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194)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981)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Total13,431,154
Today68
Yesterday378

기억과 상처, ‘그 남자의 기억법’의 멜로가 독특해지는 이유

 

남다른 기억 능력을 가진 이가 그려나가는 뻔한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일까. MBC 수목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은 잘 나가는 방송국 앵커 이정훈(김동욱)과 SNS 팔로워 860만명이 넘는 연예인 여하진(문가영)의 만남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는 점에서 먼저 그런 선입견을 갖게 된다.

 

실제로 두 사람의 관계는 이정훈이 진행하는 ‘뉴스라이브’에 여하진이 출연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에 의해 생겨난다. 늘 그렇듯 까칠하게 여하진의 일관성 없는 행동을 지적하는 이정훈에게 여하진이 별 생각 없이 툭 던진 말 한 마디가 방송 사고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이정훈의 죽은 첫 사랑 정서연(이주빈)이 자주 했던 “나는 복잡한 게 싫다. 그냥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세면서 살고 싶다”는 말이었다.

 

순간 정서연의 말을 떠올려 생방송 중 멍해지는 바람에 생겨난 방송 사고는 그러나 평소 평판이 좋은 이정훈이 아니라 악플이 많았던 여하진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이정훈의 질문에 화가 나서 밖으로 뛰쳐나가 잠시 방송이 끊어진 것이라 소문이 난 것. 그렇게 된 게 미안해 최희상(장영남) 국장이 마련한 술자리에서 이정훈과 여하진은 다시 만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스캔들로 이어진다. 화가 난 여하진은 대놓고 이정훈과 좋은 만남을 갖고 있다고 언론발표까지 해버린다.

 

이처럼 ‘그 남자의 기억법’은 첫사랑을 잃고 마음을 닫아버린 이정훈과 그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 여하진 사이의 멜로를 로맨틱 코미디의 스타일로 그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과잉기억증후군을 앓고 있는 이정훈이라는 색다른 캐릭터는 모든 걸 기억하는 것이 행복한 능력이 아닌 지독한 고통일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인물. 망각의 능력(?)이 없는 그는 죽은 첫사랑의 기억 속에 갇혀 살아간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저 기억의 문제를 하나 더해 그려내는 단순한 멜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건 의외로 아무런 걱정조차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여하진이라는 인물을 통해서다. 알고 보니 첫사랑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해 이정훈을 놀라게 했던 여하진은 서연의 절친이었다. 친한 사이여서 나눴던 말들이 불쑥 불쑥 저도 모르게 튀어나와 이정훈을 놀라게 했던 것.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여하진은 정서연에 대한 아무런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그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어떤 지울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고, 그 감당할 수 없는 상처가 여하진으로 하여금 정서연과 관련된 기억을 지워버렸던 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정서연의 죽음은 어딘지 여하진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바로 거기에 여하진의 망각의 이유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그 남자의 기억법’이 담고 있는 멜로가 흥미로워지는 건, 정서연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정훈과 여하진의 기억이 정반대의 양상을 보인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정훈은 그 순간 하나하나를 낱낱이 기억하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반면, 여하진은 그 기억을 지워버린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고 있다. 그 어느 것도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두 사람이 그 기억을 매개로 만나 조금씩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과정은 어쩌면 치유의 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지점에서 이 드라마는 멜로의 차원을 넘어 우리가 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 어떤 거대한 상처를 어떻게 마주하고 보듬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그 남자의 기억법’이 단지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의 경쾌함을 담은 드라마가 아니라, 의외로 진중한 문제의식이 담고 있다는 걸 드러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하이에나’, 물고 뜯던 그들은 과연 공조할 수 있을까

 

“우리 사이가 뭔데?” “우리? 사랑했던 사이.” SBS 금토드라마 <하이에나>에서 정금자(김혜수)의 질문에 윤희재(주지훈)는 갑자기 그런 고백을 한다. 그건 윤희재가 정금자의 의도적인 접근과 연인행세를 ‘사랑’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쿨한 척 그 관계를 부정해온 정금자도 윤희재의 그 돌발발언에 멈칫한다. 물고 뜯던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사실 장르드라마에서 멜로는 언젠가부터 불필요한 사족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무늬만 의학드라마’라 불리는 드라마들은, 본격적인 직업의 세계를 다루지 못하고 대신 ‘가운 입고 연애하는’ 이야기를 담았다는 의미에서 비판받곤 했다. 이것은 검사나 변호사가 등장하던 드라마에서도 멜로가 잘못 쓰이면 나오던 비판들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들은 대부분 실제로도 정당하다.

 

그래서 장르드라마에 멜로가 들어가면 또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드라마가 그런 건 아니다. 장르드라마라도 하려는 이야기에 따라 멜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중요할 수 있다. <하이에나>가 그렇다. 정금자와 윤희재 사이에 조금씩 지펴지는 멜로의 기운은 어쩌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에 꼭 필요할 수 있어서다.

