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으로 점철된 저주받은 여성수난사, '천만번 사랑해'

'천만번 사랑해'가 의학드라마였나? 각종 병들에 고통 받는 인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천만번 사랑해'를 보다보면 문득 이런 착각에 빠진다. 이 드라마가 처음 끌어온 병은 불임이었다. 손향숙(이휘향)의 큰며느리인 이선영(고은미)은 산부인과에서 여러 차례 불임 시술을 받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러자 아이를 얻기 위해 대리모라는 결정을 내리고, 마침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장차 둘째 며느리가 될) 고은님(이수경)은 그 대리모로 나선다.

이 현실적으로는 거의 가능성이 없는 관계 설정은 끊임없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독하게 만들거나 비극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만든다. 여성이 여성을 핍박하고, 핍박당한 여성은 눈물의 세월을 보내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 설정은 전형적인 신파의 구도를 그대로 답습한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시어머니에게 핍박받아 결국 대리모를 구하는 상황(이선영), 대리모를 해서 낳은 자신의 아이를 아이라 부를 수 없는 상황(고은님), 게다가 이 두 저주받은 여성들이 그 아이를 두고 서로 갈등하는 상황은 지나칠 정도로 드라마 속 여성들을 수난의 질곡 속으로 빠뜨린다.

사실상 해결점이 거의 없는 이 파탄난 가족사가 결국 선택하는 길은 불치병 같은 설정이다. 손향숙은 갑자기 치매 판정을 받고 기억을 잃게 되고, 고은님은 말기 위암 판정을 받는다. 지나칠 정도로 악행을 저질러온(그것도 가족에게) 손향숙은 그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처리하고, 자신의 자식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그 어느 쪽도 결정하기 어려운 고은님은 결국 위암이라는 극단적인 죽음의 상황으로 그 복잡한 실타래를 덮어두려 한 것.

산부인과에 정신과에 내과적 질환까지 겹쳐 놓은 '천만번 사랑해'의 선택은 이 드라마가 얼마나 지독하게 여성들을 의도적으로 고난에 빠뜨리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 질병의 당사자들이 모두 한 집안의 여성들, 즉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라는 점과, 또 그 병들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관계가 전개된다는 점은, 이 비상식적인 드라마가 얼마나 자극으로만 치닫고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이 드라마 속의 남성들은 주인공인 백강호(정겨운)를 빼놓고는 모두 여성들에게 짐을 지우는 캐릭터들이다. 고은님의 아버지 고인덕(길용우)은 자신 때문에 딸이 대리모를 선택하게 만드는 인물이며, 강호의 아버지 백일(노영국)은 어찌 보면 손향숙의 아이에 대한 차별과 집착을 만들어 결국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 되게 한 배다른 아이(백강호)를 집안으로 데려온 인물이다. 또한 백세훈(류진)은 아내가 대리모를 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해 바람을 피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즉 이 드라마 속 남성들은 여성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여성들은 그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파멸하는 삶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이 지독한 신파적인 설정이 결국 불치병으로 마무리 되는 상황은 이 드라마가 거의 모든 막장의 요소를 빼놓지 않고 선택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천만번 사랑해'는 이로써 소재가 가진 윤리적인 막장, 즉 대리모라는 소재를 한 가족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동서지간에 아이 쟁탈전을 벌이게 되는 상황은 물론이고, 작품의 완성도에서의 막장, 즉 전혀 개연성 없는 사건들이 그저 자극을 위해 돌출되는 상황을 모두 연출하게 됐다.

지금 가족드라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우리네 가족드라마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가족드라마는 우리 드라마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세월 대중과 함께 해온 드라마 장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족드라마는 본래 이 장르가 추구하는 가족애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소문난 칠공주'와 '조강지처 클럽'을 통해 파괴되어 가는 가족의 틀을 극단으로까지 끌고 가 보여주면서 자극적인 가족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문영남 작가는 '수상한 삼형제'로 확고한 위치를 확보했다. 지금 이 드라마는 35.4%(AGB닐슨 자료)의 시청률로 전체 주간시청률 1위에 올라있다.

