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최강 라인업 세운 KBS

 

최근 KBS의 행보가 심상찮다. 한때 베끼기가 늘상 해오던 관행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KBS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 금요일 밤의 라인업은 한 마디로 승부수라고 해도 될 만큼 공격적이다. <프로듀사><오렌지 마말레이드> 1,2회를 잇따라 연속 편성한 것이 그것이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이 두 프로그램은 과연 KBS의 프로그램이 맞는가가 의심될 정도로 새롭고 파격적이다. <프로듀사>는 예능 드라마라는 새로운 콘셉트로 접근해 만들어진 드라마다. 서수민 CP<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 그리고 표민수 PD가 힘을 합쳤고, 그 위에 김수현, 공효진, 차태현, 아이유라는 어벤져스급 캐스팅이 이뤄졌다.

 

예능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세운 만큼 예능적인 웃음이 중심이 되면서도 예능 PD들의 리얼한 이야기들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한다. 최근 방송의 중심으로 점점 서고 있는 예능 PD들의 이야기는 다른 한편으로 보면 지금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화를 에둘러 담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예능과 드라마, 그리고 재미와 의미가 결합하는 괜찮은 퓨전의 예감이 벌써부터 물씬 풍겨난다.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이미 웹툰 팬들에게는 그 제목만으로도 기대감을 만드는 드라마다. 워낙 큰 인기를 끈 원작 웹툰이 가진 존재감을 드라마로 풀어낸다는 것이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여진구 같은 든든한 연기자가 서 있어 어떤 면에서는 <미생>처럼 웹툰 그 이상의 반응을 만들어낼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상도 나오고 있다.

 

뱀파이어와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에서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라는 이 드라마 역시 다양한 이질적 요소들을 결합해낸 퓨전 콘텐츠다. 당연히 판타지가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 위에 애절하면서도 달달한 사랑이야기가 얹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대적 배경도 조선에서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고 있어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다이내믹한 전개를 보일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 시간대에 이런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질 수 있게 된 것은 KBS가 편성을 새롭게 꾸미면서 금요일 밤에 마련해 놓은 이른바 돌연변이존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든 예능이든 교양이든 그 때 그 때 맞춰 자유롭게 들어가게 만들어놓은 이 시간대가 있어 <오렌지 마말레이드> 같은 드라마가 금요일 밤에 연달아 세워질 수 있었던 것. 여기에 <프로듀사>는 예능과 드라마를 넘나드는 장르적 혼용을 갖고 있어 자연스럽게 그 앞 시간에 배치될 수 있었다.

 

이것은 최근 몇 년 동안 보기 힘든 KBS의 승부수가 아닐 수 없다. 금요일 밤 타 지상파와 케이블에 치이며 존재감을 좀체 보이지 못했던 KBS의 이런 행보는 지금까지와의 흐름과는 사뭇 이례적이라 주목된다. 과연 이 승부수는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을까. 만일 이것이 괜찮은 성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KBS의 앞으로 전개될 행보에 꽤 괜찮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경규를 보면 예능의 흐름이 보인다

 

이경규가 SBS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많았다. 딸 예림이와 함께 출연한다는 사실은 이런 우려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마치 이 프로그램이 예림이의 연예인 만들기처럼 비춰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이런 오해는 사라졌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에 담겨져 있는 것처럼 아빠의 삶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물론 그 아빠를 보는 시선은 딸의 시선이지만.

 

이경규(사진출처:KIBS)

하지만 필자를 더 놀라게 만든 건 이런 기대와 우려가 아니라 이경규의 행보 그 자체였다. 사실 이경규는 KBS <남자의 자격> 이후에 그리 주목되는 프로그램에 등장하지 못했다. SBS <힐링캠프>는 이미 토크쇼 트렌드가 사라진 현재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종영된 KBS <가족의 품격>은 지상파에서의 집단 토크쇼를 선보였지만 역시 한계를 보였다. 그런데 그가 다시 <아빠를 부탁해>를 통해 확실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경규는 MBC <일밤>과 함께 버라이어티쇼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개그맨이었다. 당대에 이경규는 스튜디오 안에서 하는 토크쇼에서도 펄펄 날랐고, ‘양심냉장고몰래카메라’, ‘이경규가 간다같은 현장으로 뛰어 들어가는 프로그램에서도 확고한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버라이어티쇼가 고개를 숙이고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열리자 이경규는 다시 이 새로운 트렌드에 뛰어들었다.

