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들의 쇼핑몰’, 냉혹함 속에서 더더욱 부각된 이동욱의 따듯함

킬러들의 쇼핑몰

‘이동욱은 어딘지 겉으로는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에 안으로는 뜨거운 열정 같은 걸 갖고 있는 배우다. 그래서 무표정한 얼굴로 있으면 한없이 냉정한 느낌을 주지만, 그런 그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때는 마치 그 얼음이 녹아들어 흘러내리는 물 같은 처연함을 느끼게 해준다.’ 과거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 이동욱의 진가에 대해 내가 썼던 이같은 표현들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의 정진만이라는 캐릭터에서도 이동욱의 그 처연한 눈빛을 볼 수 있으니. 

 

“잘들어 정지안.” ‘킬러들의 쇼핑몰’은 이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건 이 액션스릴러가 갖고 있는 구조적 특징 때문이다. 일단의 킬러들이 정지안(김혜준)의 집을 무차별 난사하고 공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드라마는,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그녀가 극복해나가는가가 전체 서사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생존상황이 시시각각 펼쳐지지만, 그 때마다 정지안은 삼촌 정진만이 평소에 했던 말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 과거로 돌아가 정진만이 어떻게 과거 용병 시절을 보냈고, 어쩌다 은퇴하게 됐으며, 킬러들의 무기를 거래하는 쇼핑몰을 운영하게 된 이야기와, 킬러들의 타깃이 되어 부모를 모두 잃게 된 정지안을 거둬 함께 지내게 됐던 이야기 등을 조금씩 소개한다. 그래서 드라마가 펼쳐내는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건 정지안이지만, 시청자들은 시청 내내 어딘가 정진만과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정진만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아우라가 이 작품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앞서 언급한 이동욱의 냉정한 듯 따뜻한 ‘겉차속따’의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처연한 분위기는 이 작품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한때 작전을 수행하면서도 민간인들이 다치는 걸 막으려 했던 정진만이라는 인물은 겉은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하지만 따뜻한 내면에 의해 안으로는 녹아흐르는 눈물이 가득 채워진 듯한 인물이다. 이런 이동욱의 이미지에 의해 잘 구축된 정진만이라는 캐릭터가 더더욱 부각되는 건, 그와는 대척점에 놓여 대결구도를 만드는 베일(조한선) 같은 돌처럼 냉혹한 킬러들과의 대비 때문이다. 저들과 달리 그는 피와 눈물을 흘리며 아파한다. 그리고 그 인간적인 끈끈함은 이 인물이 결국은 갖게 되는 가장 큰 힘이 된다. 그로 인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파신(김민)이나 민혜(금해나) 같은 죽음도 불사하고 그를 돕는 진짜 팀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겉으론 팀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돈으로 묶여 그 목적이 사라지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베일 일당들과는 사뭇 다른 지점이다. 

 

1999년 데뷔부터 현재까지 베스트극장이나 드라마시티 같은 단역부터 시트콤을 거쳐 멜로, 가족드라마, 사극, 장르물 등 무수한 작품들을 해왔지만, 이동욱의 존재감이 도드라진 건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의 저승사자 역할처럼 어딘가 신비로우면서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그런 인물들에서였다. ‘아이언맨’의 몸에 칼이 돋는 역할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미지를 드디어 꺼내놓은 이동욱은, ‘도깨비’의 저승사자로 제 몸에 딱맞는 옷을 입은 후, ‘구미호뎐’ 시리즈로 펄펄 날았다. 

 

이렇게 된 건 독특한 분위기를 갖는 외모 때문이기도 했지만, 익숙한 역할을 반복적으로 하기를 거부하며 새로운 영역을 계속 넘보는 그의 성향 때문이기도 했다. 이를 테면 ‘라이프’ 같은 작품에서는 소신이 확실한 응급의료센터 전문의 역할을 했지만, ‘진심이 닿다’ 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달달한 역할을 소화하더니 ‘타인은 지옥이다’에서 살벌한 사이코 패스 역할을 연기하는 식이다. 심지어 ‘배드 앤 크레이지’라는 작품에서는 유능하지만 나쁜 놈과 정의롭지만 미친 놈의 양자를 오가는 이중인격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기도 했다. 

