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왕>, 이건 복수극이 아니라 게임이다

 

우리는 <야왕>의 시작과 끝을 이미 알고 있다. 이미 첫 회에 영부인이 된 주다해(수애)를 찾아온 하류(권상우)가 서로 안은 채 피를 흘리는 것으로 그 끝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죽음을 맞이할 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은 파국이다. 주다해의 끝을 모르는 욕망이 만들어낸 비극. 착하기만 하던 하류의 복수극.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다. 이 뻔한 복수극에 끌리는 것은.

 

'야왕'(사진출처:SBS)

더 희한한 것은 이 뻔한 복수극의 얼개 역시 대단히 느슨하다는 점이다. 아마도 하류가 애초에 복수를 하겠다 마음먹었다면 그저 과거 행적이 드러나는 사진 몇 장을 언론에 뿌려버리면 그만일 일이다. 스스로 자기도 죽을 결심까지 섰다면 같이 죽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충분한 복수가 될 것이다. 잃을 게 없는 하류와 모든 걸 잃어야 하는 주다해가 맞는 죽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왕>의 하류는 그런 손쉬운 복수를 하지 않는다. 하류의 말을 빌면 “그건 너무 쉬운 복수”이기 때문이다. 하류는 주다해의 피를 바짝바짝 말려 주는 그런 복수를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주다해의 재단 이사장 취임식 날, 과거 딸과 자신이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을 기자들에게 퍼뜨리겠다고 협박을 해서 그녀를 이리 뛰고 저리 뛰게 만들고는 그녀 스스로 이사장직을 포기하겠다는 얘기를 하게 만든다. 역시 그녀의 치부가 드러나는 녹음된 말을 취임식에 틀어버리겠다는 협박을 통해서다.

 

그런 하류에게 고분고분해질 주다해가 아니라는 점은 <야왕>의 복수극을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버린다. 주다해는 심지어 하류의 아버지까지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으며 하류를 협박한다. 자신을 자극하면 주변사람들까지 다 다칠 수 있다는 경고다. 격분한 하류가 주다해를 끌고 외딴 창고로 가서 따귀를 올려 부치지만 주다해는 두려움에 떨기는커녕 하류의 따귀를 맞받아친다. 죽음까지 내몰리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류와 주다해는 두려움이 없다. 다만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긁어놓을 지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 같다.

 

그래서 이미 결론이 나와 있고 결정적인 한 방을 주저하고 있는 하류를 보면 마치 이 뻔한 복수극이 ‘시간 끌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끝까지 시청자들의 마음을 갖고 이른바 마인드 게임을 하고 있는 느낌.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이 지점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이 드라마만의 묘한 매력을 만들어낸다.

 

현실성에 벗어난 전개, 결정적인 한 방이 있으면서도 오히려 조금씩 파국을 향해 접근하는 방식. 이건 복수극이라기보다는 한 판의 게임에 가깝다. 하류가 한 방을 때리면 주다해가 맞받아 때리는 따귀처럼 <야왕>은 이 복수와 분노와 통쾌함을 주고받으며 굴러가는 한 편의 게임이다. 결과는 알고 있지만 그 끝까지 가는 과정을 즐기는.

 

이것은 아마도 <야왕>의 원작이 만화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만화란 훨씬 더 현실을 벗어나 그 자체의 게임적인 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야왕>은 초반부에 상당히 전형적인 드라마적 리얼리티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빈부의 문제와 자본 하에서 가난한 자들이 성공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 같은 것들을 깔아두었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바탕은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제 사라진 지 오래다. 오로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물들 간의 치열한 마인드 게임이 지금 <야왕>을 움직이는 추동력이 되었다.

 

물론 아쉬운 점은 많다. 이러한 치고받는 마인드 게임 아래 충분한 현실적인 공감대를 유지했다면 <야왕>은 훨씬 더 폭발력 있는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야왕>은 그 태생적인 설정의 비현실성 때문에 그런 드라마로 완성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준 <야왕>에 대한 눈길을 뗄 수 없는 건 그 뻔한 복수극 속에 존재하는 게임적인 재미 때문이다. 이번엔 누가 한 방을 먹일 것인가. 또 그 반격은? <야왕>을 보는 관전 포인트는 그래서 여느 복수극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비의 '도망자', 고현정의 '대물' 그 강약 비교

