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의 풍수사로 돌아온 연기 장인 최민식

파묘

“땅이야 땅. 우리 손주들이 밟고 살아가야 할 땅이라고!”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에서 김상덕(최민식)은 그렇게 말한다. 9백만 관객을 넘기고(20일 현재) 1천만 관객 돌파가 거의 기정사실이 된 이 영화는, 상덕의 이 말에 담긴 뉘앙스처럼 공포 가득한 오컬트 영화에서 무언가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영화로의 확장을 꾀했다. 

 

묘를 파낸다는 ‘파묘’의 의미는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집안에 생긴 우환의 원인으로 묫자리를 잘못 썼기 때문에 이를 파내서 이장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관객들 입장에서 보면 그저 땅을 파는 게 아니라 묘를 파낸다는 그 상황이 주는 공포감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사적인 차원에서 우환을 없애기 위한 파묘일 때 생기는 공포감이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 그 사적인 차원의 파묘는 보다 공적인 의미로 확장된다. 일제가 민족 정기를 끊기 위해 범의 형상을 한 한반도의 허리에 해당하는 혈자리에 쇠말뚝을 꽂았다는 음모론을 상상력으로 확장한 이 작품은 바로 파묘를 하려는 이들에게 그 쇠말뚝을 뽑아내는 미션을 부여한다. 

 

이들의 행위는 그래서 끊어졌던 민족 정기를 잇는 의미를 갖게 되고, 공포감과 맞서는 일 또한 우리 민족이 힘겨워도 마주하고 넘어서야 할 일제의 과거사 문제들이라는 은유를 담게 된다. ‘파묘’가 오컬트 장르라는 다소 마니아적 한계를 넘어 천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는 대중적인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작품에서 묫자리를 봐주고 잘못된 건 바로 잡아주는 풍수사 상덕은 사적인 동기로 시작했던 파묘를 공적인 동기로 넘어서게 해줌으로서, 사실상 두 개로 끊어져 있는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내는 인물이다. 즉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대사에 담긴 것처럼, 범의 형상을 한 한반도의 허리에 해당하는 곳에 꽂힌 쇠말뚝을 뽑아내는 이야기에 걸맞게, 앞뒤 두 개의 이야기가 끊어져 있는 것을 대사 한 마디로 이어내는 인물이다. 

 

그건 풍수사라는 직업이 땅을 보고 다루는 전문영역을 갖고 있어서 가능해진 일이다. 전문적인 직업의 영역은 그래서 사적인 욕망이나 생계수단이기도 하지만, 때론 그 경험들이 응축되어 무언가 뒤틀어진 것을 바로잡음으로서 모두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공적인 역할이 되기도 한다. 상덕이 그러하듯이. 

 

이건 최민식이라는 배우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가 걸어온 연기 인생을 들여다 보면 배우라는 전문영역에 그가 얼마나 일생을 던져 노력해왔는가가 엿보인다. 그는 엇나간 학생들을 엄하게 꾸짓는 선생님(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고, 조폭들과 맞짱뜨는 검사였으며(넘버3), 바람난 아내 때문에 분노하는 남편이자(해피엔드),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순박한 시골남자(서울의 달)였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역할들 또한 그는 연기했는데, 남파 공작원(쉬리), 장승업(취화선), 수십 년을 갇혀 지내다 복수를 꿈꾸는 인물(올드보이), 연쇄살인마(악마를 보았다), 정재계 인사들과 연결된 비리로 점철된 브로커(범죄와의 전쟁), 심지어 이순신(명량) 역할까지 소화했다. 

 

그가 메소드 연기의 일인자라는 걸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인물들을 진짜 그 인물이 되어 연기로 풀어냈는가가 불가사의하게 여겨질 정도다. 그의 메소드 연기에 얽힌 이야기들은 그래서 때때로 인터뷰를 통해 회자되곤 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악마를 보았다’에서 연쇄살인마 연기를 했을 때 있었던 일화다. 

