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살리자는 명분, 왜 자가당착일까

 

최재형 PD가 잠정 복귀를 선택했다. 명분은 프로그램이 망가지는 걸 더 이상 못 보겠다는 거다. 실제로 '1박2일'은 최재형 PD의 파업 이후 파행으로 치달았다. 2회 분량 내용을 3회로 늘려서 편집해 내보냈고, 그러니 본래 '1박2일'만이 가졌던 색깔도 상당 부분 희석되었다. 게다가 최재형 PD의 파업에 대해 사측에서는 중견 PD를 투입해서라도 촬영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시스템이 우선이고 개인은 중요하지 않다는 지극히 KBS적인 사고방식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그러니 최재형 PD 입장에서는 답답했을 수 있다. 파업의 와중에도 프로그램은 버젓이 나가게 되고, 그 프로그램은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망가지게 되니 그걸 보는 게 편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잠정 복귀를 결정하면서도 파업 불참에 대해 껄끄러운 마음이 없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복귀하면서 "파업 불참은 전혀 아니며, 사측의 회유나 설득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또 "대체 인력이 투입되면 프로그램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아 잠정적으로 연출 복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파업에서 나오게 되는 상황이지만 '파업 불참'이 아니며, 또 복귀하는 것이 맞지만 그저 '잠정 복귀'라는 표현에는 최 PD의 고민이 묻어난다(요즘은 '잠정'이라는 표현이 유행이라도 되는가 보다). 하지만 고민 끝에 선택한 이 '잠정 복귀'가 과연 묘수가 될 지는 미지수다. 물론 제 자식 같은 프로그램이 망가지는 걸 보기 힘든 부모 같은 PD의 마음이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결국 그 자식이 잘 되려면 그 자식이 잘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방송 프로그램은 그것이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방송사의 환경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방송사의 풍토 내에서는 당연히 좋은 프로그램들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관제적으로 무언의 압력 속에 만들어지는 프로그램들은 자기 검열에 빠질 수도 있다. 이것은 방송의 사유화 혹은 정치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중들은 동원되고 호도될 수 있다.

 

결국 좋은 프로그램이란 프로그램의 내적인 환경으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외적인 환경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결국 최재형 PD의 선택은 나무가 아니라 가지를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 당장 가지 살리려다가 나무를 죽게 하면 결국 가지가 살 수 있을까.

 

또한 요즘처럼 프로그램 제작자에 대한 팬덤이 프로그램의 성패에 작용하는 시기도 없다. '무한도전'이 무려 13주째 결방을 하고 있지만 대중들은 방송 복귀보다는 그런 선택을 한 김태호 PD를 응원하는 쪽이다. 만일 김태호 PD가 방송에 복귀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면 대중들은 '무한도전'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대중들이 현재의 파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물론 '1박2일'은 프로그램의 성격이 '무한도전'과는 다르다. '무한도전'이 어딘지 마니아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면, '1박2일'은 거의 전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 예능적인 속성(여기서 국민 예능이라는 표현이 좋은 의미만 갖는 건 아니다)을 갖고 있다. 그러니 파업에 대한 호불호도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제작자만은 자신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중들은 어쩌면 최PD의 선택 때문에 '1박2일' 그 자체에도 실망할 수 있다.

 

결국 '1박2일'을 구하겠다는 최재형 PD의 선택은 자칫 잘못하면 '1박2일'을 죽일 수 있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최재형 PD가 복귀해서 만들어낸 '1박2일'은 대체 편집진들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완성도가 높을 것이고, 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추락하기 시작한 시청률이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선택에 의해 그간 그래도 '개념 있는 예능'으로 생각되던 '1박2일'의 이미지에 손상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제작진에 대한 호불호가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르기도 하는 요즘 같은 환경에서, 최PD의 선택은 과연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

예능과 시사 교양 모두 실종된 MBC

 

