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348)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5133)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Total13,493,379
Today160
Yesterday453

‘너를 만났다’, 기술이 감각이 아닌 마음에 닿을 때

 

“우리 다음에 만나면 많이 놀자. 나도 엄마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나연이의 그런 목소리를 엄마는 얼마나 듣고 싶었을까. 엄마는 꾹꾹 눌러놨던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나연아 엄마는 나연이 정말 사랑해. 나연이가 어디에 있든 엄마 나연이 찾으러 갈 거야. 엄마는 아직 해야할 일이 있어서 그것들 다 마치고 나면 나연이한테 갈게. 그 때 그 때 우리 잘 지내자. 사랑해 나연아.” 아이는 졸립다며 옆에 있어 달라 말했고 엄마에게 사랑한다며 잠이 들었다.

 

MBC 특집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서 나연이 엄마 장지성씨는 그렇게 다시 나연이를 만났고 또 보냈다. 그건 마치 잠시 동안의 ‘호접몽’ 같았다. VR 기술로 재현된 나연이의 목소리와 동작들이 엄마와 그 가족들에게 선사한 작은 선물이었다. 나비의 형상으로 나타났던 나연이는 엄마와 손을 포개면서 함께 하늘 위로 올라갔고 그 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 나연이와 잠깐 동안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는 다시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

 

어찌 VR 기술로 재현된 영상 속 나연이가 진짜 나연이와 같을 수 있을까. 하지만 엄마의 촉촉이 젖은 눈은 그 경험이 특별했다는 걸 말해줬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장지성씨는 “네”라고 답했다. 그는 나연이와 그 VR 속 아이가 다른 느낌이었지만 멀리 가면 또 나연이 같았다고 했다. 가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어쩌면 아이를 다시 만나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으로 채워졌을 게다.

 

4년 전 열 때문에 감기인 줄 알고 병원에 갔다가 혈액암 판정을 받고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나연이. 사랑했던 딸이 그렇게 속절없이 가버린 사실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엄마는 물론이고 가족들 모두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나연이가 살아있었다. 하늘나라에 먼저 갔어도 여전히 핸드폰 속 영상 속에서 노래하고 웃고 뛰어다니는 나연이였다.

 

<너를 만났다>가 VR로 나연이를 재현해내면서 고민한 건 사람이 누군가를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평상시 미역국을 좋아해서 그릇째 마신 후 엄지로 따봉을 보냈던 나연이의 모습이나, 귀엽게 얼굴 옆으로 브이 포즈를 했던 모습, 뛰어다닐 때의 걸음걸이나 양손으로 얼굴에 꽃받침을 하며 포즈를 취하던 나연이의 모습 등등. 그런 작은 것들이 나연이라는 존재에 담긴 기억들이었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도 여전히 나연이는 살아있었다. 나연이의 VR을 반대했던 오빠 재우는 짐짓 씩씩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지만 너무나 착하고 항상 웃었으며 자기랑 가장 친했던 나연이를 생각하면 슬퍼진다고 했다. 단 하루도 생각 안 한 적이 없다고. 둘째 민서는 나연이에게 많이 못해줘서 미안하고 얘기하고 싶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러면서 나연이가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할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나연이가 마지막 순간에 병동에서 입었던 옷과 나연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태웠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엄마가 널 꽉 붙들고 있어서 네가 혹시나 힘들까 걱정하면서도 엄마 살자고 붙들고 놓지 못한 거 미안해. 언니, 오빠, 소정이 모두 다 건강하게 잘 키우고 나연이만 바라볼 수 있을 때 너에게 갈게.” 엄마는 나연이에게 하고픈 말들이 많았다.

 

VR로 다시 만나는 스튜디오에서 “나연아 어딨니”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카메라를 드리우고 있던 제작진들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것은 VR이라는 기술을 통한 재현이지만 이를 통해 전해지는 엄마의 마음은 진짜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 속에서 아이를 다시 보고 못 다한 말들을 했으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 경험을 통해 엄마도 나연이도 또 가족들도 조금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시청자들이나 제작진이 다 같았을 게다.

 

흔히 VR이라고 하면 감각에 호소하는 기술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래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실감 영상과 그로 인한 짜릿한 감각 체험이 VR이라 치부하지만, <너를 만났다>는 그것이 하나의 선입견이자 편견이라는 걸 보여줬다. 결국 기술도 어떤 쪽에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 기술이 감각이 아닌 마음에 닿을 수 있다는 걸 이 VR과 휴먼다큐를 접목시킨 프로그램은 나연이네 가족을 통해 입증해보였다. 기술도 따뜻한 온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을.(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호동과 바다’, 뻔할 수 있는 먹방 달리 보이게 만든 강호동

 

올리브 TV <호동과 바다>는 예능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표방했다. 하지만 강호동이 출연한다는 사실은 과연 다큐멘터리가 가능할까 싶은 선입견을 갖게 만든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에게 이 부분은 가장 큰 고민거리였을 게다. 지금껏 <1박2일>부터 다져온 예능의 틀이 강호동에게는 어디서든 불쑥불쑥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큰 소리로 외치는 그 모습은 <1박2일>에서 어떤 지역을 소개하는 멘트 톤을 연상케 하고 음식을 먹으며 짓는 다소 과장된 표정과 리액션 역시 그렇다. 아주 특별한 풍광 앞에서 호들갑을 떨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모습 또한 다큐멘터리의 차분함과는 사뭇 대조되는 예능적 느낌이 묻어날 테니 말이다.

