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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룸’의 영혼체인지, 그 흥미진진함과 복잡함 사이

사형수와 변호사. 두 인물의 영혼이 바뀌었다. 장화사(김해숙)는 자신의 애인 추영배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사형수가 되었지만, 영혼이 바뀌어 변호사 을지해이(김희선)의 몸에 들어가 감옥을 나온 후 추영배가 버젓이 살아 SHC그룹의 기산 회장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향후 장화사가 어떤 방식이든 을지해이의 몸을 빌어 복수를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상황이다. 

한편 장화사 사건을 수사하다 끝없이 추락해버린 아버지 을지성(강신일)의 딸 을지해이는, 그 때문에 돈과 출세를 위해서 뛰고 또 뛰는 변호사가 되었다. 기산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법무법인 담장에서 시니어 파트너가 되기 위해 할 짓 못할 짓 다 하던 차에 장화사와 영혼이 바뀌어버린다. 잘나가던 변호사에서 졸지에 사형수의 처지가 되어버린 을지해이는 장화사로부터 제 몸을 돌려받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tvN 토일드라마 <나인룸>은 이처럼 나이도 다르고 상황도 다른 두 인물의 몸과 영혼이 뒤바뀌어버리는 판타지를 통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겉으로 보면 장화사의 몸에 들어오게 되어 이제 꼼짝없이 감방에서 지내야 하는 을지해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당할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평소 장화사가 감방에서 지낼 때 유일한 소망이었던 그의 어머니가 그의 족쇄가 된다. 장화사의 몸에 갇히고, 그래서 감방에도 갇히게 된 을지해이는 장화사의 어머니를 간병하는 감미란(김재화)을 이용해 그의 어머니를 빼돌림으로써 을지해이의 몸을 가진 장화사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게다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을지해이는, 을지해이의 몸을 갖고 있지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장화사로 하여금 복숭아를 먹게 해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이를 통해 그 영혼체인지를 만들었던 제세동기로 다시금 영혼을 되돌려 놓으려 한다. <나인룸>의 이야기는 그래서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두 여인의 대결구도처럼 보이지만, 또한 두 여인의 몸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투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몸은 그저 육체가 아니라, 그 몸을 가진 자의 삶 전체를 규정하고 지배하는 틀이 된다. 마치 영혼을 가두는 감옥 같은.

<나인룸>의 영혼체인지는 그래서 단지 영혼 하나 바뀐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두 인물이 처한 상황들이 너무나 극적이고 다르기 때문에 그 변화는 엄청나게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장화사는 자신의 삶 전체를 갉아먹어버린 과거 추영배와 얽힌 사건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을지해이는 감옥에서 나가기 위해 장화사와 바뀐 영혼을 되돌리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서 법무법인 담장에서의 자신의 입지나 자신의 애인인 기유진(김영광)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써야 한다. 그래서 장화사는 을지해이의 몸을 이용하고, 을지해이는 장화사의 어머니를 볼모로 잡거나 그 알레르기가 있는 몸을 이용한다. 

시청자들로서는 영혼이 바뀐 장화사와 을지해이의 몸을 차지하려는 대결구도가 헷갈릴 정도로 복잡하게 다가올 수 있다. 장화사의 몸이지만 그가 을지해이고 을지해이의 몸이지만 그가 장화사라는 사실을 드라마를 보면서 스스로 계속 생각하며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 지가 납득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몸을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영혼이 바뀌었다고 설정을 했어도 자꾸 혼동을 일으키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건 아마도 이 두 인물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갖는 고충일 수 있다. 김희선은 김희선의 몸으로 김해숙을 연기해야 하고, 김해숙은 김해숙의 몸으로 김희선을 연기해야 한다. 사형수지만 모범수로서 살아가던 장화사가 어느 순간 영혼이 바뀌어 을지해이의 그 간교하기까지 보이는 두뇌플레이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김해숙의 연기가 바탕이 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는 역시 그 욕망의 화신이었던 을지해이가 영혼이 바뀌어 장화사의 그 어눌하고 억울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의 김희선의 연기에서도 보이는 것들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이야기가 복잡하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영혼이 바뀌었다는 설정은 알겠지만 몸으로 부지불식간에 그 존재를 인식하는 우리네 습관 때문에 그 상황에 대한 일종의 저항감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인룸>이 하려는 복수의 이야기 속에는, ‘몸이라는 감방에 갇혀 있는 현대인들의 영혼’이라는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이 몸이 바뀐 두 사람은 그 몸을 차지하기 위해 대결하던 걸 끝내고, 그 바뀐 상황을 통해 서로를 공감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복잡함과 흥미진진함 사이에 놓여진 <나인룸>이라는 드라마의 처지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허스토리' 같은 영화가 설 자리가 없다는 건

