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669)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5452)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Total13,670,294
Today302
Yesterday670
728x90

명절 극장가 대목? 아 옛날이여!

 

보통 설이면 극장가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 대목에 맞춰진 영화들도 속속 개봉했었고 극장가는 연회 매진을 기록하며 발 디딜 틈 없는 인파가 몰리곤 했다. 하지만 이런 풍경은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작년 한 해 내내 극장가가 한산했고 명절이라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새로운 풍경은 명절에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승리호>는 딱 봐도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 어울리는 영화다. 실제로 작년 여름을 겨냥해 만들어진 작품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추석 개봉으로 미뤄졌고 이마저 어려워지면서 결국 넷플릭스행을 결정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승리호>에 대한 반응은 그래서 호불호가 갈린다. 애초 영화관 영화로서 기획되고 만들어진 작품인지라, 블록버스터 특유의 비주얼적 완성도는 높지만, 상대적으로 스토리는 단순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를 통한 안방극장 시청은 아무래도 이러한 비주얼적인 자극보다는 스토리에 더 집중하기 마련이다.

 

'신파'적 요소에 대한 아쉬움이 나오지만, 사실 우리네 여름이나 명절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이른바 '되는 작품'은 신파 같은 다소 쉬운 가족용 스토리에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법한 확실한 볼거리나 웃음, 액션 같은 요소들이 들어간 작품들인 게 사실이다. 그러니 <승리호>에 대한 호불호는 물론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데도 원인이 있지만, 플랫폼이 바뀐 영향도 적지 않다 여겨진다.

 

어쨌든 올해 설 명절 영화로 떠오르는 건 극장가에 세워진 작품이 아니라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승리호>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코로나19가 야기한 설 명절 영화의 색다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극장가에서 선전하고 있는 건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이다. 설 명절에 아이와 함께 부모가 보는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늘 선전할 수밖에 없는 장르였지만, <소울>은 특히 어른들도 감동받을 만큼 깊이 있는 내용을 애니메이션으로 잘 표현하고 있어 코로나 시국에도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20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이 120만 명을 넘어섰다.

 

설 명절에 맞춰 개봉한 우리네 작품으로는 옴니버스 로맨틱 코미디 <새해전야>가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데, 누적 관객 수 7만 명대(12일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소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렇게 현저히 적은 관객 수는 코로나가 바꾼 극장가의 상황을 실감하게 해준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극장가 대목을 겨냥한 작품 자체가 세워지지 않는 형국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지나가고 나면 극장가 풍경은 달라질 것이고 또 극장에 어울리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다시 기지개를 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이 '경험의 관성'은 향후에도 분명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승리호>를 통해 느낄 수 있듯이 넷플릭스 같은 OTT를 통한 영화 관람이 그리 낯선 풍경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사진:넷플릭스)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240억짜리 비주얼 갑 '승리호', 넷플릭스와의 어색한 만남

 

한국 최초의 우주 SF 블록버스터. 아마도 조성희 감독의 영화 <승리호>에 대한 가장 큰 기대감은 바로 이 지칭 안에 들어 있을 게다. <스타워즈>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모험서사들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할리우드의 이야기로만 여겨온 우리네 관객들에게 <승리호>는 그 제목이 먼저 소개됐을 때부터 어딘가 이질감을 줬던 게 사실이다. 일본 만화를 번역해 방영했던 추억의 만화 <이겨라 승리호>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승리호>는 그러나 생각보다 괜찮은 비주얼 블록버스터의 색깔을 보여줬다. 시작부터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가 다국적 경쟁 청소선들과 우주쓰레기를 놓고 벌이는 추격전은 시선을 잡아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현란하게 움직이는 우주선들의 이미지들이나, 빈티지한 무게감까지 더해진 미술로 구현된 승리호 내부의 이미지는 할리우드의 비주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구현되었다. 

 

승리호의 주역들인 4인방 캐릭터도 저마다의 색깔이 뚜렷하게 나올 정도로 매력적이다. 아웃사이더이면서 아이를 찾기 위해 돈 되는 일이면 뭐든 다 하는 조종사 태호(송중기), 거대한 레이저총을 난사하는 걸 크러시 캐릭터 장선장(김태리), 조직 두목으로 살벌한 문신을 하고 있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기관사 타이거 박(진선규) 그리고 유해진의 목소리가 입혀진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는 애초 이 작품이 IP의 확장으로 계획하고 있는 캐릭터 비즈니스가 충분하게 느껴지는 매력들을 보여준다. 

 

게다가 2092년 사막화된 지구의 디스토피아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각종 위성들 속 도시 풍경들도 흥미롭다. 나라나 언어의 구분 자체가 의미 없어질 정도로 다국적화된 그 도시들 속에서 어딘지 비정한 사람들의 어두운 모습들은, 지구로부터의 탈출을 계획하는 UTS의 리더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이 꿈꾸는 화성의 자연이 살아있는 풍광과 대비를 이룬다. 

