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24부작인데, <몬스터>는 왜 50부작?

 

사실 드라마에서 길이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50부작이고 해도 한 회 한 회 저마다의 메시지를 담고 그것이 잘 엮어져 50부의 흐름을 관통한다면 그건 오히려 명작이 될 수 있다. 종영한 SBS <육룡이 나르샤>는 대표적이다. 조선 건국의 과정이라는 큰 스케일인데다, 여섯 명의 건국 영웅을 각각 다루면서 이들의 이합집산을 통한 다양한 이야기의 재미들이 매회 나왔기 때문에 50부작이라고 해도 순식간에 흘러가버린 듯한 몰입감을 주었다.

 


'몬스터(사진출처:MBC)'

하지만 MBC <몬스터>는 어떨까. 50부작이 예정되어 있고 이제 8회가 지났을 뿐이지만 이야기는 벌써부터 산으로 가고 있다. 애초에 이 이야기는 이국철(이기광)이라는 인물이 강기탄(강지환)으로 살아 돌아와 도도그룹에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돌아온 강기탄이 도도그룹에 들어가 받는 인턴 연수의 과정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인턴들이 한 회사의 생존이 달린 문제를 놓고 해외 연수를 가서 마치 스파이나 된 것처럼 경합을 벌이는 장면은 어찌 보면 유치한 어린이 드라마 같은 느낌마저 준다.

 

물론 이것 역시 강기탄이 도도그룹 깊숙이 들어가 복수를 해가는 과정이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드라마라는 건 정서적인 일관성과 흐름이 있어야 긴장감이 흐트러지지 않는 법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게임과 미션들 속에서 강기탄의 애초 목적인 간절한 복수의 의지들은 슬쩍 가려진다. 무엇보다 극의 장르적 흐름이 복수극이 아닌 스파이극과 멜로 심지어 코미디 같은 기조로 흘러가는 건 너무 한가한 전개처럼 보인다. 본 이야기로 달려가지 못하고 자꾸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따져보면 그 50부작이라는 길이 때문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사실 지금 같은 이야기 전개라면 굳이 <몬스터>50부의 길이로 갈 필요는 전혀 없다고 여겨진다. 강기탄으로 살아 돌아와 도도그룹에 복수하는 이야기를 지난한 인턴 과정 이야기를(그것도 지극히 비현실적인) 시시콜콜 다루면서 굳이 긴장감을 뺄 필요가 어디 있을까. 만일 20부작이나 24부작 정도였다면 과연 <몬스터>는 이렇게 한가한 삼천포 전개를 할 수 있었을까.

 

SBS <대박>이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24부작인 이유는 굳이 50부작 같은 큰 흐름으로까지 갈 필요가 없는 이야기인데다, 좀 더 압축적인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물론 <대박> 역시 여러 이야기의 허점들을 갖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적어도 <몬스터>처럼 한가하지는 않다. 그것은 전적으로 드라마의 이야기가 가진 밀도에 비해 길이가 너무 긴 데서 비롯된 일이다.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풍성한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본 이야기와 관계없는 엉뚱한 이야기들이 얼기설기 붙어 있는 건 본 이야기의 기조마저 흐릿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야 할 일이다. 결과는 이미 시청률 꼴찌가 말해주고 있다. 물론 시청률이 그 작품의 완성도를 말해주는 지표가 되지 못한 지는 오래다. 하지만 10분짜리 웹드라마가 나오는 시대에 굳이 대서사의 밀도가 없는 이야기에 50부작을 쓴다는 건 구태의연한 지상파드라마의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과거에야 50부작 같은 긴 호흡이 투자비 회수를 위해 용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처럼 완성도와 밀도를 보는 시청자들 앞에서 이런 단순한 길이 늘이기가 효과가 있을까. 자칫 잘못하면 더 큰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분노와 <레버넌트>에 대한 기대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새 영화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심상찮다. 필자가 찾아간 극장에서는 외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자리가 없을 만큼 관객들로 가득 메워졌고 그 관객들은 상당히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개봉일 첫날 하루 동안 이 영화는 126599명을 동원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사진출처: 영화 <레버넌트>

