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이 MBC에 미치는 영향

 

프로그램 하나가 방송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 외로 크다. KBS의 전체 프로그램에서 <개그콘서트>가 가진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그 영향력은 단순히 그 프로그램의 인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배출된 개그맨들은 KBS의 중요한 프로그램 속으로 들어가 부가적인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다. <남자의 자격2>에 투입된 김준호가 그렇고, <1박2일>시즌2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맡고 있는 이수근이 그렇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다. 거기에는 젊음과 패기, 도전과 즐거움, 경쟁과 공존 게다가 다양한 세대통합의 의미까지 담겨져 있다. <개그콘서트>를 전면에 내세우면 그 프로그램을 품고 있는 KBS의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보인다. 물론 실상은 많이 다를 수 있고 실제로 다르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개그콘서트>의 좋은 이미지는 그렇게 KBS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무한도전>은 그런 의미에서 MBC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대중들은 MBC의 파업이 왜 벌어졌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겪고 있는지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대중들이 그 파업을 지지했던 것에는 거기에 <무한도전> 있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무한도전>을 안하는 MBC. 그 하나만으로도 MBC 파업의 의미를 대중들은 대충 알아차릴 수 있었다.

 

MBC의 이미지가 ‘도전’이었다면, <무한도전>을 하지 않는 MBC는 ‘도전하지 않는’ MBC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의 눈과 입을 대변하며 날선 비판도 서슴지 않았던 MBC의 도전은 언젠가부터 꺾어지기 시작했다. 많은 시사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거나 본래의 모습을 잃어갔고, 교양 프로그램들도 어딘지 밋밋해졌다. 파업을 선택한 <무한도전>은 그 자체로 MBC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24주가 걸렸다. 수많은 회유가 있었다. 제작진도 힘들고 팬들도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 수많은 아이템들이 날아갔고, 스페셜 재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10%대를 유지했던 시청률은 4%대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대중들은 <무한도전>의 선택을 존중했고 기다렸다. 파업 도중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던 <무한도전 파업특별편> 동영상은 조회수가 3백만을 훌쩍 넘어섰다. “조만간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돌아오겠다”는 다짐은 그렇게 3개월이 더 지난 후에야 이루어졌다.

 

이제 파업을 중단하고 업무 복귀를 선언함으로서 우리는 <무한도전>하는 MBC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파업이 남긴 수많은 숙제들이 남았다. 파업으로 인해 현장에서 밀려나게 된 직원들의 원대복귀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고, 항간에는 더 흉흉한 소문도 돈다. 결국 프로그램은 사람이 만든다는 점에서 부당하거나 심지어 보복성의 인사 조치는 스스로 제 살을 깎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주부터 다시 <무한도전>이 시작하지만, 그 상징적인 의미처럼 <무한도전>을 멈추지 않는 MBC로 돌아오길 바란다. 만일 그 변화가 보인다면 이탈했던 수많은 MBC 시청자들 역시 도전하는 MBC를 지지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MBC의 동력이 되는 셈이다. 그 동력이 제대로 힘을 받을 수 있게 초심의 MBC로 돌아가기를.

<무걸>이 살 길과 <무도>에 대한 예의

 

<무한걸스>의 지상파 입성은 과연 약일까, 독일까. 첫 방송에 쏟아지는 반응들은 <무한걸스>가 앞으로 갈 길이 평탄치 만을 않을 거라는 걸 예상케 한다. 호평과 혹평이 갈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것은 그 이면에 <무한도전>이라는 거대한 예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무한걸스'(사진출처:MBC)

<무한도전>을 무려 20주 동안 보지 못한 팬이라면 <무한상사>를 그대로 패러디한 <무한걸스>의 첫 방송인 <무걸출판사>가 반가웠을 수 있다. 즉 <무걸출판사>를 보면서 <무한도전>의 공백을 잠시나마 채울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제 아무리 내놓고 패러디하는 것이라고 해도 <무한걸스>가 <무한도전>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 또한 실망할 수밖에.

 

<무한걸스>는 <무한도전>의 여성판으로 기획된 전형적인 케이블형 프로그램이다. 즉 <무한걸스> 독자적으로 서 있다기보다는 본래 <무한도전>의 패러디 성격이 짙기 때문에 지상파, 그것도 주말 저녁이라는 황금시간대에는 어울리기가 어렵다. 어디서 본 듯한 아이템들을 여성판이라는 미명 하에 반복 생산하는 것을 경쟁이 치열한 주말 저녁에 굳이 챙겨볼 시청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케이블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한도전>의 팬들이라면 자연스럽게 <무한걸스> 역시 <무한도전>의 곁가지로서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무한걸스>를 보면서 우리는 <무한도전>을 늘 떠올린다. 이것은 <무한걸스>가 가진 가장 큰 힘이지만, 또한 가장 약한 단점이기도 하다. <무한걸스>는 <무한도전>을 업고 있을 때 도드라지지만, 홀로 서야할 때는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무한도전>은 내용 그 자체보다도 그 매번 시도되는 소재나 형식 실험에 더 열광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무한걸스>의 첫 아이템이 <무한도전> 패러디라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이 프로그램이 가진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새로운 도전이나 실험이 아니라, 이미 <무한도전>이 시도했던 것들을 가져와 여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 <무한도전>을 비교점으로 가진 팬들에게 지상파 프라임타임대에 들어온 <무한걸스>가 좋게 보일 리가 만무하다.