사실 많은 이들이 영화 <허스토리>가 개봉되기 전까지 ‘관부재판’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고 말한다. 1992년부터 6년 간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 재판부와 맞선 할머니들의 위대한 역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처음으로 보상판결을 받아낸 재판.

워낙 소재가 소재인지라, 여기 등장하는 할머니들의 얼굴 표정 하나 손등의 주름살 하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영화다. 특히 부산이라는 지역에서 이 할머니들이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남몰래 눈물만 삼키며 살아오셨을 그 세월의 이야기들이 전해주는 묵직한 감동은 영화가 아니라도 그 실제 사실이 주는 먹먹함을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오히려 과하게 감정선을 끌어올리는 연출 같은 걸 하지 않았다. 다소 건조하다싶을 정도로 이야기들을 병렬적으로 엮어 보여주는 <허스토리>는 그래서 관부재판의 연보를 하나씩 순차적으로 소개해주는 다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균형 감각이 있어 영화가 전하려는 역사적 사실은 더 엄밀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영화가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다. 그것은 이 관부재판을 이끈 원고단의 단장 문정숙(김희애)이라는 여장부 캐릭터 덕분이다.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라는 거창한 모임에 있던 여행사 대표 문정숙은 그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영화에 발랄한 힘을 부여한다. 그와 그의 절친 신사장(김선영)의 워맨스는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쾌한 웃음의 요소다. 걸 크러시라고 해도 좋을 법한 문정숙의 말과 행동들은 재판 장면에서 통역을 할 때 감정을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장면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워낙 실제 관부재판이라는 사실 자체가 드라마틱한 지라 영화는 그 실제를 어떻게 제대로 전달할 것인가에 더 집중한 듯 보인다. 그리고 그 전달에 있어 가장 전위에 선 이들이 출연배우들이다.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처럼, 한 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저 마다의 연기공력을 보여주는 연기자들은, 너무 과하지도 또 모자라지도 않게 그 아픈 역사를 온 몸으로 담아냈다.

김희애는 우리가 늘 봐왔던 그 ‘우아한 김희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 역할에 맞는 연기변신을 보여줬다. 커다란 안경테에 뽕이 들어간 철지난 양복을 입고 웬만한 남자들은 기만으로도 눌러 버릴 듯한 모습은 이 할머니들을 이끄는 단장으로서 든든한 느낌을 만들었다. <허스토리>라는 제목에 걸맞게 할머니들과 문정숙-신사장이 보여주는 여성들 간의 연대 역시 그토록 끈끈하게 보일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연기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

이 영화는 관부재판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간 그 숨기고 말하지 못했던 아픈 과거를 드디어 말한다는 의미에서 최근의 미투 운동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그 분들이나 미투 운동으로 용기를 낸 분들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생존자들이다. 사회의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자신의 아픈 과거를 말하지 못했던.

