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만의 차별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시청률 23%. 그 전후에서 '동이'는 멈춰서 있다. 사극으로 보면 높은 시청률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낮은 시청률도 아니다. 그저 틀어놓고 시청하면 꽤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기대를 조금 갖고 보게 되면 조금 시시한 느낌도 든다. 주인공 동이(한효주)가 인현왕후(박하선)와 장희빈(이소연) 사이에서 사지로 내몰리며 그 누구도 풀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을 마치 '별순검'의 한 장면처럼(물론 아주 소프트하게) 풀어내는 과정은 꽤 긴박감이 넘친다.

그런데 하나의 미션이 끝나고 나면 어딘지 허전하다. 미션과 미션 해결 그리고 국면전환은 꽤 매끄럽게 진행되지만 뒤통수를 치는 기발함 같은 것은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23%에 멈춰서 있는 '동이'의 시청률은 이해가 된다. '동이'는 지금 미션 사극의 전형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과거라면 이 전형은 꽤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금의 시청자들은 사극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지만 '동이'가 그걸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왜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까.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사극으로 만들어졌다. 장희빈의 그 독한 눈빛과 그런 독한 장희빈에 의해 당하는 인현왕후. 그리고 결국 밝혀지는 진실. 사약을 받고도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모습, 그리고 그런 그녀의 입을 억지로 벌려 사약을 들이붓는 장면은 이제 장희빈이라는 콘텐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만큼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대결구도는 사극의 소재로서 강하다. '동이'가 새로운 사극이 되려면 그 이상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결국 '동이'는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벌이는 왕실암투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미 미션이라는 틀이나, 여성의 성장, 그리고 추리 형식은 이른바 퓨전 사극의 기본기가 되고 있는 상황, 따라서 동이가 매번 미션을 부여받고 그 미션을 해결함으로서 조금씩 성장하며 감찰궁녀로서 사건을 추리하는 모습은 그다지 차별점이 되지 못한다. '대장금'이 특별했던 것은 여성 성장 미션 사극의 출발점이고 추리적인 요소를 가미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기본기를 요리와 의술로 엮어냈다는 점이다. 어떤 요리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 의학지식 등을 통해 해결되는 과정은 '대장금'만의 차별점을 만들었다.

'이산'에서는 정조의 궁에서 살아남기라는 독특한 시선이 존재했고, 무엇보다 도화서의 이야기가 이 사극의 기본기와 잘 엮어져 차별점을 만들었다. '동이'에도 초반부에는 이런 차별점이 있었다. 이른바 '음변(音變)사건'이 그것이다. 사건을 음으로 엮었고 그 음이 왜 변했는가를 찾아가는 동이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동이'만의 차별성이 되었다. 하지만 그 후로 동이가 감찰궁녀가 된 후로 이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빠져버렸다. 주식(이희도)과 영달(이광수)은 바로 이 장악원이라는 이 사극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인물이지만, 지금은 장악원과는 상관없이 그저 '자나 깨나 동이 걱정'하고 사극의 상황을 쉽게 설명해주는 코믹한 연사 역할에 머물러 있다.

사극의 미션 속에 들어있기 마련인 추리적인 요소는 드라마라는 특성상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어려워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중간에 보게 되는 시청자나 집중해서 보지 않는 시청자들은 소외될 수 있다. 따라서 사극의 추리는 그 복잡함에서 재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특별한 시각이나 소재에서 찾아야 한다. '대장금'의 추리에 음식이 있었고, '이산'에는 그림이 있었다면, '동이'는 음악이 그 추리 요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초반부 음변사건 이후로 '동이'만의 새로운 추리 요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확실한 차별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동이'는 블랙홀 같은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이야기로 회귀하는 느낌을 준다. 동이만의 매력이나 특징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동이'만이 차별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것은 깨방정 숙종(지진희)과 동이의 로맨스다. 분명 사극은 멜로만의 힘으로는 움직이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깨방정 숙종과 동이의 로맨스는 권위의 해체라는 점에서 멜로의 틀 이상의 현재적 의미를 확보한다. 하지만 '동이'가 현재적 의미에 천착하는 사극이라는 특징을 확보하려면 다른 에피소드들도 좀 더 현재성을 강조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감찰부의 에피소드들은 정의가 과연 무엇인가를 좀 더 깊게 다뤘다면 꽤 현재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서 차별점을 찾기 어렵다면 오히려 현재에서 그것을 찾는 방법도 방법일 수 있다.

