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이>, 핏줄사회가 만든 개인의 고통

 

“우리 결혼하고 3년 동안 넌 한 번도 나한테 화를 내거나 서운해 하거나 짜증조차 한번 낸 적이 없어. 항상 웃었지.” <내 딸 서영이>의 서영이(이보영)는 왜 그랬던 걸까. 그 이유는 이 너무나 아내를 생각하는 남편 강우재(이상윤)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가끔 뭐랄까, 행복강박증 있는 사람처럼 그래보였거든. 꼭 내 사랑에 보답하려는 사람처럼, 웃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있는 사람처럼 애써서 웃는 느낌.”

 

'내 딸 서영이'(사진출처:KBS)

그녀는 도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 걸까. 아버지를 부정하고 얻은 신분상승의 대가가 혹독했다는 것은 그녀의 얼굴에서부터 드러난다. 혼자 있으면 늘 무표정하고, 어딘지 그늘이 느껴지는 그 얼굴이 남편 앞에만 서면 늘 웃고 있다. 그녀의 말대로 진짜 ‘행복해서 웃은 것’일 테지만 어디 그것뿐일까. 거기에는 아버지를 부정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그 사실을 속이고 있는 남편에 대한 부채감, 그리고 그렇게 대가를 치르고 얻은 행복에 대한 강박이 있었을 게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부모를 부정하는 패륜이지만, 그 이면에 놓여진 것은 핏줄과 가족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이 시대의 주홍글씨다. 태생이 모든 걸 결정하는 사회에서 핏줄과 가족이란 늘 따뜻한 보금자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개인의 행복을 발목 잡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패륜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거기에는 태생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견고한 시스템이 한 개인에게 지운 절망적인 현실이 있다.

 

서영이는 엄밀히 말해 단순히 신분상승을 꿈꾸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 노력해 판사가 되었다. 이미 신분상승을 자력으로 해결했던 것. 하지만 결혼에 있어서 그녀 앞에 닥친 현실은 또다시 그 놈의 핏줄이었다. 결국 <내 딸 서영이>가 그려내고 있는 현실은 자력으로 제 아무리 신분상승을 꿈꾼다 해도 ‘저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어쩌면 태생적으로 결정되고 마는 그 막막한 현실이다. 그래서 그 태생을 지워버리려 하지만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서영이가 그 힘겨운 가족이라는 틀에서 어떻게 버텨왔는가 하는 점 역시 남편 강우재의 목소리를 통해 알 수 있다. “3년 전에 이 자리에 데려왔을 때 결국 피곤을 못 이겨 잠들면서도 이서영은 내 어깨에 작은 머리통마저 못 기대는 거야. 이 여자는 자면서도 긴장을 못 푸는구나. 자면서도 혼자 버티는 구나 참 외롭겠다...” 그래서 그녀가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영이는 늘 고통스러워했고 그것을 누구에게 호소하거나 변명하려 들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그런 그녀를 패륜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은 판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변호사를 선택하는 모습에도 드러난다. 패륜사건을 담당하면서 그렇게 패륜을 저지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자는 서영이는 거기에 아마도 자신을 투영했을 게다. 그리고 누군가의 죄를 판정하는 판사라는 직업보다는 누군가의 죄를 변호해주는 변호사라는 직업에서 자신의 고통을 덜어줄 일말의 희망을 찾았을 것이다.

 

흔히들 막장드라마라는 클리쉐 때문에 사실 꽤 많은 진지한 질문들이 묻히기도 한다. 그 많은 출생의 비밀이나 기억 상실 혹은 불치병의 이야기들은 사실은 어찌 보면 인간 운명의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소재가 분명하다. 다만 그것을 자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될 뿐이다. 서영이가 저지른 일들을 단순히 패륜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저 수많은 막장드라마들 때문에 또 하나의 우리가 처한 현실의 질문을 덮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처럼 보인다. <내 딸 서영이>가 다루는 건 패륜이 아니라, 어떻게 해도 태생의 문제로 회귀되는 이 핏줄 사회가 한 개인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가의 이야기다.