 

영화 <승리호>가 공개된 후 여러 언론들이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는 아쉬움은 역시 스토리다. 이렇게 비주얼적으로 잘 구현된 세계와 상반되게 이야기는 너무 평이한 클리셰에 머물고 있고, 보는 이에 따라서는 신파적인 이야기가 공들인 세계를 다소 허무하게 만들었다 여겨질 수도 있다. 스토리는 확실히 아쉽다. 도로시라는 아이를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은 부성애 코드가 강조되면서 너무 뻔한 스토리로 이어진다. 

 

또한 <승리호>라는 한국 최초 우주 SF 블록버스터라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 우리식의 어떤 해석이나 색깔이 이야기나 연출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지 않은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단순한 '국뽕'이 아니라, 글로벌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 해도 우리네 '로컬'의 색깔 같은 차별성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킹덤>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좀비 장르라는 보편성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조선'이라는 차별성을 내세워 글로벌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다소 신파적인 스토리가 그 로컬의 색깔처럼 드리워진 건 <승리호>에 가장 큰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스토리의 아쉬움은 이 작품이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결정한 넷플릭스를 통한 상영이 과연 괜찮은 선택이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만일 블록버스터로서의 우주 액션과 비주얼들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대형스크린을 통해 봤다면 그 느낌이 사뭇 달랐을 거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블록버스터로서의 시각적 쾌감이 그 부족함을 채워줬을 테니 말이다. 

 

다만 제작비 240억원이 투입된 <승리호>가 우리네 영화에서는 미지의 세계처럼 여겨졌던 우주를 소재로 끌어와 적어도 이물감 없이 구현해냈다는 점이 분명한 성과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이 내딛은 첫 걸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갖게 된 노하우가 향후 또 다른 우주 SF에서는 채워지길 기대한다.(사진:넷플릭스)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넷플릭스여서 가능한 드라마의 진화, 우리의 선택은?

 

작년 한 해 드라마들 중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가 가보지 않았던 세계를 탐험한 작품들을 고르라면, <킹덤2>, <인간수업>, <스위트홈>이 아닐까.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글로벌 플랫폼이 이끌어낸 이 작품들은 그간 우리네 드라마가 가보지 않았던 신세계를 열어 보였다. 그리고 그 신세계는 로컬에 머물러 있던 우리네 드라마가 이제 글로벌로 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을 만들어냈다. 

 

재작년 초에 방영되어 전 세계에 K좀비 열풍을 이끌었던 <킹덤>은 애초 우리네 드라마 플랫폼들에서는 제작 자체를 얘기하기가 어려운 작품이었다. 좀비라는 소재 자체가 그렇고 그것을 조선시대를 바탕으로 하는 사극으로 연결한다는 파격이 그렇다. 좀비 장르의 특성상 등장할 수밖에 없는 신체 절단이나 식인 같은 자극적인 소재는 지상파는 물론이고 케이블, 종편이라고 해도 제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고, 19금 드라마는 물론 JTBC <부부의 세계>로 인해 활짝 그 성공의 길이 열렸지만 여전히 보편적 시청을 지향하는 기성 플랫폼들이 꺼려지는 요인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 사극에 대한 보수적 시선이나, 제작비 같은 현실적 문제들도 <킹덤>의 드라마화에는 넘어야할 장벽이 됐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을 단번에 넘겨줄 수 있었던 건 넷플릭스 때문이었다. 넷플릭스는 이미 <워킹데드> 같은 좀비물의 성공을 통해 이 플랫폼에 좀비 장르에 대한 보편적인 마니아층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거기에 <킹덤>은 딱 맞는 드라마가 아닐 수 없었다. 좀비 장르의 보편적 대중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조선시대 배경이라는 차별점이 확실한 작품. 또한 이 플랫폼에서 19금은 결코 장벽이 아니었고, 제작비도 타 드라마들에 비해 엄청난 가성비가 있었다. <킹덤>은 그렇게 이 플랫폼을 만나 성공적인 드라마가 될 수 있었다. 

 

<인간수업>이라는 드라마 역시 우리네 드라마 플랫폼에서는 결코 시도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지만 19금 드라마인 이 작품은 청소년들의 성매매 같은 소재가 가감 없이 등장했고, 그 파격 위에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들이 해보지 않았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낼 수 있었다. 자극적이지만 완성도는 높은 넷플릭스의 성격과도 잘 맞아 떨어진 이 작품은 그래서 우리 드라마가 가보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도 한 해의 성과로 남을만한 작품이 되었다.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시즌2가 기다려지는 작품이다. 

