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놀이 문화, 세태를 반영하다

안경을 벗은 유재석의 그나마 멋지게 스타일이 살아있는 얼굴 사진과 쳐다보기 심히 민망한 얼굴 사진이 나란히 세워지고 그 밑에 포복절도 촌철살인의 캡션이 붙는다. '생얼의 그나마 봐줄만한 예'와 '얼굴에 못으로 안경을 고정하고 싶은 예'. 연예대상을 수상하는 진지한 얼굴의 유재석과 '패밀리가 떴다'에서 굴욕을 당하는 유재석의 모습을 세워두고 '예능 신의 위엄이 넘치는 예'와 '예능신의 위엄 따위 개나 줘버린 예'라는 설명이 붙는다.

이것은 최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유재석의 좋은 예 나쁜 예'라는 네티즌이 만들어낸 콘텐츠다. 이른바 '좋은 예 나쁜 예'라고 불리는 이 콘텐츠는 이미 2PM, 2AM, 빅뱅, 샤이니, 슈퍼주니어 등등 아이돌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하나의 인터넷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 놀이는 이제 아이돌을 넘어서 점차 그 분야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유재석의 좋은 예 나쁜 예'에 이어 나온 '무한도전의 좋은 예 나쁜 예'는 이 놀이가 그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는 증거다.

이 놀이의 콘셉트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하다. 비교되는 사진을 병치하고 캡션을 다는 것이다. 먼저 좋은 예, 즉 멋진 예가 보여지고 다음에 나쁜 예, 즉 망가진 예를 보여줌으로써 그 비교점이 가져오는 웃음을 유발한다. 콘셉트는 단순하지만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놀이라는 점에서 팬덤 문화의 확장으로도 볼 수 있다. 한 연예인의 지금껏 해온 활동을 담은 영상들을 캡처하고 분석(?)하는 작업은 그 연예인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흥미로운 건, 이 놀이를 통해 네티즌들의 성향이 읽혀진다는 점이다. 이 놀이는 과거 외부의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던 데서 이제는 적극적으로 만들고 자기 것화 하려는 성향을 보여준 UCC의 성격을 그대로 가진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활동은 누군가에 의해 영상으로 기록되기 마련인데, 그 기록을 그저 바라보는 게 아니라 거기에 대한 나름의 단평을 다는 식이다.

그 단평이 과거의 기준이던 '옳고 그름'이 아니라, 현재의 기준이 되고 있는 '좋고 나쁨'으로 나타나는 것도 흥미롭다. 호불호는 개인적인 취향을 담기 마련인데, 그렇게 개인화된 취향을 공통의 주제를 통해 공감하고 싶어하는 네티즌들의 성향이 그 속에는 숨겨져 있다. 물론 팬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지만, 연예인은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놀이의 재료 즉 영상물이 많은 데다, 그 호불호 또한 분명하기 때문에 이 놀이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인터넷 놀이가 갖는 '개인적인 취향에 대한 공감'이라는 측면은 이른바 '서열놀이'라고 불리는 놀이에서도 발견된다. 이 놀이는 주로 아이돌 그룹이나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멤버들 같은 서열이 가능한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데, 특정한 기준을 내세워 각각의 서열을 제시하는 것이다. 2PM을 예로 들면, 대중인지도에서는 닉쿤이 서열 1위지만 팬덤 내 인기에서는 우영이 1위이고, 언어능력에서는 4개 국어를 하는 닉쿤이 1위이지만, 한국어 구사능력에서는 택연이 1위인 식이다. 즉 기준을 뭘로 정하느냐에 따라 서열이 달라지는 이 놀이방식은 은연 중에 획일적으로 구획되곤 하는 기성세대의 등수문화를 뒤집는다. 즉 이런 면에서는 꼴찌라도 이런 면에서는 1등이라는 식이다.