 

서영이는 남편 강우재의 막내 동생인 강성재(이정신)의 연기 연습을 도와주다가 남편이 방으로 들어오자 연기를 빗대 남편을 질투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렇게 연기 속에서 남편이 질투하는 모습에 웃던 서영이는 갑자기 눈물을 쏟아낸다. “너무 웃겨서... 너무 웃기니까.”라고 변명하지만, 그 눈물 속에는 꽤 많은 서영이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거기에는 마치 행복을 연기하듯 살아가게 된 자신의 모습과 그래서 너무 행복하면 오히려 눈물이 나는 자신의 상황이 섞여 있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던 걸까.

 연장된 '몽땅 내 사랑', 그 한계와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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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땅 내 사랑'(사진출처:MBC)

'몽땅 내 사랑'이 애초 120회에서 200회로 연장됐다. 시트콤으로 인기를 끌었던 '거침없이 하이킥'과 '지붕 뚫고 하이킥'이 각각 167회, 126회로 끝난 것에 비하면, 그다지 시청률에서도 반응 면에서도 미지근한 '몽땅 내 사랑'이 이렇게 연장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대안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그래도 10% 초반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몽땅 내 사랑'을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분명한 한계를 보이고 있는 '몽땅 내 사랑'에 어떤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몽땅 내 사랑'이 가진 가장 큰 한계는 좀 더 과감한 캐릭터쇼를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트콤이 드라마와 다른 점은 캐릭터에 대한 과장의 차이일 것이다. 드라마에서 과장된 캐릭터는 개연성을 떨어뜨려 몰입을 방해하지만, 시트콤은 정반대다. 한 캐릭터를 과감하게 과장시키면 그 자체로 큰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백 회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에 대한 집중도도 높일 수 있다. 또 캐릭터에 집중하지 못하고 전체적인 스토리의 흐름에 끌려가다 보면 시트콤이 일일드라마처럼 밋밋해지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몽땅 내 사랑'은 애초에 콘셉트로 '막장 시트콤'을 가져왔다. 그 기대감은 컸다. 왜냐하면 이 막장 설정의 시트콤은 패러디 형식으로 비틀어주기만 하면 그 자체로 큰 웃음을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예를 들어 '출생의 비밀' 같은 막장드라마의 전형적인 코드들을 가져와 그 비현실성을 오히려 드러낸다면 그것은 웃음을 넘어 어떤 카타르시스까지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몽땅 내 사랑'은 '출생의 비밀'을 거의 막장 드라마들이 사용하는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김원장(김갑수)이 애타게 찾는 잃어버린 딸이 윤승아라는 걸 알게 된 박미선과 황금지(가인)가 이를 숨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들이 그렇다. 물론 그 자체 구성은 과장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좀 상황 설정에 있어서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즉 '지붕 뚫고 하이킥'은 어떤 상황을 그릴 때, 거의 끝까지 밀어붙이는 면모를 보인다. 학교에서 몰래 데이트를 하는 이순재가 학생들의 눈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에서 2층 창문을 뛰어내리고 담벼락을 넘는 장면은 그 과장 때문에 웃음과 함께 캐릭터가 살아난다.

다행스러운 것은 '몽땅 내 사랑'에도 가능성 있는 캐릭터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윤승아의 할머니 김영옥과 김원장의 비서인 김집사(정호빈)다. 김영옥이 윤두준의 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마치 대장금처럼 각종 비전(?)을 펼치는 식으로 김영옥을 달인으로 표현하는 에피소드들은 오랜만에 '몽땅 내 사랑'을 시트콤답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김집사는 '욕망의 불똥'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캐릭터화 되어 있는 인물이다. 윤두준도 가능성이 있는 캐릭터다. 금지와 헤어지고 아무렇지도 않다며 끊임없는 먹는 장면은 우스우면서도 찡한 구석이 있다.