 

<호동과 바다>는 그래서 자꾸만 이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라는 걸 강조하고 강호동 스스로도 다큐에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는 걸 토로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때론 너무 흥분한 강호동의 모습에서 슬쩍 다른 장면을 끼워 넣어 ‘화면 조정 중’이라는 자막이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강호동은 다큐멘터리라고 자꾸만 강조하면서도 자꾸 예능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이 프로그램이 짚어낸 독특한 지점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다큐와 예능 사이를 슬쩍 슬쩍 넘나들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맛.

 

첫 방송에서 강호동이 주문진항으로 가 그 곳에서 대방어 잡이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조업을 하는 장면은 다큐멘터리라는 그 색깔을 분명히 만들어낸다. 예능이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의 대방어떼와 이를 잡아 올리는 고강도의 노동이 펼쳐지니 말이다. 그 장면은 마치 디스커버리 채널 같은 곳에서 방영되곤 하는 원양어선을 타고 벌이는 물고기떼들과의 사투를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호동과 바다>는 독특하게도 원고지 모양으로 칸이 그려진 자막을 집어넣고, 중간 중간 들어가는 내레이션을 국악인들이 마치 판소리를 하는 듯한 톤으로 채워 넣었다. 목소리만으로도 파도를 치게도 만들어낸다는 판소리꾼들의 ‘국악 한 마당’은 독특한 자막과 어우러져 <호동과 바다>만의 톤 앤 매너를 만들어낸다. 그건 다분히 다큐멘터리적 연출미학이라 할만 하다.

 

그 위에 강호동은 자신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노동과 더불어 먹방을 선보인다. 대방어 요리 전문가가 1미터가 넘는 물고리를 해체하고 부위별로 만들어주는 요리를 한 입씩 먹을 때마다 강호동은 다큐를 강조하면서도 예능의 리액션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낸다. 굳이 다큐를 강조하고 예능 리액션을 더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전하기 위함이다. 그래도 나오는 예능 리액션은 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맛이 너무 좋아 다큐를 뚫고 튀어나오는 것이란 이야기다.

 

<호동과 바다>는 다소 뻔할 수 있는 강호동의 먹방이라는 소재를 바다와 다큐라는 소재와 형식적 틀을 빌려와 새롭게 만든 이색적인 프로그램이다. 다큐멘터리지만 그 다큐적 틀을 깨고 나올 수밖에 없는 맛의 향연. 물론 먹방만큼 음식에 대한 정보와 지식에 대한 허기가 남는 부분이 있지만, 확실히 색다른 그 톤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다큐멘터리라 여겨진다.(사진:Olive)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땐뽀걸즈’, 혹독한 현실 우리에게 판타지가 필요한 까닭

KBS 월화드라마 <땐뽀걸즈>가 종영했다. 종영했지만 이 작품이 남긴 여운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최고 시청률은 고작 3.5%(닐슨 코리아). 평균 시청률이 2%대지만 시청률 하나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드라마다. 올해 KBS 드라마들을 통틀어 봐도 이 작품만큼 예쁘고, 가슴을 울리게 하는 감동과 함께 삶의 의미까지 담아낸 작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땐뽀걸즈>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걸까. 

실제 거제여상의 댄스스포츠 동아리와 이 동아리를 이끈 이규호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드라마화한 것이기 때문에 비교점이 만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실제 사실을 이기는 허구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래서 별다른 극적 구성없이 이규호 선생님의 헌신적인 교육자로서의 삶과 그가 보듬은 댄스스포츠 동아리의 아이들의 현실을 담담히 담아낸 다큐멘터리의 감동을 드라마가 그대로 재연해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드라마 <땐뽀걸즈>는 그 소재를 드라마적인 메시지로 재해석했다. 결국 다큐멘터리가 담은 메시지이기도 했지만, 드라마는 왜 거제여상에서 쉽지 않은 현실을 살아내는 이 아이들이 댄스스포츠 같은 별 현실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열심히 빠져 들었는가를 질문한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고, 대학을 간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 이 아이들은 겨우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으로 뛰어드는 걸 당연한 삶처럼 받아들인다. 

청춘이 가진 특유의 발랄함이 가려서 일견 아무 고민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하고 싶었던 일들을 스스로 접게 된 나름의 아픔들이 숨겨져 있다. 영화감독이 꿈인 김시은(박세완)이 그렇고 모델이 꿈인 양나영(주해은), 한 때는 유도 유망주였지만 부상을 핑계로 꿈을 접은 이예지(신도현) 또 본래 춤에 관심이 있고 소질도 있지만 아버지 권동석(장현성)에게 그걸 드러내지 못하는 권승찬(장동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냥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주어진 일들을 하며 살아내지만, 이규호 선생님(김갑수)은 이들에게 댄스스포츠를 통해 무언가를 이뤄내는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물론 학교를 졸업시키기 위한 선생님의 유인책이지만 댄스스포츠 같은 전혀 현실에는 무익하다 싶은 일이 아이들을 변화시킨다. 그 순간 아픈 현실을 잠시 잊고 빠져들게 되고, 그렇게 대회에 나가 노력을 인정받으면서 그것이 잠시 간의 판타지였을 지라도 그들이 앞으로 살아나가는데 오래도록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복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땐뽀걸즈>는 애초 다큐멘터리가 보여줬던 거제여상의 댄스스포츠반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확장되어 ‘우리는 왜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꿈을 꾸는가’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 영화감독이 꿈인 김시은이 대학 면접에서 왜 영화를 하려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내놓은 답변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려는 보편적인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세상에서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고 싶어서요. 영화는 가짜잖아요. 현실은 진짜고. 전 사람들이 현실을 잊기 위해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저는 그렇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작업 자체가 환상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 제가 더 좋아하는 것도 있고. 뭐 그 환상이 가짜고 사탕발림에 불과하다고 해도 전 그거를 보는 사람들이 순간만큼이라도 행복을 느끼면 그 영화만큼 진실한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순간 만큼은요. 그래서 저는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고 싶어요.”