 

차가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품은 듯한 이미지나 익숙한 역할 대신 새로운 영역을 넘보는 연기에 대한 열정은 그가 그려내는 인물의 독특함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그가 보여준 저승사자는 우리가 ‘전설의 고향’으로 늘 봐왔던 검은 도포에 갓을 쓴 그런 인물이 아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댄디한 양복을 걸치고 나타난 이 새로운 저승사자는 그래서 설화 등에서 고정화된 캐릭터 이미지를 트렌디하게 해석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것은 ‘구미호뎐’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구미호라는 캐릭터는 역시 ‘전설의 고향’에서 주로 소개됐는데, 여성으로 그려지곤 했다. <구미호뎐>은 남성 구미호를 그려내면서 초능력을 쓰는 새로운 히어로의 모습으로 재해석됐다. 이동욱이어서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게 됐던 뉴웨이브 남성 구미호라고나 할까. 그래서 시청자들은 이런 작품들 속에서 ‘이동욱이 개연성’이라는 이야기들을 종종 하곤 한다. 독특한 스타일, 세계관, 톤 앤 매너를 가진 작품일수록 그의 연기가 설득력있게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유재석이 이끄는 유튜브 채널 ‘핑계고’에 자주 출연하면서 이동욱이 가진 어딘가 심드렁하지만 그러면서도 장난기와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런 면모들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유재석과 함께 하는 모습에서 그는 차가운 듯 툴툴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이지만, 그것이 더할 나위 없는 편안함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걸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준다. 억지로 만들어내는 텐션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이 묻어있어 그 점이 대중들에게 호감을 주고 있는 것. ‘킬러들의 쇼핑몰’의 정진만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도 그렇지만 이처럼 ‘겉차속따’의 인물을 지금의 대중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거기에서는 위험요소들이 적처럼 도처에 깔린 현실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냉정할만큼 단단하게 맞설 수 있으면서도, 같은 편끼리는 따뜻함을 잃지 않는 히어로에 갈증을 느끼는 대중들의 판타지가 느껴진다. 그건 아마도 팀으로 꾸려지곤 하는 집단 속에서 구성원들이 원하는 리더십이기도 할 게다. 권력과 이익으로 얄팍하게 묶여진 베일이 이끄는 팀과는 전혀 다른, 피와 땀과 눈물로 묶여진 정진만이 이끄는 팀의 끈끈한 리더십이 그것이다. (사진:디즈니+)

‘라이프’, 이러니 적폐청산이 어려울 수밖에

“이원장이 왜 그렇게 죽었냐구? 그걸 밝혀달라구? 그래. 이상엽이. 네가 보고를 해? 원장님한테? 환자가 죽었다니까 원장님이. 덮자 그러셨다구? 내 두 눈 똑바로 보고 다시 얘기해봐. 나 원장님께 보고했다? 김정희. 너. 네 환자 죽었을 때 어떻게 했어? 누가 네 대신 유족 찾아가서 흠씬 두들겨 맞았지? 어떻게 그 와중에 코빼기 한 번 안 비칠 수 있었냐? 서지웅이. 너 요새도 여자환자 만져? 간호사한테 문자 계속 보내? 네 와이프가 원장님께 울고불고 매달려서 너 겨우 안 잘린 거 너 알고 있어? 야 장민기. 누가 네 가족부터 이식수술 해주래? 원장님이 영원히 모를 줄 알았냐? 이 중에 이보훈이 피 안 빨아먹은 인간 어딨는데? 주경문이. 넌 혼자 고고한 척 관심 없는 척 하면서 원장이 챙겨주는 건 잘도 받아먹더라. 네가 정말 자리에 욕심이 없어? 이보훈한테 왜 심근경색이 왔을까? 너, 너, 니들 모두 니들이 갉아먹었잖아? 늙어가는 심장 한 웅큼씩 한 웅큼씩 니들이 필요할 때마다 떼 갔잖아. 근데 뭘 물어?!”

마치 연극의 한 대목을 보는 것만 같은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의 이 장면에서 김태상 전 부원장(문성근)은 거기 앉아 있는 의사들 하나하나를 지목하며 그 과실들을 끄집어낸다. 마치 공개 재판이라도 하듯 이보훈(천호진) 원장이 김태상 전 부원장의 집에서 죽은 일에 대해 예진우(이동욱)가 추궁하지만, 그는 원장의 죽음에 모두가 유죄라는 사실을 끄집어낸다. 그들은 과연 몰랐을까. 자신들에게도 저마다의 죄가 있다는 것을.

결코 떳떳한 인물이 아니지만 김태상 전 부원장의 말은 아프게도 틀린 게 없다. 그래서 그 아픈 일침 앞에 그 누구도 뭐라 반박하지 못한다. 한참을 듣다 못한 예진우가 그에게 묻는다. “스스로에게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대리수술도 그래서 하신 건가요? 다른 분들과 형평성을 맞추려고?” 타인의 죄를 끄집어내지만 그렇다고 그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명백히 한 것이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죄가 없는 이들은 없다. 모두가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잘못을 떠안아준 건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이보훈 원장이었다.

상국대학병원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이 장면은 확장해서 보면 우리네 국가와 정치, 사회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이보훈 원장이 김태상 부원장의 집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그 장면은 우리네 정치사의 안타까운 죽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문제의 원인을 김태상 같은 인물이 단독으로 저지른 일인 양 단죄하는 일 역시 우리가 정치사에서 흔히 봐왔던 일들이다.

