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 총출동 ‘개콘’ 900회 특집, 무엇이 달랐나

900회 특집. KBS <개그콘서트>에는 쟁쟁한 선배들이 총출동했다. 유재석이 축사 콘셉트의 콩트로 포문을 열었고 김대희가 2년 만에 출연해 김준호와 갖가지 옛 인기코너들을 선보였고, 김준현, 신봉선, 김지민, 장동민, 김종민을 비롯한 <1박2일> 멤버들까지 출연해 후배들과 함께 코너를 빛냈다. 900회라는 특집이라는 기대감과 선배들이 총출동한다는 사전 예고 덕분에 <개그콘서트>는 오랜만에 10% 두 자릿수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기록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아마도 이런 좋은 성적표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축하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선전에 취할 상황은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선배들의 출연을 통해 후배들이 현 <개그콘서트>가 어떤 점들이 부족한가를 되짚어보는 일이다. 옛 코너들을 다시 재연한 것에서부터 기존 코너들 속으로 들어온 선배들의 활약을 곱씹어보는 건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선배 개그맨들이 확실히 다르게 느껴진 점은 저마다의 캐릭터가 확실하고 또 그 캐릭터를 살려내는 연기력이 바탕에 있다는 점이다. 첫 코너로 세워진 <감수성>의 경우, 두드러진 건 김준현의 연기력이었다. 김준호가 중심에 된 코너지만 이 특집에 맞춰 게스트의 성격으로 출연한 김준현은 그간 자신이 여러 코너에서 만들었던 유행어와 캐릭터들을 아낌없이 코너에 녹여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정적으로 연기를 해내는 그 모습은 그가 어떻게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냈는가를 잘 보여준다. 

김준현의 활약은 현재 <개그콘서트>의 코너인 ‘사랑이 Large’에서도 빛났다. 유민상과 김민경이 이끌어가는 이 코너에 민경의 옛 남자친구 역할로 들어온 김준현은 등장하자마자 유민상과 김민경을 은근히 디스하는 대사들을 살려내며 단박에 코너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 놓았다. 김민경에게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며 옛날에 진짜 122kg이었다는 걸 계속 깐족대듯 얘기하고, 유민상에게는 기수가 “20기”이며 입은 옷이 “그레이색”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마치 욕 같은 발음으로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선배 개그맨들의 캐릭터와 연기력이 돋보인 건 ‘연기돌’과 ‘쉰밀회’로 반가운 얼굴을 보여준 김지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배 개그맨들과 함께 한 ‘연기돌’에서 김지민은 과거 ‘뿜엔터테인먼트’에서 보여줬던 캐릭터를 가져와 여전히 살아있는 유행어들을 터트렸다. “화장 잘 먹으면 살쪄.” “느낌 아니까.” “사랑스럽다는 소리보다 쌍스럽단 소리 더 많이 들어요.” “욕먹으면 살쪄.” 이 같은 그녀의 유행어들은 짐짓 멋진 포즈를 하다 그걸 무너뜨리는 연기를 통해 더 잘 살아났다. 

하지만 이번 900회 특집에서 가장 빛난 건 역시 김준호와 김대희였다. 두 사람은 ‘감수성’, <씁쓸한 인생> 같은 코너에서 역시 웃음을 주기 위해서 연기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보여줬다. 특히 김대희는 ‘쉼밀회’에서는 다소 나이든(?) 유아인 역할로 웃음을 주었고, ‘대화가 필요해’에서는 웃음을 위한 눈물 연기까지 선보였다. 웃음 연기가 그저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할 때 더 큰 웃음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김대희는 확실히 보여줬다. 

900회 특집을 맞아 오랜만에 다시 <개그콘서트> 무대를 빛내준 선배 개그맨들의 활약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김대희는 혼신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현 <개그콘서트>가 헤쳐 나가야할 길을 제시했다고 보인다. 자기 캐릭터를 구축하고 거기에 더 깊게 몰입하는 연기를 보여주려 노력하는 것. 거기에 <개그콘서트>의 미래도 또 후배 개그맨들의 앞날도 달려있지 않을까.

선배들 챙기는 코미디언들, 그 묵직한 울림

 

4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개막식에는 성화 봉송 이벤트가 있었다. 마치 올림픽처럼 성대한 행사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였는데, 그 마지막 주자는 개막식에 직접 성화를 들고 무대 오르게 되어 있었다. 이경규와 김용만이 사회를 맡은 개막식에서 그 마지막 주자가 발표됐다. 바로 송해 선생님이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남은 현역 최고령 코미디언. 당연한 성화 봉송 마지막 주자였다.