 

<스위트홈>은 이러한 넷플릭스여서 가능한 세계의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크리처물 자체가 드라마화된 일이 별로 우리네 드라마 현실에서는 대단히 이질적이면서 동시에 우리식의 연민의 시선이 들어간 '괴물화'라는 콘셉트는 독특하고 신박한 세계관을 그려냈다. 물론 웹툰을 통해 먼저 이 작품을 만난 시청자라면 드라마 리메이크에서 호불호가 느껴질 수는 있다. 하지만 드라마만으로 보면 <스위트홈>은 확실히 글로벌 팬덤을 만들어낼 수 있을 법한 우리네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건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그들의 로컬 전략에 맞춰 투자됨으로써 탄생하게 된 이 새로운 드라마의 세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촉발된 일이긴 하지만, 이것은 우리네 드라마가 지금껏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 같은 기성 플랫폼에 매여 있어 나가보지 않았던 세계를 이제는 탐험할 때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미 넷플릭스가 우리네 일상 깊숙이 들어왔고, 이를 통해 우리네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달라졌다. 이런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지난해 연말 연기대상을 통해 볼 수 있었듯이 갈수록 로컬에 머무는 드라마업계는 소소해지고 외면 받는 처지가 될 수 있다. 

 

물론 넷플릭스를 통해 열게 된 새로운 세계지만, 이 글로벌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 드라마 스튜디오들의 좀 더 과감한 투자와 플랫폼 다양화가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제 2의 <킹덤>, <인간수업>, <스위트홈> 같은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게 할 것이니 말이다. 이미 이 세계는 활짝 열렸고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사진:넷플릭스)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2020년 드라마 패권 경쟁, tvN·JTBC·SBS·넷플릭스였던 까닭

 

지난 2020년 지상파 3사의 <연기대상>을 들여다보면 전반적으로 지상파의 드라마 위상이 과거보다 급격히 추락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상업방송인 SBS만이 그래도 지상파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 말할 수 있지만, MBC와 KBS는 이렇다 할 성공작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드라마가 극히 적었다. 

 

먼저 SBS는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된 남궁민이 생애 첫 대상을 거머쥐게 한 <스토브리그> 같은 좋은 작품이 있었고, <펜트하우스> 같은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파괴력을 보여준 작품도 있었다. <아무도 모른다>나 <하이에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작품들이 고르게 수상을 했고, 그건 SBS가 2020년 한 해 꽤 선전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반면 <2020 KBS 연기대상>을 보면 대상을 받은 천호진이 출연했던 <한 번 다녀왔습니다>가 여자 최우수연기상(이민정), 장편 여자 우수연기상(이정은), 장편 남자 우수연기상(이상엽) 등등 10여 부문이 넘는 상을 쓸어갔고, <오! 삼광빌라> 역시 만만찮은 상들을 가져감으로써 사실상 KBS의 한해 성과가 주말드라마에 거의 집중되어 있었다는 걸 드러냈다. <바람피면 죽는다>, <출사표>, <포레스트> 같은 미니시리즈들이 있었지만, 그 존재감은 낮았다. 

 

<2020 MBC 연기대상>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박해진이 대상을 또 김응수가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꼰대인턴>과, 신성록이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카이로스>, 남지현과 이준혁에게 최우수연기상과 우수연기상이 돌아간 <365:운명을 거스르는 1년> 정도가 성과라면 성과였다. 하지만 <꼰대인턴>이 6%대 시청률에 머물렀고, <카이로스> 역시 3%대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건 MBC 드라마가 점점 대중적인 힘을 잃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드러낸다. 

 

SBS를 빼고는 사실상 소소해진 지상파 드라마들의 상황은, 드라마의 패권이 tvN, JTBC 같은 비지상파와 넷플릭스 같은 OTT로 이동하고 있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tvN은 2020년 한 해의 드라마 이슈를 거의 쓸어가다시피 할 정도로 화제작들이 쏟아졌다. 일본에서도 신드롬을 일으킨 <사랑의 불시착>을 위시해 <슬기로운 의사생활>, <청춘기록>, <비밀의 숲2>, <사이코지만 괜찮아> 같은 작품들이 큰 성공을 거뒀다. JTBC도 하반기에 주춤했지만 상반기 <이태원 클라쓰>와 <부부의 세계>가 큰 반향을 일으키며 화제를 끌어 모았다. 

 

무엇보다 2020년은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된 드라마들이 우리네 드라마의 지평을 넓히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한 해였다. <킹덤>, <인간수업> 그리고 <스위트홈>에 이르는 2020년 넷플릭스의 한국드라마들은 이 플랫폼을 통해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가 가보지 않았던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갔다. 

