로 당대의 신분구조가 주는 억압을 해체시켰다. 양반과 상놈의 신분구조는 인간과 구미호로 치환되었고, 구미호는 공포의 존재가 되어 인간을 깨우치는 이야기로 그려진다. 2000년대가 넘어 재탄생된 구미호 이야기들은(이를 테면 <여우누이뎐>같은) 구미호보다 심지어 더 공포스런 인간들을 비판한다. <구가의 서>가 그리는 구미호도 다르지 않다. 여기에는 인간이지만 반인반수보다 못한 조관웅이 등장한다.

 

하지만 최강치라는 새로운 영웅이 하려는 것은 조관웅을 죽이는 사적인 복수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굳이 등장한 이유다. 이 반인반수의 영웅은 임진왜란과 무적의 이순신이라는 존재 옆에 생겨난 판타지다. 그런 점에서 <구가의 서>의 구미호는 사회적 억압이 만들어낸 공포의 캐릭터가 아니라, 사회적 분노가 만들어낸 영웅에 가깝다. 권세에 기대 뭐든 갖고 싶은 것을 취하려는 조관웅은 그래서 사회적 분노를 일으키는 공공의 적이 된다.

 

최강치라는 새로운 구미호는 현대인들의 분노가 응축되어 만들어진 캐릭터다. 분노에 의해 만들어진 그의 강력한 힘은 이미 신분체계의 벽을 넘어선다. 하지만 괴물과 싸우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는 일이다. 최강치에게 남겨진 문제는 그래서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된다. 현대인들이 갖고 살아가는 분노가 그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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