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나' 김혜수의 흥미로운 난타전 뒤 남은 씁쓸함의 실체

 

룰은 없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 그래서 돈을 벌 수 있고 그래야 생존할 수 있으며 그래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SBS 금토드라마 <하이에나>의 정금자(김혜수)는 이 예사롭지 않은 드라마가 가진 현실 인식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이미 세상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자들의 것이다. 그러니 그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가진 자들의 것을 빼앗거나 그들에게 붙어먹어야 한다. 심지어 썩은 고기라고 할지라도.

 

정금자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사랑 따위는 이익을 위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인물이다. 금수저 법조계의 피를 타고 난 윤희재(주지훈)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빼낸 정보로 그의 뒤통수를 쳐 승소하는 건 그래서 일도 아니다. 이슘그룹 3세 하찬호(지현준)와 아내의 이혼소송에서 아내의 변호를 맡은 정금자는, 하찬호의 정신병력을 담은 진단서를 윤희재로부터 빼내 그를 법정에서 물 먹인다.

 

져본 일이 없는 윤희재도 가만히 있을 위인이 아니다. 그는 이슘그룹의 차기대표로서 하찬호 대신 하혜원(김영아)을 세우고, 하찬호의 내연녀 서정화(이주연)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한편 윤희재 대신 하찬호의 변호인을 맡게 된 정금자는 이제 서정화를 두고 윤희재와 대립한다. 이슘그룹의 후계 구도 싸움에 윤희재와 정금자가 변호인으로서 나서는 것이고 그 중간에 서정화가 중요한 키를 쥐고 있게 된 것. 결국 서정화가 하찬호의 이복동생인 하준호(김한수)와 사랑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찾아낸 정금자가 승기를 잡게 됐다. 정금자 앞에서 또 다시 물먹은 윤희재는 망연자실해했다.

 

<하이에나>는 제목처럼 정정당당한 대결 따위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약점을 쥐고, 그 부분을 물어뜯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윤희재와 정금자의 엎치락뒤치락하는 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대결은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윤희재가 반격을 할 듯 보였지만 또다시 정금자의 우세로 뒤집히는 반전의 반전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런 치열하게 피 튀기는 대결에 점점 빠져들면서 씁쓸함 또한 점점 커지는 건 왜일까. 그건 이들이 왜 이렇게 싸우고 있는가에 대한 목적이 돈과 성공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 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결국 이슘그룹 같은 돈과 권력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자들을 대리해 싸우고 있을 뿐이다. 저들은 말 한 마디 하면 되고 이들은 그 말 한 마디에 피 흘리는 싸움을 벌인다.

 

그 대리전에서 윤희재와 정금자가 모두 돈이나 성공 그 이상의 대의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건 지독한 현실인식이 담겨있다. 그 이상의 대의라는 것은 배부른 소리라는 현실이다. 당장 죽지 않으려면 가진 자들을 위해 대리전에 기꺼이 나서야 하고 거기서 지는 건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하이에나>는 그래서 우리가 하이에나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자꾸만 떠올리게 한다. 저들의 치고받는 싸움은 저들이 가진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진 자들을 위해서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치열함에 빠져들면서도 씁쓸함 또한 더해진다. 이들은 과연 끝까지 하이에나로 남아 서로의 약점을 물어뜯는 일만 할 것인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만일 그런 거라면 갈수록 불편해지는 드라마가 될 수 있으니.(사진:SBS)

‘하이에나’, 김혜수와 주지훈의 물고 뜯는 케미만으로

 

시작부터 강렬하다. SBS 새 금토드라마 <하이에나>는 제목에 걸맞는 물고 뜯는 인물들의 육박전이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시그널> 이후 4년 만의 김혜수 드라마 복귀작, <뿌리깊은 나무>와 <별에서 온 그대>의 스타 PD 장태유, 그리고 최근 영화 <신과 함께>, <암수살인>은 물론이고 드라마 <킹덤>으로 대세배우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주지훈까지. 만만찮은 배우들과 감독의 만남으로 한껏 기대감을 높였던 <하이에나>는 이들이 어째서 이 작품을 선택했는가를 그 쫄깃한 작품의 힘으로 증명해 보여줬다.

 

<하이에나>가 첫 회부터 특히 강렬하게 다가왔던 건 정금자(김혜수)라는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다. 충 법률사무소 변호사인 정금자는 자신이 맡은 이혼 변호를 위해 법무법인 송&김에서 잘 나가는 엘리트 변호사 윤희재(주지훈)에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윤희재는 정체를 모른 채 정금자에게 빠져들지만, 그것이 윤희재가 맡은 하찬호(지현준) 대표의 이혼소송에서 정금자가 이기기 위해 만든 덫이라는 걸 법정에서 알고는 멘붕에 빠진다. 결국 윤희재로부터 슬쩍 빼돌린 하찬호의 진료기록을 증거로 정금자는 이혼소송에서 자녀양육권을 가져가고 합의금도 받아낸다.

