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의 정중한 자신감, 이것이 진정한 어른의 가치

 

이건 우리가 '팥죽'이라고 부르는 건데, 팥으로 만든 거예요. 우리는 보통 이걸 새해 전에 먹어요. 1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에 먹는 음식이랍니다. 각종 질병과 악을 막기 위한 거고요. 내년의 불운을 없애기 위한 거예요. 그리고 이건 새해에 먹는 걸로 아마 여러분도 '떡국'은 드셔보셨을 수도 있어요.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 거예요."

 

tvN 예능 <윤스테이>에서 아침상으로 외국인 손님들에게 내놓은 팥죽과 떡국을 설명하는 윤여정은 굳이 우리식 음식명인 '팥죽'과 '떡국'을 그대로 알려준다. 그렇게 우리 음식명을 말한 후,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또 그걸 먹는 이유가 뭔지, 유래나 의미 등을 재밌게 설명한다. 외국인들은 팥죽이 '내년의 불운을 없애기 위한' 음식이라는 얘기에 "많이 먹어야겠다"고 반색하고,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설명에 "안 먹겠다"고 농담을 한다. 윤여정은 쿨하게 웃으며 "그러세요"라고 농담으로 응수해준다.

 

사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음식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면서 우리 음식명을 굳이 먼저 알려주는 건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다. 물론 가끔 최우식이 음식을 설명해주며 우리 음식명이 아니라 저들에게 익숙한 음식에 빗대 영어로 풀어 설명하는 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려는 나름의 배려심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음식명이 뭔지를 당당히 알려주는 일은 고유의 우리 문화를 보다 정확히 외국인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방식이다.

 

우리 음식명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일이 최근 들어 특히 중대한 사안으로 거론된 건, 중국의 이른바 '전파 공정' 때문이다. 우리의 '김치'를 저들이 '파오차이'라고 부름으로써 이른바 '김치전쟁'이 벌어진 건, 나라 크기답지 않게 소인배의 편협되고 왜곡된 관점을 관영매체부터 외교공관, 인플루언서, 댓글부대까지 동원하는 저들로부터 비롯된 일이지만 이런 일을 그저 몇몇 엇나간 유튜버들의 행위 정도로 안이하게 대응하는 우리의 잘못도 있다. 외국인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고, '김치'를 'Kimchi'라 표기하지 않고 'Pao cai(파오차이)'라 표기한다면 그 문제는 지금의 '전파 공정'에 일종의 빌미를 제공하는 일이 된다.


마치 세상의 모든 문화가 자신들 것이라고 가짜정보를 쏟아내고 있는 중국의 '전파 공정'의 실태는 너무 황당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정부와 관영매체, 인플루언서 그리고 댓글부대까지 동원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는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제 방송에서도(특히 외국인 출연이 잦아지고 있는 요즘) 우리 문화를 소개하거나 설명하는 장면에서 반드시 우리식 표기를 먼저 얘기하는 일은 중요해지고 있다.

 

<윤스테이>에서 윤여정이 팥죽과 떡국을 외국인 손님들에게 설명하는 대목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거기에 정중함과 더불어 분명한 자신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단지 이 장면에서만 보이는 게 아니다. 최근 tvN <온앤오프>에 영화 <미나리>의 한예리의 출연 내용 중 살짝 들어간 윤여정의 외신들과의 인터뷰 내용이 화제가 된 것 역시 바로 그런 '정중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외신의 질문에 윤여정은 이렇게 말했다. "그 분과 비교된다는 데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저는 한국사람이고 한국배우예요. 제 이름은 윤여정이고요. 저는 그저 제 자신이고 싶습니다. 배우들끼리의 비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칭찬에는 감사드립니다만 제 입장에선 답하기 어렵네요."

 

자신을 메릴 스트립에 비교해 상찬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면서도 윤여정은 자신이 윤여정이라는 한국배우라고 당당히 말했다. 이런 정중하면서도 분명한 자신감은 최근 들어 글로벌 사회에서 점점 주목받고 있는 우리 문화가 나가야할 방향이다. 그것은 '국뽕' 같은 비교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을 사실 그대로 드러내면서 갖는 자신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떡국은 떡국이고, 팥죽은 팥죽이며, 김치는 김치이고 윤여정은 윤여정이다. 영화 <미나리>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배우가 됐지만 윤여정은 <윤스테이>에서 외국인 손님들에게 엄마, 할머니로 불리며, 귀여운 농담을 던지는 멋지고 따뜻한 사람이다. 나이 들었다고 나이든 티 내지 않고, 유명해졌다고 유명한 티 내지 않지만, 자신을 자신 있는 그대로 가치 있다 여기는 자신감을 잊지 않는 사람. 그것은 어쩌면 진정한 어른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건 그 나라의 문화의 우수성을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할 게다. 거짓으로 떼쓴다고 문화대국이 되는 게 아니라.(사진:tvN)