 

정금자를 갑자기 송필중(이경영)이 송&김으로 끌어들인 이유는 뭘까. 그건 쓰다가 버릴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송&김이 하는 일들은 지금껏 드라마에서 소개된 것처럼 늘 폼나게 법전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은 아니다. 그런 금수저의 길을 걸어온 윤희재 같은 변호사들이 할 수 없는 일들, 일종의 편법까지 써야 하는 그런 일들을 송필중은 정금자에게 맡기려 한다. 그렇게 해서 적당히 이익을 얻은 후 팽하려는 것.

 

윤희재와 정금자가 비품실에 함께 숨어 들어가 나누는 각을 세운 대화에는 이들이 얼마나 다른 길을 걸어왔는가가 담겨있다. “여긴 네가 살던 세상이 아냐”라는 윤희재의 말에 “왜? 내가 검정고시 출신이라? 당신처럼 학벌, 인맥이 없어서?”라고 답하는 정금자의 말이 그렇다. 정금자는 학벌, 인맥도 없다. 그래서 윤희재가 말하듯 “쓰레기” 같은 방식, 즉 편법을 써서라도 무조건 이기려 달려든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이 태생부터 다른 송&김으로 대변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싸워 이기고 실적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하이에나의 삶이다. 늘 모든 걸 가진 채 살아온 윤희재는 그것을 ‘쓰레기 같은 방식’이라 말하지만 그게 아니면 정금자 같은 인물이 그 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정금자와 윤희재의 멜로는 의외로 중요해진다. 굳이 사랑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금자를 바라보는 윤희재의 인간적인 시선이 더해진다면, 쓰다 버리려는 송필중으로 대변되는 그 세계에서의 이들의 공조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멜로는 관계를 달리 보게 만드는 하나의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

 

결국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째서 가진 것 없는 이들은 하이에나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정금자의 뭐든 뚫고 나가려는 저돌적인 행동을 지지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생기고, 또 그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윤희재에게도 매력이 생겨난다. 멜로가 사랑타령이 아닌 관계를 달리 보게 만드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태원' 안보현 빠지니 어딘지 허전한 건

 

장근원(안보현)이 빠지니 어딘지 허전하다? 아버지 장대희(유재명)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고 감옥에 간 장근원이 이 드라마에서 얼마나 중요한 악역이었는가가 그가 빠지자 더 절실히 느껴진다. 시청자들을 뒷목 잡게 만드는 빌런이면서도, 동시에 연민이 느껴질 정도로 적당히 당하고 무너지는 악당. 그래서 장근원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보는 맛을 만들어준 캐릭터였다.

 

장근원이 감옥에 가자 그 자리를 대치할 악역이 좀체 보이지 않는다. 장대희가 그 역할을 해줘야 하지만 그는 궁극적인 악으로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다. 장가의 서자로 단밤에서 일했던 장근수(김동희)가 단밤을 그만두고 장가로 들어갔지만 어떤 역할을 할지 아직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가 단밤과의 대결을 벌일지 아니면 단밤과는 계속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목표인 장가를 가질 것인지 알 수 없다.

 

장근수는 아직까지 악역이라기보다는 조이서(김다미)를 짝사랑하며 그 사랑 때문에 엇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그래서 대놓고 진실게임 벌칙에 걸린 박새로이(박서준)에게 조이서를 여자로 생각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도무지 돌려 말할 줄 모르는 박새로이는 그런 적이 없다고 단칼 발언을 함으로써 조이서를 울린다. 장근수의 이런 역할은 박새로이와 조이서 간의 멜로를 끄집어내는 것일 뿐, 이 드라마가 가려는 ‘청춘 복수극’의 핵심 서사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드라마에 동력을 만들어내는 절대적인 악역이 뒤로 물러나고 대신 그 자리에 멜로로 인한 갈등이 등장하면서 <이태원 클라쓰>는 숨 가쁘게 달려오던 걸 잠시 멈춰 숨고르기를 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껏 <이태원 클라쓰>가 지속적인 힘을 갖게 됐던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복수극 서사’ 때문이다.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박새로이라는 인물이 기성세계의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청춘의 방식)으로 하나하나 해나가는 복수극. 성공을 통한 복수는 창업 판타지와 맞물리며 이 드라마에 힘을 부여한 바 있다.

 

복수극에서 악역이 중요한 건, 사실상 악역의 그 행동들이 그 복수극이 궁극적으로 하려는 주제의식을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근원의 그 지질함과 비겁함은 태생으로 갖게 된 권력을 휘둘러 잘못을 저질러도 덮혀지고 승승장구하게 만드는 엇나간 사회 현실을 끄집어낸다. 장대희가 장가를 이끄는 그 수직적인 명령 구조는 상명하복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불통이라는 시대착오적 시스템을 꼬집는다.

