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진실공방, 사생활이라는 판도라의 상자

 

길건이 소속사 소울샵 엔터테인먼트와의 법적 분쟁에 대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소울샵측이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소울샵의 보도자료 내용에 의하면 길건은 불성실하게 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소속사에서 죽겠다는 식으로 협박하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소울샵 측이 활동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그래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사진출처:소울샵 엔터테인먼트

어느 쪽의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큰 틀에서 보면 이건 늘 있어왔던 소속사와 소속 연예인 사이에 벌어지곤 하던 분쟁의 하나로 보인다. 길건의 주장에 의하면 김태우와 계약해서 활동할 때만 해도 회사 분위기가 좋았지만 기존 경영진이 바뀌고 새로운 경영진으로 김태우의 아내 김애리 이사와 장모 김민정 본부장이 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녀의 진술대로라면 인간적인 모욕감까지 느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길건이 기자회견을 갖기 몇 분 전 소울샵 측에서는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 영상 속에서 길건은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소리가 없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그녀가 그리 흥분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내용도 알 수 없는 CCTV 영상을 소울샵 측은 왜 공개한 것일까. 그것도 기자회견을 갖기 몇 분 전에.

 

그리고 과연 이런 폭로성 동영상 공개는 정당한 일일까. 무슨 범죄 행위를 증명하는 증거자료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적인 자리에서의 일도 아닌 이런 사적인 영상을 마구 공개하는 건 지나친 행위가 아닐까. 그것이 법정 같은 법적 판결을 위해 한정된 공간에서 보여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인터넷에 공개하는 건 엄청난 폭력이다. 이것은 마치 한 사람의 공적인 옷을 홀딱 벗겨 대중들 앞에 세우는 격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사생활 공개, 아니 나아가 폭로가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처럼 자행되게 된 걸까. 최근 이태임과 예원을 두고 벌어진 논란을 들여다보면 실로 개탄스러운 사생활 폭로의 지경에 이른 우리네 현실을 보게 된다. 반말을 했건 안했건, 또 힘겨운 환경 속에서 과한 욕설이 나왔건 안 나왔건 그건 공적인 자리에서의 행위가 아니었다.

 

과거 초치기에 쪽 대본이 난무하던 드라마 촬영 현장에 가면 늘상 있는 일이 갖은 욕설과 눈물이라는 건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얘기다. 그만큼 현장은 늘 신경이 곤두세워지는 곳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공개되거나 폭로되는 일은 없었다. 그게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건 어디까지나 사적인 행위이고 특별한 상황에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태임의 입에서 욕이 나왔다는 건 그 욕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욕이 나오는 현장 상황이 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들의 지극히 사적인 영상을 공개했다. 그 영상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란이 쏟아져 나온다. 예원이 결국은 거짓말을 했다는 것. 이 부분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이 동영상 공개 뒤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이 사안이 이상한 쪽으로 흘러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태임측도 예원측도 모두 상대방에게 사과와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사자 간에 문제가 있었는데 양측은 서로 화해하려 한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미 공개된 지극히 사적인 동영상은 이 사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사안을 작동시키고 있다.

 

사생활에서 누구나 때로는 잘못을 저지른다. 잘못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잘못된 말을 뱉어내기고 하며 때로는 잘못된 행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상해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냥 넘어간다. 그것은 한때의 감정적 실수일 수 있고, 무엇보다 공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연예인들의 진실공방 속에서 당연한 듯 공개되는 동영상의 폭로전은 이 사적인 일을 공적인 잣대 위에 올려놓는 행위다. 그 사적인 동영상들은 법적인 것과 무관하게 당사자들의 이미지를 파괴하는 힘을 발휘한다. 진실공방의 격한 분위기 속에서 어떤 언론들은 그 진실을 끄집어내기 위한 파파라치성 탐사가 대중의 알권리라고 포장하지만, 사실 이건 폭력이다.

 

이것이 저 연예인들이라는 특정 직업인들의 문제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사적인 장면들의 공개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누군가의 사적인 동영상을 진실공방의 이름으로 당연한 듯 들여다보고 있는 순간, 우리들 역시 각자의 사생활이 누군가에 의해 공개돼도 된다는 암묵적 허용을 하고 있는 셈이니까. 누군가 연예인이라는 이름으로 이 사생활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그 부작용들은 지금 현재 무수한 분쟁 속에서 폭로되는 사생활로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룸메이트>, 애매해진 리얼과 가상의 경계, 그 위험성

 

슬슬 예능을 하다 보니 성격도 나오고 방송이니 더 오버해서 하는 부분도 있다. 조금 적응이 안 되시는지 안 좋게 보시는 분들이 많더라.” SBS 주말예능 <룸메이트>에서 애프터스쿨의 나나는 조심스럽게 홍수현에게 자신에게 달리는 악플에 대한 심경을 고백했다. 그런 반응들을 보니 말 한 마디를 할 때도 이젠 조심스럽다는 것.

