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제왕>, 재미있지만 부족한 2%

 

이 거창한 제목의 드라마, 왜 제목처럼 되지 못할까. 아마도 <드라마의 제왕>이 그저 그런 드라마라면 이런 질문은 쓸데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궁금증이 드는 것은 이 드라마가 꽤 재미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본도 탄탄하고 연출도 나무랄 데 없으며 연기도 좋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이렇게 잘 만든 드라마도 흔치 않은데 왜 시청률은 좀체 오르지 못하는 것일까.

 

'드라마의 제왕'(사진출처:SBS)

물론 작금의 시청률이라는 게 그 드라마의 인기를 정확히 말해주는 척도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마의 제왕>에는 대중적으로 부족한 2%가 존재한다. 그것은 대중들이 정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애매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이렇게 질문으로 바꾸면 좀 더 명쾌해진다. 왜 대중들이 굳이 다른 드라마가 아니라 <드라마의 제왕>을 봐야 할까.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연기자들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그 스토리가 주는 재미 때문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아예 내용과 상관없이 거기 나오는 패션이나 스타일 때문이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일반 대중들이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이야기가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정서적인 유대감 때문이다.

 

<드라마의 제왕>은 드라마를 소재로 다룬다. <경성의 아침>이라는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뛰는 앤서니 김(김명민)과 그를 방해하고 막으려는 제국프로덕션의 오진완(정만식)의 대립구도가 기본구도이고 이 위에 작가 이고은(정려원), 남주인공 강현민(최시원), 감독 구영목(정인기), 여주인공 성민아(오지은)와의 갖가지 충돌과 사건사고를 펼쳐놓았다. 드라마 한 편을 만드는 데 넘어야 할 무수한 산들이 극의 위기상황과 대립구도로 제시되는 식이다.

 

<드라마의 제왕>은 그래서 마치 게임을 하듯 끝없는 위기상황과 해결의 반복으로 이뤄져 있다. 드라마 투자를 위해 간신히 작가를 잡아오면 편성이 문제가 되고, 편성을 따려 하면 연기자가 문제를 일으킨다. 편성도 확정되고 연기자도 결정된 상황에서는 감독이,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여주인공이 하나의 숙제로 제시된다. 끝없는 미션이 제시되기 때문에 드라마에 일단 발을 디디면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장점이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미드식의 장르 드라마 구조다.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이야기 전개에 있어 속도감이 좋지만 이 게임 식의 전개방식 속에 빠져 있는 것이 이미 전술한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2%의 공간이다. <드라마의 제왕>은 그 롤러코스터에 타면 빠르게 흘러가는 스토리가 대단히 재미있지만 정작 드라마가 갖는 의미는 빠져 있다. 왜 대중들은 드라마를 보는가. 드라마는 대중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바로 이 점은 그토록 드라마를 제작하려는 앤서니 김의 꿈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며, 또한 그가 그렇게 힘겹게 만들려는 드라마가 어떤 가치를 갖느냐의 질문이기도 하다. 그저 앤서니 김의 성공을 위해, 혹은 돈을 벌기 위해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이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물론 복마전이 되어버린 드라마판을 보는 재미가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일반 시청자들이 채널을 고정시킬 강력한 동인이 되지는 못한다.

 

<드라마의 제왕>은 재밌다. 하지만 그 재미는 정서를 동반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앤서니 김의 성공을 지지하는 그 마음이 생겨나질 않는다. 그가 놀라운 꼼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하고 한 단계씩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그 과정은 머리를 즐겁게는 하지만 마음까지 뿌듯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바로 이 안타까운 2%를 채워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것만 있다면, 어쩌면 이 괜찮은 드라마는 제목 값을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골든타임>, 연장보다 시즌을 요구하는 이유

 

권석장 PD의 엔딩은 독특하다. 정지화면과 동영상이 교차되면서 그간 있었던 사건들과 일어날 사건들이 열거되고 그 위로 엔딩 크레딧과 함께 음악이 흐른다. 이것은 <파스타>에서도 그랬고 이번 <골든타임>에서도 그랬다. 이 짧은 엔딩의 특징은 이들 드라마의 성격을 압축해 보여준다. 연속극의 전통을 갖고 있는 우리네 드라마들이 다음 회에는 무슨 이야기가 벌어질 것인가를 놓고 엔딩에 이른바 ‘낚시질’을 한다면, <골든타임> 같은 드라마는 오히려 그날 있었던 사건들이 보여준 흥미로운 순간들을 정리해준다.