 

이런 악역이 세워지기 때문에 그의 정반대편에 선 박새로이의 복수극은 의미를 갖는다. 그는 단순히 부모와 자신의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현실과 맞서는 것이고, 시대착오적인 시스템과 대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복수극의 짜릿한 사이다도 있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건드리는 비판적 지점들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잠시 숨 돌리기를 하는 것이라 여겨지지만, 강력하고 매력적인 악역이 순간 사라진 듯한 느낌은 <이태원 클라쓰>에는 그다지 좋은 게 아니다. 시청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태원 클라쓰>는 지난 1월 31일 첫 방송을 4.98%(닐슨코리아)로 시작한 이래 단 한 회도 빠짐없이 자체 최고시청률을 경신하며 15%를 목전에 뒀으나 장근원이 사라진 이후 첫 방송에서 급제동이 걸렸다. 비록 소폭이지만 방송 11회 만에 처음으로 시청률이 떨어진 것.

 

이 드라마가 다시 가속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좀 더 장대희가 전면에 나서야 하고, 장근수는 확실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 명백한 적수의 위협이 스토리를 통해 계속 전개되고 있을 때만이 간간히 양념처럼 들어간 멜로 또한 빛날 수 있다. 물론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간 장근원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이 드라마에 힘을 부여했는가를 실감하게 되지만.(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랑의 불시착’, 남북 경계 넘는 판타지 멜로가 주는 설렘의 실체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에서 이제 헤어져야 하는 리정혁(현빈)과 윤세리(손예진). 윤세리는 혹시 선을 넘어 저기까지만 같이 가면 안 되냐고 묻는다. 조금이라도 더 함께 걷고 싶은 두 사람. 하지만 리정혁은 군사분계선을 가리키며 “여기선 한 걸음도 넘어갈 수 없소”라고 말한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는 윤세리. 남과 북의 거리는 그토록 가까우면서도 멀게만 느껴진다. 한 걸음이면 넘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그만큼 먼 것은 남북으로 갈라지며 만들어진 마음의 거리다. 리정혁은 그 마음의 거리를 한 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좁혀버린다. “한 걸음 정도는 괜찮겠지.” 리정혁과 윤세리는 그렇게 마주하며 이별의 키스를 나눈다.

 

tvN 토일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보여준 이 키스신을 보며 아마도 많은 분들이 재작년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났던 그 장면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김정은 위원장의 즉흥적인 제안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분계선을 슬쩍 한 걸음 넘어갔던 그 장면. 단 한 걸음이지만 그 한 걸음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리정혁이 군사분계선을 한 걸음 넘어 들어와 윤세리와 이별을 나누는 장면은 그래서 흔한 로맨틱 코미디의 이별 장면 그 이상의 울림을 남긴다. 남북 간의 경계 사이에 서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한 걸음’의 의미가 훨씬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랑의 불시착>의 남북을 넘어서는 로맨틱 코미디는 리얼리티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현실성을 찾기가 어렵다. 물론 북한의 언어나 현실 상황들에 대한 사전 취재와 고증이 철저히 이뤄진 작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돌풍 때문에 북한에 불시착한 윤세리가 하필이면 북한 총정치국장 아들 리정혁과 인연이 맺어지고 사랑하게 되는 그 과정은 실제로 벌어지기 어려운 하나의 판타지다. 시청자들은 그러나 남북 간의 현실로 인해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개연성보다, 그 현실을 뛰어넘어 벌어졌으면 하는 판타지에 더 빠져들고 있다. 기꺼이 리정혁과 윤세리의 동화 같은 로맨틱 코미디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다.

 

이 판타지가 허용되면서 <사랑의 불시착>은 그간 우리가 많이 봐왔던 멜로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그리고 심지어 가족드라마의 소재들조차 새롭게 다가오게 만든다. 이를테면 리정혁의 아버지 리충렬(전국환)이 아들과 떼어놓기 위해 윤세리를 납치해 집으로 데려오면서 벌어지는 시퀀스는 전형적인 ‘예비 시부모를 만난 예비 며느리’의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을 납치해온 리충렬이 리정혁의 약혼녀인 서단(서지혜)의 아버지일거라 오해한 윤세리가 상황을 설명하며 리정혁을 생각하는 마음을 전하는 대목은 리충렬과 그의 아내의 마음까지 흔들어놓는다.