 

'룸메이트(사진출처:SBS)'

나나의 이런 고백 속에는 <룸메이트>가 가진 프로그램의 성격이 묻어난다. 이 관찰 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의 사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성격과 성향 또한 어떤 식으로든 전달되기 마련이다. 물론 제작진은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는 어떤 상황들에 대해 출연자를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인 편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영상에 민감한 대중들은 섬세한 행동과 말의 뉘앙스를 간파해내곤 한다.

 

나나가 얘기한대로 이 관찰 카메라 안에 있으면 성격도 나오고’, ‘방송이니 더 오버해서 하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두 진술은 서로 엇갈린다. 성격이 나온다는 건 리얼한 리액션을 말하는 것이고, ‘오버해서 하는 부분이라는 건 방송을 의식해 하는 행동이 있다는 걸 말한다. 애매모호한 건 어떤 게 리얼이고 어떤 방송을 의식해 하는 행동인지 대중들은 잘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초반 방송분량에서 나나가 이동욱을 챙기고 대신 조세호를 괄시하는 듯한 행동은 당연히 예능적인 판단에서 나온 오버해서 하는 부분이었을 게다. 하지만 어떤 시청자들에게는 그것이 성격이 나온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 바비큐 파티를 하면서 나나가 조세호에게 쌈에 고기를 싸서 입에 넣어주는 장면은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어떤 시청자들에게는 그것이 오버해서 하는 부분처럼 여겨질 수 있다.

 

나나는 따로 인터뷰를 통해 이 프로그램 안에서 출연자들의 가식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재차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것이 가식이고 어떤 것이 진짜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그리고 이것은 <룸메이트> 같은 리얼과 가상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우리 결혼했어요>가 가상결혼 설정이지만 저게 진짜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해지는 지점에서 재미가 나오는 것처럼.

 

하지만 <룸메이트><우리 결혼했어요>와는 다르다. <우리 결혼했어요>야 결혼 설정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장면들이 나오기가 어렵다. 기껏해야 오해 정도가 나올 뿐이고, 그것도 즉각 이벤트 같은 걸로 풀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룸메이트>는 결혼 설정이 아니라 가족 설정이다. 거기서 나오는 건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격이다. 결혼이야 약간 허공에 발이 떠 있는 듯한 비현실적 부분을 포함하기 마련이지만, 생활은 다르다. 그것은 그대로 평소 성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게다가 <룸메이트>는 그 속에 몰래카메라적인 제작진의 의도를 집어넣곤 한다. 박봄과 박민우가 사귀는 것처럼 꾸며 출연자들을 속이는 미션은 <룸메이트>100% 리얼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리얼은 가만 내버려둘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들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룸메이트>는 기다리지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주말 예능이 만들어내는 강박일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재미를 만들어내야 하는 제작진의 압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서강준이 <인기가요> 스페셜 MC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민우가 불편한 마음을 드러낸 것은 아마도 진짜 속내일 것이다. 꽁하게 마음 속에 앙금을 갖고 있는 것보다는 아예 드러내놓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픈 진심이 거기서는 느껴진다. 하지만 다음 주 예고에서 서강준과 박민우가 함께 공동 스페셜 MC를 맡게 된다는 이야기가 살짝 나오는 장면에서는 제작진의 설정이 과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둘 다 나가게 됐다는 걸 같이 알려주면 될 일을 굳이 갈등과 속내를 끄집어내기 위해 한 사람씩 얘기해주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때문이다.

 

애매해진 리얼과 가상의 경계에서 이렇게 보여지는 출연자들의 속내는 오해될 위험성이 다분하다. 이 프로그램에는 유독 출연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들이 많은데 그것은 진심일 가능성이 높다. 왜 그렇지 않겠나. 유사가족이지만 서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생겼다는 건 그간 쌓여진 아픔이나 외로움이 터져 나올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눈물이 진짜인지 아닌지 시청자들은 애매하다.

