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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하고 싶지만 응원할 수 없는 <탑밴드2>의 문제

 

<탑밴드2>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간 홀대받았던 밴드들이 지상파에 대거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환영받을 만하다고 여긴다. 실제로 방송 출연은 없었지만 밴드 활동 그 자체만으로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팀들이 <탑밴드2>에 대거 참가했다. 피아, 트랜스 픽션, 슈퍼키드, 몽니, 네미시스, 내 귀에 도청장치, 프리다칼로, 예리밴드 등등. 한 팀 한 팀의 면면을 보면 이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탑밴드'(사진출처:KBS)

<탑밴드>에 대한 지지는 시즌1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시즌2가 가능했던 것은 다름 아닌 이 대중들의 지지 덕분이었다. 공영방송으로서 소외된 밴드 문화를 소개한다는 그 명분이 좋았고, 참가하는 밴드들이 만들어낸 화제도 풍성했다. 그래서 시즌2는 제작진들에게 숙제를 남겼다. 지지율만큼 시청률이 따라오게 해줘야 한다는 것. 그래서 '악마의 편집'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방송에서 보기 힘들었던 밴드들이라는 훌륭한 자원들과, 밴드 문화를 살린다는 좋은 명분, 심지어 '악마의 편집'을 한다고 해도 공감해주는 지지도까지, <톱밴드2>는 거의 모든 걸 갖춘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시청률 2%대. 기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먼저 '악마의 편집'을 내세웠던 그 연출이 얼마나 주효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제작진 말대로 '악마의 편집'이 갖는 빠른 화면 전개나 좀 더 자극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연출은 효과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악마의 편집'이 과연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는지는 미지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악마의 편집이란 그저 자극적인 상황 자체만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편집을 통해 거기 참가하는 출연자들의 캐릭터가 만들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탑밴드2>의 악마의 편집은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인 출연자들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에서 주로 벌어졌다.

 

트리플 토너먼트를 하는 과정에서 신대철과 김경호의 대립이 두드러졌다. 사전 기자간담회를 통해서 김광필EP는 심사 중 심사위원이 뛰쳐나가는 상황까지 벌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대립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거기 참가한 밴드들이 너무나 출중해서 누구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악마의 편집은 시선을 밴드들이 아니라 심사위원쪽으로 집중하게 만든다. 좀 더 밴드들을 부각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편집으로서의 '악마의 편집'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밴드에 열광하는 마니아층이 아닌 일반 시청자들에게 여전히 밴드 문화란 낯설다는 점이다. 즉 <탑밴드>의 존재의의는 마니아층들만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밴드 문화의 저변을 알린다는데 있다. 하지만 <탑밴드2>의 '거두절미하고 토너먼트로' 이어지는 연출방식은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밴드 마니아들에게 피아라는 존재는 출연 그 자체만으로 흥분되는 일이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저 오디션 참가자의 하나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피아 같은 좋은 밴드의 필모그라피를 좀 더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알려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사실 밴드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그다지 쉬운 것은 아니다. 밴드 음악을 이해하고 제대로 감상하려면 각 악기들이 내는 소리의 특장점이나 주법 같은 것들을 알아야 하고, 또 그 어우러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탑밴드> 같은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이 밴드 문화를 제대로 이해시키려면,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교육적인 차원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었다. 예를 들어 유명한 베이스 주자 하나를 데려다놓고 베이스 기타가 갖는 매력을 한껏 보여준다면, 대중들은 밴드 오디션에서 베이스가 갖는 힘을 제대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모든 오디션이 다 그렇지만, <탑밴드2> 역시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디션이 주는 서바이벌 그 자체보다 음악이 주는 감동이 우선해야 한다. 오디션은 결국 이 밴드 음악을 더 집중해서 듣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일 뿐이 아닌가. '악마의 편집'도 좋지만 우선 밴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대중들을 선도하는 편집적인 장치들이 필요하다.

