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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 아베정권에게 전봉준 사진의 의미를 전해주고 싶다

 

“모두 고개를 드시오! 고개를 들고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시오. 그대들 눈에 눈물 대신 우리를 담으란 말이오. 슬퍼하지 말고 기억하란 말이외다. 우리를 기억하는 한 두 번 지진 않을 것이요!”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에서 전봉준(최무성)은 슬퍼하는 민초들에게 그렇게 외쳤다. 이제 죽어야할 길을 걸어가는 그는 끝까지 의연했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했다.

 

‘슬퍼하지 말고 기억하라’는 그 말은 어쩌면 <녹두꽃>이라는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였을 게다. 이미 역사 속에서 실패한 혁명으로 알고 있는 이 이야기를 굳이 드라마로 재연하려 했던 뜻이 그것이었다. 그 슬픈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또 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 말이다.

 

전봉준은 우금티 전투에서의 참패에 대해서도 “실패했지만 틀리진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미 문명이라는 화려한 가면을 쓴 야만의 실체를 가진 일제를 꿰뚫어보고 있었고, 끝까지 자신을 회유하려던 매국노 백이현(윤시윤)에게 오히려 “넌 속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일제의 행보를 ‘개항’이라 생각했던 백이현에게 다케다(이기찬)는 “왜 그리 순진하냐”며 그것이 결국은 영토 확장이었다는 걸 털어놓았다.

 

또한 전봉준이 백이강(조정석)을 만나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나 백이강 나아가 동학군들 모두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켰다. “장군헌티 녹두꽃이 만개한 시상을 보여드려야 허는디...”라는 백이강의 안타까운 이야기에 전봉준은 이렇게 말했다. “녹두꽃은 내 이미 숱하게 보았다”고. 고부서부터 우금티까지 함께 했던 민초들이 이미 활짝 피어났던 녹두꽃이었다는 걸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녹두꽃>으로 다뤄지기 전까지 동학농민혁명에 대해서 우리네 드라마들은 그다지 깊게 들여다본 적이 별로 없었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역사책에 살짝 언급되어 있었지만 그 몇 줄의 기록이 어떤 의미들인지를 실감하게 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동학농민혁명을 떠올리게 하는 건 역사책에 담긴 한 장의 사진이었다. 결박되어 끌려가면서 찍은 사진. 죽음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어보이던 그 의연하고 결연한 전봉준의 모습.

 

<녹두꽃>은 그 사진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사형 판결을 받고 돌아가는 전봉준의 모습을 송자인(한예인)이 사진 한 장으로 남기는 대목을 통해서였다. “전주에서 그러셨지요. 슬퍼하지 말고 기억하라고요. 이제 모두가 장군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저것을 똑바로 보면서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것은 백성이고 후손으로 태어날 자들이다.” 그 사진 한 장은 그래서 슬픔의 역사를 기록을 통해 기억하게 하는 역사로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일관계 속에서 보여주는 아베정권의 행태는 이런 포장된 야만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걸 말해준다. <녹두꽃>이 재연해낸 전봉준의 말과 사진 한 장의 의미가 더 남다른 무게로 다가오는 이유다. 물론 근대로 회귀하려는 듯한 시대착오적 야만의 행태들은 역사가 말해주듯이 결국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스스로의 목을 죄게 될 것이지만.(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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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은 우금티 참패를 어떤 가치로 끌어안았나

 

무려 2만 명의 동학군들이 죽었다. 우금티 전투. 일본군들이 가진 화력 앞에 동학군들은 속절없이 쓰러졌다. 전투라 부르기도 애매할 정도로 그건 학살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들은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고개를 향해 오르고 또 올랐다. 동학농민혁명이 미완의 혁명으로 남게 된 최후의 전투.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이 재연해낸 우금티 전투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드라마로 보고 있는 것도 힘겨운 데, 그 전투에서 실제로 스러져간 이름 모를 동학군들의 참혹함은 어땠을까. 죽은 동료들의 사체들을 보면서도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이들의 마음은? 일본군들에게 붙잡혀 두 손이 뒤로 결박된 채 사살당한 이들은 또 어떤 마음들이었을까. 실제 상황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을 드라마 재현이지만, 그것조차 보기 힘든 장면들이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죽을 걸 알면서도 그 고개를 넘기 위해 달려갔을까.

