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는 은근 닮은꼴

 

<꽃보다 할배>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이른바 ‘일섭다방’에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어른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귀여운 할배들의 ‘서열놀이’가 들어있다. ‘젠장 나이 70에 막내라니...’라는 자막과 함께 투덜대는 백일섭과 그 놀이가 재미있다는 듯 장난기 어린 얼굴로 뒤에서 웃고 있는 이순재, 그리고 백일섭에게 커피 타라고 시키는 신구는 나이만 쏙 빼놓으면 영락없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고 했던가. <꽃보다 할배>의 할배들이 그렇다. 그들에게 주어진 ‘배낭여행’이라는 중차대한 미션은 그들을 순식간에 아이들로 만들어버린다. 파리에 내려 숙소까지 찾아가는 과정은 그래서 마치 <아빠 어디가>에서 아이들이 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사오는 장면처럼 흥미진진한 모험의 연속이다.

 

누가 뭐라 해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는 이순재와, 무거운 짐 때문에 따라가지 못하자 아내가 정성스럽게 챙겨준 장조림통을 바닥에 내팽개치는 백일섭이 그렇다. 또 그 투덜대는 막내(?)를 살뜰하게 지켜주고 그가 버리고 간 꽃다발을 챙겨 그의 가방에 꽂아주는 바르고 착한 어린이 같은 신구와, 드라마 속에서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고 멋진 스타일에 여전히 소년처럼 보는 이를 설레게 만드는 미소를 짓는 박근형이 그렇다. 이들은 적어도 <꽃보다 할배>에서는 소싯적의 아이들로 돌아간 모습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여행이 주는 힘 덕분이다. 일상과 일 속에서는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이자 후배들이 우러러보는 국민배우들이지만, 여행은 그런 무거운 타이틀들을 모두 벗어버리게 만든다. 그들은 그저 오래도록 함께 같은 길을 걸어온 형 동생 사이일 뿐이다. 나영석 PD는 아마도 <1박2일>을 통해 이미 여행이 주는 감성이 때 묻은 어른의 껍질을 벗어내고 대신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게다. 중년의 어른들도 계곡 앞에 서면 입수를 걸고 목숨 걸듯 복불복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렇게 보면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가 전혀 다른 소재를 갖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쪽이 이제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할배들을 조명한다면, 다른 한쪽은 실제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으로 무장된 밝은 웃음을 선사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두 프로그램 모두 여행이라는 일상과는 다른 시공간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할배와 아이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보통의 성인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어떤 경우에는 보호자(?)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약자의 위치는 예능이 주는 간단한 미션조차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만들어준다. 아이들에게 시골이라는 낯선 공간이 하나의 도전이라면, 할배들에게는 배낭여행으로 가게 되는 외국의 낯선 공간이 도전이 되는 셈이다. 낯선 환경 속에서 아이들에게 아빠들이 보호자로 서 있다면, 할배들에게는 이서진이라는 젊은이가 보호자가 되는 셈이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기호가 점점 ‘조미료 없는 예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할배와 아이라는 약자의 지점은 중요하다. 성인이라면 훨씬 강도 높은 미션이 주어져야 그만한 효과를 보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다이빙을 한다든지 군에 재입대를 한다든지 해야 그만한 효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하지만 할배와 아이처럼 출연진 자체를 약자로 두게 되면 단순한 일조차 미션이 된다. <꽃보다 할배>의 파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 찾는 첫 번째 미션이 별다른 조미료(설정) 없이도 그토록 흥미진진하게 되는 이유다.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가 보여주는 지금 현재의 예능 트렌드는 현실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서 자신의 순수했던 모습을 다시 찾는 지점에서 발견된다. <진짜사나이>가 다 큰 장정들의 아이 같은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혹독한 군대로 들어가야 하는 반면, 할배들과 아이들은 이 순수함을 그 자체로 보여줄 수 있는 인물군들이다. 어쩌면 향후의 새로운 예능 트렌드는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가 보여준 그 순수의 지대에서 새롭게 피어날 지도 모르겠다.