 

이 교육적인 장치(?)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건 결국 심사위원들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은 마치 참가자들의 음악을 듣고 심사하는 일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중들에게 그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하는 포인트를 일러주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탑밴드2>에서의 심사위원들은 감상 포인트를 알려주기보다는 자신들의 밴드 성향을 드러내고 부딪치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시청률이 고작 2%에 불과하고, 프로그램이 효과적으로 제작되지 않았다고 해도 여전히 <탑밴드2>에 대한 지지율은 높다. 이유는 첫 회에 출연해 '봉숙이'를 부른 후 단박에 화제에 오른 장미여관 같은 팀에서 찾아질 수 있다. 지지율은 다름 아닌 밴드들이 스스로 내뿜고 있는 매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대중들은 이 매력적인 밴드들을 응원하고 싶다. 이것은 프로그램이 2%의 시청률이라도 고무적인 일이다. 그 매력을 부가시킬 수 있는 오디션 방식이나 편집방식 혹은 심사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다.

Posted by 더키앙


'나가수', 무엇이 잘못된 걸까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첫 무대에 오른 이소라는 긴장된 표정으로 심호흡을 하며 특유의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로 '바람이 분다'를 불렀다. 낮게 속삭이다가 차츰 고조되는 그 노래를 들은 관객들과 시청자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완전한 감정이입의 경험.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는 음악들 속에서, 또 현란한 춤사위에 가려 정작 들리지 않았던 음률과 가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소라가 부르는 노래 속에 담겨진 감정이 대중들과 일치하는 그 순간, 그래서 누군가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리게 된 그 순간, 바로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의 존재감이 대중들의 가슴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제 14기 1차 경연을 마친 '나가수'는 어떨까. 여전히 우리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노래 속에 담긴 가수들의 감정과 교감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그다지 고음을 질러대지 않아도, 또 록커가 굳이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지 않아도, 마치 당신을 울리고야 말겠다는 듯 감정 과잉으로 노래하지 않아도, 또 노래로 모두를 꺾어버리겠다는 듯 가창력 자랑을 하지 않아도, 그저 차분하게 진심을 담아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그 '몰입의 경험'은 왜 사라진 걸까.

캐스팅에서부터 연출, 출연가수들의 문제 등등, 이유는 총체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캐스팅일 것이다. 사실 무대에 가수를 세우고 경연을 벌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거기 누가 서느냐는 '나가수'의 관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가수에 대한 호불호는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석연찮은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캐스팅은 피해야 한다. 단 한 명의 어울리지 않는 가수의 캐스팅은 다른 호감 가는 가수들이 있다고 해도 전체 '나가수' 무대의 물을 흐릴 수 있다.

사실 '나가수' 1기와 2기가 가장 세간에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그 각각의 멤버들, 이소라, 김범수, 김건모, 백지영, 정엽, 윤도현, 박정현이나 임재범, 김연우 같은 이들이 가진 독특한 자신들만의 음악세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의구심을 갖게 하는 가수가 없었던 데 기인한다. 각각의 면면도 중요하지만 '나가수'는 모두의 팀워크로 서로 시너지를 올리는 구조로 운용된다. 누군가 강력한 가창력을 선보임으로써 그 무대의 권위가 올라가면 다른 가수가 그 높아진 권위의 무대에서 또 다른 매력을 덧붙이는 식이다.

그런데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가수가 끼면 상황은 거꾸로 흐른다. 즉 무대의 아우라가 점점 희석되는 것이다. 그렇게 아무나 오를 수 있는 무대가 되어버리면 그것은 제 아무리 좋은 가수가 한두 명 끼어 있다고 해도 효과를 내기가 어려워진다. 이것은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른바 '급'의 문제다. 적우가 다운타운에서 제아무리 주목을 받았다고 해도 '나가수'에 어울리는 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것은 테이나 이현우에게도 똑같이 던져질 수 있는 질문이다. 헤비급 선수들이 뛰는 무대에 경량급 선수가 올라오면 무대의 아우라는 희석된다(이것은 헤비급이 경량급보다 낫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나가수'는 그런 무거운 무대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시너지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물론 캐스팅의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일 수 있다. 그만큼 적당한 가수를 찾기도 어렵고, 있다고 해도 캐스팅을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게다가 이건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나가수'의 무대가 아닌가. 그러니 캐스팅 문제는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캐스팅이 되었다면 그 새로운 가수에 맞는 재평가나 스토리텔링 등을 통해 일정 부분 '급'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연출적인 부분이다. 떨리는 모습으로 방송사를 찾아 들어오고 인터뷰를 하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스토리텔링은 그게 임재범이라면 효과가 있을 지 몰라도 적우나 테이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