 

반대하는 부모 앞에서 윤세리를 향한 마음을 토로하는 리정혁과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는 윤세리의 이야기도 또한 그렇다. 그런 상황들은 멜로나 가족드라마에서 많이 봐온 결혼 반대하는 부모와 그를 감복시키는 남녀의 시퀀스들이지만, 이들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남북한 체제라는 사실은 이 소재 자체를 다르게 느끼게 만든다. 남녀 간의 관계를 담은 사랑의 이야기지만, 그것이 남북 간의 관계에 대한 염원을 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군사분계선까지 윤세리를 마중하기 위해 리정혁과 함께 나온 부대원들은 어느 빈 집에 잠시 머물며 그 곳이 북한산이 보일 정도로 남한과 가깝다는 걸 이야기한다. 몇 시간만 걸으면 갈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이다. 그 빈 집에는 아마도 멀리 간 아들을 기다리며 어머니가 기도했던 정한수가 놓여진 자리가 그대로 있다. 그 아들은 어쩌면 남쪽으로 월남했을 지도 모른다. 잠시 떠났던 걸음이 수십 년 동안의 이별이 되었을 지도.

 

그 짧은 거리를 밤눈도 좋은 리정혁이 괜스레 길눈이 안 좋다며 빙빙 도는 그 마음에서 윤세리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이별을 그리고 있는 그 장면은 아주 오래 전 누군가 그 길을 걸어 금세 돌아올 거라 떠났다 지금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리정혁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한 걸음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말하며 윤세리를 끌어안는 장면이 더 심쿵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동백꽃’이 까불이라는 사회적 공포를 활용하는 방식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옹산에 들어와 까멜리아라는 술집을 하며 아들을 부양하는 미혼모 동백(공효진)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여러 차례 범인을 검거하며 경찰이 된 황용식(강하늘)의 멜로가 주요 스토리다. 도서관에서 본 후 첫 눈에 반해 동백을 따라다니며 구애하는 황용식을 애써 밀어내다 대책 없는 그 돈키호테식 직진에 결국 동백은 마음을 열고 이제 달달한 관계가 시작되려던 참이다.

 

그런데 드라마 첫 장면에 들어가 어딘지 불안감을 만들었던 ‘까불이’라는 연쇄살인마의 그림자가 달달한 멜로에 조금씩 드리워지고 있다. 까멜리아의 벽에 낙서로 쓰인 ‘까불지 마라’는 글귀가 어떤 불안감을 주더니 이제 벽면에 커다란 글씨로 ‘까불지 말라고 했지.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너를 매일 보고 있다’고 쓰인 경고 메시지에 동백은 애써 강한 척 했던 그 면모마저 무너져 내렸다. 자신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 버텼지만 아들 필구(김강훈)마저 위험해질까 두려운 동백은 “옹산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까불이라는 존재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드라마의 분위기는 달달한 멜로에서 소름끼치는 스릴러가 덧씌워졌다. 물론 까불이를 잡겠다고 옹산 사람들을 만나 탐문수사를 하는 황용식과 마을사람들의 엉뚱함은 여전히 유쾌한 웃음을 주지만, 이제 공개적으로 경고를 해대는 까불이의 섬뜩한 메시지는 시청자들도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 드라마를 집필하고 있는 임상춘 작가는 동백과 황용식의 구수하고 달달한 멜로에 까불이라는 섬뜩한 존재를 끼워 넣었을까. 그건 먼저 멜로가 갖는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드라마에 적당한 긴장감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인다. 황용식이 경찰이라는 사실과 동백이 까불이의 연쇄살인에서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라는 사실은 두 사람의 멜로가 이 사건 해결과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지점이다.

 

사실 황용식이 동백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졸졸 따라다닌 것도 바로 그 까불이라는 공포의 존재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게다가 이제 황용식은 두려움에 옹산을 떠나려는 동백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까불이를 반드시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멜로에 이만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데 까불이라는 설정은 그만큼 효과적이었다는 것.

 

또한 그간 친근했던 마을 사람들 중 까불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도대체 누가 까불이인가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래서 이미 시청자들은 다양한 저마다의 추리를 내놓고 있다. 동백의 가게에서 일하는 향미(손담비)가 까불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향미가 다른 의도로 실제 까불이를 흉내내고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오랜만에 갑자기 돌아온 동백의 엄마(이정은)도 의심스럽고, 까멜리아에 CCTV를 달아주었던 철물점을 운영하는 흥식(이규성)도 시청자들의 용의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누가 까불이인지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런 관심과 궁금증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드라마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가 까불이라는 존재를 끼워 넣은 건 이 드라마를 그저 사적인 멜로에만 머물게 하고 싶지 않았던 뜻이 있지 않을까 싶다. 까불이가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은 그 정감 넘치던 옹산 사람들을 하나하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었다.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은 보는 대상을 이토록 다르게 보게 만든다. 이것은 <동백꽃 필 무렵>이 동백과 황용식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는 공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려서는 고아로, 나이 들어서는 미혼모에 술집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동백은 한 평생을 편견과 선입견의 굴레 속에서 살았다. 그래서 잔뜩 주눅 든 채 살아가는 동백에게 다가온 황용식의 사랑은 그저 사적인 사랑을 넘어 그 편견과 선입견을 깨주는 공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자신과 달리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편견과 선입견의 시선을 보내는 걸까. 그건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