 

영화 촬영 중 동네 피트니스 센터 엘리베이터에서 평소 친근하게 다가오곤 했던 한 아저씨가 반말로 “어디 최씨냐”고 물어봤을 때 저도 모르게 “근데 이 XX가 왜 반말을 하지?”하는 생각이 들어 엘리베이터 비상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최민식이 어떤 연기를 할 때 얼마나 그 인물 깊숙이 들어가는가를 잘 말해주는 일화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살인자의 ‘살’자도 다신 안하고 싶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고 한다. 또 <명량>으로 이순신 장군의 역할을 할 때도 그는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그건 이 인물이 홀로 짊어졌을 무게가 고스란히 자신을 짓눌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메소드 연기는 최근 들어 배우들이 잘 시도하지 않는 연기 방식이다. 진짜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하기 위해 실제 생활을 해보는 등 완전히 그 사람이 되어 연기를 하는 것인데, 요즘은 이렇게 빠져서 하는 연기보다는 한 걸음 떨어져서 하는 생활연기법이 많이 활용되기 때문이다. 

 

최민식의 라이벌로 불리는 송강호가 바로 그런 스타일의 연기를 한다. 역할을 연구하는 건 같지만, 완전히 그 인물이 되어 연기하는 것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절제된 연기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다르다. 이 차이에 대해서 박찬욱 감독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최민식이 ‘고전주의자’라면 송강호는 ‘자연주의자’라고. 어느 쪽이 옳거나 낫다고 말할 수 없고 다만 스타일의 차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최민식에게 연기란 끝없이 새로운 인물의 세계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고, 그걸 연구하고 배우는 것이다. 그는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 작업이 죽어야 끝나는 작업이에요. 사람을 연구하고 세상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일인데 사람에 대해서 뭐 답이 있어요? 이 인생에 답이 있나요? 삶이 답이 있어요? 세상이 변하고 사고방식도 변하고 가치관도 달라지고 이게 졸업이 어디 있어요? 이걸 하나하나 알아나간다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재밌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고 이건 죽을 때까지 하는 공부예요.” 

 

그런데 그 공부에 임하는 태도가 흥미롭다. 무언가 새로운 세계를 하기 위해 우리는 뭐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일단 뛰어들라고 말한다. “그냥 뛰어들어서 하면 돼요. 아니 이게 냄비 솥이 뜨거운지 알려면 만져봐야 뜨겁죠. 그러니까 한번 뜨거운 맛을 봐야... 만져보지도 않고 뭐 어떻게 알겠어요. 무슨 일이든지 그렇지 않나요? 내가 좋아하고 호기심이 있고 하고 싶다 그러면 한번 해봐야지 알지. 뭐... 방법이 없죠.”

 

‘파묘’의 상덕이 그러하듯이 땅 속에 뭐가 있는지는 일단 파 봐야 안다. 무엇이 나올지 두렵기도 하지만 파보지 않으면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하나하나 땅을 파보듯이 최민식은 여러 역할들을 팠을 게다. 그리고 그 역할들이 동시대의 대중들에게 줬던 여러 감정들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게 분명하다. 무언가를 파다 보면 전문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건 때론 꽤 거창하고 의미있는 일들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걸, ‘파묘’의 상덕이 아니 그 역할을 연기하는 최민식이 우리 앞에 꺼내 보여주고 있다. (사진:영화 '파묘')

세종부터 윤동주까지, <무도> 역사로 현재를 경고하다

 

세종대왕, 위안부, 성웅 이순신, 유관순 열사, 윤동주 시인... <무한도전>이 힙합과의 콜라보를 위해 꺼내든 역사는 그 하나하나가 현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사실들이었다. 그것은 굳이 현재의 시국 상황을 꺼내놓고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단지 그 역사를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비판보다 준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의 평가가 현재의 국정농단 사태에 내리는 철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본격적인 곡 작업에 들어가기 전 출연자들이 모여 들은 설민석 강사의 강의는 그 메시지가 명확했다. 설민석 스스로 말했듯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지킨 건 백성이라는 게 이 강의의 중심주제였다. 본래 역사란 현재에서 선택되는 순간 그 자체로 현재적 의미를 갖기 마련이다.

