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떴'의 창조적 해체가 바람직한 이유

'패밀리가 떴다(이하 패떴)'가 1기의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새로운 '패떴'은 오는 25일 첫 촬영에 나선다고 한다. 지난 2008년 6월17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한때 30%가 넘는 시청률로 일요 버라이어티의 수위를 지켜왔으나 거듭된 악재와 패턴의 식상한 반복으로 내리막을 걷던 '패떴'은 이제 20개월의 대장정을 마치고 2기로 재정비되는 시점이다. 과연 '패떴1'의 해체와 '패떴2'의 시작은 바람직한 것일까.

먼저 왜 '패떴'이 이런 결과에 봉착했는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패떴'에 쏟아졌던 많은 논란들과 그 논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제작진들, 그리고 캐릭터 운용의 실패 등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1박2일'과 비교해 '패떴'은 위기대처능력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패떴'은 '1박2일'과 같은 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프로그램 형식은 극히 다르다. 먼저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형식이 가진 특징을 이해한다면 이 두 프로그램이 왜 이다지도 다른 길로 갔는가를 알 수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가진 강점에서 빼놓은 수 없는 것이 바로 캐릭터의 성장 스토리다. 여타의 예능과 달리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캐릭터가 서고, 그 캐릭터가 매번 미션을 수행하면서 점차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의 몰입성을 높인다.

그런데 성장 스토리에는 조건이 있다. 시작하는 캐릭터들이 낮은 위치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낮은 곳에 있어야 성장 가능성이 많아지고 그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은 지속적인 시청을 유도해낼 수 있다.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이 평균이하에서 시작해서 작금의 위치에까지 올라온 것과, 이제 성장해버린 상황에서 더 이상 캐릭터의 성장스토리로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다. '무한도전'은 이제 프로그램 형식 실험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1박2일' 역시 시작 지점에서 그 출연진들은 그다지 최고의 위치에 서 있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강호동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상태였지만, 김C나 은지원, 이수근, MC몽, 그리고 이승기까지 탑의 위치에 서 있는 인물들은 아니었다. 그들이 첫 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인 장소가 '톨케이트'였고 첫 회부터 먹을 것까지 자급자족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패떴'이 시작한 마치 시상식 같은 화려함은 사뭇 비교되는 지점이다.

'패떴'은 이들 리얼 버라이어티와는 방향 자체가 달랐다고 달라야만 했다. 즉 출연진들이 레드카펫 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정도로 모두 탑 연예인들이었다. 유재석, 이효리는 물론이고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김수로, 아이돌 대성, 예능감이 살아나고 있던 윤종신이 그들이다. 여기에 초창기 멤버였던 이천희와 박예진은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즉 '패떴'은 '1박2일'이 낮은 위치에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그 스토리와는 정반대로, 높은 위치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전략을 취했고, 그것은 주효했다.

요정 같던 이효리가 몸빼를 입고, 아이돌 대성이 유재석과 함께 덤 앤 더머가 되며, 김수로는 이천희와 짝을 맞춰 김계모와 천데렐라가 되고, 박예진은 수수해보이는 이미지에 살벌함을 더했다. '패떴'은 탑의 위치에 서 있는 이들을 차츰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전략으로 큰 웃음을 주었다. 이것은 '1박2일'의 후발주자로서 차별화를 위해서도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1박2일'과 비교하면서 '패떴'은 왜 그렇게 못하냐고 비판하지만, 사실 그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1박2일' 같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초창기 이천희와 박예진에 이목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타 멤버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덜 기대하게 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차별화에 성공한 형식은 또한 내적인 문제도 갖고 있었다. 그것은 탑 연예인이라는 지점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형식의 폐쇄성에서 비롯된다. '패떴'은 '1박2일'과 달리 외부인과의 접촉이 거의 없이 패밀리들간의 이야기로 구성되는데 그 이유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자리한다. 즉 대외적인 인물들과 공공연히 접촉하는 것이 탑 연예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패떴'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 "아예 프로그램을 찍을 수 없을 정도"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이 폐쇄성은 고정 멤버들의 이미지 소비를 빨리 가져오게 만든다. 저들끼리 밥 해먹고 게임하는 형식의 반복은 그것이 늘 같은 멤버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쉬 식상해진다. 만일 현지인들이나 제작진과의 대결구도 같은 것을 끌어들여 변수를 만들어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지만 '패떴'은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따라서 '패떴'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게스트의 활용이다. 게스트를 변수로 끼워 넣어 상수의 식상함을 넘어서려 했던 것.