'몽땅 내 사랑'의 스토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화이트 데이에 옥엽(조권)이 좋아하는 승아와 함께 사탕배달을 하면서 은근슬쩍 자기 마음을 고백하는 스토리는 꽤 괜찮다. 하지만 '몽땅 내 사랑'은 시트콤이다. 먼저 웃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충분히 캐릭터를 통해 웃음을 준 이후에는 사실 멜로를 하든 심지어 비극을 그려도 상관없지만 그 본연의 웃음을 먼저 주지 못한다면 자칫 어설픈 드라마로 보일 위험성이 있다. 스토리를 끝까지 밀어 붙이고, 그 속에서 캐릭터를 세운다면 '몽땅 내 사랑'도 시트콤으로서 주목받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어차피 200회 연장을 하게 되었다면 그만한 합당한 근거를 '몽땅 내 사랑'이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눈 높아진 시청자들, 막장을 외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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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생뎐'(사진출처:SBS)

막장드라마, 여전히 시청률 보증수표인가. 작금의 경향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내의 유혹'으로 심지어 즐기는(?) 막장드라마의 세계를 펼쳐 보인 김순옥 작가는 그 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천사의 유혹'에서 주춤하더니, 가족극을 표방했지만 여전히 막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웃어요, 엄마'에서는 아예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막장이라면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논란이라도 생겨야 하는데 그것조차 없는 존재감 없는 드라마로 전락한 것.

이런 상황은 '시크릿 가든'의 후속작으로 세워진 임성한 작가의 '신기생뎐'도 마찬가지다. 2회 연속 방영으로 힘을 모은 데다가, 이른바 '시크릿 가든'이 세운 30%대의 시청률의 후광효과를 기대했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오히려 잘 만들어진 드라마의 대명사격이 되고 있는 '시크릿 가든'과 비교되면서 더 외면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희한한 일이지만 이미 종영한 '시크릿 가든'에 대한 이야기가 여전히 화제가 되는 반면, 이 자극으로 똘똘 뭉친 '신기생뎐'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신기생뎐'은 아직 초반부지만 이미 임성한식 막장 월드의 대부분 코드들을 포석해 놓은 상태다. '출생의 비밀'이 그 중심 코드다. 금라라(한혜린)의 어머니가 3명이나 등장하고, 그녀가 친어머니를 아직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저 '하늘이시여'의 기상천외한 모녀 관계를 환기시킨다. 또 단사란(임수향)의 죽은 어머니 역시 친어머니가 아니었다는 설정까지 들어있는 걸 보면 이 드라마는 이 '출생의 비밀'이 갖는 자극의 끝을 보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비록 욕은 좀 먹겠지만, 그래도 볼 것이라는 막장드라마의 성공코드를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막장이라 불리는 드라마들의 자극은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 하지만 강해진 자극에 반해 시청률은 비례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 단서로 제공되는 작품이 '욕망의 불꽃'이다. 물론 이 작품은 물론 막장이 아니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막장의 요소들, 즉 '출생의 비밀'이나 복수, 패륜 등 자극적인 소재들이 등장한다. '시크릿 가든'이 끝나고 시청자들은 대부분 '욕망의 불꽃'으로 옮겨갔다. 10% 초반대에 머물던 '욕망의 불꽃'은 순식간에 20%를 돌파했다. 이유는? 같은 자극적인 소재지만 완성도가 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드라마들에 그 모자라는 완성도에 '욕을 하면서도' 봤던 시청자들은 작년 새로운 경험을 했다. '제빵왕 김탁구'가 그렇다. 자극적인 소재를 바탕에 깔고 있음에도 이 드라마는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즉 '출생의 비밀' 같은 소재를 다룬다고 모두 막장이 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완성도를 경험한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전개가 느슨하다거나 작위적이거나 개연성 없는 드라마에 눈이 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최근 들어 드라마가 방영되는 기간 동안의 시청률 흐름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드러난다. 즉 초반에 일찌감치 20%대의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들 중, 많은 드라마들이 중간에서시청률 하락을 경험하며 이른바 용두사미 드라마가 되곤 한다는 것이다. '도망자'는 초반 20%에서 시작했지만 서서히 시청률이 떨어지더니 결국 반 토막 난 시청률로 끝을 맺었다. '아테나' 역시 초반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지만, 차츰 밀리더니 월요일 드라마 시청률 경쟁에서 바닥을 경험하고 있다. 왜 이런 시청률 등락의 변화가 생기는 걸까.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과거처럼 첫 시청률이 그 드라마 전체를 결정짓지는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드라마 시청에 있어서 관성적인 시청보다는 좀 더 선택적인 시청으로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이 바뀌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까. 언제든 재미가 없거나 스토리가 허술하거나 개연성이 떨어지거나 하면 이제 언제든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리게 됐다는 얘기다. 그러니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에게 막장드라마가 계속 통할까. 물론 어떤 기상천외하고 엄청난 자극이 시청자들의 눈을 마비시키고 중독시킬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막장드라마의 막장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예감이다.