 

'골든타임'(사진출처:MBC)

물론 다음 회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주는 걸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대해 그다지 집착하지는 않는 인상이다. 이것은 <골든타임>이라는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의 연속적인 흐름을 타고 위기 절정을 향해 치닫기 마련인 여타의 우리네 드라마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골든타임>은 그 한 회가 집약해서 보여주는 에피소드와 그 의미에 더 천착한다. 우리가 흔히 미드에서 보게 되는 형태다. 각 회마다 각각의 제목을 부여해도 충분할 법한 그런 구조.

 

이렇게 각각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드라마는 아무래도 시청률에서 불리할 수 있다. 즉 연속적인 시청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골든타임>이 보여주는 것처럼 여러 개의 이야기가 서로 병치된다고 해도 그 안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그 흩어진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준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현재 <골든타임>의 에피소드만 봐도 그렇다. 갑자기 강대제(장용) 이사장이 쓰러지면서 강재인(황정음)이 그의 손녀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것을 알게 된 병원 과장들의 역전된 반응이 씁쓸한 웃음을 전해주었으며, 이 사실을 이용해 응급실의 해결사가 된 강재인의 유쾌한 모습도 방영되었다. 그 와중에 최인혁(이성민)과 이민우(이선균) 사이의 사제 간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고, 최인혁과 신은아(송선미)의 연애보다 흥미로운 밀당도 보여준다. 배달부로 일하면서도 이웃사랑을 전한 박원국 환자의 따뜻한 이야기, 산탄총을 맞고 들어온 미스테리한 사건의 환자들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 많은 이야기들이 어떻게 한 드라마 속에 용해되어 있는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응급실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이처럼 산발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고, 이것이 오히려 진짜 리얼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한 마디로 정신없이 흘러가는 응급실의 일상을 보여주는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흩어지지 않는 건 그 이야기들을 묶어주는 강력한 캐릭터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인술의 대명사로 서 있는 최인혁 교수와 병원 과장 4인방의 팽팽한 대결구도가 틀을 만들고, 이민우와 강재인의 성장담이 그것을 받쳐준다. 여기에 신은아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는 최인혁 교수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인물구도라면 그 안에 어떤 에피소드가 들어와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의사들을 도전하게 만드는 응급한 환자들이 있고, 그 환자들이 갖고 들어오는 무수한 사연들이 있다. 환자를 겪으며 성장해나가는 의사들의 성장드라마가 있고, 이상과 현실의 부딪침에서 생겨나는 의사들 간의 정치적인 드라마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걸 아우르면서도 유머를 만들어내는 여유 또한 잊지 않는다.

 

이런 수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골든타임>이라는 드라마에 대해 유독 대중들의 시즌제 요구가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 보인다. 건물로 치면 이제 겨우 기초공사 끝내고 골조만 세웠을 뿐인데, 어느덧 종영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 대중들은 최인혁 교수가 제대로 트라우마 센터를 운영하게 되는 그 과정을 보고 싶어 하고, 이제 겨우 시작한 이민우와 강재인의 성장드라마를 보고 싶어 한다. 또 아직 전면에 보여주지 못한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라든가, 사제 간에 벌어질 멘토링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주연들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주는 많은 동료나 후배 의사들의 변화과정도 궁금하다.

 

이런 것들을 단 몇 회만에(심지어 몇 회 연장한다고 해도) 보여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골든타임>이 갖고 있는 특유의 전개 속도 때문이기도 하다. <골든타임>은 이야기의 속도를 높이기보다는 짧은 시간에 벌어진 여러 많은 이야기들을 중첩시켜 보여줌으로써 속도감을 준다. 따라서 디테일들이 풍부한 반면, 인물들의 성장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이런 속도라면 몇 차례의 시즌을 해도 충분할 정도다.