첫 방영에 '도망자'와 똑같은 시청률 18%를 기록한 '대물'은 기획이 잘 된 작품이다. 먼저 '여성 대통령'이라는 화제성이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 그 대통령을 연기하는 배우가 고현정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선덕여왕'의 미실로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던 그녀의 이미지가 여전히 여운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치 드라마를 소재로 담고 있지만 그저 현실적인 정치에 머무르지 않고 그 위에 대중들의 바람을 판타지로 엮어놓은 점도 강점이다. 천안함 사태나 아프카니스탄 피랍, 대통령 탄핵 같은 우리 주변에 이미 벌어졌던 사건들을 배치하지만, '대물'은 그것을 현실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즉 대통령을 다루지만, 아직은 현실적으로 바라보기 힘든(물론 현실이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지만) 여성 대통령을 다루는 작품이 '대물'이다.

정치물이면서도 그 주인공으로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어 드라마 주시청층인 중장년 여성층을 공략하기에도 수월하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이미 대통령이 된 서혜림(고현정)을 다루는 게 아니라, 아나운서가 되었다가 남편의 죽음을 겪고 정계에 입문해 대통령이 되어가는 여성의 성장드라마를 다룬다는 점에서 여성사극이 보여주던 그 몰입감을 선사한다.

'대물'의 이런 기획적인 강점들을 두고 보면, '도망자'는 상당히 불리해 보인다. 사실 '도망자'의 완성도나 성취도는 결코 낮지 않다. 이른바 '한국형 본격 오락 드라마'의 탄생이라고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작품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이미 장르적 성취가 이루어진 것이지만 여전히 드라마에서 본격 오락물은 요원한 것처럼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도망자'는 이런 매체적 한계를 여지없이 깨고 있다.

'도망자'는 대사로 극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액션)을 통해 스토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타의 드라마들과 다르다. 대사는 주로 코미디를 연출하는 측면이 강하고, 드라마는 시종일관 쫓고 쫓기는 장면들로 그 속에 놓여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누군가에 의해 자신과 관련된 인물들이 모두 죽음을 당하고 자신조차 쫓기는 진이(이나영), 그리고 그녀에 의해 고용된 탐정 지우(비), 또 살인자로 오인해 지우를 추격하는 형사 도수(이정진). 이들이 벌이는 추격전은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재미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를 마치 옆 동네처럼 넘나들고 멀티 더빙된 영화처럼 우리말과 일본어, 중국어, 영어가 마치 일상어처럼 사용되는 이 드라마는 스케일이 그만큼 크고, 이야기 전개 또한 스피디하다. 따라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으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그 오락적인 영상의 흐름 위에 던져진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렇게 정신없이 달리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과거 일제시대에 사라진 금괴의 이야기로 한 지점으로 모여질 것으로 보인다. 액션이 보여주기 위한 액션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이 정신없이 달리는 액션이 시청자들에게 낯선 것 역시 사실이다. 대사로 전달되던 이야기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끝없이 질주하는 몸들의 이야기는 너무 빨리 흘러가 오히려 몰입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시청층으로 봐도 중장년 여성들이 빠져들기에는 좀 어려운 스타일이다. 물론 이런 고정관념을 깨뜨리려는 시도가 이 작품의 진짜 묘미이자 가치인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한편 '대물' 역시 강점만 가진 것은 아니다. '대물'은 정치라는 현실적 배경 그림 위에 판타지적인 인물과 스토리를 얹어 놓은 드라마다. 따라서 인물과 스토리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흐르게 되면 작품 자체의 개연성을 깨뜨릴 위험성도 있다. 특히 만화 원작 드라마들이 만화적 스토리에 집착하게 되면 드라마적 현실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초반전. '대물'과 '도망자'는 각각 자신의 확고한 영역을 통해 박빙의 승부를 보여주고 있다. 장단점이 뚜렷한 이 두 드라마는 어떻게 자신의 장점을 더 부각시키고 단점을 극복하느냐에 앞으로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대물'은 진정 대물 드라마가 될 것인가. '도망자'는 계속 앞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인가.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두 드라마의 대결 자체가 흥미롭다.

부재한 만화적 상상력, 사회극으로 연출된 ‘꽃남’

고교생이 함께 호텔에 들어가고 바에서 술을 마시고 나이트 클럽에서 춤을 춘다. 단지 서민이라는 이유로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고, 사생활이 찍혀 공개되는 등 자극적인 왕따 문화가 그려진다. 돈 앞에 지나치게 고개를 숙이는 금전만능주의를 그려 서민들의 삶을 왜곡한다. ‘꽃보다 남자’에 쏟아진 논란들은 그 끝을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도대체 왜 그럴까.