또한 '나가수'의 스토리텔링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스토리의 대부분이 1위 가수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가 1위를 했네 하는 이야기는 이제 그래서 식상해졌다. 왜 제작진들은 1위 가수밖에 보지 않는 것일까. 2위 가수의 이야기도 재미있을 수 있고, 꼴찌 가수의 이야기가 더 신선할 수도 있다. 모두가 잘 했는데 운이 안 좋아서 꼴찌가 됐다는 식의 스토리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대신 꼴찌가 절치부심해서 노력하는 모습과 무대에 오르는 그 과정을 집중해준다면 더 진한 감흥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나가수'의 무대 위에 사라진 아우라를 되찾으려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무대 바깥에서 스토리를 찾아야 한다.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한 후에라야 무대에서의 모습에 더 몰입될 수 있다. 즉 이러한 기대감은 제작진들이 연출을 통해 만들어줘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 정해진 패턴으로 꾸며지는 영상 속에서 기대감은 전적으로 가수들 스스로에게 맡겨져 있다. 그들은 인터뷰를 통해 서로를 추켜세우거나 때로는 자화자찬하면서 "우리를 기대해달라"고 강변한다. 이것으로 어떻게 대중들이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개그맨들을 기용하고도 웃음의 포인트가 없다는 지적은 일견 맞지만, 그렇다고 지금 같은 무대의 아우라가 휘발된 '나가수'에서 웃음의 포인트를 찾는 건 위험한 일이다. 먼저 중요한 건 가수들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서 더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하나마나한 '중간평가'는 각각의 가수들의 기대감을 높여줄 수 있는 연출로 바뀌는 편이 나을 것이다. 또한 선곡에 있어서도 지금처럼 가수들이 거의 원하는 곡을 부르게 하는 식으로는 '도전정신'이 희석될 수밖에 없다. 이 '도전정신'의 부재는 결국 '나가수' 무대의 긴장감을 사라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 하나 지적되어야 될 것은 자문위원들의 역할이다. 자문위원들의 멘트는 권위를 잃은 지 오래다. 가수를 추천하는 역할을 하는 자문위원들이 있는 마당에, 캐스팅 논란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니 자문위원들이 하는 중간 멘트들 역시 오히려 무대에 대한 몰입에 방해를 줄뿐이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캐스팅에 있어서 대중들을 참여시키는 방식이 나을 지도 모른다. 인터넷 추천 등을 통해 '나가수'에 나갈 가수를 대중들이 스스로 뽑게 하는 방식은 많은 잡음을 없애 줄 수 있지 않을까.

'나가수'는 분명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음악을 새롭게 들을 수 있고, 가수를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중요한 건 그 음악이 제대로 들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나가수'의 진짜 공적은 그간 프라임 타임대의 음악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었던 '노래하는 가수들'을 발굴해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부르는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 점이다. 바로 이 몰입을 되살려내야 한다. 거기에 '나가수'의 생존이 달려 있다.