 

끔찍할 정도로 리얼한 수술 장면이 주는 긴박감과 사제 간의 공조와 팀플레이가 주는 따뜻함, 조직의 냉혹한 현실과 그 속에서도 잊지 않는 유머감각, 환자들을 통해 보여주는 서민들의 감동적이고 때론 아픈 삶의 이야기들까지... <골든타임>은 실로 다채로운 감정을 끄집어내주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게다가 어디서 이렇게 리얼한 배우들을 모았을까 싶을 정도로 단역들조차(이를테면 박원국 환자나 신경외과 레지던트인 조동미(신동미)같은) 주목되게 만드는 연기자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시즌제를 통한다면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우리네 드라마 환경에서 연장은 쉽고 시즌제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든타임>은 그 내적인 장점들 때문에 가장 현실적으로 시즌제가 가능한 드라마인 것도 사실이다. 대중들의 시선이 자꾸만 장르드라마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현재, <골든타임>이 장르드라마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즌제의 포문을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연 <골든타임>은 이러한 대중들의 바람을 이뤄줄 수 있을까.

멜로, 가족 없이도 선전하고 있는 <유령>

<유령>은 기존 우리네 드라마와는 다른 점이 많다. 우선 우리 드라마에 반드시 있기 마련인 멜로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같은 사이버 수사팀에 김우현(소지섭)과 유강미(이연희)가 있지만 이들 관계는 멜로라기보다는 서로 돕는 관계에 가깝다. 유강미는 김우현의 비밀(사실은 박기영(최다니엘)이라는)을 알고 그를 적극적으로 돕지만 두 사람 사이에 멜로 같은 화학반응은 없는 편이다.

 

 

'유령'(사진출처:SBS)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특징은 주요 인물들의 가족 관계가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우현의 아버지나 조현민(엄기준)의 아버지는 물론 이 드라마의 사건에 깊이 관계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우리 드라마의 가족관계와는 다르다. 유강미나 박기영의 가족관계는 다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부모들이 등장해 주인공의 감정을 뒤흔들거나 영향을 주는 그런 장면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멜로와 가족관계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 <유령>은 그래서 쿨하다. 이것은 사랑과 가족애 사이에서 끈적끈적한 정에 휘둘리는 우리네 전형적인 드라마와는 다르다. 오히려 미드나 일드를 닮았다. 인물들의 관계보다는 사건과 에피소드 중심으로 흘러가고, 감정의 늪에 빠지기보다는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서스펜스와 속도감 있는 스토리 그리고 반전의 힘에 더 의지한다.

 

이런 드라마 스타일은 한때 멜로와 가족 드라마에 식상해한 대중들의 요구에 의해 등장했던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계보라고 볼 수 있다. 늘 삼각 사각 멜로들이나 출생의 비밀이 난무하는 가족드라마들이 양산되면서, 그 새로운 탈출구로서 미드나 일드를 통해 발견한 장르적인 접근을 시도하게 됐던 것. 하지만 이러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은 차츰 사라지거나, 기존 우리 드라마의 요소들 즉 멜로나 가족관계 등과 섞여지기도 했다. 드라마 주 시청층인 중장년층들에게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유령>은 다분히 도발적이다. 더 엄밀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계보를 잇고 있기 때문이다. 멜로도 가족관계도 드러나지 않는데다가 소재적으로도 쉽지 않다. 해커들이 벌이는 사이버 테러의 양상은 그 용어들이 생소할 수밖에 없다. 상세한 설명 자막이 있다고 해도 시청자들이 웬만큼 집중하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어렵다. 그만큼 <유령>은 쉽지 않은 소재를 쉽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지지도가 높은 편이란 점이다. <각시탈> 같은 누가 봐도 이야기 흐름을 쉽게 알 수 있고 전형적인 우리네 드라마 형태인 멜로와 가족관계의 이야기가 분명한 드라마가 15%(agb닐슨)의 시청률을 내고 있는 와중에, <유령>이 12.2%의 시청률을 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도대체 어떤 점이 주효한 것일까.