 

SBS <이경규 김용만의 라인업>MBC <무한도전>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쓰디쓴 실패를 맛보게 했다. 하지만 이경규는 KBS <남자의 자격>으로 다시 리얼 버라이어티쇼 트렌드에도 안착하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빠를 부탁해>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새롭게 열린 리얼리티쇼 트렌드 속으로 그는 들어오고 있다.

 

그가 예능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트렌드에 따라 변화해왔다. 과거 버라이어티쇼 시절에는 말 그대로 캐릭터를 보여줬다면,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절에는 그 캐릭터에 진정성을 얹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아빠를 부탁해>라는 리얼리티쇼에서는 그간 우리가 몰랐던 그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에서 버럭대던 그의 캐릭터는 온데간데없고 딸 예림이와 보내는 조금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친숙해져가는 그 과정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다.

 

버라이어티쇼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그리고 다시 리얼리티쇼로 적응해가는 이경규의 모습을 보고 있지만 이 예능인이 왜 독보적인가를 깨닫게 된다. 사실 이런 적응력을 보이는 예능인은 거의 없다. 최고의 MC로 추앙받는 유재석, 강호동도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가고 리얼리티쇼가 열리는 지금 현재, 이런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아닌가.

 

물론 지금 당대로서는 이경규에 대한 호불호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훗날 우리 시대를 회고하게 된다면 분명 이경규라는 이름 석 자가 가진 존재감은 독보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토록 급변하는 트렌드의 변화 속에서도 밀려나지 않고 자기만의 영역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지 않은가. 그의 행보는 많은 후배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이만한 파괴력 가진 라인업 찾기 힘들다

 

<미생><삼시세끼>가 모두 종영했지만 이 프로그램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끝이 없다. <미생>은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윤태호 작가가 시즌2의 연재를 시작할 거라는 이야기는 즉각 기사화되어 인터넷을 달군다.

 

'미생(사진출처:tvN)'

웹툰과 드라마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이 시즌2가 드라마화 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물론 CJ E&M과 시즌2 계약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웹툰 시즌2가 작품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드라마화가 결정된다고 해도 제작상의 문제, 이를테면 캐스팅이나 비용적인 문제 같은 것들이 구체적으로 논의된 이후에나 확실한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tvN은 좀체 <미생>의 그 화제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양새다. 예능판 패러디로 <미생물>2부작으로 예정되어 있는 것은 여러모로 <미생>이 만들어낸 tvN 콘텐츠에 대한 존재감을 계속 이어가려는 의도다.

 

이런 상황은 <삼시세끼>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망한프로그램인 양 등장했지만 의외로 엄청난 성과를 낸 <삼시세끼>는 본래 봄 여름 가을 겨울 시즌제로 기획되었다. 따라서 가을 시즌이 끝나고 어느 정도는 휴지기를 가져가는 게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삼시세끼>는 여기서 쉬지 않고 스핀오프로서 어촌편을 기획해 촬영에 들어갔다. 차승원, 유해진, 장근석 같은 출연자들의 면면만 봐도 이 어촌편은 거의 블록버스터급으로 진화한 모습이다. 정선에서 했던 <삼시세끼>가 소소한 일상의 특별함을 잡아냈다면, ‘어촌편은 그 흐름을 이어가면서도 바다가 주는 그 힘을 느끼게 해줄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건 이 <삼시세끼>가 어촌편의 스핀오프를 제작함으로써 tvN이 이미 금요일 저녁에 구축해 놓은 시간대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지난 <미생>, <삼시세끼> 그리고 <슈퍼스타K6>로 이어지는 황금의 tvN 라인업은 시청자들의 금요일 밤 시청 행태까지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지상파를 찾기보다는 tvN에 고정되는 효과를 가져왔던 것.

 

<미생><삼시세끼>가 모두 시즌을 마감했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그 힘을 유지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로그램의 성패는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편성시간대의 헤게모니를 가져오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tvN 입장에서는 <미생><삼시세끼>의 흐름을 어떻게든 이어나가야 하는 입장일 수밖에 없다.