<허스토리>는 이처럼 영화적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또 잘 만들어진 작품인데다 의미도 남다른 작품이다. 그래서 영화 개봉 전까지만 해도 많은 관객들이 찾을 걸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영 다르다. 개봉한 지 10일 정도 지났지만 관객 수는 26만여 명에 머물고 있다. 이유는 개봉관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 4일 개봉한 <앤트맨과 와스프>가 좌석 수만 166만개를 가져간 반면, 겨우 개봉 2주 차를 맞은 <허스토리>는 고작 5만석을 배정받았다. 물론 영화의 상업성 자체가 다르다고는 해도 이제 퐁당퐁당 상영으로 <허스토리>는 보고 싶어도 보기가 어려운 작품이 되어가고 있다. 제아무리 자본의 논리에 따라 영화관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해도 이런 작품에 조금 더 기회를 줄 수는 없는 걸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사진:영화'허스토리')

Posted by 더키앙

‘아버지가 이상해’, 이 시대에 가족드라마는 여전히 유효한가

과연 이 시대에도 가족드라마는 여전히 유효한가. 한 때는 가족드라마가 우리네 드라마의 근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떠올려보면 이 같은 질문은 우리 시대가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를 말해준다. 이른바 ‘가족 해체 시대’가 아닌가. 물론 뿌리 깊은 가족주의의 틀은 여전하지만, 우리가 사는 삶의 양태는 1인 가구로 대변되는 ‘개인주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가족의 가치를 내세우는 가족드라마의 풍경들은 그래서 낯설거나 혹은 향수어린 추억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다.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KBS 주말드라마는 그래도 이 가족드라마라는 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후의 보루다. 그래서 세상은 바뀌어도 여기 포진되는 가족드라마들은 기본이 시청률 30%라고 얘기될 정도로 충성도 높은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아버지가 이상해> 역시 가뿐히 30% 시청률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정적인(?) 시청률이 그 드라마가 가진 가치의 바로미터가 되던 시절은 지나갔다. 더 중요해진 건 반응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이상해>는 어떤가. 괜찮은 시청률만큼 반응도 괜찮다.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데는 이 가족드라마가 가족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해체되어가고 있는 현 가족의 양태들을 다양하게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변혜영(이유리)과 차정환(류수영)의 혼전동거와 ‘결혼인턴제(?)’ 같은 것일 게다. 사실 변혜영과 차정환의 사랑이야기는 양가가 반대하는 전형적인 ‘혼사장애’의 클리셰를 가져왔지만, 그 안에서 이들이 대처하는 방식은 실로 도발적이다. 

과거의 가족드라마였다면 아마도 혼전동거를 하다 들킨 자식들은 부모 앞에서 마치 죄인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게다. 하지만 변혜영은 부모를 힘겹게 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했다 말하지만, 자신이 혼전에 동거를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드러낸다. 사실상 동거는 가족주의의 틀을 깨는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과거 가족주의 시대에 동거는 금기시되던 면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 자체를 선택으로 보는 현 가족 해체의 시대에 동거는 정반대로 결혼으로 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변혜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변혜영은 그래서 결혼을 하더라도 혼인신고를 늦추고 1년 정도의 인턴 기간을 갖자는 도발적인 제안을 한다. 이것은 <아버지가 이상해>가 갖고 있는 가족주의와 가족 해체의 현실 사이의 어떤 타협점으로 보인다. 

이런 지점은 이 드라마 도처에서 발견된다. 안중희(이준)와 변한수(김영철)의 관계가 그렇다. 어느 날 변한수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찾아온(사실은 변한수의 친구 아들인) 안중희를 변한수는 자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린 시절 안중희가 홀로 버려져 아버지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변한수는 기꺼이 그와 늦게나마 해주려고 한다. 엄밀히 말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풍경은 가족 해체 시대에 대안적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점점 핏줄로부터 분리되고 있는 가족은 이제 타인을 끌어안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가고 있다. 

가족이 만들어내는 때론 지지고 볶고 때론 따뜻한 위로가 되는 그 끈끈함은 여전하지만, 그들 각각이 처한 현실들이 어떤 면에서는 더 중요해진다. 이를테면 장남인 변준영(민진웅)이 처한 청년들의 취업문제가 그렇고, 나영실(김해숙)과 오복녀(송옥숙) 사이에 벌어지는 혼사갈등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갑을갈등이다. 가까스로 취업의 문을 넘은 변미영(정소민)은 가족이라는 틀로 갑자기 묶여진 과거 자신을 왕따시킨 김유주(이미도)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그녀에게 가족이라는 틀은 오히려 원치 않는 관계의 시작으로 다가온다. 