이 '사극의 현재성'이라는 문제는 동이라는 캐릭터에서도 그다지 부각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현재 동이는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풍산'이라는 캐릭터를 얻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그저 착한 캐릭터다. 물론 착한 캐릭터는 대중들에게 '우리 편'이라는 의식을 만들지만 그것이 현재의 시청자들의 감성에 부합하는 캐릭터인지는 의문이다.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이요원) 그 이상으로 주목받은 캐릭터가 미실(고현정)이었고, 이 미실이 욕망에 충실한 현대적 캐릭터라는 점은 '동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좀더 앞으로 쭉쭉 뻗지 못하는 '동이'의 지지부진은 아직까지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대결구도 그 이상을 뛰어넘는 차별성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애초의 기획의도에 들어있던 음악이라는 요소를 극의 추리적인 요소에 녹여내고,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좀더 현재적인 관점을 담아내며, 동이라는 캐릭터의 성장 속에 단지 착하기만 한 캐릭터가 어떤 목적의식이나 욕망을 갖게 된다면 '동이'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전개양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동이'의 유머가 만드는 사극의 새로움

숙종(지진희)이 뒤늦게 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동이(한효주)는 과거를 회상한다. 어설프게 칼을 휘두르며 "나는 이 나라의 왕이다"하고 소리치는 숙종. 동이와 주식(이희도), 영달(이광수)과 함께 돼지껍데기에 술을 마시며 "내 특별히 어주를 하사하지"하고 너스레를 떠는 숙종. "그런데 전하께서 그리 미남자십니까?"하는 동이의 질문에 입을 다물지 못하며 "그 말을 내 입으로 어떻게 하겠느냐"고 웃는 숙종. 그가 왕이란 걸 미처 깨닫지 못한 동이는 스스로를 바보라고 자책하지만, 그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 유쾌함은 '자나깨나 동이 걱정'을 하는 두 캐릭터, 주식과 영달이 그가 숙종이란 걸 깨닫고 이제 죽게 생겼다며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도 이어진다. 상상 신으로 그들에게 사약을 내리며 "한 번에 주욱 들이키거라"하고 풍을 치듯 말하는 숙종의 모습에서 전통적인 사극이 가진 무거움은 쉬 해체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숙종은 동이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왕이 아니라 예전처럼 대해달라며 "이건 어명"이라고 말한다. 저마다 정치적 이득만을 노리는 중신들 앞에서는 엄하디 엄한 왕이지만, 선한 낮은 자들 앞에서는 한없이 자신을 낮추며 그들의 허례 없는 삶을 오히려 부러워하기도 하는 왕. '동이'의 왕은 기존 사극의 왕과 이처럼 다르다.

사극의 힘은 물론 주인공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사극 전체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그 왕에서 비롯된다. 왕이 어떤 성정을 가지느냐에 따라 사극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하게 된다. '대장금'에서 중종(임호)은 엄격하지만 자애로운 모습으로 음식을 즐겼고, '이산'에서 영조(이순재)는 사사로운 감정을 숨긴 권위의 왕을, 정조(이서진)는 한없이 정이 깊은 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왕의 성정에 따라 사극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동이'는 여기서 한 차원 더 나아가 유머러스한 왕의 면모를 과시한다. 그러자 사극은 유쾌함을 입기 시작했다.