물론 놀이는 즐겁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놀이는 그 매체적 속성 때문에 일정한 공감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현 네티즌들이 갖고 있는 성향의 일단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는 자신들이 가진 취향을 타인과 공감하려는 강한 욕망과 함께 다양한 취향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모습이 발견된다. 즐거운 놀이를 통한 공감에의 희구. 그 강력한 소통의 욕구가 이 놀이를 뜨겁게 만드는 이유다.
(사진출처 = 실타래(sealtale.com))

'무한도전'의 패자 없는 경기가 말해주는 것

도전하는 그들에게 패자가 있을까. '무한도전'이 복싱 특집편에서 다룬 WBC 세계 챔피언 최현미 선수와 도전자 쓰바사 선수의 경기에 패자는 없었다. 세계 챔피언이지만 스폰서도 없고 심지어 다음 경기를 잡지 못해 챔피언 벨트를 내줘야 할 위기(6개월 안에 방어전을 치르지 않으면 반납한다고 한다)에 있는 최현미 선수. 그리고 역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은 모습으로 꿋꿋이 복싱을 하고 있는 쓰바사 선수. '무한도전'은 두 선수의 명승부를 보여주었지만 승패의 결과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것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기를 통해 이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최선의 경기를 다한 선수들은 이미 모두 승자였다.

이 패자 없는 경기를 보여준 '무한도전'은 승패에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던 권투 경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해주었다. 일본까지 날아간 정형돈과 정준하는 쓰바사 선수 역시 최현미 선수만큼 속 깊은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프로그램은 모두 힘겨운 상황에서 도전하고 있는 이 두 선수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조명했다. 경기 전 좋은 경기를 보여 달라는 격려의 말은 물론이고, 경기가 끝난 후에도 쓰바사 선수의 라커룸을 찾아가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권투 경기, 그것도 한일전이라면 무조건 우리가 이겨야만 된다고 입을 모았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무한도전'의 풍경. 경기가 끝나고 쓰바사 선수의 멍든 눈을 보며 정형돈이 울먹거리고, 길이 끝내 눈물을 흘린 것은 왜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권투라는 경기가 갖고 있는 그 처절함과 힘겨움을 가까이서 바라보고는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링 위에 올라가는 그들에게는 더더욱.

흔히들 권투를 삶과 비교하곤 한다. 우리는 늘 아침에 세상이라는 링에 올라가 한바탕 힘겨운 경기를 치르고 다시 링 아래로 내려오는 삶을 반복한다. 링이라는 사회가 던져놓은 무대 위에서 우리는 늘 승자 혹은 패자가 되지만, 사실 링 밖으로 내려오면 누구나 누군가의 남편, 아내이거나 누군가의 부모로서 승자나 패자는 있을 수 없다. '무한도전'이 패자 없는 경기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바로 이 링 바깥의 시선으로 링 위에 오르는 두 선수를 바라봤기 때문이다.

봅슬레이 특집이나, 복싱 특집처럼 이제 '무한도전'은 사회적인 관심이 미치지 않는 곳에 시선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 프로그램이 과거와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새로운 도전과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무한도전'의 멤버들은 이제 초창기의 그 낮은 위치에 서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서 스스로를 성장시켜 이제는 정상의 위치에 서 있다. 이것은 '무한도전'의 도전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지는 이 위기를 넘어서게 해준다. 팀원들의 성장에서 이제는 타인의 성장으로 '무한도전'이 도전하는 과제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무한도전'의 기치는, 승패가 아닌 그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한 도전의 가치를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자아냈다. 이제 '무한도전'은 그 최선을 다하는 자들을 찾아가 어깨를 두드려주고 있다. 그곳에 승자나 패자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사회를 흔히들 승자들이 모든 것을 다 차지하는 이른바 '승자독식사회'라고 한다. '무한도전'이 감동을 주는 것은 이 승자독식사회에서 패자 없는 사회를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무한도전'에 패자는 없다.