한편 일일 가족드라마로 시청률 장기집권(?)을 해온 KBS 일일드라마 역시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너는 내 운명'이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을 얻은데 이어, 종영한 '다함께 차차차' 역시 배배 꼬인 관계와 지나치게 질질 끄는 드라마 진행으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대열에 들어갔다. 이 드라마의 이런 자극에만 치중하는 경향 때문일까. 그럼에도 종영하는 시점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33.5%로 전체 주간시청률 2위를 기록했다.

'천만번 사랑해'는 대리모라는 설정에, 자신이 준 자식이 배우자의 형의 자식이라는 거의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우연적 상황을 통해 신파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 드라마는 자식을 얻기 위해 첫째 며느리에게는 대리모를 강요하고, 둘째 며느리가 그 대리모를 한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시어머니가 그녀를 내쫓는 패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며느리 수난사라는 설정은 작금에는 현실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로, 가족드라마의 퇴행 현상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가족드라마의 시청률은 전체 4위인 25.9%에 올라 있다.

어째서 가족드라마들이 과거의 훈훈한 가족 이야기의 범주를 지키지 못하고 파국적인 이야기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결국은 시청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비교적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훈훈한 가족애를 다루면서도 시청률 최고를 차지하던 시대가 있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층의 눈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류의 위상을 통해 미드와 일드 같은 선진적인 드라마와 접촉하면서, 우리 드라마들은 그간 실험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진화의 길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유독 가족드라마는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왜? 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정적인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족드라마가 변화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퇴행적인 양상을 예고하는 길이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듯이 확장의 길이 아닌 과거의 틀에 만족하던 가족드라마는 결국 가족애라는 끈끈한 힘을 자극을 위해 이용하기 시작했다. 막장의 탄생이다. 가족 복수극의 유행이다. 이처럼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 가족드라마가 막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이 장르가 가진 독특한 특성에서 비롯한다.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갈등을 근간으로 하는데, 가족드라마의 갈등은 가족 간에 벌어지기 때문에 분명, 윤리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싸우다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막장드라마는 이 윤리의 선을 넘어섬으로서 자극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족드라마가 갈 길은 결국 이것밖에 없을까. 그렇지 않다. 최근 몇몇 드라마들이 가족드라마의 또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작년에 등장해 호평은 물론 시청률까지 최고를 기록한 '찬란한 유산'이 대표적이다. 이 가족드라마는 전형적인 가족의 틀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족애를 넘어서는 인간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유산을 자식이 아닌 타인에게 준다는 설정은 혈연과 가족의 고리를 넘어선다. 이것은 최근 '그대 웃어요'나 '별을 따다줘(물론 멜로드라마 성격이 강하지만 그 안에 가족의 형태에 있어서)' 같은 작품으로 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타인이지만 가족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가족드라마의 확장으로 보인다. 가족에서 유사가족으로의 확장.

가족드라마는 지금, 막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유사가족이라는 인간애로 확장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물론 이도 저도 아닌 전통적인 가족드라마의 형태도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이지만, 그것이 현재적인 관점에서 과거만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진화를 꿈꾸지 않는 한, 가족드라마가 갈 길은 상투적인 보수적 코드의 반복이거나, 파국적인 가족드라마의 윤리적 탈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확장으로의 길을 모색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대 웃어요'나 '별을 따다줘' 같은 드라마가 주목되는 이유는 그 가족의 범주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과 '그대 웃어요'

이른바 막장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극적인 설정의 드라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웃음을 주는 완소드라마가 있어 눈길을 끈다. 그 주인공은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과 SBS 주말드라마 '그대 웃어요'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짜증과 경악의 연속인 자극적인 드라마들과는 상반되게, 이들 드라마들은 보는 내내 입가에 편안한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게 하는 마력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 도대체 어떤 점들이 이들 완소드라마들만이 갖는 매력을 만드는 것일까.