<아버지가 이상해>의 이야기는 그래서 가족을 그리곤 있지만 달라진 현실들이 드리워져 있다. 똑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과거의 가족드라마가 그리던 풍경과 <아버지가 이상해>가 보여주는 풍경이 다르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이다. 거기에는 과거의 가족주의적 가치와 현재의 개인주의적 가치 사이의 부딪침이 보인다. 과거의 가족드라마는 세대가 갈등을 해도 가부장적 가치로 회귀하며 끝을 맺었다.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가족으로 다시 모여 잘 살게 되었다는 보수적인 가치관이 그것. 그렇다면 <아버지가 이상해>는 어떤 결말을 보여줄까. 여전히 가족주의의 가치로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현 시대의 새로운 가치들을 보여줄 것인가.

Posted by 더키앙

‘아버지가 이상해’가 드러낸 동거·결혼에 대한 세대 차이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결혼 전 동거는 잘못된 일일까. 차정환(류수영)과 변혜영(이유리)의 동거사실을 알게 된 부모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밤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런 사실을 숨겨 충격을 안겨준 것에 대해서 변혜영 역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동거’를 한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를 모르겠다고 부모들 앞에 대놓고 말했다. 그건 변명이 아니라 솔직한 마음이었다.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가 화두로 꺼내 놓은 건 최근 달라진 결혼관과 동거에 대한 생각이다. 동거는 변한수(김영철)와 나영실(김해숙) 같은 부모 세대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그다지 넉넉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똑 부러지게 잘 자라 변호사가 된 딸 변혜영이 동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기대만큼 더 큰 실망감을 안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변혜영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을 비난하는 가족들 앞에 적어도 동거에 있어서는 당당했다. 결혼 전 함께 살아봐야 그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고, 그래서 하는 동거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 사실 그녀의 말대로 결혼부터 덜컥하고 살다가 아이까지 생겼지만 그제서야 생각이 바뀌어 이혼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떤 것이 현명한 삶의 방식인가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딸을 둔 부모의 경우 동거를 더 격렬히 반대하는 이유는 과거의 혼전순결을 강조하던 비뚤어진 여성관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치 동거를 하는 것 자체가 여성으로서의 삶의 끝처럼 여기는 여성관이다. 하지만 어디 지금 우리네 삶이 그러한가. 동거를 찬성하는 쪽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건 성별과 상관없는 경험이고 선택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차를 <아버지가 이상해>는 아들의 경우와 딸의 경우를 비교해 논점으로 끌어내고 있다. 즉 변혜영의 오빠인 변준영(민진웅)은 혼전에 김유주(이미도)와의 아이를 먼저 덜컥 갖게 되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부모 역시 충격을 받긴 하지만, 의외로 선선히 이를 받아들이고 결혼을 허락했다는 것. 그 와중에 김유주의 입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부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동거와 임신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동거를 반대하는 것도 또 그러다가도 덜컥 임신을 하고 오면 결혼을 서두르는 것도 결국 남성과는 달리 여성을 바라보는 과거의 성별의식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즉 변한수와 나영실의 다른 태도 속에는 은연 중에 아들과 딸에 대한 다른 입장이 들어가 있다는 것. 

변혜영은 자신이 틀렸다며 몰아세우는 가족들 앞에서 그건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라고 말했다. 부모의 생각도 맞지만 자신의 생각도 틀리지 않다는 것. 그저 이전 세대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다른 것뿐이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이상해>가 변혜영의 동거에 대한 입장을 통해 꺼내놓은 건 지금의 달라진 결혼관에 대한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더 이상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락 여기는 세대들에게 동거는 과거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물론 부모 세대들은 여전히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당사자들일 수밖에 없는 지금의 세대들이 갖게 된 결혼관이 그러할 진대.