 

까불이라는 존재는 바로 그 불안감이 만들어내는 편견과 선입견의 시선을 구체화해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불안의 근거일 수 있는 까불이만 사라지면 사라져버릴 비뚤어진 시선들인 셈이다. 그래서 모두가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가운데 황용식이 그 까불이를 잡겠다 나서는 그 대목은 동백에 대한 사랑이면서, 그 불안감과 거기서 비롯되는 편견, 선입견에 맞서는 공적 정의의 의미를 담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과 황용식의 사랑이야기를 여타의 멜로와 달리 절절하게 보게 된 건, 그 사적 멜로에 공적 의미들이 담겨 있어서였다. 편견 때문에 자신의 소중함을 폄하하며 근근이 버텨내며 살아가던 동백에게 그 소중함과 귀함을 일깨워주는 사랑. 이 작품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절묘한 작가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배가본드’ 제작진, 여성 캐릭터를 이렇게밖에 쓰지 못한다는 건

 

SBS 금토드라마 <배가본드>는 굉장히 새롭다고 보긴 어려운 드라마다. 비행기 폭파 테러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무기상들의 이권다툼과 여기 연루된 권력자들. 그리고 이들과 대적하는 차달건(이승기)이라는 서민형 액션 영웅의 이야기가 그다지 참신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이른바 블록버스터라고 불리는 드라마에는 항상 등장하는 코드가 국정원 요원, 테러, 권력, 무기상, 로비스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본드>가 나름 시청자들의 시선을 끄는 건 액션 때문이다. 스토리는 뻔하지만 그 과정을 담는 액션의 볼거리는 흥미롭다. 특히 금토 저녁에 너무 집중하지 않고 편안하게 액션을 즐기고 싶은 시청자들이라면 <배가본드>는 딱 그 정도의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몸 사리지 않는 이승기의 액션만으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가 가진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은 여러모로 심각한 수준이다. 드라마 시작과 함께 여주인공인 수지의 연기력 논란이 터져 나왔던 건 물론 국정원 요원과 어울리지 않는 대사톤이나 표정 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건 근본적으로 보면 이 작품이 여성 캐릭터를 쓰는 방식의 문제가 더 크다.

 

<배가본드>는 수지가 연기하는 고해리라는 여성 캐릭터를 국정원 요원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기보다는 드라마들이 여성을 소비하곤 하는 틀에 박힌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요원이라기보다는 멜로가 준비되어 있는 여성으로 대상화하고 있기 때문에 차달건이 죽도록 몸을 날려 진상을 파헤치려 뛰고 또 뛸 때 고해리는 민폐가 되거나 혹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만 처한다.

 

게다가 뜬금없이 술에 취해 “너 내거 해”라고 하며 키스를 하는 장면은 여성이 나서서 먼저 남성에게 키스한다는 능동성(?)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여성을 멜로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이 드라마 제작진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내는 장면처럼 보인다. 이러니 요원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상황 속에서 고해리만 혼자 멜로드라마를 찍고 있는 듯한 이질감이 생긴다. 이런 캐릭터라면 수지가 아니라 그 어떤 베테랑 배우가 해도 연기력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 제작진이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일종의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있다 여겨지는 건 드라마 전체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를 들여다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고해리는 멜로에 방점이 찍혀 있고, 제시카 리(문정희)는 무기 거래를 하기 위해 무고한 이들을 비행기 폭파 사고로 죽게 만드는 악녀다. 제시카 리가 고용하는 살인청부업자 릴리(박아인)도 어디선가 본 듯한 클리셰 청부업자의 이미지 그대로이고, 공화숙(황보라)은 주인공 옆에 늘 서브로 존재하는 그런 캐릭터다.