'지붕 뚫고 하이킥'은 독특한 시트콤이다. 시트콤이라면 시추에이션 코미디로서 웃음이 전면에 내세워지게 되지만 이 작품은 그저 물리적인 웃음에만 머물지 않는다. 웃음 뒤에 진한 페이소스를 남기는 것이 특징. 산골에서 상경해 부모 없이 서울 하늘에서 생존해가는 세경과 신애가 보여주는 진한 자매애가 그렇고, 그런 그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은연 중에 내미는 줄리엔이나 준혁, 지훈의 이야기가 그렇다.

동생 신애에게 학용품을 마련해주기 위해 샌드위치 많이 먹기 대회에 참가하는 세경의 에피소드는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훈훈한 감동을 준다. 해리가 가진 인형을 갖고 싶어 신애가 훔치려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정보석의 한 박자 늦는 탐정 놀이에서 웃음이 터지지만, 결국 그 사실을 알게된 지훈이 신애에게 인형을 새로 사서 전해주는 장면에서는 훈훈한 미소가 피어난다. 준혁이 버린 학교 체육복을 입고 학교를 찾아온 세경이 번번이 체육선생에서 당하는 에피소드는 큰 웃음을 주지만, 학교 공부가 그리운 세경에게 준혁이 마치 버리는 것처럼 참고서를 건네는 장면에서는 흐뭇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이처럼 웃음에 어떤 마음을 담아내는 것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이 주는 웃음은 여타의 시트콤과 확실한 차별성을 갖게 된다. 폭소는 즉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지만 쉬 잊혀지기 쉽다. 하지만 상황이 주는 흐뭇함에 짓게 되는 미소는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게 된다. 이것이 '지붕 뚫고 하이킥'이 완소 드라마이게 하는 이유다.

한편 주말드라마로 점차 주목받기 시작한 '그대 웃어요' 역시 풍자적인 웃음 속에 페이소스를 담아냈다. 허풍에 겉멋만 잔뜩 든 서정길(강석우)이 사업에 실패하고 길바닥에 나앉게 되자 그의 운전기사였던 강만복(최불암)이 그 가족을 거두어 함께 살아가는 독특한 설정의 이 드라마는 예의 없는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스며들어 있다. 운전기사였었다는 것만으로 여전히 하대하는 서정길은 돈이면 다된다는 식의 무례한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 그를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강만복의 결심은 이 시대에 대한 통쾌한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보면 이 심각해질 수 있는 계층의 부딪침을 이 드라마는 가벼운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풍자정신을 발휘한다. 게다가 강만복의 일갈은 당한 것에 대한 보복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마치 아버지가 자식에게 하는 것 같은 사랑을 바탕에 깔고 있다. 서정길의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은 강만복이 엇나가는 서정길을 자식처럼 계도하는 이야기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이야기는 유쾌하고 훈훈해진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 '지붕 뚫고 하이킥'과 '그대 웃어요'는 모두 계층적인 갈등을 이야기의 모티브로 삼고 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메인 줄기로서 가진 것 없고 부모마저 없이 산골에서 상경한 세경, 신애와,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어딘지 빈 구석이 많은 서울의 해리네 가족이 대비된다. '그대 웃어요' 역시 돈 걱정 없이 살아온 정인(이민정)네 가족과 늘 절약만을 외치며 살아온 현수(정경호)네 가족의 그 다른 삶의 방식이 갈등의 메인줄기다.

이러한 계층적 갈등이 갖는 빈부격차의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로 다가온다. 중요한 것은 이 '지붕 뚫고 하이킥'과 '그대 웃어요' 가 이 갈등을 봉합해가는 과정이다. 대결구도가 파탄과 복수로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막장드라마들과는 달리, 이 작품들은 긍정의 힘으로 어떤 소통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이 이 작품들이 시청자들에게 현실적인 공감을 주면서도 화해가 갖는 훈훈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유이다.