 

설민석이 중심 주제를 그렇게 잡은 것도, 또 그래서 현재로 세종대왕의 애민사상과 임진왜란에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이순신 장군, 독도가 우리 땅임을 천명하기 위해 천민이지만 홀로 나섰던 안용복 선생님, 일제강점기에 기꺼이 나라를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버린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나라 잃고 이름마저 잃은 세상에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 그리고 꽃다운 나이에 이역 땅까지 끌려가 지옥 같은 나날을 살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위안부 소녀들까지 모두가 그저 과거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 울림을 주는 것들이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농사직설 같은 책을 편찬하기 위해 똥지게를 지고 직접 농사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를 지금의 대중들은 어떻게 들을까. 이를 주제로 노래를 만들기 위해 정준하와 지코가 찾은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해주는 세종대왕의 이야기에 지금의 대중들은 어떤 걸 떠올렸을까. 박상연 작가가 지도자들 입장에선 백성이란 존재가 적당히 무식하고 정치에 무관심해야 통제하기가 쉽다.”고 말한 대목에 현재의 국정농단 사태를 비교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을 양세형과 비와이가 만나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었던 고초를 듣는 그 대목에서 지난해 1228일 한일외교정상회담에서 나온 위안부 합의의 굴욕을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사태에 할머니들 역시 거리로 나와 현 국정농단을 규탄하면서 위안부 합의 역시 역사 농단의 하나임을 외치지 않았던가.

 

왕이 도망칠 때 홀로 왜적과 맞서 싸운 성웅 이순신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이순신 장군을 노래로 만들기 위해 하하와 송민호가 <명량>의 전철홍 작가를 만나 나누는 이야기들은 저 광화문 광장에서 지금도 우뚝 서서 백성들과 함께 할 그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박명수와 딘딘이 설민석 강사의 강의에 감명 받아 노래로 만들려 하는 독도이야기에서 나라의 관리들이 하지 못한 일을 천민 출신의 안용복 선생이 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또 황광희와 개코가 주제로 잡은 윤동주 시인이 시로써 써나간 당대의 부끄러움이 현재의 부끄러움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무한도전>은 현 시국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없었다. 오직 역사적 사실들을 가져와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은 그 어떤 준엄한 비판보다 크게 다가왔다. 거기에는 결국 역사가 준엄한 심판을 내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후대에 평가되어 대대로 이어질 역사가 있다는 것. 그걸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무한도전>은 현재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준엄한 경고를 날렸다.

김원해, <아수라> 작대기와 <혼술남녀> 학원장 사이

 

사실 <SNL코리아>에 김원해가 크루로 들어왔을 때 그가 누구인지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디선가 많이 봤던 얼굴이지만 그리 주목된 적은 없는 단역들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SNL코리아>에서 워낙 코믹한 연기를 잘 소화해내는 그를 보면서 아마도 시청자들은 코미디언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을 게다.

 

'혼술남녀(사진출처:tvN)'

하지만 김원해는 아주 조금씩 자신이 연기자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줬다. 영화 <명량>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던 배설 장군 역할을 잘도 소화해냈고, <해적>이나 <타짜2>에서도 조금씩 그만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시그널>에서 그가 맡았던 김계철 경사 역할은 시청자들에게 배우 김원해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잠재력은 영화 <아수라>에서 드디어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사실상 이 영화의 도입 부분에 들어가 있는 김원해가 연기한 작대기라는 인물은 영화 전체의 어둡고 처절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마약에 취한 채,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고 꿈틀대는 벌레 같은 이미지의 작대기라는 인물을 김원해는 거의 온 몸을 던져 연기했다.

 

스스로 머리를 밀어버리고 게슴츠레한 눈빛에 비리 형사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막판에 몰리자 그 형사에게 도리어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은 관객들의 뇌리에 강렬한 잔상으로 남았다. 이 김원해가 <SNL코리아>의 그 김원해와 같은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 우리가 그동안 김원해의 진가를 잘 몰랐었다는 걸 그는 <아수라>를 통해 보여줬다.