김시은이 말한 건 다름 아닌 현실에 치여 꿈꾸지 않던 자신들을 댄스스포츠라는 환상(?)을 통해 순간만이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이규호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무익한 환상처럼 보였지만 그 순간의 행복들이 있어 그 어려운 현실들을 버텨내고 통과해낼 수 있었다는 것. 그건 어쩌면 이 작은 드라마가 서 있는 지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현실적으로는 낮은 시청률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꿈을 꾸었던 그 순간들만큼은 충분히 행복감을 주었던 드라마가 바로 <땐뽀걸즈>이기 때문이다. 꿈은 사치라고 말하는 현실에 꿈이 있어 비로소 버텨낼 수 있다고 말해주는.(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장범준, '벚꽃 좀비' 현상은 우연도 기적도 아니었다

“이 영화는 좀비물입니다.” 장범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영화 <다시, 벚꽃>의 유해진 감독이 던진 농담에 시사회장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이른바 ‘벚꽃 좀비’라고도 불리는 장범준의 ‘벚꽃 엔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MBC <휴먼다큐 사랑>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유해진 감독은 TV다큐멘터리가 일회적인 속성을 갖고 있어 그 아쉬움 때문에 영화에 도전하게 됐다며 <다시, 벚꽃>이 쉽게 지지 않고 계속 피어나는 그런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그 농담에 섞었다. 

사진출처:영화<다시, 벚꽃>

우리에게는 매년 봄이면 찾아오는 시즌송, ‘벚꽃 엔딩’의 주인공 장범준. <다시, 벚꽃>은 버스커버스커로 데뷔했던 장범준이 솔로로 1집을 낸 후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나서 2집을 통해 다시금 우뚝 서는 그 과정을 담았다. <휴먼다큐 사랑>에서 유해진 감독이 보여줬던 인물에 대한 충실함은 고스란히 이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유해진 감독은 장범준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그가 어떻게 음악들을 만들었고,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채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으며, 그러면서도 타인들과 음악을 통해 공감하고 소통해왔는가를 담담히 영상에 담아넣었다. 

장범준에게 음악이란 일상 그 자체였다. 그가 ‘벚꽃 엔딩’이나 ‘골목길 어귀에서’ 같은 곡들을 만든 건 애초부터 앨범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일상의 기록으로서 마치 일기를 쓰듯이 그 때 그 때 느꼈던 감성들을 노래로 적어뒀을 뿐이었다. 영화 속에서 장범준이 자신이 예전에 자취했던 학교 근처를 둘러보며 노래의 배경이 됐던 장소를 이야기하는 대목은 그에게 음악이 얼마나 삶 그 자체인가를 잘 보여줬다. 

떠오르는 음률을 입으로 읊조리고 그것을 즉석에서 기타로 치면서 노래를 만들어왔던 그가 보여준 음악은 ‘음학’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한 작곡자들이 그 틀에 얽매이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과 달리, 장범준은 그 틀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렇게 ‘벚꽃 엔딩’이나 ‘여수 밤바다’ 같은 명곡을 만든 그는 이제 음계를 공부하고 더 정교한 연주를 위해 기타를 연습한다. 이전에는 다른 이들의 연주에 자신이 노래를 했지만, 2집 앨범을 준비하는 그는 스스로 기타를 치며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른다. 함께 2집 앨범을 작업한 프로페셔널 세션들은 그의 기타 실력이 굉장히 늘었다며 이제 그 누가 대신 그 기타를 연주하기 어려운 단계라고 말했다. 그만이 자신의 곡에 대한 느낌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음악을 다시금 공부하게 된 까닭은 그러나 틀에 갇히기 위함이 아니다. 좀 더 정성을 들인 노래를 선보이기 위해 다른 음악인들과 더 잘 소통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뿐이다. <다시, 벚꽃>이 보여주는 건 그래서 우리가 흔히 쉽게 젊은 날의 행운처럼 장범준의 ‘벚꽃 엔딩’을 ‘벚꽃 좀비’나 ‘벚꽃 연금’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에 대한 질문처럼도 보인다. 물론 그런 표현에 장범준은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어 그 기분 좋음을 보여주지만, 이 다큐 영화가 보여주는 그의 남다른 노력은 이런 그의 성취가 그냥 이뤄진 게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영화는 그의 일상과 음악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기분 좋은 이야기들을 그저 담담히 담아낸다. 하지만 영화 곳곳에 흐르는 그의 음악들은 이 담담한 이야기들과 어우러져 때론 웃음을 주고 때론 먹먹한 감동을 전한다. 무엇보다 음악이 어떻게 탄생하고 완성되어가며 그것이 타인들과 어떻게 소통되는가를 느끼며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거기 장범준이라는 아티스트가 어떻게 탄생했고 성장하고 있는가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그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2집 앨범을 자신의 20대 마지막을 담는 노래라고 말했다. 하지만 30대에도 또 40대에도 그는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할 것이라는 걸 분명히 했다. 일상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걸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며 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 그것이 장범준의 벚꽃이 지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벚꽃은 그저 때 되면 피어나는 기적이 아니다. 매순간 피어나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았기에 다시 피어날 수 있는 결과일 뿐이다. 아직 피어나진 않았지만 언젠가 피어날 수도 있는, 모두에게 존재하는 저마다의 벚꽃을 위한 헌사. 그것이 <다시, 벚꽃>이 장범준을 통해 하고픈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청춘은 물론이고 모든 마음의 청춘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이들에게 ‘좀비물’이 되기를 기원한다.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KBS스페셜> ‘’, 죽음이 삶에 건네는 이야기

