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정의와 진실을 빙자한 끝없는 난타전의 현실

 

이것은 난타전이다. 한쪽에서 스트레이트를 날리면 다른 한쪽에서는 어퍼컷을 올린다. 주먹이 날아갈 때마다 피가 튀고, 맞은 자는 휘청거리지만 금세 자세를 잡고 회심의 일타를 날린다. 게다가 이 난타전의 주인공은 절박하다.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 시간 내에 상대방을 넘어뜨리지 않으면 자신은 허망하게 링을 내려와야 한다.

 

'펀치(사진출처:SBS)'

드라마 <펀치>는 바로 이 권력의 링 안에서 벌어지는 난타전이다. 제 멋대로 해석되고 활용되고 이용되는 법은 스트레이트이자 어퍼컷이고, 국민의 여론을 만들어내는 언론은 카운터펀치가 된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박정환(김래원)과 그와 함께 하게 된 전처 신하경(김아중)이 한 편이라면 서로의 약점을 쥔 채 동거에 들어간 이태준(조재현) 검찰총장과 윤지숙(최명길) 법무부장관이 다른 한 편이 되었다. 하지만 이 난타전은 처음부터 편이 이렇게 정해져 있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박정환과 이태준이 한 편이었고, 신하경과 윤지숙이 다른 한편이었지만 이태준이 박정환을 배신하고, 윤지숙의 숨겨진 본색이 신하경에게 드러나자 판이 바뀌었다. 오션캐피털을 가지려는 이태준 총장과 아들의 병역비리를 덮으려는 윤지숙 장관을 움직이는 동력은 돈과 권력이다. 그들은 번지르르한 명분을 앞세워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 한다.

 

그런 그들을 끌어내리려는 박정환과 신하경은 목적이 약간 다르다. 신하경이 정의와 진실을 추구한다면 박정환은 오로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삶. 박정환이 날리는 펀치는 그래서 절박하면서도 두려움이 없다. “어차피 사람은 다 죽어.” 이렇게 말하는 박정환에게는 죽음을 앞둔 자의 욕망에 대한 무상함이 담겨 있다. 정의로운 검사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순진한 싸움 따위는 하지 않는 박정환이 그나마 이 살벌한 링 위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이태준, 윤지숙과 맞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정의를 얘기하지만 드라마의 재미는 저마다의 목적 앞에서 끝없이 변화하고 부딪치는 인간군상의 이야기에 담겨져 있다. 적어도 <펀치>는 정의로운 자가 승리한다는 식의 순진한 이야기를 던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대중들이 세상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일 것이다. 정의 운운하며 발표되는 사안들은 겉치레일 뿐이고 그 내막은 그네들의 끝없는 욕망들이 꿈틀댄다.

 

가끔씩 뉴스로 보여지는 대기업 회장의 병보석 이야기나, 병역 브로커를 두고 벌어지는 밀고 당기기의 거래, 인사권을 갖고 벌이는 장관과 총장의 갈등 같은 것들은 우리가 현실에서도 늘 뉴스로 보던 것이지만 그 내막을 드러내는 드라마는 그것을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달한다. 아마도 땅콩 회항을 염두에 둔 시퀀스인 듯한 브로커의 해외도피를 막기 위해 비행기를 돌리려 하자 이를 막는 윤지숙 장관의 대사는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괴물을 잡으려다 괴물이 된 윤지숙 장관은 항공보안법 42조를 얘기하며 회항을 막는다. “항공보안법 제 42조 위계 또는 위력으로 항공기의 정상 운행을 방해하는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얘기했듯이 어차피 링이란 현실의 또 다른 축소판일 것이다. <펀치>라는 링은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축소해 보여준다. 그러면서 저들의 입에서 툭하면 호명되는 정의와 진실의 이야기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가를 아프게도 드러내준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박정환처럼 저들의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다 알고 있는 자가 죽음 같은 어떤 계기를 만나 마음을 돌리고, 저 자신마저 함께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려 해야 겨우 가능성을 보인다는 걸 <펀치>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나쁜 놈과 덜 나쁜 놈 그리고 더 나쁜 놈이 있는 현실. <펀치>는 그 난타전의 현실에 날리는 주먹이다.