이렇게 보면 지금껏 '패떴'이 걸어온 길이 애초 형식 속에서 어느 정도는 결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박2일'이나 '무한도전' 같은 성장 스토리형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위기가 그 성장의 정점에 설 때 오는 것처럼, '패떴' 같은 정점에서 추락하는 스토리를 가진 쇼의 위기는 한 치의 신비감 없이 보여줄 것을 다 보여준 지점에서 오게 된다. 즉 어떤 프로그램이나 이야기 구조를 갖는 한, 언젠가는 위기가 오고 결국은 사라져가는 운명을 갖게 된다. 다만 '패떴'은 그 형식의 폐쇄성 때문에 캐릭터 소비가 그만큼 빨라 그 사라지는 운명도 빨리 오게 되었던 것뿐이다.

그러니 '패떴'이 가진 이런 형식적인 특징을 감안했을 때, '패떴1'의 해체와 '패떴2'의 시작은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패떴'은 그 형식적 특성상 새로운 신비감을 가진 캐릭터들이 계속 투여되어야 지속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멤버로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패떴2'는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패떴'이라는 형식 자체가 힘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힘을 극대화해낼 수 있는 새로운 인물들의 투입은 그만큼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새로운 인물들이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나가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프로그램의 폐쇄성을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이나 리얼 버라이어티로서의 진정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숙제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인물로 시작하는 '패떴2'가 주는 기대감이 결코 작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생고생 버라이어티, ‘1박2일’, ‘남자의 자격’, ‘천하무적 야구단’

“버라이어티 정신!” ‘1박2일’이 틈만 나면 외치는 이 구호가 의미하는 건 뭘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들이 생고생을 하더라도 다양한 웃음을 줄 수 있으면 결행한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물을 보면 입수한다” 같은 강호동이 이른바 ‘예능의 정석(?)’이라고 주장한 것이 바로 그 버라이어티 정신에 해당한다. 그런데 ‘1박2일’의 성공에 자극받은 것일까. 최근 들어 KBS 주말 예능의 ‘버라이어티 정신’이 눈에 띈다. ‘1박2일’은 물론이고, ‘천하무적 야구단’, ‘남자의 자격’이 그 생고생 버라이어티의 진수를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다.

시작부터 야생 버라이어티를 주창한 ‘1박2일’은 생고생 버라이어티의 전형이 되었다. 한겨울에 야외에서 노숙을 일삼고, 엄동설한에 얼음을 깨고 입수하며, 한 여름에 잠바를 껴입고 촬영하고, 늘상 밥을 챙겨주지 않는 야생의 법칙 속에서 굶주림과 독기가 얼굴에서 피어날 때, ‘1박2일’은 그 헝그리 정신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세울 수 있었다. 자주 굶다보니 이제는 라면 한 그릇이 오히려 고마운 지경에 이른 이들은 ‘고통의 달인’ 김C가 표상하는 것처럼 이제는 그 고통을 즐기는 단계에 이르렀다.

‘1박2일’의 이 야생 정신이 대단하다 여겨지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버라이어티쇼의 정점에 오른 지금에도 여전히 이 생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멤버들의 자세에서 읽어낼 수 있다. 야생 정신이 강조되는 이유는 명백하다. 말 그대로 가공하지 않은 날 것의 웃음과 감동을 전해주겠다는 의지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리얼을 강조함으로써 지금껏 예능 프로그램이 스포츠를 다루던 것과는 확연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지독하다 싶을 정도의 훈련 과정과 리얼한 경기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헝그리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김하늘과 마르코가 벌로 타이어를 매고 달리고 화생방 가스실에 들어가는 장면이나, 경기도중 김하늘이 실제로 부상을 입을 정도로 열심히 뛰는 모습은 그 버라이어티 정신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실제 야구선수들에게 코치를 받으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이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은 그 훈련이 가진 리얼함을 말해주는 증거들이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무늬만 야구단’이 아닌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야구를 세워두고 엉뚱한 짓으로 웃음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야구 그 자체가 가진 재미를 프로그램의 중심에 세워두고 있다. 계속되는 실전 경기들의 연속은 야구의 묘미를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한편으로는 김C 같은 입담꾼을 해설자로 붙여 예능으로서의 맛을 살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프로그램에 임하는 출연진들의 살아있는 눈빛이 앞으로의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한편 ‘남자의 자격’은 이제는 나이 들어 몸이 따라주지 않는 아저씨 출연진들의 도전이 버라이어티 정신을 보여준다. 초창기 24시간 동안 했던 금연캠프에서 실제로 출연진들은 금단현상 앞에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노출시켰고, 이윤석은 룰을 어긴 이유로 한겨울에 개울물에 입수하는 ‘예능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2PM의 춤을 배우는 모습은 그것이 춤인지 재활치료인지 알 수 없는 영상을 만들어냄으로서 큰 웃음을 주었다. 여행시즌을 맞아 석모도로 향하는 7인용 자전거 여행은 또다른 생고생 버라이어티의 전조를 예감케 하고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대세가 되어버린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그 초창기의 리얼 정신을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적당한 판타지를 자극하는 설정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 건, 그만큼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정착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장의 설정이 주는 자극보다는, 날 것 그대로의 리얼이 조금은 밋밋해도 여운이 오래가는 이유는 뭘까. KBS 주말 예능의 야생을 승부수로 띄우는 모습은 그만큼 의미 있어 보인다.

