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에 빠진 리얼 버라이어티에 ‘무한도전’이 시사하는 점


요즘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은 매너리즘이라는 난관에 봉착해있다. 지난 1년 간 가장 주목을 끌었고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1박2일’은 어느 순간부터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연예인들의 가상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버라이어티쇼로 끌고 들어와 순식간에 화제를 낳았던 ‘우리 결혼했어요’ 역시 똑같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현재 일요일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삼국지에서 ‘패밀리가 떴다’가 수위에 오른 것은 그 새로운 쇼가 가진 재미가 일조한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경쟁 프로그램들의 매너리즘이 준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벌써부터 이 프로그램의 미래 역시 여타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무형식이 오히려 ‘무한도전’을 살렸다

그런데 이즈음 생각해봐야할 것이 있다. 2년 여 넘게 지속되어 오면서 물론 몇 번의 매너리즘은 있었지만 그 어려움을 그 때마다 극복해내고 다시 정상으로 올라선 ‘무한도전’은 어떤 비책이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매년 반복되는 시청률 하강과 상승곡선이지만 여름 비수기를 지나 ‘무한도전’은 이제 다시 성수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괴력이 가능한 걸까.


흔히들 ‘무한도전’의 최고 가치로서 끝없는 도전정신을 꼽는데 주저할 사람이 있을까. 새로운 형식실험은 물론이고, 시류에 맞는 포맷구성(예를 들면 ‘놈놈놈’의 패러디 같은) 혹은 소재선택(태안을 소재로 한 ‘태리비안의 해적’ 같은)을 이 프로그램처럼 끝없이 시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느 정도의 패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패턴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무형식’의 형식을 ‘무한도전’이 취하고 있다 일컬어지는 건 그 때문이다.


바로 이 무형식의 형식은 매번 새로운 실험을 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무한도전’의 도전 상황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도대체 그 피곤함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효율성의 문제 또한 제기되었다. ‘무한도전’의 성공한 한 형식을 가져가면 거의 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것은 여행 형식을 가져와 정착했던 ‘1박2일’을 통해 입증되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늘 새로운 형식을 다시 고민한다. 즉 쌓아놓은 유리한 입장을 버리고 제로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형식의 버라이어티, 형식 속 이야기의 버라이어티

김태호 PD 스스로도 고통을 호소했듯이,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하락세를 보일 때 가장 먼저 지목된 이유가 바로 이 무형식의 도전 상황, 과도한 피곤함이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반면 여행이라는 형식을 가져온 ‘1박2일’은 적어도 이 형식 자체에 대한 고민은 적을 수 있었다. ‘1박2일’이 계속해서 재미있는 소재와 아이템들을 끄집어내 단기간에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반복할 수 있는 형식이 있다는 것과, 그를 통한 학습효과가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1박2일’의 성공사례는 마치 ‘무한도전’처럼 매번 새로운 형식을 고민해야할 것 같은 불가능해 보이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도전 상황 속에서 어떤 대안을 가능하게 만든다. 여행 같은 ‘될 만한 아이템’을 가져와 그 형식 안에서 반복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결혼을, 그리고 ‘패밀리가 떴다’가 시골체험을 아이템으로 가져왔고, ‘무한도전’이라면 1회분에서 3회분 정도의 분량으로 끝낼 아이템을 이 프로그램들은 매번 반복한다. 이렇게 되자 ‘무한도전’이라면 상대적으로 작은 분량 속에서 보여주지 못했을 좀 더 아기자기한 디테일들이 이들 프로그램 속에서는 가능하게 된다.


‘무한도전’이 매번 형식의 버라이어티를 추구했다면, 후발주자로 등장한 이들 프로그램들은 같은 형식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버라이어티를 추구했다. 문제는 이 형식이 익숙해지면서부터 시작된다. ‘1박2일’의 복불복 게임이나, ‘우리 결혼했어요’의 이벤트는 초반에는 ‘무한도전’이 보여주지 못하는 디테일의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될수록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단지 디테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프로그램 자체가 가져온 형식, 즉 여행이나 결혼이라는 특정 형식 역시 식상해질 수 있다.