도대체 무엇이 이 이국적인 영화에 우리 관객들을 기대하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가장 큰 것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생존과 복수라는 두 가지 코드가 아니었을까 싶다. <레버넌트>는 서부개척시대 이전 그 혼돈의 미 대륙에서 펼쳐지는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사냥꾼의 놀랍고도 경이로운 생존기를 그리고 있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휴 글래스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한 겨울 눈보라가 몰아치는 그 곳에서 사냥을 하던 중 회색곰의 습격을 받아 온 몸이 찢겨진 채 동료들에게 버려지게 되는 것. 그 와중에 함께 사냥을 나갔던 아들 호크는 살해당하고 뒤에서는 인디언들의 추격을 받는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어려울 것 같은 그 만신창이의 그를 일으켜 세우는 건 다름 아닌 살해당한 아들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안해 보이는 그 상황에서는 그는 놀라운 생존력으로 조금씩 자신을 회복시켜나간다. 자연은 그에게 도전이지만 동시에 그에게 살 수 있는 무언가를 던져주고 때로는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세우기도 하는 신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동물의 내장을 생으로 뜯거나 뼈 속의 골수를 빼먹고 먹을 수 있는 풀들을 씹으며, 걷지 못하는 몸으로 기어서 다니다가 인디언을 만나 급류에 빠지고 얼어붙을 것 같은 몸을 모닥불에 녹여가며 심지어 절벽에서 떨어져도 버텨내는 그 극한의 생존기는 마치 베어 그릴스의 야생 버전을 보는 듯한 실감을 준다. 글래스를 쫓아다니며 거의 비슷한 눈높이에서 촬영된 영상들은 관객들의 몰입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꽃미남 따위는 잊어버리라고 선언하는 듯한 디카프리오의 미친 연기력은 그의 생존을 향한 절절함과 분노 같은 감정들까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나는 그런 끝없는 생존의 도전 속에서 글래스가 살아남는 그 과정들은 디카프리오의 온 몸을 던지는 연기로 생생하게 전해진다. 연기도 하나의 노동이라면 이 작품만한 노동 강도가 없을 정도로 힘겨운 연기들을 디카프리오는 진짜 글래스가 되어 보여준다.

 

최근의 대중문화 콘텐츠들을 보면 알 수 없는 분노같은 것들이 어른거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작년 1천만 관객을 동원한 <베테랑>이나,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 850만 관객을 넘어선 <내부자들>이 그렇다. 드라마에서도 <리멤버-아들의 전쟁> 같은 드라마는 그 분노의 코드를 가져와 16% 이상의 시청률을 내고 있다. 이 분노의 정서는 <레버넌트>라는 영화가 우리네 관객을 매혹시키는 중요한 기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생존과 복수는 흔한 소재들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우리네 대중들의 마음을 가장 끌어당기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어려운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대중들은 저 글래스가 겪는 고통과 분노 그리고 그 죽음 같은 생존기에서 어떤 깊은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용팔이>의 속물 의사 주원, 굿닥터로 돌아가다

 

종영한 <용팔이>에서 최고의 수훈갑을 꼽는다면 역시 주원이 아닐까. 과거 <굿닥터>의 박시온 역할로 어눌하지만 착한 심성이 전하는 울림을 제대로 전해준 주원이었다. 그런 그가 <용팔이>로 와서는 자칭 속물의사를 연기했다. 돈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속물의사. 그래서 병원에 가기 힘든 조폭들을 맨 바닥에 눕혀 놓고 치료하는 장면은 <용팔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용팔이(사진출처:SBS)'

하지만 자칭 속물의사는 사실은 돈 없고 배경이 없어 수술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 속물의사는 껍데기고 사실은 저 굿닥터에 가까운 휴머니스트였다는 것. 겉으로는 까칠하고 돈만 밝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로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김태현(주원)이란 의사는 서민들의 판타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휴머니스트의 심성을 숨긴 채 속물의사의 가면을 쓰고 12VIP병동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설정은 또 다른 기대감을 이어갔다. 거기 오래도록 감금된 채 누워있는 한여진(김태희)과 김태현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의 멜로 속에서도 주원은 확실한 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태희를 상대로 하는 멜로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한여진을 깨워낸 김태현은 그녀를 보호해주려 하면서도 그녀의 복수를 멈추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한 명의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처럼, 그는 이 사회와 현실이 만들어낸 피의 복수라는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처럼 한여진을 치료하고 있었다. 김태현이라는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사람을 죽이라 사주하는 복수의 화신 한여진이 그저 악역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쁜 존재가 아니라 아픈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와서 김태현의 분량보다 한여진의 분량이 훨씬 많아졌고, 그 복수극이 오래도록 펼쳐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태현의 존재감은 늘 드라마의 다른 한편을 차지했다. 즉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건 복수는 복수를 부를 뿐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복수로 전염되는 질병일 뿐 피로써 치유될 수는 없다는 것. 그러니 모든 걸 버리고 일층의원으로 돌아간 김태현은 한여진이 돌아가 치유 받아야 하는 곳이자 이 드라마의 주제일 수밖에 없다.

