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구마사' 사태, 현 K콘텐츠에 센 예방주사 효과 있다

 

결국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2회 만에 폐지가 결정됐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일파만파 커질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게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대중들이 이 사태를 가볍게 보지 않고 들불처럼 들고 일어섰고, 이들 잠재적 소비자들의 힘은 광고주들과 드라마 협찬사들을 움직였다. 계속 광고 게재를 강행하다가는 자칫 불매운동까지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광고가 20개 가까이 빠져버렸다는 사실은 사실상 드라마 제작은 물론이고 방영조차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는 걸 말해준다. 폐지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구마사> 사태는 비극으로 끝나버렸지만, 여기서 우리는 제2의 <조선구마사>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이 비극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도전들이 우리네 K콘텐츠 앞에 현재 펼쳐져 있는 것이며, 나아가 어떤 방향성이 K콘텐츠의 바람직한 길인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먼저 <조선구마사> 사태를 통해 촉발된 것이지만, 이제 콘텐츠 속에 등장하는 작은 소품들부터 PPL 등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감수가 필요해졌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풍 소품들이 현 중국의 문화공정(전파공정)에 예민해진 우리네 대중들의 역린을 건드린 면이 크지만, 이를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이제 우리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 우리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작은 소품들(PPL 포함)까지 제대로 챙겨야 한다는 것.

 

<조선구마사>가 어째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거기 등장하는 의복이나 음식 등등의 소품들에 보다 정확한 고증과 감수를 하지 않았는지가 의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퓨전사극이나 판타지사극에서 역사왜곡이 거론될 때마다 흔히 "역사가 아닌 상상력으로 그린 허구일 뿐"이라고 하던 그 변명 속에 사태의 불씨가 있지 않았나 싶다.

 

사실 퓨전이든 판타지이든 그것이 사극이라는 틀을 가져와 조선 같은 특정 시대의 시공간을 빌려 쓰게 될 때는 (이야기는 허구일 수 있어도) 그 시공간에 담겨진 '생활사'에 대한 고증은 분명히 따라줘야 하는 게 맞다. 그게 아니라면 조선이라고 해놓고도 중국드라마인지, 일본드라마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극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구마사> 이전에 박계옥 작가가 쓴 작품인 <철인왕후>가 초반에 그토록 거센 역사왜곡 논란을 빚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나온다는 이유로 유야무야 됐던 건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아무리 판타지로 현재에서 과거로 날아간 남성이 왕후의 몸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또 제아무리 그것이 코미디를 위한 설정이라고 해도 왕후가 왕에게 끝까지 반말로 일관하는 건 자칫 조선시대라는 시공간을 빌려 쓰는데 대한 무례일 수 있다.

 

게다가 요즘처럼 중국의 문화공정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런 고증 없이 마구 쓰인 중국풍 소품들은 고스란히 저들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이것은 최근 <빈센조>에 등장했던 중국 비빔밥 PPL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저들은 아마도 이런 장면들을 떼어다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봐라 너희들의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먹고 입는 게 다 우리 것 아니냐고. 너희들조차 우리 비빔밥을 먹고 있지 않냐고. <철인왕후>나 <조선구마사>에서도 등장하는 것처럼 조선은 위아래도 없는 나라라고. 대중들은 이런 빌미를 제공한다는 사실이 소름끼치게 싫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줬다.

 

또한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봐야 하는 건, 현재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 속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 하는 점이다. 넷플릭스나 향후 본격화될 디즈니 같은 서방세계의 글로벌 플랫폼과 중국의 아이치이나 텐센트 같은 글로벌 플랫폼 혹은 거대자본들이 대결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그 중간에 K콘텐츠가 서 있다. 지금까지는 넷플릭스가 주로 K콘텐츠에 투자해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들어 그들의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우리 작품들을 알렸지만, 최근 흐름을 보면 아이치이 같은 중국 플랫폼 역시 K콘텐츠에 돈을 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미국이야 우리와 인접국이 아닌지라 역사나 문화적인 갈등의 소지들이 적지만, 중국은 다르다. 인접국이기 때문에 역사든 문화든 부딪치는 지점이 만들어진다. 특히 중국은 여전히 민족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며 동북공정에 이어 문화공정으로까지 펼치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중국향의 문제는 저들이 자본을 직접 대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시장(중국의 소비자들)을 염두에 두고 알아서 중국향 소재를 채워 넣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 변화된 환경을 염두에 두고 지금 현재 벌어진 <조선구마사> 사태를 들여다보면 2회만의 폐지라는 다소 가혹한 결과가 어떤 의미에서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선제적으로 센 예방주사를 맞은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순수자본만으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데다, 우리만의 글로벌 플랫폼을 갖추고 있지 않아 넷플릭스든 아이치이든 해외의 플랫폼을 키우는데 오히려 우리의 경쟁력 있는 콘텐츠들이 활용되고 있는 이 형국에서 우리는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냐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존심마저 버린 채 상업적인 선택만을 한 결과가 어떻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는지를 이번 사태를 통해 절실하게 통감해야 한다.(사진:SBS)