 

2021년은 아마도 이런 지상파에서 점점 비지상파와 OTT로 드라마의 패권이 옮겨가는 흐름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들도 이제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인지되는 상황 속에서 사실상 실제 대결은 제작사들인 스튜디오의 대결이 되어가고 있다. SBS의 스튜디오S, tvN의 스튜디오 드래곤, JTBC의 JTBC스튜디오 같은 제작사들이 그들이다. 이 제작사들은 모회사에 대한 드라마 수급은 물론이고 타 방송사, 타 플랫폼으로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연말이면 기대되곤 했던 빅이벤트로서의 지상파 연기대상은 이런 변화 속에서 과거만큼의 위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들은 플랫폼의 역할만 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 힘은 제작사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면, 좀 더 방송3사는 물론이고 비지상파, OTT까지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연말 시상식이 이제는 필요해지지 않았나 싶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넷플릭스로 간 '콜', 대본·연출·연기의 삼박자가 만든 전율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음산하기 이를 데 없는 외딴 산 속의 고택. 그 집의 낡은 전화기가 20년의 시간차를 두고 과거의 영숙(전종서)과 현재의 서연(박신혜)을 연결한다. 넷플릭스 영화 <콜>은 이 단 하나의 설정으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다룬 스릴러다.

 

본래 좋은 판타지일수록 단 하나의 룰을 통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런 점에서 <콜>은 20년의 시간의 장벽을 넘어 같은 공간에 살아가는 두 인물이 연결된다는 그 설정 하나로 기막힌 반전의 반전이 이어지는 스릴러를 완성해낸다. 과거가 바뀌면 현재가 바뀐다는 지점은 화재로 아버지를 잃었던 서연이 20년 전의 영숙에 의해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만든다. 하지만 그 영숙은 학대하던 엄마에게 자신이 살해된다는 미래의 사실을 서연을 통해 알게 되면서 폭주하기 시작한다.

 

시간의 흐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터질지 알 수 없는 영숙이 과거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서연에게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서연의 아빠를 살려내 그에게 새 삶을 살 수 있게 해줄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들을 죽여 서연의 미래를 비극 속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 결국 폭주하는 영숙에 손아귀에 붙잡힌 서연의 삶이 주는 공포감이 이 영화가 주는 쫄깃한 스릴러의 정체다.

 

<콜>은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는 설정을 통해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능한가를 그 촘촘한 대본이 보여준다. 또한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미래의 서연이 과거의 영숙을 공격하는 놀라운 상상력도 돋보인다. 게다가 그렇게 멀리 시간의 벽을 두고 있던 두 인물이 점점 가까워지며 결국 부딪치는 폭발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단선적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이 설정의 이야기는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고 다양한 변주를 이어간다.

 

과거가 바뀌면 미래도 바뀌는 그 변화들을 이충현 감독은 음산한 고택의 분위기를 표현해낸 미장센과 신비롭게까지 느껴지는 효과적인 CG 연출로 담아낸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는 고택의 분위기가 빛과 어둠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잘 연출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대본과 연출 그리고 연기라는 세 요소 중 가장 독보적인 역할을 한 부분을 꼽으라면 단연 연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미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을 통해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에너지와 전율을 보여줬던 전종서는 폭주하는 연쇄살인범 영숙을 소름끼치게 연기해낸다. 고택에 엄마에 의해 갇혀 있던 그가 그 곳을 빠져나와 동네로 달려가는 장면은 연쇄살인범의 끔찍함과 더불어 이 인물의 '자유'를 느끼게 할 정도로 복합적인 감정을 이끌어낸다.

 

즉 전종서가 연기하는 영숙은 살인자의 끔찍함과 동시에 억압에 의해 짓눌려왔던 날짐승의 자유를 표현해낸다. 전종서가 아니라면 과연 가능했을까 싶은 에너지가 영숙이라는 인물에 의해 뿜어져 나오고 그 힘은 이 스릴러의 긴장감이 끝까지 힘을 잃지 않는 이유가 된다.

 

단연 이 작품의 힘이 전종서에게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의 상대역으로서 서연 역할을 연기한 박신혜의 변화도 주목할 만한 연기였다. 처음 시작점에는 우리가 늘상 봐왔던 선하고 밝은 이미지의 박신혜로 등장하지만, 폭주하는 전종서의 에너지와 더불어 박신혜도 그 본래의 이미지를 찢고 나와 폭주하는 에너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신혜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던가 싶은 순간이 주는 카타르시스라니.

 

<콜>은 코로나19 때문에 극장 개봉이 아닌 넷플릭스 독점 방영을 선택했지만, 만일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더 뜨거운 입소문으로 화제가 됐을 작품이다. 촘촘한 대본과 효과적인 연출 그리고 독보적인 연기의 삼박자가 보는 이들에게 만족스런 전율을 주는 영화였을 테니.(사진:넷플릭스 영화 '콜')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설국열차', 공개된 2회분에 아쉬움 남은 까닭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설국열차>가 이제 달리기 시작했다. 워낙 봉준호 감독의 원작 영화가 만들어낸 기대감이 커서인지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만으로도 전 세계적인 관심과 기대를 끌어 모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시즌1 10편 중 공개된 1,2회에 대한 반응은 영화처럼 호평 일색은 아니다. 어째서 이런 호불호가 나뉘게 되었을까.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그 세계관이 대단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머리 칸, 꼬리 칸 같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용어들이 유행어처럼 쓰일 정도로 회자되었던 건, 빙하기를 맞이한 지구에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만들어져 무한궤도를 달리는 열차에 담겨진 은유가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화된 세계의 계급 풍경을 그려냈기 때문이었다.