'MBC 뉴스데스크'는 한때 뉴스 프로그램의 간판 격으로 인식되기도 했었다. 특유의 권력에 굴하지 않는 따끔한 멘트와 시각들이 소외된 서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뉴스데스크 앵커 출신들은 모두 스타로 자리매김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건 이제 옛말이 된 것 같다. 지금의 뉴스데스크는 편성시간이 확 줄어버렸고 심지어 주말의 뉴스데스크는 단 15분이 고작이다. 대신 '세상보기 시시각각'이라는 VCR물이 뉴스의 빈자리를 때우고 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MBC는 'PD수첩'에서 '시사매거진 2580' 그리고 '100분 토론' 같은 인기 시사 프로그램들이 유독 많았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렸거나 본질을 잃고 마치 물 타기를 한 듯 프로그램 색깔이 흐릿해져버린 게 사실이다.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이 이런 상황이니, 교양 프로그램인들 온전할 리가 없다. 'MBC스페셜'은 금요일 밤을 대표하는 다큐 프로그램이자, TV 다큐의 성공사례로 지목되었지만 언젠가부터 대중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물론 파업 여파가 더 그 변화를 극명하게 보이게 해준 것일 게다. 하지만 이미 파업 이전부터 이런 변화는 눈에 띄게 일어났다는 것. 즉 이 변화가 파업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이런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파업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방송, 특히 현실에 민감한 시사나 교양 프로그램이 통제 받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방송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국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프로그램이 자칫 그 눈과 귀를 막을 수도 있다. 파업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 좀 더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함이다.

 

뉴스와 시사 교양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이 다를 수 없다. 예능은 그저 웃음을 주는 것으로 현실과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치부되기도 하지만, 어디 그런가. 지금의 예능은 현실과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 대중들의 지지와 공감을 얻지 못하게 된다.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은 대표적이다. 11주째 결방의 이유도 분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파업에 대해 지지하는 대중들의 마음도 분명하다. 우리는 그저 방영되기만 하는 '무한도전'이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웃음과 감동 그리고 의미를 주는 '무한도전'이 보고 싶은 것이다.

 

'무한도전', '황금어장', '놀러와', '우리 결혼했어요' 등등의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건 모두 제대로 된 프로그램들을 보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외주로 채워 넣은 '일밤'이나 MBC측에서 겨우겨우 채워 넣은 방송이 전혀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타이틀만 같다고 같은 프로그램이 되는 건 아니다. KBS의 '1박2일'이 파업 와중에 편집 인력 몇을 투입해 만든 프로그램이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되어버리는 건 그 때문이다.

 

남은 건 본래부터 외주로 채워지던 드라마들뿐이다. 그것도 자체 제작하는 주말드라마, '무신'과 '신들의 만찬'은 질적인 면에서 완성도가 너무 떨어지는 드라마들이다. 때 아닌 신파 설정으로 70년대 드라마를 보는 듯한 '무신'과, 이해할 수 없는 멜로 구도의 급변으로 논란마저 겪고 있는 '신들의 만찬'은 한때 드라마 왕국으로 군림하던 MBC의 위상을 옛이야기로 만들어버린다.

 

뉴스의 편성이 줄어들고, 시사교양 프로그램도 사라지고, 예능도 없고, 드라마마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방송. 이것은 어쩌면 파업이 아니라도 잘못된 인력운용으로 파행되는 방송사가 보여줄 풍경 그대로일 것이다. 케이블만큼도 볼 게 없는 작금의 MBC는 그래서 이 본질적인 문제를 그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식'의 인력운용과 버티기로 일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그토록 방송이 하고 싶은 이들이 눈물을 머금고 일선에서 벗어나 있는지, 또 그토록 제대로 된 방송을 보고 싶은 대중들이 긴 시간 동안 결방을 참고 있는지 MBC는 생각해봐야 한다.