Posted by 더키앙


'나가수', 노래자랑이 아닌 쇼인 이유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나는 가수다'에서 막춤을 추면 1등이다? 그 첫 번째 물꼬를 연 가수는 김범수였다. '얼굴 없는 가수'였던 그는 남진의 '님과 함께'를 부르면서 박명수와 함께 춤을 추었다. 어딘지 막춤에 가까운 듯, 한편으로는 코믹하게 보이는 김범수의 춤은 관객을 열광시켰다. 청중평가단은 그에게 1위의 영광을 안겼다. 바비킴은 초반 부진한 성적을 내다가 신촌블루스의 '골목길'을 부르면서 1위를 차지했다. 이때 바비킴 역시 춤을 췄다. 그 후로 바비킴의 어딘지 술 한 잔 걸치고 덩실덩실 추는 듯한 그 막춤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춤의 바톤은 김경호가 물려받았다. 김경호는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부르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추는 예상치 못한 춤으로 관객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긴 머리를 찰랑찰랑 흔들고, 어딘지 수줍은 듯한 몸 동작은 폭발적인 가창력과 반전을 이루면서 그를 단박에 '국민언니(?)'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윤민수다. 조금은 과도한 감정이입의 창법으로 일관해오던 그는 ADD 4의 '빗속의 여인'을 부르며 마치 비장의 카드를 꺼내듯 춤을 꺼내들었다. 그의 개다리춤은 청중들을 열광케 만들었고 그는 꿈에도 그리던 1위를 처음으로 차지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멋있다기보다는 웃음을 주는 이들의 막춤에 도대체 어떤 힘이 숨겨져 있어 추기만 하면 1등을 거머쥐게 만드는 걸까. 이것은 '나는 가수다'의 무대가 이제 어느 정도 대중들에게 익숙해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처음 이소라가 무대에 올라 '바람이 분다'를 조용히 불렀을 때,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관객들은 진심이 담긴 노래가 가진 힘을 '나는 가수다'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나는 가수다' 무대에 이제 청중들은 적응이 된 상태다. 그들은 노래를 잘한다. 그 사실은 처음엔 놀라웠지만 지금은 당연한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노래만 잘 하는 줄 알았던 가수가 춤을 추면 어떨까. 물론 '얼굴 없는 가수'라고까지 불리던 그들이 추는 춤이니 거기서 프로페셔널한 멋진 춤을 기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딘지 어색하고 어눌하지만 춤을 통해 뭔가 다른 걸 보여준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가창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청중들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민수가 '빗속의 여인'의 첫 소절을 막 끝냈을 때 인순이가 한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드디어 쇼를 점점 알아가기 시작하는군요."

'나는 가수다'는 때론 성대대결이라고 부를 정도로 질러대는 고음과 소름끼치는 가창력의 대결 양상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인순이가 말하는 것처럼 '쇼'를 보여주려는 가수들이 있었다. '가창력 자랑(?)'에 지친 청중들에게 쇼는 흥겹고 즐거우면서도 그 자체가 가수들의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청중들에 대한 헌사라는 기분 좋은 인상을 만들었다. 물론 막춤과 순위가 어떤 하나의 법칙처럼 상관관계를 갖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가창력을 뽐내는 무대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 온전히 그 무대가 청중들을 위한 것이라는 '쇼'가 가진 인상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무시할 순 없을 것 같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지칭하듯, 가수의 또 다른 정체성은 못하거나 어울리지 않아도 청중을 위해 기꺼이 쇼를 할 수 있는 그 마음가짐이 아닐까.

Posted by 더키앙


명성황후 스토리와 우리들의 스토리가 만나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다가오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자의 마음은 어떨까. '나 가거든'의 화자는 '쓸쓸한 달빛 아래' 지나는 바람 한 점에 한숨 쉬듯 묻는다. '나는 왜 살고 있는지'. '명성황후'의 OST로 잘 알려진 '나 가거든'은 바로 그 명성황후의 못 다한 목소리를 깨워내는 노래다. 명성황후로 연기했던 이미연의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대사는 여전히 그 울림이 깊다. '나 가거든'은 바로 그 죽음 앞에 섰지만 '조선의 국모'로서 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꼿꼿함을 보인 명성황후와,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쓸쓸함과 슬픔이 교차하는 정조를 담고 있다. 아름다운 발라드에 비장미가 넘치는 것은 이 두 정조에서 비롯된다.