 

만일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었다면 이 반응들이 좀 더 리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이기 때문에 오인되는 부분도 많다. 결국 연예인이 사생활까지 드러내 보일 때는 좋은 모습을 보이고픈 욕구가 더 많다고 생각되기 마련이다. 나나가 악플에 시달린다고 말한 대목이 방송에 나갔지만 심지어 대중들에게는 이 방송분조차 리얼인지 설정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리얼과 가상 사이 그 애매한 지점에 <룸메이트>가 가진 재미가 있지만 또한 위태로움도 있다. 그것은 균형이 잘 맞을 때는 어떤 진심의 감동을 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가식의 혐오로 다가올 수 있다. 최소한 제작진의 인위적인 설정은 되도록 빼는 것이 좋다. 그것은 자칫 출연자들의 속내를 끌어내기 위한 악취미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재미만큼 의미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연예인들이 사적으로 한데 모여 사는 새로운 형태의 주거문화를 드러내는 프로그램에서 자극적인 재미만을 추구한다면 오히려 논란만 잔뜩 양산해낼 수 있다. 요즘의 예능 프로그램은 재미만으로는 대중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프로그램이 전하는 의미 있는 스토리텔링과 공감 가는 정서를 우선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가상과 리얼 사이에서 호불호를 왔다 갔다 하는 <룸메이트>를 호감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안녕하세요>, 세상은 넓고 이상한 가족도 많다?

 

“아빠 니 방에서 야동 볼 거니까 들어 오지마.” 상식적으로 아빠가 아들에게 야동 운운하는 장면은 보통 가족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충분히 개방적인 가족도 있을 게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지상파에 나와 공공연하게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이 고민남은 아빠 못지않게 엄마도 술과 놀기를 너무 좋아해 고민이라고 했다. 술 마시고 무단횡단하다 사고를 당해 허리 부러지고 이가 빠졌지만 그 상황에서도 몰래 병실을 빠져나가 술을 마셨다는 것.

 

'안녕하세요(사진출처:KBS)'

물론 이런 고민남의 고민 토로에도 불구하고 이 부모는 당당했다. 애들이 다 컸고 자기 인생을 즐기면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 그럴 수 있다. 각자 자기 집안만의 교육법이나 분위기가 있으니 그것을 갖고 뭐라 할 수는 없을 게다. 하지만 그 고민의 내용도 어느 정도는 지상파의 수위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전국고민자랑’이라는 테마가 붙어 있지만 그것이 가족 간의 사적인 일들을 마구 파헤치고 드러내게 만드는 장치로만 기능해서는 곤란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날 출연한 막말 남편의 사연은 너무 지나쳐 보기에 불편한 수준이었다. 밥 먹을 때 “소가 여물 먹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자고 일어나 부어있으면 “붕어 대가리 같다”고 말하는 남편. “진짜 못생겼다. 얼굴 치워라. 밥맛 떨어진다.” “주름 자글자글한 것 좀 봐라. 살이 디룩디룩 쪄서 굴러다니겠다.” “덩치도 남자 같고 너한테 깔려 죽겠다.” 아내가 폭로한 남편의 막말은 부부가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거의 언어폭력에 가까웠다.

 

여기에 대해서 남편은 “아내가 관리를 안 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세게 말했다고 변명했지만 거기에 공감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결국 이 막말 남편의 사연을 소개한 고민녀가 이 날 방송에서 새로운 1승을 거두었다. 어찌 보면 막말 남편의 사연을 버젓이 온 국민에게 얘기한 부인 역시 상식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의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내밀한 이야기들을 공공연하게 떠벌리게 만드는 걸까.

 

이것은 사실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이 굴러가는 동력이기도 하다. 서로 앞 다퉈 좀더 센 고민을 털어놓는 것으로 그들은 승리의 상금을 가져간다.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긍정적인 표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것은 가족의 사생활 폭로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지상파, 그것도 KBS라는 공영방송에서 <화성인>처럼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가족 사생활을 폭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폭로의 대상이 되는 다른 가족을 출연시킨다. 일방적인 폭로가 아니라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를 살리는 것.

 

이것은 훌륭한 장치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자극적인 고민을 털어놓으려는 의도가 보일 때도 많다. 결국 고민이 소통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과정을 그려내는 것과, 지나친 폭로가 그저 자극적인 재미에 머무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가 될 수 있다. 그만큼 이 프로그림은 그 수위가 아슬아슬하다는 점이다.

 

내용보다 중요한 게 형식일 수 있다. 당당하게 야동 보는 아빠나 막말하는 남편 같은 내용보다 더 자극적일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경쟁적으로 방송에 나와 쏟아낼 수 있는 방송의 형식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족 간의 소통이라는 좋은 기획의도로 시작했던 <안녕하세요>. 하지만 때로는 그 의도가 무색하게 이상한 가족들의 쌍방향 폭로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피로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은 전혀 안녕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기도 한다.

