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의 반’, 조기종영 했지만 마무리는 아름다웠다

 

“지수씨. 지수씨의 진심을 강인욱에게 알려준 사람이 누구게요? 강인욱으로 가장 고통 받은 사람, 하원이었어요.” tvN 월화드라마 <반의 반>에서 한서우(채수빈)는 김지수(박주현)가 남긴 편지를 읽고는 오열하는 강인욱(김성규)을 보며 그렇게 속으로 말한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녹음실을 찾아간 하원(정해인)은 강인욱을 벽에 밀치며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냐?”고 분노를 터트렸지만, 그 곳을 떠나며 지수의 편지를 강인욱에게 남겨두었다.

 

강인욱의 말 한 마디 때문에 노르웨이에서 어머니가 사고를 당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지수 역시 괴로워하다 찾아간 노르웨이에서 사고로 죽었다. 하원으로서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강인욱 때문에 모두 잃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하원의 선택은 강인욱에 대한 분노나 복수 같은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떠나버린 지수의 진심을 알지 못해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강인욱에게 그 진심이 담긴 편지를 건넸으니 말이다.

 

‘그이의 눈물이 괴롭습니다. 괜찮다고 이제 그만 힘들어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인욱씨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니 마음이 편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오늘 일도 웃으며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편지에 적힌 지수의 마음을 읽고 강인욱은 오열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그를 향한 구원의 손길이기도 했다. 지수가 자신을 미워한 게 아니라 힘이 되고자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하원은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그것은 강인욱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지수가 이 곳을 떠나기 전 올랐던 육교 위에서 하원은 이제는 닿지 않을 이야기를 지수에게 속으로 건넨다. ‘지수야. 네 간절한 진심 전했으니까. 이제 마음 편히...’ 하원의 선택은 지수를 위한 것이었다. 괴로워했을 지수가 마음 편하게 갈 수 있기를 바라며 한 선택.

 

<반의 반>은 우리가 하는 사랑은 어떤 의미에서는 짝사랑일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드라마였다. 하원이 강인욱에게 그 편지를 전하는 건 지수가 요구했던 일은 아니었다. 다만 하원이 선택한 사랑의 방식이었을 뿐이다. 그는 그렇게 지수를 편하게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취한 행동은 그래서 저 편에는 닿지 않는 짝사랑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짝사랑은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는 강인욱은 물론이고, 그 사실을 알고는 괴로워하는 하원에게도 그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다. 하원은 그렇게 지수를 통해 미움의 감정을 이겨내고, 강인욱은 그 편지를 통해 죄책감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생각해보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곧바로 닿지 않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강인욱은 떠난 지수를 생각하며 피아노 연주곡을 만들고 연주했고, 지수는 노르웨이에서 사고를 당하기 직전 서우와의 전화 통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그 연주곡을 들으며 위로받았다. 문순호(이하나)는 마치 죽어가는 화초를 가꾸듯 시들어가는 강인욱을 돌보려 했고, 은주네 하숙집 전은주(이상희)는 그 곳을 찾는 이들이 집이라 느낄 수 있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었다.

 

한서우 역시 지수를 짝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하원을 짝사랑했다. 잠 못 드는 그를 위해 함께 잠자리에 들었고, 지수를 잊지 못하는 하원을 위해 지수의 목소리가 담긴 AI 디바이스를 깨워내 주었다. 함께 지수가 걷던 길을 걸어주었고, 그 아픈 이야기들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짝사랑으로 시작한 사랑은 하원의 마음에 닿았다. 하원은 산불로 부모님이 사망해 갖게 된 서우의 트라우마를 이기게 해줬고, 하원 역시 서우를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노르웨이에 나란히 묻힌 엄마와 지수의 묘소를 찾았다.

 

사랑은 타인을 향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건 나 자신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도 타인에 대한 사랑은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짝사랑일 지라도 그 사랑하는 마음은 자신을 구원해주는 힘이 되기도 할 것이니 말이다. <반의 반>이 따뜻하게 느껴진 건 그렇게 한 걸음 씩 떨어져 있는 어느 곳에 일방적일 지라도 따뜻한 시선을 던지는 이들이 존재하며 그런 시선이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살아갈 만하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반의 반>은 시청률이 반 토막 났고 조기종영으로 끝을 맺었다. 그렇게 <반의 반>이라는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짝사랑한 드라마가 되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더 폭넓은 호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 드라마가 건네는 짝사랑이 준 따뜻함은 어떤 이들에게는 충분한 위로로 다가가지 않았을까.(사진:tvN)

‘반의반’, 보편적인 소통엔 실패했지만 색다른 시도

 