 

전투는 참패로 끝났지만 그것이 결코 의미 없는 죽음이 아니었다는 걸 <녹두꽃>은 그 이름 모를 동학군 중 한 명인 백이강(조정석)의 목소리로 담아낸다. 두 차례의 전투에서 참패 후 계속 싸울 것인지 아니면 해산을 해 훗날을 도모할 것인지의 의견이 갈리고 있는 가운데, 백이강은 전봉준(최무성)에게 접장들에게 직접 의견을 물어보자고 제안한다.

 

“여기 개똥이란 이름 가진 접장들 손 한 번 들어보쇼. 아따 많소이. 상놈들 천지구만. 나는 거시기였는디.” 엉뚱하게도 이름 이야기를 먼저 꺼낸 백이강은 그 날 전투에서 죽은 대원 동록개(정규수)의 이야기를 꺼낸다. 구성지게 소리도 잘하던 동록개는 두 아들과 함께 나간 전투에서 아들들과 함께 장엄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마도 우금티 전투에는 그런 천하게 불리던 이름을 가진 이들이 넘치고 넘쳤을 테다.

 

“오늘 죽은 우리 별동대원 이름이... 동록개요. 동록개. 동네 개새끼. 사람한테 붙일 이름 아니재. 개돼지도 그리 부르면 안 돼고. 근데 우덜 사는 세상이 그랬지 않소.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어, 개돼지나 다름 없었잖여. 그래서 우리가 싸웠잖애. 죽자고 싸워 만들었잖애. 백정도 접장, 양반도 접장, 하.. 나 같은 얼자 놈도 접장. 대궐 잘나빠진 임금도 접장!”

 

거시기로 불렸던 백이강이 제 이름을 갖게 되고 동학농민군의 별동대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사실상 살아있어도 진짜 살아있다 말하기 어려웠던 그들의 삶. 그래서 이름조차 없이 개똥이로 동록개로 거시기로 불리며 살다 가는 세상. 그건 사는 게 아니었다. 그런 그들에게 동학농민혁명은 짧아도 ‘사람의 삶’을 살게 해준 것.

 

“해산을 혀서 목숨은 부지할지 몰라도 더 이상 접장은 아니겄제. 양반 있던 자리에 왜놈이 올라 타갔구 후.. 다시.. 다시 개돼지로 살아야겄재. 그래서 난 싸울라고. 그래서 난 싸울라고.... 겨우 몇 달이었지만... 사람이 동등하니 이 대접하는 세상 속에 살다본 게 아따 기깔라갔꼬 다른 세상에서 못살 것드랑께. 그래서 나는 싸운다고. 찰나를 살아도 사람처럼 살다가 사람처럼 죽는다 이 말이여.”

 

백이강의 외침은 이들이 넘지 못한 우금티 전투에서의 참패가 그저 실패가 아니었다는 걸 말해준다. 그들은 이미 ‘사람답게 살지 못했던 그 삶’을 뛰어넘었던 것. 그 광경을 본 황석주(최원영)는 자신이 전봉준에게 했던 우금티 전투의 참패가 결국 경계를 넘지 못한 것이었다고 한 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틀렸구만. 경계를 못할 거란 얘기 말일세. 이제 보니 저 우금티가 경계가 아니었네.”