이 특유의 명랑함과 유쾌함은 '동이'가 초반의 소소함을 벗어내고 차츰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게 만든 저력의 원천이다. 초반의 무거움은 성인 동이 역할을 연기하는 한효주로 넘어오면서 발랄해졌다. 한없이 즐거워지고 웃게 만드는 그 밝음은 '동이'만의 매력을 만들었다. 바로 유머의 힘이다. '동이'의 초반부에 제기된 '대장금'의 아류, 혹은 뻔한 여성사극이라는 혹평이 사라지게 된 것은 이 유머가 깃든 사극이 '동이'만의 독특한 영역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장드라마를 입은 여성사극으로서의 '동이'는 그 위에 탐정극의 묘미를 덧붙였다. 궁궐에 들어온 동이는 끊임없이 조정의 사건에 연루되는데, 그 사건들을 저 스스로 해결해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풍산 동이'의 그 끈질김은 모두가 포기하는 시점에서도 포기할 줄을 모르고 사건으로 한 걸음 더 발을 딛는다. 탐정극 특유의 의문부호를 만드는 연출구성은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며 시청자들의 눈을 붙잡는다. 무엇보다 보는 이를 유쾌하게 만드는 동이라는 아이가 곤경에 처하고 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그 지점은 시청자들을 더욱 극에 몰입하게 만든다. 극적인 순간에 사건을 해결하는 동이는 어찌 보면 '소년탐정 김전일'을 사극으로 보는 것만 같은 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살인이 벌어지는 사건은 자칫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 수 있고, 이 미스테리들은 자칫 사극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여기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다시 유머의 힘이다. 긍정적인 캐릭터들의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던져지는 유쾌한 유머들은 극을 다시 발랄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게다가 주식과 영달 같은 순수한 아이 같은 눈높이의 캐릭터들은 복잡해질 수 있는 사건을 보다 쉽게 풀어 전해주는 역할도 해준다.

사건이 해결되고 나면 주인공에게 확실한 포상을 주는 것도 사극 전체를 명랑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첫 번째 문제를 해결했을 때 동이는 어식을 하사받고, 두 번째 문제를 해결했을 때 감찰궁녀가 된다. 세 번째 문제를 해결하자 동이는 이제 숙종의 마음을 조금씩 얻기 시작한다. 이 일련의 위기와 그 극복을 통한 충분한 포상의 과정은 주인공의 성장과정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된 시청자들을 흐뭇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초반의 부진을 쉬 깨버린 '동이'의 저력은 그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유머에 있다. 서민들을 다루는 사극 속에서 이 유머는 그네들의 해학적인 삶을 통해 익히 보여진 바 있으나, 아직껏 왕이 그 유머의 중심에 선 적은 없었다. 이것이 바로 '동이'이라는 사극이 보여주는 새로움이며, 그 새로움이 만들어내는 저력의 이유다.

성장하는 동이, 한효주의 성장은 어디까지?

사극, '동이'에서 동이(한효주)는 억울하게도 전혀 준비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로 감찰궁녀들의 통과의례인 시제를 보게 된다. 결과는 당연히 불통(낙방). 하지만 이 정당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 찜찜한 기분을 갖는 것은 동이가 궁녀가 되는 것을 반대했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동이는 재시험을 통해 시제를 통과하게 된다. 이 공명정대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 누구나 갖게 되는 선한 마음과, 그 마음이 고난을 겪지만 결국에는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단순하지만 '동이'의 강력한 매력이다.