잘못된 행위를 한 그들을 ‘적폐’라 부르고 그것을 ‘청산’하려 하는 일은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진정 적폐가 모두 사라지게 될까. <라이프>가 김태상 부원장의 아픈 일침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좀 다르다. 그 적폐는 김태상 부원장 같은 외부의 적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도 그 시스템 속에서 저마다의 ‘적폐’에 일조한 면이 있다. 그것까지 끄집어내고 ‘청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진정한 적폐청산이 가능하다는 것.

<라이프>가 다루는 인물들이 때론 인간다워 보이면서도 때론 같은 사람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타인을 아프게 만드는 냉정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으로 그려지는 건 작가가 가진 인간관을 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공과 과를 모두 함께 갖고 있다. 적폐는 바깥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적폐’ 또한 청산하지 않는 한 잘못된 일은 또 다시 반복되기 마련이다.

이것은 어째서 적폐청산이 어려운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외부의 적폐를 제거하는 일만이 아니라 내 안의 적폐 역시 끄집어내 깨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을 공간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다루는 드라마가 이런 우리 사회가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의 근원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사진:JTBC)

'라이프' 조승우와 원진아의 멜로, 공과 사는 다르다

도대체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의 구승효(조승우)와 이노을(원진아)의 관계는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드라마 속 남녀와는 너무나 다르다. 한 사람은 상국대학병원 총괄사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그 일적인 위치로 보면 상하관계가 뚜렷하다. 그런데 직장 내의 상하관계와는 다른 행보를 이노을은 보여준다. 

소아병동을 보여주겠다고 구승효를 데리고 간 건 과연 신임사장에게 병원을 안내하기 위함 만이었을까. 구승효는 그 곳에서 인큐베이터 속 생명을 보며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지방병원으로 소아과를 파견 보내려했던 걸 번복한다. 물론 구승효는 그런 결정의 번복이 다른 이권을 챙기기 위한 카드인 것처럼 말한다. 그게 진실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는 진짜로 이노을로 인해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었을 수도 있다. 이노을 역시 구승효에 대한 사적인 감정을 품었을 수도.

구승효와 이노을의 관계가 흥미롭게 느껴지는 건 정재계가 얽힌 의문의 사체를 부검하지 않고 넘기려던 걸 유족을 설득해 검시하게 한 오세화 병원장(문소리), 주경문(유재명), 예진우(이동욱)를 면직처분하며 이노을도 그 명단에 끼워 넣으면서다. 구승효는 왜 이들을 갑자기 면직처분한 것일까. 그것도 해당 사건과 그다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노을까지 끼워서. 

구승효의 마음이 흔들린 건 화정그룹 조남형 회장(정문성)이 이 사건으로 뒤틀어진 걸 바로잡기 위해 “직접 나서겠다”고 한 말 때문이다. 그 말의 의미는 자칫 연루된 이들에 대한 위해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었다. 실제로 오세화 병원장은 의문의 인물들에게 거의 가택연금을 당하게 되는 상황에 몰려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구승효의 이노을 면직처분은 그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선택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진짜 속내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면직 처분을 내리고도 술 취한 이노을을 굳이 차에 태워 집까지 바래다주는 구승효의 모습에는 일에 있어서의 관계와 사적인 관계가 너무나 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것은 아마도 실제 현실이 그럴 것이다. 드라마는 사적관계가 공적관계와 얽혀 있는 걸 당연하다는 듯 그리곤 한다. 하지만 어디 실상이 그런가. 제 아무리 해고를 하고 해고를 당한 인물이라도, 사적인 감정은 또 다를 수 있다. 바래다주는 구승효의 차에서 도망치듯 아파트 현관을 향해 달려가는 이노을에게서 취한 모습을 보인 연인의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것처럼.

<라이프>의 멜로가 확연히 다르게 다가오는 건 새글21의 기자 최서현(최유화)과 제보자로서의 의사 예진우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갑자기 병원에서 사체의 사인을 번복 발표하자 무언가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직감한 새글21은 최서현에게 예진우를 통해 그 정보를 알아보라고 종용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최서현은 예진우를 찾아오지만 피곤해 보이는 그를 보며 차마 그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 예진우에 대한 좋은 감정이 기자로서 해야할 질문을 던지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라이프>의 멜로는 일과의 관계에 있어 어떤 보이지 않는 선 같은 것이 그어져 있다. 제아무리 좋은 감정을 갖고 있어도 해야 할 일은 할 수밖에 없는 공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그 공적 관계 속에서도 사적인 감정은 지워지지 않는다. 또 자신의 직분대로라면 해야 할 일을 사적인 감정이 가로막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진짜 리얼한 우리가 사적이며 공적인 관계 속에서 겪는 애매모호한 감정들이 아닐까. 심지어 미스터리한 느낌마저 주는 <라이프>의 멜로는 확실히 여타의 드라마들이 그려온 단선적인 멜로와는 다르게 다가온다.(사진:JTBC)