 

망자는 오히려 남은 자들의 등을 두드린다. 그래서일까. 남은 자들도 망자가 가는 그 길에 하는 이야기들은 걱정하지 말라”, “사랑한다”, “다시 만나자”, “영원히 잊지 않을께” “잘못했어같은 말들로 채워진다. 물론 그 가는 길이 쉬울 리 없고 보내주는 마음 역시 선선할 수 없다. 화장되어 나온 고인의 마지막 한 자락을 끝까지 껴안으며 아직도 이렇게 따뜻한데...”라고 믿기지 않는 마음을 털어 놓는다.

 

'KBS스페셜(사진출처:KBS)'

도대체 <KBS스페셜> ‘이 굳이 죽음을 물어본 건 무슨 의도였을까. 이 특집 다큐멘터리는 PD가 누나의 말기 암 소식을 접한 뒤 절망적인 상황에서 죽음을 생각하면서 시작됐다. PD는 우리나라 최초의 호스피스 병동인 갈바리 의원을 찾아 그 곳의 수녀님들에게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늘 죽음 옆에서 임종자를 돌보는 그들이라면 어떤 해답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갈바리 의원에는 마지막 임종을 맞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곧 다가올 마지막을 알면서도 밝게 웃었고 자신을 걱정하기보다는 남은 가족들을 더 걱정했다. 보내는 이들은 그 망자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가를 새삼 확인했다. 그들은 유일하게 자신을 걱정해준 사람이었고, 이 짧은 여행을 함께 해온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태어나게 해준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발을 재게도 놀려 일하고 또 일을 해 우리를 먹고 살게 해준 분이었다.

 

육남매를 낳아 농사지으며 두부 만들고 콩나물 키워 팔고 오징어, 명태, 배 따서 품삯으로 받아온 곡물과 어물로 저희 배를 채워주시느라...” 망자 앞에서 자식은 말문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 것인가. 자식들에게 떠난 부모는 천사였다. 고생만 하다 가신 천사. 그래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밖에는 해줄 수 없었다.

 

갈바리 의원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임종자를 편안하게 인도해주신 에디냐 수녀는 죽음을 묻는 PD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부정한다고 해서 죽음이 안오는 거 아니거든요. 물질이나 명예나 이런 걸 좇기보다는 본인이 살고 싶은, 진정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것을 좀 더 깊이 생각한다면 좀 더 보람 있는 삶을 살고 나중에 돌아가실 때 후회가 적은 삶이 되지 않을까...”

 

또 스텔라 수녀는 말했다. “삶은 개떡같이 살다가 잘 죽을 수는 없거든요. 왜냐하면 삶하고 죽음은 같이 붙어 있어서 그래서 삶을 잘 살아야 죽음도 잘 사는 것 같아요.” 늘 옆에서 사멸해가는 생명의 불씨를 봐온 박희원 갈바리 의원 진료원장은 죽음이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죽음 앞에 한번 서 보면 내 삶이 어떻구나가 보이잖아요. 그래서 죽음에 비춰봤을 때 내 인생에 이게 중요하겠구나, 중요하지 않겠구나.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좋겠구나, 안 하는 게 좋겠구나. 이건 나중에 후회 하겠구나, 이런 것들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거울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살면서 종종 죽음이라는 거울에 비춰보는 게 필요하지 않은가...”

 

로사 수녀는 죽음 앞에 겸허해지는 삶을 이야기했다. “결국 우리가 아무것도 지니고 갈 수 없다는 진실을 우리는 외면하고 많이 살았던 것 같고 하나하나 버리는 습관, 자세로 살아갈 때 즐거운 마음,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롭게 누리면서 우리의 인생도 이제는 내 마지막 목적지에 도달했구나 라고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자세로...”

 

정말 마지막을 보내는 분들은 의외로 담담하고 평안해 보였다. 그들은 그 끝에서 우리네 삶에 진정 소중한 것들이 무엇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 끝이 있어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긍정하고 있었다. 결국 절망 속에서 PD는 죽음에 대해 물었지만 그 답은 삶의 길로 돌아왔다.