 

그의 놀라운 연기의 폭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tvN <혼술남녀>에서 그가 연기하고 있는 학원장 역할을 통해서도 보여진다. 그는 스타 강사인 진정석(하석진) 앞에서는 비굴하게 아부를 하는 인물이지만, 실적이 별로 없는 강사들에게는 당장 짐 쌀 준비나 하고 있으라고 으름장을 놓는 갑질 학원장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처세에 밝은 학원장에게서는 인간적인 냄새도 물씬 풍긴다.

 

10시만 되면 알람이 울리고 회식을 하다가도 어김없이 일어나는 민진웅에게 와이프에게 그렇게 쩔쩔 매는 이유가 뭐냐며 지청구를 날리던 김원해는 그의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듣고 그것이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해온 어머니를 찾아간 것이었다는 걸 알고는 그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그는 강사 위에 있는 학원장이고 그래서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그들의 입장을 자신의 일처럼 이해하는 인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김원해가 갖고 있는 서민적인 이미지는 그래서 그가 다채로운 연기의 폭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관되게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들이다. <아수라>에서 그가 작대기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 섬뜩함 속에서도 또 <혼술남녀>의 학원장의 잔소리 속에서도 어떤 따뜻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대부분의 신스틸러들이 그러하듯이 어떤 상황, 어떤 색다른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그 안에 그만의 독특함을 새겨 넣는 배우. 이것이 그간 우리가 잘 몰랐던 김원해라는 배우의 진가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님아, 그 강을..>

 

도대체 무엇이 대중들로 하여금은 손수건을 챙겨 영화관으로 향하게 했을까.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신드롬을 들여다보면 시쳇말로 울고 싶은데 뺨 때린영화들이 가진 힘에 새삼 놀라게 된다. 물론 이 독립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니는 영화지만 그것이 신드롬의 차원으로 이어진 데는 외적인 요인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출처: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작년 말에 개봉해 올해 초에 신드롬을 이끌었던 <변호인>이나 올 여름 신드롬을 만든 <명량>도 마찬가지다. 영화적인 가치를 떠나 이들 작품들은 모두 현실의 대중들이 갖고 있던 정서의 뇌관을 건드렸다. <변호인>이 서민들을 향해 있지 않은 법 정의의 문제로 대중들을 울렸다면, <명량>은 세월호 정국으로 드러난 리더십 부재의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소환했다. 영화를 보러간다기보다는 억눌린 정서를 잠시나마 풀어내기 위해 극장에 가는 기현상이 벌어졌던 것.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신드롬 역시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유난히 많은 사건사고들로 점철된 한 해를 겪어내며 애써 눈물을 참아왔던 대중들이 아닌가. 이 영화는 마치 그 한 해를 참았던 묶은 눈물들을 쏟아내는 일종의 씻김굿의 현장처럼 다가왔다. 사람들은 이미 입소문에 의해 그 내용들을 거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이 영화는 내용을 확인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안에 들어가 비로소 함께 울고 있다는 그 공존의 위안을 갖는다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모두를 함께 울게 만드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 죽음 같은 우리네 삶의 본질적인 것들에서 나온다. 결국은 모두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죽음 앞에 서서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본질. 거기에 헛된 욕망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좌절들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취업전쟁과 팍팍해진 현실, 경제적 불황과 양극화 같은 좌절들마저 죽음 앞에서는 소소해진다.

 

그 앞에서도 어르신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은 실로 아름답다. 그것은 현실로부터 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현실이 가려놓은 삶의 본질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그것이 우리가 진짜 살아가야할 본질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더욱 큰 울림을 갖는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현실에서 발 하나를 떼어 밖으로 나와 비로소 그 현실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모인 자식들이 의견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이제 죽음을 앞둔 어르신이 그 메마른 눈에서 펑펑 눈물을 쏟는 모습은 그래서 삶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겉돌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강을 건너가려는 님을 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그 님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이 우리네 미천한 삶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님이란 존재는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리네 소중한 삶 그 자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삶이 힘들고 지쳐서 도무지 견디기 힘든 서민들이 작정하듯 손수건 하나씩을 들고 이 영화관을 찾는 것이다. 85분 동안의 웃음과 눈물은 우리네 삶의 본질을 찾는 시간이 된다. 먹먹한 감동에 영화관을 나서는 발길이 들어갈 때보다 가벼워져 있는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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