'빈센조', 최덕문 같은 비현실 사이다가 주는 놀라운 카타르시스

 

세입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동원된 깡패들의 폭력.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이제 이런 장면은 전형적이라고 할 정도로 익숙하다. 그만큼 우리네 사회악을 담는 콘텐츠들 속에서 늘 등장하는 게 재개발이고, 여기에 동원되는 게 조폭들이었기 때문이다.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가 굳이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까지 등장시켜가며 굳이 한 상가건물의 재건축을 하려는 세력과 맞서게 한 건, 너무나 전형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네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개발'을 앞세워 벌어지는 부정축재의 카르텔을 저격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빈센조>가 다루는 이 카르텔에 대한 풍자가 흥미로운 건,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인 이 문제들을 가장 비현실적인 방식(과연 저런 인물이나 상황이 가능한가 싶은)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처음 동원된 깡패였던 앤트컴퍼니 박석도(김영웅)가 빈센조(송중기)에 의해 간단하게 제압당하고, 저들 바벨그룹과 우상에 의해 팽 당한 후 금가프라자에 여행사를 차려 입주자들편에 서게 되는 상황은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그 자체가 주는 블랙코미디적 풍자가 웃음을 준다. 카르텔의 개 역할을 해도 언제든 상황이 바뀌면 자신들도 입주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는 걸 이 비현실적 캐릭터들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 피도 눈물도 없는 조폭이 동원되지만, 놀랍게도 이들을 가위 하나로 모조리 쓸어버리는 세탁소 주인 탁홍식(최덕문)이 은둔 고수의 반전을 선사한다. "이게 아닌디. 가위는 옷감 자를 때만 쓰기로 맹세했는디. 오지마. 모가지에 아가미 생겨." 구수한 사투리가 곁들여진 탁홍식의 반전 사이다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상황이지만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그런데 이런 금가프라자의 반전 캐릭터는 탁홍식만이 아니다. 늘 자신을 무도인이라며 입으로만 싸우던 전당포 사장 이철욱(양경원)과 그의 아내 장연진(서예화) 역시 빈센조의 집에 침입한 자들을 상대로 숨겨졌던 반전 실체를 드러낸 바 있다. 모자에 가려져 있던 만두귀를 드러내며 이철욱은 전직 레슬러 같은 실력으로 침입자들을 제압했고, 장연진 역시 괴력을 발휘하며 침입자를 통째로 들어 올려 던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탁홍식이나 이철욱, 장연진 같은 반전 고수들이 현실적인 인물일 수는 없다. 게다가 이런 인물들이 하필이면 금가프라자에 모여 있다는 것도 그렇다. 여기에 마피아 변호사인 빈센조까지 더해져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들 비현실적 인물들이 오히려 더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현실에서는 결코 벌어지지 않을 세입자들의 반격을 판타지로서 전해줄 때 느껴지는 통쾌함이고, 다른 하나는 이 비현실적 캐릭터들을 은유해 던지는 작가의 목소리에 대한 공감이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서민들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저마다 분야에서 숨겨진 고수들이니."

 

이건 <빈센조>가 주는 독특한 카타르시스의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늘상 신문지상을 통해 봐왔던 우리네 사회의 너무나 분명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가져와, 작가와 시청자들이 공조해 가능해진 지극히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의 반격을 통해 통쾌한 사이다를 주는 방식. 너무나 허구이고 비현실이기 때문에 그 적폐의 대상이 되는 이들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걸 보는 서민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그 풍자의 공모자가 되는 유대감의 즐거움. 우리는 웃지만 저들은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허구로서의 풍자의 힘이 거기 들어 있다.(사진:tvN)

'빈센조'를 통해 보는 필요악 PPL의 허용범위

 