 

<KBS 스페셜> ‘은 왜 죽음의 의미를 물었고 그것을 알고자했을까. 특히 이 다큐멘터리가 지금의 대중들의 마음을 파고든 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그것은 죽음을 알아야 진정한 삶을 알 수 있다는 취지에서였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힘겨움과 답답함과 또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에 의해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받는 이 많은 일들이 결국 이 질문 자체를 던져보지 못한 삶의 부박함에서 비롯되는 것일 지도 모른다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본격 구걸 리얼리티, <한끼줍쇼>의 따뜻한 웃음

 

본래 좋은 기획은 한 줄로 끝난다고 했던가. JTBC에서 새롭게 신설된 예능 프로그램 <한끼줍쇼>는 제목 하나가 콘셉트의 전부다. 숟가락 하나씩 들고 지정된 동네에 가서 저녁 한 끼를 구걸(?)’하는 것. 너무 단순한 콘셉트라 뭐 대단한 이야기가 나올까 싶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 단순함 속에는 의외로 이 프로그램의 꽤 파괴력 있는 재미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끼줍쇼(사진출처:JTBC)'

재미는 이 간단해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을 하는 주인공이 이경규, 강호동이라는 점이다. 방송 스스로 자인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 때 예능의 신이라 불렸고, ‘국민 MC’라 불렸던 그들이 아닌가. 그래서 방송 시작에만 해도 이경규는 너무 쉬운 일이라며 이경규라는 이름만 얘기해도 한 끼는 뚝딱 해결할 수 있다며 한 끼가 아니라 세 끼를 챙기겠다는 허언(?)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망원동 낯선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일 자체가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오고 심지어 개그맨 이경규입니다라고 반복해서 얘기해도, “그런데요?”라는 어딘지 무덤덤한 리액션들만 돌아온다. 이름만 대면 뭐든 다 될 것 같았던 형 이경규가 한 끼는커녕 문 앞에서 누군지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굴욕을 당하고 있을 때, 옆에서 동생 강호동은 그걸 보고 포복절도한다.

 

천하장사 강호동입니다라는 멘트가 있어 그래도 유리할 것 같았던 강호동 역시 굴욕을 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문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친히 문밖으로 나와 준 망원동 주민 분에게 사정을 하지만 저녁 한 끼 같이 먹는 일은 의외로 어렵다. 스스로 정한 저녁 8시 마감까지 결국 그 한 끼를 해결하지 못한 이경규와 강호동은 제작진에게 받은 용돈에서 차비를 쓰고 남은 돈으로 편의점에서 그 동네에 사는 여고생들과 조촐한 한 끼를 갖는다.

 

역시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인지 이경규와 강호동의 조합은 이 단순한 콘셉트에서 첫 회부터 그 관계의 케미가 살아난다. 성격 급한 이경규가 자기 멘트만 날리고 앞서갈 때 강호동은 리액션에 진정성을 좀 담아달라고 투덜대기도 하고, 이경규가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자지러질 듯 웃음을 터트린다. 하루 종일 공복으로 돌아다닌 끝에 결국 실패하자 강호동은 이게 다 형님 때문이라며 이경규 탓으로 돌린다. 강호동은 쉴 새 없이 이경규에게 잔 펀치를 날리고 이경규는 이제는 잘 알아보지도 못해 영규로도 불리고 김경규로도 불리는 자신의 처지를 확인하며 정신이 멍해진다.

 

한 때 잘 나가던 두 사람의 쓸쓸한 처지가 웃음으로 환원되지만, 그 과정을 뒤집어 보면 어딘지 쓸쓸한 도시의 풍경들이 포착된다. 지나던 과객이 문을 두드려 한 끼를 먹고 갈 수 있었던 시대에서는 이미 한 참 멀어진 지금이다. 낯선 사람과 한 끼를 함께 한다는 건 과거에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닌 어떤 것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낯선 일이 되어 있다.

 

이경규와 강호동이 한 끼를 해결할 집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저녁 시간대의 망원동 골목길을 재발견한다. 하루의 일과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시간의 그 길이 주는 정서적인 느낌 같은 것들이 프로그램에 포착된다. 한 끼를 찾아 헤매는 콘셉트이기 때문에 공복에 예민해진 강호동이 집 안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저녁을 만드는 소리와 음식 냄새에 매료될 때, 우리는 그 시간대가 주는 정서적 허기를 똑같이 느낄 수 있게 된다. 피곤한 하루, 저녁시간, 식구와 함께 할 한 끼 밥을 찾아 돌아오는 이들의 마음 속에 있을 허기들.

 

<한끼줍쇼>는 낯선 집에서의 한 끼를 해결하는 과정이 만들어내는 의외의 재미들과 함께, 서민들의 저녁시간이 주는 정서적 풍경들과 그들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네 삶 그리고 타인이 한 끼 밥을 통해 식구처럼 다가갈 수 있다는 그런 의미들을 마치 <인간극장> 같은 휴먼다큐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본격 구걸 리얼리티라고 해야 할까.