 

보통의 남녀 캐릭터가 등장하면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그런 흔한 이야기를 <하이에나>는 간단히 뒤집어 놓는다. 그러면서 적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윤희재가 여전히 정금자에게 이빨을 드러내면서도 미련을 갖는 모습과 상반되게, 정금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로 그려낸다. 돈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모은 돈으로 빌딩을 사기 위해서라면 사랑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라니.

 

사랑 타령만하는 캐릭터보다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모든 걸 던지는 정금자의 캐릭터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대적하고 있는 세계가 가진 것 없고 스펙 없는 그 같은 인물에게는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빌딩을 선글라스를 낀 채 올려다보는 정금자의 모습은 그래서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자못 비장한 느낌마저 준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저 장벽을 그가 과연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자못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엘리트의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윤희재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의뢰인들의 뒤를 닦아주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승소한 후, 쏟아져 나오는 악플들을 읽으며 그것이 자신의 승리의 증거라고 즐거워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자신의 뒤통수를 친 정금자에게 큰 충격을 받지만, 어딘지 그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은 듯한 인상을 남긴다. 윤희재와 정금자는 그래서 향후 사사건건 으르렁대며 물어뜯을 것이지만 동시에 의외의 케미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평이한 선악대결이 아니라, 악당들끼리 치고받는 싸움이라 <하이에나>는 더 마음을 사로잡는 면이 있다. 선이 이기는 흔한 판타지가 더 이상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시청자들에게, 그 현실에서의 성공을 위해서는 스스로도 썩은 고기를 물어뜯어야 한다는 정금자의 처절함이 어떤 공감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사랑조차 성공을 위해 이용하는 이 캐릭터의 매력에 첫 회부터 빠져드는 이유다.(사진:SBS)

‘타짜3’, 신출귀몰한 진짜 타짜들의 ‘밑장빼기’는 어디로 갔나

 

영화 <타짜:원 아이드 잭(이하 타짜3)>은 화투 대신 카드를 들고 나온다. 도박 종목(?)의 차이 때문일까. 화투가 가진 토종적인 맛은 없고, 대신 카드 게임이 갖는 ‘돈 놓고 돈 먹는’ 하드코어적 도박의 풍경이 전면에 나오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엄청난 판돈과 손목, 발목이 잘려나가는 살벌한 룰이 전편을 압도한다. 물론 복수극과 속고 속이는 사기와 반전의 묘미를 넣고 있지만, <타짜>를 원작만화로, 두 편의 영화로, 또 드라마 리메이크로 봐온 관객들로서는 그다지 짜릿한 새로움을 찾기는 어렵다.

 

본래 <타짜>는 제목에 담긴 것처럼 도박기술로 상대방을 속이는 그 묘미가 압권이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지금도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심심풀이로 화투를 치면 농담 삼아 나오는 말이 “밑장빼기”가 될 정도였다. 바로 그런 타짜라 불리는 이들의 신출귀몰한 도박기술이 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였던 것.

 

게다가 빼놓을 수 없는 건 돈을 거는 도박판이 점점 커지면서 손목을 걸고 나아가 목숨을 거는 도박판으로 긴장감을 높이는 서사의 점층 구조다. 결국 도박의 긴장감은 ‘판돈’에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목숨을 담보로 하거나 신체 일부를 담보로 할 때만큼 강렬한 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짜>는 도박판 이야기처럼 시작되지만 마치 조폭 누아르 같은 색깔을 더한다.

 