할배들과 이서진 조합, 나영석PD의 균형감각

 

<꽃보다 할배>가 방영 전부터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은 그 기획자체가 참신했기 때문이다. 평균연령 76세 할배들의 유럽 배낭여행. 게다가 그 할배들은 우리에게 이미 국민배우라고 칭송되는 분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이 아닌가. 그러니 이들을 예능에서 그것도 배낭여행을 소재로 삼은 리얼 예능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화제가 아닐 수 없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실제로 방영 전 살짝 소개됐던 할배들의 커피 타임이 ‘일섭다방’이라는 화제로 이어진 것은 바로 이런 기획 자체가 만들어낸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감과 실제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어쩌면 높아진 기대감은 그것을 채워주지 못할 때 오히려 부담으로만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꽃보다 할배>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서진은 나영석 PD 특유의 균형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시선이 온통 할배들의 예능 출연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대감이 적게 만들어진 이서진 카드가 그만큼 주효했다는 얘기다. 물론 이서진은 이미 <1박2일>을 통해 이른바 ‘미대 형’이라는 캐릭터로 주목받기도 했다. 전혀 웃길 것 같지 않지만 엉뚱한 매력이 돋보이는 인물. 그러면서도 특유의 선한 이미지가 보는 이들을 푸근하게 만드는 그런 인물. 그가 바로 예능이 보여주는 이서진이다.

 

<꽃보다 할배>라는 그림에 이서진이 얼마나 중요한 조각인가는 그 조각을 떼어낸 이 프로그램을 떠올려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프로그램이 얘기하듯 청춘들에게는 배낭여행이 낭만 그 자체일 수 있지만 평균연령 76세의 어르신들에게는 지하철 하나 갈아타는 것조차 모험일 수밖에 없다. 체력도 문제다. ‘할배들의 배낭여행’은 뜻은 좋지만 그것을 실현시키려면 어떤 완충지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바로 이서진은 그 안전함과 편안함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조각인 셈이다.

 

또한 이서진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충분한 웃음을 담보해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꽃보다 할배> 첫 회에서 걸 그룹과 함께 가는 줄 알고 공항에 나왔다가 대선배들을 만나 당황하는 모습이나, 파리에서 숙소를 찾기 위해 지하철을 동분서주하는 모습, 또 숙소에 와서 신세한탄을 하는 모습은 모두 큰 웃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널 보면 내 맘이 아파-”로 시작되는 ‘내 사랑 송이’에 맞춰 나온 이서진의 역할로 몰카 당한 배우, 짐꾼, 통역사, 내비게이터, 스프린터, 선생님 매니저, 총무가 편집되어 보여주는 장면은 나영석 PD가 발견해낸 그의 예능적(?) 가치가 담겨져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웃음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어른신들을 위해 뛰고 또 뛰는 이서진에게서 느껴지는 훈훈한 마음이다.

 

즉 이서진은 이 예능 프로그램의 정서를 대변하는 셈이다. 어르신들이 보여주는 의외의 귀여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만큼 이서진이 보여주는 그 어르신들과의 교감이 주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유럽 배낭여행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어떤 세대를 넘어선 소통의 욕망을 말해주는 대목이 아닐까.

 

물론 이서진의 출연 자체가 이끌어내는 3,40대 여성 시청자들의 흡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즉 프로그램을 접하지 않고 그저 아이템으로만 봤을 때 ‘할배들의 예능’이라는 소재는 중장년 여성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이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을 완벽히 메워주는 인물이 이서진이다. 중장년 여성들에게 그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이 예능 프로그램이 이서진의 매력만으로 굴러간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역시 중심은 제목처럼 ‘할배들이 보여주는 의외의 매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꽃보다 할배>를 완전체로 만드는 데 있어 이서진이라는 한 조각의 매력은 실로 중요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이서진이라는 든든한 짐꾼이자 가이드이자 예능 능력자를 데리고 펼쳐지는 할배들의 매력에 푹 빠지는 일만 남았다.