 

변호사들의 개과천선, 서민들에게는 판타지

 

우리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변호사가 서민들을 위해 변호하는 장면은 얼마나 될까. 아니 실제 현실에서는? 서민들이 변호사를 쓴다는 일은 그렇게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적지 않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변호사들의 일이란 돈 많은 이들을 의뢰인으로 삼았을 때 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물론 인권변호사 같은 특별한 존재들이 있지만.

 

'개과천선(사진출처:MBC)'

변호사의 개과천선이 주는 깊은 감동을 가장 잘 보여준 건 영화 <변호인>이다. 송우석 변호사(송강호)는 세법 변호사로 돈을 버는 지극히 평범한 속물 변호사에서 자신과 인연이 있는 국밥집 아들이 인권을 유린당하는 과정을 보면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난다. 서민들에게 자신들을 대변해주는 변호사가 일종의 슈퍼히어로처럼 여겨지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법에 의해 움직이고 그 법은 돈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돈이 아닌 억울한 서민들의 편에 서는 변호사는 그래서 서민들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의 김석주(김명민) 변호사는 최고의 로펌인 차영우펌의 에이스. 피도 눈물도 없는 그는 오로지 회사에 돈을 주는 재벌 의뢰인들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변호를 해온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어느 날 사고를 당하고 기억상실을 겪게 되면서 그 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개과천선한다는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핵심 테마다.

 

엄청난 법 지식과 노련한 경험을 갖춘 이 변호사 슈퍼히어로는 사고 후 깨어난 병원에서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서민들의 일들을 척척 해결해낸다. 옆 병상에 있는 자동차 사고를 겪은 이가 보험회사 직원과 벌이는 실랑이를 지나가는 말처럼 툭툭 몇 마디 던지는 걸로 김석주 변호사는 문제를 해결한다. 카시트는 대물배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보험회사 직원의 말에 대해 그는 만 8세 이하 아이들은 카시트에 태우는 게 의무화되어 있기 때문에 카시트가 고객 개인의 편의나 취향에 따라 장착된 설비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당연히 보험회사에서 대물배상 범위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또 병상에서 떨어져 다친 환자에게 병원측이 그건 환자의 부주의에 의해 발생한 2차 사고라며 병원비나 간병비 모두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하자, 김석주 변호사는 병원 내에서 충분한 보호장치를 하지 않았고, 병원 지배구역 내에서 일어난 일이며, 간호 수칙과 간호 매뉴얼을 100%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병원측이 병원비, 간병비를 보상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법 조항과 적용에 대해 잘 모르는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런데 이 김석주 변호사는 뭐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몇 마디 던지는 것만으로 일을 척척 해결해낸다. 이것은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가 대중들에게 기대감을 주는 가장 큰 이유다. 그 대단한 실력과 능력을 가진 자들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갖지 못한 서민들을 위해 쓴다는 것.

 

김석주 변호사의 옆자리에 위치해 그와 점점 가까워질 존재로서 이지윤 인턴(박민영)의 역할 또한 작지 않다. 그녀는 김석주 변호사의 변화를 가까이서 목도하는 인물이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곱씹게 해주는 역할이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질 멜로는 그 인간적인 변화가 가져오는 달콤함 결과물이 될 수 있다.

 

왜 현실에서는 개과천선한 변호사를 만나기 힘들까. 그것은 그 직업적 선택이 결국은 자본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이 정의를 구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게다. 그래서일 것이다. 더더욱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나 <개과천선>의 김석주 변호사 같은 이들의 변신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마치 사회적 부조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거꾸로 정의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것처럼.