이제 리얼은 기본, 그 이상이 요구되는 버라이어티의 세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무한도전’의 정형돈과 하하가 어색한 관계를 일상적으로 보여주거나, 유재석이 실제 결혼할 상대를 프로그램에서 얘기하는 것만 해도 쇼킹한 일이었다. ‘1박2일’이 우연히 들른 학교에서 하게된 게릴라 콘서트는 실로 “일이 커졌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이천희가 천데렐라로 구박을 받고 박예진이 닭을 잡는 모습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되었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가상부부가 된 알렉스가 신애와 헤어지게 되자 스튜디오에 초청해 ‘화분’을 불러주는 장면은 그 자체로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것과 똑같은 장면이 TV로 송출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시청자들은 심드렁한 얼굴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명칭 자체가 구태의연한 것이 되어버렸으니까. 심지어 토크쇼조차 리얼 토크를 지향하는 지금, 사실상 모든 버라이어티쇼에 리얼은 기본이 되어버렸다. 과거 리얼함 하나만으로 승부하던 시대는 지나고 이제 버라이어티쇼는 리얼 그 이상이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이미 정착된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은 이 변화된 상황을 어떻게 적응해냈을까.

‘무한도전’, 사회적 차원으로 웃음의 스펙트럼 확장
‘무한도전’은 그저 웃음을 주는 쇼 프로그램의 차원을 넘어섰다. 이 대한민국 평균이하의 캐릭터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할 분야들을 조명해주는 마스코트가 되었다. ‘서울 디자인 올림픽 2008’, 에어로빅을 통한 ‘전국체전’출전,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 등등. ‘무한도전’은 도전 분야와 그 도전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연결시키며 공익적 성격을 버라이어티쇼와 성공적으로 접목해냈다. ‘일자리가 미래다’편 역시 작금의 어려운 취업 상황을 각 출연진들의 일자리 체험으로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한도전’은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하나의 장르로 지칭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다양한 실험적 도전들을 하면서 버라이어티쇼가 가진 웃음의 스펙트럼을 확장시켰다. ‘쪽대본 드라마’특집 편 같은 패러디쇼를 통해 풍자가 갖는 신랄한 웃음을 만들었고, ‘봅슬레이편’같은 다큐적 성격까지 가진 리얼리티쇼를 통해 감동적인 웃음을 선사했다. 한편 ‘일자리가 미래다’편 같은 어려운 사회 속에서의 따뜻한 미소 또한 잊지 않았다. ‘무한도전’은 이제 웃음에 대한 강박의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적으로도 작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웃음에 도전하고 있다.

‘1박2일’, 게스트를 통한 새로운 여행형식 발굴
한 때 각종 비판에 휩싸이며 곤두박질치던 ‘1박2일’은 특유의 뚝심을 발휘하면서 동시에 외부 출연진을 끌어들여 그 독특한 다큐적 버라이어티의 재미를 되살렸다. 박찬호가 함께 했던 ‘명사와 함께 하는 1박2일’은 자칫 단순한 구조로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었던 ‘1박2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형식 자체도 가이드 역할을 하는 박찬호라는 컨셉트를 넣으면서 변화를 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출연진들의 복불복과 장기자랑에 집중되었던 카메라의 시선을 게스트인 박찬호에 집중시킴으로써 지금껏 보지 못했던 ‘1박2일’의 재미를 이끌어냈다.