 

머리 칸에 사는 이들이 호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반면, 꼬리 칸에 사는 이들은 노예처럼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철저히 통제되어 살아간다. 결국 <설국열차>는 파국을 향해 가는 지도 모른 채 무한 질주하는 자본주의의 민낯에 드리워진 부조리한 계급구조를 적나라하게 꼬집는 영화로서 전 세계인들의 열광을 얻어낸 바 있다.

 

그래서 영화는 그 특성 상 꼬리 칸에서 머리 칸으로 향해 가려는 이들의 '혁명' 과정을 피 튀기는 투쟁을 통해 그려내면서, 마치 창조주인 양 설국열차에 군림하며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윌포드라는 존재의 실체를 찾아간다. 그러니 그 액션과 드라마와 갈등들이 온전히 부조리한 시스템과의 대결로 그려지는 통일성을 만든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작품성과 대중성이 어우러지는 작품이 된 건 바로 이런 메시지와 재미가 통일성 있게 만나는 지점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영화와는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다. 시즌1 10부작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좀더 다양한 이야기들의 변주가 필요하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만들어진 <설국열차>에는 살인사건과 이를 추적하는 강력계 형사라는 어찌 보면 장르물에서 상투적으로 쓰이는 소재가 들어가 있다.

 

3등 칸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적하기 위해 이 열차에서 유일한 강력계 형사인 레이턴이 꼬리 칸에서 소환된다. 그는 사건을 추적해나가면서 동시에 윗 칸들의 구조와 시스템을 파악하려 하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엔진을 장악해 꼬리 칸이 희구하는 혁명을 이루려 한다.

 

달리는 설국열차 안에 식량을 생산하는 칸들도 있고 유흥가도 있으며 마치 바다 속 같은 수조에서 물고기를 잡아 요리를 하는 그런 풍경들도 담겨져 있어 확실히 이 독특한 세계관이 주는 묘미는 영화만큼 시선을 잡아끄는 면이 있다. 만일 영화 원작이 없이 이 드라마를 처음 보게 됐다면 상당히 충격적이고 신선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하지만 영화를 봤던 시청자라면 원작이 가진 이 독특한 세계관을 통해 담아내는 부조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 같은 부분이 전형적인 스릴러 형사물의 틀이 더해지면서 약화된 데 대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치밀하게 액션 하나를 담아내면서도 그 안에 세계에 대한 풍자와 유머 그리고 메시지까지를 담는 '봉테일'이 아쉽게 느껴진다는 것.

 

다만 아직 2회분이 공개됐을 뿐이라 이를 통해 전부를 판단하긴 섣부른 일이다. 매주 월요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설국열차>가 어떤 방향으로 달려갈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초반의 이런 다소 아쉬운 부분들을 이 드라마는 과연 조금씩 채워나갈 수 있을까.(사진:넷플릭스)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인간수업’, 넷플릭스라서 허용되는 용감한 드라마라는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은 한 마디로 파격적인 드라마다.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지만 19금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렇다. 그것은 고등학생들이 등장하지만 <인간수업>이 그 흔한 청춘물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는 청소년 성매매 어플을 통해 돈을 버는 오지수(김동희)와 실제 성매매를 하는 여고생 서민희(정다빈) 그리고 오지수의 이 비밀을 알게 되면서 그 범죄의 세계 속으로 깊숙이 함께 들어가는 배규리(박주현) 같은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다.

 

고등학생들이지만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서 봐왔던 그런 모습은 발견하기 어렵다. 이들이 처한 현실은 한마디로 살풍경하다. 시종일관 욕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살고, 학교에서는 평범해 보이지만 방과 후가 되면 저마다 돈을 벌기 위한 살벌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어눌하면서도 돈다발에 대한 욕망에 휘둘리며 폭주하기도 하는 오지수라는 인물은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토록 순한 양처럼 보이는 아이가 그토록 험한 세상과 매개된 건 스마트폰 어플 같은 한 단계의 차폐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게임이라도 하듯 어플을 통해 저쪽 성매매와 범죄의 세상에 개입하지만, 본인이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결국 이 평범한 고등학생의 일상과 저 범죄의 세계 사이를 매개하며 차단해줬던 스마트폰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오지수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 속에 빠져버린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고등학생들은 이 같은 범죄의 세계 속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 걸까.

 

그것은 ‘어른의 부재’ 때문이다. 오지수는 부모가 부재하다는 걸 숨긴 채 학교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 성매매 어플을 운용한다. 이런 사정은 꽤 잘 나가는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부모를 두고 있는 배규리도 마찬가지다.