 

<무한걸스>가 지상파에 발을 딛는 그 시기도 좋지 않았다. <무한걸스>가 <무한도전> 20주 결방으로 인한 팬들의 갈증을 채워주기보다는 마치 빈 자리에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는 듯한 인상을 만든 것. 물론 <무한걸스>의 제작진이나 출연진에게 그런 의도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편성이란 그 자체로 때론 모든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는 법이다.

 

기왕에 <무한걸스>가 지상파에 들어오겠다고 했다면 더 도전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무한도전>이 시도하지 않았던 아이템들을 갖고 와 마치 짝퉁이 진짜를 넘어서겠다는 자세를 보였다면 오히려 흥미로웠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케이블에서 보여주었던 <무한걸스>를 싹 잊게 만드는 좀 더 과감하고 도전적인 면모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현재 <무한걸스>는 두 가지 시선에 붙잡혀 있다. 하나는 <무한도전>의 공백이 주는 갈증을 채워줄 수 있다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것도 없이 대충 따라하면서 <무한도전>의 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시선이다. 그러나 이 두 시선 어느 것도 <무한걸스>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무한걸스>는 좀더 <무한걸스>만의 세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무한도전>에서 빠져나온 프로그램이지만 그렇다고 <무한도전>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본래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도전'이라는 하나의 주제만 같을 뿐, 매번 거의 완전히 다른 형식들을 실험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한도전>을 제대로 여성판으로 만들어내는 입장에서도 지상파에 입성한 <무한걸스>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독자적인 형식과 소재의 실험에 도전해야 한다. 그것이 <무한걸스>가 살 길이고, 또한 <무한도전>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무도> 외주화 검토 후폭풍이 말해주는 것

 

공식적인 발표도 아니다. 아마도 회의석상에서 잠깐 나온 얘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MBC 김재철 사장이 <무한도전>을 외주화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대중들은 공분했다. 외주화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무한도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무려 19주째 결방을 참으며 파업에 들어간 <무한도전>을 지지하는 대중들의 그 마음. 그 마음이 간단히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사실 <무한도전>의 외주화는 현실성이 거의 없다. 물론 물리적으로는 가능하다. 김태호 PD 대신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아마도 김태호 PD가 없는 <무한도전>에 참여하지 않을 MC들을 역시 대체인력으로 채우고 대충 도전이랍시고 흉내 내서 무늬만 <무한도전>으로 꾸려서 방영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무한도전>인가. 그건 아무 것도 아닌 프로그램일 뿐이다.

 

이것은 그간 <무한도전>이 어떻게 성장해왔는가를 생각해보면 간단히 이해되는 일이다. <무한도전>은 대중들과 함께 커왔다. MC들도 <무한도전>을 통해 성장했고, 프로그램도 같은 성장곡선을 그렸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였던 그들은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의 최고 연예인들이 되었다.

 

그만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능이라는 틀을 깨고 나와 끝없이 이어진 도전들. 단 몇 분 간의 실력을 보이기 위해 엄청나게 해온 보이지 않는 노력과 준비들. 그들은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전혀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댄스 스포츠를 했고 봅슬레이를 했으며 심지어 프로레슬링을 했다. 때론 다치기도 하고 너무 힘겨워 눈물이 쏟아지면서도 애써 웃으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왜? 그것이 시청자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이었다. 시청자들은 도전함으로써 조금씩 성장해가는 그들을 보며 위안을 받았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지지는 스스로에 대한 지지이기도 했다. 도전하면 반드시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만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 적어도 그 진심은 전해진다는 전언. <무한도전>의 도전정신은 어찌 보면 그저 포기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던 대중들을 각성시킨 면도 적지 않다.

 

<무한도전>이 걸어온 이 길은 어쩌면 MBC가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걸어왔던 길과도 다르지 않다. 갖은 외압 속에서도 꿋꿋이 할 말을 하는 MBC의 도전정신에 대해 많은 대중들이 지지했고 그래서 MBC는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MBC를 보라. 과연 대중들이 지지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외주로 대충 채워지고 있는 프로그램들에 대해 대중들은 지지를 거두고 있다. <무한도전> 외주화에 대한 생각은 MBC가 현재 걷고 있는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한도전>은 따라서 일개 프로그램 하나가 아니라, 대중들과의 약속이고 대중들이 함께 참여하고 움직이는 유기체 같은 존재다. <무한도전>이 뭔가 도전하면, 대중들은 거기에 맞춰 호응해준다. 심지어 제작진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의미조차 예리한 대중들은 발견하고 부여하며, 프로그램은 그것들을 모두 끌어안는 열린 자세를 유지한다. 이 대중과의 공조는 <무한도전>이 프로그램 그 이상인 이유다.