Posted by 더키앙

<그래 그런거야>에는 왜 현실 갈등이 잘 보이지 않을까

 

SBS <그래 그런거야>에 등장하는 어르신들, 유종철(이순재)과 김숙자(강부자)의 존재감은 사실상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에 맞닿아 있다. 많은 걸 겪으며 살아온 이 어르신들은 이 바람 잘날 없는 가족의 크고 작은 갈등들이 사실은 별 거 아니라는 시점을 제공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래 그런거야(사진출처:SBS)'

맏딸이 결혼한 지 일주일만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수절 아닌 수절을 하며 시댁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걸 보는 엄마의 마음이 오죽할까. 그런데 둘째딸마저 그 사돈네 아들과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그 엄마인 이태희(임예진)는 사돈댁을 찾아와 어르신인 김숙자 앞에서 대놓고 재수 없는 집안이라는 말을 해버린다. 그러니 그 말은 들은 맏며느리 한혜경(김해숙)도 참을 수 없다. 김수자 앞이라 조심조심하면서도 불편한 심경을 이태희에게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갈등의 해결점은 의외로 쉽다. 이태희가 돌아간 후, 유종철이 김숙자를 부른다. 그리고 애들이 가출한 걸 갖고 뭐라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김숙자를 데리고 야반도주 했던 과거를 이야기 한다. 청춘들은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유종철은 허허롭게 웃어버린다. “그래 삶이란 그런 거야라는 이 드라마의 갈등 해결법인 셈이다.

 

이 관점이 나쁜 건 아니다. 그간 그토록 많은 막장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김수현 작가는 대놓고 이렇게 갈등을 극으로 몰아가는 막장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이야기를 그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갈등은 의외로 가족의 품 안에서, 어르신들이 조금만 욕망을 내려놓거나, 혹은 어르신의 시선으로 인생 전체를 통해 그런 작은 갈등들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던짐으로써 쉽게 풀려버린다. 이런 식의 시도는 드라마의 본령이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참신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 그런거야>가 이처럼 괜찮은 해결의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남는 아쉬움은 그 갈등들이 여전히 많이 봐왔던 가족 갈등 이야기의 틀 안에서 맴돌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결혼을 두고 양가가 부딪치는 이야기나, 노년으로 홀로 살아가다 갑자기 젊은 처자와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 혹은 오래도록 부부로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남편의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들은 물론 나름의 갈등을 유발하지만 어쩐지 과거 어떤 드라마에서 봐왔던 것들의 반복처럼 여겨진다.

 

갈등의 해결방식은 다르지만 제시되는 갈등들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에 어떤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김수현 작가가 여전히 건재하다고 여기게 됐던 이유는 <엄마가 뿔났다><내 남자의 여자>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작품 속에서 당대 현실과 조응하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엄마의 휴직선언과, 불륜에 대한 탐구 그리고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 등이 그 드라마들 속에는 존재했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들이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당대의 현실을 읽어낼 수 있는 것으로 그 가치를 증명해내고 있었다면 <그래 그런거야>가 보여주는 현실은 너무 소소하게 다가온다. 지금의 현실이 어떤가. 젊은 청춘들은 취업 앞에서 꺾어지고, 결혼을 포기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으며 그래서 대가족은 해체되어 나홀로족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최근 성 갈등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남혐 여혐의 문제도 심각하다. 점점 고령화사회가 되어가며 어르신들과 젊은 세대 간의 갈등 또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크디 큰 현실적 문제이다.

 

김수현 작가 같은 중견을 대표하는 작가가 이런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시대적 문제에 대해 왜 침묵하고 있을까.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가족의 양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들이다. 지금의 가족을 그려내겠다면 적어도 이런 시대적 문제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그저 어르신의 긍정적인 시선만 던진다고 모든 게 해결될까. “그래 그런 거야라고 현실을 초월해 소소한 가족갈등을 긍정의 목소리로 화해시켜도 저 밖의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Posted by 더키앙

<그래 그런거야>, 이렇게 갈등 없는 드라마도 가능하다?