 

배규리의 부모는 자신의 회사에서 연습생들을 마치 상품 다루듯 하는 것처럼, 자식도 그렇게 다룬다. 그런 삶에서 배규리는 숨 쉬는 게 토가 나올 것 같다고 말한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숨이 쉬어지는 그런 삶이 그에게는 무의미하고 심지어 구토가 난다는 것. 이것은 부유한 가정에서 살아가는 배규리가 그와는 너무나 다른 거친 세계 속에 발을 담고 있는 오지수와 ‘동업자(?)’가 되는 이유다.

 

이 드라마에서 어른들은 아이들까지 착취해 가는 그런 인간들이다. 그래서 오지수와 서민희, 배규리 같은 아이들의 치열해지는 삶은 마치 그 어른들과의 사투를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이 드라마에 유일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왕철(최민수)이라는 인물이다. 만만찮은 과거를 숨기고 있는 이 인물은 폭력이 난무하는 그 범죄의 세계 속에서 그나마 이 아이들을 드러내지 않고 신경 쓰는 어른이다.

 

아마도 <인간수업>은 최근 벌어진 충격적인 n번방 사건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n번방 사건이 온 세상에 드러났을 때 아이들보다 더 충격을 느낀 건 어른들이었다. 공공연하지는 않지만 어느새 아이들이 그런 세상에 들어가 있을 때,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결코 그런 세상에 있지 않을 거라 애써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 부인은 결국 부재를 낳고 그 부재는 n번방 같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이어진다. <인간수업>은 그래서 마치 우리가 부인했지만 이미 벌어지고 있는 그런 세계를 불편해도 있는 그대로 꺼내놓은 것처럼 보인다.

 

국내 드라마에서는 결코 보지 못했던(어쩌면 볼 수 없었던) 이 파격적인 이야기가 거침없이 전개되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지금의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에서 이 드라마가 제작되었다면 아마도 그 결과는 지금 같은 파격과는 거리가 먼 두루뭉술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인간수업>은 그런 면에서 우리네 드라마도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용감하게 꺼내놓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다. 첫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진한새 작가의 거침없는 필력과 김진민 감독의 섬세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울 정도로 몰입감을 만들어준 젊은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태원 클라쓰>에서의 연기를 잊게 만드는 김동희, <반의반>은 그가 가진 연기의 반의반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낸 박주현, 어린 나이부터 연기를 해왔고 드디어 열매를 맺은 듯 보이는 정다빈 그리고 이 모두를 끌어안는 블랙홀 같은 강력한 마력의 연기를 보여준 명불허전 최민수까지. <인간수업>은 이들에게는 그 연기를 확장해준 일종의 ‘연기수업’이기도 했다.(사진:넷플릭스)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넷플릭스가 바꾸는 영화의 풍경들

 

2020년 골든글로브상이 발표한 후보들을 보면 단연 넷플릭스의 선전이 눈에 띈다. 특히 영화는 도드라진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맨’>,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두 교황>이 영화 작품상 드라마 부문 후보에 오른 것. 드라마 부문 작품상 다섯 편 중 세 편이 넷플릭스 영화라는 건 지금 세계 영화판에 넷플릭스가 가진 영향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건 이들 작품들이 가진 새로운 특징들이다. 사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특징은 극장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점점 더 효과에 집중하고 실감나는 영상과 음향을 강조하면서 거기 걸리는 영화들도 그 특징에 맞게 변화한 면이 있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른바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그래서 극장을 하나의 놀이공원이자 체험관처럼 만드는 극장용 영화들로 관객들을 끌어 모았다.

 

그러다 보니 영화 고유의 진중한 스토리텔링이나 미장센 같은 것들보다 효과에 집중되는 면들이 강했다. ‘볼거리 영화들’이 많아진 이유다. 하지만 <아이리시맨> 같은 영화를 보면 마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 그리고 조 페시, 하비 케이틀 같은 어찌 보면 자신의 영화적 아이콘들을 한 자리로 끌어 모아 “본래 영화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주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이 영화는 무려 런닝타임이 209분이나 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저 볼거리가 만드는 극장용 몰입감과는 너무나 다른.

 

<결혼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사랑했지만 작은 균열이 차츰 거대해지면서 파경을 맞게 된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결혼과 이혼, 사랑, 가족 등에 대한 의미들을 찬찬히 담아낸다. 대단히 극적인 사건들이 담겨지진 않지만 이혼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들이 굉장한 폭발력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사실 <아이리시맨>이나 <결혼 이야기>는 극장용 영화로 본다면 사실 기획되기가 쉽지 않고 또 나아가 대중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애매한 작품들이다. 그건 작품이 가진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극장이라는 공간과 거기서 관객들이 요구하게 된 걸맞는 영화의 틀이 이들 영화와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극장용 영화와 넷플릭스 같은 OTT에 세워지는 영화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런닝타임이다. 사실 <아이리시맨> 같은 3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영화는 아무래도 극장에서는 부담스럽다. 물론 최근 들어 극장에서도 런닝타임이 긴 영화들이 세워지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몇 편의 에피소드로 나눠진 영화들도 상영되었지만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 블록버스터였다. 충분한 볼거리가 제공되기 때문에 한 편에 마무리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즐거움만으로 상영이 가능했던 것.