원작만화가 그렇다면 끝?
가장 큰 이유는 연출력 부재에서 비롯된다. ‘꽃보다 남자’의 스토리는 대부분 일본 원작만화에서 그려진 그대로다. 하지만 같은 스토리라도 만화 속에서와 드라마 속에서는 전혀 느낌이 다르게 그려진다. 금잔디(구혜선)네 집의 아이 같은 어른과 어른 같은 아이 설정은 만화에서라면 당연히 가벼운 웃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려진 이 아이 같은 부모들이 구준표 앞에서 보여준 비굴함은 웃음보다는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구준표의 거만한 태도 역시 만화 속이라면 이해되고 심지어 그 기성사회에 대한 도발이 통쾌할 수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멸치를 보며 “이게 무슨 벌레냐”고 묻는 구준표를 보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고교생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 금잔디네 부모의 모습이나, 고교생들이 한 학생을 두고 벌이는 집단따돌림은 초창기부터 원작만화가 가진 왜색문화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리메이크 과정에 있어서 원작을 수용하기만 했지 우리 식의 해석이 들어가지 않았던 데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이런 비판들에 대해 제작사측은 시종일관 원작만화가 그렇다는 식으로만 말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원작만화로 돌리는 핑계가 납득될 수 있는 일일까. 이것은 오히려 이 드라마의 연출력 부재를 스스로 자인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 불거져 나온 드라마 내내 깔리는 OST의 논란은 이제 이 드라마의 연출력 부재가 총체적인 부실로 드러나고 있음을 말해주는 증후로 보여진다.

‘꽃보다 남자’는 원작만화를 잘 그려내지 못했다
만화가(그것도 외국의) 드라마로 리메이크 되려면 연출에 있어서 재해석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 물론 재해석에 있어서 원작만화에 충실하려 했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꽃보다 남자’가 원작만화를 잘 그려냈다고 볼 수 있을까. 만화의 스토리를 살리려 했다면 단순히 스토리의 재연이 아니라 스토리를 만화적으로 연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했다.

우리는 이미 ‘메리대구 공방전’이나 ‘환상의 커플’, ‘경성스캔들’을 통해 드라마의 만화적 연출 가능성을 목도한 적이 있다. ‘메리대구 공방전’은 광각 카메라를 통해 앵글 자체를 만화적으로 활용하고, 컷을 만화의 단 나누듯이 연출해 그 만화적 스토리의 경쾌함을 만들어냈다. ‘환상의 커플’은 안나조(한예슬)라는 독특한 말투와 대사의 캐릭터를 창조함으로써 그 만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경성스캔들’은 일제시대라는 무거움을 과감하게도 만화적 연출을 통해 가볍게 그려내는 실험성을 돋보였다.

이들 일련의 수작들과 비교해보면 ‘꽃보다 남자’의 연출은 만화적이라기보다는 사회극의 분위기를 자아낼 정도로 무겁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드라마의 자극적인 전개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즉 사회극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현실적인 연출들, 예를 들면 심각할 정도의 집단따돌림 장면이나, 주인공을 위기로 몰아넣기 위해 강간 같은 장면을 연상시키는 연출은 거꾸로 이 드라마의 만화적 존재들인 F4와 극명한 대비를 통해 그 일차적인 자극을 높이려는 의도다.

하지만 만화가 사회극의 뉘앙스를 가져와 논란을 만들어내고, 또 논란이 불거졌을 때 원작만화라는 핑계로 숨는 것은 당당하지 못한 태도일뿐더러 이 드라마의 연출력 부재를 드러내는 반증이기도 하다. 만화적 대사, 스토리를 그대로 끌어오고도 그것이 만화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연출은 그 만화적 속성과 드라마적 속성의 괴리로 인해 논란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지금 불거져 나온‘대사보다 OST’라는 비판은 이 부재한 연출력을 OST(사실 OST라고 할만한 다채로움도 별로 없다. 단 한 곡이 거의 반복될 뿐이다.)로 보완해보려는 안일한 연출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꽃남’과 ‘돌아온 일지매’, 원작만화에 가까워진 드라마