"작은 시간 안에 스토리의 시작, 중간, 끝 이렇게 나뉠 것 같아요." 박정현이 이 노래를 "5분짜리 연극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건 이 곡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마치 새벽녘 죽음을 앞둔 자의 외로움에 홀로 독백하듯 시작했다가, '슬퍼도' 살아야 하고, 아니 '슬퍼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삶, 그리고 결국 죽음으로써 비로소 자신이 살아야했던 이유를 남길 수밖에 없는 절절한 마음을 토로하고는, 자신을 기억할 이들에게 그 '슬픔까지도 사랑'했다는 말을 남기며 끝이 난다. 이것은 명성황후의 엄청난 비극적인 운명을 그려내는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네 모든 인간의 운명을 담아낸 가사이기도 하다.

결국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 언젠가는 떠나게 될 것이고 그래서 슬프지만 바로 그 슬프기 때문에 살아야 하며, 그 삶이 다 하는 날 그를 기억하는 이들로 인해 한 삶을 살아낸 이유를 알 수 있는. 모두가 스러질 운명이지만 그 기억 속에 살아남아 있기에 그 슬픔 또한 사랑했다 말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나 가거든'은 이처럼 명성황후라는 특수한 스토리를 그려내면서도 그 안에 우리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스토리를 담아낸다.

조수미가 성악 창법으로 담담하면서도 비장한 '나 가거든'을 불렀다면, 박정현은 자신이 말한 것처럼 때론 감정을 절제하고 때론 감정을 몰아치면서 이 노래를 한 편의 연극으로 만든다. 그래서 쓸쓸한 바람소리 같은 해금연주 위에 심지어 예쁘게까지 느껴지는 박정현의 목소리로 시작한 노래는 차츰 감정이 고조되면서 한숨 쉬듯 내뱉어지다가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에서 그 아픈 속내를 살짝 드러내고는 다시 감춰진다. 그리고 다시 차츰 비장해지면서 감정은 폭발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두 번째 토로하는 '슬퍼서 살아야 하네'에서는 애써 숨겼던 깊은 슬픔이 마구 밖으로 드러나면서 듣는 이의 가슴을 후벼 판다.

'나 가거든'은 박정현 말고도 조관우, 김범수, 김경호 등 여러 가수들에 의해 불려졌다. 그 한국적인 '한'의 정조가 현대적인 록 발라드 장르와 너무나 잘 어우러지며 듣는 이에게 깊은 감흥을 남기면서도, 부르는 이의 창법에 따라 전혀 다른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경호의 '나 가거든'은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강은경 이경섭의 록 발라드 버전을 가장 충실하게 전해주면서, 이들이 작사 작곡해 김경호가 부른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김범수의 '나 가거든'은 마치 그가 부른 '하루' 같은 느낌을 주고, 조관우는 그 특유의 창법으로 한편의 오페라 같은 느낌을 준다.

반면 박정현의 '나 가거든'을 듣다보면 이 가수가 가진 다채로운 목소리와 감정 선에 놀라게 된다. 어떨 때는 귀여울 정도로 맑다가 어떨 때는 마치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로 바뀌는 박정현 특유의 창법은 그래서 이 노래를 한 편의 연극이게 만든다. 절정의 순간에 가슴 한쪽이 아려오면서 뭉클해지는 것은 이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마치 드라마처럼 감정을 서서히 끌어올려 결국 폭발시키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 가녀린 체구는 어디서 그런 깊은 아픔의 목소리가 솟아나는지, 오히려 이 폭발적인 감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완벽한 스토리 라인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감정의 절제와 폭발이 적절한 스토리 라인 위에서 드라마틱하게 연출되는 '나 가거든'은 사실 노래 자체가 주는 힘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좋은 노래는 좋은 가수와 무대를 만나면 또 다른 감흥으로 다가올 수 있다. 어딘지 마지막 경연장 같은 비장미가 넘치는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에서 박정현이라는 가수에 의해 불려진 '나 가거든'이 더더욱 우리를 먹먹하게 하는 건 아마도 그 가수라는 존재의 쓸쓸함과 슬픔과 기쁨이 노래를 통해 전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노래는 또한 듣는 이에게도 똑같이 '나는 왜 살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래서 이 노래를 매개로한 부르는 이와 듣는 이 사이에서 느껴지는 같은 인간으로서 삶에 대한 공감이 노래로 전달될 때, 우리의 가슴은 떨릴 수밖에 없다.