막장만 문제? 독한 드라마도 문제다

'아내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는 새로 들고 나온 '웃어요 엄마'의 제작발표회에서 이 드라마는 절대 막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자극적인 설정이 있기는 하지만 막장은 아니고, 엄마들의 삶을 조명하는 가족극이라는 것. 과연 그럴까.

제목은 진짜 가족극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첫 회부터 손목을 긋고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등장했고, 2회에서는 여배우가 되려는 딸이 강간당할 뻔한 사실을 알면서도 성공을 위해 이를 묵이하려는 비정한 엄마 이야기가 등장했다. 3회에서는 궁지에 몰린 엄마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딸을 술 시중시키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물론 작가의 말대로 이런 자극적인 설정이 그 자체로 그 드라마를 막장으로 평가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물들이 비현실적으로 과장되어 있고, 지나치게 감정과잉의 경향을 보인다. 이 작품은 마치 연극의 독백처럼 인물들의 혼잣말이 잦다. 상황 자체가 인물의 감정을 자연스레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인물들이 자꾸 스스로를 설명하게 되는 것. 그만큼 얼개가 느슨하고 우연적 요소도 많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김순옥 작가가 "막장이 아니다"라고 강변한 것은 아마도 최근 등장한 막장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되는 몇몇 작품들 때문으로 보인다. '제빵왕 김탁구'는 국민드라마 반열에 들어섰지만 초반부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과 설정들이 등장해 막장드라마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있었기 때문에 막장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이런 경향의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주말극인 '욕망의 불꽃'은 언니 자리를 빼앗기 위해 강간을 방조하는 동생의 모습이라든가, 뺑소니로 위장해 사람을 죽인다거나 하는 자극적인 장면들이 방영되었다. 거의 악마처럼 보이는 인물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뭐든 거침없이 해버리는 장면들은 매우 자극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막장은 아니다. 바로 그 어쩔 수 없는 욕망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순옥 작가는 아마도 이런 작품들과 자신의 작품이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욕망의 불꽃' 같은 작품은 과연 문제가 없을까. 사실 막장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은 TV라는 매체적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물론 불륜이니 살인이니 하는 소재들은 이미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등장했던 단골소재다. 하지만 이런 소재들이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과 드라마로 보여지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그것은 드라마가 가진 연속극적인 속성 때문이다. 드라마는 다른 작품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보는 것이 아니다. 매주 조금씩 끊어져서 보여지기 때문에 사실상 전체적인 완성도나 주제의식은 마지막회까지 미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결과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이 된다. 20부작 드라마에서 19부가 자극적인 내용으로 가득 메워지고 나머지 1부가 착하다고 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드라마는 없다.

게다가 드라마는 특성상 매번 챙겨보지 않는 시청자들도 많다. 그러니 한두 번의 자극적인 장면들도 사실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셈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막장이 아니라고 해도 독한 설정들의 드라마가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치 시청자를 자극하겠다고 작정한 듯한 드라마들의 그 의도성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된다고 해도 그 자체로 비판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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