 

세상에 이렇게 갈등이 없는 드라마도 있을까. 김수현 작가의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는 소소한 수다와 말다툼은 있어도 가족을 파국으로까지 몰고 가는 갈등은 없다. 사돈지간이어서 사랑할 수 없는(사실 이게 왜 문제되는지 모르겠지만) 나영(남규리)과 세준(정해인)은 마치 야반도주라도 할 듯이 무작정 경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는 이 드라마가 가진 갈등과 해결양상을 잘 보여준다.

 

'그래 그런거야(사진출처:SBS)'

즉흥적으로 떠나긴 했지만 이래선 안 될 것 같다는 세준이 나영에게 먼저 서울로 올라가라고 하면서 말다툼이 벌어진다. 그리고 진짜 두 사람은 헤어질 것처럼 싸우고 고개를 돌리지만 갑자기 나영이 다시 세준에게 다가와 붙잡자 그는 돌아서 나영을 껴안는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이들이 언제 싸웠느냐고 보일 정도로 또 살가운 여행을 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즉 갈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갈등의 소지가 있어도 그것이 본격적으로 부딪치고 그래서 어떤 파국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금세 갈등 이전 상태로 돌아온다. 이것은 세준과 나영의 밀당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부부로 살아왔지만 알고 보니 남편의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고 울고불고 하지만 이를 긍정해버리는 유세희(윤소이)의 이야기가 그렇고, 나이는 들어서 여전히 젊은 여자 밝힘증을 보이는 유종철(이순재)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김숙자(강부자)와 가족들 이야기도 그렇다.

 

또 외부에서 보면 오해하기 쉬운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둘이 함께 사는 유민호(노주현)와 이지선(서지혜)의 경우도 그렇다. 이런 외부 시선이 끼어들면 갈등은 커지고 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이지선은 시아버지인 유민호가 다른 여자를 만나기를 기원하고 유민호는 죽은 아내와의 의리를 지키려고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허허웃는 게 유민호의 캐릭터다. 이러니 갈등은 쉽게 봉합된다.

 

집안 간의 격차 때문에 결혼 문제로 갈등을 겪는 혼사장애의 이야기는 가족드라마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는 소재다. <그래 그런거야>에도 이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유세현(조한선)과 결혼한 유리(왕지혜)를 여전히 탐탁찮게 여기는 그녀의 어머니가 등장하고, 또 물 한 방울 손에 묻히지 않고 자라난 유리가 시집살이하는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갈등은 별로 없다. 그것은 유리라는 캐릭터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솔직하게 모든 걸 드러내고 할 얘기 못할 얘기 다 하지만 남편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귀여운 푼수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거야>는 이처럼 기존의 갈등들을 끝까지 몰고 나가는 막장드라마들의 문법을 정반대로 가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갈등이 생겨도 제목처럼 그래 그런거야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일종의 긍정어법이 그 밑바탕에는 깔려 있다. 사실 막장드라마들이 해체시켜버리는 가족 이야기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의도가 이 드라마에는 야심차게 깔려 있다.

 

물론 그래서 이 드라마는 따뜻하다. 모든 걸 끌어 안아주는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이는 김숙자(강부자) 같은 인물이 가족의 중심을 딱 잡아주고, 평생 집안 살림 하느라 친구들과 여행 한 번 가지 못했지만 별 불만을 얘기하지 않다가 한 번 떠나게 된 경주 여행에서 소녀처럼 즐거워하는 한혜경(김해숙) 같은 며느리도 있다. 진짜 가족이 그러하듯이 갈등과 문제가 있어도 이들을 서로를 토닥이며 살아간다. 그것이 가족의 진짜 의미니까.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이상화되고 판타지화된 가족이지 지금의 현실은 아닐 것이다. 핵가족화되다 못해 1인 가구가 늘고 있는 현실에 <그래 그런거야>의 대가족은 이제는 낯설게 다가온다. 따뜻한 가족 이야기가 주는 향수는 있지만 내 얘기 같지 않고 남 얘기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그래 그런거야>의 한계점도 분명히 드러난다. 김수현 작가는 그렇게라도 사라져가는 옛 가족의 한 자락을 붙잡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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