'천사의 유혹'을 보는 기대와 우려

'천사의 유혹'은 아예 '아내의 유혹2'를 표방하고 있는 드라마다. 워낙 막장드라마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던 '아내의 유혹' 때문인지 '천사의 유혹'을 선뜻 막장드라마라고 판단하기는 쉽다. 하지만 언뜻 막장드라마라고 치부하면서도 한번 보면 눈을 뗄 수 없는 마력 같은 힘을 부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김순옥표 드라마라는 요리에는 도대체 어떤 레시피가 들어있길래 타 드라마가 흉내낼 수 없는 이런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김순옥표 드라마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복수극과 가족극이 교차한다는 점이다. '아내의 유혹'에 이어서 '천사의 유혹'에서도 결혼은 복수의 도구로 활용된다. 즉 우여곡절 끝의 사랑의 결실로서 결혼이 존재하는 멜로드라마나 가족드라마의 틀을 복수극을 가져와 뒤집어 놓는 것. 이렇게 되면 멜로드라마나 가족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결과물들이 생겨난다.

이 과정에서 마치 지상과제인 것처럼 떠받들어지는 여타의 드라마에서의 결혼은 부정된다. 즉 결혼은 가족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을 파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에서는 좀체 가능하지 않은 금기의 욕망을 판타지로 그려낼 수 있게 해준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받는 여성들이 그 결혼 그리고 가족이라는 금기를 파괴하는 판타지는 그것이 복수극의 장르와 결합될 때 가능해진다.

이 과정은 물론 막장드라마가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즉 복수의 근거를 제대로 제시해내지 못한다면 그저 판타지의 자극적인 쾌감을 위해 가족을 파괴시키는 드라마로만 그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의 유혹'이 막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복수극의 근간이 되는 근거들을 촘촘하게 세워두지 못했고, 그 복수의 과정 또한 인과관계에 있어 허술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일일드라마라는 특징 속에서 어쩔 수 없는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김순옥표 드라마의 특징은 한 마디로 쉴 새 없이 질주하는 속도감에 있다. 이 속도감은 빠른 전개에서도 나오지만, 이야기 갖는 욕망의 질주에서 먼저 비롯된다. 즉 성공과 실패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감정적인 속도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복수극이 가속도를 붙이면 마치 게임처럼 굴러가게 되는데, 이것은 보는 이들을 더욱 몰입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여기에 논리적인 전개까지 갖춘다면 그 몰입도는 더욱 강해진다. 하지만 '아내의 유혹'은 그런 논리적인 접근보다는 마치 멜로드라마가 갖는 감정적인 접근을 함으로써 얼개가 느슨한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여기에 김순옥표 드라마가 갖는 또 하나의 힘은 주인공들이 저마다 숨기고 있는 '비밀의 코드'를 마치 비장의 카드처럼 사용한다는 점이다. 비밀은 미리 시청자들에게 드러나기도 하고, 아예 숨겨지기도 하는데, 드러나게 되면 그것이 후에 벌어질 엄청난 파장을 기대하게 만들고, 숨겨진 것은 훗날 새로운 국면의 전환으로서 제시된다. 출생의 비밀이 드라마의 성공코드로 인식되는 것만큼, 인물의 숨겨진 과거의 비밀 역시 마찬가지의 위력을 발휘한다. 이 비밀코드는 본래 복수극의 단골소재이기도 하다. 과거의 비밀을 숨긴 채 은밀히 진행되는 복수를 바라보는 시청자의 눈은 그 비밀이 폭로되는 순간을 좇게 마련이다.

'천사의 유혹'은 '아내의 유혹'이 가진 그 김순옥표 복수극의 묘미를 그대로 다 갖고 있는 드라마다. 여전히 막장의 경계에 불안하게 서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 수위를 지킨다면 꽤 흥미로운 드라마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기대하게 하는 것은 이 드라마가 '아내의 유혹'처럼 일일드라마가 아니라 월화드라마라는 점이다. 일일드라마가 갖는 시간적인 한계 상황 속에서 빠른 전개의 독특한 복수극을 논리적인 결함없이 그려나가기는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워진 이 드라마의 상황 속에서 막장을 넘어서는 독특한 드라마를 기대하는 것은 섣부른 일일까. 흥미로운 만큼 우려와 기대가 많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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