 

이것은 아마도 <녹두꽃>이 우금티 전투의 참패 속에서 동학농민혁명의 가치를 가장 잘 짚어낸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들이 넘으려한 건 단지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끝없이 달려들었던 우금티가 아니라, 저들 스스로 갖고 있던 ‘마음 속의 경계’였다는 것. 그러니 죽을 줄 알면서도 그 곳을 향해 뛰어갔다는 것이다. 그것이 단 몇 초를 살아도 그들이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녹두꽃>은 그리고 그 우금티가 지금 우리 앞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 문제나, 여전히 역사를 부인하고 왜곡하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일본. 열려진 세상을 가로 막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저 적들이 여전히 세우고 있는 그 경계가 우리가 지금 또 다시 마주하고 있는 우금티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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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 죽을 걸 알면서도 나선 의병들, 그건 전쟁 아닌 사랑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일본군들이 지키고 있는 우금티 고개. 도적이 출몰해 소가 지나는 걸 금했다는데서 이름 붙여진 우금티는 공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서 뚫고 들어가기가 결코 쉽지 않은 요지다. 일본군들이 기관포로 쏴대면 속수무책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그 길.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고 그걸 재연해낸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에서도 그러하듯이 그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그 고개를 넘기 위해 뛰어든다. 전투가 아니라 학살에 가까웠다는 우금티 전투. 그 처절한 의병들의 사투가 이제 <녹두꽃>에서 서막을 올렸다.

 

도대체 이들은 왜 그 죽음이 예고된 길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나아갔을까. 아마도 <녹두꽃>이라는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가 담으려 했던 건 이 혁명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을 게다. 결과야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다 알고 있다. 우금티 전투에서 일본군과 맞서게 된 동학 의병들은 결국 그 막강한 화력에 의해 패하고 전봉준은 동학군을 해산시킨다. 결국 그해 배반자의 밀고로 전봉준이 순창에서 체포되면서 동학농민혁명은 미완으로 끝으로 맺는다.

 

사실 실패로 끝나버린 혁명을 드라마로 담는다는 건 여러모로 부담이 되는 일이다. 시청자들에게는 그 비극적 정조가 드라마를 보는 데 만만찮은 무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녹두꽃>이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한 건 단지 그것을 ‘실패의 역사’로 놔두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을 게다. 그들이 당대에 깨어낸 민중의식은 당시 혁명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했지만, 결국 지지 않고 이어져 현재로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민중의 역사 그 과정으로 보면 <녹두꽃>이 담고 있는 동학농민혁명은 그래서 실패가 아닌 미래의 성공을 위한 초석이 되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그들이 어떤 이유로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그 혁명에 뛰어들었는가 하는 점이다. 고종의 “거병하라”는 밀서에 의해 조용히 거병 준비를 마치던 차에 일제의 강압으로 고종이 쓰게 된 효유문은 동학 의병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이제는 나라의 지지도 받지 못한 채 일본군과 싸워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 싸움에 왜 사람들이 뛰어들고 있는가를 묻는 전봉준(김무성)에게 백이강(조정석)은 “저마다 지켜야할 소중한 것들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왕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터전 같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그러자 전봉준은 백이강에게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전쟁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걸 얘기해준다. “전쟁은 증오가 만들지만 이건 사랑이 만든다” 라며 그것이 바로 “혁명‘이라는 것.

 

이 말은 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엇나간 선택을 한 백이강의 동생 백이현(윤시윤)의 친일행각이 무엇이었는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건 증오가 만들어낸 ‘전쟁’일 뿐이었다. 문명의 탈을 쓴 ‘야만’의 전쟁. 그는 끝까지 문명은 더 많은 희생을 줄이기 위해 일부 희생을 감수하려 한다고 변명하지만, 일본의 지령에 담긴 “모조리 살육”이라는 글귀에 충격을 받는다. 어리석고 참담한 친일행각의 변명과 합리화가 모두 자신의 착각일 뿐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이제 다음 주에 그려질 우금티 전투는 바로 이 가슴 뜨거워지는 혁명의 눈물과 땀과 피가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아픈 실패로 끝나버릴지라도 죽은 채 살아가는 것보다, 단 하루를 싸우다 죽어도 산 사람으로 죽기를 원한 당대 의병들의 숭고한 선택을 그려낼 것이다. 또한 그들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있으며, 그러니 그건 결코 실패한 혁명이 아니었다는 것을.(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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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 조정석과 윤시윤이 그리는 동학혁명의 진면목