 

먼저 특유의 속도감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유령>은 보통 우리네 드라마였다면 몇 회 분량이 되었어야 하는 에피소드를 단 한 회에 쏟아 부을 정도로 압축적이다. 그만큼 속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제 6회를 방영했을 뿐이지만, 박기영이 김우현으로 페이스오프한 상황은 거의 밝혀지고 있다. 또 일찌감치 좀 더 거대한 사건과 연루된 것이 분명한 신효정 살인사건의 범인이 조현민(엄기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스토리나 아이디어면에서 차고 넘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건들이 그저 먼 나라 얘기처럼 여겨졌다면 이 속도감 넘치는 롤러코스터에 선뜻 시청자들이 동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령>은 우리에게 익숙한 연예인 루머라든가, 타진요 사건, 디도스 공격 같은 사이버 범죄를 먼저 소재로 끌어냄으로서 대중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목하고 싶은 건, 이런 사건들의 에피소드로 꾸려지는 드라마들이 가진 맹점인 툭툭 끊어질 수 있는 이야기 흐름을 <유령>은 전체를 꿰뚫는 사건을 통해 잘 봉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예인 자살사건과 디도스 공격에 이은 국가 주요기관 시스템 공격까지 에피소드들이 나눠지지만, 그것은 또한 조현민이라는 김우현이 쫓는 유령(팬텀)으로 다시 모아진다. 각각의 에피소드와 전체 드라마의 흐름을 잘 조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이제 이 김은희라는 작가(그녀는 <싸인>의 작가이기도 하다)가 본격적인 전문직 장르드라마의 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사실 <유령>은 다른 드라마들에 비해 쉽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단히 매력적이다. 쉽다는 것은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드라마라고 하면 그저 그런 것의 반복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은 아닐까. 왜 드라마는 새로운 소재를 다루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유령>은 그런 점에서 비슷비슷한 우리네 드라마들 속에서 유령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대단히 바람직하고 반가운.

미드 vs 우리 식의 범죄수사물

MBC의 새 월화 드라마, ‘히트’에 대한 호평과 혹평이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다. 한편은 ‘기대이상’이라 하고 한편은 ‘수준이하’라고 한다. 시청자게시판을 보면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캐릭터들도 공감이 간다는 의견과 함께, 이제는 더 이상 보기 싫고 심지어는 종영했으면 한다는 극단적인 의견까지 올라온다. 또한 주인공인 차수경 역을 맡은 고현정씨의 연기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에선 털털한 연기 변신이 참신하다고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실제 경찰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의견도 보인다.

물론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얘기겠지만 똑같은 드라마를 가지고 이렇게 극명하게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요인은 ‘히트’가 갖고 있는 과도기적인 특성들 때문일 것이다. 올 들어 우리 드라마에서는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가 실험되고 있는 중이다. ‘하얀거탑’과 ‘외과의사 봉달희’를 통해 선보인 전문직 드라마는 새로운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들도 처음에 반드시 넘어서야 했던 산이 있었다. 그것은 전문직 드라마의 수요가 탄생한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와의 한판 대결이었다.

미드 vs 우리 식의 범죄수사물
‘하얀거탑’이 처음 맞닥뜨린 상대는 저 거탑처럼 높아 보였다. 이미 일본에서만도 여러 번 리메이크 될 정도로 검증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이미 일드로 보았던 시청자들은 원작과 리메이크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김명민이라는 명배우가 있어 양쪽으로 갈린 시선을 우리의 ‘하얀거탑’으로 집중시키게 했던 점이다.

반면 ‘외과의사 봉달희’는 더 거센 상대를 만난다. 그것은 처음 ‘멜로가 섞인 전문직 드라마’라는 점에서부터 불거졌다. 으레 이 드라마도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가 아닐거냐는 추측들이 난무했던 것이다. 그 산을 넘어서자 이제 그 적이 분명하게 눈에 나타난다. 바로 ‘그레이 아나토미’다. 그리고 지금 그 바톤을 이어받은 ‘히트’가 맞닥뜨린 적은 ‘CSI’나 ‘24’같은 미드의 범죄수사물이다.