“반보기라는 말 알아요?” tvN 월화드라마 <반의반>에서 하원(정해인)은 한서우(채수빈)에게 전화해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서우는 “반만 본다는 건가..”하고 자신 없는 추측을 한다. 하원은 “결혼하는 여자가 친정엄마 보고 싶을 때 딱 반 되는 지점에서 잠깐 보는” 것을 반보기라고 한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잠깐 반보기를 하자는 하원의 제안에 중간 지점에서 만난 두 사람. 하원은 대뜸 손을 내민다. 서우가 그 손 위에 손을 포개자 하원이 말한다. “짧고 애틋하게.” 그렇게 잠깐 보더라도 그 마음의 애틋함은 그래서 더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장면은 안타깝지만 12회로 조기종영을 결정한 <반의반>이라는 드라마가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짧지만 그래서 더 애틋한 드라마. <반의반>은 2.4%(닐슨 코리아) 첫 회 시청률로 시작했다. 아무래도 정해인이라는 배우의 멜로드라마라는 기대감이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매회 시청률이 하락하면서 자칫 1%대 미만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제 아무리 시청률이라는 지표가 이제는 온전한 시청자들의 반응을 말해주지 않는 시대에 들어왔다고 해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수치가 되었다.

 

어째서 <반의반>은 시청자들과의 보편적인 소통에 실패했을까. 그건 애초에 AI라는 소재와 짝사랑을 엮어 풀어내겠다는 그 시도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AI도 낯선 데다 직접 만나기보다는 한 걸음씩 떨어져서 사랑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너무 더디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AI와 짝사랑을 엮어놓은 그 시도 자체가 나쁘다 보긴 어렵다. 둘의 공통점은 이 드라마가 은연 중에 말하고 있는 “없는 데 있는 것”이라서 손에 잘 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을 쥐고 흔들기도 하는 그런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다.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가 되기 어렵다는 건 이미 사라져버린 이를 잊지 못하고 AI를 통해서나마 계속 대화를 이어가려는 하원의 0% 가능성 짝사랑과, 그런 하원을 옆에서 바라보며 빠져든 1% 가능성 짝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데서 나타난다. 이들은 골목길에서 카페에서 육교 위에서 녹음실에서 또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만나지만 그들 사이에 놓인 어떤 장벽들(그것은 과거가 되기도 하고 잊지 못한 짝사랑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떨어져서 바라보는 사랑을 한다.

 

조기종영이 결정된 후 드라마의 빨라진 속도감과 그래서 급물살을 타고 있는 하원과 서우의 관계에도 이들의 사랑은 반보기를 하듯 여전히 조심스럽다. 떠나보낸 자들의 상실감을 치유해주는 디바이스로 손을 잡아주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솔루션을 개발하려는 하원이 서우에게 손을 인식하게 하고 직접 잡지 않고도 잡은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게 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사랑법을 잘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한 걸음 떨어져서 하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자식을 떠나보내던 날 늦게 도착해 잡지 못한 손 때문에 절망하는 김민정(이정은)은 자신의 예전 밝았던 목소리를 담은 AI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제는 그 밝은 소리를 낼 수 없는 자신을 되새기며 허공에 대고 이제는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아이의 손을 잡고 싶어 절망한다. 그 순간 옆에서 그 광경을 보던 하원이 그 손을 대신 잡아준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서 채워지지 않는 어떤 상실감은 없는 존재에 대한 집착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대신 그걸 공감하는 누군가의 또 다른 손길이 위로를 대신해줄 뿐.

 

늘 한 발 떨어져 있고, AI와 식물, 음악연주 등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심지어 손과 손 사이를 살짝 떨어뜨린 채 잡는 걸 대신하는 <반의반>의 낯선 사랑법은 시청자들과의 보편적인 소통에서 실패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마치 노르웨이로 떠나버린 아내에 절망하며 즉흥적으로 홀에서 쳤던 강인욱(김성규)의 피아노 연주처럼 낯선 미완의 곡이 되었다. 좀 더 선명하고 효과적인 전개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떤 이들에게는 그 작은 풍경 하나, 대사 몇 마디 같은 것들이 단 몇 초 동안이나마 위로를 줬을 거로 생각한다.

 

“없어졌어야할 곡이에요.” 강인욱은 그 곡에 대해 그렇게 말했고, “그런 게 어딨어요?”라고 서우는 말했다. 서우는 “누구한테는 정말 힘들 때 이게 도움이 됐을 수도 있고” 실제로 그 곡이 폭설 속에서 두려움에 떨던 지수(박주현)가 전화로나마 들으며 위로를 받았던 곡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비아냥대듯 “음악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의구심을 자아내는 인욱에게 “네 몇 초간 구원했어요”라고 분명히 말한다. 분명 이 드라마가 그럴 것이다. 몇 초 간이라도. 짧고 애틋하게.(사진:tvN)

‘반의반’이 그리는 골목과 식물 그리고 짝사랑

 

이숙연 작가는 공간이 주는 감성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작가다. 전작이었던 <공항가는 길>의 공간이 공항이었다면, tvN 월화드라마 <반의반>의 공간은 골목이다. 일상을 벗어나는 두려움과 설렘의 관계를 <공항가는 길>의 공항이라는 공간이 은유했다면, 각자의 위치에서 마치 숨바꼭질하듯 엇나가는 짝사랑의 관계를 <반의반>의 골목은 은유한다.