동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딴 제목을 달고 있듯이, 이 드라마는 그 중심에 동이를 세운다. 그러니 사극의 대부분 인물들의 행동은 사실상 동이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극 중 동이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잘 모르지만, 시청자들은 주변 인물들의 행동이나 말을 통해 앞으로 동이가 겪을 일들을 대충 짐작한다. 따라서 동이에게 다가오는 위기상황은 동이 자신보다도 시청자들에게 더 클 수밖에 없다. 이제 막 수렁에 빠지는 줄 모르고 발을 내딛는 당사자보다, 그걸 이미 알고 바라봐야 하는 시청자의 입장이 더 다급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수렁을 깊게 파놓으면 파놓을수록 동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이다. 어린 시절, 가족을 잃고 그 폐가가 된 집에 혼자 살아남아 "나도 데려가 줘"라고 얘기하던 그 어린 동이가 그 어둠 속에 그대로 갇혀 성인이 되었다면 아마도 그 매력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사극 '동이'는 어린 시절의 동이가 지나치게 어둡게 그려져 초반 매력을 상실했던 반면, 성인이 된 동이의 씩씩함에서 다시 매력을 되찾았다.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 풍산이가 되어 나타난 동이는 밝고 맑고 씩씩하며 무엇보다 정의롭다. 천비인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장악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열심히 살아간다. 게다가 '본래는 서당개였냐'는 풍을 들을 정도로 똑똑하고, 굳은 신념을 위해서는 한 밤 중에 검안실에 누워있는 시체를 들춰볼 정도로 담대한 면도 있다. 성인이 된 동이는 물론 가끔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이지만, 아마도 어린 시절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린 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앙다문다.

'외로워도 슬퍼도' 절대 안 우는 캔디 캐릭터라고 하겠지만, 이 조선시대의 캔디는 꽤 쓸모있는 능력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오작인이었던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배운 사건의 해결능력이다. 그러니 사극 '동이'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이 조선시대판 수사반장을 방불케 하는 추리극적인 요소들이 될 것이다. 동이는 궁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지금까지의 사극과는 달리 좀 더 과학적(물론 현대와는 다른 무원록에 근거한 것이겠지만)인 방식으로 접근하게 해주는 인물이다.

이 동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극 속에서 수많은 이들에게 지지와 도움을 받는다. 장악원에서 마치 어린 누이처럼 그녀를 키워준 주식(이희도)과 영달(이광수), 그리고 적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도움을 줄 인물인 서용기(정진영), 심지어는 장차 대립각을 세울 두 인물인 장희빈(이소연)과 인현왕후(박하선)는 물론이고, 숙종(지진희)은 그녀의 강력한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있다. 그러니 이 외부의 집중적인 도움을 받는 동이라는 캐릭터는 시련 속에서도 안전하게 상황을 빠져나올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이 캐릭터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수동적인 존재로 오인될 가능성도 높다.

이것은 캐릭터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동이를 연기하는 연기자에게 처한 딜레마다. 어느 정도 성장하기 전에는 스스로 완전히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녀는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작금의 동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한효주가 물론 인상녀라는 지칭에 걸맞게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들면서도, 어딘지 정체된 인상을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현재 단계에서 동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수동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한껏 낮추는 데서 오는 유머감각이 될 수도 있다. 도움 주는 자가 왕인 줄도 모르고 벌이는 동이의 대책 없는 순진함은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든다. 즉 도움 주는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것은 아마도 아이 같은 순진무구함일 것이다.

하지만 동이의 캐릭터는 지금부터다. 동이는 계속해서 시련을 겪으며 성장해나갈 것이고, 결국 어느 지점에서는 주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만날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동이는 대단히 능동적인 캐릭터로 스스로의 문제를 개척해나가는 매력을 가질 것이지만, 어쩌면 그 때 우리는 저 수동적이지만 외롭지 않았던 좌충우돌 풍산이 동이를 그리워할 지도 모른다. 보는 이를 기분 좋게 해주는 동이의 씩씩함을 연기하는 한효주는, 연기자로서 어디까지 자신을 성장해나갈까. 동이가 캐릭터의 성장을 통해 점점 커져가는 매력을 발산할 때가 되면, 우리는 어쩌면 한효주라는 연기자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드라마 속 캐릭터들, 행복을 꿈꾸기 시작하다