최근 실험적인 시도로 호평을 받은 ‘시청자와 함께 하는 1박2일’ 역시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80여 명의 시청자와 함께 떠나는 그 새로운 형식 속에서 딱밤 태후 윤영주, 국립국악고 소녀시대 같은 새로운 인물의 재미가 자연스럽게 연출될 수 있었고, 축하공연에서는 백지영과 한민관을 포함한 개콘 멤버들의 출연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시청자와 함께 하는 1박2일’과 ‘박찬호’특집의 성공이 말해주는 것은 이제 ‘1박2일’은 새로운 여행형식의 발굴과 함께 새로운 게스트들을 통한 변화가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패밀리가 떴다’, 새로운 관계의 발굴
‘패밀리가 떴다’는 독특한 관계 설정으로 짧은 기간 안에 버라이어티쇼의 강자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대본 유출과 함께 바로 그 반복된 관계의 변화 시점을 놓치게 되면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김종국 같은 새로운 멤버의 가세와 함께 초창기 인기를 끌었던 이천희와 박예진이 관계의 중심 축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지나치게 패밀리 중심이 아닌 게스트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움직이며 본래 이 프로그램의 힘이었던 패밀리 간에 벌어지던 관계의 재미가 흐트러졌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이 쇼의 사실상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유재석과 이효리가 보여준 발군의 노력 덕분이다. 이효리는 김종국과 어색한 관계를 통해 재빨리 그를 패밀리 구성원 속으로 끌어들였고, 유재석은 반복된 형식, 즉 게임과 밥해먹기의 반복 속에서 즉흥적인 상황극과 애드립으로 그 단조로움을 넘어서게 만들었다. 지금 현재 ‘패밀리가 떴다’는 박예진과 김종국의 조작스캔들, 김수로와 윤종신의 어색한 형 동생 관계 같은 새로운 관계들을 정립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 결혼했어요’, 젊어진 커플의 성장 스토리에 주목
‘우리 결혼했어요’는 1기가 보여주었던 그 연예인들의 가상결혼이라는 그 자체의 재미가 차츰 시들해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2기에서는 쌍추커플이나 개똥이네 커플 같은 새로운 인물들을 끼워 넣었지만 그 반복적인 상황은 재미를 반감시켰다. 3기로 넘어오면서 ‘우리 결혼했어요’가 시도하는 것은 가상부부 상황에 어떤 성장 스토리를 끼워 넣는 것이다. 강인-이윤지 커플은 신혼여행으로 떠난 일본 배낭여행을 통해 가난한 커플의 상황이 주는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고, 태연-정형돈 커플은 초기 비판적 시선을 잠재우며 태연을 아내로 그리고 소녀시대 멤버를 처제로 둔 정형돈을 아저씨들의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커플들의 이야기가 젊어진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강인-이윤지 커플은 마치 대학생 커플처럼 젊고 풋풋하지만 경제력으로 쪼들리는 모습을 통해 그 현실적인 문제에 접근했다. 이것은 태연-정형돈 커플이 가진 나이 차이라는 벽에서도 마찬가지다. 태연의 생기발랄한 모습이 어떻게 나이든 아저씨 같은 정형돈의 캐릭터와 소통할 것인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처럼 인물들의 관계가 성장하고 발전해 가는 이야기는 ‘우리 결혼했어요’가 가진 새로운 재미를 끌어내며 1기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도 그 리얼이라는 딱지를 떼내도 좋을 만큼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리얼은 모든 TV 프로그램의 바탕이 된 상황에서 그 자체로는 새로울 것이 없어져 버렸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 버라이어티쇼는 리얼을 바탕으로 삼아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얹어야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게 되었다. 리얼로 무장한 버라이어티쇼들의 새로운 진화들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리얼과 가상 사이, 줄타기하는 버라이어티쇼