‘1박2일’과 ‘우결’이 ‘무한도전’에서 배워야할 것들

‘1박2일’이 여행지에 좀 더 천착하면서 그 장소가 갖는 정보의 재미를 추구했다면 매번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비슷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박2일’은 그 동안 여행지가 가진 정보의 재미보다는 복불복 게임이나 여행지 찾아가기 같은 여행 형식 자체가 가진 재미를 반복해왔다. 상대적으로 태백의 귀네미 마을을 찾아간 ‘배추고도’편은 그 소재에 있어서 참신한 것이었지만, 그 안을 채운 것은 과거의 형식들, 예를 들면 즉석공연이나 복불복 같은 것들이었다. ‘1박2일’은 이 상황에서 장소가 달라지는 데 따라 형식 자체의 실험적인 버라이어티를 추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 결혼했어요’가 가진 문제는 구성원의 문제다. 결혼 버라이어티를 추구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커플들의 이야기는 가면 갈수록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을 벗어나는 방법은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에서 찾을 수 있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들을 갖고도 계속해서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다른 커플들, 캐릭터들을 그 형식 속에 집어넣기 때문이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초기의 재미를 다시 찾으려면 커플을 계속 교체해주어야 한다. 물론 결혼 버라이어티에서 커플의 교체는 그만한 형식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버라이어티쇼가 매너리즘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무한도전’이 매너리즘을 벗어나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끊임없는 형식에 대한 버라이어티 추구에 있었다. 어떤 아이템이 어떤 형식으로 등장할 지 아무도 모르는 그 상황이야말로 진정한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갖는 힘이다. ‘무한도전’ 역시 늘 비슷한 형식에 대한 유혹을 벗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어떤 매너리즘에 봉착했던 적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무형식을 선택했고, 끝없는 도전과 실험을 선택했다. 그것만이 매주 반복되는 프로그램이 시청자와 익숙해지는 상황을 어느 정도 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가능하려면 이미 익숙해져 시청자가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매너리즘에 빠진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면 어떻게 하면 늘 낯선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이미지 닥터’가 된 리얼 버라이어티, 그 이유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들. 그런데 그 이미지가 이미 낡아버렸거나, 너무 과장됐거나 혹은 부정적으로 변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과거라면 아마도 대부분은 이미지의 생명이 끝나면서 연예인으로서의 삶도 끝장나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고치면 되니까. 어떻게? ‘이미지 닥터(?)’를 찾아가면 된다. 다름 아닌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말하는 것이다.

없던 이미지도 만들어드립니다!
‘1박2일’에 출연하기 전까지 은지원은 그저 힙합아이돌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1박2일’은 그에게서 조금은 막무가내지만 귀여운 초딩 이미지를 끄집어내 주었다. 자신감을 가진 은초딩은 지금 은둘리 같은 보다 적극적인 캐릭터로 점차 진화하고 있다.

김C는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가 낳은 캐릭터다. 좀더 연기를 해야하는 과거의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라면 좀체 적응하기가 어려웠을 테니까. 하지만 거꾸로 연기를 하지 않아야 더 각광받는 리얼 버라이어티쇼 속에서 그는 그저 자신의 맨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새로 세웠다.

‘개그콘서트’에서 고음불가로 캐릭터를 세웠던 이수근은 버라이어티쇼로 와서 적응기가 필요했다. 초반 이렇다할 캐릭터를 구축하지 못하던 그였지만 차츰 차츰 발현하게 된 그의 재치 있는 입담은 무덤덤하게만 보이던 국민일꾼이란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꽤 오랜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준 ‘1박2일’의 덕이다.

한편 ‘패밀리가 떴다’의 박예진은 어딘지 무뚝뚝해 보였던 이미지를 ‘달콤살벌한(?)’ 이미지로 바꿔주었다. 또 이천희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진지하기만 했던 이미지를 벗고 어딘지 엉성한 이미지를 부가해 천데렐라라는 캐릭터를 갖게 되었다. 없었던 이미지도 만들어주는 곳, 바로 그 곳이 리얼 버라이어티쇼다.

낡은 이미지는 편안하게, 과장된 이미지는 친근하게, 비호감은 호감으로
윤종신은 늦둥이로 예능계에 진출해 라디오에서 단련된 특유의 입담을 선보였다. 그의 깐죽 캐릭터가 점차 수면에 올라오게 된 것은 ‘라디오스타’, ‘명랑히어로’ 같은 캐릭터화된 리얼 토크쇼를 통해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윤종신의 캐릭터를 잡아준 것은 ‘패밀리가 떴다’다. 이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윤종신의 단지 깐죽거리는 캐릭터 이외에 ‘미식전문가’ 같은 성격을 부여하면서 오래된(?) 이미지를 오히려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한편 같은 프로그램의 이효리나 대성, 혹은 간혹 게스트로 출연하는 아이돌 스타들은 연예활동을 통해 쌓여진 과장된(?) 캐릭터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변모시키고 있다. 유재석과 늘 툭탁거리며 짝을 이룬 이효리는 여지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요정의 이미지에 털털한 이미지를 덧붙였다. ‘무한도전’의 멤버가 된 전진은 ‘패밀리가 떴다’에도 출연하면서 꽃미남 아이돌 스타 이미지에 코믹한 성격을 부여했다.