‘라이프’, 선악 아닌 영향과 변화로 보는 인간탐구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에서 구승효(조승우) 사장에게 이노을(원진아)은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던져 놓는다. 스위스의 어느 마을에 핵폐기장 건설 투표를 했는데 처음에는 60%가 찬성했다는 것. 그런데 그 마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면 돈을 주겠다는 정부 방침에 재투표를 했다는 것이다. 구승효 사장은 그 재투표의 결과가 궁금하다. 

결과는 찬성 25%. 어째서 돈을 준다는데도 찬성률이 뚝 떨어졌을까를 궁금해하는 구승효에게 이노을은 문득 ‘중독 같은 성과급제’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성과급제는 마약 같아요. 중독성이 있어요. 인센티브가 동기부여가 되는 직종들도 물론 있죠. 근데 어떤 일에선 그 업종 사람들을 파괴시켜요. 자발적으로 나서야 하는 일들, 책임의식, 보람이 중요한 일들, 우리 일요. 스위스 마을 사람들은 그걸 따졌던 거예요. 맞아. 어딘가 짓긴 지어야 돼. 우리가 책임지자. 그게 옳은 일이야. 근데 거기 돈이 들어와 버리니까 생각하는 회로 자체가 바뀌어버렸어요. 뭐가 옳은 거지에서 뭐가 나한테 이득이지? 이걸로. 일단 그렇게 돼버리면 왜 그 위험한 걸 내 앞마당에? 이게 결론이죠. 구 사장님. 저 많이 봤어요. 그 이전으로 못 돌아가는 사람들. 움직일 때마다 돈이 생기는 성과급제에 중독돼서, 책임지자 이게 옳아 그게 아예 없어져 버린 사람들. 전 구승효 사장님이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일하셨으면 좋겠어요.”

이노을의 이 이야기는 구승효의 마음을 살짝 움직인다. 병원도 일반 기업과 다를 바 없다며 경영이라는 잣대로 판단하고 이익을 내는데 집중해온 구승효. 그는 문득 이노을이 자신을 데리고 갔던 소아병동의 아기들을 떠올린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손을 꼼지락대던 그 작은 생명들. 그 생명들을 ‘서비스 산업’이라 치부하며 수익을 내자고 외치는 화정그룹 조남형(정문성) 회장의 목소리가 오버랩 된다. 구승효는 변화하고 있다. 

구승효의 변화를 보여주는 건 그가 데려온 유기견 저녁이의 이야기에서도 발견된다. 동물병원이 비보험이라 수익성이 높다는 판단 하에 유기견을 위한 봉사활동에 의도적으로 나갔던 구승효지만, 거기서 만난 유기견을 외면하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와 ‘저녁이’라고 이름 붙였던 그였다. 노을과 저녁은 그렇게 냉철하기만 할 것 같던 구승효 사장의 마음을 움직인다. 

흥미로운 건 구승효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예진우(이동욱)의 변화다. 예진우는 눈앞의 생명을 외면하지 못하는 차원을 넘어서 집착까지 보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환자의 편에 선 진정한 의사처럼 보이지만, 그 병적인 집착은 평범한 선을 넘어서고 있다. 그의 눈앞에 자꾸만 나타나는 동생 예선우(이규형)와 죽은 이보훈(천호진) 원장의 환영은 그의 비정상적인 집착을 잘 말해준다. 

그래서 오로지 환자만을 쳐다보며 살아가던 그가, 구승효의 등장과 이보훈 원장의 죽음을 계기로 병원의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한다. 그가 주경문(유재명)에게 원장 선거에 나가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에게도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원장 선거에서 주경문 대신 오세화(문소리)가 당선되지만, 그런 변화는 예진우나 주경문 모두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구승효와 예진우의 변화가 주목되는 건 <라이프>라는 드라마가 보고 있는 인간관이 특별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라이프>는 인간을 선악의 개념으로 바라보지 않고 서로 다른 입장들이 부딪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변화하는 그런 인간관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것은 <라이프>가 애초에 기획의도에서 예고했던 것처럼, 병원이라는 공간과 그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우리 몸에서 벌어지는 항원-항체 반응처럼 담겠다는 그 이야기 구조에 합당한 인간관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이 서로가 서로에게 주고받는 변화들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하나의 기업화되어가고 있는 병원이기에 경영이 필요해진 게 현실이지만, 책임과 보람 같은 것들이 중요한 이 특수한 공간이기에 그 변화에도 어떤 합의점이 있어야 한다는 게 <라이프>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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