 

'전국노래자랑(사진출처:KBS)'

그런데 송해 선생님이 성화를 들고 단상으로 올라가 뛰어갈 때 문제가 생겼다. 성화의 불이 꺼져버린 것. 주최측이나 진행요원들 그리고 사회를 맡은 이경규, 김용만은 물론이고 거기 있던 코미디언 후배들은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경규는 역시 베테랑답게 이 불이 꺼져버린 성화라는 상황 자체를 코미디로 승화시켰다. 세상에 이런 성화 봉송은 최초라는 것.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송해 선생님이 단상에 오르기 전 김대희가 재빠르게 다가가 라이터로 성화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러자 이경규가 또다시 이런 성화 봉송은 없었다며 꺼진 성화를 라이터로 다시 붙인 성화 봉송의 해프닝을 웃음으로 바꿔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단상에 오른 송해 선생님은 뜬금없이 노래 한 곡을 부르겠다고 하셨다. 이애란의 백세인생이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을 해야 하니 못 간다고 전해라-”라고 개사한 곡은 한 마디로 히트였다. 송해 선생님의 그런 모습은 객석에 웃음과 함께 잔잔한 감동마저 주었다.

 

그 자리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건 코미디언들의 선후배 관계가 그토록 돈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선배를 챙기기 위해 후배들이 모두 나서서 호응해주고 받아주고 하는 모습들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또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송해 선생님은 박명수 같은 후배가 디제잉을 선보일 때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27일 오전 159,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 선생님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못 간다고 전해라-”하던 송해 선생님의 노래 한 자락이 무색하게 먼저 구봉서 선생님은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측은 애도의 뜻을 담아 추모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일찌감치 조문을 떠난 후배들도 있었고, 현재 부산에 공연이 잡혀 있는 팀들은 공연이 끝나는 대로 조문에 합류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찌 보면 공교롭게 하루 사이로 벌어진 일들이지만 거기서 유독 눈에 띄는 건 코미디언들의 따뜻한 정과 선후배를 챙기는 마음이었다. 구봉서 선생님의 별세를 애도하고 다시금 기억해내려는 후배들의 모습은 요즘처럼 각박한 현실에서 그래도 코미디언들의 선후배들만큼은 살만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송해 선생님이 들고 가다가 꺼진 성화가 후배가 다시 붙여 불을 피우듯, 그들의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따뜻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준호, 예능에선 얍쓰, 후배들에겐 든든한 버팀목

 

웃기기 위해 웃통을 벗고 한없이 망가지는 광대의 진짜 얼굴은 어떨까. 심지어 부모의 부고를 들을 때도 웃는 얼굴 분장을 한 채 무대에 올랐다는 과거 코미디언의 삶은 지금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웃음을 주는 이들이다. 그러니 자신의 눈물조차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그 맘은 얼마나 무너질 것인가.

 

'김준호(사진출처:KBS)'

김준호의 마음이 딱 그랬을 것이다. 코코엔터테인먼트는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 대표이사 김모씨가 회사자금을 횡령해 도주한 후, 어떻게든 회생해보려 애썼지만 회사의 부실경영이 점점 더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도저히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 개그맨들과 함께 이 일을 헤쳐 나가기 위해 자비를 털어서까지 일부 연기자들의 출연료를 정산해주었다고 한다.

 

그는 <12>을 통해 얍쓰라는 캐릭터를 갖게 되었다. ‘얍삽한 쓰레기라는 다소 거친 이 캐릭터로 인해 본인은 항상 망가지는 입장에 처했다. 마치 노출증 환자나 되는 것처럼 자꾸 웃통을 벗어젖히는 모습은 그의 투철한 직업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지어 대표이사 김모씨가 도주를 한 상황에서도 그는 프로그램에 단 한 번도 그 내색을 하지 않았다.

 

왜 마음고생이 없겠는가. 열심히 해왔던 일들이 한순간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은 더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건 자신을 믿고 묵묵히 따랐던 후배 개그맨들에 대한 책임감이다. 그들과 함께 앞으로 코미디계의 큰 비전을 공유하려던 그 꿈이 커다란 걸림돌을 맞이하면서 큰 좌절감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연말 시상식을 통해 확인된 것처럼, 김준호가 뿌린 신뢰의 씨앗은 후배들의 든든한 지지로 돌아왔다. <개그콘서트>의 김준현을 비롯해 김대희, 조윤호, 김지민이 김준호에 대한 감사와 신뢰의 뜻을 전했고, <웃찾사><코미디 빅리그>에서 활동하는 김현정, 홍윤화, 이국주가 변함없는 마음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후배들의 응원은 김준호에게는 천군만마의 힘을 보태주었을 것이다. 한때 그 개그맨 후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렇게 성장한 개그맨들은 이제 거꾸로 김준호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었다. 그러니 힘들어도 내색 한 번 안한 채 여전히 <12>의 얍쓰로 또 <개그콘서트> ‘닥치고의 교장선생님으로 나와 기꺼이 망가질 수 있었을 게다.