미드의 시시각각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설정들과 실제 현장을 방불케 하는 리얼리티에 익숙한 시청자들이라면 ‘히트’가 보여주는 스토리가 어딘지 약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미드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히트’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전혀 다른 참신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호평과 혹평이 나뉘는 갈림길이 다. 이것은 지금 ‘히트’가 처한 상황이며, 동시에 우리나라 전문직 드라마가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감성적 드라마 vs 아드레날린 드라마
우리네 드라마가 지금껏 만들어왔던 것들은 대부분이 멜로드라마로 대변되는 감성적인 드라마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감성적인 드라마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류 바람이 거세지면서 우리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과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고개를 든 것이 일드였다. 일드는 똑같은 감성을 다루고 있었지만 그 표현은 달랐다. 눈물을 터뜨리는 우리네 정서와 달리, 일드에는 감추고 침묵하는 일본적 감수성이 있었다. 그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드라마들이 너무 자주 울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드는 세련되게 보였다.

우는 드라마들(멜로드라마)이 퇴진하면서 TV에 겨우 남게된 드라마는 논란만 잔뜩 있는 가족드라마(‘하늘이시여’나 ‘소문난 칠공주’ 같은)와 울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발칙한 여자들’이나 ‘환상의 커플’같은) 그리고 사극이었다. 그 어느 것도 눈물과는 그다지 거리가 멀었다(물론 억지로 짜낸 가족드라마의 가짜 눈물은 있었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사극의 성장을 통해 예견된 ‘아드레날린 드라마’의 가능성이다. 사극은 기본적으로 감성적인 드라마라기보다는 머리를 뜨겁게 만드는 ‘아드레날린 드라마’에 가깝다. 주인공의 성장이나 미션의 완수, 복잡한 문제의 해결 등이 보는 이들을 흥분시키는 드라마다.

여기에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하얀거탑’은 본격 ‘아드레날린 드라마’의 새장을 열었다. ‘히트’는 그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뭔가 다른 것이 끼여든다.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 때문인지, 지금까지 해오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 건지, 혹은 전문직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에 맞는 작가군이 없어서 그런 건지, 멜로 같은 감성적 코드들이 뒤섞이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까지는 보편화되지 않은 장르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너무 전문적으로 가다보면 매니아들에게는 엄청난 호평을 받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피곤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수사 vs 탐문수사
호평과 혹평 사이에는 비교가 있다. 우리네 전문직 드라마와 미드를 비교하면 당연히 답은 나온다. 볼 것도 없이 미드의 승리다. 그것은 이미 미드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시즌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제작에 있어서 노하우가 산적한 상태이며, 투자규모에 있어서도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전문직 드라마가 월등히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제 첫걸음을 떼고 있으며 그 첫걸음이 있어 더 나은 드라마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또 ‘히트’를 ‘하얀거탑’과 같은 이미 종영한 전문직 드라마와 비교하는 것 또한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 요컨대 이 드라마들은 둘다 전문직 드라마이긴 하지만 그 ‘전문분야’가 다르다. ‘히트’가 좀더 어려운 것은 ‘의학’이라는 전문분야보다 스케일이 더 클 수밖에 없고 더 많은 투자가 소요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이미 영화 등을 통해 헐리우드 액션에 더 익숙한 우리들에게 상대적으로 ‘히트’가 불리하다는 점도 포함된다.

또 한가지 드는 의문은 우리네 전문직 드라마를 만드는데 있어서 꼭 미드를 따라갈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한류로 그 재주를 인정받은 멜로의 기법들을 제대로만 접목시킨다면 그것은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히트’는 미드보다는 일본의 ‘춤추는 대수사선’을 더 따라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것이 일부 어설픈 장면들과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 전개가 거슬리면서도, 미드에서 보았던 과학수사와 함께, 우리 식의 탐문수사가 공존하는 ‘히트’에 기대를 걸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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