하지만 <타짜3>에서는 카드로 바뀌어서인지 ‘밑장빼기’ 같은 기술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셔플링을 현란하게 하는 정도가 볼거리다. 이런 기술이 나오지 않는 이유로 제시되는 건 기술 자체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서다. <타짜>라는 작품에서 마치 이니셜처럼 등장하는 기술이 소개되거나 등장하지 않는다는 건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이렇게 카드 게임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누군가를 속이는 데 집중하다 보니 영화는 도박 이야기라기보다는 여러 인물들이 모여 작당을 하는 ‘케이퍼 무비’ 같은 느낌을 준다. 오랜만에 류승범이 ‘원 아이드 잭’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건 이런 케이퍼 무비적 성격을 이 영화가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토속적인 맛이 사라지고, 도박 자체에 좀 더 깊게 들어가기보다는 도박판을 둘러싼 속고 속이며 복수하고 복수당하는 이야기로 흐르면서 <타짜3>에서는 어딘가 카드게임 자체는 하나의 도구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남게 되는 건 보다 큰 판돈이나 걸게 되는 손목, 목숨 같은 도박의 결과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끝없이 담배를 피우고 욕을 해대는 인물들 속에서 잘려나간 손목, 발목은 많은데 그다지 인상적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다. 다만 류승범의 아우라와 박정민의 안정적인 연기 정도가 인상적이랄까. <타짜3>는 그래서 원작 만화와 첫 번째로 영화화 된 <타짜1>의 후광효과 정도를 가진 작품처럼 보인다. 워낙 허영만 화백의 원작 만화와 최동훈 감독과 백윤식·조승우·김혜수 등 명배우들이 협업한 영화 <타짜1>이 완성도가 높았던 탓일까 아니면 후속 작품들이 너무 안이한 탓일까.(사진:영화'타짜:원 아이드 잭')

‘국가부도의 날’, 너무 아팠던 이 재난을 굳이 다시 꺼내보는 이유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재난영화처럼 보인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던 그 때 상황을 이 영화는 소재로 가져오면서, 그 일주일 전 이 재난이 닥칠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 어떤 대처를 보여주는가를 담는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국가부도 사태라는 쓰나미 앞에 선 인간군상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인 한시현(김혜수)은 이 심각한 재난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윗선에 보고하고 그 보고는 경제수석을 거쳐 청와대까지 올라가지만 어쩐지 대처방식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재정국 차관(조우진)은 노골적으로 이 재난을 정부가 나선다고 막을 수 없다고 말하며, 국민들에게 알리지 말 것을 요구한다. 혼돈만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참에 우리네 경제가 완전히 뒤집어져 이른바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국과 맞물리면서 결국 이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재난상황은 알려지지 않고 피해자들은 속출한다. 이 영화가 재난영화처럼 보인다는 건, IMF 구제금융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이전부터 사업 실패와 생계 문제로 비관한 이들의 자살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런 재난에 직격탄을 맞는 작은 사업주를 대표하는 인물로 갑수(허준호)는 백화점에 물건을 공급하는 수주를 약속어음 하나 달랑 받고 계약서에 사인을 함으로써 위기상황에 몰린다. 집까지 내놓고 버텨내려 하지만 결국 버티다 못해 어음을 돌려버리자 협력업체 사장은 자살을 해버린다. 

반면 이 재난 상황을 미리 읽어내고 기회로 삼으려는 이들이 등장한다. 종금에서 일하다 위기상황을 감지하고 사표를 던진 윤정학(유아인)은 이후 투자자를 모아 달러를 매입하고 달러가가 치솟자 다시 부동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역투자를 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똑같은 재난상황이지만 이 재난을 알려 국민의 피해를 줄이려는 자가 있고, 아무 것도 모른 채 사업을 벌여 죽을 만큼 힘든 현실에 맞닥뜨리는 이들이 있다. 또 이 재난을 역이용해 부를 축적하고 신분까지 상승시키려는 이가 등장한다. 물론 IMF라는 국제구제금융을 내세워 한국 시장을 열고 쓰러지는 기업들을 싼 가격에 먹어치우려는 미국과, 이 와중에도 정치와 권력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위해 재벌기업들만 살리는 것으로 일종의 커넥션을 만들려는 우리네 상황도 그려진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시원한 사이다를 보여주진 않는다. 시종일관 벌어지는 고구마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이를 대책 없이 감당해야 하는 무고한 국민들의 희생이 이어진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영화는 깊은 몰입감과 카타르시스를 주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그것도 굉장히 힘겨운 재난상황들을 보는 일이) 어째서 의외의 몰입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걸까. 

그건 이 영화가 재난영화의 틀을 가져오면서 동시에 ‘폭로’의 성격을 더해놓았기 때문이다. 보라. IMF에 의존해야 하는 초유의 국가부도의 사태를 벌인 것이나, 그 사실을 은폐해 엄청난 피해자를 만든 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저들이 한 일들이다. 우리는 심지어 그것이 우리의 분수를 넘는 소비나 해외여행 때문이라 생각하며 ‘금 모으기’에 그토록 노력하지 않았던가. 

재난의 폭로는 ‘저들의 잘못’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우리를 시원하게 한다. 그리고 또한 이런 재난 사태가 또 벌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적인 가치 또한 담고 있다. 재난을 마주했던 한시현이나 윤정학, 갑수는 당시에는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믿지 않는다”는 것.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이런 재난 상황이 또 다시 벌어지지 않는 길이라는 걸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사진:영화'국가부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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