물론 원작이 만화이지만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캐릭터들 역시 순정만화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인물들이다. 초부유층 자제들인 F4의 일상은 무대회, 별장, 파티 같은 순정만화 속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분명 고등학생이지만, 신화고등학교가 재학생들에게 주는 파격적인 특혜로 인해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모습 따위는 발견할 수 없다. 왜? 만화 속에서 그런 이야기는 재미가 없으니까.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멋진 꽃미남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비일상적인 모습들이다. F4의 리더인 구준표(이민호)와 스포츠카를 타고, 분위기 있는 꽃미남 윤지후(김현중)와 함께 말을 타고, 식사를 할 때도 하녀들의 시중을 받거나 주방장의 특별 서비스를 당연한 듯 받는다. 쇼핑을 할 때면, 한 백화점을 통째로 빌리기도 한다. 물론 그 백화점도 그 주인공의 것이다.

드라마로 보면 황당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만화로 보면 당연한 이 판타지의 세계는 따라서 드라마 속으로 틈입한 만화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만화의 흐름과 드라마의 흐름은 호흡이 다르지만, 판타지라는 접점을 공유하는 순간, 시청자들의 시선 자체를 돌려놓는다. 젊은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이러한 만화적 감성에 익숙하지만, 나이든 세대라도 ‘꽃보다 남자’를 보며 그 판타지에 푹 빠질 수 있는 시청자라면, 적어도 소싯적 ‘캔디’나 ‘베르사이유의 장미’같은 순정만화 한두 편쯤은 빠져서 본 적이 있는 분일 것이다.

‘꽃보다 남자’가 순정만화를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였다면, 최근 방영되며 그 독특한 연출이 화제가 된 ‘돌아온 일지매’는 고 고우영 화백의 그 독자적인 만화 세계를 사극 속으로 들어들였다. 고우영 화백의 만화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작자의 개입이 들어가는 내레이션의 활용이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저들끼리 만나고 부딪치며 대사를 주고받지만, 그 위에 그들을 내려다보는 작자의 해설이 고우영 만화의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것은 ‘삼국지’나 ‘수호지’, ‘초한지’같은 원전들이 있는 작품들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면서 만화화해온 고우영 화백 나름의 노하우가 깃들여져 있는 것이다. 사극 ‘돌아온 일지매’에서 작품 몰입을 방해한다는 논란을 일으킨 책녀의 존재는 바로 그 내레이션을 드라마화한 데서 나온 것이다. 이 책녀라는 내레이션은 조금 낯선 존재이기는 하지만 바로 그 점이 고우영 만화의 진짜 재미에 접근하게 해준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고우영 화백의 또 한 가지의 특징은 이야기를 중심인물에서 시작하기보다는 주변인물에서부터 서서히 중심인물 쪽으로 끌어간다는 점이다. 발차기의 고수로 옆으로 걷게 된 왕횡보(박철민)같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이야기의 화두로서 등장하고 그 인물이 주인공과 얽히면서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가는 구조가 고우영 만화의 또다른 재미이다. 이러한 주변에서부터 중심으로 가는 이야기 구조는 ‘일지매’같은 서민들의 영웅을 다루는 콘텐츠에서 특히 빛을 발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일지매를 다루지만 주변부 인물들 예를 들면 구자명(김민종) 같은 인물 또한 빛나게 됨으로써 한 영웅만의 이야기가 아닌, 서민들 각각이 자신만의 영웅적인 이야기를 가진 인물로 조명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일지매라는 원전 해석이 아닌 고우영 화백 자신만의 작품이 특별히 빛나고 여러 차례 타 장르에서 재해석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꽃보다 남자’나 ‘돌아온 일지매’는 모두 원전 만화를 드라마화한 것이 아니라, 만화 그 자체를 보는 재미를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였다.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 인지하면서 적극적으로 그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순정만화 그 자체인 드라마와, 책장을 넘기듯 몇 편으로 제목 지어진 고전이 되어버린 일지매라는 고우영 만화를 드라마를 통해 보는 새로운 재미를 경험하고 있다.

혹자는 만화 같아서 유치하고, 몰입이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드라마가 만화와 동거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드라마를 꼭 리얼리티만으로 보려고 하는 것 자체가 그다지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만화에서도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과 판타지 그 세계 자체를 여행하는 것이 자유롭게 공존하듯이 이제는 드라마도 여러 형태들을 껴안을 만큼 충분히 진화해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화 같은 ‘꽃보다 남자’와 ‘돌아온 일지매’. 진짜 만화의 묘미를 아는 시청자라면 그것이 오히려 만화 같아서 더 재미있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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