 

“니 안의 도채비 내가 죽여줄텐게, 니 안의 백이현으로 다시 살더라고.”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에서 백이강(조정석)은 백이현을 때려눕히고 그가 총을 쏘던 오른손을 돌로 내려치려 하며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망설인다. 그 돌을 들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이 전봉준(최무성)의 칼에 찍혀 못쓰게 된 그 상황을 마음속으로는 사랑하는 동생이 겪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백이현은 마치 도와달라는 것처럼 “그냥 망설이지 말고 그냥 찍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연모하고 혼인을 약속했던 황명심(박규영)의 오라비 황석주(최원영)가 신분이 낮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전장으로 내보냈다는 사실을 알고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와 욕망에 휘둘린다. 그는 일본에서 배웠던 총을 들고 동학군들을 저격하는 ‘도채비(도깨비)’가 된다. 그들을 향해 총을 쏘고는 있지만 그는 그것이 엇나간 욕망 때문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전봉준(최무성)이 폐정개혁안을 전제로 전라도관찰사 김학진(남문철)과 화약을 맺으려하자 그에게 한양행을 약속하며 전봉준을 저격하라는 명을 받은 도채비 백이현이지만, 그는 결정적인 순간 자신이 토사구팽 당할 꼭두각시라는 걸 알게 된다. 어떻게든 성공해 황석주가 보란 듯이 황명심을 찾아가겠다는 욕망에 뛰어든 도채비의 삶이지만,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걸.

 

오른손을 내려치려는 형 백이강에게 “그냥 망설이지 말고 그냥 찍어”라고 백이현이 말하는 건, 그래서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이 욕망을 누군가 끊어내 주길 내심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다. 하지만 백이강은 결국 백이현의 손을 내려치지 못한다. 대신 그에게 엄포 섞인 충고를 한다. “도채비 말여 니가 싸워서 이겨봐. 다시 도채비로 만나불면 그 때는 죽여분다 잉.”

 

이 짧은 시퀀스는 왜 <녹두꽃>이 전봉준을 주인공으로 하지 않고 대신 백이강과 백이현이라는 형제를 주인공으로 세웠는지가 정확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한 때 ‘거시기’로 불리던 백이강은 전봉준이 그 민초들을 핍박하던 손을 칼로 찍으면서 백이강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서자로서 포기하듯 살아왔던 그는 동학군의 별동대장이 되어 민초들을 위해 그 손을 쓰게 된다.

 

그렇게 거시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름을 찾은 백이강은 이제 그 손으로 동생 백이현의 도채비 손을 내리치려 한다. 그것을 통해 그가 도채비가 아닌 백이현으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백이강이 핍박받는 일을 내면화하며 버텨냈던 삶을 벗어나 자신들을 불행한 삶으로 이끄는 세상과 대결하는 혁명을 꿈꾸게 한 것처럼, 노력해도 올라설 수 없는 신분의 벽 앞에서 분노하던 백이현이 그걸 벗어나 개혁의 꿈을 꾸게 되는 그 과정을 <녹두꽃>은 담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새로운 시대의 혁명과 개혁에 대한 열망을 동학이 추구하고 있었고, 그것은 과거의 삶을 살아오던 이들이 그 삶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 것들이었다. 그래서 동학농민혁명은 전봉준처럼 전면에 등장하는 영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소한 민초들이 스스로의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는 이야기가 된다. ‘거시기’를 버리고, ‘도채비’를 버린 그들이 비록 당장은 무너질지라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그런 이야기.