 

이들은 그래서 그 골목길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머무르고 회고하며 아파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한다. 하원(정해인)과 한서우(채수빈)가 처음 만나게 된 것도 그 골목에서였다. 우연히 골목을 걷다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고개를 돌린 하원은 녹음실 창을 통해 서우를 봤고, 그렇게 멈춰서 음악을 듣는 하원을 위해 서우는 볼륨을 높여주었다. 하원은 그 소리에 이끌려 녹음실을 찾아왔고 그게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

 

하원이 오랜만에 연락이 와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김지수(박주현)를 만난 곳은 골목을 걷다 우연히 보게 된 어느 한적한 주택 앞이었다. 거기에서 하원은 지수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지수가 남편 강인욱(김성규)에게 하원의 어머니 사망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홀로 노르웨이로 떠났다 사고를 당하자 하원은 절망하며 그 집에서 숨어 지낸다. 그리고 그 집을 찾아온 서우와 조금씩 가까워진다.

 

지수와 만나기로 했지만 나타나지 않은 그를 하염없이 하원이 기다리는 곳은 바로 그 골목길에 있는 카페다. 그 카페에서 하원은 서우와 만나 지수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함께 지수가 마지막으로 갔던 길들을 찾아 나선다. 저 멀리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에 앉기도 하고, 육교 위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본다.

 

<반의반>에서 골목길과 그 곳에 있는 녹음실, 카페, 주택 등의 공간이 중요한 건, 그것들이 움직이지 않고 그 곳에 늘 서서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는 존재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위로 사람들은 끝없이 나타났다 만났다 헤어졌다 엇나간다. 골목길의 그 공간들은 그래서 마치 문순호(이하나)가 정성을 들여 살려내고 키워내려는 화분 속 식물을 닮았다. 움직이지 못하고 늘 거기 서서 누군가를 바라보기만 하지만 그를 찾는(바라보는) 이들에게 어떤 편안함과 안전함과 따뜻함을 주는 그런 존재.

 

하원과 한서우는 바로 그 식물 같은 짝사랑을 한다. 하원은 이미 사라진 지수를 잊지 못하고 AI로 복원된 목소리를 통해서나마 그 아련한 사랑을 이어가려 한다. 한서우는 그런 하원의 모습이 보기 좋다. 무언가를 그토록 아끼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래서 그 짝사랑하는 하원을 짝사랑한다. 하지만 한서우는 그것이 안타깝다. 그건 0% 가능성을 가진 짝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자신은 1%의 가능성이 있는 짝사랑이라고 말한다.

 

서우는 뒤늦게 지수는 떠나기 전 준 화분이 녹음실 한편에 방치되어 있었다는 걸 발견한다. 가드너인 문순호는 사라진 지수 때문에 사막처럼 말라버려 퍼석퍼석해진 강인욱이 음악을 다시 하게 만들 수 있다며, 뿌리만 살아있으면 식물을 다시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하원이 지수를 그리워하며 지내던 그 텅 빈 주택에 서우는 적당한 가구를 채워 넣어 온기를 만들려한다. 문순호는 이제 말라 죽어가는 강인욱에 물을 줘 다시 살아나게 해줄 수 있을까. 서우의 1% 가능성의 짝사랑은 하원의 0% 짝사랑을 채워주고 지워줄 수 있을까.

 

<반의반>이 그리는 짝사랑은 그렇게 저 마다의 위치에서 홀로 하는 사랑으로 그 사랑을 받는 대상을 다시 피워내려 하고 있다. 늘 그 곳에 있는 골목을 걷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기억되는 카페를 찾아갔을 때 그 당사자는 없어도 우리가 받는 어떤 따뜻함과 촉촉함. 그것은 아마도 저 편에서 누군가 자신도 모르게 채워줬던 사랑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이 드라마는 속삭이는 듯하다.(사진:tvN)

‘반의 반’, 정해인의 AI와 채수빈의 화분이 의미하는 것

 

tvN 월화드라마 <반의 반>은 그 서사의 단점이 적지 않은 드라마다. 그것은 의도적인 불친절이라기보다는 하려는 이야기의 야심이 좀 더 치밀한 개연성 아래 채워지지 않아서 생긴 문제로 보인다. 감정적 서사들이 많이 들어가 있어 꽤 복잡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이야기는 그리 복잡하진 않다.