 

<무한도전>은 방송사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적어도 그 방송사가 대중들과의 공감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래서도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무한도전>만의 일이 아니다. 그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방송사가 대중들을 무시하고 휘두르기 시작한다면 그 방송사는 존재 의미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한도전>의 파업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는 그래서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MBC의 파업을 생각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무한도전>에 대한 외주화 발언만으로도 일파만파의 공분이 일어나는 것은, 작금의 MBC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정서가 무엇인가를 잘 말해준다. 대중들의 지지가 없는 <무한도전>이 <무한도전>이 아니듯이, 대중들의 공감 없는 방송사도 방송사로서의 기능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한도전> 외주화 발언의 후폭풍은 현재 외주화되고 있는 MBC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고 있다.

도전과 성장, <정글2>의 진면목

 

<정글의 법칙>에서 김병만과 그 동료들은 정글 한 가운데서 최소한의 생존 장비만 주어진 채 살아남아야 한다. 특정한 상황 속에 출연진들이 놓여지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가감 없이 포착해내는 이런 형식은 물론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무한도전>에서 무인도에 던져진 출연진들이 생존하기 위해 몸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야자수를 따는 장면을 기억한다. 또 알래스카에 김상덕씨를 찾기 위해 갔다가 그 혹한의 얼음 밭 위에서 말도 안되는 간이 올림픽 경기를 상처를 입어가며(?) 했던 장면들을 기억한다.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우리네 리얼 예능의 계보에서 <무한도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토록 크다. <무한도전>은 이미 그 야생의 낯선 지대로 뛰어 들어가 생존하기 위해 갖은 날것의 도전을 하는 그 예능의 형식적 틀을 이미 실험해 보여주었다. 물론 이것은 또한 서구의 리얼리티쇼들이 이미 선취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다만 <무한도전>이 의미 있는 것은 이러한 서구의 리얼리티쇼들의 형식을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풀어냈다는 점일 게다.

 

어쨌든 <정글의 법칙>에는 그 근간에 도전이라는 코드가 들어가 있다. 그들은 정글 깊숙이 들어가 문명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존법칙을 하나하나 체득해간다. <무한도전>의 초창기가 그러했듯이, <정글의 법칙>의 초반부는 역시 이 정글에 놓여진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도전이 되었다. 사실상 첫 번째 미션 장소였던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악어 섬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늑할 정도로 야생 가운데 안전이 어느 정도 확보된 공간이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파푸아에서 진행된 두 번째 정글 미션은 말 그대로 진짜 정글이었다. 이광규는 벌레들의 습격(?)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결국은 중도에 귀국했고, 코로와이족을 찾아가는 길은 극도의 한계를 시험하는 진정한 정글로드로서 출연자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에는 정글을 탈출하다 제작진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 진짜 정글 경험은 또 다른 도전의 자양분이 되었다.

 

남태평양 바누아투에서 찍은 <정글의 법칙2>는 그런 점에서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된 도전이다. 이번엔 그들을 위협하는 물이 있고 화산이 있고 정글이 있다. 이렇게 보면 <정글의 법칙2>는 <무한도전>이 그런 것처럼 정글의 무한 도전이 되는 셈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 목표를 세우고 그 안에 인물들이 투입된다. 그리고 도전을 겪어가면서 인물들의 생존능력 또한 성장한다. 이 프로그램이 계속 방영된다면 아마도 몇 년 후의 김병만과 그 동료들은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타잔 비슷하게 되어 있을지도.

 

진짜 리얼 프로그램의 특징은 그 안의 캐릭터들이 점점 실체가 되어간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그 멤버들은 초창기에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캐릭터로 시작했지만, 차츰 도전과 성장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최고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이렇게 실제로 성장한 출연진들 때문에 미션과 프로그램의 방향조차 바꿔야 했을 정도. 특히 유재석은 도전의 아이콘이 되었다. 방송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그저 방송을 위해 보여주는 도전의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로 대단한 도전정신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출연자와 만나 허구가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병만 역시 그런 야생과 정글의 달인이 되지 않을까.

 

흥미로운 건 <무한도전>이 저 해외의 리얼리티쇼를 한국화해서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형식을 만들었듯이, <정글의 법칙> 또한 해외의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를 상당 부분 한국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날 것의 정글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팀원들이 하나의 유사가족을 형성하는 점이 그렇다. 자칫 힘겨운 자극에만 매몰될 수 있는 정글의 경험이 때론 웃음이 피어나고 때론 감동적인 눈물이 연출되는 건 바로 이 지극히 한국적인 가족이라는 틀이 있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은 시즌을 거듭하면서 과연 <무한도전> 같은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 김병만의 무뚝뚝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장난기 가득하며 때론 놀라운 달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앞에서 끌어주는 한, 이러한 성취가 꿈만은 아닐 것이다. 김병만의 성실과 도전정신을 보며, 정글판 <무한도전>처럼 보이는 <정글의 법칙>에서 제2의 유재석을 예감하는 건 섣부른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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