 

특히 주목되는 건 그간 우리가 봐왔던 이경규와 강호동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을 이 프로그램들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투덜대고 버럭대는 이경규는 온데간데없고 굴욕 당하는 이경규가 보이고, 진행병(?)이 있어 뭐든 진행하려는 강호동의 모습보다는 그저 형 따라다니는 동생 같은 강호동의 모습이 보인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방송 콘셉트가 만들어낸 주목할 만한 이 변화는 향후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여놓기에 충분했다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시간탐험대3>, 조세호, 남창희, 김주호가 아쉬운 까닭

 

조세호씨 왜 <렛츠고 시간탐험대3>에 안 나오셨어요?’ 최근 유행하는 조세호 소환놀이를 빌어 tvN <렛츠고 시간탐험대3>의 게시판에는 이런 글들이 넘쳐난다. 이 프로그램의 초창기 멤버이고 조세호 특유의 억울한 표정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도 없다. 게다가 요즘 대세로 떠오르고 있어 조세호의 부재가 더 크게 느껴지는 탓이기도 하다.

 


'렛츠고 시간탐험대(사진출처:tvN)'

<렛츠고 시간탐험대>는 과거의 한 시절로 시간을 되돌려 역사적 사료에 근거한 역사 체험을 리얼하게 하는 독특한 버라이어티쇼다. 제작진들을 자못 진지하게 역사 체험을 그려내려 하지만 그것을 체험하는 출연자들은 죽을 맛이다. 아직 추운 날씨에 지푸라기 깔아놓은 감옥에서 잠을 청해야 하고, 차가운 물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해내야 하며, 심지어 엉덩이를 까고 곤장을 맞기도 해야 한다.

 

사실 누군가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은 슬랩스틱적인 웃음을 주지만 그래도 예능 프로그램이 그것을 다 담아낸다는 건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난점을 <렛츠고 시간탐험대>는 역사 체험이라는 고증을 내세워 넘어선다. 고주원이 사극에서는 장을 맞을 때 옷을 입고 맞는다고 주장했을 때, 실제로 하의를 발목까지 내려놓고 곤장 맞는 사진을 보여주기도 한다.

 

죽은 자의 검안을 위해서 엉덩이를 까고 항문을 검사하는 대목도 사실 그저 평범한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다루기 어려운 장면이다. 당시 검안 기록대로 충실히 재연한다는 명분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런 독한 설정과 장면들이 가능해진 것. 이때 사체로 등장한 김주호는 실제로 엉덩이를 내놓은 채 방송을 해야 했고 그것 때문에 주변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어찌 보면 재연이 들어간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렛츠고 시간탐험대>는 그래서 역사 체험 설정으로 들어갔을 때 그 출연자들의 리액션이 핵심이 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제대로 리액션을 받아줘야 예능이 되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는 다큐가 되어버린다.

 

새로 시작한 <렛츠고 시간탐험대3>에는 초창기 멤버였던 장동민, 유상무, 김동현과 함께 새 멤버로 한상진, 고주원, 장수원이 투입되었다. 한상진은 시작할 때 서슴없이 흙을 입에다 털어 넣는 모습으로 의지를 다졌지만 사실 스스로도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상황에서 강물에 뛰어들 때 했던 말처럼 그다지 큰 역할을 한 게 없어보였다.

 

고주원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머슴 캐릭터로 자리하면서 심지어 방송에서는 처음으로 엉덩이까지 까는 하드캐리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웃음의 리액션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장수원 역시 마찬가지다. 특유의 로봇 리액션이 있지만 그것도 <배우학교>의 출연 때문인지 과거 같은 예능의 느낌과는 조금 달라진 면모가 묻어난다.

 

사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그러니 새로이 들어온 멤버들이 적응하는 데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조연으로 여기 저기 김주호가 출연하고는 있지만 그의 존재감도 아쉽고 조세호나 남창희 같은 초창기 멤버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실 장동민과 유상무는 최근 여러 논란들 때문에 프로그램에 짐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그들의 한결같은 리액션들은 이제 조금 식상해진 느낌이다. 왜 기존 멤버를 살리려 했다면 조세호, 남창희, 김주호가 아니라 장동민, 유상무였을까. 이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에 유일하게 아쉬운 대목이다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하늘을 걷는 남자>, 이 위대한 범법에 기꺼이 공모하고픈 까닭

 

줄타기가 삶에 대한 은유라는 건 무수한 예술이 말해준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살판과 죽을 판 사이에서 장생(감우성)이 오르던 줄이 그 탄성으로 그를 하늘로 날게도 해주지만 그만한 중력으로 맨바닥에 곤두박질치게 하는 것처럼, 줄타기란 삶이 가진 비상과 추락을 모두 담아내는 소재다. <하늘을 걷는 남자>의 줄타기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아름다운 곳에 줄을 걸어 그 위를 걷고 싶었던 남자 필리프(조셉 고든 레빗)의 줄타기는 우리네 삶에서 예술적 행위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담아낸다.

 


사진출처: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

이야기는 단순하다. 사실 <하늘을 걷는 남자>라는 제목 속에 다 들어가 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실화다. 그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맨 온 와이어>라는 영화는 이미 2010년에 국내에서도 개봉됐다. 물론 흥행은 저조했지만 어쩌면 <하늘을 걷는 남자>의 흥행으로 다시 관객들의 주목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현재 다시 개봉되어 상영되고 있다.

 

그러니 <하늘을 걷는 남자>의 이야기는 스포일러랄 것이 없다. 어느 날 우연히 뉴욕의 쌍둥이 빌딩 세계무역센터의 기사를 본 필리프는 그 두 건물 사이에 와이어를 연결하고 줄타기를 하겠다는 꿈을 갖고 그 불가능할 것 같은 도전을 하나하나 실행해 옮긴다. 그리고 결국 그는 하늘을 걷게 된다. 그런데 이 제목만 봐도 딱 아는 이야기가 왜 이토록 감동적으로 다가올까.