비호감 이미지였던 서인영은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신상녀 이미지를 덧붙였고 이를 통해 예능계의 신데렐라가 됐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갖는 진솔한 모습이 비호감 이미지까지 호감으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방송활동이 뜸했던 연예인들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통해 복귀를 꿈꾸고 있다. 새롭게 케이블 채널 tvN에서 시작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 ‘180분’의 이영자와 이찬이 그 주인공이다.

무엇이 리얼 버라이어티를 이미지 닥터로 만들었나
이밖에도 많은 연예인들이 리얼 버라이어티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다시 세우고 싶어한다.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들은 그만큼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를 그저 부여안고 있을 틈이 없다. 자꾸만 변해 가는 신상 캐릭터에 대한 요구에 발맞추지 못한다면 순식간에 잊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연예인들이 이미지 변신을 하는 방식은 작품을 통해서였다. 즉 배우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가수들은 새로운 음반을 통해서, 개그맨은 새로운 개그코너를 통해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강력하게 등장한 것이 바로 리얼 버라이어티쇼다. 배우든 가수든 개그맨이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 쇼는 이른바 리얼리티를 통해 그네들의 맨 얼굴을 드러내는(실제로 드러낸다기보다는 그럴 것이라 상상하게 만드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니 이 ‘진정성의 형식’속으로 들어가면 거의 대부분의 이미지 ‘변신, 수리, 복구(?)’가 가능해진다. 이른바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누구나 똑같은 사람’이라는 공감대 속에서 몰랐던 면들을 발견하게 되고, 잘못된 면들도 이해하게 된다. 물론 그 전제는 진솔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지만.

지금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이미지 전쟁이라 할 만큼 치열해진 연예계에서 어떤 피난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지쳐있던 이미지는 그 속에 들어가 새로운 활력을 얻기도 하고, 부담스럽게 과장된 이미지는 그 속에서 털털한 친근감을 얻기도 하며, 한 때의 잘못으로 복구 불능에 빠진 이미지는 그 속에서 솔직한 심경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희망을 찾기도 한다.

이미지 닥터가 된 리얼 버라이어티쇼. 이것은 거꾸로 리얼리티 세상에서 발생하는 이미지의 문제에 있어서 그 무엇이든 솔직한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는 것을 에둘러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남자여자 따로따로? 천만에!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이 핑크빛으로 물들어간다. 그 진원지는 ‘우리 결혼했어요’. 연예인들의 가상으로 설정된 알콩달콩한 부부생활을 리얼리티쇼의 형식으로 보여주며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우리 결혼했어요’는 과거 남자여자 따로따로 존재해온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와 짝짓기 프로그램의 만남
새롭게 시작한 ‘패밀리가 떴다’에 리얼 버라이어티쇼로서는 이색적으로 남성 출연자들 속에 이효리, 박예진이 투입된 것은 이 변화의 바람을 예고한다. 이 여성 출연자들의 투입으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연애 감정 같은 좀더 다양한 코드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패밀리가 떴다’의 일등공신으로서 이효리와 박예진이 지목되고, ‘사랑해 게임’이 주목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번 주 방영이 예고되어 있는 ‘무한도전’에서 ‘무한걸스’와 6대6 미팅을 벌이며 커플 버라이어티를 시도한다는 것 역시 이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사실 케이블에서의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남녀간의 만남이 더 많이 이루어져 왔다. 청춘남녀의 소개팅을 다룬 엠넷의 ‘아찔한 소개팅’, 올리브의 ‘키스 더 데이트’같은 리얼리티쇼는 물론이고, 극단적으로는 코미디TV의 ‘애완남 키우기 - 나는 펫’도 남녀의 은밀한 연애감정을 주로 다뤄왔다.