 

그래서 <녹두꽃>은 이제 겨우 꽃망울이 피기 시작한 시대의 혁명과 개혁을 요구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진면목을 제대로 그려낸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일개 영웅담이 아닌 민초들의 의식이 깨어나는 과정을 배다른 형제의 애틋한 정과 서로 부딪치고 성장하는 모습으로 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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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 동학군의 적을 좀 더 명쾌하게 세우지 않는다면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은 이런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뭉클한 면이 있다. 대포와 회전포까지 갖고 온 경군들을 상대로 싸운 황룡강 전투 장면은 그 스케일만으로도 압도되고,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오는 데는 솜을 채운 장태를 밀며 적진을 향해 전진하는 동학군의 모습에서 먹먹함마저 느껴진다.

 

무엇이 이들을 죽음을 감수하고라도 이렇게 전장에 나서게 했을까. 백이강(조정석)이 그의 이복동생 백이현(윤시윤)에 의해 위기에 빠진 버들(노행하)과 번개(병헌)를 구해 도망칠 때, 그들을 따르던 일련의 거지들이 동학군에 합류해 한 끼 밥을 먹고는 전장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던져 대포를 무력화시키는 장면이 그렇다. 그들이 그렇게 해서 얻고자 한 건 뭐였을까.

 

<녹두꽃>은 지금껏 우리네 사극이 좀체 다루지 않았던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만으로도 박수 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마라면 갖춰야할 극적 재미에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보다 선명한 악역 혹은 악의 세력이 아직까지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학군의 첫 봉기 원인이 됐던 고부 군수 조병갑(장광)은 <녹두꽃>의 첫 악역이었지만 탐관오리라는 정도로 그려졌을 뿐 드라마의 극성을 끌어올리는 악랄함이 전면에 그려지지는 않았다. 대신 드라마의 시작점에 악역 역할을 한 건 백가(박혁권)다. 이방으로서 조병갑을 등에 업고 민초들을 수탈해온 인물. 그의 서자 백이강이 그 악행을 대신해 도맡아 했지만, 실질적인 악은 바로 그를 그렇게 만든 백가였다고 볼 수 있다.

 

<녹두꽃>이 제대로 동학군이 봉기하게 되는 근거로서 악을 세우려 했다면 백가보다는 조병갑 같은 인물을 좀 더 전면에 내세워야 하지 않았을까. 백가는 악당이긴 하지만 그 역시 중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그런 짓들을 벌였던 인물이다. 그 역시 어찌 보면 결국 동학군이 지목하고 있는 잘못된 나라의 시스템(세상의 주인이 민초가 아닌)의 일부분일 뿐 뿌리는 아닐 수 있다.

 

그 다음 <녹두꽃>이 악역으로 지목되는 인물은 황석주(최원영)다. 그는 처음 전봉준(최무성)과 함께 봉기했지만 양반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봉건적 틀에서 점점 추락해가는 인물. 자신을 고문해 누이동생인 황명심(박규영)을 며느리 삼으려는 백가 앞에 무릎 꿇는 척하지만 그는 그 혼사를 막기 위해 백가의 아들이자 자신의 제자인 백이현을 향군으로 나가게 한다. 전장에서 그가 죽기를 바라는 것.

 

황석주의 그런 행동은 백이현이 점점 악독해지는 이유로 작용한다.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도 황명심을 애모하는 마음에 살아 돌아오려 노력하던 그는 자신을 그 전장으로 보낸 게 바로 황석주라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하고 절망한다. 그는 결국 신분의 벽은 넘을 수 없는 것이라 여기고 동학군을 적으로 삼으며 백가의 가족으로 돌아가고, 이방이 되어 자기 방식(?)으로 세상에 분노를 터트리려 한다.