나영석 PD는 왜 <꽃보다 할배>를 선택했을까

 

왜 하필 할배(?)들이었을까. 나영석 PD가 새롭게 시작하는 <꽃보다 할배>의 평균연령은 76세. 막내 나이가 무려 70세다. <1박2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나영석 PD가 CJ로 이적해 만든 첫 작품인데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국민배우들이 뭉쳤기 때문인지 <꽃보다 할배>는 시작 전부터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일섭다방’이라는 실시간 검색어까지 떠올랐던 공원에서 커피를 타 마시는 티저 영상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꽃보다 할배>가 가진 특별한 재미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영상 속에서 백일섭은 막내라는 이유로 투덜대며 커피를 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나이 다 들어 같이 늙어가는 처지의 칠순 할배들이지만 그 안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위계질서가 큰 웃음을 주었던 것.

 

이 장면은 <꽃보다 할배>가 어르신들이 주인공들이지만 그 소구대상은 젊은이들을 포괄할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즉 이 예능 프로그램은 ‘할배’가 아니라 ‘꽃보다’에 더 방점이 찍힌다는 것. 할배들이지만 여전히 ‘꽃보다’ 귀엽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 뭉클한 감동의 존재들이기도 한 그들의 새로운 면모가 이 프로그램의 진면목이라는 점이다.

 

tvN <택시>를 통해 살짝 공개된 <꽃보다 할배>의 장면들은 이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어르신들의 배낭여행이 젊은이들의 <1박2일>보다 훨씬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굉장히 적극적인 직진순재, 엉뚱한 매력의 시크신구, 로맨티스트 박근형, 좌충우돌 웃음담당 막내 백일섭 같은 캐릭터가 이미 만들어질 정도.

 

할배와 배낭여행이라는 새로운 조합 속에는 그간 나영석 PD가 해온 리얼 예능에 대한 생각이 들어가 있다. 나영석 PD는 예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이 가진 재미’를 꼽고는 했다. 즉 기획단계에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그림이 떠오르는 예능은 지금의 시청자들에게는 식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젊은이들이 배낭여행에서 겪을 수 있는 그림은 한정되어 있지만 그 체험자가 할배들이라면 도무지 어떤 그림이 나올 지 상상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지점은 작금의 <1박2일>이 난항을 겪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영석 PD가 이끌던 <1박2일>이 예측 불가능한 과정들을 담았다면, 지금의 <1박2일>은 시작과 함께 대충의 과정과 결과까지를 예측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그만큼 이 프로그램이 오래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대중들의 뒤통수를 치는 새로움에 대한 노력이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한 나영석 PD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그렇다고 해도 그 낯설음이 기대감마저 없는 미지수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조합이 낯설면서도 막연하게나마 할배들의 배낭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여행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아니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어르신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는 것이 그렇고, 70년 이상을 살아온 경험치에서 묻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할배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우리네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네 근대사를 통과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여가나 여행에 대해 그만큼 소홀했을 어르신들이 경험하는 배낭여행이란 그분들에게도 똑같은 여운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즉 ‘할배들의 배낭여행’이라는 단순명쾌한 콘셉트 안에 상당히 많은 기획 포인트들이 자연스럽게 들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야동순재를 통해, 또 “니들이 게맛을 알어?”하고 묻던 신구 선생을 통해, “아 글씨”하고 추임새를 붙여가며 부르던 백일섭 선생의 ‘홍도야 울지 마라’를 통해, 그리고 칠순에도 여전히 빛나는 박근형 선생의 로맨틱한 풍모를 통해서 그네들에 대한 팬덤이 젊은 층들에게도 충분히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어르신이 순간 권위를 무너뜨리고 아이 같은 천진함을 드러낼 때, 나이와 세대의 장벽은 허물어져버린다.

 

게다가 제 아무리 자기 세계에만 매몰되어 있던 자라도 그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히기 마련인 여행이 아닌가. 그 속에서 우리는 지금껏 가족의 한 언저리로 밀어놓고 구태여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우리네 어르신들의 ‘여전한 청춘’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예측불가능성’과 ‘기대감’. 이것이 나영석 PD가 보여줄 <꽃보다 할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이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