 

하지만 <아이리시맨> 같은 블록버스터라기보다는 긴 이야기에 가까운 영화는 얘기가 다르다. 어찌 보면 <아이리시맨>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건 넷플릭스처럼 집에서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극장은 어느 정도 거기에 적합한 러닝타임을 요구한다. 너무 짧아도 애매하지만 너무 길어도 성공이 어렵다. 그래서 한 시간이 살짝 넘는 정도의 중편 영화들은 극장에서 세워지지 않아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경향도 생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내 몸이 사라졌다> 같은 80분짜리 영화는 극장만이 플랫폼이라면 만들어지기 애매한 작품이다.

 

넷플릭스는 한 때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방영하며 멀티플렉스와 한 판 갈등을 일으킨 적이 있다. 멀티플렉스가 영화를 걸어주지 않은 것. 하지만 최근 들어 멀티플렉스들은 넷플릭스 영화들을 하나 둘 걸기 시작했다. 물론 오래 걸어놓거나, 상영관을 많이 잡지는 않지만 그래도 외면할 수 없는 좋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마치 멀티플렉스가 그 특성상 만들어온 볼거리 경향을 이제는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에 맞춰진 영화들이 조금씩 보완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그 화려한 효과들을 보여주는 영화에 도취되어 잠시 잊고 있던 영화 본래의 맛을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오히려 복원해내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사진:넷플릭스)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동백꽃’은 어떻게 기적을 만들었을까

 

결국은 작품인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드라마의 규모는 성공과 직결되는 요소로 꼽히기 시작했다. 몇 백 억이 들어간 드라마들이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기적 같은 성공을 거둔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면 역시 작품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화려한 외형이나 규모가 아니라.

 

옹산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동백(공효진)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룬 <동백꽃 필 무렵>은 멜로드라마와 코미디로 경쾌하게 시작하지만, 까불이라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면서 추리극과 스릴러 장르를 껴안았고 그를 잡기 위한 반전의 반전 스토리가 이어졌다. 여기에 어린 시절 동백을 버리고 떠났다 다시 찾아온 엄마 정숙(이정은)의 이야기는 가슴 먹먹한 가족드라마를 보여줬고, 동백과 그 엄마를 챙기고 지키려는 옹산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휴먼드라마의 면면을 더해줬다.

 

사실 장르가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이처럼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갖고 있다는 건 드라마가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달달한 멜로와 빵빵 터지는 웃음 뒤에 소름끼치는 스릴러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추리가 적절히 섞였고,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는 보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결국 <동백꽃 필 무렵>이 한 이야기는 사회적 잣대에 의해 편견어린 시선 때문에 위축된 삶을 살아가는 그 어떤 존재들도 모두 저마다 그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왔고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동백과 그 엄마 정숙이 행복하게 다시 살 수 있기를 시청자들을 바랐고 옹산 사람들도 바랐다. 이 두 지점이 맞닿은 곳에서 이 드라마의 커다란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화려한 도시의 이야기도 아니고, 눈 돌아가게 모든 걸 갖춘 멋들어진 캐릭터들의 이야기도 아닌 시골 마을의 촌스러운 캐릭터와 그들이 엮어가는 이야기가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말했듯이 그저 일어나는 기적은 없다. 그 기적은 잘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겹쳐져 일어나는 결과일 뿐이다.

 

그 기적의 중심점에 있는 인물은 단연 이 작품을 쓴 임상춘 작가다. 이미 <쌈, 마이웨이>에서부터 남다른 감수성으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이 작가는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확고한 자기 세계를 드러냈다. 소외되어 시선조차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어느 들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동백꽃을 피워내는 볕 같았다.

 

그렇게 볕을 받아 연기자들의 연기가 피어났다. 동백 역할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은 공효진과 ‘촌므파탈’이란 신조어에 걸맞는 연기를 보여준 강하늘, 엄마 역할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이정은과 고두심, ‘옹벤져스’라 불린 옹산 아주머니 역할을 맛깔나게 연기해낸 김선영, 김미화, 이선희, 백현주, 찌질한 남편과 걸크러시 아내 케미로 사랑받은 오정세, 염혜란, 인생캐릭터 만난 손담비에 시골 파출소장으로 큰 웃음을 줬던 전배수, 미워할 수 없는 아빠 역할의 김지석과 관종 역할의 지이수 그리고 이 드라마의 빼놓을 수 없는 미친 존재감 필구 역할의 김강훈과 마지막 부분에 빛을 발했던 까불이 이규성과 그 아버지 신문성까지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어디 하나 치우치지 않고 내려 쬐는 공평한 볕처럼 작가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많은 옹산 사람들의 마음들이 모여 까불이를 잡고 동백의 어머니를 살려내는 기적을 만들었듯이, 작가를 위시해 연출자, 연기자와 스텝들까지 그 마음이 하나가 되어 드라마를 살려내는 기적을 만들었다. 사실 KBS 드라마는 그간 너무 깊은 부진을 겪었고 그래서 좀 더 강한 대작들의 지지를 받아야 회생할 수 있을 것 같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동백을 지킨 건 동백 자신이었던 것처럼, KBS 드라마는 KBS적인(작가도 연출자도 또 스토리까지도) 힘으로 자신을 지켜냈다.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 기적은 결국 화려한 외형이나 외부의 힘이나 규모가 아닌 사람이 만들어낸다는 걸 <동백꽃 필 무렵>은 보여줬다.(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넷플릭스 박나래의 ‘농염주의보’와 국내 코미디 현실