 

그나마 제시카 리가 나름의 능동성을 가진 캐릭터로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남성들의 세계가 치열한 전장과 두뇌싸움으로 그려지는 반면, 여성들의 세계는 상투적인 면들이 강하다. 물론 굳이 남성 여성을 나눠 얘기할 필요는 없지만, 주인공 고해리를 요원 역할로 쓰기보다는 멜로의 존재로 더 세워놓은 것처럼 여성 캐릭터들이 전형화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어째서 <배가본드>는 액션 드라마에서 멜로가 아닌 액션과 스릴러에 더 집중하는 여성 캐릭터를 그리지 않은 걸까. 이를테면 tvN <시그널>에서 차수현(김혜수) 같은 캐릭터나 tvN <비밀의 숲>에서 한여진(배두나)이나 영은수(신혜선) 같은 캐릭터 같은 직능에 충실한 여성 캐릭터는 매력이 없다 여기는 걸까. 연기가 어색하다고 수지를 비판하기 전에 <배가본드>의 여성 캐릭터가 가진 한계를 먼저 곱씹어봐야 한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의사요한’ 지성과 이세영의 해피엔딩,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

 

때론 해피엔딩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지금껏 드라마가 달려온 주제의식이 엔딩에 이르러 흔한 ‘사랑타령’으로 끝나버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SBS 금토드라마 <의사요한>이 딱 그렇다. 통증의학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져와 고통과 삶과 죽음에 대한 만만찮은 이야기들을 그려왔던 <의사요한>이 마지막회에 이르러서는 차요한(지성)과 강시영(이세영)의 흔한 멜로드라마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사실상 <의사요한>의 마지막회는 사족에 가까웠다. 통증에 대한 임상실험 참가자이자 연구자로서 미국에 간 차요한의 바이탈 기록을 매일 같이 체크하며 기다리는 강시영의 헤어질 듯 다시 만나는 뻔한 이야기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고 그렇게 3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나타난 차요한과 사랑을 확인하는 강시영의 이야기. 거기에 <의사요한>이 지금껏 다뤘던 주제의식은 희석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차요한은 자신이 내리는 고통에 대한 마지막 처방전으로서 의사의 역할이 병을 고치는 것만이 아닌 고통을 알아주고 나누는 것이라는 걸 드러냈다. “고통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고통은 우리 안에 살고, 우리 삶은 고통과 함께 저문다. 그 고통을 나누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고통의 무게는 줄고 고통을 끌어안는 용기는 더해질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알아주고 나누는 것, 이것이 삶이 끝나야 사라질 고통에 대한 나의 마지막 처방이다.”

 

즉 고통뿐인 삶 앞에서 의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던진 질문에 이 드라마는 호스피스 완화 치료를 답으로 제시한 것이다. 즉 치료는 완치만이 목적이 아니고 완화도 그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 그래서 의사는 환자 옆에서 그 고통을 들여다보며 고칠 수 없다면 그것을 완화해주는 치료를 해주는 것이 응당한 역할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요한>은 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과 고통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의식적으로 멜로 라인을 통해 그 무거움을 덜어내려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강시영과 차요한의 멜로 라인이 그렇고, 이유준(황희)과 강미래(정민아)의 멜로 라인 또한 그렇다. 게다가 통증의학과 레지던트들은 상당부분 희화화된 캐릭터로 그려졌다. 드라마가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걸 막으려는 의도적인 구성이고 연출이다.

 

그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주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요한>이 지나치게 멜로로 기운 건 오히려 한계로 지목된다. 차요한이라는 캐릭터가 전반적으로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담아내며 잘 살아난 데 비해, 강시영은 의사로서는 너무 감정적이고 또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도 이런 드라마의 한계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에 비하면 너무 아쉬운 캐릭터의 면면이 아닐 수 없다.

 

의학드라마는 이제 너무 많아져 특별한 소재나 주제의식 혹은 형식실험을 가져오지 않으면 뻔한 드라마라는 인식을 갖게 될 정도다. 그러니 의학드라마가 뾰족한 주제를 가져와 끝까지 밀고 나가는 건 그만큼 중요해졌다. <의사요한>은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드라마다. 뾰족한 주제의식을 갖고 오고도 뭉툭한 멜로의 결말로 끝내버렸다는 점에서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의사요한’, 단순 사랑 아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사랑

 

SBS 금토드라마 <의사요한>에서 강시영(이세영)은 차요한(지성)에게 “좋아해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강시영은 차요한이 사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질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밤이고 낮이고 그를 걱정한다. 함께 데이트를 나와서도 앞에서 달려오는 사람이 혹여나 차요한에 부딪칠까를 걱정하고, 뜨거운 커피를 쏟을까를 걱정한다.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제 몸이 망가지고 있어도 그걸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차요한은 자신의 집에 대신 몸 상태를 체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매일 퇴근해서는 제 몸을 검사하고 잠을 잘 때도 카메라에 영상으로 그 모습을 일일이 기록해 혹여나 있을 수 있는 수면 중 행동의 위험성 또한 예방하려 한다.

 

그 질환에 걸린 이들이 손가락이 뜯기는 지도 모르고 손을 물어뜯거나, 각막이 손상되는 지도 모르고 눈을 비비는 그런 행동들을 하다 결국은 일찍 사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시영은 눈물을 쏟아낸다. 병원에 바이러스성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가 들어오고 그 병동이 폐쇄 격리되자 강시영은 혹여나 그 곳으로 차요한이 들어오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하지만 강시영이 환자를 돌보다 쓰러지게 되자 차요한 역시 그를 걱정해 폐쇄 병동에 들어와 문제를 해결한다.