특정 상황을 던져놓고 대본 없이 다채로운 웃음을 만드는 것을 리얼 버라이어티쇼라고 정의한다면 이것은 그 효시라 일컬어지는 '무한도전'이 탄생하기 한참 전부터 이미 존재한 형식이라 해야 할 것이다. '명랑운동회'같은 게임을 하는 버라이어티쇼가 그것이다. 거기에는 짜여진 대본은 없지만 주어진 상황(게임종목)이 있고 그 상황은 자연스런 몸 개그를 유도해내면서 큰 웃음을 유발한다. 여기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당대에는 스타라는 이름에 걸맞는 신비주의를 구비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화려한 의상을 벗어던지고 똑같은 운동복을 걸친 채 사정없이 엎어지고 구르는 그 모습은 대단한 파격이라 할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무엇이 리얼하다는 것일까
따라서 위의 정의는 틀렸다. 우리가 리얼 버라이어티라 부르는 것 속에는 이러한 가상의 상황이 아닌 좀 더 일상 속에서 묻어나는 자연스러운 웃음을 상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명랑운동회'의 계보를 잇는 '캠퍼스 최강전'이나 '출발 드림팀' 같은 게임 버라이어티는 리얼 버라이어티와는 차별화되게 된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리얼 버라이어티는 한정된 공간에서 같은 컨셉트로 반복되던 여타의 버라이어티쇼와도 차별화된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매체적 관점에서 얘기한다면 그것은 단연 소형화된 고화질 카메라 수십 대를 말해야 할 것이다. 수십 대의 카메라들은 스튜디오를 벗어나 출연진들의 일상 속에서 웃음을 건져낸다.

어떤 면에서 이 카메라는 출연진들의 실제생활을 잡아내는 몰래카메라의 역할도 하게 된다. 그네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포착되고 그 다채롭고 돌발적인 웃음의 영상들을 편집을 통해 구성한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진짜 속성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출연진들의 일상까지 파고들어와 그것을 거침없이 까발리고, 굳이 유재석이 카메라 앞에 서서 "국내 최초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외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무한도전'이 다른 쇼들에 비해 리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리얼'이란 말은 애매모호하기 그지없다. 그것이 '리얼리티쇼'가 말하는 리얼을 뜻한다면 이것은 분명 잘못된 표현이다. '무한도전'의 덜 떨어진 캐릭터는 설정일 뿐, 실제로 박명수는 '하찮은' 사람이 아니며 정준하는 '바보'가 아니고 노홍철은 '돌아이'가 아니다. 따라서 이 '리얼'이란 말은 현실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 다만 '쇼가 리얼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마치 드라마처럼 이 쇼도 리얼리티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뿐일까. 그러면 명쾌하겠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 이들이 하는 도전과제 중, '전국체전'이나 '디자인대전'에 나가는 것은 현실에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위치한 자리를 우리는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은 리얼과 가상 사이가 한없이 모호해지는 그 지점이다. '지못미'편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캐릭터 분장(쿵푸팬더의 정준하와 조커의 박명수 같은)을 하고 거리로 나온 그 상황은 바로 그 지점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를 준다. 그것은 리얼(거리)과 가상(캐릭터로 분한 무한도전 멤버들)이 만나는 지점의 긴장감을 웃음으로 전화시킨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용어는 이 리얼(현실)과 버라이어티쇼(가상)가 조합된 이율배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한도전'이 포문을 연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전성시대에 뛰어든 후발주자들은 그렇다면 이 현실과 가상 사이의 어느 지점에 발을 디디고 있을까.

다큐 같은 '1박2일', 시트콤 같은 '패떴' 그 가능성과 한계
'1박2일'은 초기 야생을 주창하면서 전국의 오지를 찾아 나섰다. 독도와 가거도에서 보여준  '1박2일'의 면모는 이 버라이어티쇼가 가상보다는 리얼에 더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수근이 오래도록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그저 국민일꾼이나 기사로 불린 것은 이 버라이어티쇼의 캐릭터들이 어떤 설정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저 지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드러내준다. '1박2일'은 장소와 장소에 겪을 어떤 상황에 대한 기회를 제공할 뿐, 그 모든 여정은 출연진들이 채워나간다는 것을 어떤 강령처럼 지키고 있었다.

'1박2일'이 때론 예능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그만큼 가상설정이 주는 억지웃음보다 리얼 그 자체가 주는 웃음을 '1박2일'은 추구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1박2일'은 예능, 즉 쇼이지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따라서 이 강한 리얼 추구가 가진 자가당착은 다큐적 감동모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복불복 같은 재미있는 설정 또한 반복되자 식상한 아이템이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1박2일'은 예능으로서는 치명적인 '재미가 없다'는 비판까지 받게 되었다.