<화신>, 포장지만 바꾼 신변잡기 토크쇼의 한계

 

김희선이라는 예능의 새 얼굴은 신선하다. 신동엽의 콩트와 순발력은 여전히 발군이다. 윤종신의 주워 먹기 토크도 살아있다. 최강 솔직함을 보여준 강혜정, 의외의 애교만점 예능감을 선사한 정만식, 거침없는 19금 입담을 선보인 소이현 등등 매 회의 게스트진도 약하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족하다. 부제로 ‘마음을 지배하는 자’를 달고 있는 <화신>이지만 시청자들의 마음을 지배하지는 못하고 있다.

 

'화신'(사진출처:SBS)

화려한 포장지로 잘 포장되어 있어 뭔가 특별한 선물인 줄 알았는데 막상 뜯어보니 늘 봐왔던 흔한 선물이다. 게다가 이 선물은 받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선물 준 사람이 마치 자신을 뽐내기 위해 준비한 것처럼 보인다. <화신>은 그런 선물 같다. 선물이라고 받았으니 즐겁긴 한데 별로 남는 의미나 강렬한 인상은 없는.

 

<화신>의 ‘문제의 발견’은 신동엽의 <헤이헤이헤이>를 재연한 듯 하고, 설문을 가져다 연예인들의 자기 경험을 빗대 얘기하는 부분은 <야심만만>을 보는 듯하다. 물론 <헤이헤이헤이>나 <야심만만>은 훌륭한 형식이지만(그래서 그 조합 역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건 이 형식들이 지금의 대중들의 정서를 담고 있느냐는 것이다.

 

만일 <야심만만>이 연일 화제를 끌어 모으던 시절이었다면 지드래곤이 나와서 털어놓는 자신의 연애경험이나 김경호가 최초로 13살 연하의 일본인 여자 친구가 있다는 고백 자체가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은 그 때와는 정서가 달라졌다. 당시 2003년에는 연예인의 신비주의가 벗겨지기 시작하던 시절로서 그들의 맨 얼굴이 담겨진 이야기 자체가 신선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3년 현재, 완연한 대중의 시대가 열린 지금 연예인의 일상은 그다지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 상대를 내 애인으로 만들 결정타, 남녀 1위는?’에 지드래곤이 과감한 스킨십을 얘기한다고 해도, 또 ‘당장 헤어지고 싶은데... 이별의 발목을 잡는 것, 남녀 1위는? ’에 대성이 아픈 여자 친구 때문에 여권을 잃어버린 척 하고 해외 공연에 가지 않은 사연을 털어놔도 그다지 흥미롭지가 않다. 왜 그럴까. 그것이 내 얘기가 아니라 저들의 이야기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과거 <야심만만>이 연예인 신변잡기에 머물러 있었어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신비주의가 벗겨져 나가는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 훌륭한 형식은 우리와 연예인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시켜 주었다. <화신>은 여전히 이 공감대를 내세우고 있지만, 요즘은 대중이 ‘왜 저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채워줄 수 있어야 공감대가 생기는 시대다. 이제 연예인의 이야기라고 해서 무조건 귀를 세우는 시절은 지나갔다는 얘기다.

 

심지어 예능에는 거의 출연하지 않던 설경구가 나와 자신의 깊은 속내를 드러낸다고 해도 그것이 내 이야기가 아니라 저들의 이야기라고 여겨질 때 대중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하물며 이렇게 강한 이야기도 먹히지 않는데 <화신>처럼 겉만 살짝 드러내는 이야기가 약하게 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토크쇼에서 연예인 프리미엄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한참 저들의 이야기에 웃기는 했는데 그게 우리에게 어떤 감흥이나 의미를 남기지 못했을 때 TV를 끄고 현실로 돌아온 우리는 무언가 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점점 더 저들과는 달리 힘겨워지는 현실은 그 괴리감을 더욱 높이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의미에 빠져 침잠하는 것은 예능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느끼게 해주는 건 중요한 일이다.

 

<화신>이 부제와는 걸맞지 않게 대중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은 그 형식이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주제가 2003년 <야심만만>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마음을 지배하려면 먼저 대중의 지금 현재 관심사를 끌어와 대중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화신>은 심지어 19금 토크를 하는 연예인의 속내로 파고들기보다는 진솔하게 대중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마음을 지배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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