버라이어티가 꾼 꿈, 어떻게 현실이 됐나

그 누가 쇼는 그저 쇼일 뿐이라고 했던가. ‘무한도전’이 말도 안 되는 포크레인과 삽질의 대결을 벌이던 시절에, 쇼는 그저 쇼일 뿐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무런 맥락도 의미도 없이 그저 쇼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볼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몇 해가 지나면서 우리는 ‘무한도전’이라는 쇼 프로그램이 실제로 현실을 바꿔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봅슬레이를 빌려서 경기에 출전하던 국내 봅슬레이의 열악한 상황을 감동적인 도전을 통해 순식간에 바꿔버렸다. 현재 올해 벤쿠버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출전권까지 따놓은 한국 봅슬레이팀은 그 누구보다 관심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뉴욕으로 날아가 한 레스토랑에서 메뉴 런칭을 선보이기도 하고, 불황에 힘겨워하는 음식점들을 기습공격(?)해 무한 매출을 올려주기도 한다. 그들에게 도전은 이제 쇼이면서 동시에 현실이 되기도 한다.

‘1박2일’은 몇 년 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여행 버라이어티를 통해서 국내에 숨겨진 여행지들을 발굴해내고 있다. 이를 통해 국내여행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으며, 캠핑 열풍 같은 여행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해외 관광객들 중에는 ‘1박2일’을 보고 국내를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 ‘1박2일’이 거둔 가장 큰 수확은 도시에 상대적으로 소외된 시골에 대한 따뜻한 향수와 정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 연장선 상에 있는 ‘청춘불패’ 역시 마찬가지. 강원도 홍천의 유치리라는 동네에 정착해가는 걸 그룹 아이돌들의 모습을 통해 도-농 간의 소통의 과정이 훈훈한 감동까지 전해주는 이 버라이어티는, 실제로 이 자그마한 동네에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시청자들은 유치리라는 동네에 사는 이장님이나 로드리(동네 이장님 친구 분의 애칭)를 마치 우리 동네 어르신처럼 가깝게 느끼게 됐다. 걸 그룹 아이돌들이 찾아간 상점에는 일부러 찾는 관광객들이 생길 정도. 한쪽 벽에 붙여진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은 쇼와 현실의 공존을 잘 보여준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보다 실제적인 꿈을 꾸며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아마추어 야구인들을 위한 ‘꿈의 구장’을 건립하는 것이 그것. 이들은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먼저 5개 지역을 찾아가 야구장 부지를 타진했다. 야구장 건립은 100억 대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꾸고 있는 그 꿈에 대해 많은 이들이 지지하고 동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터테이너들이 광대로 딴따라로 폄하되던 시대, 쇼는 여흥의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펀(fun)이 사회를 움직이는 하나의 추동력이 되어가는 이 시대에 쇼는 여흥을 넘어서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고 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이제 국회나 상아탑에서의 심각한 고민과 진지한 토론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꿈을 꾸고 그 꿈이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을 때, 사회는 어떤 변화를 허락한다. 스튜디오의 폐쇄된 공간 속에서 여흥거리만을 고민하던 버라이어티쇼들. 이제 스튜디오를 벗어나면서 이들은 현실 속에서 꿈을 꾸기 시작했고 그 꿈은 조금씩 현실을 바꿔가고 있다. 올해는 더 많은 꿈들을 버라이어티 속에서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스토리를 추구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만든 변화들

"'1박2일'의 힘은 스토리텔링에서 나옵니다." '1박2일'의 이명한 PD는 그 힘을 스토리에서 찾았다. 파편적으로 뚝뚝 끊어지는 몇몇 재미들만으로는 '1박2일' 같은 파괴력은 나올 수 없다는 것. 이것은 2009년 들어와 소재적으로도 세대적으로도 폭이 넓어진 예능 프로그램의 한 특징이다. 이야기를 추구하는 버라이어티쇼들은 이제 전통적으로 웃음에만 천착하던 틀을 벗어나 이야기 자체가 주는 다양한 재미를 찾아가고 있다.