Posted by 더키앙


진정한 멘토이자 가수, 위대한 김경호의 탄생

'위대한 탄생'(사진출처:MBC)

'위대한 탄생' 백청강은 늘 두 가지 지적을 받아왔다. 비음과 모창. 하지만 톱2를 뽑는 경연에서 백청강은 심사위원들의 이 두 지적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OST 부르기' 미션에서 '왕의 남자'의 주제가였던 '인연'을 선택한 백청강에게 김태원 멘토는 "이제 비음을 살려도 된다"며 "너무 억누르는 모습은 듣는 이에게도 불편함을 준다"고 말했다. 김태원의 마법 때문일까. '인연'을 열창하는 백청강의 비음 섞인 목소리는 그의 단점이 아니라 특징처럼 들렸다. 애절함과 처연함을 덧붙여주는.

하지만 백청강의 무대에서 더 돋보인 인물은 그와 듀엣을 부른 김경호였다. 모창에 대한 지적에 대한 정면승부처럼 보인 이 무대에서 그들이 부른 '아버지'라는 노래는 이 날 무대의 최고 압권이 되었다. 한 때 성대결절로 고생을 했지만 최고의 가창력으로 돌아온 김경호의 파워풀하면서도 섬세한 보컬은 역시 명불허전. 그러나 그 노래보다 더 감명을 준 것은 노래를 부르며 김경호가 보인 백청강에 대한 태도다. 그는 마치 소중한 아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따스한 미소를 연신 백청강에게 던져주었다.

김경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고음부분에서는 오히려 백청강의 음색을 살려주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조절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사실 당연하게도 실력의 차이는 두드러졌다. 김경호와 백청강이 함께 선 무대가 백청강을 위한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또 김경호의 그런 노력이 절절히 묻어남에도 불구하고 김경호의 가창력은 숨겨지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김경호의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가수다'를 떠올린 이유다.

노래를 마친 김경호는 백청강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백청강이 모창을 한다는 얘기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맑고 고운 고음에 슬픔까지 간직한 목소리다"라고 말했다. 백청강의 모창을 얘기할 때 심사위원들이 떠올린 인물은 바로 김경호다. 그러니 그 당사자가 모창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 김경호의 이런 태도와 말들은 그 어떤 멘토들의 그것보다 더 따뜻하게 전해졌다.

'위대한 탄생'은 멘토제를 차별점으로 내세운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멘토제 자체는 훌륭한 장치라는데 이견이 없다. 왜냐하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는 자칫 경쟁적인 분위기에 멘토제는 어떤 인간적인 따뜻함을 부여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톱2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통해 보면 과연 그 멘토제의 따뜻함이 얼마나 부각되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누구에게는 점수를 몰아주고 또 누구에게는 혹평을 일삼는다는 멘토들에게 쏟아진 수많은 의혹들은 그것이 설혹 오해하고 하더라도 그저 근거 없는 것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건 멘토의 태도다. 똑같은 말이라도 어떤 태도로 하느냐에 따라 그 뉘앙스는 백 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태도가 어긋나면 자칫 멘토들이 제 새끼들만 챙기려고 서로 헐뜯는다는, 본래 멘토제를 하려한 의도 자체가 흐려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김경호의 심지어 자신을 낮추는 태도와 진심어린 말 한 마디는 멘토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해주었다. 톱2를 가려내는 '위대한 탄생'은 그래서 김경호라는 위대한 가수이자 멘토의 탄생을 보여주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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