분명 우리 드라마인데, 중국 제품이 PPL로 등장한다? 게다가 그 제품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유통되지도 않는 제품이라면, 어딘지 이상하다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이 지금 현재 우리네 드라마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연초에 방영됐던 tvN 드라마 <여신강림>에 주인공들이 편의점에서 '훠궈 컵라면'을 먹는 장면과 중국어로 적힌 버스정류장 광고판이 등장했을 때, 시청자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중국 제품들까지 우리네 드라마 속 PPL로 들어온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그 때까지만 해도 드라마 제작 여건 상 PPL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는데다, 외국 제품이 PPL로 등장하게 된 이유가, 그만큼 우리네 드라마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불편해도 그러려니 했다. 중화권에서 워낙 우리 드라마를 챙겨 보는 이들이 많고, 이를 통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유행이 되기도 하는 터라, 중국제품 PPL이 우리 드라마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tvN 드라마 <빈센조>에 들어간 송중기와 전여빈이 뜬금없이 '차돌박이돌솥비빔밥'이라 한글로 표기된 중국 컵밥을 꺼내 먹는 장면은 그저 불편한 정도를 감수하며 넘어갈 수준이 아니었다. 훠궈야 중국 음식이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비빔밥은 문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비빔밥이 마치 중국 것이나 되는 양 오인 받을 수 있는 제품 PPL이 아닌가.

 

이 장면이 나간 후 한 네티즌이 중국에는 '한국식김치돌솥비빔밥'이라고 문구가 적힌 제품도 판매되고 있다고 밝힌 사실은 시청자들을 더욱 공분하게 만들었다. 그 문구는 김치나 비빔밥이라는 우리 고유의 음식 앞에 '한국식'이라는 말도 안되는 수식어를 붙여 그것이 마치 우리 것이 아닌 것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표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표기 문제가 민감하게 된 건, 최근 중국이 펼치고 있는 이른바 '전파공정' 때문이다. 마치 전 세계의 문화가 자신들의 것이라도 되는 양, 김치도 자기 것이고 한복도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중국의 전파공정은 그저 몇몇 사람들의 일탈이 아니라 정부까지 관여되어 있는 조직적인 문화 침탈 행위다. 이런 상황에 중국 제품 '비빔밥'을 우리 드라마에서 버젓이 PPL로 세운다는 건 너무나 생각이 없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 제품은 한국 브랜드인 청정원이 재료를 납품하고 중국 브랜드 즈하이궈가 만든 중국제품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런 식의 합작이 우리네 기업과 중국 기업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제아무리 비즈니스라고는 해도 그 표기 문제에 있어 향후 오해의 소지들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충분한 사전 숙고가 필요하다는 걸 이번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PPL은 알다시피 드라마에 있어서 필요악이다. 제작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너무 과도하거나 아예 어울리지 않는 PPL은 드라마 몰입 자체를 깬다는 점에서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 그러니 중국제품(그것도 국내 유통되지 않는)이 뜬금없이 우리 드라마에 들어오는 그 이물감도 참기 힘든 일인데다, 원조 논쟁의 빌미마저 제공할 수 있는 제품을 버젓이 세운다는 건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네 드라마에 외국제품들이 PPL을 싣기 시작했다는 건 그만큼 위상이 높아졌다는 반가운 의미일 수 있다. 하지만 높아진 위상만큼 그만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필요악인 PPL을 넣는다고 해도 책임의식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파문이 커지자 <빈센조> 측은 부랴부랴 중국 비빔밥 PPL 잔여분에 대한 취소 논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를 통해 이제 글로벌 위상을 갖기 시작한 K드라마 제작자들은 PPL에도 그만한 개념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사진:tvN)

'빈센조'·'루카'·'괴물', 무엇이 괴물들을 소환해냈을까

 

"이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계십니까? 제약회사 마약성 진통제 출시 계획, 보이지 않는 정관계 로비스트, 엄청난 리베이트, 재판에 조작, 이 자체가 코리안 카르텔입니다... 이 사람들은 장사꾼들이 아니라 괴물입니다. 사람 목숨 따윈 관심도 없죠."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에서 빈센조(송중기)는 법무법인 지푸라기의 홍유찬(유재명) 변호사에게 그가 마주하고 있는 적들이 '괴물'이라 말한다. 코리안 카르텔이라는 괴물.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는 살인도 저지르고, 법도 마음대로 주물러 범죄도 덮어버리며, 마약을 갖가지 로비를 통해 상비약처럼 유통시켜버리는 이들. 물론 과장된 설정이지만 이들과 맞서고 있는 인물이 홍유찬 같은 변호사라는 점과, 그가 법으로 맞서고 있지만 그것이 무력하다는 사실에는 우리네 사법 현실에 대한 맹렬한 풍자가 담겨있다.