 

물론 영화가 주는 스펙터클의 힘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무려 지상에서 4백 미터가 넘는 높이의 쌍둥이 빌딩 사이를 줄 하나에 의지해 건너고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을. 3D 아이맥스의 시대에 영화의 체험은 고스란히 관객이 그 줄을 밟고 있는 것만 같은 아찔함을 선사한다. 그 아찔함은 그리고 자유로움과 뒤섞이며 시각적 스펙터클이 단지 자극이 아닌 감동은 물론이고 나아가 어떤 깨달음에까지 나아가게 한다.

 

그 감동의 실체는 다름 아닌 예술적 행위의 숭고함에서 나온다. 그저 땅바닥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가녀린 존재인 인간이 그토록 높은 곳에 줄을 세우고 그 위에 선다는 그 행위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무모한 일이면서 돈을 벌어주는 일도 아니며 심지어 뉴욕시에서는 하지 말아야할 범법행위다. 하지만 그가 그런 범법 행위를 하려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모한다. 그들은 그 공모의 이유에 대해 스스로도 알 수 없지만 모두 같은 말을 한다. 그건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필리프는 거기에 그런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 다만 줄을 세울 아름다운 곳이 있었고 그래서 거기에 줄을 세운 후 걸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그런 예술적 행위를 함으로써 달라진 것이 있다. 뉴요커들도 싫어했던 그저 높기만 한 세계무역센터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필리프의 줄타기로서 그 건물은 어떤 상징이 되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비상하려는 욕망의 상징.

 

알다시피 그 건물은 911 테러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던 상징은 테러와 깊은 상처의 상징으로 변모했다. 물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무역센터 건물이 지어졌지만 그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아마도 그 공간에 남아있는 이 트라우마를 저 과거에 있었던 필리프의 예술적 행위를 통해 넘어서려 했을 것이다. 그것은 비극 앞에 예술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가 될 테니 말이다.

 

<하늘을 걷는 남자>라고 그 줄 위에 있던 필리프의 행위에만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하기까지 그를 뒤에서 도운 수많은 공모자들. 그들 역시 이 예술의 동참자가 되었다. 아니 그 날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그의 줄타기를 바라보며 회사도 까무룩 잊어버린 채 서서 박수를 쳤던 많은 행인들까지도 그 예술의 동참자가 된다. 예술의 완성은 결국 예술적 행위를 누군가 기억에 담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세계무역센터에서 있었던 놀라운 인간의 예술적 행위에 감탄하고 있는 우리들 역시 그 예술을 완성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그들이 했던 위대한 범법 행위에 기꺼이 마음으로나마 공모하고 있으니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5.11.04 22:48 BlogIcon 나안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뻥 거짓말

<톱밴드3>의 성공을 위한 몇 가지 제언

 

우리나라 밴드 음악이 점점 비주류로 인식되고 있는 건 안타까운 사실이다. <톱밴드>3년만의 공백 끝에 <톱밴드3>로 돌아오게 된 건 KBS라는 공영방송의 책무로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도대체 어느 방송이 이처럼 소외되고 있는 밴드 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는 프로그램을 만들 것인가.

 


'톱밴드3(사진출처:KBS)'

하지만 <톱밴드3>의 성공은 그러한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와는 무관한 일이다. 대중들은 책임감으로 프로그램을 보진 않는다. 지난 시즌 거의 1%대의 시청률을 전전했던 <톱밴드>가 아닌가. 제 아무리 기획의도가 좋고 의욕이 좋아도 그걸 프로그램으로서 잘 만들어내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지난 시즌은 보여줬다.

 

그렇다면 <톱밴드3> 역시 별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몇 가지 달라진 트렌드들을 읽어내야 하고 또 그간 시즌에서 잘못된 선택들을 피해나가야 한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톱밴드>가 갖고 있는 장점들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을 성공시키고 향후에는 정규 프로그램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먼저 달라진 트렌드. <톱밴드>가 처음 시작되던 시기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만 해도 트렌드를 이루던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높았다. 그래서 시즌2에서는 <톱밴드>가 심지어 악마의 편집도 불사하겠다고 했던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패턴화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든 상태다. 섣불리 서바이벌을 강조하거나 그렇다고 지나치게 억지 감동을 내세운다고 그리 효과가 없다는 것.

 

<톱밴드3>가 참조해야 할 것은 그래서 저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고 <비긴 어게인>이나 <위플래쉬> 같은 영화다.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각각의 개성 있는 밴드들이 어떤 음악을 어떻게 해오고 있는가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전달이 관건이다. 밴드 음악은 그 악기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을 모아주지 않으면 그저 시끄러운 음악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악기 하나가 주는 감흥을 되살릴 수 있다면 그 음악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 결국 <톱밴드3>가 해야할 일이다. 여러 밴드들의 개성을 파악하고 그걸 극대화할 수 있는 이야기 구성이 절실하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톱밴드3>를 맡게된 윤영진 PD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스토리텔링에 대한 중요성을 얘기한 바 있다. “밴드 음악을 들려주기 이전에 그들이 어떻게 해서 음악을 하게 됐고, 지금은 어떻게 음악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이야길 충분히 전달해주고 나서 그들의 음악을 들려줄 생각이다. 그렇다면 더 진정성과 감동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만일 이것이 잘 만들어지고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진정성으로 다가오기만 한다면 <톱밴드3>의 성공은 반 이상 이룬 셈이 될 것이다.