 

노르웨이에서 성장 과정을 함께 지내며 지수(박주현)와 영혼의 단짝이 되었던 하원(정해인)은 어머니가 사망하자 문정남(김보연)의 후원을 받아 미국으로 가게 되고 그렇게 떨어져 그리움만 키워가던 중 지수가 피아니스트 인욱(김성규)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렇게 엇나간 사이가 되지만 하원은 지수에 대한 외사랑을 홀로 이어가고, 지수는 어떤 사실(그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하원의 어머니의 죽음과 관계된 듯한)을 알게 된 후 인욱과 관계가 틀어지고 괴로워한다.

 

AI프로그래머로 의료용으로 활용될 대화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하원은 녹음실에서 일하는 서우(채수빈)를 통해 지수의 목소리를 담아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서우는 하원과 자꾸만 얽히게 되고 그가 지수를 애타게 홀로 짝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홀로 노르웨이로 떠났다 지수가 조난당해 사망하고, 실의에 빠진 하원은 지수의 목소리와 정보를 담은 AI프로그램을 만들고, 서우는 대화를 통해 그 프로그램을 깨워낸다.

 

사실 이러한 AI 기반의 대화프로그램이 낯설기 때문에 <반의 반>이 왜 굳이 이런 설정을 넣었는가가 궁금해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죽은 지수를 기억해내기 위해 그가 생전에 찍은 사진들을 찾아내고 그 사진이 찍힌 장소를 찾아가는 하원의 모습은 이 설정에 대한 단서를 준다. 그것은 어쩌면 현재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정보를 축적한 데이터에 목소리를 더하면 그 사람이 죽었어도 마치 진짜 그 사람이 살아있는 듯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설정은,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하게 된 색다른 사랑 방식에서 나온 상상력일 게다. 우리는 누군가 사망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고 해도 꽤 오래도록 그의 사진과 목소리와 영상을 통해 그를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또 굳이 사별하지 않더라도 저 멀리 떨어진 세계 속에서도 전화 통화 하나로 연결되는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건 편리함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반쪽짜리 사랑’의 아련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원은 서우에게 마치 AI를 통해서라도 듣고 싶어 했던 그 질문을 던진다. 만약에 서우를 통해 지수를 만났다면 그가 어떤 말을 했을까를 물어본다. 서우는 ‘힘든 얘기 다 털어놓고 공항에 안 갔을 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지수가 만들어 하원에게 준 그릇 이야기를 꺼낸다. 괜스레 하원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서우의 그 답변은 그래서 그가 만들어내고 있는 AI에 담겨지는 목소리의 실체를 슬쩍 보여준다. 그건 지수 자신이 아니라, 지수를 생각하고 그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진 목소리다.

 

“이게 뭔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지수씨한테만 말하는 건데요, 나 이 사람 보고 있는 게 참 좋아요. 지수씨가 있던 곳에 있고 지수씨가 듣던 것을 듣고 느꼈던 것을 느끼고 싶어하는 이 사람을 이렇게 보고 있는 게 참 좋아요. 지수씨를 궁금해하는 모습에 빠졌어요. 이게 뭔지.” 별 생각 없이 AI를 지수라 생각하고 혼잣말을 하던 서우는 갑자기 “짝사랑이네”라는 AI의 답변에 놀란다. 그리고 AI는 이렇게 말한다. “반할 게 없어서 나를 그리워하는 것에 반하니?”

 

하원이 AI라도 붙들고 지수에 대한 반쪽짜리 사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서우도 AI를 통해 하원에 대한 반쪽짜리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반의 반>은 이처럼 완전하게 만나지 못하는 반쪽짜리 사랑을 하는 우리네 시대의 아련함을 담아낸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AI 같은 차가운 디바이스가 마치 물을 주면 자라나는 식물처럼 은유된다는 사실이다. 지수는 떠나기 전 서우에게 화분 하나를 건넸다. 깜박 잊고 있다 시들어가는 화분을 뒤늦게 발견해 서우는 물을 준다. 화분이 자라고 꽃을 피워내는 건 그래서 짝사랑을 닮았다. 그건 어쩌면 화분이 꽃을 피워 돌려주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부여한 사랑을 돌려받는 것일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반의 반>이 다소 복잡해 보이는 서사를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하원과 서우 같은 반쪽짜리 사랑을 하게 된 이들의 아련함이 아닐까 싶다. 이미 사라져버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를 애써 목소리로, 사진으로라도 계속 기억해내며 사랑하려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사랑은 때론 그 반쪽을 채워주는 또 다른 사람을 통해 하나의 사랑이 되기도 할 것이다. 지수의 목소리와 기억 위에 얹어지는 서우의 배려가 하원의 비어있는 반쪽을 조금씩 채워가듯이. 지수가 준 화분에 서우가 물을 주어 다시 꽃을 피워내듯이.(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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