 

'윤스테이' 유머에 배려, 성실함까지..이래서 사랑받는 것

 

"당신이 <기생충>에 나온 배우라고요?" tvN 예능 <윤스테이>에서 숙소까지 안내를 해주는 최우식에게 외국인들은 그렇게 물었다. 이 장면은 한국에서 1년 미만을 거주한 외국인들을 손님으로 받아 1박2일 간의 한국문화 체험을 해주겠다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걸 맡은 이들이 윤여정, 정유미, 이서진, 박서준, 최우식 같은 이제는 월드클래스라고 불러도 될 만큼 내로라하는 배우들이라는 사실을 끄집어내 보여준다. 

 

물론 외국인의 놀라는 리액션을 통해 전해지는 진한 '국뽕'의 향기가 묻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윤스테이>는 어쨌든 그 콘셉트 자체가 '한국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체험해주겠다는 것에 맞춰져 있다. 그러니 한식이나 한옥 그리고 한국의 정이 느껴지는 문화들에 대해 외국인들이 보여주는 리액션은 가장 중요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외국인의 이런 반응들에 유독 민감해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윤스테이>가 한국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상찬만을 담고 있다 보기는 어렵다. 그것보다 <윤스테이>가 보여주고 있는 건, 타인에 대한 배려나,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잊지 않는 유머, 어떤 일을 대할 때의 성실함 같은 '세계 보편적인 가치들'이고 그런 가치들이 나라와 언어와 국적을 뛰어넘어서 소통되고 공감되는 순간이 주는 힐링이기 때문이다. 

 

<윤스테이>는 그래서 최우식을 본 외국인들이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것보다, 그가 그런 유명한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뛰어다니며 강도 높은 노동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아주 작고 사소한 것까지 배려하는 모습에 더 집중한다. <윤스테이>의 새 얼굴로 등장한 그는 정해진 보직(?)이 없어, 짐 나르기, 방 치우기, 그릇 치우기, 낙엽 쓸기, 재료 준비, 전날 재료 손질, 손님 픽업, 가방 들어주기, 다이닝룸 세팅은 물론이고 손님 응대까지 참 많은 일들을 하게 됐다. 

 

이서진이 "얘는 타고 났다"고 말할 정도로 그 많은 일들을 해내면서도 손님들을 응대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왜 월드클래스 배우로 서게 됐는가를 가늠하게 한다. 그것은 연기만 잘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그런 유머와 배려와 소통의 자세 같은 것들이 있어 가능했을 것이라는 걸 '윤스테이' 영업 단 하루만으로도 보여주고 있어서다. 

 

<윤스테이>의 얼굴이자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윤여정도 마찬가지다. 이미 영화 <미나리>로 월드클래스 배우로 우뚝 선 인물이지만, 이 '윤스테이'에서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에서는 심지어 '사랑스럽다'고 얘기될 만큼 친근하고 유머 넘치는 그의 진가가 드러난다. 식사 주문에 추가 요금이 있냐고 걱정하는 손님에게 "돈 잃을 일 없으니 걱정 말라" 농담하고, 생소한 오징어 먹물로 만든 부각 요리에 손님이 "저희를 독살하려는 건 아니죠?"하고 농담하자 "오늘은 아니다. 하지만 체크아웃 후에는 장담할 수 없다"고 받아치는 재치라니. 영화 촬영장에서 이런 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동료배우들이나 제작진들이 느낄 친근함과 따뜻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꺼번에 몰려오는 손님들의 저녁 식사(그것도 코스 요리를)를 멘붕이 올만한 상황이면서도 애써 침착하게 하나하나 해나가는 정유미나 박서준의 단단한 멘탈과 성실함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윤스테이>를 보며 느끼는 뿌듯함에는 한국문화 체험에 대해 외국인들이 보이는 호감 표현 자체의 '국뽕'만큼, 윤여정부터 최우식까지 '윤스테이' 식구들이 손님을 진심으로 대하는 그 '대접의 마음'이 따뜻하고, 그런 따뜻한 마음은 국적이 달라도 전해진다는 걸 확인하는데서 오는 것이 크다. 

 

그리고 그것은 이른바 월드클래스 배우로 우뚝 선 이들이 그저 우연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연기라는 것 자체가 타인과의 호흡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기도 한 배우들에게 있어 기술이 아닌 태도나 성실함, 유머 같은 그 마음의 힘이 그 어떤 자질보다 중요하다는 것. 그러고 보면 <윤스테이>에 부제처럼 붙여진 '사장님 마음 담아'라는 문구가 그냥 달린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일에 있어서의 성취나 또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의 행복도 그걸 대하는 이의 마음이 그 무엇보다 중요할 테니.(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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