'무도', 스페셜마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

9주째 결방. '무한도전'은 지난주 'TV전쟁' 특집을 스페셜 방송한 데 이어 이번 주에는 '미남이시네요' 특집을 내보냈다. '무한도전'이 가진 특유의 열린 프로그램 구조와 오래도록 새로운 도전을 못 본 시청자들의 마음이 섞여서 였을까. 스페셜 방송마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TV전쟁' 특집은 당시 방영되었을 때, 종편 시대에 접어들어 과열 경쟁으로 저질화 될 방송에 대한 풍자로 받아들여졌었다. 하지만 MBC 경영진들의 파행과 이를 막기 위해 장기화되고 있는 파업을 염두에 두고 보자,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졌다. 누가 방송의 주인이 될 것인가에 대한 풍자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노홍철TV에 자막으로 붙여진 '사기꾼'이라는 단어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건 'TV전쟁' 특집과 연이어 스페셜 방영된 '미남이시네요'가 모두 투표의 형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최근 MBC 김재철 사장이 지시했다는 선거 보도에 관한 지시를 떠올리게 한다. 4.11 총선에서 4시부터 6시까지의 선거보도를 막았다는 것. 이 시간대는 본래 공영방송이라면 응당 투표를 독려하는 보도를 해야 마땅한 일이다. 방문진의 여당 추천인인 차기환 이사는 이에 대해서 "젊은 층들이 투표를 4시부터 6시까지 많이 하는데, 그 시간 동안에만 방송 실시간 투표율을 보도하면서 투표를 독려한다고 하면 누가 봐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거꾸로 얘기하면 젊은 층들의 투표독려를 하지 않겠다는 얘기와 같다.

스페셜로 편성된 'TV전쟁'과 '미남이시네요' 속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저를 찍어주세요!"라는 외침은 그래서 이 모든 MBC 사태에 대한 '무한도전'의 결의처럼 읽히기도 한다. 비상식적인 인사와 경영(예를 들면 예능, 드라마의 외주화, 전 사원의 프리랜서 연봉제화, 기자 계약직화 심지어는 아나운서의 외주화까지)이 자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재철 사장에 대한 해임안도 거부되고 이제 남은 건 총선뿐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사실 시청자들에게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의 결방은 못내 아쉬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선 PD들의 선택을 지지하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무한도전' 김태호 PD가 누군가의 사익에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제 색깔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기를 대중들은 원한다. MBC에 이어 KBS도 파업에 들어가고, 여기에 '1박2일'과 '남자의 자격', '승승장구' 같은 간판 예능 프로그램 PD들도 속속 참여하고 있는 상황과, 이 불편함마저 지지하고 있는 대중들의 여론은 지금 이 흐름이 몇몇 기득권자에 의해 되돌릴 수 없는 것임을 잘 말해준다.

항간에는 '무도'의 장기결방의 손실이 20억 원에 이른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사실 이런 수치는 결방이 가진 의미에 의하면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다. 방송이 공영성을 잃고 몇몇 기득권자들의 사익에 좌우된다면, 그것이 대중들에게 미칠 손실은 수치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MBC 예능이 파업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당장의 사실 이전에, 그 파업이 왜 벌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다.

과정이 없는 리얼버라이어티쇼는 없다

'남자의 자격'(사진출처:KBS)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은 신년 첫 미션으로 '남자, 그리고 식스팩'을 다뤘다. 새해를 맞아 각오도 남달랐을 것이다. 앞으로 몇 달 동안 '남격' 아저씨들은 배에 왕(王)자를 새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MBC에서 차승원이 '헬스클럽'을 통해 시도된 소재지만 '몸 만들기'라는 소재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신년인데다가 '남격'의 아저씨들이 한다면 또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몸에 '새겨지는' 이 미션은 프로그램에 진정성을 더해준다. 사실 '남격'이 과거 같지 않다는 비판이 생겼던 것은 바로 진정성 부족을 느끼게 만드는 '날방'의 이미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대표주자는 이경규다. 그는 제빵사 도전에서도 실패했고, 오토바이 면허 도전에서도 실패했다. 물론 실패는 나쁜 게 아니다. '식스팩' 미션 역시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패를 어떻게 비춰주는가는 중요한 문제다.