 

<녹두꽃>은 이처럼 좀 더 전면에 나와 있는 악역이 백가나 황석주 같은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악역들이 동학군의 봉기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동학군이 봉기한 건 민초를 핍박하는 조선 봉건사회의 비뚤어진 시스템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시스템을 대변하는 보다 확실하고 명쾌한 악역이 세워져야 동학군의 목숨을 건 봉기가 더 절절하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동학군의 전투는 장쾌하고 뭉클하게까지 다가오지만, 그것을 더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들고 의미 또한 더할 수 있게 하는 건 이들이 왜 이렇게 싸우는가를 보여주는 명쾌한 적을 보여주는 일이다. 뭉클한 감동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왜 이들이 싸우고 있는지 다 알고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처리되어 저 뒤로 물러나 있는 적들을 보다 전면으로 끌고 와야 시청자들이 좀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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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5.20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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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 다룬 ‘녹두꽃’, 어째서 민초의 역사 외면 받았나

 

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다. 이 날을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공식적인 국가기념일로 정하게 된 건, 이 날이 125년 전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이긴 황토현 전투 전승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소외되어 왔던 동학농민혁명이 법정기념일로 선정된 건 지난해였다. 무려 125년 만에 기념일로 제정된 것. 무엇이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평가를 이토록 늦게 만들었던 걸까.

 

이 날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은 바로 그 황토현 전투를 다뤘다. <녹두꽃>이라는 드라마의 탄생에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런 재조명의 움직임이 전제되어 있었다는 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마침 그 기념일인데다, 황토현 전투 전승일이 5월 11일에 맞춰 그 전투를 재연해낸 건 드라마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녹두꽃>은 백이강(조정석), 백이현(윤시윤) 이복형제가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학농민군 의병대와 관에 의해 동원된 향병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복형제인데다 적자와 서자로 나뉘어 있어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르게 자라났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형제 그 이상이다. 탐관오리에 붙어 악랄한 이방으로 치부해온 백가(박혁권)는 서자인 백이강을 민초들의 고혈을 빠는 ‘거시기’로 키우지만, 적자인 백이현은 유학까지 보낸 도련님으로 키운다. 하지만 백이현은 부친의 악행에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왔고, 백이강을 형님으로 대해왔다.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이 등장하긴 하지만, <녹두꽃>이 그리는 건 그런 드러난 인물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이름 없이 살다 죽어간 백이강이나 백이현 같은 민초들의 삶이다. 그들은 의병과 향병으로 나뉘어 있지만, 전투 속에서도 서로를 구해내고 챙기려 한다. 결국 향병들도 관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징발된 무고한 민초들이다. 그래서 녹두장군 전봉준은 향병들은 죽이지 말라고 명을 내린다. 그들은 관군에 의해 총알받이로 내세워지고, 도망치려는 자들은 저들의 칼날 아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녹두꽃>이 재연해낸 황토현 전투 속에서도 의병들과 향병들이 모두 관군에 의해 핍박받는 상황을 그려낸다. 백이현이 이 전투 속에서 처음으로 죽이게 되는 사람이 적이 아니라 같은 향병이라는 사실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대신 이 와중에도 술과 향락을 즐기는 탐관오리들은 동학농민혁명의 정당성을 드러낸다. 그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별동대 대원들이 적의 진지로 숨어들어가고 의병대가 습격을 해 시작된 것이 바로 황토현 전투다.

 

사실 그토록 많은 사극들이 만들어졌지만,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거의 없었다. 그것은 지난해에 비로소 기념일이 제정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19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레드 콤플렉스는 동학농민혁명을 역사적으로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 됐다. 왕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극의 소재로 쏟아져 나왔지만, 민초들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건 이런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그러다 정통사극에서 퓨전사극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 차츰 역사 바깥을 탐색하던 사극들이 민초들의 역사를 담으려 했다. <대장금>에서부터 <추노> 같은 작품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력으로 그려낸 민초들의 역사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녹두꽃>이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진짜 민초들의 역사를 재현해내고 있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해진 건 촛불 혁명 같은 민초들의 역사가 다시금 피어나고 있어서다. 기념일에 즈음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촛불혁명도 잘못된 권력을 백성이 바로잡는다는 동학정신의 표출”이라고 말한 건 이런 변화된 현재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기념일에 <녹두꽃>의 황토현 전투 재현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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