 

진정성 전달과 함께 중요한 것은 보편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지금 현재 밴드 음악은 안타깝게도 대중들에게 낯설고 심지어는 마니아적인 장르로 인식되는 면이 있다. 물론 밴드 음악 자체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지상파 같은 메인스트림에서 잘 보여지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그러니 이 눈높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코치들의 역할은 그래서 밴드들을 선별하고 코치하는 일만이 아니다. 그들은 일반 대중들에게 낯설 수 있는 다양한 밴드 음악의 묘미를 하나하나 느낄 수 있게 설명해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너무 전문적인 용어들을 그저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용어가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고 있는지를 설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신대철이 얘기한 100명 중 한 명이라도 감동시킬 수 있다면 성공이라는 관점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밴드 음악을 너무 비주류로 세우려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주류가 될 수 있게 위상을 높여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성공은 중요하다. <톱밴드>의 위상을 만든 건 결국 성공한 장미여관 같은 밴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물론 신대철이 한 얘기는 비주류로 인식되는 현재 한 명의 관객을 감동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밴드 음악을 너무 비주류로 결정해버릴 필요는 없다.

 

밴드 음악에는 분명 지금의 우리네 가요계를 가득 메우고 있는 주류음악들, 이를 테면 발라드나 댄스 같은 음악들에는 없는 어떤 정신 같은 것이 존재한다. ‘소울이라고도 얘기하고 스피릿이라고도 얘기하는 그것. <톱밴드>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과 밴드 음악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것을 깨워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시즌3<톱밴드>라는 기획의도가 훌륭한 프로그램이 대중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그건 우리네 밴드 음악을 되살려낼 수 있는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배달의 무도>, 그 어떤 역사 교육보다 효과적이었던 까닭

 

그저 전 세계로 떠나는 배달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기획한 배달의 무도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일단 배달하는 것이 음식이라는 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머나먼 이국 생활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다름 아닌 고향의 음식이 아닐까. 거기에는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고향의 기억들이 방울방울 묻어나기 마련이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래서 가족과 친지가 보낸 음식을 먹으며 그 마음을 나누는 이 훈훈한 이야기는 그저 배달이상의 의미를 담아냈다. 하지만 역시 그 정도의 감동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배달의 무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일본 우토로 마을의 아픈 사연들이 소개되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 곳 우리 동포들의 삶이 하하와 유재석에 의해 담겨진 데 이어, 이번에는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논란을 일으켰던 하시마섬의 묻혀지고 있는 아픈 역사가 하하와 서경덕 교수의 두 차례에 걸친 방문으로 소개됐다.

 

파고가 높아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굳이 다시 찾아가 하시마 섬에 직접 발을 딛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강제 징용되어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우리네 동포들의 아픈 이야기가 삭제된 채 세계문화유산 등재되어 그저 일본 근대화의 상징처럼만 포장되어 있는 그 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그 아픈 역사를 까마득히 모른 채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으로 보여지는 당시 하시마 섬의 일본인 광부들은 제복을 차려입고 당시 무려 50만엔에 달하는 봉급을 받으며 풍족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 반면, 이제 90줄을 넘기신 하시마섬의 생존자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진 당시 강제 징용된 우리 동포의 삶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팬티 한 장 입고 온 몸에 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탄광에서 일했던 어르신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배고픔에 대한 호소로 당시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하시다 돌아가신 어르신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도저히 닿기 어려운 외진 곳에 초라하게 합장되어 있었다. 합장되기 전, 그들의 인명부조차 모조리 태워버려 그 분들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덮여진 채, 쓸쓸한 비석 하나로 남아있는 그 곳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찾아간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그 곳을 찾은 하하와 서경덕 교수가 챙겨 간 그분들이 그토록 먹고 싶었다던 쌀밥 한 그릇과 뜨끈한 고깃국은 저 우토로 마을을 찾았던 유재석이 했던 말처럼 너무 늦어 죄송한 배달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우토로 마을에 대한 이야기나 하시마 섬의 아픈 역사는 여러 차례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하시마섬이 아픈 역사를 숨긴 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당시만 해도 신문지상에서는 이 문제를 심층 보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뉴스나 다큐멘터리 같은 매체를 통한 이런 보도들이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입시경쟁 속에서 역사교육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이 몇 주에 걸쳐 한다고 해도 과연 이번 배달의 무도가 불러일으킨 관심만큼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이라는 가장 뜨거운 예능 프로그램이기에 이번 우토로 마을이나 하시마 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한도전>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즐거움과 재미를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즐거움과 재미 역시 그저 휘발되는 것만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할 때 지속 가능한 것이 될 것이다. 물론 <무한도전>은 계속 해서 새로운 도전들을 즐겁게 추구해야하겠지만, ‘배달의 무도라는 아이템은 일회적으로 끝내기에 너무나 아쉽게 느껴진다. 이런 프로그램이야말로 상시적으로 방송이 해줘야 하는 아이템이 아닐까. ‘배달의 무도는 분명 다큐보다 시사보다 더 효과적으로 우리에게 중대한 사안들과 가치들을 일깨워줬다.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