리쌍 논란, 갑의 횡포? 잘못된 법이 문제다

 

리쌍이 지난해 산 건물에 임차인과의 갈등으로 빚어진 이른바 ‘갑의 횡포’ 논란은 시시비비를 따지기가 쉽지 않은 사안이다. 리쌍의 입장에서 보면 36억의 빚을 내서 산 건물의 임차인이 계약서에 명시되어있는 계약기관과 상관없이 전 주인과 5년을 구두계약 했다며 보상을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게다. 하지만 임차인의 입장에서 보면 전 주인이 구두로 보증금이 3억을 넘지 않으니 임대차 보호법에 해당되어 5년을 장사할 수 있다고 구두계약 했다가 후에 슬그머니 임대료를 조정해 보호받지 못하게 된 사정이 억울할 것이다.

 

'리쌍(사진출처:정글엔터테인먼트)'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그 임대료 조정조차 새로운 건물주인 리쌍에게 임대인으로서의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했던 일처럼 여겨졌을 수 있다. 물론 리쌍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건물주로서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임대사업장에 어떤 사업 계획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지만 그들은 임차인의 사정을 감안해 도의적인 보상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임차인이 이를 거듭 거부하고 리쌍이 연예인이라는 입장을 약점 삼아 버티는 모습은 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흔히 건물주와 임차인 사이의 관계를 그저 모두 갑을 관계로 치환해서 마치 갑이 을에게 늘 횡포를 부리는 것으로 바라본다. 물론 일종의 권력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임대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제대로 임대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이른바 권리금을 제 멋대로 올리는 임차인 때문에 그 피해가 건물주에게 미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이번 리쌍의 경우는 연예인이라는 공인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여론의 약자가 될 가능성이 더 많다.

 

즉 이번 리쌍과 임차인 사이에 벌어진 사안을 단순히 갑의 횡포니 을의 억지니 하며 바라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왜 이런 분쟁이 생겨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리쌍이 애초에 전 건물주와 계약할 때 임차인들과의 이런 미묘한 입장들을 사전에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고, 임차인 역시 전 건물주가 보증금 액수를 조정할 때 확실하게 서면 계약서로 5년을 보장받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즉 현재의 법에서는 건물을 사거나 임대차 계약을 할 때 이런 복잡한 문제들을 사전에 모두 서면으로 남겨놓아야 분쟁의 소지가 없다는 얘기다.

 

사실 이 문제는 보는 입장에 따라 누가 잘했고 잘못 했는가가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누구는 건물주로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고 싶지 않겠는가. 또 누구는 임차인으로서 손해보고 가게를 빼주고 싶겠는가. 문제는 이렇게 분쟁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야기시키는 법 조항이다. 법이란 것이 결국 이런 사회적으로 벌어지는 분쟁에 대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임차인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2조’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를 제출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른바 ‘임대차 보호법’이라는 것이 실로 애매한 기준으로 그 보호대상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서울의 경우에 보증금이 3억 원을 초과하지 않는 상가건물 임차인들만을 보호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 얘기는 임차인이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처럼 “5천에 250만 원짜리 세입자는 보호를 받고, 5천에 251만 원짜리 세입자는 보호 안 되는” 이상한 현실을 보여준다.

 

리쌍이라는 연예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공론화된 것이지만, 이런 건물주와 임차인의 문제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단순히 갑을 관계로 치환해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자칫 감정싸움으로 흘러가게 만들 수 있다. 갑의 횡포니 을의 눈물이니 하며 최근 갑을 관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긍정적인 면이 많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갑을 관계로 환원해 바라보는 것은 자칫 특정 사안의 핵심을 놓치는 일이 될 수 있다. 리쌍 논란의 핵심은 갑을의 문제라기보다는 잘못된 법의 문제가 더 크지 않을까.

인간과 괴물의 대결, <추적자>

 

“내 옆에는 사람들이 있어 물론 네 옆에도 사람들이 있겠지. 총리 자리면 신념도 버리는 대법관도 있고 돈이면 뭐든지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 법을 지키기 위해서 가족의 손에 수갑을 채우는 검사,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형부와 맞서는 기자, 사고를 당하고 자기 목숨이 위험한데도 나를 걱정해주는 형사. 강동윤. 이게 사람이다. 이게. 내가 아는 사람이다.”