 

코코엔터테인먼트라는 개그맨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던 회사의 폐업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비온 뒤 땅은 더 단단해진다고 했던가. 이번 위기 상황은 오히려 김준호와 후배 개그맨들 사이의 신뢰를 더욱 돈독하게 해준 격이 되었다.

 

물론 개그맨으로 살아가는 것과 회사를 운영하는 것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를 통해 충분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어떤 방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쪼록 그가 후배들과 꿈꾸었던 코미디계의 비전을 함께 이뤄나가길 기원한다.

 

김준호의 의리, 후배들의 신뢰, 웃음 뒤의 눈물

 

때로는 상을 받은 사람들보다 더 시상식에서 빛나는 인물이 있다. 올해는 KBS 연예대상에서 무관에 그친 김준호가 그렇다. 그는 대상을 받지 못했지만 무수한 동료, 후배 개그맨들로부터 대상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KBS연예대상(사진출처:KBS)'

이렇게 된 것은 최근 그가 공동대표로 있는 코코엔터인먼트의 위기 때문이었다. 공동대표인 김모씨가 회삿돈을 횡령해 도주함으로써 회사에 대한 흉흉한 루머들이 나돌았던 것. 특히 소속 개그맨들의 이탈로 분열 조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들은 김준호는 물론이고 소속 개그맨들에게도 뼈아픈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마치 비온 뒤에 땅이 굳듯, 그런 루머와 추측성 기사들을 일축하며 시상 무대에 오른 개그맨들은 일제히 김준호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KBS 연예대상에서는 김준현의 감동적인 존경발언이 김준호를 울렸고, 이어서 김대희, 조윤호, 김지민 등이 그에 대한 감사와 신뢰의 뜻을 전했다.

 

그에 대한 언급은 그가 전혀 출연하고 있지 않은 SBS 연예대상에서도 흘러나왔다. 그의 소속사 개그맨들은 KBS <개그콘서트> 뿐만 아니라 SBS <웃찾사>tvN <코미디 빅리그>에서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S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우수상과 최우수상 수상자인 김현정과 홍윤화는 김준호에 대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이국주는 가장 힘든 분은 김준호 선배 아닌가 생각한다. 그 소속사에 있다. 배신 때리지 않고 똘똘 뭉쳐서 기다리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코코엔터 사랑한다.”고 말해 그에 대한 여전한 신뢰와 믿음을 드러냈다. 사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된 인물이 이국주였다. 최근 대세 개그우먼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소속사의 이번 사태의 충격도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국주는 변함없는 마음을 전했다.

 

개그맨들이 이처럼 일제히 김준호에 대한 지지를 하고 나선 데는 이들의 특별한 관계에서 비롯된다. S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홍윤화가 거론한 김준호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그 특별한 관계가 묻어난다. 그녀는 제가 가장 힘들 때 제 편이 된 사람이 김준호 선배였다. 선배가 힘들 때 저도 편이 돼 드리겠다. 힘내라. 날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국주와 김준호의 관계 역시 방송가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국주가 어렵던 시절부터 꾸준히 김준호가 그녀를 지지해줬기 때문에 지금의 이국주가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코코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는 깨질 위기에 처했을지 몰라도, 김준호와 개그맨들 사이의 끈끈한 관계는 오히려 더 돈독해진 셈이다.

 

김준호가 든든히 지지해온 후배 개그맨들이 시상대에 올라 상을 받는 모습을 보며 그는 얼마나 흐뭇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대상을 받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어려운 시기에 그들의 여전한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지상파 3사의 올해 연예대상을 보면 공로상의 성격이 짙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KBS가 유재석에게 또 SBS가 이경규에게 대상을 준 것은 올해의 성과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간의 공로를 치하하는 성격이 강했다. MBC는 물론 <무한도전>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성과를 만든 프로그램이지만 유재석의 대상 역시 그간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를 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딘지 늘 봐 오던 대상 수상의 풍경들 속에서 오히려 김준호와 개그맨들의 변함없는 의리가 더 눈에 띈다. 또한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12><개그콘서트>에서 온몸을 던져 웃음을 주는 그 모습에서는 무대에 서서 웃음을 전하는 광대의 눈물마저 엿보게 된다. 실로 올해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무관의 김준호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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