 

좋아한다 말하고,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상대방을 걱정하며, 데이트를 하면서도 혹여나 있을 위험을 피하려 하는 강시영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의학드라마 속에서도 보게 되는 멜로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의사 요한>이 강시영을 통해 그려내는 멜로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그건 그가 사랑하는 차요한이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강시영과 차요한의 멜로는 스킨십보다는 감정을 공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차요한의 상황을 애써 이해하려는 강시영에게 차요한이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애써 그러지 말라고 하고, 그럼에도 강시영이 그걸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이들이 보여주는 멜로의 방식이다. 그건 남녀 간의 사랑으로 그려져 있지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의사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의 사랑으로도 보인다.

 

차요한이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알 수 없다고 말하자 강시영이 그렇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사랑이야기의 차원을 넘어 보다 깊은 인간애에 대한 통찰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우리는 과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 이해했다 생각하지만 착각인 경우가 많고, 그것이 미디어를 통해서 오해 혹은 오역되기도 하는 문제. 우리는 공감한다 말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공감인가에 대한 질문. 그런 것들이 <의사 요한>에서는 멜로에서조차 담겨진다.

 

강시영의 차요한에 대한 애착은 그래서 함께 산을 오르다 사고를 당해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삶을 이어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겹쳐진다. 그래서 강시영이 차요한을 이해하려 애쓰는 건 마치 자신이 더 이상 아버지의 고통을 없애줄 수 없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차요한은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병을 갖고 있어 환자의 고통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 고통을 경감시키려 노력한다. 통증 그 자체가 아닌 그 사람을 들여다보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무통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자신의 질환을 보여주면서 그래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던진다. 타인의 고통을 우리는 완벽히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겪는 고통이 있어 타인의 그것을 미루어 이해하려 노력한다.

 

자신이 겪는 고통 혹은 우리가 갖게 되는 어떤 결핍이나 상실감. 그것이 있어 우리는 어쩌면 타인의 고통과 결핍, 상실감 같은 걸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통증은 그저 고통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해하게 만드는 신호라고도 볼 수 있다. <의사 요한>은 이처럼 통증이라는 화두를 통해 우리네 인간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그려내는 면이 있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신입사관 구해령’, 이 좋은 소재를 가져와서도 멜로만?

 

지금 지상파 수목드라마는 전반적인 부진에 빠져있다. 그나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MBC <신입사관 구해령>을 보면 어째서 이런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가를 가늠하게 된다. 조선의 첫 번째 문제적 여사(女史) 구해령(신세경)이라는 꽤 흥미진진한 가상의 인물을 세워두고도 이 드라마는 어째 여자 사관과 왕자 이림(차은우)의 사랑타령에만 거의 머물러 있어서다.

 

왕자와 궁에 들어오게 된 여인의 로맨스는 이미 KBS <구르미 그린 달빛> 같은 작품에서도 시도된 바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여자 주인공이 남장여자 내시로 궁에 들어왔다면, MBC <신입사관 구해령>의 여자 주인공 구해령은 여사로 궁에 들어온 게 다를 뿐이다.

 

소재가 아깝다 여겨지는 건, 초반 연애소설을 쓰는 ‘매화선생’으로 도성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인물인 도원대군 이림과 소설을 읽어주는 구연자인 구해령이라는 인물이 만나는 대목에서 무언가 자유로운 글쓰기와 표현에 대한 메시지들이 멜로의 표피를 가진 이 드라마에 단단한 골격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서가 되어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봉쇄되는 호담선생전에 대한 궁금증은 향후 이 금서를 두고 벌어질 어떤 사건들이 멜로 그 이상의 이야기를 향해 나갈 것으로 예상됐다. 게다가 정해진 혼례를 거부하고 당당히 사관으로서의 길을 선택하는 구해령이라는 인물의 능동적인 모습은 조선사회를 배경으로 사회진출을 꾀하는 진취적인 여성상의 등장이라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드라마는 점점 화제성을 동반한 문제작이 될 거라는 기대감과는 전혀 달리, 구해령과 이림 사이의 알콩달콩한 멜로의 틀로만 한 회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갑자기 번진 역병을 해결하기 위해 구해령과 함께 이림이 우두를 시행해 백성들을 구하는 대목은 흥미롭지만, 이것이 여자 사관의 이야기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악역으로 등장하는 왕(김민상)은 왕세자인 이진(박기웅)과 대립하며 이림은 아예 사지로 내모는 인물이다. 그런데 왕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왕은 그저 이 달달한 멜로가 너무 잔잔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가끔 등장해 긴장감을 만들기 위해 난폭한 언사와 폭력을 보여주는 그런 인물 정도로 그려진다.