 

'추적자'(사진출처:SBS)

딸이 죽고 아내가 죽고 탈옥을 하고 경찰에 쫓기며 밀항을 하려는 사람, 백홍석(손현주)은 강동윤(김상중)에게 “넌 참 불쌍한 놈”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백홍석이 사는 세상과 강동윤이 사는 세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추적자>가 보여주는 두 개의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사람이 사는 나라와 괴물들이 사는 나라. <추적자>는 결국 이 두 나라의 대결처럼 그려진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인간 백홍석에게 주는 시련은 참혹하다. 법정에 선 백홍석의 변론을 맡은 최정우(류승수)가 사건을 하나 하나 플래시백으로 되짚는 과정은 그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참상을 드러낸다. 딸이 사고를 당하고 그 딸이 깨어나길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30억이라는 돈에 사주당한 친구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되는 현실, 범인을 잡겠다는 딸과의 약속을 지켜내지만 그렇게 잡은 범인을 경찰이 놔주는 현실이 그렇다.

 

위증과 조작된 증언을 서슴지 않는 법정, 탄원서조차 거부하는 학교, 친구들이 모아온 탄원서조차 채택하지 않는 법정, 그리고 조작되는 현실에 죽음을 맞이한 아내, 오로지 진실을 밝히기만을 원했지만 진실은 오히려 덮여지는 현실, 그를 도와주기는커녕 회유하려는 변호사, 피해자를 비아냥대는 검사, 힘 있는 자의 목소리만 듣는 언론, 결국 억울하게 죽은 딸이 원조교제에 마약을 하는 딸로 만들어지는 현실... 이것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백홍석과 그 주변인물들이 사람이 사는 나라의 표징으로서 하나의 유사가족을 형성한다면, 강동윤과 그 주변인물들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파편화된 가족을 보여준다. 백홍석이 말한 것처럼 그는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대신 마치 아버지나 형님 같은 황반장(강신일)이 있고 여동생 같은 조형사(박효주)와 막내 같은 박용식(조재윤)이 있다. 마치 동료처럼 도와주는 검사 최정우가 있고, 심지어 자신의 가족의 틀을 넘어서 정의를 지키려는 기자 서지원(고준희)이 있다. 그들은 사적인 이익이 아닌 인간애와 정의를 위해 백홍석을 돕고 나선다.

 

반면 강동윤은 버젓한 가족을 갖고 있지만 이것을 가족이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다. 장인 서회장(박근형)은 자신의 권력과 이득을 위해서는 심지어 딸도 버릴 수 있는 인물이다. 이것은 백홍석과 대비를 이룬다. 서회장의 딸인 서지수(김성령)는 아버지를 버리고 남편 강동윤을 선택한다. 강동윤의 비서인 야심가 신혜라(장신영)는 자신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서회장과 강동윤 사이에서 저울질을 한다. 서회장의 아들인 서영욱(전노민)은 강동윤에게 복수하기 위해 동생 서지수와 맞선다. 이건 가족이 아니다. 한 사람의 생명보다 권력욕이 우선인 삶, 괴물들의 삶이다.

 

법정에서 백홍석의 무죄를 주장하는 최정우에게 당사자인 백홍석은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죄가 뭔지도 모르지만 “거기에 맞는 벌을 받겠다”고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죄는 지었으되 벌은 안 받으려다가 생긴 일”이라는 그의 진술은 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추악한 얼굴을 끄집어내 보인다. 가해자는 자신이 도리어 피해자라고 거짓을 말하고, 피해자는 자신이 가해자가 맞다며 진실을 말한다.

 

우리가 <추적자>를 보며 강동윤의 거짓에 분노를 보내고, 백홍석에게 깊은 동정을 하게 되면서도 그것이 보여주는 지독하고도 리얼한 현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안타깝게도 우리가 그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발을 딛고 있다는 얘기는 아닐까. 막판 대선에서 투표장으로 달려온 유권자들이 판세를 뒤집을 때 느꼈던 그 카타르시스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 드라마 같지 않은 드라마가 우리에게 전하는 진중한 메시지일 테니.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우리는 괴물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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