 

우상 같은 로펌은 이들의 범법조차 합법으로 둔갑시켜 버린다. 그러니 이들을 어떻게 홍유찬 같은 뜻만 가진 변호사가 막을 수 있을까. 그는 결국 저들에 의해 사고로 위장된 채 살해당한다. 죽기 전 빈센조에게 이런 말을 남기며.

 

"악마가 악마를 몰아낸다. 제가 유일하게 외우는 이탈리아 속담입니다. 예전에 말했죠? 괴물이 괴물을 상대할 수 있다고. 근데 난 괴물이 못돼요. 누군가 진짜 괴물이 나타나서 법이고 지랄이고 이 나쁜 새끼들 그냥 다 쓸어버렸으면 좋겠어. 허허. 하지만 뭐 현실은 불가능한 거지. 빈센조 변호사님. 변호사님 그 괴물이 될 순 없겠죠?" 도무지 이겨낼 수 없는 괴물들과 마주하기 위한 더 강력한 괴물의 등장. 코리안 카르텔에 맞서는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라는 반영웅의 탄생은 결코 상식적인 방식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괴물의 현실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법이 아니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방식으로 폭력을 끌고 와 저들을 싹 쓸어버리는 빈센조라는 괴물이 탄생한다. 그렇게 저들의 제약회사 공장을 불질러버리자 그 곳에 로펌과 회사라는 껍데기 뒤에 숨어 있는 진짜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상 로펌에서 홍차영(전여빈)의 어시 변호사로 위장한 채 있던 장준우(옥택연)가 바로 그 괴물이다.

 

이른바 괴물들의 전성시대가 아닐까. tvN 월화드라마 <루카:더 비기닝>에는 실험에 의해 탄생된 지오(김래원)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 털이 곤두서고 극도의 분노 상태가 되면 몸에서 엄청난 고압의 전류가 흘러나와 모든 걸 파괴시키고 태워버리는 그는 스스로를 괴물로 여긴다. 그래서 사람들을 피하고 숨어 살다시피 하지만, 그가 가진 능력(유전자)을 배양해 '인간개조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이를 통해 돈과 권력을 쥐려는 휴먼테크 같은 조직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엇나간 과학과 종교의 부적절한 만남이 만들어낸 욕망은 <루카>가 그려내려는 진짜 괴물의 실체다. 괴물 같은 능력을 저주라 생각하는 지오만이 그들을 모두 쓸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JTBC 금토드라마 <괴물>은 제목 자체가 괴물이다. 어느 변두리 마을에서 벌어진 연쇄 실종사건과 살인사건. 그로 인해 실종된 이들을 20년 동안이나 애타게 찾으며 사건을 추적해온 형사 이동식(신하균). 이 조그만 마을의 파출소로 내려와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한주원(여진구) 경위와 어딘지 하나 같이 의심스럽고 무언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마을 사람들. <괴물>은 한 변두리 마을을 덮친 살인, 실종사건을 저지른 괴물을 추적하는 형사들이 점점 괴물처럼 의심되는 상황들을 그리면서 동시에 진짜 괴물은 저편에 있다는 걸 암시한다.

 

그건 그 동네의 정치와도 연결된 '개발'과 관련이 있다. 20년 전 개발 이야기가 솔솔 피어나고 있을 때 손가락 열 마디를 잘라 전시해놓는 엽기적인 신체상해, 실종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식어버린 개발 붐이 이제 20년이 지나 다시 생겨나려는 시점에 같은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런 상황을 에둘러 말해준다. 도대체 한 마을의 개발을 둘러싼 어떤 일들이 이런 비극을 만든 걸까. 그것이 무엇이든 저 편에 이를 기획한 괴물들이 존재하고, 그들을 잡기 위해스스로 괴물이 된 이동식 같은 형사가 탄생한다.

 

괴물이 괴물을 상대할 수 있다는 <빈센조>의 대사 속에 담겨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네 드라마 속에 넘쳐나는 괴물들은 저마다 더 강력한 괴물들을 상대하기 위해 탄생한 판타지 반영웅들이다. 빈센조나 루카 그리고 이동식 같은 괴물이 말해주는 건 그래서 사법이나 국가 권력 같은 괴물들과 맞서야할 존재들이 이제는 카르텔을 형성해 더 강력한 괴물이 된 현실이다. 물론 극화된 이야기들이지만, 적어도 대중들은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이 반영웅들이 저 거대한 괴물들을 사그리 쓸어 벌이는 이야기에 몰입하고 공감하고 있으니.(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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