 

과연 <삼시세끼> 어촌편은 그 흐름을 계속 잇게 만들 수 있을까. <미생> 신드롬이 만들어낸 tvN표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정도 이어질 수 있을까. 만일 <미생>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또 한 번의 <삼시세끼><미생>의 황금 라인업은 가능할 수 있을까. <미생><삼시세끼>tvN이 못 버리는 카드가 된 이유다.

 

지상파 압도 케이블, 그 진화를 확인할 수 있는 금요일

 

tvN에 있어서 금요일은 각별한 시간이다. 케이블이 지상파를 압도할 수 있다는 걸 처음 보여준 프로그램이 <슈퍼스타K2>였으며, 그 프로그램이 방영된 시간대가 금요일이기 때문이다. 그 첫 가능성을 보여준 이후 금요일은 tvN의 전략적 편성시간대가 되었다. 가능성 있는 강력한 프로그램들이 금요일 밤에 들어와 쏠쏠한 재미를 봤다.

 

'미생(사진출처:tvN)'

나영석 PD<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은 모두 금요일 밤에 편성되어 크게는 10%에 달하는 시청률을 냈고, 신원호 PD<응답하라 1997>이 화요일에 편성되어 7%에 가까운 시청률을 내자 <응답하라 1994>는 금요일 토요일에 편성되었다. <꽃보다> 시리즈와 <응답하라> 시리즈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하면서 두 프로그램이 나란히 금요일 밤에 연달아 방영되는 라인업의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지금 현재 tvN의 금요일 밤 라인업을 보면 확실히 이 케이블 채널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다. <미생>에 이어 <삼시세끼> 그리고 <슈퍼스타K6>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좀체 채널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거기에는 지상파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독특한 tvN만의 색깔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미생>은 사실 <응답하라> 시리즈 이후 로맨틱 코미디 형태의 드라마들이 지나치게 많이 쏟아져 나오면서 하향곡선을 그리던 tvN 드라마에 새로운 전기를 주고 있는 작품이다. 사랑타령에서 벗어나 <미생>은 생생한 직장생활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큰 공감을 얻고 있다. 거기에는 장그래(임시완)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의 고군분투는 물론이고 오과장(이성민)으로 대변되는 중년의 고달픔도 들어 있다. 공감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것이다.

 

<삼시세끼>는 이제 나영석 PD 브랜드가 자리를 잡았다는 방증이다. <꽃보다> 시리즈가 아니라도 이제 나영석 PD가 만든다는 사실만으로도 첫 회에 5% 대의 시청률을 가져가는 일이 가능해졌다. 물론 믿고 보는 신뢰만큼 프로그램의 재미 또한 확실하다.

 

<삼시세끼>는 이서진과 옥택연이 강원도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말 그대로 삼시세끼를 해결하는 단순한 구조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이제 이 단순함 속에서도 촘촘한 재미를 찾아내는데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윤여정을 비롯해 신구나 백일섭 같은 <꽃보다> 시리즈의 출연자들을 적절히 투입시키는 건 하나의 나영석 월드를 구축해낸다. 그 안에서 우리는 <꽃보다> 시리즈의 묘미를 여전히 느끼며 <삼시세끼>라는 새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슈퍼스타K6>는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최초로 이 형식을 정착시킨 프로그램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다. 이번 <슈퍼스타K6>에는 유독 실력자들이 많이 참여해 그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곽진언과 김필, 임도혁, 장우람 같은 개성 강한 실력자들이 포진해 저마다의 색깔 있는 노래를 선사하고 있다.

 

<미생>, <삼시세끼> 그리고 <슈퍼스타K6>. <미생>이 보여주는 건 tvN표의 드라마가 이제는 지상파 드라마의 완성도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며, <삼시세끼>가 보여주는 건 나영석PD라는 브랜드 예능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케이블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보여준 프로그램으로서 <슈퍼스타K6>가 여전히 건재하게 살아남아 있다. tvN 금요일 밤의 라인업은 그간 이 케이블 채널이 어떤 진화를 해왔는가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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