이것은 심지어 ‘무한도전’의 여성 버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MBC 에브리원의 ‘무한걸스’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 출연진들에 의해 꾸려져 가는 ‘무한걸스’에서 그 도전 과제 중 하나로서 멋진 남자들과의 소개팅은 늘 시도되었던 소재이다. 그러니 ‘무한걸스’ 입장에서 보면 ‘무한도전’과의 미팅은 그렇게 새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공중파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원조격으로 주로 남자들만의 도전에 치중되어 있었던 ‘무한도전’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공중파와 케이블의 만남
‘우리 결혼했어요’가 케이블TV 짝짓기 프로그램의 공중파 버전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라면 이러한 변화양상을 공중파 전체에 파급시킨 것은 역시 그 진원지를 케이블TV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무한도전’과 ‘무한걸스’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로 각각 팀원이 구성되어 성격도 다른 두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만남이면서 동시에 공중파와 케이블의 만남이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든 케이블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공중파는 케이블TV의 짝짓기 프로그램이 갖는 선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안전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사실은 동거생활을 보여주면서도 그 선정성이 가려지는 것은 마치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듯한 상큼 발랄한 영상들과 이야기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한 공간에서 남녀가 함께 잠을 자야하는 상황에 있는 ‘패밀리가 떴다’는 유사가족 같은 분위기로 그 위험성을 넘어서려 한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모두 동거나 혼숙이라는 음성적인 코드를 결혼과 MT 같은 긍정적인 모드로 바꿔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윤리적인 잣대보다는 그것이 진짜 리얼리티에 효과적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남자들만의, 혹은 여자들만의 팀원들이 갖는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각자의 리얼리티를 끄집어내는데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혹자는 이 이성들이 함께 생활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정말 리얼리티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이미 케이블에서 예고되었던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짝짓기 프로그램과의 동거는 이제 점점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분명한 점은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는 공중파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리얼리티는, 그것이 진짜인지 가상인지 출연진들조차 혼동을 일으키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위에 놓여져 있다는 점이다.

빈 공간을 웃음으로 채우는 개그맨의 힘

‘1박2일’ 멤버들의 주 직업은 가수다. 그 가수들 틈에 유일하게 개그맨으로 끼어 있는 이수근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가수들이 웃기는 것은 덤이지만, 개그맨이 웃기지 못하는 것은 존재 자체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특히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는 더욱 그렇다. 개그맨들이야 언제 어디서건 억지로라도 설정을 만들어 웃기려고 노력하는데 적응이 되어있기 마련. 하지만 꾸미지 않는 모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이러한 노력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이수근이 ‘1박2일’에서 웃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일꾼을 자처한 점은, 개그맨으로서의 이수근보다 시골 생활에서의 맥가이버 같은 이수근 개인의 캐릭터를 그대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초반부 웃기는데 있어서 가수들보다 상대적으로 이수근이 눈에 띄지 않은 것은 그가 개그맨이라는 점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반면, 이수근이 개그맨으로서의 이미지보다는 자신 속에 있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끄집어내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가랑비에 옷 젖듯 보여진 그의 캐릭터는 일꾼 이미지를 바탕에 만들어줬고, 그 위에서 개그는 좀더 생활 밀착형이 되었다.

‘1박2일’ 백두산 특집편의 첫 번째 방송에서 출연진들은 그 대부분의 시간을 배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배라는 한정된 공간은 사실 무언가를 늘 보여줘야 한다는 쇼의 입장에서는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특정 공간에 도착해 어떤 미션을 수행하거나, 돌발적인 상황을 맞아 새로운 여행의 국면으로 들어가거나 하는 것이 ‘1박2일’의 묘미라면, 그 중간 중간 이동시간 같은 빈 공간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이 빈 공간은 이수근에게는 단독으로 올려진 개그콘서트 무대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어딘가로 떠날 때, 그 지루해질 수 있는 시간을 웃음으로 채워주던 재주 많은 친구들을 떠올리게 한다.

1박2일이라 엉덩이에 새겨진 운동복을 보고는 “중국사람들이 보면 꿰맨 자국인 줄 알겠다”고 하거나 다들 엉덩이를 쭉 빼면서 “1박2일!”하고 소리치며 즐거워할 때, 혼자 거꾸로 옷을 입는 것만으로 큰 웃음을 주는 이수근은 그가 역시 개그맨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배 안에서 중국인 출신 여승무원들과 벌어진 즉석 짝짓기 게임에서 후춧가루댄스를 추고, 엉터리 중국어로 웃음을 주는 것은 저 ‘개그콘서트’라는 무대에서는 어쩌면 식상한 개그일지 모르지만, 이렇듯 딱히 할 것 없어 무료해질 수 있는 시간 속에서는 포복졸도의 웃음으로 다가온다.

‘1박2일’속에서의 개그맨 이수근이 가진 이미지는 지금 세상에서 비범함을 숨긴 채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서민들을 닮았다. 그들은 늘 어느 한 분야에서는 베테랑이었지만 이 어려운 시국 속에서 평가절하 되었고, 그것을 또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요즘처럼 일보다는 나서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주목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진짜 일꾼이면서, 그 어려움조차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존재들이다. 인생길이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길에서의 그 과정을 닮았다면, ‘1박2일’에서 ‘생활 속에서의 개그콘서트’를 보여주며 빈 공간을 웃음으로 채워주는 이수근은 그 여행길에서 힘겨울 때마다 얼토당토않은 말로 웃음을 주는 오랜 친구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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