 

“세상의 남자는 둘로 나뉩니다. 저랑 잔 남자, 저랑 잘 남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는 스탠드업 코미디다. 박나래 혼자 무대에 나와 마이크 하나 들고 한 시간 동안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19금으로 보기가 제한될 정도로 수위가 높다.

 

사실 수위라는 것은 보는 이의 느낌에 따라 달리 느껴질 수 있다. 그래도 이런 스탠드업 코미디의 맛을 현장에서 봤던 분들은 좀 더 높은 수위의 토크를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런 분들에게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는 그래도 순화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19금 스탠드업 코미디를 경험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세게 느껴질 수 있다.

 

박나래는 무대 위에서 거침이 없다. ‘섹스’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섹스’를 연상시키는 농담으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박나래의 19금 토크는 그래서 “기한84와 하지 못했다”는 말로 빵 터트린 후, “속 깊은 대화를 하지 못했다”고 뒤집어놓는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다.

 

흥미로운 건 그 웃음에서 어떤 해방감이나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그간 어디서도 쉽게 꺼내놓지 못해 마치 금기시되어 있는 말들을 공공연하게 꺼내놓는 것이 주는 해방감이다. 욕도 등장하고, 과감한 성적인 소재의 농담들도 마구 꺼내진다. 하지만 그것은 불쾌감을 주기보다는 속 시원한 해방감으로 다가온다. 그 수위 높은 농담에 객석에 남녀를 불문하고 성인들이 같이 깔깔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은 어째서 우리에겐 이런 무대가 금기시되다시피 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같은 19금 스탠드업 코미디는 불가능했을 게다.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우리에게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형식 자체가 불모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굳이 찾아보자면 우리에게 스탠드업 코미디의 전통은 저 마당극에서 재담으로 행인들을 끌어 모으는 이에서 찾을 수 있을 게다. 그만큼 마이크(말) 하나만 있으면 되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웃음의 기원에 맞닿아 있을 만큼 본질적인 코미디 형식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방송이 코미디의 중심으로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스탠드업 코미디는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처음 극단에서 방송으로 온 코미디는 콩트가 중심이었고, 그 다음에는 버라이어티쇼가 중심이었다. 그러다 리얼 버라이어티로 또 리얼리티쇼로 예능의 트렌드는 움직여왔다. 거기에 혼자 서서 관객들을 웃기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자리는 없었다. 과거 <유머일번지> 시절에 시사개그의 일인자였던 고 김형곤씨 같은 개그맨이 스탠드업 코미디를 클럽에서 시도해오긴 했지만 미국처럼 하나의 방송의 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그러니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같은 본격 스탠드업 코미디는 넷플릭스처럼 그 형식이 주류 장르가 되어 있는 플랫폼이 있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박나래의 농염주의보>가 넷플릭스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또 한 가지 이유는 역시 우리에게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19금 코드 개그라는 소재 때문이다. 국내의 방송 콘텐츠들은 19금 소재에 인색했던 게 사실이다. 그건 드라마도 마찬가지도 예능은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된 건 지상파 시절 그 플랫폼이 갖는 이른바 ‘보편적 시청자’ 지향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플랫폼이 다원화되어 ‘보편적 시청자’라는 틀이 하나의 허상이 되어버린 마당에 이런 스스로 한계를 지우는 제작자나 방송사의 마인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19금 소재도 이제는 지상파에서 연령 제한을 두고 방영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소재의 한계도 넘어설 수 있다. ‘성인들을 위한 콘텐츠’ 자체를 낮고 저급하게 바라보는 시각은 구시대의 소산이다. 저급이냐 고급이냐의 문제는 소재가 아니랴 콘텐츠의 완성도에서 판가름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같은 19금 스탠드업 코미디는 넷플릭스가 아니면 공공연히 볼 수 있는 곳이 없다. 물론 콘서트를 직접 찾아가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겠지만, 우리네 방송에서도 과감하게 보여주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최근 국내 개그와 코미디업계가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그건 시대가 바뀌고 있는데도 여전히 과거 지상파 시절의 틀 안에서 개그와 코미디의 영역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업계도 방송사도 한번쯤 고민해볼만한 문제다.(사진:넷플릭스)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