'대장금'의 장금이(이영애)는 남다른 욕망을 갖고 있는 캐릭터였다. 수많은 모함과 함정을 벗어나면서 최고의 수라간 상궁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결국 그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그 모습은 당시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많은 이들이 '동이'의 동이(한효주)가 장금이를 닮았다고 한다. 실제로 비슷한 구석이 많다. 하지만 닮은 구석이 많아도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동이가 장금이처럼 최고 상궁이 되기 위한 강력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이는 물론 천비 출신인 자신의 처지가 답답하긴 하지만, 그래도 매일 매일을 긍정하며 밝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무엇이 되기 위한 욕망보다는 현재의 행복 또 앞으로의 행복을 꿈꾸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캐릭터들의 욕망은 과거 시대극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사랑과 야망'이 대표적이고, 가깝게는 '에덴의 동쪽'이 그 계보를 잇고 있다. 과거 욕망의 시대의 '사랑과 야망'은 성공적이었지만 다시 리메이크된 '사랑과 야망'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물론 '에덴의 동쪽'도 마찬가지였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되었던 이른바 남성드라마들도 이 계보에 속한다. '로비스트'나 '태양을 삼켜라' 같은 작품들. 성공의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캐릭터들을 내세운 이 드라마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이것은 어쩌면 성공을 추구하던 시대가 가고,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가 도래한 탓인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현재 방영되는 수목드라마들 속의 캐릭터들은 모두 성공이 아닌 행복을 추구하는 인물들이다. '신데렐라 언니'의 은조(문근영)는 물론 능력이 있고 대성도가를 크게 키우는 인물이지만, 그녀는 성공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행복이다. 늘 욕망에 휘둘리며 속물근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엄마 송강숙(이미숙)의 그늘 아래서 그녀는 가족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을 꿈꾼다. 그래서일까. 성공을 향한 욕망에 휘둘리는 엄마와 대결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성공이라는 과거적 가치에 포획되어 있는 엄마의 삶에서 벗어나 행복을 향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검사 프린세스'의 마혜리(김소연)는 경제적이나 사회적인 위치로 봤을 때 부족한 것이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미 성공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못하다. 그녀는 공주로 남아 있고 싶어 하지만, 그런 삶은 그녀의 사회적인 삶과 부딪친다. 검사로서의 삶은 공주로서는 해보지 못했던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즉 모든 것을 다 가진 그녀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삶으로서의 여성적인 행복을 쥐고 있으면서도, 검사라는 사회적 직무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검사 프린세스'는 모든 걸 다 가져도 결국 행복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말하는 드라마고, 그 행복이 타인과의 공존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개인의 취향'은 아예 이 성공이라는 가치 기준을 살짝 옆으로 밀어놓고 시작한다. 동성애로 오인된 전진호(이민호)와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박개인(손예진)이 동거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이 드라마는, 결국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가는 로맨틱 코미디다. 재미있는 것은 이 드라마가 다루는 취향의 문제다. 동성애자라는 오인에도 불구하고 그 취향을 인정하고 나자, 박개인은 전진호가 가장 편안한 남자친구로 다가온다. 전진호는 남자로서 박개인에게 연애비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결국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 서로 소통하는 이 이야기 역시 그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다. 그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행복.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가족드라마들이 늘 다루기 마련인 혼사장애 속 신데렐라 이야기는 빠져있다. 이 집의 막내인 양초롱(남규리)은 자신을 따라다니며 돈 자랑을 해대는 남자친구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같이 있어주는 것"조차 싫다고 말한다. 이것은 어쩌면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행복에 대한 가치를 가장 잘 말해주는 대목일 것이다. 동성애도 그 연장선으로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신분상승이니 성공이니 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현실 속에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넘쳐나는 것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 지긋지긋한 성공을 향한 욕망의 질주에 좀 지친 듯하다. 혹 어쩌면 이제야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에는 성공이 따르기도 하지만, 성공이 행복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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