 

결국 진짜 복수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며 손에 더 많은 것을 쥘수록 점점 피폐해지는 한여진과 모든 걸 내려놓고 사람들 가까이에 선 의사로 돌아가자 한없이 행복해진 김태현은 이 드라마가 말하는 진정한 복수극의 해법을 드러낸다. 저들은 끊임없이 투쟁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배신하면서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불행해진다.

 

시스템은 저들을 부유하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결코 행복하게는 해주지 않는다는 게 <용팔이>가 전하려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 메시지를 앞에서부터 끝까지 밀고 나가는 한 캐릭터가 바로 김태현이라는 의사다. 주원은 이 의사의 절망과 분노 그리고 사랑과 치유까지의 변화과정들을 김태현이라는 캐릭터 하나로 제대로 꿰어냈다.

 

드라마의 겉면은 김태희가 연기하는 한여진이라는 캐릭터가 화려하게 이끌었을지 몰라도 드라마의 실제는 주원이 연기하는 김태현이라는 캐릭터의 소박함이 밀어주었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화려한 저들의 세계가 겉에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작아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 의해 세상은 살만해지는 것이니 말이다



<용팔이> 김태희, 산전수전이 일깨운 가능성들

 

여전히 김태희가 연기를 잘한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캐릭터를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만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이 정도의 연기가 부족하다 여겨진다는 얘기다.

 


'용팔이(사진출처:SBS)'

하지만 적어도 <용팔이>를 통해서 김태희가 얻어간 것은 분명히 있다. 이 드라마는 지금껏 그녀가 해온 많은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새로운 면들을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드라마가 시작한 지 거의 몇 주 동안 그녀는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걸 갖고 누워서 돈 번다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지만 누워서 연기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고, 눈을 뜬 상태에서도 몸을 쉬 움직이지 못하니 눈빛 하나, 손가락 움직임 하나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자살하기 위해 스스로 목을 그으려 안간힘을 쓰는 장면도 그렇고, 그녀를 죽이러 들어온 이과장(정웅인)에게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독기어린 눈빛으로 그를 쓰러뜨리는 장면도 그렇다.

 

병상에서 일어나서도 김태희는 한동안 얼굴을 전면에 드러내놓지 않았다. 캐릭터가 얼굴을 붕대로 가리고 다른 사람인 척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얼굴을 드러냈을 때는 그녀를 구원해준 김태현(주원)과 달달한 멜로 연기를 해야 했다. 물론 이 멜로 연기는 시청자들에게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상황이 너무 급전개된 것도 원인이지만 그것이 어쩌면 김태희가 늘 배우로서 소비되던 이미지 그대로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스러운 건 곧바로 이 한여진이란 캐릭터가 한신그룹의 왕좌에 오르면서 피의 복수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김태희는 표독스러울 정도의 악녀 이미지를 드러냈다. 김태현 앞에서는 연인의 모습이지만 그간 자신을 그렇게 VIP 병동에 가둬뒀던 사람들 앞에서는 말 한 마디로 복수를 행하는 사신의 모습이었다.

 

결국 그나마 김태희가 이 드라마의 후반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낼 수 있었던 건 이 악어들의 세상으로 들어온 그녀의 생존을 위한 악녀 캐릭터가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용팔이>의 전반부를 주원이 연기하는 김태현이라는 휴머니스트가 이끌었다면 후반부는 김태희가 연기하는 한여진이란 악녀 본색이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한 편의 드라마에서 배우가 이처럼 다양한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는 건 김태희로서는 소중한 기회가 됐을 것이다. 사실 김태희가 그토록 오랜 연기생활을 하면서도 연기가 별로 늘지 않았다고 여기게 된 건 늘 비슷한 방식, 즉 멜로의 대상으로서만 주로 그녀가 소비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녀를 만인의 연인이미지로만 묶어둔 나이 들어도 여전히 여신처럼 예쁜 얼굴은 그래서 연기자 김태희에게는 크나큰 족쇄 역할을 했던 셈이다.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그래도 <용팔이>를 통해 김태희는 좀 더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실험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눕혀지고 가려지고 멜로연기에서부터 악녀까지 다이내믹한 한여진이라는 인물의 변화 속에서 어쩌면 김태희라는 연기자도 조금씩 깨어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김태희에게 남은 숙제는 이렇게 펼쳐놓은 가능성들을 비록 작은 역할이라도 버리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시도해나가는 일이다. 그래야만 그토록 공고한 연기력 논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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