'1박2일'이 이렇게 급상승에서 급하락을 경험하게 된 것은 다분히 이 리얼과 가상 사이에서 주춤하던 사이에 가상을 들고 나온 '패밀리가 떴다'의 영향이 크다. '패밀리가 떴다'는 처음부터 '1박2일'이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것과는 정반대로 폐쇄된 지역에서의 가상놀이로 일관했다. 따라서 이 쇼의 재미는 대민접촉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패밀리들 간의 관계에서 나오게 된다. 그 관계는 다름 아닌 설정이다. 캐릭터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어진다.

처음부터 유재석과 이효리는 국민남매였고, 조금 지나자 유재석과 대성은 덤 앤 더머로 이천희와 김수로는 천데렐라와 김계모로, 윤종신은 어르신으로, 박예진은 달콤살벌 예진아씨로 활동하면서 그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로 웃음을 주었다. '패밀리가 떴다'는 마치 매번 가족들이 등장해 알콩달콩 사랑하고 때론 싸우면서 화해하는 그 과정에서 재미를 주는 가족드라마처럼, 매번 같은 상황, 즉 놀러가서 놀고 밥해먹고 일어나서 약간의 일을 거들어주는 그 반복적인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재미를 물고 늘어진다.

'1박2일'의 리얼이 주는 그 생고생이 불편한 상황에서 '패밀리가 떴다'는 가상이 주는 달콤한 편안함을 연출하며 급상승한다. '1박2일' 속에서 군고구마 한 개는 배고픔을 이기기 위한 생존을 의미하지만, '패밀리가 떴다'에서 그것은 현실과는 아무 상관없는 잠자리 순위경쟁의 재미를 의미한다. 이 극단적인 차별화는 실제로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 힘겨워진 현실과 맞물리며 마비적인 가상의 손을 들어준다. '1박2일'이 충남 예산 예당저수지에서 벌인 밤낚시투어에서 예능이라기보다는 낚시방송이 되어가는 상황에 이승기가 "이렇게 해서 우리 방송할 수 있는 거예요?"하고 걱정하는 것은 실제상황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이수근과 지상렬이 그 차가운 물속에 뛰어드는 장면은 이 리얼을 표방하는 버라이어티도 어떤 부분에서는 가상설정을 끼워 넣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패밀리가 떴다'가 주는 가상의 달콤함은 앞으로도 계속 리얼의 우위에 서서 갈 수 있을까. 그것이 유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패밀리가 떴다'의 가상이 주는 위험성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제주도로 간 패밀리들은 세 팀으로 나누어 저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재석, 대성, 이천희에게 똑같은 상황을 부여했다. 유재석은 김종국의 완력에, 대성은 윤종신과 김수로의 나이에, 이천희는 기센 여자들의 등쌀에 밀려 시집살이를 하는 이 설정의 중첩은 물론 웃음을 줄 수 있겠지만 버라이어티의 자연스러움을 없애는 독이 되기도 한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부침, 드라마를 닮았다
이제 서서히 모든 것이 마치 드라마 속 삼각 사각관계가 주는 재미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짜여진 설정으로 외면 받았던 멜로드라마의 운명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소위 전문직 드라마의 부상은 이 멜로드라마가 가진 설정보다는 리얼리티를 추구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패밀리가 떴다'는 지나치게 리얼을 표방한 '1박2일'이 위기를 맞은 것처럼, 지나치게 가상을 표방하면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리얼 버라이어티는 드라마를 닮아가고 있다. 거기에는 캐릭터가 있고 상황에 대한 스토리가 있다. 그 드라마의 두 경향이 판타지를 자극하는 멜로드라마와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전문직 드라마로 나뉘듯이, 리얼 버라이어티도 가상을 끄집어내는 '패밀리가 떴다'나 '우리 결혼했어요'와, 리얼을 주창하는 '1박2일'로 나뉘고 있다. 전문직드라마가 호평을 받지만 너무 전문적으로 갈 때 시청률이 따르지 못하며, 멜로드라마가 시청률은 따르지만 너무 설정의 멜로로 흐를 때 비난받는 것처럼, 리얼 버라이어티도 지금 이 리얼과 가상 사이에 놓여진 줄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드라마나 예능에서 반복되는 리얼과 가상은 TV가 본래부터 갖고 있던 두 얼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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