'무한도전'의 '여드름 브레이크' 같은 경우, 만일 웃음이라는 포인트로만 본다면 그다지 재미있는 소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소재는 버라이어티쇼가 이제는 웃음을 넘어서 서스펜스 같은 새로운 영역의 재미를 끌어 들였다고 볼 수 있다. '1박2일'은 여행이라는 큰 소재가 있지만 각각의 편에 들어가면 말 그대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거기에는 예능의 본분인 웃음은 기본이고 그 위에 감동도 있고, 때로는 추격전이나 심리전이 주는 긴박감도 있다.

이른바 이들 버라이어티쇼들은 모든 극적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먼저 이 쇼들에는 주인공들인 캐릭터들이 있다. 캐릭터란 저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의미다. 그 캐릭터들이 매번 다른 상황을 만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이야기들은 중첩되면서 캐릭터를 성장시킨다. 여기에는 캐릭터 간의 얽혀져가는 관계가 주는 극적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것은 쇼의 형식을 갖고 있지만 또한 한 편의 드라마로 봐도 무방할 정도의 이야기성을 내재하고 있다.

버라이어티쇼가 이야기를 추구하면서 2009년 예능에 등장한 쇼들은 저마다 각각의 이야기가 가진 재미들을 내세워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야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다이내믹한 이야기, 각본 없는 드라마가 가장 큰 매력이다. "예능 좀 하란 말이오. 야구만 하지 말고." 이 구호는 이 쇼가 추구하는 것이 단지 이전 예능들이 추구하던 웃음만이 아니라는 것을 거꾸로 말해준다. 특별히 웃긴 상황을 연출하지 않고 담담히 이 야구단의 면면을 따라가며 때론 웃고 때론 우는 모습들을 담아내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진정성 있는 즐거움을 준다.

'청춘불패'는 도시의 첨단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을 대변하는 아이돌 걸 그룹들이 유치리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들어가 정착해 살아가며 아날로그적인 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쇼 역시 웃음이라는 포인트에 그다지 천착하지 않는다. 남희석이 "그래도 예능인데 이렇게 일만 해도 되는 거야?"하고 묻는 지점에 이 쇼가 가진 이야기성이 드러난다. 이 쇼는 유치리 주민들과 점점 가까워지는 아이돌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이고,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우리의 이웃처럼 느껴지는 유치리 주민들로 인해 그 힘을 더욱 얻어갈 수 있다.

'남자의 자격'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끌어들임으로써 중년 세대들의 공감을 얻어냄은 물론이고, 여성들과 젊은 세대까지 소통의 즐거움을 제공했다. 아저씨들의 꿈이나 한계를 넘어서는 모습은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남편인 그들의 이야기가 타인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하프 마라톤 대회 같은 소재에서는 전편에서는 웃음을, 후편에서는 감동을 전해주는 버라이어티한 재미를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세대와 성별을 넘는 소통은 이 쇼가 가진 남다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야기를 중심에 둔 예능의 변화는 새로운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이른바 '남들 웃기려 할 때, 다큐를 함으로써' 호평을 받는 신 예능형 캐릭터의 탄생이다. '1박2일'의 김C나 '남자의 자격'의 김성민은 웃기기보다는 열심히 프로그램에 임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개그맨들이 그다지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는 이처럼 예능의 환경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09년 예능의 뉴 트렌드로 자리한 '이야기에 대한 추구'는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의 층위를 다양하게 해주었다. 이제 예능은 웃음에 집착하기 보다는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가는 중이다. 이 이야기, 즉 스토리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예능의 외연을 넓혀놓았고, 작금의 콘텐츠들의 특징이 퓨전과 융복합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다가올 2010년. 예능에 더 많은 이야기들이 넘쳐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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