'남격'의 문제는 바로 이 부분에 있다. 소재도 나쁘지 않고 미션을 임하는 멤버들의 자세도 그다지 불량하다 할 수 없지만, 이들을 포착해서 보여주는 방식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얘기다. '청춘합창단'을 기점으로 '남격'에서 몇몇 멤버들은 화면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 때 대부분의 멤버들이 그랬지만, 특히 김국진, 이윤석, 윤형빈은 존재감이 없었다. 그저 가끔 이경규와 전현무가 자가 발전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편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물론 이유는 있다. '청춘합창단'의 주인공은 거기 서 있는 어르신들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러니 자기 살 도려내듯 멤버들의 방송분량을 잘라냈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청춘합창단'을 지속하면서 김태원에게만 집중하고 다른 멤버들이 거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 건 큰 잘못이다. 최소한 그들이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줬어야 '청춘합창단'이 '남격'의 소재로서 하게 되는 명분이 된다. '청춘합창단'은 하모니를 다루는 독립된 프로그램이 아니지 않은가.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특정한 결과를 상정할 때 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억지로 결과를 도출하려 하는 욕망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무리하게 과정을 짜 맞출 수도 있다. 물론 그 정도는 아니지만 누군가의 과정이 과도하게 생략됨으로써 미션 자체의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다. 이경규가 제빵사 미션에서 연거푸 떨어졌거나 오토바이 면허 도전에서 떨어진 것은 이 과정을 중시했다면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흐지부지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왜 그 과정들은 모두 생략되었을까.

1년 동안의 프로젝트였던 '귀농' 미션 역시 과정이 생략되고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렸다. '탭댄스' 미션은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놓았지만 과정이 사라진 채 마지막 대회만 보여주었다. 개인 출전권을 갖게 된 이윤석은 정말 노력한 티가 역력했지만 그 땀의 장면들은 편집되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 이유는 함께 하기로 했던 탭댄스 미션에서 어느 순간 쑥 빠져버린 이경규, 김태원, 김국진을 통해 유추될 수 있다. 이들이 빠진 과정은 생략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들 즉 이윤석, 윤형빈, 전현무, 양준혁이 노력하는 과정을 길게 넣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즉 이 과정을 잡으려면 모두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줬어야 한다. 빠진 이들은 왜 빠진 것이고 뽑힌 이들은 왜 뽑혔는지를 말이다. '탭댄스' 미션의 이 그림들은 마치 선배들은 빠지고 후배들만 굴리고는 자기들이 빠졌기 때문에 후배들도 빠져야 한다는 볼썽사나운 수직체계의 인상을 지우기에 충분하다.

'남격'의 이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만 나오는 상황은 자칫 멤버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이 나오지 않고, 결과적으로 늘 나오던 얼굴들(대체로 이것도 서열 순이다)이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그 누가 열의를 갖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느낌은 '남격'을 노후한 이미지로 만들어버린다. 즉 서열과 라인에 의해 움직이는 그런 팀의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얘기다. 이경규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남격'이 위험한 이유는, 바로 이 수직적인 서열의 느낌과, 과정보다 결과만 드러나는 상황, 그럼으로써 리얼이 아니라 만들어진 듯한 인상이 거기서 생겨나는 데 있다. 이경규처럼 나이든 대선배가 더 돋보이기 위해서는 혼자만 잘나갈 게 아니라, 유재석처럼 끊임없이 자기를 낮추고 다른 멤버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남격'이 처음 등장했을 때 시청자들이 열광한 것은 '무한도전'의 아저씨 버전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남격'은 '무한도전'이 아니라 '라인업'이 되어가고 있다. 팀원들의 수직적인 체계가 가져오는 이 고루함을 없애고 '무한도전'처럼 수평적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맨 꼭지점만 드러내는 수직체계로는, 모두를 동등한 눈높이에서 보고 그 각자의 캐릭터를 발견하고 싶어 하는 작금의 시청자들의 눈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남격'이 신년에 들어와 시도하는 '식스팩' 미션은 소재에 있어 시의적절하다 여겨진다. 하지만 미션 자체보다 중요한 그 미션을 수행하고 영상에 담아내는 방식의 변화가 없는 한, 이 미션 역시 그다지 공감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격'이 그들 말대로 "3년을 버텼으니 2년은 더 갈 수" 있으려면 바로 이런 변화가 시급하다. 꼭지점을 없애고 수평화시킨 후, 각각의 캐릭터들이 수행하는 과정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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