 

만일 자유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표현의 자유 혹은 사생활의 자유와 기록 사이의 대립을 그려내려 했다면 드라마는 좀 더 위기감이 강조되어야 한다. 구해령과 이림이 가까워지는 건 그 자체로 부적절한 일이 될 수 있다. 또 여사로서 무엇이든 기록을 해야 하는 일로서의 의무와 또 지켜주고픈 사생활이 누군가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상황 사이에서 구해령은 더 곤혹스런 입장에 처해야 드라마는 팽팽해진다.

 

하지만 이런 많은 가능성들을 이 드라마는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저 그런 멜로로만 빠지다 보니 신세경과 차은우라는 선남선녀가 눈을 마주치고 스킨십을 하는 그 장면들로 시청자들의 눈을 붙잡아 두려는 것처럼 보인다. 한 회가 다 끝나도 별다른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았다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시청률도 그래서 4%에서 6% 사이를 오가는 고만고만한 수치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그나마 지상파 드라마들 중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건 어딘지 쓸쓸한 느낌마저 준다. 어째서 <신입사관 구해령>은 메시지가 잘 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뻔한 멜로의 틀에만 갇히게 된 걸까. 이래서는 지상파 드라마에 현재 감지되는 위기를 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봄밤’이 거둔 성취와 남는 아쉬움

 

<봄밤>은 MBC가 9시 드라마 편성을 시도한 첫 작품으로 꽤 괜찮은 성적을 냈다. 3%대에서 시작해(닐슨 코리아) 8%대 시청률까지 냈으니 말이다. 게다가 화제성도 좋았다. 소소하고 담담한 일상 멜로의 틀 안에서도, 사회비판적 코드들이 만들어내는 극성이 분명히 존재했다. 제목은 달달하기만 할 것 같은 ‘봄밤’이지만, 결코 달달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이렇게 된 건 <봄밤>이 멜로라는 소재를 가져와 사실은 속물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심지어는 범죄적인 엇나간 인물들을 적나라하게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전면에 보이는 건 이정인(한지민)과 유지호(정해인)의 보고만 있어도 눈 호강을 하게 되는 멜로지만,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 가득한 인물들은 우리네 사회의 현실적인 부분을 충분히 건드리고도 남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사랑이 아닌 승부욕과 ‘집착’을 보이는 권기석(김준한)은 그 사회비판적 시각을 담아내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보여주는 권력적인 관계들은 심지어 남녀 사이라는 사적인 관계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는 결코 지는 걸 용납할 수 없는 엇나간 집착. 그것은 자신이 유지호 같은 비혼부에게 밀린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비정상적인 집착이었다.

 

이를 둘러싼 부모 세대의 이야기는 그래도 자식들의 행복을 더 빌어주려는 진정한 어른들과 자식의 행복은커녕 그 결혼조차 자신의 입지로 바라보려는 속물적인 어른들의 대비로 그려졌다. 이정인의 엄마 신형선(길해연)이 전자라면 그 남편이자 이정인의 아빠인 이태학(송승환)은 후자였다. 여기에 권기석의 아버지 권영국(김창완) 같은 갑을관계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물이 가세하면서 이 대결구도는 팽팽해졌다.

 

즉 이정인과 유지호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밤에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달달한 멜로는 이런 외부적 상황들과 대결하게 된다. 시청자들은 이들의 멜로가 이뤄지길 바라면서 동시에 그들을 힘겹게 만드는 외부적 상황들이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가를 자연스럽게 들여다보게 된다.

 

사실 드라마 초반 <봄밤>은 안판석 감독과 김은 작가 그리고 정해인과 꽤 많은 안판석 라인 배우들(?)의 출연으로 전작이었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실제로도 유사한 지점들이 있었다. 일상 현실 연애를 담고 있다는 것과, 그 안에 우리 사회의 현실을 담아내는 방식이 그것이다.

 

하지만 <봄밤>의 종영에 이르러 생각해보면 이것은 어찌 보면 안판석표 멜로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아주 현실적인 일상 연애를 특유의 섬세한 연출로 담아내면서 동시에 그 위에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얹어 넣는 그런 멜로. 그저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 속에 치열한 대결의식을 담아내는 방식. 그것이 안판석표 멜로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남는 의구심도 분명히 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이어 <봄밤>까지는 어떻게 몰입해서 본다고 해도 또 비슷한 멜로가 나온다면 과연 시청자들이 반색할 수 있을까. 이제 안판석 감독 같은 장인이 만든 조금은 야심이 엿보이는 그런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댓글을 달아 주세요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